고린도전서는 바울사도가 고린도교회에 보낸 편지입니다.
성경에는 고린도전서와 후서 두 편지가 나오지만 실제로는 더 많은 편지가 오갔습니다.
이천 년 전 먼 나라의 이야기지만 우리가 사는 이야기와 다르지 않습니다.
매일 잘 묵상하시면 각자의 신앙에 많은 교훈을 주실 것입니다.
1. 오늘은 고린도전서에 대해 전체적으로 정리를 좀 해드리겠습니다.
왜냐하면 고린도전서가 쉬운 성경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배경을 알아야 문맥을 잘 따라잡을 수 있습니다.
1) 고린도교회의 문제를 이해하려면 고린도라는 도시를 알아야 합니다.
사람도 자라온 환경이나 배경과 동떨어진 사람이 나오지 않잖아요?
고린도는 그리스의 아테네에서 차로 두 시간 정도 되는 거리에 있습니다.
지금은 소도시지만 이천 년 전 고린도는 그리스에서 가장 큰 항구 도시였습니다.
아시아쪽에서 로마 쪽으로 들어가는 많은 물자들이 고린도 항구에 들어와 육로를 따라 이동했기 때문입니다.
최근 중동전쟁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호르무즈해협 같은 것이죠.
상인들과 뱃사람들이 오가는 항구 도시는 특성이 있죠.
뜨내기 인구가 몰리다 보니, 보수적인 농촌 분위기와 달리 개방적입니다.
또 돈이 모이다 보니 각종 향락과 일탈행위가 번성하게 됩니다.
고린도는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여러 신들의 신전이 열두 개나 있었습니다.
특히 고린도를 대표하는 아프로디테 여신 숭배는 성적 타락의 온상이었습니다.
신전 제사 뒤에 공공연히 매춘이 행해졌기 때문입니다.
그 고린도 도시에 바울 일행이 복음을 전하러 들어간 것입니다.
바울은 복음 전할 곳이 많았기에 한 도시에 오래 머물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고린도교회에서 일년 반을 머물며 성도들을 가르쳤습니다.
그만큼 오래 머물 필요를 느꼈기 때문이겠죠.
고린도에서 성도들이 믿음의 뿌리를 내리는 게 어려웠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믿기 전에 살아왔던 삶은 신앙에 큰 영향을 줍니다.
고린도에 만연한 우상숭배와 타락한 문화는 신앙 성장에 큰 문제였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에 저해가 되는 환경들을 정리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차인표씨가 술 끊으려고 술친구들을 정리했다고 하더군요.
정말 맞는 말 같습니다.
고린도교회의 많은 문제들이 신앙을 거스르는 문화에서 왔다는 것을 꼭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2) 또 교인들의 신앙이 삶에 정착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머리와 가슴으로는 믿는 데 육신에는 새겨지지 않은 것이죠.
믿음은 우리 몸에 새겨져야 합니다.
바울사도가 어느 정도 성도들의 믿음을 세워 놓고 떠났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신앙이 인격과 삶에 스며들기까지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죠.
예수님을 믿은 다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생각과 언행을 계속 말씀에 맞춰가는 훈련입니다.
과거의 습관처럼 그것도 우리 몸에 습관이 되게 해야 합니다.
그게 제2의 습관이 되면 신앙생활을 할 때 우리의 아군이 됩니다.
신앙생활을 가장 방해하는 게 사탄이 아닙니다.
그보다 더 큰 적은 내 안에 있는 악한 본성과 나쁜 습관입니다.
성경 묵상, 기도, 예배, 말씀대로 실천하는 훈련을 습관이 되게 해서 내 안에 아군을 많이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면 상황에 따라 저절로 믿음의 습관대로 행동하게 되는 것이죠.
또 어떤 위기가 오든 습관대로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습관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일정한 시간과 장소와 반복이라는 걸 꼭 적용하십시오.
이런 훈련과 습관을 스스로 하지 않으면 신앙생활을 한다지만 거의 진짜 유익을 누리지는 못합니다.
신앙의 경륜은 얕고 신앙 훈련은 등한시했던 고린도교회는 당연히 세속과 죄를 방어할 힘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 교회와 성도라면 사탄이 건드리지 않아도 넘어집니다.
고린도교회는 신비적 은사에 열광 했지만 말씀을 배우고 지키는 데 열심이었다는 말이 없습니다.
사도행전의 베뢰아교회 같은 경우는 처음부터 말씀에 주의했던 교회죠.
잠언 29장 18절에서는 이런 지혜를 줍니다.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 율법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
우리는 매일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야 합니다.
오늘 새롭게 들은 말씀으로 오늘 믿음의 걸음을 떼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식상하고 정체되고 고인 물 같은 신앙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성도는 매력이 없습니다.
고린도교회의 오명이 된 문제들의 원인은 이외에도 그리스철학, 물질주의, 차별사회, 같은 것들이 포함됩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교회를 멀리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교회 안에서 모여서 더 와글와글 문제들을 일으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교회 밖에서는 여전히 그런 고린도식으로 살았던 것이죠.
이것이 비단 고린도 교회의 문제겠습니까?
전에 영국에서 온 목사님이 한국의 대형교회에 몰린 수많은 사람들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영국교회는 거의 쇠퇴하고 있잖아요?
그런데 얼마간 한국에 머물며 또 놀란 게 있다고 했습니다.
교인들이 교회를 벗어나면 세상사람들과 구별이 안된다는 것입니다.
영국은 소수의 신자들이 남았지만 그들은 성도라는 말 그대로 세상과 다르게 사는 걸 당연히 여긴다고 합니다.
한때 세상과 잘 조화되는 성도들을 현대적이고 세련되게 보기 시작했습니다.
성경은 한번도 세상과 벗이 된 성도라는 게 있다고 가르친 적이 없습니다.
세상에서 살지만 본향을 생각하면 세상과는 다르게 살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3) 고린도전서에 나온 교회의 문제는 일곱 가지 정도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미리 알아두면 전체 성경묵상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교회 내의 분파와 분쟁이 있었습니다.
음행과 도덕적 타락의 문제가 있었죠.
성도 간의 법정 소송이 있었습니다.
우상숭배와 신전에서 나온 제물을 먹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나옵니다.
예배의 무질서와 성찬식의 변질 문제가 나옵니다.
성령의 은사 오해와 부활신앙에 대한 불신의 문제가 있었습니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모를 정도죠.
신앙의 미성숙 속에 오래 머무는 게 이만큼 우리 자신에게 불리한 것입니다.
2. 바울사도는 고린도교회가 이렇게 신앙적, 도덕적, 공동체적으로 붕괴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얼마나 가슴이 철렁했을까요?
지금 이 고린도교회가 과연 주님의 교회가 맞나 의심되는 상황이죠.
그러나 바울사도는 다시 이 성도들을 위해 해산의 수고를 합니다.
본문에서 바울사도는 이 모든 문제의 원인은 ‘십자가의 도’를 놓쳤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많은 환경적 요인이 있었지만 결정적으로 십자가의 도를 견고히 붙잡지 않았던 것입니다.
지금의 우리에게도 십자가의 도를 붙잡는 게 신앙의 핵심입니다.
문제는 여러 가지지만 답은 모두 십자가의 도에서 찾아야 하는 것이죠.
십자가의 도에서 오늘은 18절 한절만 보시겠습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왜 십자가의 도가 답이 되는지를 밝히죠.
한마디로 십자가의 도가 우리에게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를 벗어나서 승리하는 성도는 없습니다.
우리도 늘 많은 문제들에 시달립니다.
그때 항상 예수님의 십자가를 붙들기를 축복드립니다.
십자가의 도에는 어떤 것들이 담겨 있을까요?
1)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하신 것이 십자가입니다.
내가 아직 예수님을 모르던 때, 예수님을 박박 부인하던 때, 이미 예수님은 그런 나를 위해 죽으셨다는 것입니다.
살다보면 낙심되고 절망도 찾아옵니다.
그럴 때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은 ‘하나님이 나를 버리셨나’ 입니다.
십자가를 통해 보여주신 하나님 사랑을 믿으면 흔들리는 마음을 붙잡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의 ‘길’이라는 말에는 이미 ‘따라가야 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우리가 모든 상황에서 십자가의 용서와 사랑을 따라가면 많은 문제에 답이 될 것입니다.
2) 십자가는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잊으면 입에서 불만이 나옵니다.
내가 매일 심판 받아 마땅한 죄를 달고 살면서도 매사에 불만스럽게 되죠.
고린도교회의 방종과 갈등은 심판을 잊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죄를 결코 가벼이 보지 않으십니다.
자식이 반복적으로 잘못하는 걸 무심히 보는 부모라면 이상한 것이죠.
하나님은 때로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으로 우리를 징계하기도 하십니다.
전도서에서 사람에게 주어진 자유와 그에 대한 심판을 이렇게 말씀하죠.
전도서11장9절, 청년이여 네 어린 때를 즐거워하며 네 청년의 날들을 마음에 기뻐하여 마음에 원하는 길들과 네 눈이 보는 대로 행하라 그러나 하나님이 이 모든 일로 말미암아 너를 심판하실 줄 알라
하나님의 심판을 아는 성도들만이 어떤 상황에 처하든지 감사합니다.
방종과 죄에 빠진다는 건 심판을 경히 여겨서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3) 십자가는 하나님의 겸손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채찍을 맞고, 모욕을 당하고 못이 박히신다는 것이 과연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까?
어떤 인간의 종교나 신화에도 신이 인간에게 그렇게 당했다는 이야기는 없습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당하지 않으면 구원하실 수 없기 때문입니다.
빌라도의 법정에서 예수님이 자신을 변호해 무죄를 받아내실 수 없었겠습니까?
사형선고를 받으셔야 했기에 침묵하신 것입니다.
인간의 손에 죽게 넘겨지시는 하나님의 낮아지심과 겸손을 우리는 십자가에서 늘 기억해야 합니다.
고린도교회나 우리나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생기는 불화들은 서로의 교만 때문입니다.
최근 사람들과 불화가 있었다면 십중팔구 서로를 무시하는 교만이 원인입니다.
십자가의 도 안에 더 여러 가지 깊은 의미가 있지만 세 가지만 잘 생각하고 그 길을 따라가도 많은 문제들을 피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 속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 심판, 겸손을 늘 생각하는 모두가 되시길 축복드립니다.
바울사도는 이런 고린도교회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교회를 붙드실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믿음이 없었다면 바울 또한 모욕과 수고를 견딜 이유가 없었겠죠.
차라리 그 시간에 다른 지역에 복음을 전하고 새 교회를 세웠을 것입니다.
충청도 부여의 시골마을, 성도 한 명이 남은 교회가 있었습니다.
제일 어려운 곳을 찾아 섬기겠다는 생각에 한 젊은 목사가 부임했습니다.
서울엔 휘트니스 사업을 하며 돈을 잘 버는 유능한 자매가 있었습니다.
은혜를 받고 나서 자매는 가장 힘든 목회를 하는 목사의 아내가 되겠다고 결심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둘을 부부로 만나게 해 주셨습니다.
목사 내외가 시골마을을 열심히 섬겨서 스무 명의 성도들이 모였습니다.
이 젊은 사모가 주일 점심을 준비하는 짧은 영상이 백오십만 뷰를 기록해 큰 주목을 받기도 했습니다.
사모는 이 교회로 내려오며 꿈이 있었습니다.
그동안 훈련받은 여러 가지 신앙 프로그램을 성도들께 가르쳐 드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몇 년간 열심히 성도들을 섬기다가 어느 순간 허탈함에 빠졌습니다.대부분의 성도들은 글을 몰라 성경도 읽지 못했습니다.
어떤 분은 오자마자 기운이 없어 교회 장의자에 누워 잠들어 버립니다.
귀가 안 들리는 성도님은 예배 참석해도 한 마디 설교도 못 듣습니다.
이런 성도님들이 과연 복음을 이해하고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 현타가 온 것이죠.
얼마간 낙심한 상태로 기도하던 중 성령께서 분명한 마음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는 제한이 없다
예수님이 지난 주 말씀하셨잖아요?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우리도 나 자신의 연약함이나 다른 누군가의 실망스러운 모습에 낙심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구원과 삶의 모든 문제들이 다 되십니다.
낙심하지 말고 오늘 기도할 때 고린도교회의 문제가 결국 해결되듯이 우리 모든 문제들도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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