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마태복음20장29절-34절 (떠난 자와 따르는 자)

남수연 2026. 6. 9. 01:12

오늘 말씀은 예수님이 두 맹인을 고쳐주신 이야기입니다.

복음서는 주님께서 많은 병자들을 고치셨다고 곳곳에서 기록합니다.

그 가운데 맹인도 있고, 귀머거리도 있고, 다리 저는 사람들도 있었죠.

오늘처럼 병자를 개별적으로 자세히 다루고 있는 경우는 특별한 것을 가르치시겠다는 뜻입니다.

오늘 말씀을 맹인들 개인의 구원사건으로만 보면 절반만 아는 것이죠.

이 사건 속에 담겨있는 중요한 구원의 이치들도 알아야 백점입니다.

구원에 대해 풍성히 알아야 믿음의 삶도 풍성해집니다.

오늘 말씀을 들을 때 성령께서 깨닫는 마음을 주시길 원합니다.

 

1. 맹인을 치유하신 내용이 길지는 않습니다.

은혜의 물을 긷기 위해서 이야기 속으로 파고 들어가 보겠습니다.

예수님의 갈릴리 사역은 끝이 났습니다.

이제 생애 마지막 유월절에 맞춰 예루살렘으로 향하고 계셨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일주일을 보내고 십자가형을 받게 될 것입니다.

본문에서는 예루살렘으로 가던 중에 여리고를 지나고 계셨습니다.

40킬로만 더 가면 예루살렘입니다.

그런데 큰 무리가 예수님을 따르고 있었다고 하죠.

제자들뿐 아니라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각 지방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유대인들이 대거 합류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삼 년 사역으로 거의 모든 사람들은 예수님을 알고 있었습니다.

소문으로만 듣던 예수님을 만나니 신기해서 따랐을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나사렛 예수라고 불렀습니다.

예수라는 이름이 흔했기에 주님을 구별하기 위해 그렇게 부른 것입니다.

그러나 그 말 속에는 은연 중에 예수님이 메시야임을 의심하는 마음도 들어 있습니다.

메시야는 다윗의 자손이니 다윗의 고향에서 나와야 하는 거 아니냐는 것이죠.

예수님은 다윗의 고향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시고 나사렛에서 자라셨다는 것까진 몰랐던 것입니다.

나다나엘도 처음엔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올 수 있냐고 예수님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대제사장이 바울을 나사렛 이단의 우두머리라고 고발합니다.

누가복음을 보면 맹인이 큰 무리가 지나는 소리에 무슨 일이냐고 묻습니다.

그때 사람들이 나사렛 예수께서 지나가신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맹인들은 나사렛 예수라는 말을 듣자 냅다 이렇게 소리를 지릅니다.

30절하,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하니

나사렛 예수께서 다윗의 자손이라는 것입니다.

맹인들은 이미 주님을 구약에서 예언 된 메시아로 믿고 있는 것이죠.

 

맹인들이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이라고 부른 부분은 좀 자세히 보겠습니다.

다윗의 자손뜻은 이제 다 아실 것입니다.

그래도 반복만이 살길이라 또 반복해서 들으십시오.

구약과 신약의 맥락을 잘 잡아야 믿음의 뿌리가 깊어집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시죠.

창세기22장에 보면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을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훨씬 후대에 와 다윗과 다시 그 언약을 맺으십니다.

역대상1714절입니다.

내가 영원히 그를(너의 씨를) 내 집과 내 나라에 세우리니 그의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한 인간의 왕위가 영원할 수는 없죠.

사람들은 다윗왕조가 영원히 지속된다는 말로 믿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왕조는 지금 흔적도 없잖아요?

말씀 그대로 다윗의 씨 그리스도 한 분이 진짜 영원히 다스리신다는 뜻입니다.

사람들은 다윗왕조가 부활할 것을 학수고대 했습니다.

로마로부터의 독립국가를 원한 것이죠.

무리들은 아직 나사렛의 선지자 예수님에 대해 반신반의하고 있었습니다.

놀랍게도 길에서 구걸하던 이 맹인들은 예수님이 다윗의 자손이라고 알았다는 것입니다.

 

맹인들은 어떻게 예수님이 다윗의 자손임을 확신했을까요?

맹인의 눈을 뜨게 했다는 소문을 들었잖아요?

어느 의사도, 제사장도, 선지자도, 맹인의 눈을 뜨게 할 수는 없습니다.

단 한 사람, 다윗의 자손인 메시야만 사람의 눈을 뜨게 할 수 있습니다.

이사야선지자가 예언했잖아요?

메시야가 오면 눈먼 자를 뜨게 하고 귀머거리를 듣게 할거라고요.

메시아가 와도 그분을 어떻게 알아보겠습니까?

일단 인간의 가장 큰 고통 중 하나인 중병을 치료하는 능력을 가진 분이 메시아다, 그게 증표라는 것이죠.

맹인의 눈을 뜨게 하신 예수님은 의심의 여지없이 다윗의 자손인 것입니다.

그러니 분명히 자기들의 눈도 뜨게 할 수 있다는 걸 믿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진짜 그런 메시야가 오신 것에 좀 당황했을 것 같습니다.

그냥 알렉산더 같은 왕이 나오면 되는 거잖아요?

물론 이사야의 예언의 의미는 메시야가 가져올 구원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죄인들은 하나님을 모르게 태어납니다.

예수님이 죄를 다 속죄해 주셔야 다시 영의 눈을 떠 하나님을 볼 수 있게 할 수 있으신 것이죠.

예수님이 니고데모에게 말씀하셨죠.

네가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이런 계시가 다 밝혀지기 전까지는 이사야의 예언이 육신의 눈으로만 이해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 당시에는 그렇게 믿는 것도 믿음입니다.

마가복음, 누가복음에 보면 예수님이 맹인의 믿음을 인정해 주십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매

우리는 어떻게 믿으면 되겠습니까?

이제는 계시가 다 드러났으니, 예수님이 내 영의 눈을 뜨게 하신다는 걸 믿으시면 됩니다.

 

그러나 맹인들이 다윗의 자손을 외치기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누가복음을 보면 맹인들은 길가에서 구걸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제가 이전에 인간극장에 나왔던 시각장애인 부부 영상을 지난 주에 보았습니다.

앞을 못 보는 생활이 현실적으로 어떤지를 알겠더군요.

그런데 부부가 딸을 낳아 키우는 거예요.

힘들고 불편하겠다 생각했던 그 이상으로 앞을 못 보는 삶은 막막했습니다.

아무것도 안 보이는 엄마는 이유식 하나 만드는 게 전쟁이었습니다.

우리가 눈 감고 이유식을 만든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기저귀를 삶은 들통을 옮기는 데 조마조마했습니다.

문제는 아기가 소리를 안 내면 어디에 가 있는지를 모른다는 거예요.

막 돌 지난 아기가 조금씩 사고를 치기 시작하더군요.

그런데 아기가 벌써 엄마가 못 본다는 걸 눈치챈 것 같았습니다.

사고 칠 때 보면 그 조그만한 게 숨을 죽이고 아주 가만가만 움직이더군요.

아내는 사람을 만나면 주눅이 드는 게 역력했습니다.

죄를 지어서 못 보게 된 것도 아니잖아요?

그런데 뭔가 잘못한 것처럼 위축되는 것이죠.

저는 엄지 발톱 하나가 내성 발톱인데 치료하다 잘 안 되서 발톱 모양이 흉해졌습니다.

집에 정수기 코디가 와도 꼭 양말을 신게 됩니다.

장애인 아내는 자기에게 시선 쏠릴 게 싫어서 외출도 꺼리더군요.

구걸하던 맹인들도 추레한 몰골로 많은 사람들 눈에 띄고 싶었겠습니까?

그런데 지금 기적처럼 예수님이 지나가고 계신다잖아요?

예수님이 맹인을 고쳐주신 소문을 이들도 이미 들었습니다.

소문은 들었지만 갈릴리까지 어떻게 예수님을 찾아가겠습니까?

예수님을 만나고 싶은 간절함만 쌓이고 있었겠죠.

예수님만 만나면 나도 눈을 뜰 수 있을텐데.

우리도 그런 것 있잖아요?

하나님이 들으시기만 한다면 이 문제가 좀 달라질텐 데.

그런데 예수님이 바로 자기들 앞을 지나가십니다.

맹인들의 간절한 기도 응답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기적 같은 기회를 어떻게 놓치겠습니까?

체면이고 염치고 사람들의 면박이고 신경 쓸 때가 아닌 것이죠.

실제로도 이날이 아니었다면 맹인들은 눈을 뜨지 못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일주일 뒤에는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실 거잖아요.

고린도후서62절 말씀이 우리 모두에게 항상 기억하라고 하십니다.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오늘도 은혜받고, 예수님을 만나시길 축복드립니다.

 

맹인들의 절박한 외침에 무리들이 꾸짖고 잠잠하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가시는 곳마다 많은 병자들이 몰렸는데 왜 갑자기 맹인을 꾸짖었을까요?

지금은 분위기가 다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하실 큰 일을 잔뜩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지금 병자의 간청이나 들어주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것이겠죠.

지체할 시간 없으니 입을 다물라고 맹인들을 꾸짖었던 것입니다.

또 구걸하는 맹인의 입에서 나오는 다윗의 자손이란 말은 반가웠을까요?

어떤 사람이 그런 말을 하느냐에 따라 높여졌다는 느낌보다는 왠지 체면이 더 깎이는 것 같은 미묘함이 있지 않나요?

지난 주 부자 청년 관원의 입에서 다윗의 자손이여가 나왔다면 뿌듯했을 것입니다.

출애굽기22장에서는 인간의 악독한 차별 근성에 대해 하나님이 무시무시하게 경고하십니다.

나그네를 학대하지 말고 과부와 고아를 해롭게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만일 그들이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네 아내가 과부가 되고 네 자식이 고아가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무슨 뜻입니까?

네가 죽을 거라는 뜻이죠.

그만큼 으스대고, 차별하고, 힘으로 남을 압제하는 걸 못 참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은연 중에 나보다 어느 면에서 부족한 사람들을 무시하고 함부로 대한다면 두렵게 생각해야 합니다.

또 내가 사회에서 좀 괄시를 당한다 해도 하나님은 그들의 편이 아니라 약자인 내 편이심을 기억하십시오.

나를 무시하고 홀대하는 사람들을 주님은 찾아가 조용히 꾸짖으십니다.

창세기에서 하나님이 당사자 아브라함과 야곱이 모르는 중에 은밀히 아비멜렉에게, 라반에게 꿈으로 나타나 그러셨잖아요?

 

오늘 맹인들에게서 기도에 대해 적용할 수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입을 틀어 막으려 해도 맹인들은 주님께 더 소리를 질렀습니다.

31, 무리가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더욱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하는지라

그 소리를 듣고 예수님이 걸음을 멈추십니다.

그리고 그들을 부르십니다.

마가 복음을 보면 좀 전까지 꾸짖던 사람들이 이렇게 맹인들에게 말합니다.

1049,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그를 부르라 하시니 그들이 그 맹인을 부르며 이르되 안심하고 일어나라 그가 너를 부르신다 하매

갑자기 왠 친절입니까?

어떨 때는 기도해도 점점 상황이 나빠지는 느낌이 듭니다.

사람 관계도 더 꼬이고 사방에서 기분 상할 일도 일어납니다.

그렇다고 기도를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때가 되면 긍정적인 사인들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복잡하고 들끓던 마음도 이상하리만치 고요해집니다.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면 안심이 될 때까지 기도해야 합니다.

응답은 우리가 바라는 대로가 아닐지 모릅니다.

그러나 바라는 것보다 더 나은 응답을 주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 기도에서 이 부분을 아셔야 합니다.

예수님이 이 맹인들에게 물으시죠.

32,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그들을 불러 이르시되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맹인들이 예수님을 불렀다면 무엇을 원했겠습니까?

당연히 눈을 뜨게 해 달라고 하는 것이죠.

그런데 예수님은 물으십니다.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맹인들이 구하는 것을 분명히 말씀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33, 이르되 주여 우리의 눈 뜨기를 원하나이다

기도는 내가 원하는 것을 내 입으로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아무 것도 필요치 않다고 하는 데 주실 수는 없잖아요?

하나님은 우리가 원하는 것을 분명하게 간구할 때 응답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들의 절실하고 간곡한 요청에 예수님이 응답하시죠.

34, 예수께서 불쌍히 여기사 그들의 눈을 만지시니 곧 보게 되어 그들이 예수를 따르니라

우리가 반드시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부르짖는 우리를 불쌍히 여기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애가 타도 사람들의 위로와 도움은 한계가 있습니다.

진정한 위로와 도움은 예수님의 긍휼히 여기시는 마음에서 온다는 것을 꼭 기억하십시오.

사람 의지할 게 뭐 있습니까?

맹인들에게 도와주는 사람이 있어 봤자 동전 몇 개 던져 주는 것 이상은 아니잖아요?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는 예수님께서 도와주시려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것을 항상 생각하고 기도의 자리로 나가시길 축복드립니다.

 

2. 성경은 왜 이 맹인들의 치유 사건을 자세히 전하고 있는 걸까요?

이것까지 알아야 백점입니다.

1) 예수님이 이제 십자가를 지시면 죄인들이 눈을 떠 하나님나라를 보게 될 것입니다.

현재까지는 모든 사람들이 눈뜬 장님입니다.

십자가의 대속을 통해 예수님이 하실 일을 맹인의 눈을 뜨게 한 사건을 통해서 가르쳐 주신 것이죠.

그렇다면 주님이 누구의 눈을 뜨게 해 주시는 것일까요?

맹인들이 한 말에 답이 있습니다.

다윗의 자손이여, 예수님을 구원자로 믿는 것이죠.

그리고 또 이렇게 말합니다.

주여 우리의 눈 뜨기를 원하나이다

자기들이 예수님 없이는 볼 수 없다는 걸 고백해야 하는 것이죠.

예수님이 요한복음9장에서 이렇게 바리새인들을 책망하셨죠.

39,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맹인이 되게 하려 함이라 하시니

바리새인들은 이 말씀을 듣고 이기죽거리죠.

40, 우리도 맹인인가

예수님이 정색을 하고 말씀십니다.

너희가 맹인이 되었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

예수님이 진리를 선포하시면 사람들이 물과 기름처럼 분리된다는 걸 복음서는 보여줍니다.

이제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면, 못 보면서 본다고 우기는 종교인들이 우글우글할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가짜 메시아라고 몰고 가 십자가에 못 박을 것입니다.

두 맹인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할 뿐 아니라 자기들이 못 본다는 걸 알죠.

완전히 정반대로 다르잖아요?

과거 예수님을 알기 전에 내가 하나님을 모르고 영의 세계를 못 보던 맹인이었습니까?

지금은 보이십니까?

만일 지금도 내가 못 보고 있다고 생각하신다면, 괜찮습니다.

내가 맹인인 걸 모르고,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사람보다 소망이 있습니다.

내가 못 보는 걸 인정하고, 내가 보기를 원하나이다 간절히 기도하십시오.

예수님은 눈에 손을 대셔서 영안을 열어 주님의 세계를 보게 하실 것입니다.

 

2) 오늘 두 맹인과 정반대 되는 또 다른 사람이 있죠.

지난 주 우리가 부자관원 청년이 예수님 앞에 나온 말씀을 보았습니다.

그때 그 청년은 주님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많은 재산 때문에 근심하며 돌아갔죠.

오늘 맹인들은 눈을 뜨고 나서 예수님을 따랐다고 합니다.

34, 예수께서 불쌍히 여기사 그들의 눈을 만지시니 곧 보게 되어 그들이 예수를 따르니라

주님 앞에 서면 떠나는 자와 따르는 자가 있다는 것입니다.

마가복음엔 맹인들은 겉옷을 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님께 왔다고 합니다.

의미심장한 말입니다.

걸인의 유일한 재산이었을 겉옷도 주님께 나오는데 거추장스러우면 벗어 던졌다는 것입니다.

재산이 아까워서 떠난 부자청년과 유일한 재산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른 맹인이 대조되는 것이죠.

 

3) 본문은 두 명의 맹인이라고 기록하지만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은 한 명의 맹인에 대해서만 언급합니다.

그 맹인의 이름이 디메오의 아들 바디메오였다고 합니다.

복음서에서 병자의 이름을 밝히는 예가 드뭅니다.

후일 교회 시대에 바디메오가 이름을 대면 알 만큼 중요한 인물이 되었다는 걸 시사합니다.

함께 따랐던 또 다른 이름 없는 맹인은 자신의 삶을 찾아간 것 같습니다.

오늘 마태는 본래 두 명이 눈을 떴다 전하고, 마가와 누가는 끝까지 따른 사람은 한 명이었다고 기록을 남긴 것입니다.

예수님을 잠시 따르다가도 돌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끝까지 예수님 따르기를 축복드립니다.

히브리서314절은 이렇게 권면합니다.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신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고 있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되리라

 

말씀을 마칩니다.

시각장애인 부부의 삶을 보며 암흑의 막막함에 제 마음도 답답했습니다.

그런데 밥을 먹으려고 펴 놓은 상을 볼 때 한 줄기 빛이 느껴졌습니다.

예수님이 양무리 속에서 어린 양을 안고 있는 그림이 있는 밥상이었습니다.

인근 교회에서 심방 선물로 가져온 것 같았습니다.

육의 눈은 뜨지 못했지만 이 가족들이 영의 눈을 떠 예수님 만나기를 기도했습니다.

앞 못 보는 사람만 절망인 것은 아닙니다.

유명 아이돌 멤버가 외국에서 인터뷰한 영상이 하나 눈에 띄었습니다.

똑똑하고, 사려가 깊고, 최선을 다해 살아온 청년은 밤에 너무 공허함이 밀려온다고 했습니다.

자신은 매일 속에 있는 악마와 싸우고 있다고 하더군요.

세상 끝까지 찾아 보겠다고 하지만 뭘 찾는지는 모르는 것 같았습니다.

영의 눈을 뜨지 못하면 아무리 찾아도 세상에서는 답이 없습니다.

그 청년도 예수님을 만나길 기도했습니다.

바울사도는 사도행전26장에서 예수님이 다메섹으로 가던 길에 나타나셔서 자기에게 이렇게 말씀했다고 합니다.

17절하, 18, 내가 너를 구원하여 그들에게 보내어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우리가 예수님을 전해서 누군가의 눈을 뜨게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 눈을 뜬 자들이 얻을 축복이 어마어마하죠.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또 죄사함과 성도들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미 이런 복을 받은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살아가는 평생 이 좋은 축복 안으로 사람들을 이끄는 모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바디메오는 절망이었던 장애에서 눈을 뜨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아마도 그 주간 금요일에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모습도 보았을 것입니다.

바디메오는 나중에 그걸 깨달았을 것입니다.

내 눈을 뜨게 하신 것은 예수님의 능력으로 쉽게 해 주신 것이 아니구나.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내 죄를 속죄하심을 담보로 미리 얻은 은혜였구나.

우리가 영안을 떠서 하나님을 알게 되고 예수님이 내 구원자심을 알게 되셨습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내 죄값을 대신 치르심으로 받게 된 은혜입니다.

그것을 늘 감사하며 바디메오처럼 평생 예수님을 따르는 모두가 되시길 축복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