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가랴

여호와께 비를 구하라 (스가랴서10장1절-5절)

남수연 2025. 9. 3. 17:04

요한계시록이 끝나고 스가랴서로 매일성경 묵상을 하고 있습니다.

상징적인 표현들이 많아서 계시록만큼 어렵다고 느끼셨을 것입니다.

스가랴서를 기록하게 하신 목적을 알면 전체 내용 이해가 좀 쉬워집니다.

1. 스가랴서의 전체적인 서론을 간단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저자는 선지자 스가랴입니다.

스가랴선지자의 시대는 바벨론 포로들이 돌아와 성전을 재건할 때입니다.

귀환민들의 지도자는 유다총독인 스룹바벨과 제사장 여호수아입니다.

포로들은 다시 성전을 짓고 하나님을 섬기며 옛 영화를 되찾을 부푼 꿈을 안고 돌아왔죠.

귀국 후 2년 만에 감격스럽게 성전 지대를 놓고 건축을 시작합니다.

그런데 그동안 이스라엘 땅에 들어와 살고 있던 부족들의 방해로 건축이 중단됩니다.

그렇게 성전 건축이 중단된 채 16년이 지납니다.

꽤 오랜 시간이죠.

성전이 세워지지 않았으니 신앙공동체를 이루려던 귀환자들의 꿈은 사그러들었습니다.

각자 자기 삶의 터전을 일구기에 몰두했지만 폐허 된 마을을 재건하고 생업을 일구는 것만도 만만한 일이 아닙니다.

우리나라 해방 뒤에 타국에서 귀국한 동포들의 삶을 생각하면 될 것입니다.

귀환민들이 이런 이유로 회의감에 빠져 있을 때 하나님께서 두 선지자를 보내십니다.

학개와 스가랴입니다.

이 두 선지자가 무슨 메시지를 전했을까요?

당연히 다시 성전 재건을 시작하라는 촉구와 격려의 메시지였습니다.

따라서 스가랴서의 주된 메시지는 성전재건입니다.

그런데 성경전체의 맥락 안에서도 이 스가랴서를 이해해야 합니다.

포로 70년의 징계와 환난을 당하고 돌아왔지만 사람들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성전을 세운다고 뭐가 달라질까요?

이스라엘의 배반, 징계, 용서의 사이클은 무한 반복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스룹바벨이 세운 이 두 번째 성전에 장차 참성전이 되실 메시야의 예표를 씌워 놓으신 것입니다.

이제 메시야를 보내 죄인을 구원하실 하나님의 계획이 스가랴 선지자의 시대에 까지 도착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실 막바지에 이른 것이죠.

그래서 이 스가랴서에 메시야에 대한 예언이 그렇게 많이 나오는 것입니다.

앞에 보면 겸손한 메시야가 어린 나귀를 타고 오신다는 것을 예언하죠.

131절에는 이런 계시가 나옵니다.

그 날에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다윗의 족속과 예루살렘 주민을 위하여 열리리라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죄와 더러움을 친히 씻어서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스스로 죄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기까지 오면서 신물이 나게 보여준 것이죠.

그게 사실 우리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스가랴서의 마지막에는 예수님의 재림으로 모든 구원이 완성될 것이 예언되어 있습니다.

 

2. 구절별로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1, 봄비가 올 때에 여호와 곧 구름을 일게 하시는 여호와께 비를 구하라 무리에게 소낙비를 내려서 밭의 채소를 각 사람에게 주시리라

봄비가 올 때에는 봄비가 내리는 시즌이라는 말입니다.

이스라엘은 가을과 봄에 두 차례 우기가 있습니다.

메마른 지형 탓에 이 두 차례 우기가 농사의 성공을 좌우합니다.

이때 하나님께 비를 구하라는 말씀에서 두 가지 이슈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1) 하나님의 백성들은 약속하신 일상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후나 강수량과 같은 자연 현상은 변동적입니다.

이미 가나안땅에 정착해 살던 부족들은 농경민족입니다.

그들도 우로에 생존이 걸려 있었습니다.

가나안부족들은 하늘에서 비를 내려주는 신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번지수를 잘못 찾아서 바알신을 섬기게 된 것이죠.

자연이 변칙적이듯 인간 생애에 일어나는 일들도 변칙적입니다.

안전한 일상은 정해진 게 아닙니다.

때로 재정에 기근이 들고, 시련이 홍수처럼 몰아닥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보호자가 되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필요를 다 아신다고 하며 일용할 양식을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필요를 공급하시고, 우리를 보호해 주시지만 그 사실을 잊어버리지 않도록 매일 기도하라시는 것입니다.

만일 기도 없이 평온한 일상이 계속되면 하나님이 점점 멀어집니다.

인생에는 흉년이 있고 재난도 있습니다.

그때 하나님을 의지해서 어려움을 이겨나갈 실력이 갑자기 어디서 생기겠습니까?

문제는 과연 하나님이 오늘 말씀대로 우리 기도에 응답하시냐는 것입니다.

제가 우영이에게 기도에 대해 좀 가르쳐 주었습니다.

우영아, 속상한 일 있으면 예수님한테 도와달라고 기도해

그랬더니 우영이가 뭐라고 한 줄 아세요?

하나님이 기도해도 안 들어주셔요.

깜짝 놀라서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장난감이 고장나서 고쳐달라고 기도했는데 안 고쳐 주셨다는 거예요.

저는 우영이가 진짜 고쳐 달라고 기도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말은 장난감 고장 났는데 기도한다고 고쳐지겠냐는 것입니다.

아이들도 기도가 자기 인생 경험으로 판단할 때 공허하다는 것이죠.

보이지 않는 것을 가르친다는 게 아이들에겐 더 어렵습니다.

우영이가 똑똑해서 성경 가르치는 게 만만치 않습니다.

우리가 기도를 안 하는 이유가 우영이 생각하고 비슷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이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하신 것은 당연히 이유가 있으십니다.

성도들은 항상 하나님과 함께 산다는 것을 그렇게 유지하라는 것입니다.

내 힘으로 안되는 답답한 일, 걱정하며 준비하는 일, 그런 것을 하나님께 계속 의논하고 말씀드리며 살라는 것이죠.

장난감을 고쳐 주는 것처럼 뚝딱 기적이 일어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하는 한 반드시 어떤 방식으로든 그 문제를 해결하도록 인도해 주십니다.

어느 목사 사모님이 밤중에 기도하다 한 집사님이 떠올랐습니다.

그 집사님에게 돈이 필요한 것 같은 감동이 와서 그 밤에 즉시 송금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늦은 시간에 곧 그 집사님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지금 자기도 기도하고 있었다는 거예요.

아는 사모님 사정이 급한데 자기 힘으로 돕지 못해 속상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송금받은 것을 즉시 그 사모님에게 보낸 거예요.

그런데 돈을 받은 그 분 역시 그 시간 하나님께 다급히 기도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성도들의 기도를 실시간 듣고 계시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응답하시는지를 보여주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기도응답이 어떻게 올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봄비가 올 시즌에 비가 안 온다면 기도하십시오.

구름이 언제 일어날지 하늘만 바라보지 말고 구름을 일으키시는 하나님께 비를 구하시길 바랍니다.

 

 

2) 이른비와 늦은비는 하나님의 약속이었습니다.

다만 그 약속이 이스라엘의 죄로 인해 지금 막히고 있다는 것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신앙의 참담함이 2절에 나옵니다.

2, 드라빔들은 허탄한 것을 말하며 복술자는 진실하지 않은 것을 보고 거짓 꿈을 말한즉 그 위로가 헛되므로 백성들이 양 같이 유리하며 목자가 없으므로 곤고를 당하나니

이스라엘 사람들은 비가 오지 않을 때 가나안 부족처럼 결국 바알신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삶에 문제가 생기자 드라빔을 의지하고 복술자를 찾았다는 것입니다.

드라빔은 창세기에 나오죠.

라헬이 야곱을 따라 가나안땅으로 돌아올 때 아버지 집에서 드라빔을 훔쳐온 내용이 나옵니다.

드라빔은 가정을 지켜주는 수호신 같은 작은 우상입니다.

옛날에 섣달그믐날이면 밤 늦게 까지 복조리를 팔러 다니는 사람들이 있었죠.

한 해 복이 담기길 원하며 어른들이 없는 돈에도 복조리를 샀던 생각이 납니다.

액을 막는 북어를 처마에 매달아 놓기도 했습니다.

요즘 집들이 선물로 액막이 북어 오브제를 시중에서 판매합니다.

전에 TV에서 크리스찬으로 알려진 가수가 집들이를 하는 데 초대받은 사람이 그 액막이 북어를 선물로 가져온 걸 봤습니다.

설명인즉, 북어의 동그란 눈이 액운을 감시한다고 합니다.

크게 벌린 입으로 액운을 먹어 치운다고 합니다.

집주인이 방송에서라 좋아한 건지 모르겠지만 진짜 집에 걸어 놓지는 않았길 바랍니다.

작은 마리아상이나 부처상 같은 게 있는 집들이 있죠.

달마도 그림을 걸어 놓은 집도 있구요.

집의 액운을 막고 복을 기원하는 목적으로 인간은 그런 우상을 간직하고 의지했던 것입니다.

그게 의지가 된다는 게 참 의아하죠.

또 사람이 절대 알 수 없는 게 자기 미래잖아요?

일의 결과가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역이고 피조물인 인간에게는 허락되지 않은 영역입니다.

그걸 알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단번에 신처럼 군림할 수 있습니다.

많은 무속인들이 어설프게 미래를 점쳐주며 점점 사람들을 조종하고 자기 뜻대로 움직이는 것이 그래서입니다.

이런 드라빔이 다 무엇이고 복술자가 다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손바닥만한 우상 인형이 무슨 신묘한 능력이 있겠어요.

복술자들의 점괘도 그렇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이 많이 보는 타로점이 있습니다.

그게 희망적인 얘기를 해 주거든요.

그러니까 현실에 벽을 느끼고 막막한 젊은이들이 타로점을 보며 위로를 받는다고 합니다.

그것도 중독처럼 빠져드는 것이죠.

타로점이 무슨 진실을 말합니까?

그런 위로가 다 헛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것들을 찾아 다니는 사람들을 이렇게 말씀합니다.

백성들이 양 같이 유리하며 목자가 없으므로 곤고를 당하나니

정확하게는 목자이신 하나님을 버리고 각기 자기 욕심을 만족시켜 줄 것들을 찾아 헤맨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는 인생의 지독한 곤고입니다.

인생의 기근을 만날 때 무엇을 의지하시렵니까?

내가 여전히 의지하는 드라빔은 무엇이고 위로받으려는 복술자는 무엇입니까?

그들은 우리의 구원자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가슴이 철렁하고, 큰 일이다 싶을 때 제일 먼저 우리가 하나님을 떠올리길 원하십니다.

왜 그런지 자꾸 일이 틀어지고 사는 게 점점 힘들어지면 오늘 본문 말씀을 꼭 기억하십시오.

봄비가 올 때에 여호와 곧 구름을 일게 하시는 여호와께 비를 구하라

그런데 사실 저에게는 이 구절이 너무 희망적이고 가슴을 설레게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봄비의 축복을 주시려고 하니 얼른 기도해

그렇게도 들립니다.

약속하신 것도 기도해야 합니다.

어려운 일이 생기면 더욱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준비하신 뜻밖의 풍성한 축복을 기대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모든 일에, 항상 하나님과 함께 하고싶은 마음으로 기도하는 모두가 되시길 축원드립니다.

2025년8월20일 수요기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