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평안을 주노라 (요한복음14장25절-27절)

남수연 2026. 3. 28. 19:22

이제 다음 주면 고난주간입니다.

어떤 신자들에게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이 여전히 피부에 와 닿지 않을 것입니다.

십자가의 대속을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이성으로 이해하기 어렵죠.

십자가가 큰 걸림이 되는 것은 교회 밖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분들은 어차피 관심이 없으니까요.

오히려 교회 안의 신자들에게 십자가는 항상 풀어야 할 큰 숙제 같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예수님의 십자가가 납득이 안되는 사람들이 있었죠.

바로 십자가형 전날인 지금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 제자들입니다.

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은 십자가형이라는 덫을 놓고 예수님을 몰고 가고 있습니다.

그들에게도 십자가가 어렵지 않습니다.

자기들을 위협하는 숙적을 제거하는 방법이죠.

혹시라도 로마의 심기를 건드릴지 모르는 위험 요인을 없애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에게 주님의 십자가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하나님나라를 세우실 예수님이 대체 왜 갑자기 십자가를 지시겠다는지 이해가 안되죠.

십자가가 함정이라 해도 예수님께는 아무 것도 아니잖아요?

제자들은 삼 년 동안 주님을 따라 다니며 온갖 기적 행하심을 옆에서 지켜본 사람들입니다.

왜 죽으셔야 하고 왜 부활하셔야 하는지 이해가 안되는 것이죠.

그야말로 모든 것을 버리고 따랐던 예수님의 난데없는 십자가의 길을 어떻게 이해하겠습니까?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이런 상태의 제자들에게 남기신 마지막 가르침, 고별강화 중의 일부입니다.

우리가 읽어도 쉽게 이해하기가 어려운 부분들이 있습니다.

공황 상태의 제자들에게 주님은 왜 계속 어려운 진리들을 가르치실까요?

왜냐하면 예수님이 지금 가르쳐주지 않으시면 절대 알 수 없는 진리들이기 때문입니다.

 

1. 25, 내가 아직 너희와 함께 있어서 이 말을 너희에게 하였거니와

이날 말씀이 없었다면 우리가 믿는 중요한 진리들을 완벽하게 알 수 없습니다.

바울사도의 로마서도 없었을 것입니다.

제자들은 자기 자신조차 설득하지 못한 복음을 자신없이 전파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날 밤 주님께서 아버지께로 가는 유일한 길이라는 진리를 선언하셨습니다.

우리를 위해 처소를 예비하고 다시 오신다고 하셨습니다.

또 내가 하는 모든 일은 내가 한 것이 아니라 아버지가 내 안에 계셔서 아버지가 하신 것이라고 하십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그 심오한 신비도 가르쳐 주시는 것이죠.

하나님의 말씀, 예수님의 말씀만이 유일한 진리입니다.

세상 토양에서 나온 것 중에는 아무리 훌륭해 보여도 진리는 없습니다.

뭔가 여운이 남고, 인생을 통찰한 것 같은 철학적인 메시지도 진리는 아닙니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나쁜 의도가 있는 게 아니라 만유의 실체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가르치신 진리는 정말 모든 것을 명징하게 분별하고 나눕니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틀린 지,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 무엇이 생명이고 무엇이 죽음인지를.

진리는 애매하고 아리송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진리를 만난 사람은 뿌리를 내린 나무처럼 견고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지금 이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있잖아요?

예수님은 확실한 대안이 있으셨습니다.

바로 주님을 대신해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실 성령님입니다.

 

2. 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성령께서는 은사도 주시고 열매도 주시지만 무엇보다 말씀을 가르쳐 주십니다.

지금 제자들은 예수님 말씀을 도통 이해 못하죠.

그러나 성령께서 오셔서 다 가르쳐 주신다는 것입니다.

보혜사가 오시기 전에 예수님이 먼저 해야 할 일이 바로 진리를 선언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령께서는 주님의 말씀을 깨달을 수 있도록 가르치시는 것이죠.

말씀이 먼저 있어야 성령께서 임하시는 것입니다.

말씀이 뒷받침되지 않는 신앙감정은 진리를 벗어나게 됩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오순절 성령께서는 제자들이 모여서 기도하는 중에 오시죠.그때는 본문의 진리의 말씀들을 이미 다 들었잖아요?

성령께서 오셔서 지혜를 주시니 그때 주님의 말씀을 깨닫게 되는 것이죠.

오늘 주님 말씀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제자들이 즉시 성경을 정확히 해석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도무지 알지 못했던 제자들이 확신에 차서 십자가와 부활을 거침없이 전도합니다.

제자들이 그렇게 주님의 진리를 가르치고 전할 때 듣는 사람들에게도 성령이 임하십니다.

성령님은 예수님 말씀과 함께 역사하십니다.

우리가 요즘 예수님에 대해 집중적으로 공부하는 게 너무 중요합니다.

마음을 열고 예수님에 대해서 자꾸 듣고 귀를 기울이면 반드시 성령께서 임하신다고 저는 믿습니다.

오늘 주님 말씀을 봐도 성령께서는 새것을 가르치지 않으심을 알 수 있죠.

철저히 예수님이 가르치신 말씀으로 성도들을 구원하고 인도하십니다.

제가 구독하는 시골의사 채널이 있습니다.

이번 영상 제목이 나는 왜 성경을 읽는가였습니다.

이전엔 뭔가 기적을 체험하고 싶어서 천국 지옥 체험, 병고침 그런 영상들을 많이 찾아보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게 부질없어서 지금은 성경으로 돌아갔는 데 거기서 자기는 기적을 체험한다는 거예요.

구약성경을 읽으면 예수님이 보인다고 합니다.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시는 데 거기서 예수님이 보이고, 출애굽의 어린 양에게서도 예수님이 보입니다.

성막을 만드는 본문에서도 예수님이 보이고 성막의 기물 하나 하나에서 예수님이 보입니다.

그게 눈에 보이는 게 자기에겐 기적 같다는 거죠.

마치 성경을 읽는 데 누가 자꾸 가르쳐 주는 것 같다는 거예요.

이분이 제대로 성령님의 지도를 받고 있는 것이죠.

결론은 그래서 자기는 성경을 읽는다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가르치시도록 말씀에 좀 더 관심을 갖고 말씀 앞에 늘 앉는 모두가 되시길 축복드립니다.

 

3. 예수님은 성령에 대한 약속과 제자들의 안위에 대한 약속을 하십니다.

불안과 걱정 속에 사는 모든 성도들을 위한 약속입니다.

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구절을 원문대로 번역하면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남겨 둔다입니다.

느낌이 좀 다르죠.

평소 예수님이 갖고 계셨던 그 평안과 똑같은 평안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평안을 가질 수 있다니 그것은 엄청난 것이죠.

평안은 안전하고 기분 좋은 느낌이 아닙니다.

그런 느낌과 감정만으로 세상의 두려움을 어떻게 이기겠습니까?

제자들이나 현대의 성도들이나 위협적인 환경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사람도 세상도 알고 보면 우리에게 그렇게 호의적이지 않습니다.

친하던 사람도 언제 돌변할지 모릅니다.

사람 마음 바뀌는 걸 자기인들 어떻게 하겠습니까?

우리가 살면서 불안과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예측이 안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든 환경이든 내가 생각한 대로 계산한 대로 된다면야 두려움이 반은 줄어들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너무 많은 사람과 상황들이 실핏줄처럼 얽혀 있어 누구도 완벽하게 컨트롤 할 수 없습니다.

지금 미국, 이란, 이스라엘의 전쟁을 보십시오.

어느 쪽도 계획했던 대로 되지 않잖아요?

우리 하루 일과만 해도 아침에 생각한 대로 되는 날이 하루도 없죠.

똑같은 직장과 가정인데도 내 생각과 대부분 다른 일들이 벌어집니다.

매일 보는 사람과도 단 하루도 오가는 감정이 똑같지 않잖아요?

그렇기에 우리가 살면서 불안하고 두려움을 느끼는 것입니다.

아무리 철저히 방비하고 힘과 권력을 키운다고 해서 됩니까?

질병과 사고와 재난은 하루 아침에 모든 걸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0이라는 젊은 시인이 있습니다.

서울대를 나오고 카이스트에서 연구하다 시인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의 관심을 끌만한 커리어죠.

언론에서 띄우고 인기가 올라갈 때 내 인생이 이렇게 빨리 꽃을 피우려나 한껏 기대감에 부풀어 올랐습니다.

그러다 교통사고를 당합니다.

시속110킬로로 달리는 자동차 두 대에 연속 치이는 큰 사고였습니다.

병원 생활을 일 년 넘게 할 만큼 오래 치료를 받았다고 합니다.

이런 일들이 주변에 널렸잖아요?

어떤 일들은 서서히 파멸의 그림자를 준비하고 다가옵니다.

이런 세상에서 두려워하지 않고 살기 위해서 주님의 평안을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평안은 감정적인 위로만이 아닙니다.

내일 당장 죽을 일이 있는 데 감정만 쓰다듬는 평안이 아닙니다.

평안은 예수님에 대한 신뢰에서 옵니다.

제자들이 지금은 불안에 떨고 있지만 예수님의 십자가를 보며 주님의 사랑을 경험합니다.

주님의 부활을 보며 그들이 생각한 메시야 이상이신 하나님이심을 알았습니다.

그 주님이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신다고 하셨으니 무얼 두려워하겠습니까?

우리도 살면서 주님을 조금씩 경험하며 신뢰를 쌓아가게 됩니다.

그 신뢰가 주는 평안이 내 앞의 집채만한 파도조차 과도하게 두려워하지 않게 되는 것이죠.

그 파도 뒤에 분명히 주님이 예비하신 은혜가 있을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작년에 우리나라에 부임한 가나대사가 한국인 선교사의 아들입니다.

독특한 이력 때문에 이재명대통령과 가나대통령의 정상회담에서 가교역할을 톡톡히 해냈다고 합니다.

선교사 아버지가 후원하는 교회도 없이 자비량으로 가나로 떠났을 때, 가족들의 고생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죠.

다른 선교사 자녀들이 국제학교를 다닐 때 최대사만 돈이 없어 현지 중학교에 입학합니다.

낯선 문화라는 장벽을 만난 것이죠.

공부를 잘해서 명문국제고등학교에 장학생으로 입학하고 미국 어느 대학이든 갈 수 있는 실력이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최대사에게 가나에 남아 선교일을 도왔으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미국 유학 보낼 형편이 안되었던 것이죠.

소원하던 미래가 또 다시 장벽에 가로막힙니다.

최대사는 아버지처럼 가나를 위해 살아야겠다고 마음을 굳힙니다.

그리고 아예 가나인으로 귀화합니다.

가나국립대학을 나와 사업을 시작했는데 현지에서 가장 성공한 기업인이 됩니다.

그리고 가나 대통령에게 발탁되어 고국을 떠난지 30년 만에 가나대사로 한국에 오게 된 것입니다.

아버지를 따라 낯선 가나땅으로 떠날 때부터 앞길이 막힐 때마다 얼마나 좌절했겠습니까?

그러나 막힌 것이 아니라 사실은 하나님의 계획대로 인도하시는 과정이었던 것이죠.

하나님을 신뢰했기에 시련 중에도 인도하심을 믿고 삼십 년 세월을 걸어왔다고 합니다.

돌아보면 우리도 절망 앞에서 두려워했습니다.

그러나 근심과 두려움이 우리를 삼키지 못한 것은 주님이 주신 평안이 우리를 버티게 했기 때문입니다.

불같은 시련 중에도 부어주시던 평안이 분명히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계속 우리와 동행하실 것이기에 어려운 일이 또 닥친다 해도 믿고 평안하시길 축복드립니다.

오늘 주님은 주님의 십자가에 당황하는 제자들에게 진리를 가르치십니다.

그리고 진리 가운데 인도하실 성령님을 약속하십니다.

또 주님의 평안을 우리에게 남겨 두심을 약속하셨습니다.

이미 우리가 얻은 이 진리와 성령과 평안을 충만히 누리며 살아가는 모두가 되시길 축복드립니다.

2026년3월25일 수요기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