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인에게서 듣는 부활 (마태복음28장1절-15절)
오늘 하나님의 구원의 그림이, 부활이라는 마지막 퍼즐을 맞춰 드디어 완성됩니다.
부활절에만 듣던 부활 설교를 여름에 들으려니 새롭죠?
그러나 제자들의 전도의 핵심은 항상 예수님의 부활이었습니다.
1. 우리는 부활을 어떻게 믿을 것이냐입니다.
부활에 대해서는 우리가 두 가지를 알고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부활, 그리고 나의 부활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확신하게 되면 거의 나의 부활도 믿어집니다.
사실 우리 신앙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내가 죽은 다음에 어떻게 되냐는 거잖아요?
과연 천국과 지옥이 있냐는 것이죠.
오래 믿어도 여전히 가 봐야 알겠다는 생각이라면 구원받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부활도 천국도 믿음으로 얻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종교인식 조사를 보면 34%라는 꽤 많은 기독교신자들이 부활을 믿지 않는다고 답했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지 않을 거라면 뭐 하러 교회를 다닙니까?
부활이 없다면 저는 교회 안 다닐겁니다.
교회를 다녀서만 마음에 평안을 얻는 건 아니잖아요?
명상만 해도 마음이 편해집니다.
교회 가면 착하게 살라고 하니까 나쁘지 않다는 분들도 있습니다.
착하게 살라는 설교 듣는 게 뭐가 좋습니까?
착하게 살면 세상에서 호구 되잖아요?
어차피 좋은 설교를 듣는다고 사람이 변하지는 않습니다.
우리 신앙의 이유는 내가 죽은 다음에 부활한다는 것에 있습니다.
죽은 다음에 나라는 존재가 완전히 소멸되어 사라진다면 그것도 차라리 괜찮을지 모르죠.
그런데 우리의 창조주께서는 하나님의 영원성을 넣어서 우리를 창조하셨다는 게 문제입니다.
죽으면 끝이라고 생각이 들지 않잖아요?
만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그 무덤이 예루살렘에 남아있다면 어땠을까요?
그렇다면 제자들이 목숨 걸고 복음을 전파했을까요?
그러지 못했을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하고 나서 그 증인으로 산 것입니다.
부활이라는 초자연적이고, 초현실적인 사건을 보았다는 것은 엄청난 것이죠.
나의 부활에 있어서는, 예수님이 우리도 부활할 거라 말씀하셨으니 그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인증으로 우리는 이미 부활 생명으로 살아갑니다.
부활 생명, 부활 신앙이 우리 성도들의 권능입니다.
부활을 믿는 신앙은 저절로 우리 목적을 영원에 조정하게 만듭니다.
이 땅의 것에 목숨 걸지 않게 됩니다.
백 년 인생에 부귀와 영화와 장수를 누리면야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 해도 그렇게 억울한 생각은 안 듭니다.
강남에 입주할 내 아파트가 지어지고 있다면 이삼 년 잠깐 단칸방 사는 것 충분히 견디잖아요?
부활은 기독교 포교를 위해 만들어진 교리가 아닙니다.
그게 실제 일어났고, 지금도 일어나고 있지 않다면, 이렇게 희생하는 종교가 어떻게 이천년을 이어 왔겠습니까?
매주 예배드리고 십일조하고 봉사하는 종교가 어디 있습니까?
오늘 와서 예배드리는 게 감사하고 좋은 것은 부활신앙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희생에 보상이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인 것이죠.
그런 믿음이 없다면 집에서 시원한 에어컨 틀어 놓고 넷플릭스 보는 게 더 힐링입니다.
우리 성도님들은 이제 모두 예수님의 부활을 믿으시고, 나의 부활도 믿으신다고 믿습니다.
그래도 예수님 부활에 대해 중요한 것을 다시 한번 정리해 보겠습니다.
믿음의 내용이 잘 정리되면 더 확신 있게 믿을 수 있습니다.
또 묻는 사람들에게는 대답해 줄 만큼은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잘 들으시고 이따 말씀 나눔 때 얘기해 보시기 바랍니다.
왜 예수님은 부활하셔야 합니까?
우선 부활까지는 예수님이 인간의 자격으로 계시다는 걸 이해해야 합니다.
인간으로서도 죄가 없으시기에 부활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망은 죄인에게만 효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죄를 짊어지셨지만, 십자가에서 그 죄값을 다 치르셨죠.
이제 본래대로 죄없는 주님만 남으셨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이 예수님을 사망에서 살리신 것입니다.
부활은 예수님이 죄 없으심의 증거입니다.
그렇기에 주님의 십자가는 대속의 죽음이라는 게 확증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죄가 없어졌고, 주님처럼 부활하게 되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2장12절에서 그것을 이렇게 말씀하는 것입니다.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 바 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예수님도 부활하시고 우리도 부활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역사적으로 진짜 부활하셨다는 것을 무슨 근거로 믿는 것일까요?
먼저 메시아의 부활을 예고한 구약성경과 생전에 부활하신다고 하신 예수님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말씀을 믿는 이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또 실제로 부활을 목격한 제자들의 증언을 믿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당시 상황들을 생각해 보면 부활은 거짓일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시신이 없어진 것은 사실이었죠.
시신이 무덤에 있는데, 부활했다고 전파할 수는 없잖아요?
그렇다면 누가 훔쳐갔냐, 부활하셨냐, 둘 중 하나가 진실입니다.
누가 훔쳐간 것보다는 부활하셨다는 것이 더 진실입니다.
그리고 변화된 제자들이야말로 강력한 부활의 증거입니다.
제자들은 한결같이 예수님의 부활을 보았다고 전파하죠.
부활이 없었다면 기독교도 없습니다.
죽음은 모든 사람들에게 자연적인 일입니다.
사람들이 십자가만 보면 그냥 평범한 죽음입니다.
그러나 부활하셨다면 이야기가 달라지는 것이죠.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에 대한 믿음을 이 정도라도 머리 속에 정리가 된다면 좀 더 확고한 믿음이 될 것입니다.
2. 마태사도는 부활의 아침을 28장 한 장으로 요약하며 자신의 복음서를 마무리합니다.
마태는 이 한 장에 예수님의 사역의 완성과 이후 부활의 복음이 어떻게 전파될지에 대해 아주 치밀하게 계산된 기록을 남깁니다.
세리 출신 마태는 굉장히 빈틈이 없는 사람입니다.
1) 먼저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증인을 내세웁니다.
우리는 이 복음서를 기록한 제자 마태의 진정성을 믿을 수 있을까요?
마태는 자신이 목격한 것과 다른 목격자들의 증언을 진실되게 기록했음이 분명합니다.
마태가 다른 무슨 의도가 있겠어요?
기독교 전승에 의하면 마태는 에티오피아에서 복음을 전하다 순교합니다.
마태가 부활을 주장해서 얻은 것은 돈도 아니고 명예도 아니고 죽음입니다.
물론 교회사에 돈과 명예와 권력을 다 가졌던 종교 귀족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하고 증언했던 제자들은 아닙니다.
사도요한을 제외한 모든 제자들은 십자가와 부활을 증거하다 모두 순교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제자들의 기록을 믿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마태가 내세운 증인은 여성 제자들입니다.
1절, 안식일이 다 지나고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갔더니
이날 새벽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간 여성들은 두 명만이 아닙니다.
다른 복음서들을 보면 갈릴리에서부터 주님을 따라온 여러 명의 여성 제자들도 새벽에 무덤을 찾았습니다.
나중에 부활 소식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도 빈 무덤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제자들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마태는 여인들만 부활의 증인으로 내세웁니다.
유대인들의 율법 해석집 미쉬나 3장3절을 보면 이렇게 규정합니다.
‘여성, 노예, 미성년자는 법정에서 증인이 될 수 없다.’
마태는 유대사회에서 무자격자인 여성 제자들을 증인으로 기록한 것이죠.
조작된 증인이었다면 당연히 남성 제자들을 내세웠을 것입니다.
취약한 증인을 내세운 것은 오히려 부활이 진실이라는 강력한 역설입니다.
그날 여인들이 새벽에 무덤을 찾아간 것은 부활을 기대하고 간 것은 아닙니다.
시신에 향품을 좀 더 바르기 위해서입니다.
여인들은 무덤을 막아 놓은 무거운 돌을 옮길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경비병들이 지키고 있는 것도 알았습니다.
로마군 경비들이 친절하게 무덤 문을 굴려 준다면 가능했겠죠.
시신에 향유를 바를 수 있는 가능성은 1%도 없었습니다.
그래도 안식일이 지나자마자 이른 새벽에 무덤을 찾아간 것입니다.
이런저런 이유와 핑계가 있어서 못 한다면 그것은 마음이 없다는 뜻입니다.
사랑은 장애물을 보는 눈이 어둡습니다.
장애물도 돌파할 투지가 있습니다.
불가능한데도 뭔가 될 것 같은 것은 그만큼 간절하고 그만큼 사랑과 애착이 있다는 뜻이죠.
마태는 순수하게 예수님을 사랑했던 여인들을 증인으로 내 세웁니다.
이들은 부활의 최초 목격자이고 부활은 이 여인들로부터 전파됩니다.
우리에게 전해진 예수님의 부활도 막달라 마리아에게서 시작된 것이죠.
2) 그날 부활의 현장에는 천사가 있었습니다.
여인들이 무덤에 도착했을 때, 큰 지진이 나며 천사가 내려와 돌을 굴리고 그 돌 위에 앉았다고 합니다.
사복음서의 부활 기사들은 완벽하게 통일되어 있지 않습니다.
부활 기사들이 조금씩 다르다는 것은 성경이 일부러 입을 맞추지 않았다는 걸 의미합니다.
성령께서 각자가 목격한 대로, 전하려는 의도에 따라서 기록하게 하신 것이죠.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 정해진 틀 안에다 구겨 넣지 않으십니다.
이 중요한 성경도 제자들 관점대로 기록하게 하셨잖아요?
광대하신 하나님은 우주를 하나씩 품은 인간을 창조하신 것입니다.
누구라도 무시하면 안됩니다.
그런 사람들을 내 생각의 잣대로 판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제한하지 않으시는 걸 모조리 내 틀에 맞추려면 피차 괴롭습니다.
나에 대해서도 하나님은 넓게 포용하십니다.
지금의 경험과 지식에 나 스스로도 너무 제한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얼마든지 우리를 더 성장시키실 수 있습니다.
천사의 출현과 지진과 돌문이 열리는 걸 보고 경비병들은 혼비백산합니다.
천사들은 무서움에 떨고 있는 여인들을 향해 말합니다.
6절,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가 누우셨던 곳을 보라
예수님은 무덤 문이 열릴 때 살아서 걸어 나오지 않으셨습니다.
이미 부활하셨고 무덤은 비어 있었습니다.
천사들이 돌문을 연 것은 무덤이 비어 있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죠.
3) 여기서 천사들은 여인들에게 아주 중요한 두 가지를 지시합니다.
하나는, 제자들에게 가서 주님이 부활하셨다고 전하라는 것입니다.
이상하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가서 보여주시면 되잖아요?
실제로 그날 저녁 무렵 예수님이 제자들을 찾아가시죠.
그렇다면 왜 굳이 마리아에게 가서 부활 소식을 전하라고 하셨을까요?
복음서의 부활 기사에서 일관적인 걸 발견할 수 있습니다.
모두가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먼저 남에게서 전해 들었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부활하신 주님을 만납니다.
여인들은 천사에게 부활 소식을 먼저 듣고 그 다음 예수님을 만나죠.
제자들은 여인들에게 부활 소식을 먼저 듣고 나서 예수님을 만납니다.
그러니까 부활의 복음은 누군가에게 먼저 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듣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한번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탈북민 중에서 윤설0집사가 있습니다.
이만갑이라는 프로에 나와 잘 알려진 방송인입니다.
윤집사의 아버지는 고위간부였습니다.
윤집사는 리설주와 함께 금성학원이라는 예술학교를 함께 다녔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어느 성탄절 날 딸에게 은밀한 말을 합니다.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아니?
성탄절이야, 성스러운 사람이 태어난 날이지.
그러면서 예수님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줍니다.
그리고 아무에게도 이런 말을 하면 안된다고 단단히 주의를 주었습니다.
사실 북한에서 살아가려면 딸이 이런 말을 모르는 게 더 낫지 않아요?
윤집사의 아버지는 어쩌면 죽음의 보따리에 싸인 부활의 복음을 사랑하는 딸에게 전해 준 것입니다.
딸으 그 말을 동화처럼 들었고 아버지는 49세 젊은 나이에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버지가 고위급 간부였지만 죽고 나니 당장 끼니 걱정을 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탈북을 결심한 것이죠.
탈북은 성공했지만 인신매매로 중국인 남편 집으로 팔려갑니다.
딸을 낳고 한 달이 되었는데 누군가의 밀고로 다시 북한으로 잡혀가 5년 형을 살게 됩니다.
그 감옥에는 은혜를 받고 전도의 사명을 받은 김보0집사가 있었습니다.
5년 수감생활을 끝내고 나오기 전날, 김보0집사가 윤설0집사의 귀에 대고 뜻밖의 말을 합니다.
‘너 나가면 중국 갈거지? 어쩌면 또 잡힐지 몰라, 그러면 살려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해야 해.
그리고 마지막에 꼭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한다고 해.
뚱딴지같은 소리로 들렸습니다.
그 말이 예언처럼 윤집사는 중국으로 가다가 붙잡혀 다시 북한으로 송환됩니다.
아버지의 말과 언니의 말이 기억나 무작정 하나님께 살려달라고 기도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요.
하나님은 윤집사의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탈북자가 붙잡히면 보위부에서 나와 조사 하고 형량이 정해집니다.
그런데 극적으로 대학 후배가 윤집사 조사를 맡게 됩니다.
그 후배의 도움을 받아 중국으로 돌아갔다 불과 일 년만에 기적 같이 한국으로 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아버지와 김보0집사에게 듣지 못했다면 어떻게 하나님을 찾았겠습니까?
로마서10장14절,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우리도 전하는 말씀을 듣고 믿고 부활 생명을 얻은 것입니다.
마태는 이 부활의 복음이 모든 세대에 전도를 통해 구원의 역사를 이룰 것을 예고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또한 전파하는 자가 되어야 하는 것을 알고 그렇게 살아가는 모두가 되시길 축복드립니다.
천사가 전하라고 한 또 한 가지는 제자들에게 갈릴리로 가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먼저 갈릴리로 가신다고 하죠.
7절하,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거기서 너희가 뵈오리라 하라
왜 예수님은 갈릴리로 다시 제자들을 모으시냐는 것입니다.
어차피 복음은 오순절 이후 예루살렘에서 전파되기 시작하잖아요?
갈릴리는 처음 예수님이 제자들을 부르셨던 곳입니다.
예수님은 이제 부활하신 승리자가 되셨으니 예루살렘을 접수하자 그러지 않으십니다.
이제 성령을 받을 것이니 로마제국처럼 유대 사회를 휩쓸어 버리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제자들이 전할 복음은 갈릴리에서 처음 가르치셨을 때랑 똑같은 하나님나라 복음입니다.
똑같이 가난한 자들에게 전파되는 복음입니다.
앞에서 마태가 기록한 그 복음입니다.
팔복과 산상수훈, 주님의 설교에 담긴 바로 그 복음이라는 것입니다.
달라진 게 있다면 제자들입니다.
제자들도 이제는 과거 생각과 다르게 예수님처럼 하나님나라를 전파하게 되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이 갈릴리 복음을 들고, 예수님이 못 박히신 예루살렘에서부터 예수님의 부활과 하나님나라를 시작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족과 이웃에게 말과 행실로 부활의 복음을 전할 때 예수님의 방법대로여야 할 것입니다.
주님은 상한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않고, 그 목소리를 크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을 오래 믿은 우리가 사나워지지 않길 축복드립니다.
4) 이 소식을 전달하러 가던 마리아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타나십니다.
9절, 예수께서 그들을 만나 이르시되 평안하냐 하시거늘 여자들이 나아와 그 발을 붙잡고 경배하니
이 짧은 만남에서 마태는 부활하신 예수님은 이전과 똑같으시다는 걸 증언합니다.
예수님은 이전처럼 여인들에게 평안하냐고 물으십니다.
주님이 물으시는 건 몰라서 그러신 게 아닙니다.
평안을 물으신다는 것은 평안을 주신다는 뜻입니다.
우리에게도 주님은 똑같이 물으십니다.
평안하냐, 괜찮니?
우리에게 평안을 주시고 괜찮게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자상하고 인자한 사람은 세상에 없습니다.
사람은 어느 순간 보면 매정하잖아요?
그러나 지금까지 제자들 곁에서 자상하게 돌봐주신 예수님은 승천하실 거잖아요?
대신 성령께서 우리에게 오신 것입니다.
성령께서 오셔서 호위무사처럼 우리를 보호해 주십니다.
앞에서 말씀드렸던 윤집사는 강연과 간증집회를 많이 다닙니다.
한번은 강원도로 가게 되었는데 차가 세 바퀴를 구를 정도의 대형사고를 당하게 됩니다.
충돌로 구겨진 엔진룸이 조수석에 앉은 윤집사 무릎 바로 앞까지 밀려들었습니다.
찌그러진 문짝은 옆구리를 강타하기 바로 직전에 멈췄습니다.
그런데 윤집사는 머리카락 하나도 다치지 않았다고 합니다.
견인차 운전자가 빨간 하이힐을 신고 멀쩡히 서 있는 윤집사를 보고 정말 저 차를 타고 있었던 사람 맞냐며 귀신을 본 듯이 놀라더랍니다.
윤집사는 ‘예수님 믿으세요’ 하고는 그날 예정됐던 집회로 갔다고 하더군요.
성령께서는 하나님 뜻 밖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과 사고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주십니다.
이제는 성령께서 우리의 안위를 책임지십니다.
로마서8장26절은 성령께서 우리 연약함을 도우신다고 합니다.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친히 간구하신다고 합니다.
오늘 여인들에게 평안을 물으시는 예수님 그대로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평안을 주십니다.
성령께서 주시는 평안을 누리는 모두가 되시길 축복드립니다.
5) 빈 무덤과 부활에 가장 가까이 접근했지만 믿지 않은 사람들을 기록합니다.
바로 무덤을 지키던 경비병들입니다.
이들은 대제사장을 찾아가 보았던 그대로 보고합니다.
대제사장과 장로들은 긴급 회의를 열고 큰 돈을 이들에게 쥐어 줍니다.
자기들이 잠든 사이에 제자들이 와서 주님의 시신을 훔쳐갔다고 소문을 내라고 합니다.
경비병들은 그 말대로 소문을 냅니다.
그 소문은 수십 년을 내려와 마태가 이 복음서를 기록할 때까지 사람들이 그렇게 믿었다고 하죠.
여인들과 같은 자리에 있었지만 경비병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았습니다.
시신이 있었는데, 없어졌다.
왜인지는 모른다.
나하고는 상관없다.
부활에 대한 세상사람들의 무관심이 그럴 것입니다.
그에 비해 대제사장과 장로들은 분명히 예수님의 부활을 인식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을 계획적으로 은폐합니다.
모르고 안 믿는 것이나 알고도 안 믿는 것이나 결과는 똑같습니다.
지금도 예수님의 부활의 복음이 들려지지만 귀를 막는 안타까운 이들이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게 확실한 것 같으십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예수님을 안 믿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주님이 하신 모든 말씀은 진실이고 영생과 영벌은 실제로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부활은 누군가에게 전해 듣고, 믿을 때 부활의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도마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합니다.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않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볼 수 있었던 사람들은 승천하시기까지의 40일간 만난 사람들 뿐입니다.
이후 모든 세대의 성도들은 못 보고 믿는 것입니다.
주님을 믿는 우리는 이미 부활의 생명을 가졌습니다.
부활 신앙은 무덤과 같이 어두운 현실에서도 우리를 살게 합니다.
부활 신앙은 이땅에서 어떻게 살 것인지를 분별할 수 있게 합니다.
썩어질 것이 아니라 영원한 것을 찾고 그 보람을 위해 살게 되죠.
우리는 영원한 복을 누릴 부활의 자녀들입니다.
죽음도 두렵지 않고, 죽음 같은 현실도 부활의 신앙으로 살아가는 모두가 되시길 간절히 축복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