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2장37절-47절 (인생의 길을 묻다, 우리가 어찌할꼬)
우리가 살면서 철석같이 믿는 게 있죠.
그런데 그게 진실이 아니었다면 어떨까요?
오늘 본문에도 믿었던 것이 진실이 아님을 깨달은 사람들이 나옵니다.
무려 삼천 명입니다.
진실을 알고 난 이 사람들의 입에선 탄식과 신음소리가 새어나옵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간절히 길을 묻던 삼천 명은 결국 진정한 길을 찾게 되죠.
이 사건을 통해 사람이 어떻게 자기 세계를 깨고 예수님께 나오게 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물론 한번 복음을 듣고, 하루 만에, 이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은 특별한 예표입니다.
오늘 사건은 보통 사람들의 믿음의 과정을 압축하고 최대속도로 빨리 돌린 것이라고 보면 됩니다.
믿기까지는 보통은 아주 긴 시간이 필요합니다.
제가 아주 흥미로운 인터넷 개인방송을 하나 보게 되었습니다.
태항0라는 배우가 시작한 채널입니다.
신의 악단에 믿음 좋은 악단장으로 나왔던 사람입니다.
이분은 기독교인이 아닙니다.
이 분이 운영하는 방송 이름이 교안궁하입니다.
교회는 안 다니나 궁금은 하네요의 약자입니다.
그러니까 교회를 안 다니는 사람이 만든 기독교 채널인 것이죠.
교회는 안 다니지만 채널을 만들 정도로 궁금한 것입니다.
그 채널 고정출연자는 대중음악평론가인 김호0이라는 분입니다.
이분은 교회는 다니지만 의심이 많은 신자더군요.
한 사람은 믿음이 없지만 신앙이 궁금하고, 한 사람은 믿지만 의심하며, 두 사람이 함께 하는 채널입니다.
이 방송을 좀 보면서 믿음을 가지는 과정이 이렇게 힘들구나.
그러나 이렇게들 인생의 길을 찾는 것에 진지하구나를 생각했습니다.
예수님도 그런 우리의 믿음을 진지하게 보십니다.
오늘 말씀에서 우리가 어떻게 성령님의 인도로 예수님을 믿게 되었는지 내 믿음의 역사를 보게 될 것입니다.
또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서 이뤄져 가는 큰 그림도 보시길 바랍니다.
오늘 본문이 내용이 어렵지는 않습니다.
그것보다는 이 사건이 어떻게 일어나게 되었는지, 그 의미는 무엇인지를 먼저 잘 이해하는 게 중요합니다.
1. 오늘 교회사의 첫 구원 사건이 오순절 성령강림으로 인해 일어납니다.
지난 주일 성령께서 강림하신 사건을 살펴 보았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속죄하셨습니다.
그 사실을 믿으면 의롭게 되고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이게 믿어질 일인가요?
그래서 성령하나님이 오셔서 믿게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시며 성령을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열흘 뒤 오순절에 맞춰 약속하신 성령께서 내려오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 성령께서 첫 구원의 열매를 거두시는 것이죠.
그 성령님은 지금도 우리 가운데 계시며 우리 마음 속에 믿음의 역사를 일으키고 계십니다.
성령께서 감화하지 않으시면 아무도 대속의 복음을 믿지 못합니다.
성령은 보이지 않지만 분명하게 일하십니다.
그 증거가 바로 나같이 의심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게 된 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때 오순절에는 성령께서 공개적으로 오셨습니다.
성령님이 오신 것을 성경을 읽는 모든 사람이 분명히 알도록 이적과 함께 임하신 것이죠.
그때 다락방에 신비한 바람 소리가 가득 찼고, 120명 제자들 머리 위에 각각 불의 혀가 임합니다.
그러자 제자들은 성령께서 말하게 하신 대로 따라서 말합니다.
배운 적도 없는 15개국의 언어로 하나님을 높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 기이한 일을 보려고 사람들이 몰려들었죠.
유월절부터 오순절까지 명절 기간을 지키며 예루살렘에 머물던 교포들입니다.
갈릴리 사람들이 자기들 태어난 언어로 말하니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이 몰려온 유대인 교포들에게 베드로가 복음을 전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베드로의 설교가 본문 바로 앞에 나옵니다.
본문과 연결되어야 하니 간단히 요약해 보겠습니다.
베드로는 사람들이 보고 있는 기현상이 이상한 게 아니라고 말합니다.
과거 요엘선지자가 예언하지 않았냐는 것입니다.
마지막 때 하나님이 모든 사람에게 성령을 부어주신다고 한 요엘서 말씀을 상기시킵니다.
구약시대 성령은 하나님이 택하신 지도자나 선지자에게만 임하셨습니다.
그러나 요엘선지자 예언대로 지금 성령이 이 모든 사람에게 오셨다는 것이죠.
그러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냐는 것입니다.
바로 50일 전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께서 부활하셨고 하늘로 승천하셔서 이 성령을 보내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차근차근 성경을 풀어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과 성령강림에 대해 가르친 것입니다.
그렇게 예수님을 비난하던 유대교인들도 이것이 믿어졌다는 것입니다.
여기까지 모두 이해하고 믿으시겠죠?
성령께서 역사하신 것입니다.
2. 성령께서 사람을 구원하시는 과정을 본문에서 생각해 봅니다.
1) 성령께서는 베드로의 설교를 통해 유대인들의 잘못을 깨닫게 하십니다.
사람이 과연 스스로 잘못을 깨달을 수 있을까 저는 의심합니다.
사람은 끝까지 자기가 옳다고 하잖아요?
이 사람들은 예수님은 죽어 마땅하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입니다.
그게 웬만한 설득으로 바뀌겠습니까?
왜 이렇게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배척했는지를 이해해야 합니다.
유대인들은 아브라함부터 이천 년 이상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이 유일하게 자신을 계시하신 민족이 유대인이잖아요?
이스라엘을 모판으로 해서 구원을 설계하시고 예수님을 보내신 것이죠.
그러나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의 종교는 유대교였습니다.
이스라엘의 신앙이 유대교라는 종교로 변질된 것은 바벨론 포로 이후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신앙이 율법과 전통을 따르는 행위로 대체된 것이죠.
하나님을 상대하는 것보다 율법을 상대하는 게 더 쉽잖아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교통하시는 인격의 하나님이십니다.
당시의 유대인들은 종교화된 신앙을 믿고 있었던 것이죠.
할례를 하고, 안식일 지키고, 율법을 지키면 하나님의 선민이다.
천국에 갈 것이다, 그렇게 믿고 살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이 유대교식 신앙을 바로잡으려 하셨잖아요?
벌써 수백 년을 자리 잡은 유대교 세계관을 무너뜨리는 예수님께 제일 반발한 사람이 누구겠습니까?
종교인들과 권력층이죠.
예나 지금이나 권력 카르텔은 견고한 진입니다.
결국 저들은 예수님을 로마에 대해서는 반란자, 유대인들에게는 신성모독자로 몰아 십자가형을 받게 한 것입니다.
오늘 모인 사람들은 다 타고난 유대교 신앙인들입니다.
대제사장, 바리새인들의 결의에 찬동한 사람들입니다.
이들이 먼저 베드로의 설교를 듣게 하시는 게 성령님의 역사입니다.
왜 하필 이들이 일생에 한번 올까말까 한 예루살렘 순례를 바로 이때 오게 되었을까요?
말씀으로 인도하시는 게 성령님의 역사이십니다.
우리 중에 내가 이렇게 설교를 듣게 될 걸 꿈에도 생각 못했던 분들이 있으실 것입니다.
2) 하나님의 말씀은 죄를 깨닫도록 인도하십니다.
왜냐하면 그래야 예수님의 속죄가 이해되기 때문입니다.
36절,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바로 너희가 메시아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를 깨닫는 것은 보통 한가지 도덕적인 죄일 경우가 많습니다.
거기서 시작하면 죄인이 아니라고 발뺌할 수가 없는 것이죠.
실제로 50일 전 빌라도의 법정에서 예수님은 살 수 있는 기회가 있으셨죠.
물론 대속을 위해 죽으셔야 했지만요.
빌라도가 유월절 특별사면에 바라바냐 예수냐를 선택하라고 했잖아요?
그때 이 사람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바라바를 사면하라고 외쳤습니다.
설령 그 자리에 없었다 해도 이 사람들 모두 예수님의 십자가형이 옳다 여겼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부활하심으로 주와 그리스도임이 인정되셨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주는 하나님을 일컫는 말입니다.
유대인들에게 주는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십니다.
예수님을 주라고 할 때 이미 어디선가 돌들이 날라와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죠.
오히려 양심이 괴로워지는 것입니다.
37절,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믿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하나님나라가 이들을 덮치고 강타한 것입니다.
사실 인간의 본질인 자아는 내면 깊은 곳 어딘가에 있습니다.
과학자들도 인간의 자아가 어디에 있는지 미스테리라고 합니다.
그 자아는 각자의 세계관에 견고히 둘러싸여 있습니다.
그래서 웬만하면 속으로 침투할 수 없습니다.
성령께서 베드로의 설교 말씀을 통해 그 견고한 세계를 뚫고 들어오신 것입니다.
히브리서 4장12절 말씀 아시죠.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말씀이 나를 예리한 칼로 해부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작업에 반드시 말씀에 대한 관심이 들어가는 것입니다.
태항0씨도 신의 악단을 찍을 때 그랬다고 하더군요.
성경을 읽는 신 연기를 하다 끝나고도 그만 2시간을 읽었다는 거예요.
아마 그 배우도 조만간 내가 어찌할꼬, 마음이 찔리게 될 것 같습니다.
뒤에 9장을 보면 이런 충격을 제대로 받은 사람이 나오죠.
사도바울입니다.
바울은 예수님이 하나님을 모독하는 악인인 줄 알았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따르는 잔당들을 몽땅 쓸어버리는 것이 하나님께 충성하는 거라 믿었습니다.
성도들을 소탕하려 다메섹으로 가던 중 하늘에서 부르시는 예수님의 음성을 듣죠.
사울아, 사울아,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바울이 이 말에 고꾸라집니다.
주여, 누구십니까?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바울이 이 사건 후 삼 일간 잠도 안 자고, 식음을 전폐하잖아요?
그가 평생 신봉해 온 유대교 세계관이 완전히 엎어진 것입니다.
자신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죄인이라는 걸 깨닫게 되죠.
우리도 성령께서 임하실 때 예수님의 죽으심과 내가 관계가 있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과거의 나를 회개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이전의 세계관이 바뀌고 하나님나라가 우리에게 들어온 것이죠.
전엔 우리는 불교와 유교와 무속과 세속이 섞인 견고한 세계관을 갖고 있었잖아요?
한 사람이 예수님을 믿으러 나오는 건 그이 모든 세계가 함께 오는 것과 같은 거예요.
하나님은 말씀과 성령을 통해 그 세계관을 흔들고 하나님나라로 재정비시키시는 것입니다.
3) 자기 죄를 인정한 사람에게는 회개하고 믿으라는 답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38절,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람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우리가 살다 보면 어떡하지, 하는 말이 매일 나오죠.
매일 어떡하지에 몰려 살다 정작 성경이 사실이면 어떡하지를 놓치고 살지 않기를 축복드립니다.
먼저 진리이고 길이신 예수님을 찾으십시오.
그러면 삶의 모든 질문의 답도 분명히 따라옵니다.
모든 상황에 대한 기준이 생기면 답을 풀기가 쉬워지는 것이죠.
베드로가 확실하게 구원의 길을 제시합니다.
회개하고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을 것이다.
회개는 내 상태가 하나님 앞에 올바르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회개는 그 틀린 것을 버리고 올바른 하나님 한 분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이제까지 나를 그대로 갖고 예수님만 더 추가하는 게 아닙니다.
요즘 매일성경 사사시대 사람들 신앙 아시잖아요?
여호와도 섬기고, 바알도 섬기고, 아스다롯 축제도 즐기고.
회개는 예수님이 가르치신 방식에 맞춰 나를 뜯어 고치는 것입니다.
그것은 단번에 되지 않습니다.
평생 회개하며 조금씩 내가 바뀌는 것입니다.
이날 설교를 들은 사람들은 다 회개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믿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 방법은 120명에게서처럼 방언이 나타난 게 아닙니다.
구원의 방법은 역시나 기록된 말씀과 성령의 감동을 통해서입니다.
우리가 믿고 구원을 받는 데는 말씀과 성령이시면 충분합니다.
3. 성령께서는 회개한 성도들로 교회를 이루십니다.
이날 믿고 세례를 받은 사람들은 예루살렘 초대교회 성도가 된 것입니다.
42절,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를 힘쓰니라
이것이 교회입니다.
성령을 받은 성도들의 공동체에는 두가지가 나타납니다.
말씀을 배우고 기도를 힘쓰며 하나님을 경외하게 됩니다.
그리고 형제에 대한 사랑이 나타납니다.
44절,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45절,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며
이전엔 나의 필요만 생각했지만 이제는 형제의 필요가 보이는 것이죠.
예수님이 계속 말씀하시고 성경이 가르쳐 왔던 것은 이웃 사랑입니다.
그러나 내 돈을 남을 위해 쓰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성도들이 내 가족, 내 형제로 보이기 시작하면 그게 조금이라도 가능해 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걱정이 되죠.
내 것을 없는 사람과 나눠 쓰면 결국 나도 가난해지는 것 아닐까?
한 목사님이 이런 말을 하더군요.
결혼을 앞두고 어머니가 자기와 아내를 불러 하나님과 성도들을 잘 섬길 걸 당부합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평생 너희 아버지가 벌어다 주는 돈의 두 배를 쓰며 살았다.
이게 무슨 뜻입니까?
옛날이나 지금이나 한 가장의 월급으로는 자기 식구 먹고 살기에 빠듯하죠.
그런데 가난한 사람을 외면할 수가 없어서 나누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어떤 방법으로든 그걸 다시 채워주셨다는 것입니다.
계산해 보니 자기 손에서 나간 돈이 월급의 두 배였다는 것이죠.
우리가 구원받는 것은 너무 쉽습니다.
예수님이 다 이뤄 놓으신 구원을 믿기만 하면 되잖아요?
그런데 구원받은 다음에 성도로 살아가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우리는 본성적으로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적이잖아요?
그런데 하나님과 형제를 사랑할라니 고충이죠.
그러나 사랑하는 게 정말 고충일 뿐일까요?
미워하고 냉냉하게 사는 것보다 사랑하며 살면 더 행복하지 않겠습니까?
몇 년전에 자녀 여섯을 키우는 가수가 어떤 프로그램에 나온 적이 있습니다.
박지0씨라고 그룹활동을 하던 가수입니다.
이분이 그런 말을 합니다.
아이들이 너무 사랑스러워서 행복하다는 거예요.
그래서 밖에 나가면 빨리 집에 들어오고 싶다고 합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게 그렇게 행복한 것입니다.
이분에게 한 기자가 물었다고 합니다.
죽을 때 어떤 말을 묘비명에 남기고 싶냐고.
자기는 이런 말을 남기고 싶다고 합니다.
충분히 사랑했다.
우리도 하나님께 가기 전에 이 정도면 충분히 사랑했다 그렇게 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이왕준 명지병원이사장이 자기 병원에는 병원가가 있다고 하더군요.
병원에서 예배드릴 때 함께 부른다고 합니다.
가사를 시인 친구가 써 주고 한예종 이건용교수가 곡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가사의 끝 부분이 이렇습니다.
나그네가 쉴 수 있는 집... 우리도 그렇게 하리라 길 위에 집을 지으리라
이 세상 온갖 근심과 걱정을 우리가 모두 짐질 수는 없지만
병들어 서러운 마음 없게 하리라
이원장 아버지도 의사였습니다.
전주기독병원에서 근무하다 동네에 개원하게 됩니다.
당시 건물 1층은 병원, 2층은 입원실, 3층은 살림집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버지를 볼 때 의사가 되고 싶지 않았다고 합니다.
3층에서 내려가면 직장, 올라가면 살림집, 밤에도 입원한 환자에게 들락거리는 아버지의 삶이 답답해 보였던 것이죠.
그런데 아버지가 좀 일찍 소천했다고 합니다.
돌아가시고 일년 쯤 지나 환자였던 할머니 한 분이 모르고 찾아옵니다.
돌아셨다는 말을 들고 할머니가 계단에 앉아서 1시간을 울다 가셨다고 합니다.
주치의가 환자보다 먼저 가는 게 어디있냐며.
그걸 보며 이원장이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힘들고 고통당하는 사람 곁에 있어 주는 게 의사가 맞는 것이겠다.
그것이 아버지가 믿음으로 행한 의사의 길이겠다, 깨달아진 것이죠.
그렇게 지금까지 기독의료기관을 운영하게 된 것입니다.
초대교회에 모인 성도들 중에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사람은 게으른 사람들이 아닙니다.
어찌 태어나보니 가난했고, 어찌 살다보니 도움이 필요케 된 것이죠.
우리 주변엔 강도 만난 이웃들이 많습니다.
지독한 질병의 강도를 만난 사람, 먹고 살 것을 다 털린 사람, 미래를 도둑맞은 사람, 인간관계에서 마음이 다 찢긴 사람.
다 강도 만나 소중한 것을 뺏긴 사람들이죠.
우리도 그랬던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이 그런 우리를 위로하고 치유하고 구원해 주셨습니다.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하루만 고통 당하신 게 아닙니다.
십자가의 날 하루를 위해 삼십 년을 희생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너희도 이와 같이 하라고 하셨잖아요?
교회에서도, 가정에서도, 사회에서도 강도 만난 사람들의 이웃이 되어 섬기는 모두가 되시길 축복드립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오늘 성령께서 삼천 명 영혼을 감동하셔서 예수님을 믿게 하셨습니다.
우리도 성령께서 마음에 역사하셔서 예수님을 믿게 된 것입니다.
성령께서 감동하실 때 할 일은 내 살던 방식에서 돌이켜 예수님을 믿고 주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그러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옵니다.
구원받은 성도들의 기쁨은 폭발적입니다.
46절,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47절,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예수님을 알기 전에 이런 기쁨과 열정과 에너지가 어디 있었습니까?
은혜받으면 왜 그렇게 예수님 이야기가 하고 싶은지요.
왜 그렇게 교회가 좋은지요.
전에 이런 외신기사가 난 적이 있습니다.
영국의 제임스 하우어스라는 IT업계 종사자 이야기입니다.
이 사람이 사무실을 정리하며 낡은 노트북에 들어있던 드라이브를 해체해 폐기처분했습니다.
그런데 한참이 지나서야 깨닫게 됩니다.
거기에 비트코인 8000개가 들어있었습니다.
요즘 시가로 2390억이라고 합니다.
얼마나 기가 막힐 일입니까?
시청을 찾아가 잃어버린 비트코인을 찾을 수 있게 쓰레기 매립지를 뒤지게 해달라고 사정합니다.
로봇 개를 이용해 수색하고 모든 복구도 책임지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해당 뉴포트 시의회가 환경문제 등을 이유로 결국 허가를 내주지 않았습니다.
이 사람은 10여 년째 쓰레기장 주변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자기 돈 2390억이 어딘가에 묻혀있는 거기서 평생 자책하며 괴로워하겠죠.
우리 성도들은 예수님을 믿고 평생 예수님 주변을 떠나지 않습니다.
예수님 안에 2390억과 비교할 수 없는 행복과 영광이 있기 때문입니다.
9장에 보면 초대교회에 박해가 일어납니다.
성도들은 집과 땅을 버리고 뿔뿔히 흩어집니다.
그러나 성경이 기록하는 것은 그들이 가는 곳마다 예수그리스도를 증거했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모든 걸 버릴지언정 예수님을 떠나지 않았던 것이죠.
그들이 가는 곳곳마다 새로운 교회가 세워져 오늘처럼 기쁨으로 떡을 떼며 하나님을 찬미했을 것입니다.
우리도 끝까지 기쁨으로 모여 하나님을 섬기며 서로를 뜨겁게 사랑하는 모두가 되시길 축복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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