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세례를 받으신 예수님 (마태복음3장11절-17절)

남수연 2011. 11. 10. 10:34

지난 4월 신정동의 새터교회에서 부활절기념 탈북민교회 연합특별기도회가 있었습니다.

예배 중 한 동영상이 공개되었습니다.

북한 모 지역 지하교회에서 있었던 세례식 장면이었습니다.

지하교회 성도들이 꿈에도 그리던 세례식과 성찬식이 미국계한국목사에 의해 비밀리 행해지고 있었습니다.

10여명의 성도들이 흰 옷을 입고 긴장된 모습으로 작고 컴컴한 방에 모여 있습니다.

목사님은 작은 목소리로 급하게 성도들에게 묻습니다.

예수님이 내 구주이신 것을 믿습니까? 아멘.

예수님이 날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걸 믿습니까? 아멘.

이제 세례를 받으면 죽든지 살던지 예수님 증거하며 살겠습니까? 아멘

그리고 작은 욕조 물에 잠겨 세례를 받을 때 숨죽인 흐느낌이 들려왔습니다.

이어진 다음 화면엔 이불을 뒤집어 쓰고 기도하는 한 할머니의 기도 소리가 흘러나왔습니다.

아버지여 오늘 아버지의 교회가 다 무너졌습니다. 로 시작 된 할머니의 기도는 우리의 기도와 다를 것이 없었습니다.

50년이 넘는 분단역사 속에 북한의 문화와 이념은 우리와 철저히 다른 방향을 향해 있지만 같은 성령님이 가르쳐주신 기도는 우리와 결코 다르지 않았습니다.

우리에게 통일의 소망이 있다면 오직 믿음 안에서일 것입니다.

이어지는 할머니의 기도 속에서 갑자기 가슴이 먹먹해옴을 느꼈습니다.

순교의 피가 흘려진 북한 땅을 긍휼히 여기시고 용서하시려고 역사의 일선에 이 아들을 세우셨으니 감사합니다.

아니 이게 왠 기도였다는 말입니까?

혼자 숨어서 믿음을 갖는데도 생명을 걸어야 하는 북한 땅에서 복음을 전하러 가는 아들과 함께 이불 속에서 드리는 어머니의 기도였습니다.

북한의 지하교회 성도들을 6만명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3만명은 극악한 수용소에서 언제 죽을지 모르는 목숨을 부지하고 있고 동영상의 내용처럼 숨어서 3만명이 신앙을 지키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시며 제자들에게 주신 지상명령이 있습니다.

마태복음28장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이 땅에서 기독교박해국가 1위에 있는 북한에서도 주님의 지상 명령 대로 누군가는 비밀리에 복음을 전하러 나가고 어딘가에선 은밀히 세례가 베풀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주는나의산성교회에서 우리도 주님의 명령을 따라 세례식을 거행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오늘 하나님과 거룩한 공회 앞에서 우리 믿음을 고백하며 세례를 받는 것도 지하교회 성도들의 신앙고백과 다르지 않은 줄을 믿습니다.

오늘 세례 받으시는 성도님들이 어떤 환경 속에서라도 예수님을 시인하고 세례 받으시길 결단했으리라 믿습니다. 아멘.

오늘 우리 교회의 첫 세례식과 함께 드리는 예배가 얼마나 감사한지요.

교회를 세우시고 영혼을 구원하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시는 본문을 통해 교회에 명하신 세례의식이 무슨 의미를 갖고 있는지를 살펴보며 은혜를 나누길 원합니다.

이미 세례를 받으신 성도님들도 세례 받으실 때의 각오와 감동을 생각하시며 마음을 새롭게 하는 시간 되시길 축복드립니다. 아멘.

 

오늘 본문 말씀을 세 가지 주제로 살펴보려고 합니다.

먼저 세례 요한의 세례에 대해서입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의 친족인 엘리사벳의 아들로 주님과도 친척관계가 되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그는 800여년 전에 구약의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예언되어진 사람입니다.

이사야가 예언하기를 메시야가 오기 전 주의 길을 예비 할 사람을 보내실 거라 했고 예수님께서 요한이 바로 그 사람임을 증거 하셨습니다.

그는 출생부터 신비했습니다.

임신이 불가능한 늙은 모친에게 천사 가브리엘의 지시를 받고 태어났고 성장 과정도 남달랐습니다.

아이가 자라가며 빈들에 있었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그는 마을이 아닌 광야에서 영성 훈련을 받으며 자랐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확고한 하나님의 선지자로 인정을 받은 사람입니다.

아마 당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던 신비한 출생과 정통적인 제사장 가문이란 것과 선지자다운 독특한 생활방식도 영향을 미친 것 같습니다.

누가복음3장2절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이 빈 들에서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임한지라 라고 기록합니다.

임하신 말씀은 요한복음1장 33절에서 그가 말한 것을 통해 알 수있습니다.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주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물로 세례를 주라는 말씀었다는 것이죠.

11절에 기록되었듯이 하나님을 떠나 죄 가운데 살고 있는 이스라엘이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는 것이 그에게 주신 임무였습니다.

그리고 본문의 앞 5절을 보면 이 때에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 강 사방에서 다 그에게 나아와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요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니 라고 말씀하십니다.

유대인들이 세례요한의 세례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믿고 다 세례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세례요한의 세례가 당시 이스라엘에 크게 전파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회개하고 세례를 받았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회개를 촉구하는 그의 위엄에 찬 외침은 세리 같은 죄인에서부터 국왕에 이르기 까지 거침이 없고 차별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권위로 사역하는 그에게 이 땅에서 두려워 할 권위가 없는 것이죠.

그래서 그는 헤롯왕이 동생의 아내를 취한 죄도 회개하라고 당당하게 지적합니다.

그렇지만 그는 본문 11절에서 자신은 뒤에 오실 그리스도의 신을 들기에도 과분하다고 자신을 낮추는 것을 봅니다.

그가 이 땅에서 순복할 유일한 권위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뿐이라는 것이죠.

우리가 경외하고 섬겨할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이십니다.

이 세상의 권세를 갖고 우리를 지배하고 다스리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결코 우리가 두려워할 대상은 아닙니다.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우리를 힘들게 하고 정신적으로 은근히 짓누르고 억압하는 권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 예수님을 유일한 왕으로 모실 때 우리 안에 담대함이 생기고 악한 권세에 짓눌리지 않는 자유함이 생기는 줄 믿습니다.

우리가 믿음 안에 거할 때 품성이나 인격이 부족해서 우리를 괴롭게 하는 상사들이나 가족 친지들에 대해서도 여유 있는 마음으로 대할 수 있게 되는 것이죠.

세례요한의 사역은 예수님이 오시기 전 영적으로 무지하고 관심도 없는 백성들의 마음을 영적인 일에 돌리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죄인들의 마음에 주님을 받아들일 길을 여는 것이죠.

왜냐하면 회개한 심령에만 주님이 찾아오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일에 관심이 없고 죄에 대한 자각이 없는 사람들이 교회에 나오고 예수님을 믿는 것은 사실 어려운 일입니다.

오늘 세례요한 앞에 나와 죄를 고백하고 세례를 받은 가난한 백성들은 후에 예수님의 천국복음을 믿고 주님을 영접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회개의 세례는 커녕 요한의 사역에 딴지만 걸던 종교지도자들은 결국 주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는 자들이 되고 맙니다.

회개가 이렇게 중요합니다.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에게 주님은 구주가 되실 수 없습니다.

우리가 죄인, 심판, 이런 말에 뭔가 거스리고 불편한 마음이 든다면 아직 우리 신분을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출신 성분을 좀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인간은 태어나며 이미 노비 문서에 기록된 죄의 노예들입니다.

사탄의 지배아래 죄의 자각도 없이 본성을 따라 살 수 밖에 없는 비참한 운명이죠.

신기하게도 성령께서 죄를 깨닫게 하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할수록 오히려 자기의 죄를 더욱 통감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도 죄고 저것도 죄고 착하게 보일 행동 안에도 죄가 있고 내 몸의 구성요소가 다 죄라는 것을 절절이 깨닫게 됩니다.

오죽하면 평생을 복음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린 사도바울이 자기를 가리켜 죄인 중 괴수라고 말했겠습니까?

내가 이정도면 괜찮은 사람이라 생각된다면 글쎄요, 우리에게 성령의 은혜가 더 필요할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세례요한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예수님 앞 서 와서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여 주님의 길을 준비하고 불의한 세력 헤롯에 의해 장렬하게 순교로 그 인생을 마칩니다.

오늘 주님의 은혜와 임재를 우리 심령에 충만히 받기 원한다면 누구든 먼저 세례요한의 회개의 메시지를 들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드립니다. 아멘.

 

두 번째로 예수님께서 받으신 세례에 대해서입니다.

1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고향인 갈릴리에서부터 세례를 받으시기 위해 요단강까지 오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100킬로미터가 되는 먼 거리를 걸어오셔서 요한의 세례 장소에 오신 예수님을 상상해 보십시오.

몇 날을 걸어오시며 얼굴부터 발까지 사막의 흙먼지를 뒤집어 쓰신 예수님이 줄을 서서 세례 순서를 기다리고 계셨을 것입니다.

자신이 계획하신 구원사역을 위해 일군으로 보낸 요한 앞에서 주님은 그의 권위를 인정하고 세례를 받기 위해 차례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어느 왕이 자기백성들 틈에 서서 지루하게 순서를 기다리겠습니까?

선거철이나 되면 모를까.

주님은 죄인과 세리들이 자기의 죄를 뉘우치며 초조하게 서 있는 틈에 서셔그들을 인애하신 눈으로 보고 계셨을 것입니다.

오늘 세례를 받기 위해 마음을 가다듬는 성도님들을 우리 주님께서 인자한 눈으로 보고 계실 줄 믿습니다. 아멘.

자기 백성 틈에 기꺼이 서서 그 삶의 애환과 죄의 무게까지 긍휼히 여기시는 분이 우리 왕 주님의 모습이십니다.

우리 주님은 억지로 인간의 몸을 입으신게 아닙니다.

신분이 다르다고 우리를 하찮게 보시지도 않으십니다.

비록 죄성을 타고 나 진흙 탕 같은 인생 속에서 허우적 거리는 우리지만 결코 비웃지도 멸시치도 않으시는 창조주의 사랑을 깊이 생각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아멘.

조금만 자기 신분에 못 미치는 대우를 받으면 무시당했다고 성을 내고 자존심 상해 어쩔 줄 모르는 우리와 주님은 이렇게 다르시지만 그럴 수 밖에 없는 우리의 죄성을 또 이해하고 계십니다.

시편 103장 14절 대로 이는 저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진토임을 기억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이 세례를 받으신 오늘 본문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세례의 의미가 죄 씻음에 있다면 죄 없으신 예수님은 왜 세례를 받으셨을까요?

1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정답을 말씀해 주십니다.

우리가 이렇게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나님의 의를 이루기 위해서란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의는 반드시 죄와 악에 대한 정당한 심판을 하셔야만 이루어집니다.

인류의 죄를 대신 해 심판을 받기 위해 주님은 스스로 죄인의 자리에 서시겠다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셨단 것은 모든 인간의 죄를 전가 받은 죄인이 되셨음을 인정하셨다는 뜻입니다.

고린도후서5장21절은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오늘 주님이 세례를 받으시고 올라오셨을 때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주님 위에 영화롭고 충만하게 임하셨습니다.

스스로 죄인이 되신 예수님의 대속의 결과로 모든 사람에게 성령으로 구원의 세례를 주실 것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늘에서는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 기뻐하는 자란 음성이 들렸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스스로 죄인의 자리를 선택하셨을 때 하나님은 구약에서 여호와의 사자로 불리우던 삼위하나님 중 2위의 예수님을 아들이라 부르십니다.

성경은 이렇게 맏아들이 되신 주님이 우리를 모두 이끌어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다고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자신을 우리와 동일시해서 스스로를 인자라고 부르시길 좋아하셨습니다.

우리와 한 가족이 되기를 원하시고 이루어 가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충만한 사랑을 오늘 본문 중에서 우리는 보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주님의 세례는 우리의 모든 죄를 전가 받고 십자가의 길을 향한 공생애를 시작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는 또 한번의 세례가 남아있으십니다.

죄 값으로 치를 십자가의 죽음이죠.

누가복음 12장 50에서 주님은 나는 받을 세례가 있으니 그 이루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고 어려운 심경을 토로하셨습니다.

하나님이시지만 인간의 성정을 가진 예수님이 평생 자신이 지셔야 할 십자가를 생각할 때 마다 얼마나 가슴이 짓눌리는 두려움과 고통이 있으셨겠습니까?

바로 나를 구원하기 위해 세례를 받으신 주님의 은혜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아멘.

 

 세 번 째는 우리가 행하는 세례에 대해서입니다.

물로 씻어 깨끗하게 하는 행위는 모든 종교에서 흔히 나타납니다.

제사지낼 때도 목욕재계라는 말 쓰지 않습니까?

주님께서 명령하신 세례 속에는 죄를 회개하여 깨끗이 씻으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나쁜 짓하던 사람들이 이제 손 씻었다고 말하죠?

오늘 세례 받는 세 분 성도들도 이젠 죄에서 손을 씻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한 죄, 사람들을 사랑으로 대하지 못한 죄,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늘 염려하는 죄 이런 것들에서 완전히 손을 씻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드립니다. 아멘.

그런데 세례라는 원어 속에는 씻어서 깨끗하게 하는 것 이외의 뜻이 있습니다.

바로 물 속에 잠기다란 뜻입니다.

장로교에서는 편의성에 의해 머리에만 물을 끼얹는 세례를 시행하지만 침례교에서는 성경시대 처럼 온 몸이 물 속에 잠겼다가 나옵니다.

그동안 방종하게 살았던 죄인이 죽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다시 물 밖으로 나올 때 이제 더는 과거의 자신이 아니라 완전히 새롭게 태어난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 바로 세례입니다.

세례를 받을 것을 결정했다는 뜻은 자기가 죽어야 할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을 전제로 한 것입니다.

로마서6장3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우리가 세례를 받을 때 우리도 주님과 함께 죽었다는 것입니다.

주님과 함께 죽은 자 만이 주님의 부활과 함께 다시 살아나는 것이 영적 진리입니다.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 반드시 죽어야 한다는 것이죠.

옛 사람 내가 죄를 고집하며 여전히 살아있다면 다시 태어나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그동안 살아왔던 습성과 기준을 따라 살아왔던 나의 의지와 생각을 완전히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는 것입니다.

내 옛사람이 죽는 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참 두려운 경험입니다.

마치 나란 존재가 사라지고 내 자존감이 없어지고 내가 추구하던 모든 것을 내려놓고 내 개성도 사라진 수도사 같은 삶을 사는 것인가 겁이 나기도 합니다.

악한 마귀의 미혹하는 생각에 귀를 기울이지 마시기 축복드립니다.

마귀는 우리 마음에 어느새 사실이 아닌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슬그머니 넣어두었다는 것을 주의하셔야 합니다.

사람을 다 개성 있게 만드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아무리 죽자고 신앙생활해도 끝까지 남는 것이 사람마다 타고난 개성입니다.

절대로 힘 다 빠진 무기력한 사람 되지 않습니다.

옛사람이 죽고 다시 태어나면 과거보다 더 못난 내가 될 것 같습니까?

정말 못나고 벗어버리고 싶은 것은 죄에 종속 된 옛날의 나입니다.

나 스스로만 그런 나를 고집하고 있지 우리 곁에 있는 사람들이 다 그 성격 때문에 피해를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남들이 우리의 옛 성격 절대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주님 안에서 새로운 내가 될 때 비로서 모든 것은 안정을 찾고 조화롭고 아름답게 변하는 줄 믿습니다.

주님을 잘 따르면 모든 것 뺏기고 평생 가난하고 궁핍하게 살 거라고 오해하지 마십시오.

대를 이어 예수님을 믿는 가정 망하는 법 없고 기독교를 믿는 국가가 그렇지 않은 나라보다 훨씬 잘 삽니다.

대한민국에서 기독교 비율이 가장 높은 곳도 강남3구라지 않습니까?

주님의 말씀에 의지해서 경영하는 기업이 더 큰 축복도 받는 줄 믿습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오늘 세례 받고 내 옛사람을 버릴 때 우리 자신도 놀라운 리노베이션을 하게 되는 줄 믿습니다.

죄와 어둠의 영에게 지고 괴롭게 사는 옛사람이 죽고 성령의 능력과 평강과 기쁨으로 승리하는 새 사람으로 태어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드립니다. 아멘.

2007년 중앙일보에 한 사람의 세례식 사진이 게재되었습니다.

이어0 전 문화부장관의 세례였습니다.

한 때 대한민국 지성의 상징이라 불리 웠던 그는 이 세례를 통해 지성에서 영성으로 들어섰다고 고백합니다.

그를 영성의 세계로 끌어들인 것은 사랑하는 딸 이0아씨의 불행한 삶과 질병을 통해서였습니다.

이0아씨는 소설가 김한0 전 국회의원과 결혼해 미국에서 변호사 자격을 취득하고 LA지역 촉망받는 인사가 됩니다.

그러나 5년 만에 결혼은 파경을 맞고 갑상선 암 선고까지 받게 됩니다.

그 과정 중에 0아씨는 주님을 영접합니다.

그런데 힘겨운 투병생활을 이겨내고 보니 이번엔 망막이 박리되어 앞을 보지 못할 거란 판정을 받습니다.

사랑하는 딸이 더 이상 아버지얼굴을 볼 수 없을 거란 말에 아버지 이어0씨는 비로서 자신을 지탱해주던 지성의 꼿꼿한 무릎을 하나님 앞에 꿇습니다.

 "하나님, 나의 사랑하는 딸 0아에게서 빛을 거두시지 않는다면, 남은 삶을 주님의 종으로 살겠나이다"

수술에 한 가닥 희망을 갖고 병원을 찾았을 때 의사는 박리되었던 망막이 저절로 붙어 정상으로 돌아왔다고 말했습니다.

기쁨도 잠시이고 0아씨의 작은 아들이 자폐증에 걸리며 시련은 계속되었습니다.

믿음과 사랑의 힘으로 아들의 병이 치유되던 중 버클리대학을 다니던 아들의 갑작스런 죽음에 넋을 놓고 맙니다.

감기를 앓듯 하던 아들이 병원에 입원 해 19일 만에 세상을 떠난 것입니다.

아들을 잃은 0아씨는 3개월 간 침대에서 나오지 않고 24시간을 내내 울었다고 합니다.

아이를 묻고 묘비에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새기고 더 이상 뒷 말을 이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꿈속에서 “아이는 지금 아버지 집에서 편히 쉬고 있으니 슬퍼하지 마라. 기뻐하며 잘 쉬고 있다”는 음성을 듣게 됩니다.

그의 마음을 뭉개지게 하던 모든 슬픔이 사라지고 기쁨과 평안이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그는 아들의 묘비명을 이렇게 바꿨습니다.

‘내 아버지 집에서 편히 쉬고 있습니다’

이0아 목사님은 아들이 세례를 받던 날 이미 자기의 아들로 태어났던 육신의 아들은 죽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고 합니다.

새로 태어난 하나님의 아들을 하나님 아버지의 집으로 불러가셨을 뿐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과거의 자기 자신 역시 세례 받던 날 죽었다고 고백합니다.

그는 아들이 죽고 난 후 청소년 사역 목사가 되어 술과 마약을 끊고 자신을 마마라고 부르는 30명의 아들을 얻었다고 말합니다.

그의 아버지 이어0씨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자신이 세례를 받은 것은 세속적 의미의 평화와 복을 구하려는 목적이 아니었다고 말합니다.

오히려 자신이 해체되는 것을 기대했다고 말합니다.

그는 진실로 예수님이 걸었던 좁은 길을 뒤따라 걷고 싶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세례는 우리의 죽음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주님의 부활과 함께 일어나고 주님의 승리를 함께 나누는 것이 바로 세례라고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갈라디아서 3장 27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세례를 통해 누추한 겉옷과 같던 죄의 사람을 벗어버리고 주님의 영광으로 옷 입으신 것을 믿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드립니다. 아멘.

 

말씀을 맺습니다.

우리가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주님의 죽으심과 함께 우리 옛 사람이 죽었다는 고백입니다.

이제 세례를 받은 우리는 날마다 죄와 세상에 대해 죽는 자가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주님의 명령에 따라 오늘 물로 세례를 받을 때 우리 모두에게 하늘이 열리고 성령세례가 임하시고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음성이 함께 하시길 간절히 축원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