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이사야서1장 (반드시 알아야 할 이사야서 개론)

남수연 2026. 7. 23. 18:25

다음 달까지 계속 이사야서 본문을 묵상합니다.

이사야서는 귀에 익은 구절들이 많은 성경입니다.

그런데 이사야서가 어떤 성경인지 통째로 이해하기는 좀 어렵습니다.

길이도 길죠.

그 안에 담긴 내용은 성경 전체의 요약이라고 할 만큼 방대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분량이 많은 대선지서를 묵상할 때는 사전 지식을 갖고 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성경 안에서 길을 잃기 쉽습니다.

성경은 공부하면서 읽어야 백 프로 유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1. 앞으로 매일성경 묵상에 도움이 되도록 이사야서의 포인트를 몇 가지만 짚어 드리겠습니다.

1) 이사야서가 40년 이상 걸려 기록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사야는 1장1절에 자신이 누군지, 언제 이스라엘의 선지자로 활동했는지를 밝힙니다.

유다 왕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하여 본 계시라

이걸 보면 이사야가 무려 네 명의 왕의 시대에 걸쳐 계시를 받았다는 걸 알 수 있죠.

연수로 치면 약 40년에서 60년가량입니다.

이렇게 긴 세월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전했기에 성경이 길어진 것이죠.

그러니까 이사야서는 한번에 다 기록한 게 아닙니다.

선지자가 그 시대별로 받은 말씀을 백성들에게 선포한 뒤 기록해서 남긴 것입니다.

 

2) 이사야서에는 회개 촉구, 심판 경고, 회복 약속이라는 구조가 반복적으로 나타납니다.

읽다 보면 비슷한 책망이 반복되는 것 같지만, 사실 각각 다른 시대의 사람들에게 했던 메시지인 것입니다.

사람의 악행이 시대마다 다르지는 않잖아요?

문화와 문명이 발달한 현대라고 인간의 악행이 옛날과 달라진 건 없죠.

지난 주 일본에서 감금되었던 한 여성이 도망쳐 구조되었다는 뉴스를 보았습니다.

그런데 입이 실로 꿰매져 있었다고 합니다.

사람이 저지를 수 있는 악행에 오싹하지 않습니까?

인간의 죄의 본성은 상황에 따라 다른 얼굴로 나타날 뿐입니다.

이사야서를 보면 그 시대 사람들의 죄가 오늘날과 다르지 않습니다.

만일 이사야선지자가 지금 시대에도 예언하고 있다면 거의 같은 문제를 회개하라고 했을 것입니다.

죄에 대한 회개를 촉구한 다음엔 심판 경고가 나옵니다.

심판의 도구는 자연재해나 질병이나 전쟁 같은 것입니다.

전쟁의 징계에는 먼저 앗수르가 등장하고, 그 다음엔 바벨론제국이 나타납니다.

단 심판과 징계의 경고 다음엔 예외 없이 회복에 대한 메시지가 나옵니다.

그런데 회복의 메시지에서는 특이점이 있습니다.

징계를 당한 이스라엘이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와야 다시 관계가 회복되는 것이잖아요?

그런데 하나님의 회복 선언은 이스라엘의 회개 여부에 달리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겠어요?

인간이 근본적으로 스스로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돌이키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혼자 야단치시고, 벌주시고, 다시 용서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회복에는 또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회복은 이전 상태로의 복귀가 아니라 완전 개조입니다.

징계 뒤의 구원과 회복은, 잘 뜯어보면 모두가 다 종말적입니다.

1장에서 우리가 읽은 대로 하나님의 심판 경고가 나오죠.

그리고 2장의 회복을 보면, 역시나 종말적인 회복 약속입니다.

2절, 말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 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요 모든 작은 산 위에 뛰어나리니 만방이 그리로 모여들 것이라

이건 완전히 다른 종류의 회복이죠.

이방인들의 구원을 말하고 있잖아요?

이건 메시아 왕국에서의 회복입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이 징계 이전으로 돌아가는 게 회복이 아니죠.

돌아가서 똑같이 죄짓고 또 매 맞을 텐데 그걸 회복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시기에 약속하시는 구원과 회복은 다 예수님의 대속으로 인한 완전한 구원에 모아지게 한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것이 진정한 회복입니다.

우리 삶의 문제들은 다 그 회복 안에서 서서히 나아지는 것입니다.

어떤 방식으로든 반드시 회복되니 염려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신이 보낸 사람’이라는 기독교 영화를 만든 사람이 김진0감독입니다.

어릴 때부터 영화 찍는 게 그렇게 좋았고 결국 감독이 됩니다.

인격적인 예수님을 만난 뒤, 하나님의 뜻을 영화에 녹여내는 감독이 됩니다.

그런데 어느날 세 살 딸아이의 유치원에서 전화가 옵니다.

딸이 이상하다는 거예요.

정신없이 달려가 보니 그 예쁜 딸아이가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습니다.

병원에 데려가니 뇌전증 진단이 내려졌습니다.

이후 그 어린 것이 하루에 백번 씩 경기를 하며 쓰러졌다고 합니다.

거의 병원에서 살 수밖에 없었죠.

그 사이 부부가 얼마나 기도를 했겠어요?

어느날 감독 아빠는 어린 딸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려원아, 우리는 이 병원에서 어려운 모험을 하는 영화를 찍는 거야.

그렇게 말하며 속으로 이런 확신이 들었습니다.

어떤 방식이든 그 마지막은 회복으로 끝날 거야.

그러나 하루 백번씩 경기와 기절을 반복하며 회복은 쉽지 않았습니다.

뇌전증 약이 너무 독해 계속 토하는 바람에 딸이나 부모나 옷이 깨끗한 적이 없었습니다.

결국 수술을 결정하는 데 그러려면 먼저 두개골을 열어서 합니다.

그리고 24시간 열어 놓은 채 머리 전체에 전극을 붙여서 이상이 있는 부위를 찾아야 합니다.

아이가 깨어있는 상태로 그런 과정을 거쳐 위치를 찾아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조직이 운동신경하고 연결되어 있어서 잘라내면 대신 다리를 못 쓰게 된다는 거예요.

그래도 수술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이죠.

수술 뒤에 뇌전증은 호전되었지만 아이는 못 걸었습니다.

그렇게 재활 병동으로 넘어간 지 한 일주일 뒤 아내에게서 영상이 하나 날라 왔습니다.

부부가 늘 울면서 기도했던 병원 예배실, 십자가 앞에서 딸아이가 엄마 두 손을 잡고 뒤뚱뒤뚱 걷고 있는 영상이었습니다.

기적이 일어난 것이죠.

우리가 주님 안에 있지만 어떤 문제는 회복이 늦을 수 있습니다.

설령 그렇다 해도 예수님이 아니면 어디에서 소망을 찾겠습니까?

반드시 회복을 믿고 기도하는 모두가 되시길 축복드립니다.

어느 시대, 누구든 구원과 회복은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이뤄지는 것입니다.

 

3) 이 완전한 회복과 구원을 누가 가져올지에 대해 이사야서는 점점 뚜렷이 그 실체를 드러냅니다.

7장에서 예수님 탄생이 예고되죠.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리고 이사야서 53장에 가서 메시아의 고난이 예고되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느니라

이사야서는 점점 초점을 좁혀 우리의 구원자이신 예수그리스도를 가리키고 있는 것입니다.

 

4) 그리고 이사야서에는 주변국들에 대한 경고와 심판의 메시지가 있습니다.하나님이 이스라엘만의 하나님이 아니시라 온 민족의 하나님이시잖아요?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키고 남유다를 괴롭히던 앗수르가 바벨론에 멸망할 것을 예언합니다.

남유다와 주변나라들을 무참히 침략한 바벨론은 페르시아에 멸망할 것이 또예언됩니다.

그리고 주변 크고 작은 나라들의 죄악에 대한 심판의 메시지가 나옵니다.

실제 그 예언대로 중근동 국가들의 흥망성쇠가 일어나죠.

그러나 놀라운 점은 이들에게도 회복의 메시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이스라엘과 똑같다는 게 놀라운 일입니다.

이사야서19장 25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복을 주어 가라사대 나의 백성 애굽이여, 나의 손으로 지은 앗수르여,나의 산업 이스라엘이여,복이 있을지어다 하실 것임이라

모든 민족이 결국 예수님의 구원의 팔 안에서 복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4) 이외 이사야 선지자의 개인적인 사건과 아하스왕과 히스기야왕과 관련 된 중요한 사건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지막 뒷부분에 가서는 결국 바벨론 포로로 끌려가는 이스라엘이 다시 돌아올 것에 대한 예언이 나옵니다.

단순한 귀환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역시 종말적인 구원을 상징하며 이렇게 종지부를 찍습니다.

65장17절,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이런 내용을 잘 숙지하면 이사야서를 묵상하시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3. 오늘 이사야서 1장을 잠깐 살펴 보겠습니다.

하나님은 시작부터 이스라엘의 죄악으로 인해 한탄하십니다.

회개를 촉구하시는 부분이죠.

2절을 보면 마치 하나님이 증인들을 소환하시는 것 같습니다.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3절,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그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

한마디로 은혜를 모르는 이스라엘은 짐승만도 못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11절, 12절을 보면 이스라엘이 열심히 하나님께 제사드리고 있었다고 하죠.

그러면 하나님을 잘 섬기는 거 아닙니까?

하나님은 오히려 그 제사가 괴로우시다고 합니다.

제사와 함께 악을 행하기 때문입니다.

15절에서 그들의 손에 피가 가득하다고 하죠.

특별히 피는 사람에게 행한 악을 의미합니다.

이사야서를 읽다 보면 당시 사회에 악이 얼마나 성행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사회악이 만연했다는 건 사람들 사이에 사랑이 없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해야 하는 믿는 공동체잖아요?

남을 사랑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이웃 사랑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데서 오는 것입니다.

이웃 사랑이 없는 것은 하나님 사랑하는 예배도 변질되었다는 것입니다.

당시 제사는 우상 종교처럼 단지 복을 비는 도구로 전락한 것이죠.

만일 하나님과의 관계가 진실하다면 반드시 사람들 사이에도 사랑의 회복이 일어납니다.

요한일서3장10절에서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않았다고 엄중히 단언합니다.

그렇기에 신자들이 어떻게 행할지 16절부터 17절까지 말씀입니다.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하게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한 행실을 버리며 행악을 그치고

선행을 배우며 정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 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

스스로 씻고 깨끗이 하라는 말씀에 주의해야 합니다.

사랑도 스스로 해야 합니다.

세상은 그럴 수 없지만 우리는 성령께서 도와주시기에 스스로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서로 긍휼히 여기고 대접하고 사랑하길 원하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나라이고 악이 성행한 세상을 이길 힘이기 때문입니다.

매일 보는 가족들을 향해 활짝 웃을 수 있는 것만도 행복입니다.

그런 가정이면 얼마나 힘이 되겠습니까?

나 혼자 믿음을 지키는 것은 공동체와 함께 하는 것에 비해 몇 배는 더 힘듭니다.

형제들이 교회에서 만나 서로의 고된 삶을 위로받고 응원받아야죠.

하나님께 은혜받고, 성도 간에 사랑하는 공동체가 되면 그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가 아니겠습니까?

그렇지 않다면 개인이든 공동체든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듣지 않으시겠다는 말씀을 마음에 새기시길 축복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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