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이사야서12장1절-6절 (내가 감사하겠나이다)

남수연 2025. 11. 22. 02:01

올 한해도 우리의 섬김보다 더 과분한 복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은 구약시대 성도들에게 추수한 뒤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하셨습니다.

소득이 저절로 생기는 거라면 하나님이 내게 감사하라고 하지 않으시겠죠.

하나님이 어떤 환경에서도 우리에게 수입을 주시기에 그것을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공치사 하시려는 게 아닙니다.

그걸 알고 인정할 때 우리는 생활에 대한 염려를 덜 하게 됩니다.

우리 수입은 거의 고정되어 있죠.

들어가는 게 더 많은 달이 있으면 어떻게 하십니까?

그런데 올해도 그런대로 꾸려온 것은 내 재정관리가 뛰어나서만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 삶에 필요한 분량을 재고 계시다는 것이죠.

어떻게든 채워 주시잖아요?

또 우리의 삶이 의식주만 해결되면 되는 게 아닙니다.

올해 위급했던 순간들도 있었고, 어둠의 터널을 지나기도 했습니다.

그 가운데에서 우리와 함께 하셨고, 또 우리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 오늘 진심을 다해 감사하는 예배되시길 축복드립니다.

 

오늘 이사야서 본문은 곡조를 넣어 부르기 좋은 시입니다.

예언서들은 대개 회개 촉구와 징계와 심판의 내용들이 많죠.

이 이사야서도 앞 10장까지는 주로 그런 내용들입니다.

간간히 구원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11장에 본격적인 메시야의 구원에 대해 예고하십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구원으로 인한 기쁨의 노래가 터져 나오는 것입니다.

정말 기쁜 일이 있으면 나도 모르게 노래가 나오잖아요?

이사야가 이 감격을 표현하려고 할 때 노래 이상은 없었던 것이죠.

오늘 본문에서 추수감사절에 맞게 우리가 감사해야 할 것들을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하나님의 진노가 떠났기에 우리는 감사해야 합니다.

1, 그 날에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주께서 전에는 내게 노하셨사오나 이제는 주의 진노가 돌아섰고 또 주께서 나를 안위하시오니 내가 주께 감사하겠나이다 할 것이니라

사람들은 하나님이 진노하신다는 것을 의아해 합니다.

아니 왜 하나님이 나한테 화를 내?’

교회 밖의 사람들 뿐 아니라 신자들 중에도 그런 생각을 가진 분들이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 때문인지 바울사도가 로마서에 잘 설명합니다.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사람들에게 다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을 믿지도 않고 영화롭게 하지도 않고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죄와 타협하고 악을 행하며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착하고 교양 있고 좋은 사람이라고 해도 하나님을 믿으라고 하면 믿습니까?

아니잖아요.

그렇기에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는 것입니다.

이사야 당시 구약성도들도 하나님의 권위를 무시하고 방종하고 타락하고 아주 악했습니다.

그 시대가 얼마나 악했는지 두 가지를 보면 알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던 이사야선지자를 므낫세왕이 죽입니다.

전승에 의하면 톱에 잘려 죽었다고 하죠.

또 한 가지는 이스라엘이 결국 바벨론에 멸망 당하고 줄줄이 엮여서 전쟁 노예로 끌려갔다는 것입니다.

끝까지 죄에서 돌이키지 않았다는 것이죠.

그래서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심판 당하면 뭐가 좀 달라집니까?

인간이 그렇지 않다는 걸 성경이 계속 역사를 따라가며 보여주시잖아요?

1절에서 하나님의 진노가 돌아섰다는 말은, 꼴보기도 싫은 죄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가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진노로 사로잡혔던 자들이 돌아온다는 뜻이죠.

선지자들은 인간의 죄악상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사람들입니다.

그 종말을 분명히 아는 사람들입니다.

그렇기에 선지자들은 더 절망감과 우울감을 느낄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이사야가 하나님의 진노가 떠났다는 소식을 제일 먼저 들은 것입니다.

깨어서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제일 먼저 소망의 기쁜 소식을 주십니다.

이 번잡한 시대에도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는 사람들에겐 매일 붙들고 살아갈 말씀을 주시잖아요?

올해 바쁜 생활 중에도 매일성경을 붙든 성도님들께 그런 은혜를 주셨으리라 믿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어떻게 하나님이 진노를 멈추셨냐는 것입니다.

왜 화를 내셨다, 이유 없이 화를 푸셨다 하십니까?

하나님의 공의는 사람의 행위에 대한 심판의 기준입니다.

죄가 있는 데 어떻게 심판하지 않으시냐는 것이죠.

세상나라에서도 재판 잘못하면 재판관이 죄인됩니다.

1절에 보면 그날에하나님의 진노가 돌아섰다고 합니다.

그날은 무슨 날을 말씀하는 것일까요?

그날은 구약의 사건과 신약의 사건을 동시에 가리키는 것입니다.

구약의 사건은 진노로 인해 사로잡혔던 포로들이 70년만에 다시 고국으로 돌아오는 날인 것이죠.

나중에 포로들은 영문도 모른 채 고국으로 돌아가라는 고레스왕의 조서를 받게 됩니다.

시편126편에서 그때 우리가 꿈꾸는 것 같았다고 노래하죠.

단지 하나님의 은혜로 용서하시고 구원자 고레스를 통해 해방시켜 주신 것입니다.

포로들이 돌아온 것을 이들이 죄값을 다 치렀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사람은 죄값을 치르면서도 계속 죄를 짓잖아요?

지옥에서의 심판이 영원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그것입니다.

그런데 아직 진노를 돌이키신 근거가 부족하죠.

그것은 신약시대에 가서 완전하게 실체가 드러납니다.

이사야선지자는 고레스가 아닌 또 다른 구원자를 계속 암시하고 그 구원자에 대해 예언합니다.

그게 누구인지 바로 위 11장에서 분명한 힌트를 줍니다.

10, 그 날에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서 만민의 기치로 설 것이요 열방이 그에게로 돌아오리니 그가 거한 곳이 영화로우리라

포로를 해방시킨 고레스는 페르시아왕이잖아요?

그러니까 이 예언은 또 다른 구원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새는 다윗의 부친입니다.

다윗에게서 한 싹이 나온다고 하죠.

다윗의 자손으로 오실 메시야에 대한 예언입니다.

이사야는 계속 메시야의 구원에 대한 계시를 받아서 우리에게 전합니다.

이사야서가 66장까지 길잖아요?

그리고 우리가 잘 아는 53장에 가서 구원자로 오실 메시야가 자신을 속죄의 제물로 바친다는 감격스럽고 엄청난 계시를 전해줍니다.

오늘 하나님이 진노를 돌이키신 이유가 무엇 때문인지 결론이 나오죠.

다 알고 계시지만 성경을 통해 이렇게 따져보면 그게 믿음이 됩니다.

왜 이렇게 두 사건을 엮어서 구원의 날을 설명하시는 것 같습니까?

문자와 언어로만 구원에 대해 듣다 보면 실재감이 잘 들지 않게 됩니다.

처절한 포로생활과 귀환 역사가 보이지 않게 일어나는 구원의 날의 실체를 보조적으로 설명해 주는 것이죠.

이렇게 역사적인 사건과 영적인 사건을 나란히 놓고 가르치시는 게 성경에 여러 쌍이 나옵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 멸망의 날을 예고하실 때, 마지막 인류 멸망의 날을 섞어서 말씀하신 경우도 있죠.

눈앞에 일어난 일을 보고 앞으로 일어날 일도 그렇다는 걸 각성시키시는 것입니다.

사람은 그렇게까지 해도 잘 안 믿잖아요?

속죄 제물이 되신 예수님의 대속으로 하나님의 공의가 충족되었기에 그 진노를 돌이키신 것입니다.

그것을 믿는 우리는 더 이상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진노에서 돌이켜 이제는 우리를 구원하고 사랑하십니다.

자식에게 하시듯 우리를 안위하십니다.

우리가 어쩌다 그런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지금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진노하지 않으십니다.

죄 지었다고 하나님의 진노가 불안해서 떠는 것은 올바른 신앙은 아닙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기대에 벗어난 것을 죄송하게 생각하는 게 맞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예수님을 믿고 진노에서 구원 받은 것은 남과 다른 어떤 구석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스스로 진노를 거두시고 용서하시고 나에게 다가오신 것입니다.

만일 내가 손톱만큼이라도 그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면 큰일 납니다.

누구도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하나님이 구원을 선물로 주신다고 한 것이잖아요?

내게서 진노를 거두시고, 예수님의 대속으로 구원해 주신 것을 이 감사절에 가장 먼저 감사하길 축복드립니다.

 

2. 우리가 받은 구원이 삶에서도 풍성하기에 감사해야 합니다.

2,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신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고는 멀리 떨어져 계신 게 아닙니다.

내가 신뢰한다는 것은 현실의 문제를 맡길 만큼 가까이 계시다는 것입니다.

신뢰할만한 사람이 내 곁에 있다는 건 큰 축복입니다.

그러나 사람이기에 실망을 주기도 하고 상처를 주기도 하죠.

내게 신뢰할 수 있는 믿음직한 하나님이 계시다는 게 얼마나 큰 복입니까?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은 우리가 신뢰할 수 있는 분이라는 확신을 줍니다.

그러기 위해서 더 예수님을 알아가야 합니다.

끈기 있게 주님을 따르다 보면 성경을 통해, 그리고 경험을 통해 점점 더 주님을 신뢰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또 하나님을 신뢰할 때 우리에게 두려움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두려워하는 것은 그것이 하나님보다 더 크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문제에 집착할수록 두려움은 커지는 것입니다.

하나님보다 더 큰 것은 없잖아요?

하나님의 크심을 알수록 우리에게 두려움은 점점 작아지게 될 것입니다.

겁내면 온몸에 힘이 빠지는 것 아시죠?

그렇기에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곧 나의 힘이고 노래입니다.

불안할 때는 노래가 안 나옵니다.

크신 하나님을 신뢰할 때 두려움 대신 힘이 나고 찬양이 나오는 것이죠.

일 년을 돌아볼 때 하나님을 신뢰하며 많은 두려움을 이겨냈습니다.

날마다 살아갈 힘을 주셨고 찬양할 때 위로와 소망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하루하루는 감사할 일보다 힘든 일이 더 많은 한해였을지 모릅니다.

지난 주 부천시장에서 많은 인명 사상이 난 차량 질주 사고가 있었죠.

그날 사고를 낸 운전자는 그 시장에서 40년째 생선가게를 하는 상인입니다.

트럭에서 생선을 내리다 브레이크를 안 채워서 차가 움직였다고 합니다.

급하게 차에 올라타 브레이크를 밟는다는 게 그만 액셀을 밟은 것이죠.

저도 주차장에서 브레이크 대신 액셀을 밟고 시동을 걸다 깜짝 놀랐던 경험이 있습니다.

보조 브레이크를 채워 놓았기 망정이지 앞에 주차된 차를 들이받을 뻔 했습니다.

그날 시장에서 운전자는 그냥 평소처럼 하루를 시작하고 일하던 중이었습니다.

한번의 실수로 그렇게 엄청난 일이 일어났다는 게 지금도 믿어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날 일찍 장을 보러 나왔다가 불의의 사고를 당한 사람들은 또 어떻습니까?

매일 찬거리를 사러 다니던 그곳이 그렇게 위험할 줄은 아무도 몰랐겠죠.

사고 낸 상인은 술도 안 마시고 착하고 성실한 사람이라고 상인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더군요.

그 분들 중에 만일 신자가 있다면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아무 사고도 시련도 당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올해는 감사하게 평탄했다 해도, 시련과 문제는 언제든 만날 수 있습니다.

만일 우리의 감사가 어떤 좋은 결과에서만 나온다면 어려운 일을 만났을 때는 감사하지 못할 것입니다.

억지로 감사하는 것은 한계가 있죠.

그러나 감사를 잃으면 사람이 차갑고 강팍해집니다.

전에 인간극장에 목회를 그만두고 생수 배달을 하는 한 가장의 이야기가 나온 적이 있습니다.

아이가 네 명이고 아내도 갑상선 질환 투병 중이었습니다.

아이들이 자라는 환경이 풍족할 수가 없는 것이죠.

큰 아이 외엔 휴대폰도 없었습니다.

요즘 휴대폰 없이 살라고 하면 아이들이 가만있겠습니까?

그런데 아이들이 그런 가난한 생활에 대해 아무도 불만스러워하지 않았습니다.

부모의 사랑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좋은 것을 다 사주지 못하는 아빠의 마음이 어떨지를 더 살피는 것 같았습니다.

정말 사랑하고 이해하는 관계가 되면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서로 감사가 된다는 걸 그 어린 아이들에게서 볼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우리가 의심하지 않는다면 그럴 것 같아요.

올해 재정에 좀 적자가 났어도, 병으로 좀 고생을 했어도, 사회에서 좀 늦춰졌더라도 나를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존재만으로도 감사할 수 있는 것이죠.

그러면 용기가 납니다.

그래, 예수님이 다 아시니 도와주실거야, 믿고 견뎌보자, 한번 해 보자.

주님의 사랑을 신뢰하게 되면 하나님께 쓸데없는 억지를 부리지 않게 됩니다.

나는 하나님을 한번도 본 적이 없고 음성을 들은 적도 없는데, 어떻게 나를 사랑하시는지 알겠냐 답답하고 괴로우신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선지자들을 통해 성경에 말씀하셨잖아요?

예수님이 말씀하셨고, 예수님은 진실하시잖아요?

하나님은 우리가 유일하게 믿고 신뢰할만한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믿을 때 상황이 어떻든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께 감사가 나올 것입니다.

그 감사의 위력은 좋은 결과에 대한 감사보다 훨씬 더 큽니다.

반드시 어려움을 이기게 될 것입니다.

올해 아쉽고 속상했던 문제가 있었다 해도 오늘은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존재만으로도 감사하는 모두가 되시길 축복드립니다.

 

3절에서는 하나님의 구원을 우물에서 길어올리는 생수라고 설명합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

우리는 이 말씀을 읽을 때 그다지 강한 임팩트가 없습니다.

그러나 사막기후의 이스라엘 사람들에겐 아마 듣기만 해도 마음이 시원해졌을 것입니다.

실제로 물은 사람의 생명입니다.

사람들은 살기 위해 세상에서 열심히 우물을 파며 살아가죠.

그런 모습을 보시며 하나님은 뭐라고 하십니까?

그것은 물을 가두지 못하는 터진 웅덩이라고 하십니다.

이 세상에는 생명을 주고 풍성히 줄 수 있는 생명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우물로 물을 길러 나온 사마리아 여인에게 말씀하셨잖아요?

요한복음414,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이스라엘이 생수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버린 것은 하나님 안의 구원과 모든 복을 함께 버린 것입니다.

말 탄 강대국이 몰려와 짓밟아도 구원해 줄 아무도 없게 되었잖아요?

주님이 주시는 구원의 우물 안에는 생명과 경건과 우리를 부요하게 하는 삶의 모든 것들이 들어 있습니다.

구원의 우물이라고 한 것은 매일 길어 올리라는 것입니다.

매일 예수님을 바라고 기도하고 말씀을 펼치고 은혜의 생수를 퍼 올리는 모두가 되시길 축복드립니다.

 

3. 우리의 감사는 나 혼자만의 비밀이 아니라 온 땅에 알게 해야 합니다.

4, 그 날에 너희가 또 말하기를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의 이름을 부르며 그의 행하심을 만국 중에 선포하며 그의 이름을 높다 하라

5절에서도 하나님이 하신 극히 아름다운 일을 온 땅에 알게 하라고 명령합니다.

방송에서 연예인들이 맛집을 소개하며 가끔 이런 말을 하죠.

이 집은 정말 나 혼자만 알고 싶은 집이다, 사람들에게 알려지면 손님이 많아져 지금같이 편히 즐기지 못할 것 아니냐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을 걸 그래서 사람들에게 안 알리시는 건가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주셨다는 것, 이것을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는다는 걸 나 혼자만 누리려고 안 알리는 건가요?

신앙의 비밀은 예수님을 나눌수록 우리에게 더 커지신다는 것입니다.

내게서 예수님이 커지지 않는 것은 이웃에 나누지 않아서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잃은 영혼들을 다 찾으셔야 합니다.

그래야 아직 성취되지 않고 남아 있는 마지막 그날’, 예수님의 재림의 날이 오는 것입니다.

올해 모두가 참 성실히 땀 흘리셨습니다.

하나님이 그런 우리를 돌보셔서 수고한 대로 열매들을 누리며 살았습니다.

이제 올해 남은 시간에 영혼의 열매를 위해 힘을 내시면 좋겠습니다.

오늘 성탄주일에 초청할 분을 정해서 집중적으로 기도하고 권고하려고 합니다.

우리가 대단한 사람도 아닌 데 왜 이렇게 당당하게 삽니까?

구원받았기 때문이잖아요?

삶이 빈곤하고 어려울 때도 하나님 의지해서 견딜 수 있잖아요?

가수 김범0씨가 성대에 문제가 좀 생겼다고 하더군요.

노래가 도약되는 중요한 음역대를 낼 수 없게 되었다고 합니다.

의사의 소견은 완치를 장담할 수 없다고 합니다.

노래가 삶이고 뼈와 살이었던 가수에게 이건 사형선고일 것입니다.

김범0씨가 원래 교회에서 음악을 시작했고, CCM 가수가 되려고 했다더군요.

자신의 문제를 담담히 말하여 또 이런 말을 했습니다.

치료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지만 목소리가 돌아오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다하나님이 주신 재능으로 그동안 많은 사랑을 받았고, 아직 감사할 것들이 너무 많이 남았다는 것이죠.

햇빛을 쪼이며 한잔의 커피를 마시는 것도 감사하지 않냐고 합니다.

자기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과 함께 그냥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만도 괜찮을 것 같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없으셨다면 김범수씨가 그렇게 강하고 의연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이 없으셨다면 어떻게 지금의 내가 있겠습니까?

내 곁에 있는 소중한 가족, 가까이 지내는 사람들, 그분들은 하나님 없이 이 두려운 세상에서 어떻게 살겠습니까?

한 청년이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모든 게 사라졌는데, 이상하게 하나님은 여전히 나와 계셨어요.

하나님이 계시면 언제든 우리는 다시 시작할 수 있잖아요?

하나님이 나의 힘이시고, 나를 다시 노래하게 하시고, 나를 어디서든 구원하실 것이잖아요?

그 아름다우신 우리 주님을 온 땅에 알게 하자고 이사야 선지자가 우리를 권고합니다.

우리를 이 땅에 살게 하신 이유 중에 이 명령을 마음에 새기고 산다면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서 한 영혼을 찾아 구원하실 것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성도님들 각자에게 의미가 깊었던 한 해였으리라 생각합니다.

오늘 추수감사절에 우리의 구원을 감사하시길 바랍니다.

우리 상황이 어땠든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존재만으로도 감사하시길 바랍니다.

성도들의 삶은 세상에다 우물 파는 게 아닙니다.

우리에게 주신 구원의 우물에서 부지런히 물을 퍼 올려 내가 살고 이웃을 살리는 게 목적입니다.

세상 일은 그냥 하면 됩니다.

한만두라는 큰 만두공장을 운영하는 남미0대표는 선교사가 되려던 분입니다.

한때 공장 운영이 어려워 고전하고 있던 때가 있었습니다.

당시 슈돌에 대한민국만세 형제가 나와 국민들의 큰 사랑을 받고 있었습니다.

어느날 방송에서 아빠하고 아이들이 갈비 만두 8판인가를 먹는 게 나왔습니다.

그게 이 권사님 회사에서 만든 만두였습니다.

방송이 나간 후 3개월 동안 이 만두로만 매출 50억을 올렸다고 합니다.

위기도 벗어났고, 그에 대한 감사로 초록우산에 큰 기부를 했다고 하더군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평범한 삶을 주시지만 필요하면 이렇게 통 큰 인도도 하십니다.

소박한 삶이든, 남들보다 특별한 삶이든 구원을 감사하며, 받은 구원을 흘려보내며 살아가는 모두가 되시길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