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2017년의 첫날을 주일예배와 함께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옛날엔 새해는 여전히 가난해도 왠지 설레이는 마음으로 맞이했는데 언제 부터인지 새해를 맞이하는 마음이 심란스럽게 변한 것 같습니다.
그래도 올해 장년 성도님들 믿음의 성숙과 건강과 일터와 가정의 행복을 소망합니다.
청년들은 주님 안에서 능력 있게 직장생활을 잘 해내고, 좋은 배우자들도 만날 수 있기를 축원드립니다.
청소년 어린이들은 말씀을 많이 배워 지혜롭고 정직하게 자라고 충실하게 공부하길 바랍니다.
새해 첫 설교로 아모스서를 선택했습니다.
아모스서는 많이 들어보지 못한 설교일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설교의 제목처럼 우리가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듣고 따라야 할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새해 첫 설교로 우리에게 주신 귀한 말씀입니다.
설교 중에 내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잘 듣고 순종함으로 새해 복되게 살아가는 모두가 되시길 바랍니다.
아모스선지자에 대해서는 좀 생소하실 것입니다.
이사야나 예레미야 에스겔 같은 선지자들은 두꺼운 성경을 남겼기에 아무래도 자주 설교를 들을 수 있습니다.
아모스는 성경도 얇고 심판을 경고하고 죄를 책망하는 내용이 많아 유감스럽게도 교회에서 잘 선호하지 않겠죠?
그래서 평생을 교회에 다녀도 아모스서가 무슨 내용인지, 아모스선지자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책망과 회개가 없는 기독교는 우상종교, 기복종교로 전락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매일 말씀을 통해 내가 잘못하는 것들을 지적받고, 고쳐서 복된 성도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지난 한 해 제가 그런 말씀을 열심히 전하지 않았다면 저 역시 회개해야 할 목사입니다.
우리 모두는 그냥 내 생각대로 살아가면 어느새 하나님의 진노하신 옛습성에 사로잡히게 되어 있습니다.
제가 또 먼저 본문의 배경을 말씀드리는 것은 하나님이 왜, 어떤 상황에서 이 말씀을 하셨는지를 정확히 알기 위해서입니다.
그런 사실을 모르는 채로 성경을 해석해 버리면 하나님의 뜻이 드러나지 않고 오히려 내 생각이 성경을 빙자해서 드러나게 됩니다.
하나님의 의도하신 대로 전해지는 말씀만이 깊은 영혼에 닿도록 성령께서 역사하십니다.
그래서 간단하게나마 성경의 배경들을 들으시면 나중에 성경을 읽으실 때도 정확히 깨닫는 데 도움이 됩니다.
아모스선지자의 활동시대는 이스라엘이 남유다와 북이스라엘로 분단되었던 때이고 출신은 남쪽 유다 사람입니다.
당시 선지자들은 요즘 신학교처럼 일정한 교육을 받거나 이미 검증 된 선지자나 예언자들 밑에서 배워서 선지자로 활동했습니다.
그런데 아모스는 그런 정통한 방식으로 선지자가 되지 않았습니다.
아모스서3장을 보면 자신은 양떼를 치는 목자이고 뽕나무를 키우던 사람인데 하나님이 부르셔서 예언하라고 하셨다고 밝힙니다.
이것은 역으로 하면 그 많은 선지자, 예언자, 제사장들이 다 부패해서 하나님이 쓰실 일군이 없으셨다는 것입니다.
너희가 오죽했으면 하나님이 나 같은 뽕나무 키우던 사람, 양을 몰던 사람을 일군으로 쓰시겠냐는 것이죠.
신앙의 지도자들이 타락했다면 그 나라 사람들의 신앙은 불 보 듯 뻔합니다.
특이한 것은 이 아모스선지자는 남유다 사람이면서 북이스라엘에 가서 멸망을 경고했다는 것입니다.
북이스라엘 사람들이 보면 어이가 없는 일입니다.
남유다는 당시 유다지파의 작은 나라였지만 북이스라엘은 열지파가 모인 더 강력한 왕조였습니다.
우리나라 남북이 분열되었을 때, 대부분의 자원과 기반시설들이 북쪽에 더 많았던 것을 생각해보면 될 것입니다.
게다가 아모스선지자가 예언하던 시기는 여로보암2세 왕의 통치시기로 가장 넓은 영토를 회복하고 외세의 침략이 없던 평화의 시대였습니다.
성소의 제단마다 제물이 넘쳐났다고 합니다.
그런데 남쪽에서 근본도 없는 목자출신의 선지자가 올라와 하나님을 찾지 않으면 이 나라가 곧 멸망한다 하니 기가 막히는 것이죠.
그래서 이 말을 들은 북이스라엘의 예언자들이 아모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얼른 도망쳐 남유다에나 가서 예언하며 먹고 살아라’
잘못하면 우리에게 죽는 수가 있으니 남쪽에나 내려가서 예언하며 먹고살라는 것입니다.
아모스를 통한 하나님의 경고를 결국 듣지 않고 그로부터 사십년 쯤 뒤에 이스라엘은 앗수르에 의해 무참하게 패전하고 멸망합니다.
이런 상황을 알고 아모스선지자를 통해 하시는 말씀을 들어보면 되겠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경고는 너희는 나를 찾으라는 것입니다.
너희가 살고 싶으면 나 하나님을 찾으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시는 새해 메시지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살려면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그런데 아모스선지자가 북이스라엘에 가서 “너희가 살려면 여호와를 찾으라”라고 외쳤을 때 사람들의 반응이 어땠을까요?
이 말을 들은 북이스라엘 사람들은 다같이 코웃음을 쳤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찾으라고?, 우리가 얼마나 열성적으로 제물을 바치고 예배를 드리는지 모르는 모양이군’
왜냐하면 4장에 보면 이들이 아침마다 희생제물을 드리고, 삼일마다 십일조를 드리고, 벧엘에서 길갈로, 이 제단 저 제단을 찾아다니며 열성적으로 제물을 드렸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이 시대에 사람들이 교회를 멀리 한 게 아니라 교회에 왕성하게 사람들이 몰렸다는 것입니다.
새벽기도, 주일예배, 수요예배, 금요예배에 열심히 참석하고 각종 헌금을 드리고 정확하게 십일조를 드리기 위해 삼일 단위로 계산해서 드렸다는 것입니다.
‘나를 찾으라’는 말씀이 불신자들이 아니라 예배드리러 나온 신자들에게 하신 말씀인 것이죠.
우리는 이렇게 하는 게 하나님을 찾았다고 생각했는데, 하나님은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하십니다.
‘그것은 나를 찾은 게 아니다.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고 오히려 이렇게 말씀합니다.
벧엘을 찾지 말며 길갈로 들어가지 말며 브엘세바로도 나아가지 말라
그러니까 이 말씀은 너희가 나를 찾으려고 뻔질나게 드나들던 그 곳에 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심지어 너희가 내게 복을 빌기 위해 찾아가던 그 성소가 다 파멸되고 사로잡혀 갈 것이라고 합니다.
요즘 말로 말하면 교회 그만가라입니다.
교회가면 망한다는 말씀입니다.
왜 교회에서 이 설교를 잘 하지 않는지 아시겠죠?
그런데 사실인즉슨 교회 나가지 말라는 것은 아닙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이 예배드리던 성소가 있던 벧엘, 길갈, 브엘세바를 왜 하나님이 찾지 말라고 하셨는지는 금방 알 수 있습니다.
본래 이 세 장소 벧엘과 길갈과 브엘세바는 믿음의 선조의 예배와 관련 된 장소입니다.
벧엘은 야곱이 돌기둥을 세워 하나님을 예배했던 장소입니다.
길갈은 요단강을 가르고 건넌 뒤 기념비를 세우고 제단을 쌓았던 곳이고, 브엘세바는 아브라함과 이삭의 예배처였던 곳입니다.
예루살렘성전이 남유다에 속해 있었기에 북이스라엘 사람들이 절기 때가 되면 자꾸 예루살렘을 찾아갔겠죠.
북이스라엘을 세운 여로보암왕은 조상들의 예배장소였던 이 곳들에다 성소를 만들고 금송아지 우상을 세워 하나님신앙을 변질시켜 버린 것입니다.
인격체이신 하나님을 금송아지형상으로 만들어 거기에 예배를 드리고 제물을 바친 것입니다.
이게 하나님이 그렇게 금하셨던 가나안 땅의 우상종교, 애굽의 우상종교로 다 돌아가 버린 것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찾지 않은 것이 아니라 잘못 찾았기에 망했습니다.
올해 우리는 하나님을 찾되, 바르게 찾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사람들이 전능하신 인격자 하나님을 무능한 금송아지형상으로 만들고 제사 드린 신앙행위는 옛날 사람들이 무식해서 그렇다고 보면 안됩니다.
오늘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얼마든지 빠질 수 있는 무서운 오류를 눈에 보이는 번쩍이는 금송아지 우상숭배를 통해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앞에 금송아지 우상은 없지만 하나님께 예배하러 나오는 신자들이 하나님의 인격을 전혀 모르고 전혀 마음의 교감도 없이 목석 우상 앞에 제사드리고 돌아가는 것처럼 믿기가 아주 쉽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그렇게 하나님을 비인격적인 신으로 믿고 싶어하는지도 모릅니다.
절대자가 내 삶을 일일이 간섭하고 거기에 나를 복종하며 살지 않기 때문이죠.
이스라엘이 멸망한 것은 성소에서 제사 드리지 않아서가 아니라는 것이 우리와 한국교회가 두려워해야 할 일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하나님되게 찾지 않는 우상종교화 된 예배를 비참하게 만드실 거라고 하십니다.
길갈은 반드시 사로잡히겠고 벧엘은 비참하게 될 것임이라
그리고 6절에서 하나님은 다시 말씀합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길갈과 벧엘의 하나님이 아니라 진짜 하나님을 찾으라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신지 아모스선지자가 다시 깨우치는 것입니다.
우리가 찾아야 할 하나님은 악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가 불 같이 요셉의 집에 임하여 멸하시리니 벧엘에서 그 불들을 끌 자가 없으리라.
하나님은 예배와 봉사와 예물로 달래서 복을 받는 우상신이 아니십니다.
우리를 뚫어지게 보시고 감찰하시고 죄를 깨닫게 하시고 돌이키지 않을 때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은 하나님이 가까이 계시다는 것을 직관하게 됩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잘못하면 엄마 눈치를 보듯이 그래서 마음과 행동으로 죄를 지으면 하나님 눈치를 보고 자꾸 하나님을 의식하게 됩니다.
또 하나님이 모든 만물의 창조자이고 지금도 통치하고 계시다는 것이 저절로 알아집니다.
묘성과 삼성을 만드시며 사망의 그늘을 아침으로 바꾸시고 낮을 어두운 밤으로 바꾸시며 바닷물을 불러 지면에 쏟으시는 이를 찾으라.
광활한 우주에 셀 수 없는 별무리를 만드시고, 그 많은 별들의 개수도 우리는 모르지만 하나님은 그 별들의 이름을 일일이 아시고, 그 궤적을 정하셔서 운행하십니다.
사망과 생명을 주관하시고 역사의 밤과 낮을 바꾸시고, 자연을 불러와 악을 심판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강한 자에게 갑자기 패망이 이르게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최근 하늘 높은 줄 모르던 양반들이 죄수복을 입고 끌려 나오는 모습들을 보며 인간의 부귀영화가 한 순간에 저렇게 추락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뚫어지게 바라보시는 인격체이십니다.
그냥 멀리 계신 절대자, 우리와 교감되지 못하는 목석 우상 같은 소통이 안되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만일 이런 창조주 하나님, 심판의 하나님을 만났다면 우리의 양심은 말할 수 없는 두려움을 느끼게 됩니다.
이것을 알지 못하면 절대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예수님의 속죄를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에 대해 간절하지가 않는 것이죠.
하나님을 찾는 것은 이렇게 ‘창조’와 ‘심판’과 ‘구원’의 하나님을 찾아 만나는 것입니다.
올해 우리는 ‘내가 나의 하나님을 찾았다’ 할 때까지 부지런히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배우고 발견하길 원합니다.
성령께서 말씀 속의 하나님이 실제 우리 인격에 천둥 같이 부딪혀 ‘저 분이 하나님이시구나’ ‘충격적으로 경험될 때 까지 살아계신 창조주 하나님을 찾고 또 찾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 올해도 우선은 더 열심히 성경을 보고 연구해야 합니다.
눈이 가고 손이 닿는 곳에 늘 성경을 두고 시간이 날 때마다 우선적으로 성경을 펴셔야 합니다.
그리고 성경의 하나님이 내 하나님이 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찾으면 반드시 만날 수 있는 것은, 우리보다 하나님께서 더 우리에게 자신을 나타내시길 더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새해엔 모든 성도님들이 다 ‘내가 하나님을 만났다’는 기쁨으로 우리 교회가
떠들썩해지길 간절히 저는 기도하겠습니다.
성도님들도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만나고 더 깊이 만나도록 기도하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중요하게 살펴볼 것은 성문에서 하나님을 찾으라는 것입니다.
10절 이후를 보면 성문이라는 단어가 세 번 나옵니다.
성소가 하나님을 만나는 곳이라면 성문은 사람을 만나는 곳,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입니다.
고대엔 성문에서 재판이 열렸습니다.
예언자들은 성문에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계시를 소리 높여 가르쳤습니다.
성 안의 삶은 성문에서 다 드러나고 성문은 성 전체의 상태를 가리킵니다.
오늘 말씀은 성소에서 나를 찾지 말고 성문에서 나를 찾으라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만 하나님을 찾지 말고 세상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을 찾으라는 것입니다.
주일 한국교회엔 수많은 신자들이 모여 예배를 드리지만 교회를 나가면 하나님이 아닌 다른 무언가를 찾으며 불신자들처럼 똑같이 사는 신자들로 가득합니다.
이런 신앙이 바로 하나님이 가장 배격하고 미워했던 우상종교의 모습입니다.
요즘 알바생들에게 불리한 임금꺾기라는 계산방식으로 가난한 청년들의 돈 팔십삼억을 착취한 이랜드를 보십시오.
이랜드의 박성0 회장이 얼마나 많은 교회에서 이랜드가 하나님의 은혜로 금융위기를 넘겼는지 간증하고 다녔는지 모릅니다.
그 기업이 이익의 10%를 사회에 기부하고 있다는 기업입니다.
웹툰 송곳이나 영화 카트가 이랜드 문제를 다루었다니 참 부끄러운 일입니다.
성경에는 노조가 없다고 말했다가 노조원들이 성경에는 비정규직도 없다고 받아치며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었죠.
성소에서는 하나님을 찾았을지 모르지만 성문에서는 오늘 말씀대로 힘없는 자를 밟고 그에게서 밀의 부당한 세를 거뒀다는 것입니다.
가난한 자를 억울하게 했습니다.
아모스가 증거 한 공평과 정의의 하나님이 아니라 내 배를 불려주시는 신이라고 착각하게 만든 우리 한국교회의 치부입니다.
14절에서 아모스는 이렇게 다시 외칩니다.
너희는 살려면 선을 구하고 악을 구하지 말지어다.
처음에 하나님을 찾는 게 살 길이라고 했었죠?
여기서는 선을 구하고 악을 구하지 않는게 살 길이라고 합니다.
대입해 보면 하나님을 찾는 것과 선을 구하는 것이 같다는 것입니다.
악을 미워하고 선을 사랑하며 성문에서 정의를 세울지어다.
이것이 바로 세상 속에서 하나님을 찾는 것이고 이것이 우리가 살 길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다 불의합니다.
우리는 본성적으로 이기적인 존재이기에 만물을 심판하실 하나님을 인식하지 못하면 어느새 자기의 유익만 구하는 이기적인 모습으로 복귀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뿐 아니라 직장에서도 정의의 하나님을 떠올리며 정직하게 일하고 불의한 일을 버려야 합니다.
가정에서 가족 간에도 악을 버리고 선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대하면 천국이 다른 곳에 있겠습니까?
가족끼리도 막 악담하고 그러잖아요?
너희가 그렇게 입에서 거짓과 악을 제하고 성소가 아닌 성문에서 공의를 행 한다면 나도 너희가 원하는 대로 너희에게 복을 주고 영원히 너희와 함께 하시겠다고 14절에서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너희는 살려면 선을 구하고 악을 구하지 말지어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의 말과 같이 너희와 함께 하시리라.
그래서 올해 우리가 하나님을 찾고 이렇게 행함으로 기꺼이 살아남기 위해 표어를 이렇게 정했습니다.
너희는 하나님을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하나님 없이 어떻게 이 험난한 세대를 살아가겠습니까?
저는 그렇게 못합니다.
이것을 위해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알아가고 기도를 통해 하나님이 실제 내 삶을 주관하시도록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찾는 가장 근본적인 방법인 말씀과 기도생활을 부실하게 하면 하나님 앞에 떳떳하지 못하다는 것을 본인이 느낍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에서 악을 버리고 매사에 선을 구하며 성문에서, 삶의 현장에서 정의를 세우도록 함께 노력하길 원합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새해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이어령선생은 새해 기도문에서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벼랑 끝에서 새해를 맞습니다.’
‘덕담대신 날개를 주소서!’
벼랑 끝에선 사람에게 덕담이 뭐가 필요하겠습니까?
새해에 만사형통하게 하시고 소원성취하게 해주시길 빈다는 덕담에 잠시 기분은 좋을지 모르지만 우리는 벼랑 끝에서 날아오를 날개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하나님을 찾을 때 추락하지 않고 살 수 있는 날개를 얻을 것입니다.
오늘 아모스선지자를 보내신 곳 북이스라엘의 모습은 어쩜 이렇게 현재 우리나라의 모습과 같은지 모르겠습니다.
아모스가 앞에서 책망한 내용을 보면 이스라엘이 겉으로는 넓은 영토를 차지하고 황금기를 누리고 있었지만 하나님의 심판이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미 지진이 있었고, 석 달이나 비를 주지 않으셔서 소출이 없고, 전염병으로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결국 이스라엘은 창조주이고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찾지 않고 성문에서 정의를 세우지 않았기에 사십년 후 앗수르에 함락되어 멸망합니다.
겉으로 보기에 번쩍거리는 빌딩을 짓고 한없는 번영을 누릴 것 같던 우리 사회에 경고음이 울리고 있습니다.
공장은 문을 닫고, 사람들은 직장 없이 헤매고, 집집마다 쓸 돈이 없다고 합니다.
동물이나 사람이나 전염병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새해를 맞아 첫예배를 드리러 나온 우리 모두들 기뻐하시고 사랑하셔서 살 길을 가르쳐주신 줄 믿습니다.
늘어가는 채무에, 쇠퇴해 가는 경제여건에, 각종 악재들이 막 새해의 문을 연 우리를 두렵게 하고 머뭇거리게 합니다.
세상에 있는 자들보다, 어떤 문제보다 더 큰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내게 와서 나를 찾으면 어떤 상황 속에서도 살 수 있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아닌 다른 어떤 수단을 최우선으로 의지하지 말아야 겠습니다.
벧엘을 찾지 말며 길갈로 가지 말고 브엘세바로 나가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의지하고 기댔던 강한 것들조차 갑자기 패망하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 없이 낙관하던 모든 것은 다 흔들립니다.
우리의 모든 것을 감찰하시고 그를 의지하는 자에게 은혜와 긍휼을 무한히 베푸시는 하나님을 더욱 힘써 찾으며 선을 구하고 정의를 세우는 올 한해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017년1월1일 신년설교 남수연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