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시편8장1절-9절 (사람이 무엇이기에)

남수연 2026. 7. 8. 16:00

오늘 시편은 그냥 읽기만 해도 좋죠.

하나님의 영광이 점점 마음에 가득 차고 벅차오르는 것 같습니다.

시는 그렇게 즐기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시에도 해설이 있죠.

나태주시인이 이렇게 풀꽃이라는 시를 썼습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오늘 다윗의 시도 한번 읽어보고 좋다는 것으로 끝내기엔 아쉽습니다.

자세히 보면 더 큰 은혜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오늘 시편8편을 읽으니 떠오르는 성경이 있으실 것입니다.

바로 창세기1장의 천지창조 기사죠.

본 시편은 마치 창세기의 장엄한 창조 기사에 대한 메아리처럼 느껴집니다.

그래서 본 시편을 창조시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다윗이 언제 이 시편을 지었는지는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그러나 마치 다윗이 광활한 자연에 둘러싸여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처럼 느껴지죠.

다윗은 광야의 사람이라 해도 틀리지 않을 것입니다.

젊은 목동 시절엔 양떼를 이끌고 광야를 떠돌았습니다.

정치에 입문한 뒤에는 사울왕의 시기로 광야에서 도망 다닌 세월이 십 년입니다.

원치 않았지만 남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광야의 시간을 보낸 것이죠.

농사짓고, 물고기 잡고, 상업하는 사람들과 다른 삶으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광야의 시간을 길게 보내게 하셨다면 이유가 있습니다.

인생의 광야가 없는 사람들은 상처도 없고 모나지 않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더군요.

사람이 자기 수양으로 단련되지 않습니다.

인간의 죄성이 그렇게 신사적으로 다뤄지지 않습니다.

내 힘으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게 광야잖아요?

광야에서 손과 발이 묶였을 때, 그때가 진정한 인간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의존해서 살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처럼 자존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피조물이거든요.

다윗은 이 광야를 통해 창조주 하나님을 깊이 만난 것이죠.

예수님은 광야에서 만나는 유일한 생수이십니다.

아주 힘든 광야의 삶을 보내고 있을 때 주님을 의지하십시오.

광야에 길을 내고 사막에 강을 내시는 예수님을 만나게 되실 것입니다.

 

오늘 시편에서 시인의 신앙을 좀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1. 모든 세상을 하나님이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1,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이 하늘을 덮었나이다

창조론이죠.

우리는 창조론을 믿습니다.

이번 주, 일과 세상 관심사에 밀려서 땅만 보고 사셨을지 모르겠습니다.

눈으로 보는 하늘이 아니라 해도 하늘의 하나님을 자주 바라보십시오.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땅을 보면 험악한 산맥과 같던 문제들도 달라보일 것입니다.

내 문제 역시 창조주 아래 내려 놓게 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는 믿음의 성도들만 알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바울사도는 창조주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세상에 자신의 이름을 적어 놓으셨다고 합니다.

사인을 하신 것이죠.

또 사람의 마음에도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그래서 누구나 이 자연세계를 통해 하나님의 존재를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장엄한 자연 앞에 서면 누구든 조물주의 위대함과 인간의 미미함을 느끼게 됩니다.

로마서8장에서 이렇게 말씀하죠.

19,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양심으로 세상을 보면 창조주가 계심을 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세상이 진화의 산물이라 우겨도 양심은 하나님을 부인하지 못합니다.

불신자들 속에도 혹시 하나님이 있으면 어떡하지?

그런 마음을 완전히 지우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믿지도 않으면서 하나님을 트집잡는 것입니다.

저는 과학자들이 다양한 주제로 토론하는 영상을 종종 시청합니다.

과학자이기에 우리 신앙하고 출발점은 다릅니다.

과학자들은 일단 진화론을 전제로 대화를 풀어갑니다.

출발이 어쨌든 과학자와 의학자들이 인체와 지구환경을 연구하는 것은 훌륭한 공로입니다.

인간은 그 혜택을 여러 분야에서 누리고 있죠.

그런데 과학과 의학이 발달할수록 인체가 작동하는 시스템이 너무 정밀하고 복잡하다는 게 밝혀지고 있잖아요?

한번은 과학자들이 이런 주제를 이야기 하더군요.

아침형 인간과 저녁형 인간이 있잖아요?

유전자에서 이미 그렇게 갈라진다고 합니다.

저녁형 인간들 너무 게으르다는 죄책감을 갖지 마시기 바랍니다.

실험 결과로는 저녁형 인간의 인지력이 더 높게 나온다고 합니다.

인체는 해가 뜨고 지는 걸 기준으로 24시간의 주기로 작동합니다.

그렇다면 저녁형 인간은 무얼 기준으로 신체 주기가 작동이 되냐는 거예요.

인체가 해 시계에 의해서만 작동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죠.

의학자들이 발견한 것은 사람들에겐 생체시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어느 시간에 일어나겠다 정하고 자면 그 시간에 정확히 눈이 떠지는 경우가 있잖아요?

그 실험을 위해 해가 들지 않는 동굴에서 피실험자들을 몇 주 지내게 했습니다.

그런데 해가 없는 곳에서도 인체가 밖의 24시간 주기와 똑같이 돌아간다는 게 입증되었습니다.

인체가 어떻게 시간을 알았을까요?

전문적이라서 설명을 드리기는 좀 어렵지만 간단히 이런 것입니다.

뇌의 어떤 부위에 정확한 시간 간격으로 단백질을 내보내는 기능이 있습니다.

몇 개가 나왔는지 그 개수를 근거로 뇌가 시간을 계산해 낸다는 것입니다.

정말 말문이 막히지 않습니까?

물론 이것보다 생체시계는 훨씬 더 복잡하게 작동합니다.

인체를 알면 알수록 상상을 초월하게 정밀한 메카니즘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과학자들이 대화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이렇게 말하더군요.

그 원리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설계되어 있다는 거예요.

그렇게 진화된 게 아니라 뭔가에 의해서 설계되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죠.

과학이 덜 발달했을 때는 단순히 진화론을 가정할 수가 있었습니다.

생물들이 더 생존에 유리한 쪽으로 진화를 선택했다

지금은 과학자라면 그렇게 말하지 못할 것입니다.

개체 스스로가 그런 정밀한 시스템을 장착한다는 건 과학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이 광대하신 하나님의 창조 세계임을 알죠.

여기서 출발하지 않으면 우리 신앙은 거짓 위에 세워진 무가치한 신념일 뿐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도 같은 데 진화론도 맞지 않을까?

더 이상 그런 생각하지 마시길 축복드립니다.

 

2. 다윗은 이렇게 명백한 창조 세계를 보고도 하나님을 부정하는 사람들을 하나님의 대적이라고 합니다.

2, 주의 대적으로 말미암아 어린 아이들과 젖먹이들의 입으로 권능을 세우심이여 이는 원수들과 보복자들을 잠잠하게 하려 하심이니이다

하나님의 창조를 믿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특히 세상에서 권력과 지혜를 가진 사람들이 창조를 믿지 않고 하나님의 대적이 되기가 쉽습니다.

예수님도 이 구절을 그대로 인용하셔서 바리새인들과 제사장들을 책망하셨습니다.

그들은 종교적으로 만족해서 더 이상 하나님의 지도 따위는 필요치 않았잖아요?

스스로 너무 자만하고 자족했죠.

자기들의 지위를 이용해 이득을 취하면서 백성들은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이런 사람들을 통해 하나님나라를 세우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어린이와 젖먹이처럼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들을 통해 주님의 권능을 세우신다는 것입니다.

이 구절은 도망자 시절 다윗의 형편을 회상했을 것입니다.

권력자인 사울왕과 그의 추종자들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원수들입니다.

하나님이 다윗을 왕으로 기름 부으신 줄 알면서도 다윗을 죽이려 하잖아요?

하나님의 뜻을 꺾어버리겠다는 오만한 악입니다.

그렇기에 그들을 통해서는 하나님 나라를 세우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지금 다윗에게 몰려온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사무엘상 222절은 이렇게 증언합니다.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 장관이 되었는데 그와 함께한 자가 사백 명 가량이었더라

이들은 사회에서 소외되고 실패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다윗왕국을 세우실 것을 알고 따랐던 것입니다.

그 믿음이 없었다면 왜 사울왕의 군대에 섬멸당할게 뻔한 다윗을 쫒았겠습니까?

차라리 세상에서 날품팔이라도 하며 살았을 것입니다.

다윗도, 다윗의 사람들도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믿음대로 그들과 함께 다윗 왕조를 세워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자신의 강점만 아는 사람들과 함께 하지 않으십니다.

누구에게나 강점이 있지만, 그보다 더 많은 약점과 단점이 있잖아요?

그것을 알고 예수님의 대속을 의지하는 자들과 함께 하십니다.

교회는 여러 가지 괴로움과 원통함과 약함과 죄를 탄식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가운데서 예수님을 의지하기에 주님의 교회가 세워지는 것입니다.

자기 힘으로 인생을 꾸려왔다는 사람들에게선 4절과 같은 고백이 나올 수가 없습니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나 같은 게 무엇이기에 하나님이 이렇게 돌보실까.

광야의 삶에서만 체득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다윗이 사백 명, 육백 명 공동체를 광야에서 어떻게 먹여 살렸겠습니까?

사울왕의 군사들을 어떻게 따돌리며 십 년을 버텼겠습니까?

우리는 모두 그렇게 하나님이 먹이시고 위기에서 건져 살려주신 것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3. 다윗은 그렇게 보잘것없던 자신을 높여 주신 하나님을 이렇게 찬양합니다.

5,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우리 모두에게 주님은 영화와 존귀의 관을 씌워주신 것입니다.

그 관은 내게 주어진 삶을 다스리고 주도할 수 있는 권한이기도 합니다.

다윗의 입장에서는 백성들을 다스리는 왕의 권한이죠.

우리 모두에게 내 삶을 남에게 지배당하지 않는 권한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지지할 테니 네가 한번 해 봐라’, 그러시는 것이죠.

6,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의 발 아래 두셨으니

7, 곧 모든 소와 양과 들짐승이며

8, 공중의 새와 바다의 물고기와 바닷길에 다니는 것이니이다

하나님은 내 인생만이 아니라 세상도 우리에게 맡기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이 빨리 망하길 바라신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베드로후서에서 하나님은 죄인들이 회개하고 돌아오길 천년이 하루 같이 하루를 천년 같이 기다리신다고 하셨습니다.

전쟁과 기아, 폭력과 가난으로 사람들이 고통의 눈물을 흘릴 때 우리는 잠깐 동정하고 안타까워 합니다.

그리고 잊어버리죠.

하나님은 그들의 고통을 계속 아픈 마음으로 지켜보고 계십니다.

많은 선교사들이 숨이 막히는 힘든 환경 속에서도 왜 선교지를 지킵니까?

그땅의 고난 당하는 사람들에 대한 예수님의 그 긍휼의 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겨우 내 앞가림만 하며 살 정도의 권한만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작은 능력과 소유를 받았어도 한 달란트입니다.

한 달란트가 아파트 한 채 값이라고 했죠.

아파트 한 채 값의 자본금을 받았다면 무슨 일이라도 해 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실패해서 다 날렸다 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책망하실 리가 없잖아요?

우리 모두가 그렇게 내 발 아래 두신 모든 것들을 잘 다스리고 관리하며 살게 되시길 축복합니다.

다윗은 자기의 일대기를 회상한 뒤 지금도 똑같이 자기를 보시는 하나님을 이렇게 높여 드립니다.

9,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매일 우리 입에서도 이같은 찬양과 믿음의 고백이 나오길 축복드립니다.

2026년7월8일 주는나의산성교회 수요기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