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시편119편89절-96절 (주의 법은 나의 즐거움)

남수연 2025. 5. 10. 21:41

시편119편은 시편 중에서 가장 긴 시입니다.

전체가 176절이나 됩니다.

너무 길어서 읽기도 전에 압도감을 느끼고 포기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읽다 보면 한 절 한 절에 나도 모르게 고개가 끄덕여지고 눈과 마음이 점점 밝아지는 신기한 시편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성경 구절들도 이 시편에 많이 들어 있습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의 빛이니이다

105절 말씀입니다.

119편에는 하나님의 말씀, 율법, 계명, 약속 같은 단어들이 반복해서 나옵니다.

하나님은 신명기6장에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에게 말씀을 배우고 순종할 것을 명령하십니다.

6,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7,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무지했던 옛날 사람들에게 신비한 신앙의 방법이 아니라 말씀만을 배우고 행하라고 하신 것이 우리가 유의할 점인 것이죠.

 

이 긴 시편은 시상이 떠오르는 대로 두서없이 쓴 시가 아닙니다.

전에 답관체, 알파벳시에 대해서 들은 적이 있습니다.

도레미송처럼 알파벳 순서대로 각 절의 첫 글자를 맞추어서 쓴 시를 답관체라고 하죠.

시편 전체에 답관체 형식의 시가 총 9편입니다.

119편도 답관체 형식으로 지은 시입니다.

히브리어 알파벳이 22자입니다.

알파벳 1개당 8절씩 배정해서 176절이 된 것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은 12번째 알파벳인 라멧으로 시작된 단어로 작성된 여덟 개의 절입니다.

 

본 단락이 어떤 내용을 품고 있는지를 보겠습니다.

1. 우리가 왜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따라야 하냐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창조주시이기 때문입니다.

89, 여호와여 주의 말씀은 영원히 하늘에 굳게 섰사오며

90, 주의 성실하심은 대대에 이르나이다 주께서 땅을 세우셨으므로 땅이 항상 있사오니

91, 천지가 주의 규례들대로 오늘까지 있음은 만물이 주의 종이 된 까닭이니이다

이 세상은 하나님이 말씀으로 창조하셨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말씀이라 함은 언어만 의미하는 게 아닙니다.

그 안에는 하나님의 인격, 전능하심, 성품, 생각과 뜻이 다 포함된 것이죠.

우리의 말 속에도 그런 것들이 다 포함되잖아요?

하나님은 그렇게 말씀으로 모든 만물과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창조 세계는 이 세상이 존재하는 한 바뀔 수 없습니다.

하늘과 땅, 바다의 경계가 하나님이 정하신 그대로 존재하죠.

수목과 동물들이 하나님이 만드신 이후로 새로운 종이 늘어나지 않습니다.

나라들과 민족들도 하나님이 나누신 그대로 보존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모든 만물이 하나님의 피조물이라는 증거라는 것이죠.

그렇다면 피조물인 우리 인간도 마땅히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94, 나는 주의 것이오니 나를 구원하소서 내가 주의 법도들만을 찾았나이다

시인은 자신이 하나님의 피조물인 것을 알았기에, 주의 법도들만을 찾았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창조주시고 자신은 피조물이라는 걸 인정하지 않는다면 말씀을 지킬 이유가 없는 것이죠.

하나님의 말씀을 귀하고 엄중히 여긴다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증거인 것입니다.

또 우리에게 명령하신 말씀들은 만물을 창조하셨던 그 말씀과 똑같은 말씀입니다.

그 말씀 속에 얼마나 큰 위력이 있겠습니까?

당연히 피조물인 우리를 위해 가장 완전하고 선한 삶의 지침인 것이죠.

이것을 깨달은 성도들은 시인처럼 말씀을 소중히 여기고 사모하며 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94절에서 나를 구원하소서라는 말 속에는 시련이 암시되어 있죠.

 

2. 하나님의 말씀을 존중하고 가까이 하며 지켜야 할 이유가 바로 우리 인생에 고난과 시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92, 주의 법이 나의 즐거움이 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내 고난 중에 멸망하였으리이다

모든 걸 잃을 것 같은 큰 고난을 인생 중에서 만날 때가 있습니다.

그때 어떻게 죽지 않고 살았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죽을 것 같았던 내게 즐거움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저도 가장 힘든 때 정말 말씀을 많이 읽었습니다.

말씀이 막 깨달아지는 데, 정말 근심도 시름도 다 잊혀질 만큼 말씀이 저를 즐겁게 했습니다.

그때 말씀이 없었다면 내가 어떻게 되었을까 아찔합니다.

그러나 반대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내게 고난이 없었다면 과연 하나님의 법을 그만큼 간절히 찾았겠냐는 것이죠.

힘든 일이 생기면 성도들 설교 듣는 태도가 달라집니다.

혹시라도 하나님이 내 문제에 대한 답을 오늘 주시지 않을까, 말씀을 한마디도 놓치지 않을 태세입니다.

문제가 해결되고 잠시 편안한 시기가 오면, 당장 말씀을 듣는 태도가 달라집니다.

그러면 속으로 , 급한 불은 끄셨구나생각합니다.

그렇기에 71절에서 이렇게 노래한 것입니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고난을 통해서 말씀을 배우게 되었고, 그 말씀을 통해서 또 고난을 이겨내게 되는 것이죠.

어떤 목사님이 군대 갔을 때 선임을 잘못 만나 정말 괴로운 생활을 했다고 하더군요.

선임이 교회를 못 가게 하는 건 말할 것도 없거니와, 기독신자란 이유만으로매일 구타하고 괴롭혔다고 합니다.

매 맞는 것보다 교회에서 예배 못 드리고 말씀도 듣지 못하니 얼마 안 가 우울증에 걸릴 것 같았습니다.

어느날 군종병을 찾아가서 아주 작은 성경책을 좀 구해 달라고 사정했습니다.

그렇게 성경책을 구했지만 선임 때문에 맘 편히 읽을 수가 없었죠.

그래서 화장실에 가서 성경을 읽기로 합니다.

옛날 군부대가 재래식 화장실이잖아요?

암모니아 가스가 올라오는 데도 삼사십 분씩 쪼그리고 앉아서 성경을 읽은 것입니다.

그런데 숨이 막히는 게 아니라 오히려 숨이 쉬어지고 살 것 같더랍니다.

작은 글씨들이 살아서 움직이며 큰 글씨로 튀어 올라오는 것 같고, 말씀이 너무 즐거웠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날 냄새를 기가 막히게 잘 맞는 선임이 눈치를 챈 것입니다.

어디서 퀴퀴한 냄새가 난다며 탐색을 하더니 바지 옆 건빵 주머니에 있는 성경책을 찾아낸 것이죠.

그날 엄청 두드려 맞는데 마음이 전혀 억울하지도 분하지도 무섭지도 않고 그냥 즐거움이 가득했었다고 합니다.

이미 고난을 이겨낼 만큼 영혼이 말씀으로 강하게 된 것이죠.

삼십 년 전 일인데 아직도 그 작은 성경책을 갖고 있다고 하더군요.

주의 법이 그 분의 즐거움이 되지 아니하였더라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그 고난 중에 우울증, 공황장애에 걸려 더 큰 타격까지 받았을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말씀이 나를 일으켜 세운 간증들이 넘쳐나길 축복드립니다.

 

95절에서도 이렇게 말합니다.

악인들이 나를 멸하려고 엿보오나 나는 주의 증거들만을 생각하겠나이다

우리가 주일 설교에서도 나누었듯이, 삶은 전쟁터입니다.

인생이 즐거운 소풍이 아니라는 것이죠.

소풍은 천국에서 영원히 즐기면 됩니다.

전쟁터엔 원수가 있는 것입니다.

망가진 세상에서 인간들이 서로의 원수가 됩니다.

원수 같은 사람을 만나면 큰 고통과 상처를 당하죠.

그러나 진짜 우리의 원수인 마귀도 죽기살기로 우리에게 싸움을 걸어옵니다.

우리가 다 이런 원수 같은 환경과 사람과 악에게 시달리며 살고 있죠.

그럴 때 시인은 어떻게 했다고 합니까?

나는 주의 증거들만을 생각하겠나이다

왜 그랬는지는 98절에서 고백합니다.

주의 계명이 항상 나와 함께 하므로 그것이 나로 원수보다 지혜롭게 하나이다

나를 두려워하는 환경이나 사람을 계속 생각하는 것은 손해입니다.

생각하고 해결될 수 있다면 생각하고 해결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안 될 일이라면 성경을 펼치고 읽는 게 훨씬 낫습니다.

전쟁은 육탄전이 아니라 지략으로 해야 승산이 크잖아요?

 

3. 악이 창궐하고, 큰 권세를 부리는 것 같지만 끝이 있습니다.

96, 내가 보니 모든 완전한 것이 다 끝이 있어도 주의 계명들은 심히 넓으니이다

우리 인생을 뒤집어 놓을 듯한 사건도 사람도 끝이 있습니다.

가장 멋있고 완전해 보이는 것도 더 새로운 것에 밀려 끝이 있습니다.

정말 오묘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은 고색창연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최첨단의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최고의 지혜를, 삼천 년도 더 된 성경 말씀이 현실에 딱 맞게 우리를 가르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은 항상 가장 최신입니다.

성경은 오래된 책이지만, 인간 역시 창조 이래로 바뀐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제가 설교 본문을 정하면서 항상 드는 걱정이 있습니다.

더 이상 새로운 깨달음이 있을까

그런데 그런 걱정은 기우라는 것을 늘 경험합니다.

많은 성도들이 성경에서 스스로 은혜를 발견하고 깨닫는 것을 어렵게 생각합니다.

우선 그 이유는 마음이 예수님을 떠나 있는 시간이 더 많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이 거의 하루 종일 육신을 따라서 살죠.

그렇게 일터에서 돌아오면 육신의 필요를 채우는 데 남은 시간과 마음을 다 씁니다.

성경을 읽으려고 펼쳐도 육신의 생각에서 영의 생각으로 빨리 전환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이 내게 유익이라면 좋아서 순순히 움직인다고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그렇기에 믿음을 실현하기 위한 의지가 필요합니다.

우리 믿음이 구원을 받고, 유익하게 성장하길 원하다면 습관이 제일 중요합니다.

본 시편에서도 시인은 자기가 반복적으로 하나님 말씀을 배우고 묵상했다고 합니다.

성경도 시간을 충분히 갖고 읽어가다 보면 마음이 하나님을 향해 천천히 돌아옵니다.

그냥 두서없이 띄엄띄엄 성경을 들여다보면 오히려 말씀들이 마치 장벽을 치고 있는 것 같이 느껴집니다.

아무 감동도 느낌도 못 받는 것이죠.

꾸준히 성령께서 말씀을 열어주시길 원하며 성경을 읽으면 한 단어, 한 구절이 눈에 들어옵니다.

그게 성경을 여는 키워드가 되는 것이죠.

그렇게 조금씩 마음에 와 닿은 말씀들을 발견하면서 넓고 오묘한 성경의 세계 속으로 깊이 들어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이십니다.

말씀을 가까이 하는 것이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입니다.

바쁜 하루 중에도 말씀을 붙들고 산다면 예수님께 붙어 있게 됩니다.

많은 말씀이 아니어도 됩니다.

항상 기뻐하라 이 말씀 하나만 종일 머리 속에 떠올려도 하나님을 벗어나지 않고 정말 기쁘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잘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2025년5월7일 수요기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