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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우리에게 풍성한 복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시편에서도 하나님이 주신 큰 은혜를 감사하고 있죠.
이 시편은 이천 년보다 더 오래전, 성도님들은 가 본 적도 없는 이스라엘 땅에 살던 성도가 지은 노래입니다.
그런데 지금의 성도들이 서로 축복하며 은혜를 나누는 것과 전혀 동떨어진 느낌이 들지 않죠.
이 시인이 섬기는 하나님이나 지금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나 같은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또 이스라엘을 위해 일하신 하나님만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서도 큰 일을 행하셨기에 이 시편에 공감할 수 있고 아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시편 111편을 통해 시인이 받은 은혜와 우리에게 주신 은혜를 하나씩 되새기며 더 풍성하게 하나님께 감사드리고자 합니다.
우리의 풍성한 감사에 하나님은 풍성한 복으로 응답하실 것입니다.
1. 이 시편은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하기 위해서 지은 시입니다.
1절, 할렐루야, 내가 정직한 자들의 모임과 회중 가운데에서 전심으로 여호와께 감사하리로다
1) 하나님께 감사하기 위해서, 특히 성도들의 모임 중에서 이 노래로 감사하겠다는 것입니다.
본문 시편은 오늘 우리가 추수감사절을 지키듯이 유대인들이 지키던 절기에 낭송되던 시편입니다.
이스라엘의 절기인 유월절, 칠칠절, 초막절 같은 때 예루살렘 성전 예배 중에 불려 졌던 찬양입니다.
오늘 추수감사절, 우리가 이 시편을 통해 감사하는 것이 잘 맞는 것이죠.
이 시편은 저자의 믿음의 고백이자, 함께 하나님을 섬기는 공동체의 고백이기도 합니다.
개인의 경험만을 이야기했다면 예배자들이 공감하기 어렵죠.
오늘 우리가 한 해를 지나오며 주님께 받은 은혜를 감사하는 마음도 우리 성도들 간에 서로 공감이 된다고 믿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올해 서로의 아픔과 문제들을 알았고 함께 기도했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나를 인도하신 하나님께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있는 것이죠.
우리가 마음으로 서로를 다독이는 이 감사 예배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입니다.
2) 우리말 성경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이 시편의 특징도 있습니다.
이 시편이 히브리어로 기록되었는데, 각 절의 첫 단어들을 히브리어 알파벳22자의 순서대로 정확히 맞췄다는 것입니다.
마치 삼행시 짓기처럼 알파벳 22자로 22행시를 지은 것이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우리 성경에는 10절도 되어 있지만 히브리어 원문은 22절의 소절로 되어 있는 아주 정교하게 지은 시입니다.
왜 그렇게 했을까요?
외우기 쉽게 한 것이죠.
지금처럼 문만 나서면 교회가 있던 때가 아니었잖아요?
성전 예배에서 배우고 돌아가 이 시편을 떠올려 찬양하고 감사할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2. 하나님께 감사할 이유는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들이 크시기 때문입니다.
2절,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일들이 크시오니 이를 즐거워하는 자들이 다 기리는도다
1) 하나님은 성경의 민족인 이스라엘을 위해서 큰 일을 행하셨습니다.
출애굽 사건, 광야 40년, 가나안땅 정복,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 된 일.
이런 민족의 큰 역사들이 일반 국가들처럼 사람에게 달렸거나 자연적으로 일어난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왕과 보호자가 되셔서 약속하고, 예언하고, 이뤄주신 일들이라는 게 특별한 것이죠.
그 역사를 후대의 자손들이 모일 때마다 되새기며 즐거워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기리다’는 단어는 ‘연구하다’라는 뜻입니다.
그 사실을 구약성경에서 깊이 연구할 때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더욱 감사하게 되는 것이죠.
하나님은 성경 속에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섬겨야 할 것들을 충분히 계시하셨습니다.
그 하나님을 알수록 더 주님에 대해 확신하고 신뢰하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 시편 저자는 감사의 예배를 드리는 성도들에게 더욱 하나님에 대해서 연구할 것을 격려하는 것입니다.
받은 은혜와 복에 대한 근거가 없으면 감사가 겉돌게 되죠.
우리도 오늘 받은 복을 정확히 기억하고 감사하는 예배가 되어야겠습니다.
2) 우리가 가장 감사할 것은 무엇보다 하나님 자신에 대한 감사입니다.
서로가 신뢰하고 사랑하는 사이에는 무엇을 해 줘서가 아니라 그냥 존재 자체가 감사한 것이잖아요?
우리 성도님들 가족 간에 그런 감사가 있길 축복드립니다.
오늘 시편 저자도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감사하고 있습니다.
본문의 구절마다 하나님을 설명하는 표현들이 많이 나옵니다.
이 단어들은 하나님만이 가지신 탁월하신 성품과 능력들입니다.
존귀, 엄위, 은혜, 자비, 영원, 능력, 진실, 정의, 거룩, 지존.
사람에게서는 발견할 수 없는 것들이죠?
시편 저자는 어떻게 이런 하나님을 알게 되고 감사하는 것일까요?
성경을 통해서, 조상들에게 나타나시고 인도하신 이런 하나님을 알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생애에서 보여주신 모습을 통해서 하나님을 더 잘 알게 되었죠.
예수님께서 무례한 사람들에게, 심지어 폭행을 당하시면서도 분노나 적개심이 없으셨던 것은 하나님의 선하신 성품 속에 그런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오히려 그런 자들에 대한 연민으로 가득하셨잖아요?
성경에서 간혹 하나님이 노하셨다, 미워하신다는 표현을 우리의 감정처럼 생각하시면 안됩니다.
우리가 화내는 것은 이기심에서 나오지만 하나님의 경우는 악에 대한 공의입니다.
인간은 공의가 없죠.
하나님은 우리에게 짜증 내지 않으시고, 혼내주겠다고 벼르지도 않으십니다.
그렇기에 매일 죄를 지으면서도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와 회개하고 또 하나님을 가까이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생이 아니시고, 조작된 신이 아니시고 좋으신 하나님이신게 너무 감사합니다.
이 하나님의 성품을 하나씩만 묵상해도 우리에게는 그 자체가 너무 안심이 되고, 힘이 되고, 위로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러하심을 성경을 통해서 먼저 알아야 합니다.
그 다음엔 우리 삶에서 그 하나님을 경험해 가는 것이 올바른 신앙의 여정인 것입니다.
한 가지 더 생각할 것은 우리를 이런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본래 우리 성품은 그런 하나님을 닮게 지으셨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다 어디 갔습니까?
아담의 범죄 이후로 사라진 이 복된 성품을 예수님 안에서 우리에게 다시 주셨다는 놀라운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베드로후서 1장4절은 이 사실을 증언합니다.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올해 우리가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과 선하신 성품을 조금씩 더 알게 된 것을 감사해야겠습니다.
그리고 부족하지만 예수님의 말씀대로 조금씩 닮아가려 노력했던 것도 감사드립니다.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지만 이런 착한 성품의 열매, 인격의 열매, 곧 성령의 열매를 맺어가도록 계속 노력하는 모두가 되길 축원드립니다.
3.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구체적인 은혜를 세 가지로 감사드립니다.
1) 첫 번째 은혜는 기적을 행하셨다는 것입니다.
4절, 그의 기적을 사람이 기억하게 하셨으니 여호와는 은혜로우시고 자비로우시도다
이 구절은 이스라엘을 애굽의 노예에서 구원하신 큰 기적을 감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적을 베풀어 주신 것은 한번의 과거로 끝나는 게 아니라, 그런 은혜와 자비의 하나님을 계속 기억하고 믿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에게도 기적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아무런 기적과 은혜를 베풀지 않으셨다면 이렇게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하나님을 섬길 수는 없을 것입니다.
아직 하나님께 대한 확신이 부족한 성도들도 뭔가 하나님의 은혜를 느끼고 인정하기 때문에 이렇게 주님을 떠나지 않고 믿는 것입니다.
제가 새롭게 하소서에서 조혜0 씨의 간증을 들었는데, 한번 나누고 싶었습니다.
조혜0 씨 집안은 아주 오래 창가학회라는 불교 신흥종파를 믿고 있었습니다.
보통 남묘호렌게쿄로 알고 있죠.
창가학회 신봉자였던 조혜0 씨가 이 집안에서 제일 먼저 예수님을 믿게 됩니다.
재혼 상대였던 남편이 크리스천이었는데, 한번만 교회에 가자는 부탁에 예배에 갔다가 그날 출애굽기 설교가 심령을 강타한 것입니다.
그날 본문이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간 동안 산 밑에서 사람들이 금송아지를 만든 내용이었습니다.
별로 은혜받을 내용은 아니죠?
그걸 듣는 데, ‘어떻게 하나님을 따라 나왔다가 저렇게 쉽게 배신을 하지?’
그게 너무 궁금하고 이해가 안되서 그날부터 성경을 읽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한 번만 가 주려고 했던 교회를 지금까지 다니게 된 것이죠.
그런데 조혜0 씨보다 더 열렬히 창가학회를 신봉하던 어머니를 전도하기가 너무 힘들었다고 합니다.
예수님 말도 못 꺼내게 했던 어머니가 다쳐서 휠체어 생활을 하던 중, 조혜0 씨가 미국교회에 가서 간증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머니 혼자 지내기 힘든 상황이라 결국 미국에 같이 가게 됩니다.
단 교회는 가지 않겠다, 미국 구경만 하겠다는 조건이었습니다.
그런데 한 권사님 댁에서 머물게 되었는데, 너무 극진히 대접을 하는 거예요.
그 권사님 청을 거절하기가 미안해서 교회에 따라가게 되고 처음으로 딸의 간증을 듣게 됩니다.
또 며칠 동안 교회 분들과 교제를 하며 어머니 마음에 변화가 생깁니다.
그동안 예수 믿는 사람들이 다 지질하게 사는 줄 알았는데, 미국 가서 보니 한결같이 수준이 높고 어마어마한 저택에서 사는 걸 보고 놀란 것이죠.
한국에 돌아오던 날 아침에 혜0 씨에게 이렇게 말하셨습니다.
‘이제부터 나도 네가 믿는 하나님을 한번 믿어 보련다’
이런 일이 어떻게 사람에게서 일어날 수가 있습니까?
이게 인생에 행하시는 기적이 아니겠습니까?
이 어머니가 당시 77세였는데 한글만 겨우 아시던 분이 성경을 읽기 시작합니다.
하루 열 시간 씩 성경을 읽는데 2년 만에 4번을 읽으셨다고 합니다.
조혜0 씨가 하도 신기해서 ‘엄마, 왜 그렇게 성경을 읽으셔?’ 그랬더니 어머니 하는 말이 ‘내가 하나님을 믿는데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알아야 잘 믿을 게 아니냐?‘
자식을 여덟 명을 낳고 산후조리를 제대로 하지 못했던 어머니는 신장이 다 망가져 소변줄을 삽입해 주머니에 소변을 받아 내며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4번째 읽으실 즈음에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놀라고 흥분한 어머니가 하는 말이 ‘혜0 아, 나 오늘 소변줄 없이 소변 봤다’
그 후 오 년이 지났는데 지금까지 한번도 소변줄을 사용한 적이 없다고 합니다.
이런 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행하신 기적 아닙니까?
이런 기적들이 우리에게도 있잖아요?
내가 예수님을 믿게 된 기적, 병원에서 퇴원한 기적, 직장을 얻게 된 기적, 가정이 살아난 기적, 이런 기적들을 기억하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그러나 인생의 큰 기적들은 자주 일어나진 않습니다.
큰 기적이 필요한 인생이 좋은 것도 아닙니다.
큰 기적을 보려면 먼저 내가 막다른 골목까지 가야 하는 것이잖아요?
우리는 내 인생에 주신 큰 기적들은 잊지 말고, 하루하루 숨쉬고 살아가는 일상의 기적에 감사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2) 두 번째로 감사하는 것은 매일의 삶에 필요한 것들도 주셨다는 것입니다.
5절,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양식을 주시며 그의 언약을 영원히 기억하시리로다
이 양식은 광야 40년 동안에 하루도 빠짐없이 내려주신 만나 얘기입니다.
홍해를 가르신 것은 한 번이셨지만 만나의 기적은 매일이었죠.
만나의 양식을 주신 하나님의 언약은 영원하다고 합니다.
지금도 우리에게 만나를 내려주신다는 것이죠.
광야에서 이스라엘이 먹었던 만나는 아니지만 만나가 상징하는 것을 영원히 주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만나가 무엇인지 요한복음에서 가르쳐 주셨잖아요?
요한복음 6장51절,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 하시니라
우리는 예수님의 살을 받아먹고 영생을 얻은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사실 우리가 구원받은 엄청난 사실을 생각하면 지금의 어떤 상황도 감사 못할 것은 없습니다.
그래서 하박국선지자가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고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고 밭에 먹을 것이 없고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하나님의 구원을 기뻐한다고 고백한 것이죠.
그리고 광야 40년동안 매일 만나를 몸의 양식으로 주신 것처럼 매일 그 양식을 우리에게 내려주고 계십니다.
5절을 다시 한번 보면 ‘여호와께서 양식을 주시고 언약을 영원히 기억하시리라’라고 하죠.
4절에서 우리에게 베푸신 기적은 우리가 기억해야 하지만 양식에 대한 언약은 하나님이 기억하신다는 것입니다.
기억하시겠다고 했기에, 혹시라도 하나님이 우리 삶에 필요한 것들을 잊으실까, 놓치실까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을 예수님께서 주기도문에서 가르쳐 주셨잖아요?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약속하신 우리의 분량을 달라고 믿음으로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매일의 필요를 하나님께 간구함으로 그 약속에 대한 믿음만 보여드리면 되는 것입니다.
올해도 경제 상황이 어려운 중에도 꾸준히 수입을 주시고 헐벗지 않게 해 주시며 만나의 약속을 지켜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이 먹거리를 주시는 것도 감사할 일이지만 또 감사할 일은 즐겁게 음식을 먹고, 소화 시키고, 그 힘으로 생활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올 농사에서 삼사 년 먹을 양식을 거두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매일 필요한 양만큼 주시는 것에 만족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채워 주시지, 욕심을 채워주시지는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욕심껏 가지고 자랑하는 데, 그건 하나님이 채워주신 게 아니라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기가 치부한 것입니다.
과도하게 부를 쥐고 하나님이 내게 이런 복을 주셨다고 말하는 것은 맞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은 얼마든지 큰 재물을 주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성도들의 믿음을 인정해서 많은 돈을 벌게 하신 것이라면 분명히 성경적인 원리로 사용했을 것입니다.
결코 내가 다 쓰지도 못할 만큼 깔고 앉아있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재물의 분량은 내가 그만큼 갖는 것이 내게 딱 맞기 때문일 것입니다.
전도서5장11절은 세상에 제물에 대해 이런 지혜를 말씀해 주셨죠.
재산이 많아지면 먹는 자들도 많아지나니 그 소유주들은 눈으로 보는 것 외에 무엇이 유익하랴
가진 것이 적은 삶이 때로 곤고 하지만 많은 것을 지고 가는 삶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나라에 더 좋은 일을 할 수 있는 재물과 능력과 지위를 원한다면 그런 쪽으로 기도하며 인도를 받으면 됩니다.
가수 션은 벌면 기부하는 믿음을 가졌잖아요?
많은 재물이든 적은 재물이든 하나님께 감사하며, 선하게 사용하는 복을 모두에게 주시길 축원드립니다.
3) 세 번째로 감사할 것은 우리에게 기업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6절, 그가 그들에게 뭇 나라의 기업을 주사 그가 행하시는 일의 능력을 그들에게 알리셨도다
이스라엘에게 약속하신 가나안땅을 주신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약속의 땅의 진짜 의미를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다스리는 곳이 약속의 땅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면 이미 약속의 땅을 살고 있는 것이죠.
그리고 우리의 죽음 너머에는 영원히 살아갈 새 하늘과 새 땅이 나를 위해 준비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거처를 예비하신다고 하셨잖아요?
그러니까 이 세가지 감사가 근본적으로는 구원에 대한 감사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에게 행하신 은혜가 영적인 구원의 은혜이면서도 실제적인 삶에서의 은혜였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그렇습니다.
우리에게도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도 필요한 기업을 각자에게 주셨습니다.
직장과 학교를 인도해 주셨고, 장사를 계속하게 하셨고, 사업을 하고, 가정을 꾸려나가게 하신 것들도 우리의 기업을 축복하신 것입니다.
넓고 화려하진 않아도 안전히 살아갈 집도 주셨습니다.
이 땅에서는 그저 가야 할 고향이 있는 여행객처럼 사는 게 좋다고 성경은 가르치십니다.
여행객의 짐이 많으면 오히려 여행 다니는 게 힘듭니다.
기안84라는 사람을 보면 어디를 가든 짐이 달랑 가방 하나인 게 너무 인상이더군요.
한때는 교회든 사회든 큰 비전을 갖자, 꿈을 크게 갖자는 말들이 유행이었습니다.
그래서 꿈을 크게 가졌더니 그 꿈이 다 이루어졌나요?
오히려 이룰 수 없어 절망하고 낙담한 사람이 더 많을 것입니다.
지금 해 낼 수 있는 만큼의 계획을 세우고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사는 게 낫습니다.
그러면 근거 없는 자만심으로 부풀었다 낙담하는 일도 없을 것입니다.
작은 계획을 세우며 성실히 산 것이 오히려 뒤에 큰 일을 이루기도 합니다.
큰 기업들 중에도 작은 구멍가게부터 시작된 경우가 많잖아요?
오늘 내게 주신 기업과 작은 삶에 감사하는 날들이 모이면 잘 사는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4. 그러므로 시인의 결론은 영원히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10절, 여호와를 경외함이 지혜의 근본이라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다 훌륭한 지각을 가진 자이니 여호와를 찬양함이 영원히 계속되리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런 은혜와 복을 주셨다면 우리도 신실하게 하나님을 섬겨야 하는 것이죠.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실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계명을 주신 이유는 먼저는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를 위해서는 계명을 지킴으로 이전의 악에서 떠나고 세상 가운데서 우리를 구별해 하나님 자녀로 살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은 짐이 아니라 우리의 행복을 위한 것입니다.
쉽게 생각해도 알 수 있죠.
내 가족과 내가 만나는 사람들이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말씀대로 다 지키고 있다면 좋을까요, 나쁠까요?
나도 행복하고 다같이 행복한 것이죠.
오늘 말씀대로 주님이 주신 말씀들을 순종할 때만이 하나님의 눈으로 모든 것을 해석할 수 있는 훌륭한 지각을 갖게 됩니다.
‘내가 왜 이렇게 요즘 똑똑하지? 업무가 잘 풀리고 사람관계도 잘 되네?’
그렇다면 열심히 예배드리고, 기도하고,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확실한 증거입니다.
오늘 시편의 저자는 마지막을 이렇게 마칩니다.
여호와를 찬양함이 영원히 계속되리로다
하나님의 이름이 계속 영광을 받으시려면 복음을 듣고 믿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계속 이어져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일년 동안 주신 복과 은혜를 감사하며 아름다운 과실과 채소들과 헌물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더 귀한 열매를 드리자고 말씀드렸습니다.
바로 전도의 열매입니다.
조혜0씨의 경우를 말씀드리며 오늘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창가학회에 빠져있는 조혜0씨를 위해 수십 년 기도한 사람이 이성0 씨입니다.
워낙 둘이 친하다 보니 하루는 이성0 씨의 간곡한 부탁에 교회 새가족초청예배에 한번 참석을 했다고 합니다.
초청 주일이면 처음 오신 분 다 일어나라고 하잖아요?
믿을 생각도 없이 한번 와 준 건데 일어나고 싶지 않았죠.
할 수 없이 일어났는데, 이성0 씨가 ‘우리가 기도했던 조혜0씨가 오늘 참석했습니다. 조혜0씨 앞으로 좀 나와주세요.’ 라고 마이크로 말한 것입니다.
조혜0씨가 일어나 앞으로 걸어 나가서 그대로 옆문을 열고 나가 집으로 돌아왔다고 합니다.
그 뒤로 십여년 간 아예 이성0씨와 관계를 끊고 살았습니다.
남편을 따라 교회를 나가고 자기 스스로 교회에 등록을 한 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이성0씨 생각이 제일 먼저 났습니다.
전화 번호도 이미 삭제 되었지만 머리 속에 남아있던 번호로 성0씨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언니, 나야. 나 오늘 교회 등록했어. 나도 예수님 믿어’
그랬다는 말을 하면서 조혜0씨가 또 울더군요.
우리에게 붙여주신 영혼들을 위해 낙심하지 말고 끝까지 기도하며 귀한 전도의 열매를 하나님께 드리는 모두가 되시길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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