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outube.com/watch?v=KzXBLB280Fg
우리 교회가 열 세 번째 추수감사주일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내게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이 주신 은혜임을 감사하는 성도님들께, 하나님이 영원한 공급자가 되어 주실 것입니다.
올해도 코로나를 포함 해서 여러 가지 전망이 어두운 상태로 새해를 맞이 했었죠.
각자 가정마다 해결해야 할 문제들도 있었고 교회에도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사회 전체의 경기 침체로 충분한 소득을 기대하기도 어려웠습니다.
이런 여건 속에도 우리가 그래도 선방했다, 그것은 오늘 시편에서처럼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셨기 때문임을 알고 감사해야겠습니다.
그래서 오늘 시편124편의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우리가 소원했던 일들을 다 이루지 못한 아쉬움을 오늘 말씀을 통해 감사로 바꾸고 위로와 힘을 얻는 은혜를 주시리라 믿습니다.
1. 이 시편은 다윗이 지은 시로서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입니다.
성전에서 부르던 예배곡으로 사용되었다는 것이죠.
물론 다윗은 성전을 보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그러나 자기가 죽은 뒤 성전을 지을 아들 솔로몬에게 하나님께서 그려주신 설계도와 건축에 필요한 모든 재원을 마련해서 넘겨 주었죠.
장차 백성들이 성전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벅찬 광경을 떠올리며 이 찬송시를 지었을 것입니다.
다윗은 288명의 찬양대와 오케스트라를 만들었던 사람입니다.
예배를 위한 찬송시를 짓는 것은 당연한 것이죠.
시편은 믿음으로 살아가는 성도들의 인생의 희로애락을 시라는 특별한 형태로 기록한 성경입니다.
시는 깊이 통찰한 주제를 함축적인 단어의 배치로 간결하게 표현하는 문학입니다.
시인은 보통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던 사실에서 한 겹을 더 벗겨냅니다.
그런 게 없으면 시의 모양을 흉내내도 ‘시’가 아니라 ‘시시한 것’입니다.
정호승시인의 시 중에 ‘택배’라는 시가 있습니다.
택배하니까 뭔가 확 배달되어 오는 것 같죠.
하루가 멀다 하고 배달되는 택배에는 기대와 설렘, 반품의 실망이 어른거리죠.
정호승시인의 ‘택배’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슬픔이 택배로 왔다
누가 보냈는지 모른다
보낸 사람 이름도 주소도 적혀 있지 않다
서둘러 슬픔의 박스와 포장지를 벗긴다’
이렇게 전개됩니다.
인생엔 기대했던 택배 뿐 아니라 바라지 않았던 슬픔도 택배로 온다는 것이죠.
슬픔을 택배로 받아 보셨습니까?
다윗은 주문하지도 않았고 원치도 않았던 쓰라린 시련의 택배를 받았던 인생을 시로 노래하고 있습니다.
구구절절 사용된 단어를 보면 그 고난들이 얼마나 마음을 할퀴고 공포감을 주었을지가 느껴집니다.
들고 일어나 치려는 사람들, 맹렬한 노여움으로 삼키려는 사람, 영혼을 휩쓸어 갈 넘치는 물, 원수의 이에 씹힐 뻔한 상황들, 영혼을 노리는 새 사냥꾼의 올무.
그러나 다윗은 이 고난의 실상을 한 겹 벗겨내 우리 편에 든든히 계시는 하나님을 보여 줍니다.
이 시편이 공감되는 것은 우리도 주문하지도 않은 삶을 택배로 받아 보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올해도 즐겁고 기쁜 일보다는 참고 인내해야 할 어려움이 더 많았기에 무작정 감사보다는 일년을 정직하게 돌아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왜 이 시편이 예배찬양이고 추수감사절 예배에 묵상하면 좋을까요?
1) 고난 중에 오히려 감사가 있다는 역설 때문입니다.
많은 것을 받고 누릴 때 더 감사할 것 같지만 사람이 그렇지가 않습니다.
우리의 본성상 좋을 때는 하나님을 등지고 웃지만 나쁜 일이 있을 땐 하나님을 바라보며 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울면 신기하게도 감사하며 일어나게 되죠.
우리가 올 한 해 사는 동안 조그만 상자, 큰 상자로 배달 된 힘든 사건들이 있었습니다.
누가 보낸지 모르기에 반품도 못 시키고 고스란히 그 고통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로 인해 우리가 끊임없이 하나님을 생각하고 정숙하게 예수님을 따르고자 했다면 다윗처럼 이렇게 말하게 될 것입니다.
1절, 여호와께서 우리 편에 계시지 아니하셨더라면 우리가 어떻게 하였으랴
기막힌 운명에 대한 한탄보다는 그것을 이겨내도록 내 편에 계신 하나님께 대한 감사만이 남는 것입니다.
그 길을 건너 뒤를 돌아보니 하나님이 우리 편에 계셨던 게 보이는 것이죠.
올해 우리 혼자 힘으로만 치열하게 살아온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내 편에 계셔서 지략을 주시고, 힘을 주시고, 문제의 매듭을 슬그머니 풀어놓지 않으셨다면 지금 어찌 되었을까요?
지난하게 이어지는 고초의 시간을 지내다 보면 하나님이 나를 모른다고 생각될 때도 있습니다.
오늘 다윗은 하나님이 우리 편임에도 불구하고 큰 일을 당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편이시라도 이런 어려운 순간들을 만나게 된다는 것이죠.
다윗이 말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에 결국 어떤 난관도 극복이 되더라는 것입니다.
올해 큰 어려움 없이 평안 중에 보냈다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하루가 멀다 하고 터지는 사건 사고 속에서 우리와 가족들이 무사히 지나온 게 기적이죠.
또 올해 깊은 고난의 터널까지 들어갔었다면 우리 믿음이 제련되고 연단 된 축복을 받으신 것입니다.
그런 중에 드리는 오늘의 감사가 반드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것입니다.
그렇게 어려웠던 순간과 하나님의 은혜를 되짚어 보아야 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2) 그것은 앞으로의 도우심을 확신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계셔도 이런 일들이 일어났다면 앞으로도 그런 문제들이 또 우리를 찾아올 것입니다.
그때 오늘의 도우심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 편이시다, 이번에도 나를 도우실 것이다’라는 믿음을 갖자는 것이죠.
이것은 왕위에 오른 뒤에도 순탄치 않았던 다윗의 인생으로 볼 때 매일 스스로를 다그쳤던 말일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광야 40년은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항상 불신하는 인간의 치명적인 죄성을 보여줍니다.
출애굽 이후 광야를 건너오는 여정에 왜 어려움이 없겠습니까?
우리의 인생 여정에 평지와 대로만 있지 않잖아요?
그런데 어려움을 만날 때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변함없이 드러낸 것은 하나님께 대한 불신이었습니다.
성경은 이들이 어려운 사건을 만났을 때 원망하는 한편 하나님이 어떻게 나오시나 보자 시험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지금도 우리와 함께 계신가?’
‘하나님이 이번에도 도우실까?’
그렇게 하나님을 시험하며 그런 상황으로 데려가신 하나님을 원망했다고 합니다.
너희가 열 번 나를 시험했다고 하나님이 세고 계셨습니다.
열 번째 어려움을 만났지만 하나님은 아홉 번째까지 분명히 도와주셨습니다.
그랬다면 이번에도 도와주지 않으시겠습니까?
‘하나님, 이번에도 도와주세요, 도와주실 줄 믿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면 될 텐데, 먼저 의심하는 마음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이번에도 될까?, 전에 우연히 일이 잘 된 것은 아닐까?’
‘하나님이 번번이 도와주실라고?’
이런 마음으로 하나님의 선의를 불신했던 것입니다.
심지어 하나님이 자기들을 광야에서 죽이려고 일부러 애굽에서 데리고 나왔다고 억지를 부리며 원망했습니다.
우리 본성 안에는 하나님이 나쁜 환경을 주셔서 우리에게 낭패를 주고 골탕을 먹이실지 모른다는 의심이 있습니다.
사람은 얼마나 의심이 많은지 모릅니다.
조금만 내게 불리한 정황이 느껴지면 하나님이든 사람이든 일단 의심합니다.
하나님을 의심하지 않으려면 오늘 다윗처럼 과거의 고난에서 내가 어떻게 살아남았는지를 자꾸 되짚어 봐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이 앞으로도 내 편에서 도와주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저는 전에는 ‘하나님이 도와주지 않으시면 전 이것 못해냅니다.’ 이런 식으로 기도하고 마음에 항상 ‘나는 예수님이 없으면 안돼’,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 다음에 꼭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계시면 할 수 있습니다. 함께 해 주실 줄 믿습니다.’
그리고 내 마음에도 명령합니다.
‘예수님이 함께 하시니 이번에도 분명히 할 수 있어!’
그러고 나면 진짜 해 냅니다.
이제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이 항상 인도하심을 믿고 저처럼 기도하며 매일 ‘해 내는’ 모두가 되시길 축복드립니다.
2. 다윗은 하나님이 자기가 당했던 어떤 고난에서 건져주셨는지를 들려줍니다.
1) 우리가 힘든 많은 부분은 나와 다투는 사람들과의 문제입니다.
3절, 그 때에 그들의 노여움이 우리에게 맹렬하여 우리를 산 채로 삼켰을 것이며
다윗의 경우라면 우선 다윗을 죽일 만큼 미워하는 사울왕이었겠죠.
난처한 상황이 내 실수나 잘못으로 인해서 올 때가 있습니다.
그런 경우 잘못을 사과하고 그에 대한 댓가를 지불하면 고통스러워도 끝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유 없이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나 잘 안 맞는 사람과 계속 함께 해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이 가장 스트레스를 받는 게 무엇인지 조사했더니 직장 생활이라고 답한 사람이 무려 63%로 1위였습니다.
직장 생활의 스트레스는 거의 사람관계에서 오는 것이죠.
일이 힘들거나 월급이 적다면 다른 일자리를 구하면 되지만 관계의 문제라면 대개는 견딜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직장생활이 가장 큰 스트레스인 것이죠.
올 한해 그런 관계를 견디셨습니까?
하나님은 다윗 옆에 사울왕을 십오년 간 붙여 두셨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나 괜찮았어, 날 집어 삼키지 못했어’ 그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심지어 다니엘이 사자굴에 던져졌을 때 사자의 입을 봉해 놓으셨습니다.
힘든 사람 관계를 계속해 왔다면 그 사이에 하나님이 함께 계시게 하십시오.
그것은 관계를 위해 계속 기도하며 관계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관계 속에서도 놀랍게 우리를 축복하실 것입니다.
2) 예고없이 찾아온 고난도 있었다고 합니다.
4절, 그 때에 물이 우리를 휩쓸며 시내가 우리 영혼을 삼켰을 것이며
홍수가 날 때마다 사람이 죽지만 누가 그것을 예단했겠습니까?
지난 여름 태풍 힌남노 때 포항 지하주차장 침수로 여러 사람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지하주차장이 침수된다는 방송을 듣고 차를 빼러 들어간 사람들이 범람한 하천물이 순식간에 밀려와 빠져 나오지 못한 안타까운 사고였습니다.
주차장 천장 배관 위에 엎드려 14시간만에 구조된 분이 있었죠.
그 분의 간증을 들어보니 물이 들어오는 데 순식간에 장정도 몸을 못 가눌 정도가 되었다고 합니다.
물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들어오니까 순식간에 천장까지 차올랐다고 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갑작스러운 물에 휩쓸려 목숨을 잃는다는 게 무엇인지 잘 압니다.
이스라엘에는 와디라고 부르는 마른 시내가 있습니다.
이 하천은 건기에는 물이 바짝 마르고 우기에는 시내가 됩니다.
물이 말라 있는 동안에는 사람들이 주로 이 마른 시내를 도로로 이용합니다.
시내 양쪽엔 울퉁불퉁한 돌이 쌓여 있지만 바짝 마른 시내는 평평하고 걷기가 쉬워서 도로로 이용하기 딱 좋기 때문이죠.
그런데 상류에서 기습적인 큰 비가 내리면 순식간에 급류가 덮치는데 좌우폭이 넓은 곳에선 사람들이 밖으로 빠져나오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도 간혹 관광객들이 차나 도보로 이 건천을 이동하다가 물에 휩쓸려 사고를 당한다고 합니다.
다윗이 여러 고난을 당하고 보니 어떤 일은 정말 건천에 급류가 밀어 닥치듯 예고 없이 닥쳤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대비해도 피할 수 없는 문제들이 있습니다.
아들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킬 줄 다윗이 어찌 알았겠습니까?
압살롬의 반란이 진압되자 얼마지 않아서 다른 아들 아도니아가 또 반란을 일으킵니다.
성경은 다윗이 그 아들을 얼마나 신임하고 아꼈는지 이렇게 말합니다.
아버지가 네가 어찌하여 그리 하였느냐고 하는 말로 한 번도 그를 섭섭하게 한 일이 없었더라
한번도 섭섭하게 하지 않았음에도 아들의 반역은 어느날 급류가 습격하듯 다윗을 타격했습니다.
우리가 모든 위험을 다 대비하며 살 수는 없습니다.
매일 출근하는 일터에서도, 눈 감고도 다닐 뻔한 집안에서도, 그런 위험이 예기치 않게 갑자기 우리를 덮치는 것이죠.
지난 주 목요일 아침에 안개가 정말 짙게 꼈습니다.
제가 보통 중부고속도로와 100번 도로를 이용해서 교회에 옵니다.
그날은 안개 때문에 고속도로가 좀 위험할 것 같아서 하남시내를 통과해 강동구를 지나 교회로 오는 길을 택했습니다.
상일IC에서 강동구로 진입하는 도로가 왕복12차선입니다.
복잡한 구간을 빠져나와 차가 한산해서 꽤 속도를 내고 달리다 보니 앞에 신호등이 노란불로 바뀌더군요.
이럴 때 순간적으로 판단을 잘 해야 됩니다.
버스전용차로가 있고 중앙에 버스정류장이 있는 곳이지만 평소에 거의 건너는 사람을 못 보았던 곳입니다.
그래서 빨간 불로 바뀔 것 같지만 속도를 더 내서 통과하려는 생각으로 달렸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이미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가 바뀌어 버렸습니다.
이미 녹색불로 바뀐 횡단보도를 막 통과하는 순간 바로 차 옆에서 길을 건너려고 사람이 움직이는 게 보였습니다.
안개가 좀 있어서 서로 미리 못 본 것 같았습니다.
만일 녹색불로 바뀌는 순간 이 분이 차가 설 줄 알고 도로로 즉시 들어섰다면 정말 아찔한 일이 벌어질 수가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전에 직장 동료였던 분이 밤에 남편과 도로에 둘이 서 있다 신호등이 바뀌는 것만 보고 남편분이 도로에 내려 섰습니다.
그런데 밤에 누가 건너랴 생각하고 그냥 횡단보도를 쏜살같이 지나간 트럭에 치어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 일이 생각나며 온 몸이 오싹했습니다.
진짜 제 머리를 쥐어 박으며 하나님이 막아주지 않으셨으면 정말 어떡할 뻔 했나 회개하고 감사하며 교회까지 왔습니다.
운전하다 보면 정말 큰 일 날 뻔 한 순간들 여러 번 당하죠.
하나님께서 막아주셨다고 믿을 수 밖에 없는 때가 저도 몇 번 있었습니다.
올 한해 우리와 우리 가족들을 그렇게 순간적인 위기로부터 건져주셨던 일도 감사하시길 바랍니다.
3) 다윗은 원수의 이에 씹어 삼킬 듯한 상황을 당했다고 합니다.
6절, 우리를 내주어 그들의 이에 씹히지 아니하게 하신 여호와를 찬송할지로다
극심한 삶의 환란은 마치 우리를 잘근잘근 씹어 먹을 듯이 잔인하게 우리를 압박합니다.
그 정도로 혹독한 일도 당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사실 이 시에서 한 겹을 벗겨 또 보여주려는 것이 있습니다.
다윗과 하나님백성을 파멸시키려는 자들 배후에 있는 사탄입니다.
다윗은 재임기간 중 하나님이 금지하신 인구조사로 큰 징계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실에 대해 역대하에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역대하21장1절, 사탄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다윗을 충동하여 이스라엘을 계수하게 하니라
역사서 중에는 유일하게 노출된 사탄에 대한 기록입니다.
다윗은 성령의 특별한 감화를 받았던 사람이기에 영적 존재인 사탄에 대해서 파악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계속되는 곤고한 환경과 질병, 힘든 사람 관계와 죄의 유혹의 배후에도 사탄은 은밀히 역사합니다.
베드로는 자기가 예수님을 부인하고 큰 시험에 빠질 것을 몰랐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 베드로를 사탄이 시험할 것을 미리 말씀하십니다.
누가복음22장31절,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32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사탄이 예수님께 제자들의 믿음을 키질하겠다고 요구했다고 하십니다.
이것은 먼저 마귀가 임의로 성도들을 시험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마귀가 사람의 믿음을 우습게 안다는 걸 보여줍니다.
키질하면 다 날라 갈 믿음이라는 것이죠.
마귀가 우리 믿음 대단하게 안 봅니다.
우리 곁에 계신 예수님 때문에 어찌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고난이라는 키질에서 부딪치고 바람에 뒹굴 때 과연 얼마나 견딜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베드로를 위해 기도해 주신 주님이 우리가 사탄의 이에 씹히지 않게 지켜주시는 것입니다.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우리가 다 사탄의 키질에 날라 가고 이 자리에 있을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설령 유혹과 시험에 걸려 들었어도 어느 틈엔가 벗어나 다시 믿음의 자리에서 평안과 자유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거기서 벗어난 기쁨을 다윗이 이렇게 노래합니다.
7절, 우리의 영혼이 사냥꾼의 올무에서 벗어난 새 같이 되었나니 올무가 끊어지므로 우리가 벗어났도다
새 사냥꾼들이 집요하게 쳐 놓은 올무에 빠진다면 새는 스스로 도망칠 수가 없습니다.
누군가 올무를 끊어 주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주기도문에서 매일 악에게서 구원해 주시길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와 가족들이 사탄의 올무에 걸리지 않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이번에 학원복음화협의회가 대학생들의 믿음에 대해서 조사했습니다.
그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조사한 대학생들 중에 무종교라고 답한 비율이 74%나 되었습니다.
종교를 가진 학생들 중에는 타종교도 있다는 걸 감안하면 열명 중 한 두명이 기독교 신앙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그나마 그 중에서 40%는 교회에 안 나가는 가나안성도라고 답했습니다.
교회에 가득 앉아있던 그 많은 젊은이들이 다 어디로 갔습니까?
이번에 대구에서 신천0 교인들 십만명이 대규모 집회를 한다고 하죠.
그 많은 사람들이 영혼 사냥꾼의 올무에 걸려 있는 것입니다.
올해도 우리의 영혼을 노리는 마귀로부터 지켜주신 하나님께 어찌 감사드리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말씀을 맺습니다.
오늘 다윗은 성도들에게 하나님이 그때에 우리를 도우신 것을 기억하라고 독촉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모든 고난으로부터, 죄와 마귀로부터 구원해 주셨습니다.
어떻게 우리가 이 구원과 도움을 확신할 수 있습니까?
7절, 우리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의 이름에 있도다
하나님이 온 천지를 만드신 창조주이시고 주관자시라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 하나님이 내 창조주와 보호자가 되시도록 예수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를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창주주로, 예수님을 구원자로 믿지 않는다면 하나님으로 부터 오는 도움이 어떻게 믿어지겠습니까?
어차피 하나님도 그런 사람 곁에는 계시지 않습니다.
오늘 추수감사절, 우리의 도움이 내 곁에 계신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감사하고 앞으로의 인도하심도 확신하는 모두가 되시길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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