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outube.com/watch?v=ITAmFQXlpE0
시편8편은 그리 길지 않은 시입니다.
그러나 이 안에는 너무 큰 진리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어서 묵상하면 할수록 참 놀라운 시편입니다.
함께 본문 시편을 읽으셨는데 시의 느낌이 좀 마음에 와 닿으시나요?
아마도 아름다운 자연세계에 충만한 하나님의 영광이 떠오르셨을 것입니다.
밤하늘을 아름답게 수놓은 별들을 바라보며 시인 다윗의 눈은 그것을 만드신 하나님의 손가락을 보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이 자연에서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보는 것은 아닙니다.
언제나 그렇듯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와 성도들의 원수가 등장하죠.
그렇기에 더욱 다윗은 하나님이 어찌 나 같은 자를 사랑하셔서 이 믿음을 주셨는지에 감격하여 잠시 울먹인 듯 합니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나 갚은 게 무엇이기에’
그리고 하나님 안에서 발견한 자기의 영화로움과 사명을 확인하고 다시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하며 시를 마무리합니다.
오늘 시편에서 다윗이 느낀 은혜를 우리에게도 주시길 기대하며 자세히 묵상해 보겠습니다.
1. 다윗은 자연 속에서 창조주 하나님의 장엄함을 보았습니다.
1절,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이 하늘을 덮었나이다
로마서에서도 보면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이 창조하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졌다고 하죠.
그렇기에 자연세계에 살면서 하나님을 모른다고 핑계댈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일부러 부인하지 않는다면 사람의 양심은 자연 만물을 보며 하나님이 계시다고 인정하게 된다는 것이죠.
그러나 하나님이 존재하시는지에 대해서는 구약성경의 시대부터 현재까지 사람들은 믿느냐 안 믿느냐의 두 길 위에 서 있습니다.
지금부터 삼천년 전인 다윗시대의 사람들은 현대인보다 신의 존재를 믿기가 더 쉬웠을 것입니다.
현대인들은 옛날사람에 비해 하나님과 창조를 믿기가 더 어렵죠.
지식이 쌓이고 과학문명이 발달함에 따라 하나님을 부인할만한 구실들이 더 많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하나님과 천지창조를 불신하게 만든 가장 큰 해악은 진화론일 것입니다.
진화론은 무생물에서 생명체가 발생하고 점점 복잡하게 진화해서 오늘날 지구 생태계가 되었을 것이라고 가정한 학설입니다.
그런데 무생물에서는 생물이 나올 수 없다는 것은 이미 검증된 생물학의 법칙입니다.
생명은 생명을 통해서만 나올 수 있다는 것이 과학입니다.
돌이 억겁을 지난다 해도 생명체가 될 수 없듯이 실험실에서 사람 몸과 똑같은 단백질 덩어리를 만들어 낸다 해도 그게 살아서 움직이지 못합니다.
엄연히 이런 법칙이 존재하는 데 증명도 안 된 진화론을 과학이라고 믿다니 사람이 참 어리석죠.
아마도 하나님을 인정하느니 차라리 어리석은 쪽을 선택하는 것 같습니다.
시편 14장 1절에서 다윗도 이렇게 노래합니다.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또 현대에는 과학의 발달로 우주시대가 열리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계실 거라고 믿던 우주 공간의 신비가 벗겨진 것이죠.
러시아의 조종사 유리 가가린은 1961년 세계 최초로 우주선을 타고 지구를 돌고 온 우주인입니다.
유리 가가린이 지구로 돌아와서 이렇게 조소했습니다.
‘내가 우주에 가서 아무리 두리번거려도 아무데도 신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감동을 받은 다윗은 하늘과 온 땅에 가득하신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지난 주 하늘을 얼마나 바라보셨는지 모르겠네요.
저는 하늘을 의식적으로 자주 바라보는 편입니다.
그리고 하늘에 가득 찬 하나님의 영광을 항상 느낍니다.
어떤 때는 하나님이 너무 벅차게 느껴져서 몸이 부르르 떨릴 때도 있습니다.
너무 바쁘셔서 하늘 한번 제대로 못 보고 한 주가 지나가죠?
우리가 하나님께 관심을 갖는 것은 바쁜 것보다 더 중요합니다.
늘 보는 자연에서도 하나님을 찾고자 하면 얼마든지 하나님을 만날 수가 있습니다.
예레미야29장13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14절,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는 너희들을 만날 것이며
사람들은 하나님을 별로 만나고 싶어하지 않지만 오히려 하나님은 항상 우리를 만날 모든 준비를 하고 계십니다.
유리 가가린이 우주를 다녀 온 다음 해 미국의 조종사 존 글렌이 세계 두 번째로 우주여행을 합니다.
그는 돌아와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가서 보니 우주에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물리학의 발달은 우주와 만물이 아주 정교한 법칙에 의해 운영되고 있는 것을 점점 더 많이 찾아내고 있죠.
그걸보며 이것은 우연히 만들어진 세계가 아니다, 위대한 설계자가 있다는 걸 확신하며 스스로 하나님을 믿게 된 과학자들도 많습니다.
또 세계100대 과학자인 한윤0 교수 같은 분은 창조를 비과학적 허구로 알았지만 과학을 하면서 풀리지 않았던 문제들의 답을 창세기의 창조에서 발견했다고 합니다.
과학으로 치자면 진화가 아니라 창조가 훨씬 더 과학적입니다.
1) 오늘 시편에서도 하나님과 창조를 두고 사람들이 명백히 둘로 갈라진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2절, 주의 대적으로 말미암아 어린 아이들과 젖먹이들의 입으로 권능을 세우심이여 이는 원수들과 보복자들을 잠잠하게 하려 하심이니이다
천지 만물이 저렇게 장엄하게 하나님을 드러내고 있지만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하는 무리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어린아이들과 젖먹이들은 하나님을 인정하고 믿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들은 자기의 능력과 권력과 지식으로 무장하고 자신만만하게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그들에 비해 어린아이와 젖먹이 같은 사람들입니다.
어린아이 같은 믿음에 대해 성경은 두가지를 알려주셨습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편지할 때 하나님이 세상적으로 대단하지 않은 너희를 부르신 것을 보라고 하십니다.
이는 약한 자를 택하여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려 하심이라.
오늘 시편 구절을 이렇게 해석하면 되는 것입니다.
*또 어린아이와 젖먹이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의 특징입니다.
그들은 어린아이가 부모를 신뢰하고 의지하듯 단순하게 하나님을 믿습니다.
아무리 명석하고 사회적인 지위가 높은 사람들이라도 똑같습니다.
하나님에 대해서는 자기 지식으로 따지지 않고 어린아이와 같이 하나님께 의지하고 무한히 신뢰하고 겸손합니다.
우리가 스스로를 너무 영리하게 여기지 않는 것이 이런 믿음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물론 약자들이라고 무조건 하나님을 잘 믿는다는 것은 아닙니다.
세상에서는 큰 소리 칠 게 없는 사람들 중에도 하나님에 대해서만은 유난히 시비를 걸고 교만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대적자, 악인, 보복자들의 특징은 어린아이와는 다른 교만입니다.
이들은 성도들이 무지하고 무능해 있지도 않은 하나님을 찾는다고 생각하겠죠.
그러나 그 결말은 어린아이 같은 성도들의 승리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밝혀질 때 악인들의 입은 유구무언이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2) 이 시편 구절은 다윗이 죽고 천년 뒤 예수님께서 똑같이 해석하십니다.
오늘 2절에 나타난 두 종류의 사람들이 예수님 때도 똑같이 나타납니다.
마태복음21장을 보면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예루살렘에 도착하십니다.
그때 예수님을 보고 어린아이들이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라고 성전에서 소리쳤다고 합니다.
그걸 보고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이 분노합니다.
그때 예수님이 바로 이 시편 구절로 대답하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렇다 어린 아기와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찬미를 온전하게 하셨나이다 함을 너희가 읽어 본 일이 없느냐 하시고
바로 오늘 이 시편 말씀을 그들에게 그대로 적용하신 것입니다.
다윗의 시대에 하나님을 대적하던 사람들에서, 예수님을 대적하던 대제사장들로, 그리고 오늘날 과학과 지식을 앞세워 하나님도 예수님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이어지는 것입니다.
반대로 시대를 막론하고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은 어린아이 같이 절대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고 믿는 것이죠.
모두 이런 어린아이 믿음으로 하나님과 창조를 믿으시죠?
2. 창조주 하나님은 만물 중에서 사람을 특별히 창조하시고 돌보십니다.
다윗은 사람에게 주신 특별함을 세 가지로 묵상합니다.
1) 사람은 하나님을 믿을 때 비로서 내가 누군지를 알게 됩니다.
4절,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5절,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성경은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시되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드셨다고 합니다.
사람이 단지 사람일 뿐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을 수여 받은 존재라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신적인 요소가 있다는 것입니다.
다들 서로 그렇게 보이십니까?
그래서 한사람 한사람이 다 대단한 것입니다.
사람은 동물 중에서 가장 수준 높게 진화한 생명체가 아닙니다.
동물은 영이 없어서 죽으면 그 존재가 없어지지만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의 영은 하나님의 영존하심처럼 영존합니다.
제가 키우던 초코가 나이가 들어서 죽었습니다.
가족 같던 동물의 죽음을 지켜보는 것도 참 어렵더군요.
그런데 그때 제가 확실히 느낀 것이 영이 없는 동물은 죽으니까 그걸로 완전히 끝이라는 것입니다.
전에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와 너무 다른 거예요.
어머니는 숨이 멎는 순간에 이미 그 영이 하나님아버지께로 돌아가셨다는 분명한 확신이 있었거든요.
끝이 아니라 살아 계시다는 믿음이 분명했습니다.
사람을 하나님과 똑같은 신으로 만드신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신성을 섞어서 영적인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모든 피조물과 달리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습니다.
이 세상의 왕으로 삼으셨다는 말씀입니다.
아담의 범죄 이후 사람은 타락해서 하나님의 신성이 모두 죄에 오염되었죠.
그러나 사랑, 도덕성, 정의감, 희생정신, 이런 부분들은 하나님의 성품의 흔적입니다.
물론 본질적으로는 처음 받은 것들과 많이 다르지만 그나마 남아있는 이 하나님의 형상이 자연 세상을 조금이라도 바르게 지탱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이렇게 자기가 얼마나 존귀하게 지음 받은 존재인지를 알게 됩니다.
사람들이 만족하지 못하고 사는 것은 단지 먹고사는 문제가 팍팍해서만은 아닙니다.
나라는 존재의 가치성을 몰라서 그런 것입니다.
사람은 자기의 가치를 인정받고 싶어 합니다.
자신이 아무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자존감이 떨어져 아주 불행하게 생각하며 삽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나의 존재감, 값어치를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찾습니다.
다른 사람과 끊임없이 비교하며 내 가치를 판단하려고 합니다.
남들이 나를 어떻게 대하나, 나를 얼마나 인정하나, 이런 것들로 내 가치를 가늠합니다.
그러니 만족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다 나보다 부자고, 나보다 똑똑하고, 잘 생겼고, 건강하고, 재능도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과 비교하니 열등감과 불만족으로 살게 되는 것이죠.
물론 나보다 못한 사람들과 비교하며 잠깐 우월감을 느낄 수도 있겠죠.
그러나 세상엔 나보다 잘난 사람이 훨씬 더 많습니다.
또 아무리 내가 더 잘나도 시기하고 질투할 뿐이지 그걸 인정해 주는 데 인색합니다.
하나님은 나를 아무하고도 비교하지 않고 사랑하십니다.
나를 다른 사람과 전혀 다르게, 세상에 둘도 없는 존재로 지으셨고 내 모습 그대로 사랑하십니다.
내가 세상적으로만 살고, 술도 마시고 담배도 피고, 그렇다고 덜 사랑하시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처럼 조건부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정말 오해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영접하기만 하면 우리를 사랑하시기로 결심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얼마나 못되었든, 얼마나 못났든 상관하지 않고 사랑하십니다.
하나님께 헌신하고 열심히 봉사하는 성도님들도 이해하실 거예요.
큰 자식과 막내는 부모에게 똑같은 사랑의 대상이지만 그 의미는 다른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우리가 맏아들인 예수님을 닮은 장성한 신자가 되길 원하시죠.
2) 하나님은 우리를 존귀하게 지으셨을 뿐만 아니라 돌봐주십니다.
4절,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여기서 원문에 사용한 ‘사람’, ‘인자’라는 단어는 일반적으로 사람을 말할 때 쓰는 단어가 아닙니다.
성경에서 특히 약하고 덧없는 존재를 말할 때만 씁니다.
하나님은 그토록 우리를 존귀하고 영화롭게 만들었지만 타락해서 지금처럼 덧없이 되어버린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우리를 하나님의 마음에 두시고 돌보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악한 죄인들이면서 게다가 스스로는 한없이 연약한 존재입니다.
남에게 악을 행할 뿐 아니라 나 자신도 늘 상처 입고 괴로움을 당합니다.
오늘 시편에서 이 연약하고 덧없어진 인간을 돌보신다는 것은 의식주만이 아니라 이런 상처와 아픔도 돌보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달래주지 않으신다면 우리가 어떻게 그 많은 고통의 기억들을 이겨낼 수가 있었겠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면 사람의 마음에 깊이 난 상흔을 치료할 것이 없습니다.
또 여전히 매일 우리가 상처를 받으며 살잖아요?
하나님의 사랑을 알면 자존감이 높아져서 상처도 훨씬 덜 받습니다.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것을 잘 믿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정말 나를 생각하고 현재도 돌보시며 사랑하시는지에 대해서는 확신을 갖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말이 공허하게 들리고 체험적으로 마음에 와 닿지 않는 것이죠.
그 사실을 우리는 예수님의 대속 안에서만 알게 되어 있다는 걸 아셔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사람으로서는 가장 고통스러운 십자가형을 받으셨습니다.
십자가를 지시기 전 날 제자들과의 마지막 유월절 식탁에서 주님이 왜 죽으시는 지를 분명히 가르쳐 주셨습니다.
마태복음 26장28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주님은 한방울의 피도 헛되게 흘리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한 방울의 피도 착오 없이 정확히 구원받을 그 사람을 위해 흘려주셨습니다.
바로 나를 위해 피흘려 죽으신 것입니다.
희생은 사랑이잖아요?
우리는 희생이 없는 것을 사랑이라고 부르지 않죠.
희생하는 것을 보고 사랑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것입니다.
십자가만한 희생이 어디 있습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가장 사랑하는 독생자를 내어 주신 희생을 통해서만 깨달아 지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늘 마음에 품고 묵상하면 점점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확신을 얻게 될 것입니다.
3) 하나님은 우리에게 창조하신 이 세상을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오늘 다윗은 하나님이 우리를 돌보시고 다스리실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세상을 다스리고 돌보게 하셨다고 노래합니다.
6절,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의 발 아래 두셨으니 곧 모든 소와 양과 들 짐승이며 공중의 새와 바다의 물고기와 바닷길에 다니는 것이니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다스리는 자로 창조하셨습니다.
*우리가 다스려야 할 것은 넓게는 내가 살고 있는 이 자연세계입니다.
성도들은 세상에 죄가 가득 찼으니 포기하자고 하면 안됩니다.
세상을 한심하게 여기고 종말이 빨리 와야 한다고 경솔히 말해도 안됩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때까지는 세상을 다스리고 잘 보존하며 그 안에서 피차 행복을 누리며 살아가게 하신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이 아름답게 창조하신 자연을 누가 다스리고 아끼고 보존해야 맞습니까?
하나님의 자녀들이 해야 맞는 것이죠.
자연도 아끼고 자연에서 얻는 모든 것도 성도들은 바르게 사용해야 합니다.
탐욕, 허영, 과시, 무절제, 남용, 이런 본성에 주의해서 주신 것을 사용하고 경영할 수 있는 지혜를 구하며 살아야 합니다.
성도들이 세상에 대한 이런 사명감을 잊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내가 다스려야 할 것은 나와 관계 된 사람과 일들입니다.
우리는 나와 상관 된 모든 것이 하나님의 복을 받기를 빌어야 합니다.
우리 주변이 다 복되어야 우리도 행복합니다.
*내가 다스려야 할 것은 내게 주신 삶과 살면서 만나는 환경들입니다.
사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세계는 인간의 죄악 이후에 본래의 상태에서 불리한 조건으로 바뀌었습니다.
환경은 사람에게 고분고분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환경을 다스리는 게 아니라 환경이 사람을 지배하는 실정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환경이 나를 지배하게 하면 안되는 것이죠.
성령님의 지혜와 능력을 받아 내가 환경을 지배하고 다스리고 경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려운 처지에 빠진 사람이 결국 그 환경의 늪에 빠져 불행하게 사는 모습을 종종 봅니다.
우리는 그렇게 살지 않습니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라도 기도하며 하나님을 의지하면 환경에게 압도되는 게 아니라 충분히 환경을 다스려 나갈 수 있게 됩니다.
내게 있는 것과 현재 상황을 이성적으로 잘 판단하며 그것으로 꾸려가야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분명히 열어주시고 더해 주시는 게 있다는 걸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무기력하게 환경에 지배 당하면 아무 것도 하지 못합니다.
* 하나님이 세상을 다스리라고 하신 것은 영적인 의미도 포함됩니다.
예수님께서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하신 것이 그것입니다.
믿지 않는 세상에 복음을 전해 하나님의 통치 안으로 들어오게 하는 것이 성도들이 하나님과 함께 세상을 다스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내 인생과 세상을 잘 다스리며 사는 모두가 되시길 축복드립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다윗의 눈으로 본 하나님과 사람에 대한 통찰을 얻으셨습니까?
천지에 충만한 하나님의 영광을 매일 느끼며 사는 모두가 되시길 바랍니다.
내가 주님의 기대에 못미치는 삶을 살아도 하나님의 사랑은 변치 않으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지으신 존귀한 자입니다.
나의 가치를 바로 알고 그 가치에 맞게 하나님의 성품으로 살아가야겠습니다.
그리고 내게 맡기신 인생과 내가 속한 환경을 능히 다스리고 살 수 있도록 항상 강한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길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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