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 예배를 하나님께 드리는 모든 성도님들께 올 한해도 하나님아버지의 신실하신 은혜와 축복이 풍성히 임하시길 축원드립니다.
오늘 본문인 전도서는 다윗왕의 아들인 솔로몬왕이 기록한 말씀입니다.
새해 첫주일 예배를 맞아 지혜자가 주는 교훈을 통해 새해를 어떻게 살아갈지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솔로몬왕은 젊은 시절 아가서를 기록했고 장년에 잠언을 기록했고 노년에 이 전도서를 기록했습니다.
전도서에는 인생의 황혼녘에 모든 것을 관조하며 그가 깨달은 진리를 노련하게 풀어내는 늙은 지혜자의 통찰이 배어있습니다.
솔로몬의 인생에 안타까운 점은 그가 이 땅에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모든 지혜를 받았지만 하나님을 아는 지혜는 부족했다는 것입니다.
그의 인생은 인간의 지혜로 누리고 이룰 수 있는 삶의 한계를 우리에게 교훈적으로 보여줍니다.
오늘 전도자의 깨달음을 살펴볼 때 새해에 우리에게 주어진 귀한 시간들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를 성령님께서 깨닫고 결단하게 해주시길 간절히 원합니다.
본문의 첫 번째 교훈은 인생의 모든 때를 하나님이 주관하신다는 것입니다.
먼저 본장 1절은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라고 시작합니다.
인생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다 때가 있다는 것이죠.
그리고 하나님의 힘이 모든 인간사에 미치고 있다는 것을 지혜자의 눈이 깨달은 것입니다.
이 땅에서 모든 시간들은 마치 우리 인간이 주도적으로 이루어가고 있는 것 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솔로몬이 깨달은바가 무엇입니까?
노년에 그의 인생을 돌아보니 자기가 안간힘을 쓰고 이루려했던 것들이 결국은 하나님의 시간에 하나님의 뜻에 의해 이뤄졌다는 것입니다.
모든 권력과 부와 지혜를 가진 사람도 자기 마음먹은 대로 인생이 되지 않았다는 것이죠.
11절에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다는 말씀은 하나님이 우리의 모든 때에 알맞은 계획을 두셨다는 뜻이고 또 그 계획이 선하고 아름답다는 뜻입니다.
선하신 하나님은 만물을 지으시고 통치하실 때 더하거나 뺄 것이 없이 완벽하게 행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새해 우리가 살아 갈 모든 시간 속에 가장 적당하고 아름다운 계획들을 예비해 주셨음을 믿습니다.
우리가 안간힘을 써 무언가를 내 손으로 일구는 것 같지만 사실 일을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인생을 돌아보면 현재의 우리 모습이 애초에 계획하고 원하던 데로 되어진게 아니지 않습니까?
젊을 때를 생각해보면 내가 어떤 인생을 살아야 될지 너무나 막연했고 뚜렷한 청사진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하나님께서 때에 따라 알맞은 문을 열어주시고 이 자리까지 인도해 주셨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옛날에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사건이 시간이 지나고 나서 돌아보니 너무나 놀라운 하나님의 계획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경탄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지금 당장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용하신 삶이 왜 이렇게 불공평하고 곤고할까 불만일 수도 있습니다.
내가 간절히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아시면서 왜 빨리 응답해 주지 않으시는지 답답할 때도 있죠.
솔로몬이 깨달은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한 눈에 다 파악할 수 없는 것이 지극히 정상입니다.
또 우리가 예측해도 소용없는 것은 우리가 상상했던 대로 일이 이뤄진 적도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다만 인생의 한 사건과 기간이 다 지난 다음 돌아볼 때 모든 의문이 풀리고 우리 생각을 뛰어넘는 더 좋은 하나님의 선하신 인도를 깨닫는 것이죠.
그러므로 우리는 현실의 문제나 장래의 일들로 인해 너무 골몰하고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어차피 일은 때가 되어야 이루어 지고 하나님의 때가 우리에게 가장 아름다운 때이기 때문입니다.
새해가 되니 어떻게 또 한 해를 살아가야 할지 어른들은 기대보다 걱정이 더 앞서는 게 사실입니다.
어려운 경제 속에서 지난 해를 힘들게 보냈지만 새해 전망들도 별로 낙관적이진 않습니다.
강추위와 함께 찾아 온 새해가 왠지 기대와 희망보다는 불안과 염려로 움츠러들게 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 말씀을 꼭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주신 새 날 속에 시기적절한 좋은 계획을 준비하셨고 그 길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를 가장 사랑하시고 가장 복받길 원하는 분이 누구입니까?
바로 우리를 위해 독생자를 주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이십니다.
우리는 내일을 미리 염려하고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만 우리를 신실하게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하루 하루 성실하게 따르면 되는 줄 믿습니다.
2013년 하나님께서 이 표어로 우리에게 용기를 주고 계시지 않습니까?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
우리가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고 우리는 우리 몫의 최선을 다하면 되는 것입니다.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면 우리가 할 일은 무엇입니까?
조용0 목사님의 예화가 도움이 될 것입니다.
625전쟁 뒤 다들 그랬지만 조목사님 역시 먹고 살기 위해 소금땀을 흘려야 했습니다.
그 때 시장을 돌아다니며 명태장사를 하셨다고 합니다.
명태는 좀 가볍고 냄새도 덜 나서 명태장사로 꽤 오랫동안 생계를 이어갔다고 합니다.
가난에 찌들고 몸도 허약했던 명태장사 청년을 볼 때 무슨 소망이 있었겠습니까?
그때는 자기가 결국 명태처럼 바짝 말라서 죽게 될 것 같았다고 합니다.
목사님 생각에 당시는 미군이 사회 주도권을 행사하던 시대라 영어를 좀 배우면 무슨 일이라도 하겠다 싶었습니다.
그런데 학교를 갈 수 없으니 영어를 배울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장사하는 틈틈이 매일 영어단어를 열 개씩 외우기로 작정했습니다.
누가 보면 웃을 일이죠.
어깨에 명태다발을 짊어지고 지정석도 없이 온종일 시장바닥을 헤매고 다니는 사람에게 영어단어가 다 뭐가 필요하겠습니까?
조목사님 자신도 영어단어를 외우다가 이게 뭐하는 짓이냐며 자기를 조소했다고 합니다.
그래도 미래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그것 뿐이라 생각하고 끝까지 사전을 들고 다니며 영어단어를 외웠고 나중엔 영어책을 사서 그냥 통째로 외웠다고 합니다.
그렇게 공부한 영어로 결국 미국인의 도움을 받아 공부할 길이 열렸습니다.
나중에 조목사님이 선교현장에서 얼마나 능통하게 영어로 설교하시는 지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오늘 11절의 말씀대로 아닙니까?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조목사님이 영어를 읊조리고 다닐 때 그 일을 시작하게 하신 분이 하나님이신 것을 누가 알았겠습니까?
조목사님은 마음의 주신 소원을 따라 최선의 노력을 했을 뿐입니다.
그리고 결국 조목사님을 기독교계의 한 획을 긋는 지도자로 세우실 것을 또 누가 알았겠습니까?
한 가지 덧붙이자면 그런 분이 노년에 교계에 누를 끼치게 될 줄 또 누가 알았겠습니까?
위대한 일은 그런 연약한 인간 조용0목사님이 한 게 아니고 하나님이 하셨던 것입니다.
때로 내가 무언가를 시작하기로 결정한 것 같지만 거기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길이 역사 하시는 줄 믿습니다.
우리는 내게 주신 때가 아름답게 성취 될 날을 위해 지금 할 일을 성실하게 감당하면 됩니다.
현실을 생각하고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지금 내가 하는 이 일이 과연 내 인생에 무슨 도움이 될까, 뭐가 좀 달라질까 자신이 생기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과연 내 삶이 어떻게 펼쳐질 지 청년은 청년대로 장년은 장년대로 노년은 노년대로 두려운 마음이 앞을 막아서기도 합니다.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은 우리 편이시라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아버지 앞에 진지하게 새해 우리의 삶을 의논하며 기도하십시오.
기도가 능숙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미숙한 우리의 기도에 더 귀를 기울이시고 응답해 주십니다.
기도를 통해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을 점차 깨닫게 하시고 할 수 있는 용기도 주실 줄 믿습니다.
또 지금까지 해오던 것을 더 충실하게 감당할 때 거기서부터 더 나은 기회를 만드시며 이끌어 주시기도 하시는 줄 믿습니다.
학업과 업무와 진로에 대한 염려와 부담도 아버지께 맡기고 기도하면 분명히 지혜를 주시고 이끌어 주십니다.
기도는 필요에 따라 즉시 응답될 때도 있습니다.
또 어떤 것은 너무 오래 기도해도 응답이 없어 지칠 때도 있지만 계속 기도가 되는 것은 때가 되면 이루어질 기도제목이 확실합니다.
혹시 일이 이루어지는 게 보이지 않고 더디다 할지라도 낙심하지 말고 끈기있게 주님을 믿으시면 반드시 선한 결말이 있으리라 믿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이 가장 좋은 때 가장 좋은 방법으로 이루실 것을 믿습니다.
새해에도 우리를 선하게 인도하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축복들을 풍성히 주실 줄 믿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아멘.
두번째로 본문의 교훈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완성된 신구약 성경과 성령의 가르치심으로 우리가 영원히 사는 존재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구약시대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구약시대는 처음에 희미하게 메시야의 속죄와 구원과 영생을 보여주다 점차 계시가 뚜렷해집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모든 것을 확실하게 풀어주시기 전까지 영생을 완전히 이해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막연할 지라도 인간의 본성 속에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넣어두셨습니다.
아무리 고등동물 침팬지라 해도 인간이 아닌 어떤 존재도 영원을 바라며 하늘을 향해 신을 찾는 동물은 없습니다.
비록 미개한 종족이 잘못 된 신을 찾는다 해도 오직 인간만이 신을 찾고 영원을 염원하는 것이죠.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인간의 마음 속에 지으셨기 때문입니다.
오래 전 TV에서 로거해드 거북이의 여행을 추적한 다큐멘터리를 방영한 적이 있습니다.
일본해에서 부화 된 로거해드 새끼거북이들은 멀리 태평양을 건너가 멕시코 해안에서 산다고 합니다.
그리고 산란기가 되면 이 거북이들이 멕시코 해안에서부터 일본 해안까지 장장 12,000킬로미터에 이르는 놀라운 대장정을 시도합니다.
폭풍과 해일과 상어의 습격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위험을 뚫고 고향바다를 찾아가는 것입니다.
인간의 지혜로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이 귀소본능을 하나님께서 동물에게 각인시키신 것처럼 사람들의 마음에도 영원한 본향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연어가 강물을 거슬러 올라 알을 낳는 모습도, 펭귄이 새끼를 낳기 위해 생명을 걸고 언 땅을 걸어 고향을 찾아가는 것도 하나님께서 그 모습을 통해 우리가 찾아가야 할 본향이 있음을 기억나게 하시려는 건 아닐까요.
우리는 돌아갈 영원한 고향이 다 있는 줄로 믿습니다.
돌아갈 집이 없다는 두려움이 얼마나 끔찍한 것입니까?
저희가 유럽여행을 갔을 때 겁도 없이 숙소를 정하지 않고 프랑스에 도착했습니다.
유로패스를 타고 리옹역에 내렸는 데 그 다음 가야할 곳이 없잖아요?
정말 막막했습니다.
인포메이션에서 간신히 인근에 숙소를 찾아주어서 다행이었지만 그때 생각을 하면 정말 갈 곳이 없다는 것이 얼마나 황망한 것인지가 떠오릅니다.
우리는 인생의 저녁이 찾아와도 당황하지 않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예비해 놓으신 돌아갈 영원한 집이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예수님께서 우리가 하나님나라에 영원히 거주할 수 있도록 십자가에서 모든 값을 치루시고 아름다운 천국의 처소를 준비하신 줄 믿습니다.
솔로몬은 그의 인생을 오직 이 땅에서 좋은 것을 다 누리느라 허비했습니다.
영원한 삶을 위해 준비한 게 없었기에 노년에 그의 인생을 헛살았다고 탄식합니다.
솔로몬의 삶에서 우리가 배우는 교훈은 인간의 모든 때에 영원을 준비하는 것이 참 된 지혜라는 것입니다.
이 땅의 것을 믿음을 위해 사용하는 것을 우습게 생각하는 사람이 정말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이 전부라고 생각하며 이 땅에 쌓아두며 사는 인생을 향해 안타깝게 말씀합니다.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우리가 영원을 준비할 수 있는 이 땅의 기간은 영원히 지속될 천국에서의 삶에 비하면 너무나 짧습니다.
이런 성령의 지혜를 새해에 우리에게도 충분히 깨닫게 해주셔서 아름다운 인생의 때를 영원을 위해 준비하며 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축원드립니다.
세 번째로 본문의 교훈은 이 땅에서 복되게 사는 게 무엇인가입니다.
12절에 사람들이 사는 동안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더 나은 일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 라고 말씀합니다.
다른 성경의 가르침과 마찬가지로 오늘 전도자 역시 기뻐하는 삶이 복된 삶이라고합니다.
그러나 기쁨은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기쁨이 회복되지 않는 한 세상의 기쁨은 일시적이고 모조품에 지나지 않습니다.
억지로 즐거워하고 기쁜 마음을 짜내려한다고 되지 않습니다.
온갖 것으로 자기를 즐겁게 하려고 했던 솔로몬이 느낀 것은 그의 영혼에 참된 만족과 기쁨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쁨은 우리를 강하게 합니다.
새해에는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을 되찾아 생기 있고 힘 있게 사시기를 축복드립니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가 이런 영혼의 깊은 곳에서 끊임없이 솟아나는 기쁨을 가질 수 있습니까?
기쁨에 대한 성경의 많은 가르침 중 몇 가지만 생각해 보겠습니다.
먼저 느헤미야서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우리가 나를 구원하시고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가만히 묵상할 때 성령께서 우리 심령에 샘물이 솟아나듯 퐁퐁퐁 작은 기쁨을 일으키시는 걸 경험합니다.
그 기쁨이 우리를 강인하게 하는 것입니다.
또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기도하며 주님과 교제하며 응답받을 때 우리 기쁨이 충만해집니다.
기도하는 삶에 기쁨이 있습니다.
또 우리가 근심 걱정으로부터 자유할 때 우리 심령에 기쁨이 찾아옵니다.
어떻게 우리가 늘 우리를 무겁게 덮고 있는 근심과 염려의 그늘에서 자유할 수가 있습니까?
그것은 14절에 있는 데로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은 영원하고 완벽하다는 것을 기억하고 모든 것을 전능하신 아버지께 맡길 때 근심에서 벗어납니다.
베드로전서 5장7절에서 베드로 사도 역시 이렇게 권면합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우리가 염려한다고 달라지는 것이 있습니까?
염려는 현실의 모든 문제를 더욱 고통스럽게 할 뿐입니다.
항상 하나님께서 도우셨다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참 어리석게도 항상 똑같은 염려와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새해에는 모든 염려를 힘써서 하나님께 맡기고 기쁨을 얻으시길 축원드립니다.
이런 기쁨을 하나님께로 부터 공급받을 때 우리가 매일 기뻐하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힘든 세상에서 잔잔히 샘솟는 기쁨이 우리를 지치지 않고 달려가게 합니다.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뻐하라고 반복해서 말씀합니다.
우리에게 기쁨보다 슬픔이 더 가깝고 웃음보다 무표정이 더 익숙하기 때문이죠.
매일 기쁨으로 삶을 대하는 것도 훈련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단번에 기쁨이 내려와 우리 마음을 영원히 바꿔줄 것을 기대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하늘로부터 성령의 기쁨이 임한다 해도 우리 가정이 불행하고 일터가 괴롭다면 그 기쁨은 순식간에 사라져버릴 것입니다.
가족의 불화로 마음에 근심이 가득한 데 찬송을 부르고 기도한다고 기쁨이 지속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내려주시는 기쁨이 지속적으로 충만하기 위해서는 우리 삶 전체를 서서히 하나님의 기쁨으로 바꾸어 가야 합니다.
그리고 나만 아니라 내 가족, 다른 사람도 이 기쁨을 누리고 살 수 있도록 그들에게 선을 행하며 살라는 것이 전도자의 교훈입니다.
우리의 기쁨을 빼앗는 자 마귀가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힘써 가정과 학교와 일터에서 선을 행하며 단조로운 생활 속을 하나님의 기쁨으로 채워가는 훈련이 필요한 것입니다.
또 13절에서 말씀합니다.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선물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먹고 마시고 수고한 소득으로 일상의 소소한 낙을 누리며 살도록 선물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삶은 그렇게 평범하고 평화롭고 기쁨이 전체 삶에 녹아있는 그런 삶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크고 대단한 일을 이루기도 하지만 매일의 낙을 누리며 평범하고 기분 좋은 삶을 누리는 것이기도 합니다.
새해엔 하나님이 주신 소박한 좋은 것들로 일상을 채우는 훈련도 우리에게 필요한 줄 믿습니다.
아침에 건강하게 눈을 뜰 수 있는 것, 빵 한 조각, 커피 한 잔이라도 음식 맛을 느끼며 즐길 수 있다는 것에 감사와 기쁨을 누리는 것입니다.
사랑을 나눌 가족이 있고 울타리가 되 줄 가정이 있다는 것도 감사하며 기쁨을 느끼는 것입니다.
일상에서 느긋하게 기쁨을 맛보는 것도 훈련이 필요합니다.
아무튼 모든 좋은 것은 다 훈련이 필요합니다.
원망과 불평, 근심, 걱정, 게으름, 비평 이런 것들은 저절로 되지만 우리 자신을 행복하고 윤택하게 하는 좋은 것들은 한결 같이 훈련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너무 심각하게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지도 모릅니다.
작은 일들에서 기쁨을 찾고 마음을 자꾸 가볍게 하는 훈련은 너무 나 자신에 집중하고 집착하는 데서 벗어나게 해줍니다.
우리를 괴롭히는 문제들 중엔 사실 그렇게 까지 신경을 곤두세우고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될 일도 많습니다.
나와 내 인생이 혹시라도 잘못 될까봐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좋은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나 자신보다 더 소중하게 대하시고 보살피시기 때문입니다.
귀찮고 괴로운 일도 즐거운 마음으로 좀 바꿔먹고 하면 신기하게 그 일에서도 기쁨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설거지도 얼른 해치워야 되는 마음으로 우당탕 거리고 하면 귀찮은 일거리지만 그릇을 닦으며 느긋한 기분을 누리면 의외로 작은 기쁨을 맛볼 수 있습니다.
새해에는 좀 힘든 일, 얽혀서 풀리지 않는 일, 성가시고 불편한 일들을 만날 때 그 안에서 기뻐할 일을 찾고 느긋하게 풀어간다면 훨씬 좋은 시간들을 보낼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마음을 바꿔서 해결될 수 있는 일이면 마음을 바꾸어야 합니다.
마음 바꾸는 것이 쉬운 일은 물론 아닙니다.
그러나 환경을 바꾸는 거야 말로 마음먹은 대로 되는 일이 아닙니다.
마음 바꿔서 우리 삶이 좋아질 수 있다면 마음을 바꿔서라도 우리를 억누르는 짐을 좀 덜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기뻐하고 감사하며 사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삶이 힘들 때 그런 기쁨을 주시길 기도하면 성령께서 우리 마음을 인도해주실 줄 믿습니다.
뭐 별다른 인생이 있습니까?
열심히 땀흘려 수고하고 그걸로 가족끼리 오순도순 먹고 마시며 낙을 누리면 족하지 않겠습니까?
수고할 직장이 있고 돌봐야 할 가족이 있는 것도 다 하나님의 선물인 줄 믿습니다.
이어0씨의 딸 이민0 목사님이 살아생전 자신의 책에서 고달픈 그의 인생을 털어놓았습니다.
이화여대를 3년만에 졸업한 촉망받던 인재였던 이목사는 당시 문학사상에 등단한 김한0 씨와 결혼하고 미국 유학길에 올랐습니다.
아이를 낳고 공부를 하고 생활비를 벌기 위해 두 사람은 삶과 힘겨운 사투를 벌여야 했습니다.
남편은 밤엔 흑인들도 꺼려하던 야간 주유소에서 일하고 낮엔 햄버거 가게에서 최소한의 일당을 받으며 이를 악물고 일했습니다.
내일의 행복을 위해 현재의 기쁨을 잠시 미뤄두자며 각자가 악착같이 뛰었습니다.
이목사님은 짧은 기간에 로스쿨을 마치고 캘리포니아주 검사로 임용되었습니다.
집도 마련했고 드디어 원하던 것이 다 성취되었지만 매일의 작은 기쁨을 희생했던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두 사람은 함께 기쁨을 나누는 법을 잊어버린 다음이었습니다.
결국 가정이 깨지게 되었을 때 현재 일상의 작은 기쁨을 가족이 함께 나누는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았지만 돌이키기엔 너무 늦은 것입니다.
절대 미래에 모아서 누리자고 지금 당장 누릴 작은 행복마저 저당 잡히지 는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우리가 보기에 넉넉하지 않고 즐기기에 너무 이르다고 생각되는 현실에서도 얼마든지 작은 낙을 누리도록 축복하신 줄 믿습니다.
새해에는 매일 일상에서 기쁨을 찾아 하나님 안에서 감사하며 누리며 어려운 시기를 잘 이겨내시길 축원드립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본문에서 마지막으로 지혜자의 결론은 하나님을 경외하라는 것입니다.
전도서12장13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
새해 소망하는 것들을 크게 이루시길 축원드립니다.
그러나 우리 삶의 가장 깊은 곳에 하나님을 모시고 경외하는 지혜자가 되시길 축원드립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모든 판단과 행동에 유일한 지침이 될 때 새해에 준비해 놓으신 모든 축복이 남김없이 다 이루게 하실 줄 믿습니다.
또 오늘 우리에게 허락하신 작은 기쁨들을 내일로 미루지 마시고 누리시길 축원드립니다.
감사함으로 먹고 마시고 또 수고하며 얻은 물질로 낙을 누리며 주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희락과 평강의 삶을 매일 매일 사는 한해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2013년 1월6일 주일설교 남수연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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