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하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사무엘상17장34절-49절)

남수연 2013. 4. 26. 12:59

 

 

다윗과 골리앗 이야기는 아담과 이브 이야기만큼 세상 사람들에게도 잘 알려진 성경이야기입니다.

상대가 되지 않는 강자와 약자와의 싸움을 세상에서도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라고 부릅니다.

개그맨 김병0 씨와 강호0 씨의 탁구대결을 놓고도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라고 제목을 붙였더군요.

나이가 들고 신앙생활 좀 하다보니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서 불편한 진실을 대하게 됩니다.

돌맹이 하나에 골리앗 같은 장수가 쓰러진 데 의혹을 갖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 순간 반드시 나를 도울거라는 확신이 어떻게 다윗에게 생겼을까 하는 의혹입니다.

분명히 다윗은 우리와 똑같은 희로애락을 가진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을 성경은 감추지 않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왜 우리는 그런 믿음이 생기지 않는 것일까요?

오늘 다윗의 모습을 통해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의 단서를 발견하길 원합니다.

그리고 우리도 다윗처럼 지금 하나님이 내 편이시고 현재 나의 도움이 되신다는 사실을 꼭 깨닫길 원합니다.

골리앗과 같이 내 믿음생활을 위협하고 우리 가정을 괴롭게 하는 모든 문제의 돌파구를 찾도록 성령께서 말씀의 능력으로 임하시길 간절히 축원드립니다.

 

본문의 배경은 이스라엘의 첫 왕인 사울왕 시대입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부족의 땅에 들어온 지 4백여년이 지난 시점입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부족의 정벌을 미루는 사이 가나안 땅의 전세는 완전 역전되고 말았습니다.

이젠 강성해진 주변 부족들이 오히려 하나님의 백성을 공격하고 지배하는 수치를 당하게 된 것입니다.

전쟁이 그런 것이죠.

상대방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 것입니다.

영적 전쟁을 상징하는 이 가나안 전쟁에서 하나님이 부족들을 전멸시키라고 하신 이유입니다.

성도들이 이 땅에서 싸워야 할 영적싸움을 말씀하시는 것이죠.

마귀와 죄에 속한 것들을 적당히 허용하고 세상적인 가치관을 따라 살면 당장은 큰 갈등도 없고 육신은 편안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결국은 남겨놓은 옛 존재들이 우리 옆구리에 가시가 되고 발목에 올무가 되어 큰 아픔과 고통을 줄 것입니다.

성령께서 말씀을 통해 버리고 고쳐야 할 습성들을 하나씩 깨닫게 하실 때 순종하는 것은 곧 나를 위한 것입니다.

세상은 결코 우리 편이 되지 않습니다.

어느 순간 태만하고 해이한 믿음을 송두리째 전복시키려는 악의 세력이 엄청난 풍랑을 일으키며 우리가 의지했던 행복을 집어 삼키려 닥쳐옵니다.

이스라엘은 이제 대단찮게 여겼던 대적에게 목숨을 위협받는 처지가 된 것입니다.

본래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 된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세우신 선지자들을 통해 하나님의 직접 통치를 받아야 했습니다.

신정국가이죠.

세상적인 기준으로 볼 때 당연히 국가 조직력이나 군사력에서 쳐질 수 밖에 없지만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한 무엇인들 문제가 되겠습니까?

그러나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고 왕정체제를 선택한 것이 문제였습니다.

세상적인 조건도 어리숙하고 하나님의 통치도 거부한 그들이 항상 외세의 침략에 떨어야 하는 약체가 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이죠.

이 부분은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습니다.

성도들이 세상에서는 세상적인 방법으로 살아보려는 것이 꼭 그것과 같은 것입니다.

세상일은 세상적인 방법을 써야 잘 될 것 같지만 막상 해보면 잘 안됩니다.

하나님의 백성의 능력은 세상 속에서도 하나님의 법을 따르고 말씀대로 지킬 때 세상이 갖지 못한 능력을 소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원수를 원수로 대하면 분명히 성도의 능력은 사라지고 맙니다.

교회가 세상적으로 살면 길에 버려져 발에 밟힐 것이라고 예수님이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배제하고 세상적인 머리만 쓰며 살아가는 성도들은 결국 둘 다 잃어버리는 것을 많이 봅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사울왕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통치를 원하지 않고 왕을 달라고 우겨서 세운 왕이 사울왕입니다.

세상적인 방식을 원했던 이스라엘백성들에게 꼭 맞는 세상적인 왕이었죠.

사울왕이 영적으로 얼마나 무관심하고 무지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잘 알 수 있는 성경의 기록이 있습니다.

아버지의 잃어버린 암나귀를 찾으러 나섰을 때 일입니다.

나귀를 찾지 못하자 사환이 사무엘을 찾아가서 물어보자고 할 때 사울은 사무엘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미 하나님의 사사로 이스라엘을 통치하던 유명한 사무엘을 사울만 몰랐다는 것입니다.

사울왕은 세상적인 방식으로 자기 왕권을 세우려 했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일에 실패하고 맙니다.

하나님의 뜻에 실패하면 세상에서도 실패합니다.

복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그의 제위기간 동안 항상 블레셋이 쳐들어오고 전쟁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지금도 이스라엘과 블레셋은 엘라골짜기를 사이에 두고 대치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블레셋은 이스라엘의 사기를 떨어뜨리기 위해 거인 골리앗을 내세웁니다.

보기만 해도 공포심을 일으키는 위협적인 용모의 골리앗은 이스라엘군대를 모욕하며 맞짱 뜰 장사를 내보내 한판 붙자고 떠들어 댑니다.

심리전을 펼치는 것이죠.

내보낼 맞수가 없는 이스라엘은 고스란히 모욕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두 나라의 군사들이 골짜기를 사이에 두고 옥신각신하며 40일 째 대치중에 있다 보니 군사들은 지쳐있고 군량미는 다 떨어졌습니다.

다윗이 전쟁에 출전한 세 형들을 위해 복은 곡식과 떡과 치즈를 날라다 주기 위해 왔다가 딱 전쟁에 말려든 것입니다.

하나님의 타이밍이 참 절묘하시죠.

마침 완전군장을 갖춘 거구의 골리앗이 괴물 같은 목소리로 포효하고 이스라엘군은 공포에 질려 도망치는 모습을 다윗이 목격한 것입니다.

젊은 청년 다윗은 하나님의 군대가 모욕을 당하는 모습을 보고 의분을 느끼고 골리앗과 싸우겠다고 나선 것입니다.

누가 봐도 승산이 없는 싸움에 하나님을 믿고 자신감이 충천한 다윗이 신기할 뿐입니다.

우리들 앞에 골리앗이 있을 때 어떻습니까?

하나님이 정말 나를 도와주실지 믿었다 의심했다 불안한 게 우리 믿음 아닙니까?다윗은 어떻게 이런 반석 같이 견고한 믿음을 갖게 되었을까요?

성경에서 찾아볼 수 있는 이유는 우선, 그가 사무엘에 의해 기름부음을 받을 때 하나님의 영이 그에게 임했다는 것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사무엘상17장13절에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신약처럼 내주하시는 성령님은 아니지만 다윗에게는 성령님의 감동하심이 있었다는 것이죠.

성령의 충만함을 받을 때 용기와 담대함과 하나님께 대한 견고한 신뢰가 생기는 것입니다.

위기에 흔들리지 않는 믿음은 역시 성령 안에서 충만한 은혜가운데 거할 때라는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우리는 또 한가지 이유를 발견하게 됩니다.

다윗의 용기와 하나님이 언제고 그의 편이시라는 확신은 경험을 통해 얻어진 바로 믿음의 평소실력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평범한 삶 속에서 실제적인 하나님을 경험하는 믿음이 위기에서도 하나님을 믿게 합니다.

성경의 지식들은 우리의 삶을 통해 체험되고 체득되지 않으면 아직 내 것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다윗은 34절에서 목동으로 겪었던 체험을 이야기합니다.

사자나 곰이 와서 새끼를 물어 가면 쫒아가 치고 새끼를 건져냈고 사자가 일어나 다윗을 해치려하면 수염을 붙잡아 그것을 쳐죽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이 사자의 이빨에서 자신을 건져내신 것이라고 합니다.

자기 힘인지 하나님의 도움이신지는 본인이 알지 않습니까?

이 이야기는 어린 다윗이 얼마나 거친 광야의 위험 속에 절박하고 고독한 시간들을 보냈을지를 말해줍니다.

이새의 여덟 아들 중 막내 다윗은 사무엘이 차기 왕을 찾아 그의 집에 왔을 때도 혼자 양떼를 치러 밖에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별 위력 없는 가문에다 그것도 형들의 기세에 눌리고 험악한 일을 도맡아 했던 목동 다윗이 의지할 것은 없었습니다.

광야에서의 두려운 밤을 떨며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만 찾았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죠.

그리고 하나님은 다윗이 위기에 쳐해 소리칠 때 마다 모든 위험에서 한결같이 그를 건져주셨습니다.

믿음은 죽은 다음 천국에 가는 것만이 아닙니다.

지금 살아계신 하나님과 천국의 능력을 맛보며 사는 것입니다.

어려움이 닥치고 원치 않는 문제가 생기면 얼마나 심장이 두근거리고 정신이 아뜩해집니까?

내게 위험이 닥친 것을 직감하는 순간 거의 평상심을 갖기가 힘듭니다.

골리앗과 같은 문제들은 우리 생애에서 수도 없이 많습니다.

가족과의 사별, 직장의 해고, 자녀들의 탈선, 육체와 정신의 질병 등 간이 떨어질 것 같은 문제가 얼마나 많습니까?

이런 문제로 가정이 큰 상처를 받고 최악의 빈곤층으로 전락하기도 합니다.

살아계셔서 이 문제에서 나를 도와주실 하나님을 붙들지 못하면 세상사람과 똑같이 혼란 속에서 괴로움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평소에 멀리 계신 하나님은 위기의 순간 더 멀리 계신 것처럼 느껴집니다.

다윗처럼 광야 같은 인생에서 매일 하나님을 만나고 목자되신 하나님을 경험하며 살아야 위기의 순간에 바로 곁에 계신 하나님을 꽉 붙드는 것입니다.

우리는 인격체이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깁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체험, 인격적인 하나님과의 동행이 믿음의 핵심입니다.

체험적인 신앙만이 다리가 떨리고 머리가 멍해지는 시련의 날에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도우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붙들 수 있는 것입니다.

사자와 곰의 발톱에서 나를 건져주신 하나님이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내실 것이라고 다윗은 확신하지 않습니까?

지난 날 고난 중에 나를 도와주시고 인도하신 하나님을 경험했기에 오늘 문제 앞에서 의연하게 주님을 의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일과 중에 매순간 하나님을 의식하고 동행하는 것은 믿음의 훈련입니다.

하나님 면전에서 우리가 살고 있다는 인식은 점차 우리를 더욱 안정되고 강건하게 붙들어 줍니다.

또 부지런히 말씀을 듣고 읽으실 때 성경 속의 예수님이 걸어 나와 내 삶에 들어오시는 생생한 체험을 주실 것입니다.

무엇보다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목숨을 주셨다는 그 사랑을 깨닫는 것이 하나님과의 관계의 절정입니다.

십자가 사랑을 경험하기를 매일 기도하고 매일 그 사랑을 떠올려야 합니다.

예수님의 그 사랑을 알 때 비로서 우리의 자존감이 회복되고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실거라는 확신이 생기는 것입니다.

믿음의 성장에는 로또가 없습니다.

자연만물의 이치가 하나씩 배우고 하나씩 깨닫고 내 몸에 점점 사실적인 경험이 되듯이 믿음도 그렇습니다.

이렇게 몸으로 영혼으로 하나 하나 체득 된 금보다 더 귀한 믿음을 가지시길 축원드립니다.

위기의 순간 이 경험과 성경의 진리들이 우리를 견고히 붙들어 줄 것입니다.

어려운 사건 앞에서 감정이 우리를 휘두르기 시작하면 실패합니다.

오직 말씀대로 확신하고 도우시고 함께 하실 하나님을 신뢰할 때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가 다윗의 도전에서 한 가지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내게 닥친 일을 감당하기도 힘들지만 성도에겐 하나님 나라를 위해 자원하는 고난도 있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나서지 않아도 좋을 일에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는 골리앗을 보자 하나님의 명예를 위해 격분해 일어섭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위한 헌신과 희생에는 놀라운 축복이 있습니다.

다윗은 이미 사무엘을 통해 비밀리에 차기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지만 이 사건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 확실한 명성과 신임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을 위해 성가신 일을 자청했는데 결국 그 일이 나를 영화롭게 한다는 것이죠.

전도왕이라고 불리우는 박병0 집사라는 분이 있습니다.

처음 은혜를 받고 교회를 둘러보니 성도가 없어 교회가 텅 빈 것이 너무 마음이 아파서 자기가 그 교회를 다 채우겠다는 말이 튀어나왔습니다.

말주변도 없고 성경도 모르는 데 무슨 수로 전도를 하나 암담했지만 약속을 지키기 위해 무조건 전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믿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때라 술친구가 많았던 박집사님은 술을 사줘가며 전도를 했다고 합니다.

처음엔 도대체 될 것 같지 않더니 점점 전도가 되어 가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 년에 300명을 전도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에 순천시의원 선거가 있었는데 전도로 너무 알려진 덕분에 시의원 중에 가장 표를 많이 받고 1등 당선이 되었습니다.

재미있죠?

하나님을 위해 일했는 데 그 영광은 자기에게 돌아오는 것이 바로 하나님나라를 위한 헌신의 축복인 것입니다.

그런데 몇 년 후에 박집사님은 시의원직을 버리고 지금은 전도 특강을 하기 위해 강사로 전국을 누비고 다닙니다.

한 걸음 더 나가 이 땅의 축복보다 영원한 하늘의 축복을 선택한 것이죠.

하나님 집을 위해 수고할 때 하나님은 나와 내 집을 위해 일하실 줄 믿습니다.

그런데 오늘 골리앗과 같은 문제 앞에서 우리도 나름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도하는 데 왜 다윗과 같은 기적적인 응답이 일어나지 않을까요?

다윗의 태도를 볼 때 문제는 우리 기도가 유일한 방법인가 아니면 여러 방법 중 하나인가의 차이가 아닐까 합니다.

골리앗을 향해 나가는 다윗에게 하나님은 유일한 방책이었습니다.

우리의 기도와 숙원이 풀리지 않는 것은 절대적이고 절박하고 진심을 다한 기도가 아니기 때문일 수도 있다는 것이죠.

우리가 하나님을 유일한 방책으로 믿는 데 어떻게 거기에 응답을 안하시겠습니까?

우리가 절박하고 진실한 마음으로 기도할 때 진실하신 하나님이 들으십니다.

평소엔 기쁨과 감사로 주님과 동행하고 어려울 땐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면 매일이 행복하고 어려움도 넉넉히 이기는 아름다운 성도의 삶이 될 것입니다.

일상생활에서 믿음을 한구석에 밀어두지 말고 모든 업무와 공부와 삶에 한 가운데 두시고 항상 주님과 동행하는 모두가 되시길 축원드립니다.

 

다음은 골리앗과의 싸움에서 하나님이 주신 다윗의 전략을 살펴보겠습니다.

절대적인 믿음으로 하나님을 신뢰했을 때 하나님께서 전쟁을 지휘하십니다. 우리를 훈련하고 모든 것을 지원을 해주시고 탁월한 지혜와 모략을 충만하게 부어 주시는 것이죠.

시편18편34절에서 다윗은 그의 경험을 이렇게 노래합니다.

(여호와께서) 내 손을 가르쳐 싸우게 하시니 내 팔이 놋 활을 당기도다

하나님의 지략으로 싸우시길 축복드립니다.

38절에 보면 먼저 사울왕의 전략이 나옵니다.

자기의 갑옷과 투구와 칼을 주어 골리앗과 정면전을 벌이게 하는 것이죠.

이게 승산이 있는 전략입니까?

2미터90의 거인과 칼싸움 경험이 전혀 없는 어린 목동과 정면전이 가당키나 한 작전입니까?

게다가 이 장면을 한번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과 무관한 인생을 살던 사울은 위기의 순간에 어린 다윗에게 전투권을 양도하는 부끄러운 모습을 보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결국은 왕복도 벗어주는 처지가 되고 맙니다.

하나님을 바라는 자는 결코 수치를 당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이렇게 축복하십니다.

요엘2장26 너희는 먹되 풍족히 먹고 너희에게 놀라운 일을 행하신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할 것이라 내 백성이 영원히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로다

다윗은 사울왕의 전략을 사양하고 하나님의 이름과 자신의 특기인 물맷돌을 무기로 선택합니다.

돌맹이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최종병기가 됩니다.

다윗은 이미 하나님이 주신 지략으로 명민하게 골리앗의 성격과 무장한 모습을 훑어보고 작전 계획을 세운 것입니다.

이 싸움엔 짐승을 쫒을 때 쓰는 물맷돌이 적격이라는 것이죠.

가죽 끈에 돌을 감아 휘두르다 목표물을 향해 던지는 그런 도구입니다.

본문 앞 부분을 보면 골리앗이 빈틈없이 갑옷으로 무장을 하고 있는 모습을 아주 자세히 묘사하고 있습니다.

머리에는 놋 투구를 썼고 몸에는 비늘 갑옷을 입었으니 그 갑옷의 무게가 놋 오천 세겔이며 그의 다리에는 놋 각반을 쳤고 어깨 사이에는 놋 단창을 메었으니 그 창 자루는 베틀 채 같고 창 날은 철 육백 세겔이며 방패 든 자가 앞서 행하더라

전차나 다름없이 무장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이 부분을 읽다가 갑자기 웃음이 났습니다.

이런 철두철미한 보호장구 중에서 빈틈이 보이지 않습니까?

바로 이마입니다.

딱 거기에 다윗이 물맷돌을 날린 것이죠.

우리를 아무리 질리게 하고 옴짝달싹 못하게 조여 오는 문제들에도 반드시 약점이 있고 탈출구가 있습니다.

살다보면 이 문제는 정말 더 이상 해결 할 방법이 없다는 절망감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어떻게든 그걸 뚫고 나오는 길을 내시며 해결방법을 가르쳐 주시는 것을 수도 없이 경험했습니다.

잠언20장5절은 말씀합니다.

사람의 마음에 있는 모략은 깊은 물 같으니라 그럴지라도 명철한 사람은 그것을 길어 내느니라

정말 큰일이다 싶어도 기도하며 곰곰이 생각하면 방법이 보입니다.

기도하면 그렇게 큰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고 문제가 만만하게 보이기도 합니다.

다윗에게 골리앗이 그렇게 거대한 장애물로 보였다면 어떻게 이길 믿음을 갖고 대항하러 나섰겠습니까?

성도님들 앞의 문제들이 만만하게 보이게 되시길 축원드립니다.

다윗은 시내에서 매끄러운 돌 다섯 개를 골라서 목동들이 차고 있는 주머니 안에 넣습니다.

그리고 그 손에 양을 보호하기 위해 짐승을 쫒던 막대기를 손에 들고 나섭니다.

그의 손에 물매 끈도 들려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골리앗의 눈에 막대기 밖에 보이지 않았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43절에 보니 네가 나를 개로 여기고 막대기를 가지고 나왔냐고 하죠?

물매만을 들고 나갔다면 어쨌든 골리앗이 방비를 했을 게 분명합니다.

다윗에 손에 들린 막대기는 물매가 실패했을 때를 대비한 게 아닙니다.

막대기가 베틀 채 같은 창 칼 앞에 무슨 무기가 됩니까?

다윗은 나름 전술을 쓴 것입니다.

그리고 전술이 적중했던 것이죠.

골리앗은 다윗의 손에 들린 막대기만을 보고 자기가 개 취급 당했다는 것에 흥분해 상대방에 대한 주의를 소홀히 합니다.

그 순간 다윗이 달려가며 주머니에서 준비한 짱돌을 꺼내 물매에 감아 골리앗의 비어 있는 이마를 조준해 정확히 날렸다는 것이죠.

그 돌이 이마에 박히고 그 충격에 골리앗의 육중한 몸이 한방에 쓰러집니다.

물론 날아가는 돌에 엄청난 속도를 내시고 이마에 돌을 박아 넣으신 것은 하나님의 권능이 함께 하셨기 때문이죠.

1993년 고고학자들이 이스라엘에서 발굴했다는 한 해골이 신문에 공개된 적이 있습니다.

오른 쪽 이마에 돌이 꽉 박힌 해골 사진었습니다.

해골의 크기로 봐서 키가 2미터는 넘을 것으로 추정되고 생물학적 연대로 봐서 다윗왕조와 같은 시기라고 밝혀짐으로 틀림없이 골리앗의 해골이라고 보도되었다고 합니다.

게재 된 사진은 커다란 해골의 이마 오른 쪽 편에 아주 이쁘게 생긴 짱돌이 하나 쏘옥 박혀있는 모습이었습니다.

고고학이란 것이 그렇듯이 사실이다 아니다 시끄럽다가 결론 없이 끝났죠.

누구의 두개골인지 하나님만 아시고 우리에게 증거가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주시는 지략과 작전으로 결국 승리했다는 것입니다.

이사야11장2절을 보면 하나님의 영은 지혜와 총명의 영이시고 모략과 재능의 영이시라고 말씀합니다.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님으로 충만할 때 우리로 지략가가 되게 하시고 한없이 명철과 지혜를 부어주십니다.

분명히 가야 할 목표가 있지만 힘도 없고 재능도 딸리고 자신감이 떨어질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하나님께 기도하며 지혜를 구할 때 길도 열어주시고 지략도 주시고 그 길로 한 걸음씩 인도해주실 것입니다.

시편48편14절에서 말씀합니다.

이 하나님은 영영히 우리 하나님이시니 우리를 죽을 때까지 인도하시리로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해주신다는 약속만 주신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무슨 일을 어떻게 하며 살아야 할지 우리를 지도해주십니다.

다윗은 그의 평생에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많은 전쟁에서 승리했던 지략이 뛰어난 장수였습니다.

그는 그 명철을 하나님께 얻었고 명철을 얻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지켰다고 고백합니다.

시편119장100절 내가 주의 법도를 지키므로 나의 명철함이 노인보다 승하니이다

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내 행동의 기준으로 삼고 힘써 말씀대로 살아가면 우리에게도 인생을 능히 감당하고 이길 명철과 지략을 주실 것을 확신합니다.

또 다윗에게 주신 전략은 평소 그가 갈고 닦았던 기술과 관련된 것을 우리는 주목해야 합니다.

당시 목동들에게 물맷돌 돌리는 기술은 무기 구실을 톡톡히 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사기20장16절에 베냐민지파의 군인들이 대단한 물맷돌 선수였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모든 백성 중에서 택한 칠백 명은 다 왼손잡이라 물매로 돌을 던지면 조금도 틀림이 없는 자들이더라

다윗은 양을 칠 때 물매 던지는 훈련을 완벽하게 마스터했기에 자신있게 물매병기를 들고 골리앗을 대적한 것입니다.

우리 앞 길을 열어주실 때 그동안의 내 삶과 무관한 것이 뚝 떨어지지 않습니다.

내가 가진 장점과 재능, 그리고 그동안 연마했던 기술들이 나중에 보면 평생 의 생업과 분깃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뤄야 할 목표와 장애를 극복할 방법은 이미 우리에게 주어진 것 들 중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셔서 이 땅에 보내셨을 때는 누구에게건 세상에서 유리한 능력과 장점을 한가지씩은 주시는 줄 믿습니다.

아무리 하찮은 장점이라도 그것만으로도 세상을 살아가긴 충분합니다.

KBS의 강연100도라는 교양프로그램에 김일0 란 사람이 나왔었죠.

카드대출을 받아 화장품 가게를 열었지만 경제위기 때 문을 닫아야 했고 또 빚을 내서 차린 PC방도 문을 닫고 남은 것은 2억원의 빚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택한 것은 한 켤레 삼천원씩 받는 구두닦이였습니다.

이 구두닦이로 2억 빚을 다 갚고 가정을 충실히 꾸려가고 있다고 합니다.

아무 기술과 재능이 없어도 그의 장기인 성실하나 만으로도 가족을 행복하게 먹여 살리는 가장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보고 내가 가진 것을 보면 아무짝에도 쓸데 없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에 최선을 다하며 실력을 갖춰나가는 것이 축복된 미래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가진 조건과 배경과 실력을 부러워하지 말고 지금 내게 주신 현실에서 주님을 의지하고 앞으로 나가길 축원드립니다.

가진 것도 별로 없이 애를 쓰다보면 지치고 낙심되고 포기하고 싶을 때가 더 많습니다.얼마 전 스피드스케이트 일인자인 이상0 선수가 했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기자들이 슬럼프는 없냐고 물었을 때 이 선수가 대답했습니다.

"저는 슬럼프가 자기 내면에 있는 꾀병인 것 같아요.

마음 속 어디엔가 하기 싫은 구석이 있는데 슬럼프라는 핑계를 대면서 계속 안하는 거죠.“

이 선수는 그런 마음이 들 때면 야간 운동까지 하며 더욱 도전했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경기에 성적이 안 좋으면 또 달렸고 그러다 보면 아주 미세하게 조금씩 조금씩 좋아진다고 합니다.

아직 어린 선수가 어떻게 그런 의지를 갖게 되었는 지 참 기특합니다.

어머니가 지하 셋방에서 미싱을 돌리고 벼룩시장에서 얻어다 준 스케이트로 시작했지만 이 선수는 이 노력으로 당당하게 자기 꿈을 이뤘습니다.

너무 가진 게 없고 초라한 내 모습에 이뤄야할 꿈도 못 꿀 때 얼마나 슬픈 일입니까?

다윗의 목동 차림과 물매돌 병기 역시 초라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물맷돌이 돌직구가 되게 하시는 줄 믿습니다.낙심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성공적인 인생을 위해 믿음에 굳게 서시길 축복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이 싸움의 구속사적인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은 단지 부족간의 싸움에 개입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 대한 전체적인 내용을 자세히 읽어보면 관심을 끌만한 단어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이새의 아들 다윗, 베들레헴, 아버지의 양, 양의 새끼를 사자의 입에서 건져내는 목자, 골리앗을 쓰러뜨린 돌(다니엘의 환상 중에 우상을 부순 뜨인 돌), 여호와의 구원(예수란 이름의 뜻), 이 단어들은 마치 비밀 암호와 같이 한 사람을 지칭하고 있습니다.

바로 장차 다윗의 자손으로 오실 우리 주님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죠.

이런 정보들을 통해 점점 메시야의 윤곽이 드러나는 것이 구약성경입니다.

오늘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을 통해 사탄의 세력을 부수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하실 메시야가 오실 것을 이 사건 속에서 예표하고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 미래가 눈에 보이지 않는 골리앗처럼 우리를 두렵게 합니까?

매일 애를 써도 변하지 않는 지루한 환경이 골리앗처럼 우리를 지치게 합니까?

우리에겐 죽을 때까지 돌봐주시겠다는 전능하신 하나님아버지가 계십니다.

시편 81편10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 네 하나님이니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하였으나 내 백성이 내 소리를 듣지 아니하며 이스라엘이 나를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하나님은 우리를 축복하고 도와주실 준비 끝내셨다는 것입니다.

우리 입을 넓게 열면 채워주실 것인 데 만복의 근원되신 하나님께 구하지 않고 엉뚱한 데 공을 들였고 이스라엘은 실패했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셨을 뿐 아니라 인생의 목자가 되셔서 모든 필요를 공급해 주시는 하나님을 믿고 내일을 향해 입을 넓게 열고 간구하길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구하고 생각하는 것 이상의 넘치는 은혜로 응답하실 줄 확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