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누가복음10장17절-20절(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남수연 2014. 12. 29. 18:42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누가복음10장17절-20절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70명의 제자들을 복음전도를 위해 파송하신 내용입니다.

이 사건을 통해 예수님께서 관심을 갖고 있는 일과 우리의 관심이 얼마나 다른지를 또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잘 되는 일에 관심이 있습니다.

직장을 구하고, 집을 장만하고, 자녀들은 가르치며 먹고사는 일이 늘 우리의 주된 관심사입니다.그걸 무시할 수는 없는 일이고 그게 이생에서 살아갈 때 우리에게 떼어주신 기업이고 다스리고 정복해야 할 영역입니다.

다만 이런 우리 삶에 하나님의 관심사와 영원한 가치가 곁들여 질 때 진정 복된 삶이라는 것을 오늘 말씀을 통해 살펴볼때 큰 은혜가 임하시길 소망합니다.

첫째는 복음을 전하는 것이 모든 성도들의 복된 소명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사건이 일어난 때는 예수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가까울 때라는 것을 먼저 앞 장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인류의 모든 죄를 속죄하실 십자가의 죽음과 승천을 앞두신 시점이라면 더욱 긴박하고 의미심장한 일을 하셨을 것입니다.

그게 바로 제자들만 따로 마을로 보내 전도하게 하신 일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실 때 잠시도 쉬지 않고 하신 일은 천국이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는 것이었습니다.

그걸 지금 제자들끼리 해보라고 하신 것은 그게 예수님께서 앞으로 제자들에게 맡기실 핵심 사역이라는 것 아니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제자 70명을 2인 1조가 되게 짝을 지워 예수님이 들어가실 동네에 미리 보내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보내시며 3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갈지어다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어린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이 말씀에서 나약한 제자들을 마귀의 세력과 상대하게 보내시는 주님의 심란한 마음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제자들이 그런 상황이라면 세상 사람들은 더더욱 사정이 나쁜 것입니다.

굶주린 사자 같은 사탄에게 먹잇감이 된, 어쩌면 이빨 사이에 낀 양이나 마찬 가지란 말씀입니다.

아무리 큰 소리를 치고 권력을 휘두르는 대단한 사람일지라도 마귀의 손끝에서 몰락하는 것은 순식간입니다.

땅콩 갑질이라고 하는 대한항공 조부사장을 보십시오.

평소처럼 혈기 한 번 부리고, 성질대로 사람을 깔보고 갑질을 했을 뿐인데 제대로 덫에 걸린 것입니다.

마귀가 파멸시키고 곤두박질치게 내던질 대상에서 제외 될 인간은 아무도 없습니다.

마귀에게 인간을 봐줄 자비는 눈꼽 만큼도 없습니다.

인기 절정에 올려놓은 연예인을 우울증과 마약과 스캔들로 무너뜨리는 건 사탄의 손가락 하나 까딱하면 끝날 일입니다.

아담 이후로 태어난 모든 인간들은 하나님의 보호막도 없이 보이지도 않는 거대한 어둠에 세력 앞에 먹잇감으로 돌아다니고 있는 것입니다.

이게 판타지영화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현실, 펙트입니다.

지금도 하나님이 마귀의 활동을 제한하고 세상을 보존하시기 때문에 사람들이 멋모르고 세상 살만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귀신들려 인격이 파탄나고 절망에 빠진 사람들을 구출하러 양같이 연약한 제자들을 파송한 것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이들을 상대하고 돌아와서 이렇게 예수님께 보고하죠.

주여 주의 이름이면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이리 앞에 어린 양 같이 나약해 보이는 제자들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귀신들을 제압할 수 있는 유일한 무기는 바로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이라는 것이죠.

보이지 않는 귀신을 상대해 제압할 인간은 아무도 없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이름만이 세상의 마귀를 이길 유일한 비밀 병기입니다.

또 19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말씀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었으니 너희를 해칠 자가 결코 없으리라.

예수님의 권능을 받은 성도들만이 마귀를 이깁니다.

그런 우리를 해칠 수 있는 세력은 결코 없습니다.

예수님이 이런 능력을 주신 사람은 70명 제자뿐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 마가복음16장에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당부하셨습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 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이 말씀은 분명히 예수님께서는 믿는 모든 자들에게 사탄을 제압할 능력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그런 능력이 있는 줄 믿습니다.

무당이 신을 불러오는 데 예수 믿는 사람이 있으면 잘 안된다는 이야기 많이 들으셨을 것입니다.

요즘은 돈이 없으면 무당도 못한다고 하더군요.

큰 굿을 한번 해서 섬기는 귀신들을 달래려면 의상을 몇 벌씩 준비하고 최고급 음식을 차리는 데 천만원이 든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어느 목사님이 아주 어릴 때 굿하는 자리에서 빤히 무당을 쳐다보다 나사렛 예수이름으로 명하노니 귀신아 물러가라 그랬다고 합니다.

결국 그날 큰 굿판을 벌여놓은 무당이 애를 써도 귀신을 불러들이지 못했다고 합니다.

무당이 울며 냇가에서 칼을 닦는 걸 이 어린 소년이 보았다고 합니다.

물론 굿판을 깼다고 그 집 어른에게 혼쭐이나 도망쳤다고 하더군요.

우리 안에 성령께서 계시고 예수님이 주신 능력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우리가 악한 세력들에게 삶을 간섭받지 않고 평안 중에 살려면 이걸 잘 알아야 하고 귀신을 이길 실력을 확신해야 합니다.

대개 우리를 괴롭히는 문제들과 환경들은 우리의 죄성과 마귀의 합작품입니다.

그걸 잘 분별할 줄 모르면 늘상 당하고 사느라 평탄할 때가 없는 것입니다.

먼저 예수님의 이름의 능력을 받기 위해서는 본문의 제자들처럼 예수님과 관계가 분명히 맺어져야 합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받아 들이고 주님의 뜻대로 살아가기로 결단한 사람들이 주님과 제자의 관계가 되고 또 하나님과 자녀의 관계가 됩니다.

이 관계는 인격적 관계이지 명목적이고 추상적인 관계를 말하는 게 아닙니다.

인격적 관계란 우리가 서로 알고 신뢰하고 상대방과 연대감을 갖는 실제적인 관계를 말합니다.

우리의 관계가 상징적인 것이 아니라 실제 인격적인 관계가 되려면 먼저 예수님에 대해서 알아야 합니다.

알지 못하는 상대를 어떻게 신뢰하고 관계를 맺겠습니까?

그래서 무엇보다 말씀을 통해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믿을만한 분인지, 정말 그 말씀을 믿고 따라도 좋을 지 알아봐야 합니다.

기도생활보다 더 먼저는 예수님에 대한 지식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처음부터 기도를 가르쳐 주시지 않았습니다.

오죽 했으면 제자들이 먼저 우리에게도 기도를 좀 가르쳐 달라고 요청을 했겠습니까?그 때 가르쳐 주신 게 주기도문이죠.

상대에 대해 잘 알지 못하면 기도도 무의미한 주문 같은 것이 됩니다.

또 예수님과 우리가 인격적인 관계로 맺어졌다는 것은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는 행위가 실제적으로 있어야 합니다.

실제 생활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운 줄 알고 순종하고 말씀대로 따라 살아가는 것이 곧 예수님과 실제적인 관계 안에 있다는 뜻입니다.

말로만 믿는다고 하고 행동은 딴 짓을 한다면 그건 아직 둘 사이가 인격적으로 맺어지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는 무슨 신비적인 교감이 있거나 느낌이 아닙니다.

내가 우리 가족에 대해 잘 알고 신뢰하는 관계이기에 실제로 가족을 위해 봉사하고 무언가를 하는 것 같이 주님께도 그렇게 하는 것이 바로 인격적인 관계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신자들에겐 예수님의 이름의 권세와 능력이 함께 하십니다.

또 왜 예수님의 이름이 사탄의 권세를 이길 수 있는지를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사탄은 죄를 지은 인간을 볼모 잡아 하나님께 대항하려 했지만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속죄하시고 부활하셨기에 더 이상 협상할 인질이 없어진 것입니다.

예수님의 속죄를 받고 의롭게 된 우리를 인질로 잡을 수 없고 아무런 권세를 행사할 수가 없게 된 것이죠.

인질이 풀려나면 인질범은 끝장 난 것입니다.

하나님의 때에 심판받을 일만 남은 것입니다.

마귀는 신자들에 대해서는 이가 다 뽑히고 발톱이 다 빠졌다는 것을 믿을 때 우리에게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제어할 능력이 발휘되는 것입니다.

기도를 많이 한 사람에게만 귀신을 제어할 능력이 있는 게 아닙니다.

초등학교 남자아이에게도 예수님의 이름의 권세가 나타나지 않습니까?

다만 이 사실을 분명히 깨닫고 믿는 사람들에게만 이 사실이 적용되고 이 능력이 효력을 발생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19장13절을 보면 바울이 에베소에서 귀신을 내쫒는 것을 보던 사람이 그걸 흉내 내다 봉변을 당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마술하는 어떤 유대인들이 시험적으로 악귀들린 자들에게 대하여 주 예수의 이름을 불러 말하되 내가 바울의 전파하는 예수를 빙자하여 너희를 명하노라 하더라

그랬더니 악귀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하며 악귀 들린 사람이 그들에게 뛰어올라 눌러 이기니 그들이 상하여 벗은 몸으로 그 집에서 도망하는지라

예수님이 왜 사탄을 밟고 승리했다는 건지 분명히 알지 못하고 막연히 그 이름을 사용하고 있는 것을 귀신도 알아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성경을 통해 분명하게 알았고, 믿었고,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시기 때문에 마귀가 우리를 절대로 이기지 못합니다.

다만 마귀의 계략을 알지 못하면 걸려 넘어질 수는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보면 참 귀신들린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지금도 선교사들이 들어가 보면 복음이 전해지지 않고 무속신앙을 가진 미개한 지역에선 여전히 귀신들린 사람들이 그렇게 많다고 합니다.

마귀는 우리를 능가하는 뛰어난 교활함을 가진 영적 존재입니다.

어찌나 상대에 맞는 전술을 잘 쓰는 지 성경 여기저기 사탄이 등장하는 부분을 보면 그 교묘한 지략을 잘 알 수 있습니다.

과거에는 귀신이 인간을 장악하고 괴롭히는 것을 통해 사람들이 두려워 떨게 하며 주술과 무속을 통해 지배했습니다.

그런데 이젠 현대에 맞게 전술을 바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통해 이미 과거의 수법은 들통이 났고 먹히지 않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믿음이 연약한 것 같지만 귀신이 역사하는 상황이나 귀신들린 사람을 만나면 틀림없이 우리는 성령의 충동으로 그걸 쫒아내게 됩니다.

그런 경험하셨을 것입니다.

꿈에건, 무의식에건, 현실에서건 어둠의 세력이 인지되면 한 순간 주님의 이름을 불러 우리가 대적을 하게 됩니다.

우리 식구 중 누가 귀신들린 행동을 보인다면 내가 믿음이 없다고 주저하겠습니까?

일단 예수님 이름으로 나갈 때 까지 내쫒겠죠.

그러니까 이젠 전술을 바꾼 겁니다.

드러나지 않게 믿지 않는 사람의 인격 속에 숨어서 교묘하게 우리를 넘어뜨릴 덫을 만든다는 거예요.

괜한 소리로 주일 아침에 기분이 상하게 합니다.

상대에 입에서 불쑥 나온 소리에 낙담하게 하고, 시험들게 하거나, 비아냥거리고 이죽거리며 싸움을 걸어오는 경우도 있죠.

우리가 영적으로 둔감할 때는 당하고 나서야 겨우 알지만 영적으로 깨어 있을 때는 저 사람 속에 다른 인격체가 조종하고 있다는 게 느껴집니다.

그러면 어떻게 상대합니까?

거기다 대고 나사렛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귀신아 물러가라.

이랬다간 더 큰 싸움 납니다.

지혜롭게 그 상황에 엮이지 말고 노련하게 빠져 나가야 합니다.

우리가 감정적이 되면 그걸 알면서도 넘어가기가 쉽습니다.

무엇보다 현대사회에서 마귀가 사람을 낚는 거대한 올가미는 무신론입니다.

인간이 과학을 발전시키자 그걸 이용해서 신이 어디 있고 영혼이 어디 있냐, 우리는 자연의 산물이고 죽으면 끝이다.

이렇게 무신론의 올가미를 덮어 씌우는 것입니다.

이게 어떻게 보면 더 교활하고 무서운 덫입니다.

과거에는 하다못해 권선징악이라도 믿고 천지신명이라도 인식하고, 하늘이 무섭지 않냐 이런 의식이 있었습니다.

최근에 잔혹한 범죄들과 방종하고 타락한 사람들을 보면 신이 없으면 사람이 정말 무서울게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을 영적으로 보면 장미빛 낭만이 가득 찬 사랑스런 곳이 아니라 이리가 노리고 있는 칠흙 같은 어둠을 더듬고 다니는 곳입니다.

우리는 그 가운데서 빛이 되시는 예수님을 따르며 광명한 빛 가운데 길을 가는 사람들입니다.

제자들이 그런 세상에 파송되어 처음 수행한 전도의 성과 보고를 들으며 예수님께서 대견해하시고 수고했다, 애썼다라고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중요한 한마디를 덧붙이십니다.

사탄이 하늘로 부터 번개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이 말씀은 헬라어 시제를 적용시켜 해석하면 예수님께서 사탄이 하늘로 부터 번개처럼 떨어지는 것을 주목하여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이 말씀은 두 가지 정도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사탄이 공중에서 완전히 폐위되어 곤두박질 쳤다는 원천적인 그리스도의 승리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또 이렇게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제자들이 복음을 전하고 귀신을 내쫒고 병든 자를 고치고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자 마귀가 분을 내어 번개 같은 속도로 뛰어 내려왔다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마귀가 자기의 때가 얼마 못된 줄을 알므로 크게 분내어 너희에게 내려갔음이라 고 말씀합니다.

복음이 전파되고 인간의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니 사탄이 제 때가 다된 것을 보고 혈안이 되어 땅으로 뛰어 내려왔다는 것이죠.

그렇지만 예수님께서 이 마귀의 행동을 놓치지 않고 주시해서 지켜보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우리의 영적 싸움에 예수님이 눈을 떼지 않고 지켜보시고 성령님이 우리를 상하지 않게 지키고 보호해주십니다.

요한일서5장18절을 보면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엄위하신 시야에서 마귀에 의해 파멸되지 않게 보호받는 존재들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왜 제자들을 이런 살벌하고 위험한 세상 속에 복음을 전하게 파송하셨는 지 아시겠죠?

예수님을 모르고 성령이 그 안에 계시지 않는 사람들이 어떤 형편에 빠져 있는지를 이렇게 확실히 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제자들을 파송하셨고 오늘 우리 믿는 성도들을 복음을 전하도록 파송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받고 이 세상에서 해야 할 가장 중대하고 가장 가치있는 일은 복음을 전해서 사람을 마귀의 손으로 부터 구출해 내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있는 직장과 가정과 만나는 사람들, 발로 밟는 모든 곳이 다 우리를 파송하신 곳이라는 것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복음을 전해서 천하보다 귀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은 전도사나 목사나 선교사에게만 기회를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왜 그 영광스러운 일에 그들만 사용하시겠습니까?

모두가 다 왕 같은 제사장이고 하나님의 사랑을 똑같이 받은 성도인데요.

나중에 먹고사는 문제 좀 해결되면 그 때 전적으로 좀 헌신해보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좋은 생각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우리가 사는 환경 속에서 마귀의 덫에 걸려있는 영혼들을 우리의 힘을 다해 건져내길 원하시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그렇게 힘써서 우릴 전도했고, 우리가 신앙이 생길 때 까지 도와주었던 것처럼, 우리도 다른 사람을 살리는 그런 복된 사람이 되길 하나님께서 원하고 계십니다.

전도를 잘 못해도 괜찮습니다.

이들에게 예수님이 우리를 파송하셨다는 것을 분명히 깨닫고 기도로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꾸준히 애쓰다보면 때가 되면 거두게 하실 것입니다.

이런 사명감과 또 영적인 분별력을 갖고 우리를 무너뜨리고 불행에 빠지게 하려는 마귀의 세력 앞에서 의연하게 믿음으로 승리하고 영혼을 구출해 내는 모두가 되길 간절히 축원드립니다.

둘째로 능력보다 더 기뻐할 일은 천국에 우리 이름이 기록된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 이름으로 명령할 때, 귀신들린 사람이 멀쩡해지고 병든 사람들이 낫는 일이 눈앞에서 벌어지면 얼마나 놀라고 흥분이 되겠습니까?

제자들이 한껏 들뜨고 고무되어 돌아와 예수님께 전도의 성과를 보고했겠죠.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앞에 있는 마귀의 진을 믿음으로 쳐부수고 환경을 역전시키고 문제가 해결되는 승리를 맛보는 것은 말할 수 없이 기쁜 일입니다.

그것보다 더 기뻐할 일은 우리의 이름이 천국에 기록되어 진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1장 27절에 보면 요한사도가 그의 언어로는 그 영광스런 모습을 차마 표현하기도 버거운 찬란하고 아름다운 천국을 우리에게 소개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

그 영화롭고 아름다운 천국의 시민권자로 그곳에 이름이 올라있다는 것, 그걸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환호하고 기뻐 뛸 일이냐는 것입니다.

우리는 가장 기뻐하고 자랑해야 할 값어치를 잊어버리고 일시적으로 지나갈 것들에 마음을 너무 뺏기며 삽니다.

이 땅의 일들은 대부분 한순간에 지나가고 사라져 버리는 것들입니다.

과거에 집착했던 일들 다 어디로 가고 없지 않습니까?

눈에 보이는 현상, 당장 몸을 위하는 현실에 치심하지 말고 본질을 항상 인식하라는 말씀입니다.

당장 귀신만 쫒아내면 뭐하겠습니까?

그 안에 성령을 모시지 않으면 나갔던 귀신이 일곱 귀신을 더 데리고 들어갈 수도 있다고 그랬습니다.

신앙에서도 종교적인 성과보다 영혼의 구원이 본질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열망하고 기도하던 대학에 들어가고, 취직이 되고, 결혼을 하면 그 다음은 뭐가 기다리고 있습니까?

보나마나 그렇게 바라고 원했던 바로 그 일 때문에 또 기도제목이 생깁니다.

현재 내가 당하는 시련을 모면해 보았자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해서 좋은 응답을 받았지만 인간의 죄가 얽히고 섥힌 세상에선 응답받은 선물에 오물이 튀게 되어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현실에 모든 촛점이 맞춰져 있다면 매번 우리를 들었다 놨다하는 문제들 속에 에너지와 감정을 쏟아 부으며 인생을 소진합니다.

제가 경험한 바로는 세상의 아무리 기쁘고 좋은 일도 결과적으로 인간을 피곤하게 할 뿐입니다.

좋은 일도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하고 스트레스 지수가 꽤 높습니다.

그래서 좀 지나면 그것 역시 피곤할 뿐입니다.

전도서 1장 8절에서 지혜로운 전도자가 이렇게 말하지 않습니까?

만물의 피곤함을 사람이 말로 다 할 수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차지 아니하는도다

내 마음이 꽉 찼다, 정말 만족스럽다 이런 것은 이 세상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한 솔로몬이 무엇인들 안 가져 보았겠습니까?

부유한 노예라는 책을 쓴 로버트 라이시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옥스포드와 예일대학을 나와 클린턴대통령의 노동부 장관을 지내다 돌연 장관직을 사임하고 보통사람으로 돌아간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깨달았던 것입니다.

더 많은 것을 소유하고 더 중요한 자리에 올라갈수록 그걸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매달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 아무리 돈이 많고 권세를 가져도 결코 거기서 벗어날 수 없는 부유한 노예이고 성공한 노예밖에 되지 못한다는 것이죠.

정말 우리를 만족스럽게 하는 것은 하나님 자신과 하나님 안에서 우리가 행하는 보람 밖에 없습니다.

그럼 우리 현실의 수많은 난관과 문제들은 당장 어떻게 처리해야 합니까?

때로 우리 환경에 폭풍 같은 시련이 닥쳐올 땐 정신이 멍해지고 다른 세상처럼 느껴지는 공황장애가 일어날 만큼 감당하기 힘이 듭니다.

얼른 사태가 해결되고 다시 과거의 내 일상의 평정심으로 돌아가길 원하죠.

그런데 문제는 우리 삶에 늘 상 그런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아무 일도 없기를 바라고 아무 일도 없을 때만 행복하고 평안하다면 인생 전체에서 편할 날이 없습니다.

어떤 흉악한 환경 속에서도 우리에게 주어진 놀라운 비밀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인격적으로 하나님과 굳게 연합됨을 의식하고 주님을 의지하는 순간 언제고 세상이 염려가 넘어오지 못할 평안이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어떤 상황에든 주님과 연합된 상태에서만이 놀랍도록 명료한 지각과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을 다 체험하시길 원합니다.

그렇게 예수님과 함께 연합되어 산을 또 넘어가고 터널을 의연히 통과해 전진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의 성장과 성숙이 우리에게 너무나 필요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가 더 발전되도록 말씀을 더 배우고, 기도로 주님과의 관계를 친밀하게 하고, 말씀대로 살아가는 당당함으로 우리를 성숙시켜가는 게 얼마나 유익한지 모릅니다.

우리의 모든 행복과 좋은 것들과 만족은 다 예수님 안에서만 일어납니다.

이런 좋으신 주님을 더 많이 체험하고 깊은 관계를 맺게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우리는 천국에 이름이 기록된 사람들입니다.

세상과 마귀를 이길 권능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보장된 미래와 잠재된 강한 능력과 존귀한 정체성을 뺏기지 말고 더욱 강화시켜 나가야 할 줄 믿습니다.

세상은 점점 악화되고 사탄은 인간을 더욱 괴롭게 할 교묘한 덫으로 많은 사람들을 넘어지게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깨어있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깨어 의로운 주님의 자녀답게 살며 영적 싸움에서 생명을 구출하는 우리 모두가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드립니다. 아멘.

2014.12.21 주일설교 남수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