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

아가서2장 -일어나서 함께 가자 (여름수련회 설교)

남수연 2016. 8. 3. 15:00

오늘 이렇게 좋은 자연에서 사랑하는 주나산가족들이 함께 모여 교제하고 하나님께 예배드림을 감사드립니다.

오늘 아가서의 본문이 너무 아름답지 않습니까?

여기 아름다운 자연에 잘 매치되는 본문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아가서는 아주 독특한 성경입니다.

보시다시피 이렇게 남녀의 애정을 노래한 시가 과연 성경이 될 수 있을까 의아하실 것입니다.

꽤 농도 짙은 애정 표현도 있습니다.

갑자기 뒤적거리지는 마시구요.

아가서를 기록한 사람은 솔로몬이라고 11절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아가서는 얼핏 보면 하나님에 대한 언급도 신앙적인 권면도 없어 보입니다.

아름다운 구절에 이끌려 성경을 넘기지만 곧 난관에 부딪힙니다.

내용 구성이 의외로 친절하지가 않습니다.

남자와 여자의 고백이 서로 엇갈려서 나오고 사건배열도 시간순서가 아니라 좀 헷갈립니다.

그래서 아름다운 사랑의 노래인 것은 분명한데 접근하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아가서는 남녀간의 내밀한 사랑을 통해 하나님의 밀도 높은 사랑을 도전적으로 보여주시는 귀중한 성경입니다.

 

본서의 전체적인 줄거리를 먼저 말씀드리면 아가서를 읽을 때 좀 이해하기가 쉬울 것입니다.

솔로몬 왕은 예루살렘에서 좀 떨어진 에브라임 산지에 큰 포도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포도원을 한 소작인에게 맡겼는데, 그 집 딸이 여주인공인 술람미여인입니다.

그런데 이 술람미는 그 집에서 신데렐라 같은 존재였습니다.

함께 살고 있던 이복오빠들은 술람미를 포도원에 내보내 밤낮으로 일을 시켰습니다.

햇볕에 검게 그을린 술람미의 얼굴은 여인들의 비웃음거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솔로몬왕이 양치기처럼 포도원에 나타났습니다.

처음에 술람미는 솔로몬이 왕인 것을 모르는 상태에서 그의 준수함에 반합니다.

솔로몬왕도 역시 순수하고 건강한 술람미의 매력에 빠져 마음을 주고 깊이 사랑하게 됩니다.

둘은 포도원을 돌아다니고, 꽃향기를 토해내는 들판을 뛰어다니며 사랑을 나눕니다.

둘이 얼마나 사랑했는지 12절부터 입맞추고 야단입니다.

2장에서 벌써 진도가 꽤 많이 나갔습니다.

그가 왼팔로 내 머리를 고이고 오른팔로 나를 안는구나

그러나 솔로몬왕은 궁중으로 가야했기에 나중에 꼭 데리러 오겠다며 술람미를 떠납니다.

술라미여인은 떠난 연인을 믿지 못해 방황하기도 하지만 솔로몬이 돌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립니다.

결국 솔로몬왕은 약속대로 아름다운 가마를 보내 술람미여인을 왕궁으로 데려가 왕비를 삼고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고 보니 신데렐라 이야기가 맞네요.

제가 이렇게 정리를 해드려서 그렇지 사실 읽어보면 스토리가 이렇게 한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 아가서는 어떤 의미로 우리에게 전해주셨을까요?

물론 성경은 남녀간의 진실한 사랑과 결혼을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가르칩니다.

이런 남녀상열지사가 성경에 끼어 있다는 것은 남녀의 사랑과 결혼이 세상이 존재하는 한 여전히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지지하시는 것입니다.

청년들은 다 결혼하시길 축복드립니다.

그런데 이 아가서를 유대인들은 유월절 명절날 기념의식을 할 때 낭송합니다.

그러니까 아가서가 단순히 남녀의 애정을 다루고 있지는 않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겠죠?

유월절은 애굽의 노예로 지내던 이스라엘민족이 해방되어 탈출하는 과정에서 죽음의 사자를 피하기 위해 양의 피를 발랐던 사건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그러니까 아가서가 구원과 관련이 있는 예표적인 의미를 품고 있다는 뜻입니다.

줄거리를 들을 때 벌써 짐작하셨을 것입니다.

왕과 초라한 시골여자, 신분을 초월한 사랑, 신부감을 두고 떠나는 왕, 여인의 시련과 기다림, 약속대로 신부를 데려가는 왕, 그리고 행복한 엔딩.

척 봐도 예수님과 성도들의 이야기라는 걸 알 수 있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솔로몬과 술람미의 사랑은 바로 예수님과 성도들의 사랑을 예표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물론 솔로몬은 상상력을 동원해서 하나님과 성도들의 사랑의 관계를 시로 지어낸 것은 아닙니다.

가난한 시골처녀 술람미를 만나 사랑에 빠져 둘의 사랑을 절절한 연가로 지었고 결국 왕궁에 이끌어 왕비를 삼은 것은 사실에 근거합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장차 진짜 다윗의 후손으로 오실 예수님이 죄로 얼룩지고 고통에 찌든 인간을 사랑하여 신부로 삼으실 것을 기록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한편, 아가서를 기록할 때 솔로몬은 무명의 시골처녀를 사랑하는 자신의 모습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솔로몬은 다윗이 간음하고 살인해서 얻은 아내 밧세바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궁중에서 누구도 솔로몬을 달갑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많은 형제들 중에 솔로몬에게 다윗의 왕통을 물려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부끄러운 부모 밑에 태어난 솔로몬을 여디디야라는 애칭으로 부르며 그를 사랑하셨다고 사무엘서는 기록합니다.

솔로몬이 이것을 생각할 때마다 가슴으로 눈물을 흘렸을 것 같습니다.

우리도 조용히 나 자신을 생각해 보면 하나님께 그런 사랑을 받은 사람들인 것입니다.

솔로몬이란 이름의 뜻은 샬롬, 평강이란 뜻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술람미라는 이름이 솔로몬이란 단어의 여성형이라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술람미도 솔로몬이라는 것이죠.

여기서 잘 들으시기 바랍니다.

솔로몬은 자기가 술람미여인을 사랑하듯이 자신을 사랑해주신 하나님을 생각하며 여인의 이름을 자기의 이름과 똑같은 술람미로 대체한 것입니다.

솔로몬에게 술람미 여인은 자기 자신이고 술람미를 사랑한 솔로몬왕은 하나님이셨던 것이죠.

뭔가 굉장히 복잡하고 신비한 코드가 아가서에 담겨있는 것 같죠?

그러니까 솔로몬과 술람미의 사랑은 한편, 하나님과 솔로몬 자신의 이야기, 한 걸음 더 나가서 예수님과 우리 성도들의 이야기가 되는 것이죠.

아가서를 이런 관점으로 해석하는 신학자들이 있는 데 상당히 은혜로운 해석인 것 같습니다.

솔로몬은 정략적으로 많은 후궁을 두었지만 이런 연가를 지은 상대는 술람미 여인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사랑은 진실한 사랑이고 시의 제목처럼 노래 중의 노래인 것입니다.

솔로몬의 손과 눈과 뜨거운 감정을 빌려 예수님은 자신의 사랑을 우리가 이해하길 원하시며 이 아가서, 사랑의 시를 보내주신 것이죠.

 

오늘 본문은 솔로몬의 청혼부분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멋지고 아름다운 청혼이죠.

10절 부터 보십시오.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쳤고 지면에는 꽃이 피고 새가 노래 할 때가 이르렀는데 비둘기의 소리가 우리 땅에 들리는구나.

무화과나무에는 푸른 열매가 익었고, 포도나무는 꽃을 피워 향기를 토하는구나.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이 아름다운 청혼은 우리에게 하시는 주님의 음성으로 들으시길 축복드립니다.

여기서 겨울이 지나고 비가 그쳤다는 말은 우리 인생의 시련이 있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혹독한 시련 중에 주님 앞에 나오기도 하고, 이런 시련을 겪은 뒤 삶에 염증을 느끼며 예수님 앞에 나오기도 합니다.

그러나 언제, 어떤 상황에서든 주님의 음성에 응답하는 순간, 인생의 음산함과 비애는 끝이 나고 봄처럼 화창한 날이 찾아옵니다.

성도라면 누구나 진심으로 이런 간증을 말할 수 있습니다.

솔로몬왕의 사랑을 받은 술람미는 더 이상 오빠들에게 구박받던 천덕꾸러기가 아닙니다.

주님은 우리가 어떤 가혹한 처지에 있던지, 어떤 사람이든지, 우리를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라고 부르십니다.

예수님은 산상수훈을 지키나 안지키나 눈을 치켜뜨고 냉정하게 우리를 살피시는 게 아닙니다.

비록 하나님의 뜻에 완전하게 순종하지도 못하고, 인생의 수레바퀴에서 허덕이는 못나고 초라한 우리들일지라도 우리를 볼 때 예수님의 마음은 설레이고 가슴이 뛴다는 것은 황공하지만 사실입니다.

술람미여인의 눈빛에 애타하고, 목소리에 희열을 느끼고 항상 품에 안고 같이 있고 싶은 그 마음이 바로 주님의 마음입니다.

인간 감정에 심어주신 여러 종류의 사랑, 부모 자식간, 형제간, 친구간, 이성간의 사랑은 각각 하나님 사랑의 단편들을 반영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사랑하는 감정이 어디서 왔겠습니까?

다 하나님의 형상에서 온 것이죠.

세상의 모든 종류의 사랑들은 변질되고 왜곡되긴 했지만 하나님의 사랑의 성품의 단편이고,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것을 신약성경은 이렇게 표현합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죽으셨느니라.

사람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밑에서 하나님께 나를 사랑하는 증거가 무엇이냐고 묻습니다.

가장 진실한 사랑의 증거 밑에서 사랑의 증거를 요구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최고의 증거는 십자가의 예수님이시기에 다른 증거를 요구한들 더 시시한 다른 증거를 보여주실 수는 없습니다.

십자가의 사랑을 믿지 못한다면 어떤 증거도 믿지 못합니다.

 

그렇게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주님을 향한 사랑을 기대하십니다.

솔로몬을 향한 술람미의 전인격을 다한 열정적인 사랑을 주님도 우리에게 받고 싶어 하십니다.

누가 생명을 던져서 사랑한 그 사랑이 짝사랑이길 바라겠습니까?

성경은 성도들에게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명령하십니다.

네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네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힘입어 살며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거동합니다.

하나님은 시시각각 생명과 호흡을 주십니다.

모든 것을 만족하게 갖추고 내 영혼아 이제부터 평안히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라고 말한 어리석은 부자에게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네 예비한 것이 뉘것이 되겠느냐

우리의 존재는 하나님께 달려있습니다.

하나님이 진정 우리의 창조주시라는 것을 믿는다면, 예수님께서 정말 하나님이시고 날 위해 죽으신 것이 맞다면 우리는 목숨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해야 맞습니다.

그러나 저도 때로는 내가 정말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일까?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이런 고민에 빠집니다.

그래서 오죽하면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인가란 책을 다 사서 읽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영이신 하나님을 피조물인 우리가 어떻게 사랑할지는 성도들에게 항상 마음의 숙제입니다.

하나님은 신이시고, 우리가 사람들과 사랑하듯이 그런 똑같은 감정이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해야 할지에 대해 가르쳐주십니다.

예수님은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아가서를 통해서는 우리가 사람을 사랑할 때 나타나는 확실한 증거를 통해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사랑을 점검해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면 같이 있고 싶어한다는 것입니다.

연애시절에 서로 떨어지기 싫어서 집 사이를 둘이 오락가락하던 추억이 한번쯤은 다 있으실 것입니다.

각각 딴 집으로 가는 게 정 싫으면 결혼하는 것입니다.

떨어져 있는 게 너무 고통스럽기에 솔로몬왕은 술람미에게 일어나서 함께 가자고 청혼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입니다.

21세기에 손꼽히는 부흥전도자인 빌리그래함 목사는 최근에 자신의 삶에 대해 진솔한 고백을 합니다.

나는 모든 사람들 중 가장 큰 실패자입니다.

나는 사람들과는 많은 시간을 보냈지만 하나님과는 너무 적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과 사람을 위해 많은 시간을 보낸다 해도 하나님과 보낸 시간이 적다면 우리 또한 훗날 자신을 실패자라고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거듭난 성도라면 본능적으로 하나님과 시간을 보내는 것이 영혼에 가장 필요한 일이라는 것을 압니다.

하나님을 알게 되는 순간 하나님에 대한 그런 목마름이 생깁니다.

그래서 분주한 세상살이에서 성경을 뒤적여 보고, 기도를 해보려고 좀 어색해 하면서도 고개를 숙이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하나님과 끊임없이 우리의 생각들을 나눌 때만 우리 속의 갈망은 채워집니다.

성도들의 영혼에 공허가 있고, 삶이 시들하고, 불만족하다면 그 갈망을 채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성도들이 항상 행복감을 느끼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때때로 우리의 마음이 이유 없이 푸른 창공을 나는 새처럼 상쾌하고 천국의 안식을 얻은 것처럼 평안합니다.

우리의 깊은 갈망인 하나님을 꾸준히 바라고 주님 앞에서 시간을 보냈기 때문입니다.

신앙은 뚱하고 우울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많은 시간을 함께 할수록 우리는 유쾌하고 행복한 사람이 되어갈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힘써서 시간을 보내고, 산상수훈의 계명을 정성껏 지키는 것이지만, 폭죽처럼 터지는 희열과 행복감도 분명히 실재합니다.

고되고, 힘든 포도원의 일상에서 솔로몬을 만나 세상의 기쁨을 다 누린 술람미여인이 그랬잖아요?

우리가 술람미여인처럼 예수님을 간절한 마음으로 찾고, 주님과 함께 있기 위해 말씀으로 기도로 우리 삶을 채워간다면 복되고 유쾌한 나날이 되리라 믿습니다.

이번 주나산가족캠프를 통해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더 깊이 주님을 사모하는 모두가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2016년7월30일 주나산가족캠프 남수연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