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후서

서로 문안하는 교회 (고린도전서16장13절-24절) 송년주일 설교

남수연 2024. 1. 5. 00:55

 

https://www.youtube.com/watch?v=7L1ERyDZRS4

오늘 2023년 마지막 송년주일을 맞이했습니다.

올해도 크고 작은 어려움 속에서 살았지만 오늘 모여서 한해를 감사하는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건강을 지켜주시고 시험을 이기고 승리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믿음으로 살려고 했지만 생활에 치이고, 매일 피곤하고, 불가피한 상황 속에 살다 보니 하나님 앞에 늘 미안한 마음만 꾹꾹 누르며 올해도 지나는 것 같습니다.

바울사도는 우리와 같았을 고린도 성도들을 마지막으로 따뜻하게 위로하며 편지를 마무리합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한 해를 마무리하는 우리에게 믿음의 재도전을 하도록 격려하셔서 힘있게 내년을 또 준비하게 하시리라 믿습니다.

 

바울사도는 마지막으로 개인의 믿음을 권면하고, 헌신한 성도들을 칭찬하고, 마지막 안부로 편지를 마칩니다.

고린도전서를 배워 온 우리도 이 세 가지로 올해 우리 믿음을 잘 갈무리하고 새해에도 이렇게 힘쓰면 되겠습니다.

1. 성도들 개인이 힘써야 할 신앙 생활에 대해서 13절과 14절에서 아주 간명하게 요약해 줍니다.

13,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라

14절 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

실천적인 면에서 주신 말씀이니 어떻게 지킬 것인지를 간단히 보겠습니다.

1) 깨어 있으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성도들의 영적 졸음에 대해서 몇 번이나 비유와 훈계를 통해 강조하셨습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잠들기가 그만큼 쉽다는 것입니다.

깨어있다는 것은 경계하는 태도로 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깨어 있는 것을 기도와 연관시키셨습니다.

깨어있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우리가 기도생활을 지속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올해도 기도가 많이 부족했죠.

우리 신앙의 엔진은 기도입니다.

지난 1월에 네팔에서 비행기가 추락해서 70여명이 목숨을 잃은 사고가 있었습니다.

그 원인이 밝혀졌는데, 조종사가 실수로 동력을 차단하는 레버를 내렸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엔진에 추진력이 없어서 추락하게 된 것이죠.

기도가 없으면 우리 믿음이 비상하지 못하고 추락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또 깨어 있는 것은 하나님을 향해 스위치를 켜 놓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공중의 많은 전파들은 스위치를 ON으로 올리면 잡아낼 수 있습니다.

깨어있다는 것은 우리가 종일 하나님을 향해 스위치가 ON인 상태로 살아야 한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내가 하루에 얼마나 하나님을 의식하고 있는지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루 중에 수시로 예수님을 떠올리고 하나님을 의식하고, 말씀을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깨어 있는 데 도움을 줄 것입니다.

새해에도 더욱 기도에 힘쓰고 주님께 스위치를 ON으로 올리고 살아감으로 깨어 있는 모두가 되시길 축복드립니다.

2) 믿음에 굳게 서는 것입니다.

믿음에 굳게 서는 것은 말씀과 관련이 있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로마서 1017절의 말씀입니다.

올해 감사한 것은 우리가 말씀을 잘 상고하고 지켜보려고 조금이나마 노력을 했다는 것입니다.

제가 말씀을 전하면서 느끼는 것은 올해 들어 성도님들이 말씀을 듣는 것과 이해하는 것이 많이 달라지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는 것 같습니다.

믿음은 물론 하나님의 선물이지만 무엇을 믿어야할지도 모르는 데 믿음을 주실 수가 없으십니다.

제가 확신하건대, 예수님을 믿어보겠다고 오신 것은 이미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새해에는 특히 예배 설교를 더 진지하게 듣고 배우시길 축복드립니다.

그리고 배운 말씀을 기반으로 성경을 자꾸 읽다 보면 점점 이해가 되고 이해가 되면 믿음이 생기고 확신이 올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 삶의 기준은 말씀이고 말씀이 우리를 항상 바른 믿음, 바른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

요즘 차들은 신기능이 있더군요.

차선을 약간 넘어가면 핸들이 순식간에 낚아채듯이 자동으로 움직여 차를 본래 궤도에 돌려놓는 기능입니다.

차선을 이탈하는 졸음사고나 사각지대의 접촉사고 같은 것을 방지합니다.

말씀이 우리 믿음을 바른 길로 행하게 하고 굳건히 세워주는 것을 더욱 알아가는 새해가 되시길 축복드립니다.

3) 남자답게 강건하라고 합니다.

이것은 신앙생활에 의지적인 면을 생각하면 좋을 것입니다.

의지가 약하면 세상에서도 뭔가를 해내기가 힘듭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에서는 특히 의지가 약한 편인데, 새해엔 그것을 좀 더 보강해야 하겠습니다.

막연히 하겠다는 생각은 흐지부지 되기가 쉽습니다.

기도가 되네 안되네, 할 수 있네 없네. 그런 것 따지지 말고 목표로 세워서 의지로 지켜야 합니다.

말씀을 매일 읽는 것도 정하면 지킬 수 있습니다.

우리 몸은 쳐서 복종시키지 않으면 게을러서 저절로 되지 않습니다.

말씀과 기도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훈련하면 올해보다 더 믿음의 근육이 생겨 강인한 신앙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4)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는 것입니다.

이건 나의 영적 유익과 달리 상대방을 고려한 것이라 본성상 더 지키기가 어렵습니다.

사랑할만해야 사랑하고, 서로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다면야 어렵지 않죠.

그렇지 않은데 사랑해야만 하는 대상들이, 우리가 남을 사랑할 수 없다는 걸 확인시켜 주는 것입니다.

또 계속 사랑을 주면 결국 사람은 쉽게 보고, 배신을 돌려주죠.

사실 사랑하라는 주님의 명령은 제자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나 같은 죄인을 위해 주님께서 어떤 사랑을 주셨는지를 아는 사람이 주님의 사랑을 조금이라도 실천하려고 노력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단순히 도의적인 사랑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적 사랑이 되면서부터 우리의 사랑이 이기적인 사랑에서 벗어나기 시작합니다.

내 행복만을 추구하는 게 아니라 남의 행복도 함께 추구하게 되는 것이죠.

세계에는 하루에 천원도 없이 사는 극빈자, 극빈국들이 참 많습니다.

특히 아프리카에는 기독선교회와 서구선진국들의 재정지원과 자원봉사자들이 끊임없이 투입되어 그들을 도와줍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런 구제 사역을 부정적으로 말합니다.

전 세계가 그동안 아프리카에 쏟아 부은 게 대체 얼마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프리카가 변한 게 뭐냐는 것이죠.

실제로 아프리카를 살리기 위한 의료정책에 가담했던 홍콩과기대 김현0교수가 이런 예를 이야기하더군요.

아프리카에는 전 세계 에이즈환자의 1/3이 몰려있습니다.

그런데 포경수술만 해도 환자 수가 절반이 줄어든다는 임상실험 결과가 있다고 합니다.

이분이 말라위의 복지부장관을 만나 그곳 남자들에게 포경수술을 해 주는 대대적인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서구에서 이 비용으로 수백 억씩을 아프리카에 쏟아 붓는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복지부장관이 처음에 이 정책이 쓸모없다고 반대를 했다고 합니다.

이유는 이 사람들이 포경수술을 마치 에이즈 백신처럼 알고 성생활에 더 문란해질 것이라는 것입니다.

결국 감염률을 줄이지 못할 거라는 것이죠.

복지부장관을 설득해 포경수술 프로젝트를 실시하고 어느 정도 지난 뒤에 에이즈감염이 얼마나 감소했는지 조사를 했습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습니다.

복지부장관 예상이 적중해 에이즈 감소율이 0%였다고 합니다.

그렇다 할지라도 만일 그런 구호의 손길이 없었다면 아프리카는 이미 종말을 맞았을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같은 구호의 손길로 아프리카를 생존시키시는 것이죠.

그런데 사실은 그것이 돕는 자들의 영혼을 살리고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때로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하고 섬기는 것도 이건 밑빠진 독에 물붓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내가 친절을 베풀고 사랑을 주는데도 늘 상처를 주는 말로 되갚는 사람도 있죠.

누군가를 내가 한번 도와주는 것, 너무 작은 물질, 이런 것이 과연 도움이나 될까.

그런 생각으로 아예 구제나 선행을 안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주님의 명령은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처럼 인생의 도적에게 맞고 고통당하는 사람들에게 선을 행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과의 관계에서 사랑을 공급받고 사랑으로 행하면 가장 좋겠지만 우러나오지 않을 때 의지적으로 사랑하는 것도 반드시 우리에게 복이 됩니다.

신앙에서 항상 노력해야 할 부분들을 다시 정리합니다.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라,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

깨어 있는 것은 기도, 믿음은 말씀, 강건한 것은 의지, 사랑은 실천.

이렇게 마음에 정하고 내년을 단단히 준비하시면 하나님께서도 우리에게 좋은 것들을 풍성히 준비하실 것입니다.

 

2. 바울사도는 헌신한 고린도교회의 봉사자들을 칭찬합니다.

이 말씀으로 올해 교회를 위해 수고하고 헌신한 우리 모두를 하나님께서 인정하시고 칭찬하신다고 생각합니다.

인생의 성공과 행복의 여부는 믿음에 달려 있습니다.

동의하시길 축복드립니다.

만일 믿음에 바로 서지 못하면 생활이나 인격이나 사람관계에서나 행복이 이뤄질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이 중요한 믿음은 교회생활에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모든 신실한 성도들은 교회 안에서 믿음을 배우고 성장했습니다.

바른 믿음은 교회에서 배우고 교회생활을 통해서 훈련하고 성장합니다.

교회를 멀리하면 믿음이 좋아지길 기대할 수 없습니다.

1) 이 교회생활에서 성도들의 봉사는 매우 귀하고 소중합니다.

바울사도는 고린도교회에서 헌신적으로 봉사하는 몇 사람을 언급하고 이들을 인정하고 그 수고를 알아주라고 합니다.

15, 형제들아 스데바나의 집은 곧 아가야의 첫 열매요 또 성도 섬기기로 작정한 줄을 너희가 아는지라

바울이 그리스 지방을 전도할 때 첫 열매가 스데바나집이었습니다.

오금동의 첫 열매는 김연자권사님이십니다.

이 스데바나가 성도 섬기기를 작정했다고 하죠.

섬김과 봉사는 작정을 해야지 저절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고린도에서 처음 성도가 된 스데바나는 초기 교회가 그렇듯이 자기 집을 예배처로 내놓았을 것입니다.

내 집을 완전히 오픈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1세기 교회는 또 얼마나 자주 모였나 모릅니다.

하나님이 교회를 세우실 때는 스데바나와 같은 사람들을 세우십니다.

빌립보교회에 자주 장사 루디아가 바로 그런 사람이죠.

지금 바울이 편지를 쓰고 있는 에베소의 교회는 19절에 나오는 아굴라와 브리스길라의 집에 세운 교회입니다.

많은 성도들이 다양한 은사로 주님을 섬기고 봉사하지만 스데바나와 같이 각별한 은혜를 받고 헌신하는 사람들이 교회마다 꼭 있습니다.

보통 이상으로 희생하고 헌신하는 성도들이 없다면 교회가 세워질 수도, 성장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전에 말씀드렸던 정선에 있는 2백 년 된 흙집을 사용하는 교회에 부임했던 목사의 이야기입니다.

벌레와 쥐가 들끓던 교회 사택에 어느 날 어떻게 알고 찾아왔는지 나이 든 권사님 두 분이 방문했습니다.

곧 무너질 것 같은 교회와 사택을 둘러보니 기가 막히죠.

이분들이 예배를 드리고 말없이 돌아가더니 나중에 다시 연락이 옵니다.

교회를 좀 고칠 수 있도록 칠천만 원을 헌금하겠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교회를 위한 일이 아니라면, 또 성령께서 감동하지 않으신다면 누가 이런 큰 돈을 드릴 수가 있겠습니까?

교회건물이 너무 오래되다 보니 성도들 중에서 리모델링보다는 작게라도 새로 짓자는 말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견적을 내 보니 철거비용만 이천오백 만원이 나온 거예요.

철거하고 남은 돈으로는 건축이 불가능한 것이죠.

그래서 2천오백만원에 철거를 하고 남은 돈으로 리모델링을 하기로 합니다.

짐을 들어내고 지붕만 뜯어낸 상태에서 당시 태풍 타파가 강원도를 강타해 엄청난 피해를 냅니다.

나중에 교회에 돌아와 보니 교회가 온데 간데 없어져 버린 것입니다.

태풍이 2백 년 돼서 흔들거리는 건물을 싹 쓸어가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잔해만 좀 거둬내고 리모델링이 아닌 새교회를 짓게 되었다고 합니다.

성도들이 최선의 헌신을 하면 하나님이 하실 일은 하나님이 하십니다.

모든 교회가 그렇게 세워지는 것입니다.

우리교회가 14년을 버틴 것은 우리 모두의 수고와 봉사의 열매입니다.

우리가 최선을 다했고, 하나님께서 하실 일을 해 주셨기에 오늘의 우리 교회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주님을 위해 다양한 봉사와 헌신을 하지만 이 땅에 주님의 교회를 세우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헌신입니까?

성경은 스데바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루디아와 같이 교회를 세운 성도들의 이름을 기록해 남겨 주시잖아요?

함께 수고한 모든 성도님들의 이름을 주님의 책에 기록하셨으리라 믿습니다.넉넉치 않은 가운데, 내 생활보다 교회와 성도들을 먼저 생각하며 봉사한 성도님들께 하나님의 위로와 축복이 함께 하시길 축원드립니다.

 

2) 그리고 모든 교회가 이런 분들을 알아주라고 합니다.

16, 이같은 사람들과 또 함께 일하며 수고하는 모든 사람에게 순종하라

18, 너희는 이런 사람들을 알아주라

왠지 교회가 스데바나와 그런 성도들의 수고를 인정하고 잘 따르지 않았을 것이라는 게 예상되는 대목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헌신하고 충성한다고 사람들이 다 칭찬하고 고마워하지는 않습니다.

교회에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냐며 핀잔을 주기고 합니다.

주님을 위해서 큰 희생을 하고도 좋은 결과가 없을 때가 사실 더 많습니다.

아산병원소아외과 전문의였던 한 젊고 장래가 촉망되는 크리스찬의사가 있습니다.

의사가 없어 진료도 받지 못하고 죽어가는 어린이들을 살리기 위해 선교사가 되어 에디오피아로 떠났습니다.

어느날 몸에서 이상을 느끼고 한국에 돌아와 검사를 했는데 파킨슨병이라는 진단을 받게 됩니다.

외과의사가 파킨슨병이면 수술칼을 어떻게 잡겠습니까?

예수님이 가르치신 대로 가난한 사람들을 섬기려고 모든 특권과 안정된 삶을 포기하고 아프리카로 갔는데 파키슨병을 주시다니요.

이분이 한사코 자기는 간증이라고 할 게 없다고 하더군요.

병이 나은 것도 아니고 서서히 진행되고 있으니 간증할 게 없다는 것이죠.

병이 나은 것만 간증이 아닙니다.

아직 낫지 않고, 아직 해결되지 않았지만 여전히 하나님께 헌신하고 있는 것도 큰 간증입니다.

이분은, 하나님을 위해 최선을 다해도 칭찬은커녕, 때로 하나님도 나를 알아주지 않으시는 것 같아 마음이 상한 성도들에 대한 위로일지 모릅니다.

하나님을 잘 섬겨도 인생에서 좋은 보상을 얻지 못하는 성도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기도 응답을 받고, 병이 낫고, 사업이 잘 되는 사람들보다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더 많잖아요?

우리의 헌신에도 항상 열매가 있고 결과가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주님을 위해서 충성할 때 이것을 염두에 두어야 시험에 들지 않습니다.

바울사도도 일년 반을 자비량으로 일하며 그렇게 섬긴 고린도 교인들이 뒤에서 자기 뒷담화하는 걸 듣게 되잖아요?

사람들은 서로의 진심을 다 알아주지 못합니다.

우리가 저분은 저게 좋아서 한다고만 생각지 말아야 합니다.

다 같이 한주간 고생하고 주일에도 수고하는 것이 힘들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빠듯한 월급에서 하나님나라를 위해 먼저 떼어놓는 것 쉽지 않습니다.

더 많이 수고하는 성도들을 인정하고 그 분들의 수고를 좋아서 하는 일이라고 당연시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성도들은 묵묵히 자기 형편에 맞게, 믿음의 분량대로 하나님 앞에 봉사하면 됩니다.

저는 성순0 집사님께 이렇게 종종 말씀드립니다.

집사님은 아픈 몸을 이끌고 예배에 빠지지 않고 나오시는 것이 사명을 다하시는 것이라고.

올해도 개근하셨잖아요?

한 분 한 분이 다 그렇게 우리 주나산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귀한 성도님들입니다.

올해 누가 더 많이 봉사했는지 비교할 필요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서로를 비교해서 상대평가하지 않으십니다.

우리 각자에게 주신 믿음과 은혜의 분량대로 최선을 다하는 것을 기쁘게 칭찬해 주십니다.

우리는 지금처럼 서로의 수고를 인정하고 고마워하고 격려하는 따뜻한 공동체를 만들어가야 하겠습니다.

 

3. 마지막으로 성도들은 서로 문안해야 합니다.

19, 아시아의 교회들이 너희에게 문안하고 아굴라와 브리스가와 그 집에 있는 교회가 주 안에서 너희에게 문안하고 모든 형제도 너희에게 문안하니

아시아의 교회들이 멀리 그리스에 있는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에게 문안을 하고 있는 것이죠.

바울서신에서 이런 부분을 읽으면 마음이 웅장해지는 것을 느낍니다.

멀리 떨어져있는 작은 지역교회들이 시공간을 넘어 서로 문안을 합니다.

로마서를 보면 바울사도가 삼십칠명의 여러 교회 일군들의 이름을 일일이 적어서 이들이 로마교회에 문안한다고 합니다.

얼굴은 본적이 없지만 그리스도의 사람들은 이런 영적 네트워크로 교신이 되는 것이죠.

다른 모든 교회를 그런 신앙의 관점으로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길을 가다 바닥에 떨어진 다른 교회 전도지를 보면 우리는 그걸 주워서 가방에 넣어야 합니다.

지방의 어느 작은 교회가 수년간 고생하며 예배당을 새로 지었습니다.

얼마나 자랑스럽고 소중한 예배당이겠습니까?

그런데 그 지역의 큰 교회가 교회를 재건축하는 과정에서 예배처를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새로 건축한 이 교회가 몇 년 간 예배당을 그 교회와 함께 사용합니다.

자기들의 예배시간까지 조정하며 한 지붕 두 교회 생활을 한 것이죠.

이게 가능한 것은 세상의 모든 교회들이 바로 주님의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사도의 마지막 인사는 깜짝 놀랄 말로 시작합니다.

22,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 주여 오시옵소서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을 믿고 사랑하는 것만이 모든 사람들의 유일한 희망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없으면 그 사람은 저주 아래 놓인 것입니다.

바울사도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사람들을 위해 가장 선한 말입니다.

우리는 주를 사랑하지 않아도 다른 어떤 희망이 있다고 말해서는 안됩니다.

바울사도가 우리 주여 오시옵소서감격에겨워 고백하는 것은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그 이상 더 할 수없이 모든 것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심판자로 오시는 것이 마땅하시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그런 주님을 믿기에 주님이 세상에 심판자로 오시는 것을 기쁨으로 기다리고 환영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바울사도가 정리해 준대로 새해에도 열심히 달려가야겠습니다.

깨어라, 믿음에 굳게 서라, 강건해라, 사랑가운데 행하라입니다.

올해 우리 모두 원팀이 되어서 하나님을 잘 예배하고 섬기며 온 것을 감사드립니다.

최선의 봉사와 헌신으로 주님과 교회를 섬긴 성도님들께 감사하고 축복합니다.

우리교회가 항상 거룩한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고, 애쓰는 서로를 인정하고 서로 격려하는 아름다운 주님의 교회를 내년에도 이뤄가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