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후서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 (고린도전서15장1절-11절)

남수연 2023. 12. 21. 20:15

 

고린도전서가 이제 두 장 남았습니다.

오늘은 우리가 보통 부활장이라고 부르는 15장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신자들이 반드시 알고 믿어야 할 신앙의 내용을 세 가지만 말한다면 그것은 성육신, 십자가 대속, 부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회에서 복음이라는 말을 자주 듣는데 그게 무엇입니까?

이 세 가지를 연결하면 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그리스도께서 내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부활하셨다

이것을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 복음입니다.

믿음에 자신감이 부족한 것은 이 복음을 잘 알지 못해서인 경우가 많습니다.

복음의 기초가 잘 닦여 있으면 감정이 좀 흔들려도 결국 바로 섭니다.

오늘 이 복음을 바울사도가 다시 반복하듯이 우리도 다시 듣고 신앙의 기초가 더 든든히 놓여지길 축복드립니다.

 

고린도교회에 다시 복음을 가르치겠다고 합니다.

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이미 복음을 받았고 서 있다고 하면서 왜 다시 전하겠다는 것입니까?

다른 지식들이 그렇듯이 복음의 내용도 잊어버리지 않도록 되새겨야 합니다.믿음이 없어지진 않지만 그냥 살다보면 금방 저 밑바닥까지 가라앉잖아요?

또 교회사가 보여주듯이 복음은 항상 변질되도록 공격을 받습니다.

그렇기에 성경적인 복음을 자꾸 듣고 되새기며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복음을 잘 알아야 하는 게 왜 중요한지 2절에 나옵니다.

2, 너희가 만일 내가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

복음의 내용을 굳게 지키고 진실되게 믿음으로써 구원을 받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만일 너희가 그러면이라고 한 것을 보면 고린도 교인들 중에는 복음을 벗어난 사람들이 있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앞에서 책망했던 죄짓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이 심각한 것입니다.

바울이 다시 가르치는 복음의 내용을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1.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신 것입니다.

3,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1) 먼저 성육신과 대속에 대해서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서는 먼저 성육신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의 몸으로 태어나시는 것입니다.

다음 주가 성탄절인데, 예수님은 처녀 마리아의 몸에 성령으로 잉태되셨습니다.

세상은 어떻게 처녀가 아이를 낳냐고 어이없어 하죠.

그 말을 누가복음 1장에서 마리아가 똑같이 합니다.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천사는 간단히 대답하죠.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

사람이 사람을 낳는 것도 신비인데,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것을 우리가 이해하려는 것은 무리입니다.

성육신의 신비는 성경에서 가르치는대로 믿어야 합니다.

대속하신 것도 사람들에게 잘 납득이 안되죠.

부모라 한들, 자식의 죄값을 대신 치러줄 수는 없잖아요?

만일 누가 돈으로 죄값을 대신하거나, 다른 사람이 벌을 대신 받게 한다면 치명적인 악이 됩니다.

그런 일들이 범죄조직 같은 곳에서 가끔 일어나죠.

하나님은 이 세상 원리 속에 반드시 죄값을 치르되, 스스로가 벌을 받도록 윤리로 정해 놓으셨습니다.

사회의 윤리도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입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예수님의 대속으로 우리를 용서하셨냐는 것입니다.

모든 종교들이 다 자기가 행한 대로 상벌을 받게 되어 있잖아요?

사람이 만들어낸 종교들은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죠.

하나님이 우리를 대신해 속죄해 주신다는 것은 이런 자연법을 능가합니다.

진정한 사랑은 법을 포용합니다.

부모를 폭행한 자식을 선처해 달라는 부모의 눈물에 세상법정에서도 형량을 줄여주기도 하잖아요?

사람들이 당해야 할 영벌은 하나님도 원하신 게 아닙니다.

그러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단 한사람도 피할 수가 없다는 게 인간이 처한 현실입니다.

사람은 자기 힘으로 그 현실을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는, 큰 희생이긴 하지만 방법이 있으시잖아요?

독생자를 인간이 되게 하셔서 대신 죄값을 담당할 수 있는 방법이 분명히 있으시잖아요?

하나님의 사랑이 그것을 실행하시고 그것을 믿는 자들을 구원하신 것입니다.예수님이 사람으로 성육신하시고 내 죄값을 대신해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으신 것이 복음입니다.

 

2)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사실로 아는 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것은 주님이 이 땅에 실존했던 사람이라는 것이잖아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경전에 나오는 막연한 인물로 생각합니다.

주님의 십자가 죽음은 역사가 뒷받침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형은 AD33년경 유대총독인 본디오빌라도가 법정에서 판결을 내려 집행한 사건입니다.

예수님은 형 집행으로 확실히 사망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뒤, 누가 시신을 무덤에 장사 지냈습니까?

예수님 장례를 치른 사람은 단 두 사람입니다.

산헤드린 공회원이었던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입니다.

당시 유대인 사회에서 가장 존경받던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드러내지 않고 예수님을 믿던 제자였습니다.

주님의 죄목이 로마에 대한 반역죄였기에 다른 사람은 아무도 주님의 시신에 가까이 갈 수 없었습니다.

여인들도 멀리서 따라가 주님의 무덤만 확인하고 돌아갔을 뿐입니다.

공회원 요셉이 빌라도에게 예수님의 시신을 달라고 하자 빌라도가 형을 집행했던 백부장을 부릅니다.

주님이 죽으셨는지를 확인하고 시신 수습을 허락합니다.

니고데모도 향품을 들고 와 시신에 바르고 깨끗한 세마포로 감쌌다고 사복음서에 나와 있습니다.

예수님을 장사 지낸 사람은 이 두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운명하실 때 다 이루셨다말씀하셨죠.

이제 주님의 신분에 맞는 의전을 받으실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존귀한 두 공회원이 시신을 받들어 자기의 새 무덤에 예수님을 모신 것이죠.

예수님의 죽음은 로마법정의 판결과 로마 장교의 확인과 백성들의 존경을 받는 두 공회원을 통해 사실로 입증된 것입니다.

 

3) 바울사도는 주님의 대속은 성경의 예언대로 이뤄진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에 관한 것은 구약성경에 예고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구약성경의 시편과 이사야서와 여러 예언서들은 메시야의 대속적 죽음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이사야서 53장은 마치 주님의 십자가 형장을 지켜보며 써 내려간 듯 7백년 뒤에나 일어날 갈보리 언덕을 묘사합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로다

예수님이 부자의 묘실에 장사 될 것도 이사야53장에 예언된 내용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성경대로 예수님이 성육신하시고,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을 믿는 것입니다.

오늘 바울사도의 말대로 이 복음을 헛되이 믿지 않으면 구원을 받습니다.

 

미국의 유명한 목회자인 존 맥아더 목사님이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 일은 복음이 실제 어떻게 사람을 구원하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어떤 사람이 맥아더 목사를 찾아왔습니다.

이 사람이 자기에 대해서 이렇게 밝힙니다.

그는 유대인이자 비기독교인입니다.

한번 이혼하고 재혼했는데 지금은 다른 여자와 동거하는 중이고 동거녀가 좋아서 아내에게 돌아갈 생각은 없습니다.

이 사람은 낙태시술 전문병원에서 일하는 의사입니다.

작년 한 해에 그 병원은 낙태시술로 백 억을 벌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으며 이상하게도 인생의 모든 것이 파산 직전에 있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자기 소개를 한 뒤 제발 저를 도와주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사람을 대체 목사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도울 수가 있겠습니까?

맥아더 목사님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당신의 삶을 변화시킬 한 분을 알고 있습니다.’

그게 누군가요?’

예수그리스도요.’

그렇게 말씀할 줄 알았습니다.’

바뀌고 싶지 않다면 그것은 당신 선택입니다. 그러나 원한다면 그 분을 소개시켜 드리죠.’

그리고 성경책을 가져와 요한복음을 펼쳤습니다.

이 성경책을 가져가서 요한복음을 다 읽고 예수가 누구인지 알게 되면 그때 다시 연락을 주시오.’

그런데 4일 뒤 바로 전화가 오고, 주일에 그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사무실 문을 열고 온 남자는 급하게 자리에 앉더니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가 누구인지 알아냈습니다.’

정말입니까? 예수가 누구인가요?’

하나님입니다. 예수가 하나님입니다.’

맥아더 목사님은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당신은 오십이 넘었고, 평생 유대인이었는 데 4일만에 그렇게 변하다니 믿을 수가 없군요.’

그 남자가 대답했습니다.

예수가 하나님이어야만 합니다. 하나님이 아니었다면 그가 행한 기적도 그의 가르침도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목사님, 예수께서 또 뭘 했는지 아세요? 죽었다가 부활하셨어요!’

스티브, 그렇다면 예수가 하나님이신 데 왜 이 땅에 오신 건가요?’

내 죄를 대신해서 죽으러 오셨죠.’

그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제가 로마서도 읽었거든요. 거기에 그렇게 써 있던데요.’

성경엔 복음이 기록되어 있고, 사람이 그것을 믿고 구원을 얻게 합니다.

여기 모인 성도님들은 예수님의 대속과 부활을 다 믿으시기에 예배에 오셨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깨닫고 믿어지든, 아니면 믿기로 했든, 둘 중 하나에 해당 되실 것입니다.

아마도 그 둘의 차이는 똑같이 인정은 하되, 의탁하느냐 아니냐에 있을 것입니다.

나를 완전히 의탁하지 못한다면 그 믿음은 아직 머리 속에서만 인정한 것입니다.

맥아더 목사님이 물었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에게 이 십자가의 메시지가 무슨 의미입니까?

저는 아내와 함께 오늘 밤 예배하러 오기로 했고, 오전에 낙태시술 병원에 사직서를 냈습니다.’

이 사람은 지금 예수님께 자신의 인생을 의탁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의탁이 무엇입니까?

지금까지는 내가 혼자 위태롭게 서 있었지만 이제 예수님께 기대는 것입니다.

믿어야 기댈 수 있지 불완전한 것에 기대는 사람은 없습니다.

주님을 완전히 믿는 증거는 주님의 말씀대로 살며 주님께 계속 의지하며 살아가는 것이죠.

복음을 인정한 뒤에도, 예수님께 완전히 의탁하기 위해서는 계속 알아가고 기도로 교제하고 신뢰를 쌓는 긴 과정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것을 지속하시기 축복드립니다.

 

2. 복음은 그리스도께서 장사 된 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입니다.

4,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본문은 짧게 읽었지만 이어서 58절까지 아주 길게 부활에 대해 상세한 설명이 이어집니다.

부활에 대한 믿음에 문제가 생겼다는 뜻입니다.

신자들도 부활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하지 않는 편입니다.

죽었던 사람이 부활했다는 말은 이 자연세상에서 믿을 수가 없는 말이죠.

그렇기에 부활을 기독교의 교리로 그냥 받아들이거나 깊이 생각하지 않고 믿는 경우가 많습니다.

바울사도는 부활도 헛되게 믿지 않아야 구원을 받는다고 합니다.

1) 바울사도는 부활에 대해서도 성경대로라고 말씀합니다.

구약성경은 예수님의 부활을 예언했습니다.

시편22편에서 다윗은 성령에 감동되어,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시리라는 메시아 시편을 남겼습니다.

요나가 삼 일간 고래 뱃 속에 있다 나온 것이 예수님이 무덤에서 사흘 만에 부활하실 예언이라고 예수님이 직접 해석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부활에 대해 그동안 설교를 통해 많이 들었듯이, 부활의 증거와 정황들은 아주 많습니다.

그런데 가장 확실한 것은 그것을 눈으로 본 증인들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았다는 사람들이 오백 명을 넘는다는 것입니다.

5, 게바를 포함한 열 두제자들이 주님의 부활을 목격했습니다.

6,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고 그 중에는 죽은 사람도 있고 살아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7, 야고보와 바울에게 보이셨습니다.

고린도전서가 기록된 때를 서기 55년경으로 보면 예수님이 부활하신 뒤 이십여 년 지난 뒤입니다.

부활의 목격자 중에는 아직 살아있는 사람들이 다수였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목격자가 너무 많아서 조작이라고 생각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동안 부활에 대한 설교를 많이 들으셨습니다.

나는 이래서 예수님의 부활을 믿을 수 밖에 없다는 증거를 갖고 계십니까?

바울도 오늘 증거를 제시하잖아요?

오늘 본문대로 예수님을 본 사람이 오백명도 넘는다는 것도 믿을만한 증거에 포함됩니다.

또 예수님이 잡히실 때 도망쳤던 제자들이 주님의 부활을 전하다 죽을 만큼 완전히 다른 사람들이 됐다는 것은 정황 상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눈으로 보지 않았다면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죠.

우리가 물건 하나 살 때도 몇 시간을 검색하고 따져보고 리뷰를 읽어보고 신중에 신중을 기하죠.

부활과 같은 믿음의 내용들도 자꾸 생각해야 합니다.

머리로만 믿는 것이나 맹신이나 결과는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런 것을 바울사도는 헛되이 믿는다고 경계하는 것입니다.

 

2)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의 의미가 무엇이냐를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죽음으로 끝나셨다면 그냥 한 의로운 사람의 죽음일 뿐입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부활하신 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다시 살리셨다고 성경은 진술합니다.

하나님이 주님의 대속을 받으셨고, 예수님의 의로우심을 인정하시기에 다시 살리신 것입니다.

이로써 예수님이 하나님 아들이심이 증명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주님의 대속을 하나님이 받으셨기에 죄가 없이 의롭게 되었다고 입증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몸으로 부활하셨다는 것은 우리가 그렇게 부활한다는 뜻입니다.

바울사도는 뒤에서 말합니다.

우리가 천국에서 부활한 몸으로 사는 게 아니라면 뭐하러 예수님만 몸을 갖고 부활을 하셨겠냐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과 같은 몸으로 부활할 것의 시범을 보이셨다는 것입니다.

천국에서 우리는 지금과 다른 완전한 몸으로 부활합니다.

피지컬도 완전하겠지만, 우리의 뇌에서 죄의 기능이 완전히 사라진, 모든 것이 완전하게 변화되어 영화롭게 부활합니다.

이 믿음이야말로 지금의 어려움과 질병을 다 견디게 하고 그런 중에도 빛나는 자존감으로 살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죽어가는 게 아니라 더 완전한 삶을 향해 가고 있다는 걸 굳게 붙드시기 바랍니다.

 

3) 그런데 고린도교인들이 처음엔 성경대로 부활을 믿었지만 지금은 다른 걸 믿고 있다는 것입니다.

고린도사회에 있던 철학이 성경의 부활을 부정하게 만든 것입니다.

그리스인들은 영혼은 순결하고 육체는 더럽다고 생각했습니다.

몸은 죄의 온상인 것 같잖아요?

영혼이 이 육체를 벗어나는 것을 구원이라고 보는 것이죠.

그런데 복음은 우리 몸이 부활한다는 것이잖아요?

고린도교회 안에 다시 그리스철학이 들어와 예수님 같은 몸의 부활을 부정하게 만든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사람들이 막연히 윤회를 내세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생은 망했다는 우수갯소리가 나오는 것입니다.

사람은 세상에서 단 한번의 일생을 살고 죽음 뒤에는 부활합니다.

요한복음 529절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예수님을 믿고 의롭게 된 우리는 주님을 따라 선을 행하며 살다 생명의 부활로 나아갈 것입니다.

 

3. 바울사도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부활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1) 바울은 교회를 일망타진하려고 다메섹으로 가던 길에서 예수님을 만나죠.

바울은 이 사건을 가리켜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합니다.

만일 그 날 예수님이 바울을 찾아오지 않으셨다면, 바울은 네로황제보다 더 많이, 성도들을 잡아 죽였을 것입니다.

지금의 내가 있게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만일 주님이 나를 부르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믿기 이전의 모습으로 계속 살다가 죽었을 것입니다.

어떤 인생이 되었을지 끔찍하죠.

2) 바울사도는 이런 자신의 과오에 대한 미안함으로 어떤 사도보다 더 열심히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것도 하나님의 은혜라고 합니다.

10,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바울의 선교의 고난이 얼마나 컸는지를 우리가 알고 있는데, 바울은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합니다.

사실 그 고난 중 하나만으로도 바울은 죽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함께 하셔서 그 고난을 다 감내하고 달려갈 길을 다 달리게 하셨으니 은혜입니다.

우리에게 힘든 문제가 없는 것만 은혜가 아니라 고난 중에서 믿음을 끝까지 지키게 하시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정선에서 목회를 하는 한 목사님의 간증을 나누며 마치겠습니다.

이분이 신학교를 다니며 전도사 생활을 할 때, 가족들과 먹고 살기가 진짜 힘들었다고 합니다.

한번은 고향교회에서 주일사역을 마치고 서울에 있는 신학교로 올라가야 하는데 차비가 없는 거예요.

교회에서 내 준 승합차가 있었지만 기름이 거의 바닥이었습니다.

정말 아슬아슬하게 살아가는 때가 우리에게도 있었잖아요?

달리 방법이 없어서 무작정 승합차를 몰고 고속도로로 들어서게 됩니다.

여주휴게소쯤 왔는데 경고등이 들어오고 곧 길에서 차가 멈추게 된 급박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급히 휴게소로 들어가 차를 세워놓고 앉았는데, 하염없이 눈물만 흐르는 것이죠.

그때 누군가 밖에서 창문을 똑똑 두드렸습니다.

시간이 밤 열시가 넘었는데, 창문을 내려보니 한 중년 여성이 차 안을 들여다 보더니 혹시 전도사님이세요? 라고 물었습니다.

승합차에 교회 이름이 써 있으니 그렇게 생각한 것이죠.

왜 여기 이러고 계세요?‘ 라고 묻는 데 기름이 떨어져서라는 말이 안 나왔습니다.

그래서 좀 쉬었다 가려고요라고 대답했더니 여성분이 차로 돌아가더랍니다.

그런데 잠시 후 다시 와서는 돈 오만 원을 건넵니다.

전도사님, 이걸로 식사하세요.’

그 오만 원을 받아들고 그렇게 울었던 것은 예수님이 모든 것을 보고 계시고 함께 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겠죠.

오만원만 주신 게 아쉬우신가요?

한 오백만원을 주시면 얼마나 좋겠어요.

이 분이 졸업을 하고 아무도 자원하지 않는 정선 산골 교회로 부임 합니다.

이백년 된 다 쓰러져가는 교회에서 고생하다 주변의 도움으로 교회를 다시 짓게 되었습니다.

사방에서 도우러 오신 목사님들하고 손수 교회당을 짓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벽돌값 480만원을 당장 지불해야 벽돌이 오는 데 건축비가 똑 떨어져 손을 놓게 된 것입니다.

난감하게 목사님들이 앉아만 있는데 모르는 사람에게서 전화가 한 통 왔습니다.

교회집사라며 다른 사람을 통해서 이 교회 형편을 들었다고 합니다.

목사님, 물질로 어려울 때 꼭 연락주세요’, 그렇게 말하는 데 냉큼 지금 480만원이 필요하다는 말이 안 나오더랍니다.

그런데 그 집사님이 내가 말로만 하는 것 같으니까 오늘 당장 오백만원을 입금해 드리겠습니다

통장에 바로 오백만원이 들어왔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오만원이 필요한지 오백만원이 필요한지 다 아시는 것 같죠?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서 큰 일도 행하시지만 그것은 서서히 이뤄지기에 체감하기가 오히려 어렵습니다.

그런 일은 지나고 나서 뒤를 돌아보면 보이죠.

매일의 삶 속에 함께 하시며 베푸시는 은혜는 작지만 주님을 따르는 데 큰 위로와 힘이 됩니다.

나를 사랑하셔서 대속하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으시고 또 의탁하십시오.

바울사도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서 믿고 난 뒤 나는 이렇게 복음을 위해 산다며 나처럼 살길 권합니다.

성도들은 본능적으로 나만 잘 살면 된다는 생각이 틀리다는 걸 압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았으니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을 증거하며 다른 사람의 구원을 위해 살게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