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요한복음17장1절-5절 (영생은 무엇인가)

남수연 2024. 9. 5. 01:26

지난 주엔 십자가를 앞둔 주님이 제자들에게 하신 고별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말씀을 마치신 후 주님께서는 아버지께 기도를 하십니다.

17장 전체의 긴 주님의 기도를 대제사장의 기도라고 합니다.

주님의 기도는 하나님과 예수님에 대한 깊은 비밀을 드러내시는 기도입니다.

어떤 목회자들은 주님의 이 기도를 감히 설교할 수 없다고도 합니다.

종교개혁가인 존 녹스는 이 주님의 기도를 너무 사랑했고 죽기 전에 아내에게 이 기도를 읽어달라고 했습니다.

이 기도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보며 떠난 것이죠.

성도들은 과연 이 기도에서 그들과 같은 공감과 감동을 느낄 수 있을까요?

요즘 자주 나오는 이슈 중에 하나가 우리 국민들의 문해력이 너무 떨어진다는 말입니다.

학부모들 중에 문장 해석이 힘든 사람들이 백만 명을 넘는다는 통계가 있더군요.

가정통신문에 우천시엔 어떻게 하라는 말이 나오면 우천시가 어디냐고 전화가 온다고 합니다.

아이들 프로그램에 중식 제공이라고 쓰면 왜 아이들에게 중식을 주냐 한식으로 메뉴를 바꿔달라는 항의도 들어온다고 합니다.

데이비드 웰스라는 신학자는 오늘날은 성경문맹시대라는 염려스러운 말을 했습니다.

특히 오늘 본문처럼 영적인 내용에 대해 성도들은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성도들은 사는 데 당장 도움이 되는 실용적인 설교를 듣고 싶어 합니다.

문제는 하나님과 구원의 원리 같은 내용들을 별로 듣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우리가 믿음의 대상인 하나님에 대해 잘 모르면 쉽게 흔들리고, 시험에 들기 쉽고, 믿음이 잘 성장하질 않습니다.

내 안에서 일어나는 사건만 들여다보아서는 소용돌이가 맴돌 듯 제자리를 표류할 수 밖에 없는 것이죠.

우리는 다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예수님을 믿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에서 주님이 기도로 말씀하셨죠.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오늘 주님의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알고 영생을 확신하는 모두가 되시길 바랍니다.

전체 17장 중에서 1절부터 5절까지는 주님과 하나님에 대한 기도입니다.

이후에 나오는 내용들은 제자들과 성도들을 위한 기도입니다.

오늘은 주님 자신을 위한 기도의 내용을 볼 것입니다.

그러나 이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알려주시니 우리를 위한 기도나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의 기도는 창조 전부터 종말까지를 아우르고, 하나님의 경륜을 드러내는 방대한 기도입니다.

너무나 넓고 깊기 때문에 우리의 믿음 안에서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만 말씀을 풀어서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1. 첫 번째 기도는 하나님아버지와 예수님을 영화롭게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정확하게는 예수님을 영화롭게 해 주셔서 예수님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게 해 달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사람들이 흔히 말하듯이, ‘우리가 잘돼야 하나님께 영광이 되니 사업이 잘 되게 해 달라는 그런 식의 기도는 아닙니다.

1,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이르시되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여기서 때가 이르렀사오니 라고 하신 것은 무슨 때가 이르렀다는 것입니까?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실 때가 되었다는 뜻이죠.

1) 그러니까 이 십자가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는 말이 됩니다.

제자들이 알고 있는 십자가는 사형수의 피가 엉겨 붙은 십자가입니다.

그 십자가 생각에 두렵고 낙담한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이렇게 알게 하시는 것이죠.

이 십자가는 나와 아버지의 영화로움이다.

누가 십자가에 처참하게 매달린 주님을 보고 영화롭다 생각하겠습니까?

예수님이 지실 십자가가 영화로운 이유는 주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죄인들을 위해 목숨을 주시는 사랑이 곧 하나님의 영광인 것이죠.

과연 그런지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어떤 점에 가장 큰 감사와 영광을 돌리는지를 보면 압니다.

단연코 나를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의 고난을 대신 당하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잖아요?

며칠 전 한 기사를 보고 마음이 좀 슬펐습니다.

수도권에 사시는 분들은 송혜희 좀 찾아주세요라는 현수막을 한번쯤은 보셨을 것입니다.

방송에서도 나왔던 실종사건이죠.

1999년 평택의 외딴 동네에 살던 고3 송혜희 학생이 밤10시에 마을 어귀에서 버스에 내렸습니다.

어두운 밤길을 걸어 집으로 가던 중 실종되었습니다.

그날 혜희학생을 따라 내린 30대 남자가 있었는데, 버스 기사의 말로는 술냄새가 났다고 합니다.

당시는 단순 가출로 처리됐고 나중에 실종사건 수사를 하게 됐지만 CCTV도 없고 목격자도 없어 미재사건으로 남게 되었죠.

그 실종 된 딸을 찾기 위해 25년간 곳곳에 현수막을 걸고 전단지를 돌리던 아버지 송길용씨가 얼마 전 교통사고로 별세했다는 기사였습니다.

사고 직전까지 딸을 찾는 현수막을 주문했다고 합니다.

아버지 나이는 71세였습니다.

교통량이 많은 사거리나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현수막을 본 적이 있는 많은 사람들이 다 송길용씨의 죽음을 애도했습니다.

배우 김우빈씨도 송길용씨의 사망소식을 듣고 조화를 보냈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딸을 찾는 현수막을 자주 보았기에 아버지의 죽음이 안타까웠다고 합니다.

딸을 찾기 위해 자기 인생을 다 바친 아버지를 보고 누가 미련한 사람이라고 혀를 차겠습니까?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친 것은 최선을 다한 부모의 영광인 것입니다.

저도 기사를 읽으며 마음이 아팠습니다.

이 아버지는 서로 사랑을 나눈 딸이기에 이토록 희생했다지만 하나님은 어떠십니까?

배반하고 비수를 찌른 인간들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주신 것이잖아요?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는 인간입니다.

우리도 때로 내 자신을 보거나 다른 사람들을 볼 때, 사람에게 참 희망이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게 가능한지,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잘 믿지 못하나 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사랑이기에 아버지와 아들의 영광인 것입니다.

 

2) 또 이 기도에는 십자가를 앞두신 예수님이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간절함이 담겨 있습니다.

내일 주님은 인간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를 지셔야 합니다.

세상 인간의 모든 죄의 무게가 얼마만큼 무거울지 가늠이 되십니까?

살인과 테러와 성폭행과 음모와 사기행각과 전쟁 같은 인간의 모든 죄가 다 예수님의 어깨에 지워집니다.

내 죄도 거기에 있습니다.

십자가는 단지 육체의 형벌만이 아닙니다.

그 두려운 죄의 무게와 심판을 우리와 똑같은 육신을 가지신 주님이 감당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은 그 십자가를 잘 감당하길 기도하시는 것입니다.

걱정되고 불안할 때 많으시죠?

예수님도 기도하셨다면 우리도 기도해야 합니다.

 

2. 둘째로, 예수님은 하나님께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받으셨다고 기도하십니다.

2,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1) 성부께서 성자께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성부께서 모든 피조 세계의 통치자이시지만 사람을 다스리는 권세는 성자하나님께 맡기셨다는 것이죠.

예수님이 하실 일은 십자가 대속을 통해 이 맡겨주신 자들에게 영생을 주시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통해 믿는 사람에게는 영생을,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지은 죄에 따라 영벌로 다스리시는 것이죠.

요한계시록5장을 보면 이렇게 주님의 기도를 기록했던 요한이 나중에 환상을 통해 이것이 이뤄지는 마지막 날의 한 장면을 보게 되죠.

요한이 하나님의 보좌를 보았는데, 하나님 손에 있는 봉인 된 심판의 두루마리를 열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어린 양이 나와서 그 일곱 인으로 봉인 된 두루마리를 받으시잖아요?

그리고 이렇게 천사들의 음성이 들립니다.

12, 큰 음성으로 이르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더라

우리가 믿는 예수님이 만민을 다스리시는 것을 우리의 눈으로도 보게 될 것입니다.

 

2) 그리고 택하신 자들에게 주실 영생은 하나님을 아는 것을 통해서라고 말씀합니다.

구원에 대해 오늘은 이렇게 설명해 주시는 것이죠.

3, 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하나님과 예수님을 알면 영생, 모르면 영벌입니다.

안다는 것은 하나님에 대해서아는 것만이 아닙니다.

내가 하나님과 알고지낸다그런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 알고 지내는 것이잖아요?

처음엔 다 예수님에 대해서알아 가지만 어느 때가 되면 알고 지내는관계가 되고 하나님과 사귐이 있는 신앙이 되는 것이죠.

우리가 기도하며 주님과 교제하고, 또 무언가 지혜를 받고 응답을 받을 때 실제로 하나님과 내가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말씀을 읽다 마음에 찔림이 오고, 위로가 되고, 평안이 오면 내가 하나님과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이렇게 영원한 생명의 원천이신 하나님께 연결되면 우리 안에 영생이 있게 되는 것이죠.

그렇기에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에 하나님과 주예수님을 알아야 하고, 더 친밀하게 알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예수님에 대해알아가고 계신 성도님들도 예수님과 알고 지내는관계로 인도해 주시리라고 믿습니다.

그동안 예수님에 대해서 좀 더 알기 위해 복음서를 살펴보았습니다.

오늘로 복음서의 말씀을 일단 마칩니다.

그동안 복음서에서 배운 예수님의 모든 것을 믿으셔야 합니다.

주님만큼 믿을만한 분이 어디 있습니까?

주님의 말씀과 행하신 일들이 머리 속에 가득 채워지시길 바랍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알아야 하나님아버지를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바로 아버지와 일체이신 하나님으로 각인되지 않으면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의 자리엔 실체를 알 수 없는 천지신명이 자리잡게 됩니다.

하나님아버지는 우리가 배운 예수님과 똑같은 마음, 똑같은 인격, 똑같이 생각하고 말씀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을 아는 것이 영생이라는 것을 꼭 마음에 새기고 부지런히 배우고 주님을 경험해 가는 모두가 되시길 축복드립니다.

 

3. 세 번째로, 예수님은 온전히 순종함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셨다고 기도합니다.

4,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영화롭게 하였사오니

여기서 말씀하시는 영화는 1절에서 보았던 대속의 사랑으로 보이신 영화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가지고 계신 모든 위대함과 영광과 권능과 통치를 의미합니다.

1)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일을 이루신다고 합니다.

십자가를 아버지께서 맡기셨다는 것이죠.

이 일은 태초에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서 있었던 의논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시기 전입니다.

이미 아버지와 아들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실 인간의 타락을 논의하셨습니다.

이것이 분명히 맞는 것은 에베소서 14절 말씀도 지지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셨다는 말씀이죠.

창세 전에 이미 타락을 아셨고, 그리스도의 구원이 정해졌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위험한 창조를 하신 것입니다.

사람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나누어주실 뿐 아니라 완전한 자유의지까지 주신 것은 배신의 위험도 포함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대신 스스로 하나님같이 되기를 선택할 것을 아셨지만, 그렇다고 자유의지가 없는 인간을 만드는 건 의미가 없으신 것이죠.

그건 노예를 만드는 것이잖아요?

대신 성부와 성자께서는 무서운 죄에 빠질 사람을 어떻게 구제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셨던 것이죠.

그때 죄인들의 죄를 짊어지고 예수님께서 대신 심판 받으실 것이 결정됩니다.

그 일을 이루기 위해서 예수님이 성육신하신 것이죠.

지금 때가 되어 대속을 완수하심으로 구원의 큰 경륜을 주도하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2) 우리는 복음서에서 아버지의 뜻과 시간에 맞춰 철저히 순종하며 따르는 주님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은 심지어 아버지께 받은 말씀만 하신다고 했습니다.

왜 예수님은 철저히 아버지의 뜻대로만 사셨던 것일까요?

예수님은 성자하나님의 자격으로 대속하시는 게 아니라 사람의 아들, 인자의 자격으로 대속하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스스로 살아가면 안되는 피조물입니다.

자립해서 살아가는 게 죄입니다.

주님이 사람의 아들로서 철저히 하나님의 뜻대로만 사신 것은 흠없는 대속제물이시라는 증거입니다.

예수님은 앞에 있는 영광을 바라보고 십자가를 지시는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으셨다고 합니다.

장로교의 교리를 성경적으로 정립한 분이 칼빈입니다.

이분이 평생을 주님을 위해 헌신하고 순종한 것은 자신을 갈아 넣었다는 게 맞을 것입니다.

칼빈이 죽을 때의 모습을 지켜 본 친구는 칼빈이 더 이상 쓸 수 있는 게 없을 만큼 모든 걸 다 써 버린 사람 같았다고 합니다.

정말 주님을 위해 다 쓰고 주님께로 갔다는 것이죠.

마치 바울사도가 그의 모든 것을 주님을 위해 다 소진했던 것과 같죠.

바울사도는 마지막 서신인 디모데후서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46,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교회사를 보면 성도들이 믿음을 지키기 위해 집과 땅을 버리고 토굴에 숨어 살기도 했죠.

이런 성도들이 영생을 얻었기에 이땅의 삶에서 만족을 구하지 않은 것입니다.

영생의 힘이 당장의 안위와 행복보다 더 크다는 걸 이들이 증명하는 것이죠.

우리는 알면서도 그게 잘 안되죠.

이번 여름이 너무 습하고 열기가 많아서인지 요즘 산책하다 보니 아파트 단지 내에 잎이 상해서 죽은 나무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우리 아파트가 우거진 수목과 그늘이 너무 보기 좋거든요.

저렇게 죽었으니, 내년에 다시 살아날까? 다시 심으려면 돈이 많이 들텐데.’

관리소장도 아닌데 이런 괜한 걱정을 하며 속상하고 마음이 좀 안 좋았습니다.

그러다 주님께서 깨닫게 하시더군요.

우리가 크던 작던, 아주 사소한 것이든, 무엇이든 땅의 것에 만족하려 하면 늘 불만족스러운 삶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왜 마음이 불편하고 우울하고 미리 근심에 빠집니까?

내가 원하는 걸 얻지 못해서, 또 얻지 못할까 봐 그런 것이잖아요.

건강이 회복되지 않을까 봐, 노후에 가난에 빠질까 봐, 성공하지 못할까 봐, 인정받지 못할까 봐, 사랑받지 못할까 봐.

그런 마음이 들면 오늘 십자가를 앞에 두신 주님처럼 하늘을 우러러 하나님을 보아야할 것입니다.

우리의 앞날에 어떤 일들을 만날지 모릅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안되는 걸 너무 무서워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원치 않았던 일들이 많았었지만 하나님은 그런 가운데도 분명히 우리를 돌봐 주셨잖아요?

연기자였던 임동0목사님이 뇌경색으로 쓰러져 사흘 안에 사망할 것이라는 판정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원치 않았던 일이었지만 기적적으로 깨어났고, 평생 휠체어를 타야할 것이라고 했지만 피나는 재활로 건강을 되찾았습니다.

한번은 잘 아는 의사가 지금의 뇌 상태가 어떤지 체크를 해 주겠다고 해서 정밀검사를 받게 되었습니다.

검진 결과가 나온 날, 의사는 한동안 영상 사진과 차트를 들여다 보며 심각한 얼굴로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뭔가 큰 일이 있나 싶어 긴장하고 있을 때, 의사가 입을 엽니다.

하나님께서 목사님 위해 열심히 일하고 계시네요.’

지금같이 일상생활을 하는 게 기적인 상태라는 것이죠.

임목사님 말이 사실 자기는 정상의 40% 정도로 살고 있다고 하더군요.

40% 안에서도 정년이 되도록 목회를 감당했고, 지금도 충분히 살아가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도 꼭 100%가 아니라도 나머지는 주님이 주시는 은혜와 기적 속에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이미 그렇게 살았던 때가 있잖아요?

그러니 이 땅의 염려들을 너무 많이 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주실 영생을 생각하고 십자가의 고통을 이기셨습니다.

우리도 영생을 생각하면 땅의 염려들을 이길 담력을 얻게 될 것입니다.

지금은 하나님께 충성하는 것이 고리타분한 신앙처럼 되어가는 시대입니다.

세상을 즐기고, 문화적인 종교로, 적당히 예수님을 믿는 것을 더 선호하는 사람들로 넘쳐나고 있습니다.

주님은 그 순종의 결과에 대해 이렇게 기도하십니다.

5,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아버지께 온전히 순종하셨던 주님은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아버지와 누리던 그 영화로운 보좌로 돌아가셨습니다.

성도들도 결국 순종하는 사람들이 영광을 얻습니다.

오래 하나님께 봉사하고 헌신해 온 우리 성도님들, 또 예수님을 알아가고 있는 성도님들, 모두 예수님의 본을 따라 순종하시길 축복드립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오늘 주님의 기도는 주님 자신을 위한 것이지만 우리가 이 기도를 듣고 영생의 확신을 얻도록 하는 우리를 위한 기도이기도 합니다.

다시 한번 기억합시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것이 하나님의 영광이십니다.

우리가 주님을 만났을 때 그 사랑이 주님을 가장 영화롭게 한다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주님은 만민을 다스리시는 심판자로 오셔서 영생과 영벌로 구별하실 것입니다.

영생은 하나님과 예수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온전히 하나님께 순종하신 예수님처럼 우리도 믿고 순종하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길 간절히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