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늘 배경은 유대인의 명절인 초막절입니다.
유대인의 삼대 절기는 유월절, 오순절, 초막절이죠.
예수님이 초막절에 예루살렘에 모인 사람들에게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고 외치십니다.
왜 자신을 생수라고 하셨는지 초막절 명절 속에 그 이유가 들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역사와 성경 전체가 예수님을 증거하기 위해서인 걸 알면 구약성경의 해석이 쉬워집니다.
초막절은 이스라엘이 40년 광야 생활 뒤 약속의 땅에 들어온 것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40년간 조상들은 광야에서 장막에 거주했죠.
현재 가나안 땅에서 안식과 풍요를 주신 것을 감사하는 것이 초막절입니다.
광야를 기억하기 위해 나뭇가지로 허름한 움막을 짓고 7일을 지냅니다.
초막절 제사에는 제단에 물을 붓는 의식이 있습니다.
대제사장이 실로암 연못에 가서 금주전자에 물을 담아와 성전 제단에 붓는 의식입니다.
이스라엘이 물이 귀하잖아요?
광야에서 반석을 쪼개 물이 나와 강처럼 흐르게 하셨잖아요?
그때처럼 내년 농사를 위해 풍성한 물의 복을 기원하는 것이죠.
또 구약성경에는 종말에 주실 메시야의 은혜를 물로 표현한 곳이 많습니다.
예를 들면, 스가랴서에 이렇게 예언이 되어 있습니다.
스가랴14장4절, 그날에 그의 발이 예루살렘 앞 곧 동쪽 감람 산에 서실 것이요
메시야가 감람산에 나타나신다는 것이죠.
8절, 그 날에 생수가 예루살렘에서 솟아나서 절반은 동해로, 절반은 서해로 흐를 것이라
메시야가 오실 때 광야에서처럼 풍성한 생수가 솟아 흐른다는 것이죠.
지금 이스라엘은 약속의 땅에 살고 있지만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잖아요?
초막절에 한 주전자의 물을 붓지만 이스라엘이 다시 왕성하게 소생 될 메시야의 날을 기원하는 것이죠.
그러니까 예수님이 오늘 뜬금없이 내게로 와서 마시라고 외치신 게 아닌 것입니다.
광야의 반석에서 솟아났던 물의 실체가 바로 주님이심을 공표 하시는 것이죠.
그렇기에 이 말씀 뒤에 사람들이 이분이 그 선지자다, 그리스도다 그런 말들이 오갔던 것입니다.
2. 오늘 본문은 이 초막절 행사의 마지막 날에 일어난 입니다.
왜 마지막 날에 외치셨을까요?
축제의 마지막 날 기분이 어떨까요?
일주일 간의 흥분과 즐거움의 끝이 왔습니다.
아마도 서민들은 예루살렘 초막절 참여가 평생의 버킷리스트였을 것입니다.
초막절에 참석하려면 장시간 집과 일터를 떠나야 합니다.
오가는 길과 축제 기간을 합치면 먼 곳에선 몇 주간이 걸립니다.
여행 비용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래도 예루살렘 성전에서 절기를 지킨다는 감격의 신앙으로 찾아온 것이죠.
당시 절기엔 예루살렘에 10만 명의 순례객들이 운집했다고 합니다.
축제 때는 사람 구경하는 맛이 있잖아요?
금빛 성전 안에서 인파 속에 몰려 다닐 때 얼마나 감격스러웠겠습니까?
대제사장은 화려한 옷을 입고 엄숙하게 제사와 축제를 진행했습니다.
사람들은 웅장한 종교의식에 쉽게 감동합니다.
모두가 성전 찬양대의 찬양을 따라 부르며 메시야가 오시길 뜨겁게 기도했습니다.
그런 분위기 속에 신앙 감정은 최고조에 도달하는 것이죠.
그러나 이제 모든 행사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다시 생활고와 지겹고 힘든 노동의 날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죠.
그런데 마음은 텅 비고 갈증이 목을 조여오는 것을 느꼈을 것입니다.
분위기에 빠졌던 신앙감정은 짚불처럼 쉽게 사그러들죠.
예수님이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고 하셨잖아요?
만일 이들이 초막절 종교의식 속에서 만족을 느꼈다면 이 말씀이 귀에 들어오기나 했겠습니까?
주님은 종교의식 뒤에 남은 공허함을 보신 것이죠.
초막절은 실제로 생수와 안식을 주실 예수님을 상징할 뿐입니다.
그것 자체로 그 만족을 얻지는 못하는 것이죠.
그렇기에 예수님이 이제 생수를 실제로 주실 내게로 오라 초청하시는 것입니다.
신자들의 신앙생활도 그럴 수가 있습니다.
예배 의식이나 신앙생활 자체가 목적이 아닌 것이죠.
하나님을 경험하고 깊이 아는 은혜를 성도들은 항상 사모해야 합니다.
3. 예수님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고 하셨습니다.
말씀 그대로 ‘누구든지 목마르다’는 것입니다.
이 목마름은 단순한 결핍에서 오는 게 아닙니다.
가진 것 없고 내일이 걱정되는 가난한 사람만 목이 마르지 않습니다.
세상에서 좋은 것을 다 가져도 채워지지 않는다면 이 목마름은 세상의 결핍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죠.
고이어령박사가 70이 넘은 나이에 세례를 받았습니다.
사람들이 이렇게 물었습니다.
“그 나이에 뭐가 답답해서 세례 받는 겁니까?”
이어령씨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생의 모든 걸 다 가져봤지만 너무도 외로웠소.
내 영혼이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갈증을 느낄 때 그럼 인간이 하나님 아닌 누구에게 가야 한단 말이요?”
이어령씨는 그 외로움이 창조주의 부재라는 것을 제대로 알았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누구든지 목마르거든’이라고 하신 것은 말 그대로 ‘누구든지 목이 마르다’는 것입니다.
목마름이 없는 인생은 없습니다.
누구나 목마름을 느낄 것이니 주님께로 나오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언제 더 목마름을 느낍니까?
나를 채워줄 것을 기대했지만 채워지지 않을 때입니다.
초막절 예배를 끝낸 성도들이 그런 것이죠.
기대는 사실 거의 헛 빵인 것 같지 않습니까?
왜냐하면 세상에서 나의 기대를 채워줄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내 편이 아니잖아요?
내가 기대하는 사람들도 서로에게 타인입니다.
그리고 그 목마름의 원인도 사실 세상이나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본성은 하나님이 계셔야 할 자리를 느낍니다.
그곳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게 영원한 목마름입니다.
하나님이 없으면 끊임없이 만족시킬 것을 찾아서 헤매는 것이죠.
사람을 갈망하고, 물질과 성공을 좇고, 쾌락으로 목마름을 해결하려 합니다.
그것으로는 사람의 목마름이 해결되지 않습니다.
배우 박신0씨를 아실 것입니다.
‘애기야, 가자’ 이 대사로 우리나라 여성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었죠.
박신0씨가 화가가 되었습니다.
3월에 큰 전시회를 한다고 하더군요.
박신0씨가 모습을 감춘 것은 갑상선 항진증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병 때문에 자신을 일으킬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힘든 것은 마음 동굴에서 알 수 없는 그리움이 사무쳤다는 거예요.
처음엔 그게 외국에 사는 친구인가 하고 그 친구 얼굴을 그리려고 붓을 들었다고 합니다.
친구의 얼굴을 계속 그렸지만 여전히 알 수 없는 무언가가 그리웠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엔 인생의 짐을 무겁게 진 당나귀를 그렸습니다.
그렇게 자기가 간절히 찾는 게 무언지를 계속 그려가다가 십삼 년이 지난 것입니다.
그 사이 화가가 된 것이죠.
제가 보기에 박신0씨는 아직 갈증의 실체를 찾지 못한 것 같습니다.
예술로 갈증의 빈자리를 채우고 있지만 그걸로는 안되잖아요?
그림이 너무 고통스럽고 어둡더군요.
아직도 구도자의 그림입니다.
술 마시고 놀러 다니고 게임하고 그러는 사람이라면 보면서도 그렇게 안타깝지는 않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박신0작가는 분명 영혼의 깊은 목마름이 있는데 그게 뭔지를 모르는 거잖아요?
너무 가벼운 비유이긴 하지만 그런 것 아닐까요?
등이 가려운데 어딘지 모를 때 그 간질거림.
여전히 그런 마음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 같았습니다.
자기를 존재하게 하신 창조주를 모르는 사람들의 깊은 심연에 이런 목마름이 있는 것이죠.
누가 전도 좀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4. 오늘 예수님이 내게 와서 마시라고 하신 생수는 우리에게 주실 구원이지만 생수이신 주님 자신도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39절,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우리 안에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는 바로 주님의 영이십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 주님께서 생수의 근원이신 자기를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약속에도 불구하고 매일 우리에게 영혼을 적시는 생수가 충분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일까요?
예수님 말씀대로 생수의 강이 우리 배에서 흘러 나오기 때문입니다.
‘배’로 번역한 단어는 깊은 곳이라는 뜻의 단어입니다.
생수가 깊은 곳에 있기에 끌어 올려야 하는 것이죠.
펌프질을 해서 물을 퍼 올릴 때와 비슷합니다.
종일 일하느라 바쁘고, 사람들과 어울려 살다 보면 성령이 주시는 생수의 기쁨은 서서히 바닥으로 내려갑니다.
성령님의 존재를 잊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때 기도와 말씀의 마중물을 부어 생수를 퍼 올려야 하는 것이죠.
그러나 우리는 죄 중에 태어난 존재들이잖아요?
우리에게는 세상 물이 더 좋은 것이죠.
세상 물은 크게 수고하지 않아도 얻을 수 있잖아요?
문을 열면 온 세상에 창일하죠.
얕은 인간관계, 손안에 있는 오락들, 먹고 마실 생각, 이런 것들을 벌컥 벌컥 마시는 것입니다.
기도하고 말씀 묵상할 시간도 없이 살다, 피곤하고 허전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게 되는 것이죠.
예수님은 하나님이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냐고 반문하셨습니다.
왜 성령충만을 구하지 않냐시는 것입니다.
구하지도 않고 왜 주시지 않을 것을 걱정하냐시는 것입니다.
아마 성도님들은 근본적인 목마름은 다 해결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예수님을 안 믿겠다고 생각하며 교회에 나오시는 건 아닐테니까요.
다만 우리를 소성시키는 성령충만을 받지 못하면 광야처럼 메마르고 삶이 푸석푸석해 집니다.
한 주전자 붓고 마는 물로는 금방 목이 마릅니다.
주님은 오늘 명절의 화려한 종교 의식과 떠들썩한 분위기에 갈증을 좀 채워보려 했던 사람들을 향해 물으십니다.
여전히 목마르지 않느냐?
허기진 배를 채우려 허겁지겁 세상 것을 주워 먹는 우리를 향해 물으십니다.
여전히 목마르지 않느냐?
내게로 와서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마셔라
예수님을 믿으면 인생의 갈증, 창조주에 대한 빈자리가 해결되는 것입니다.
또 우리 영혼과 생활이 성령께서 주시는 생수로 활력이 넘치도록 힘써 말씀과 기도의 마중물을 붓고 부지런히 퍼 올리는 모두가 되시길 축복드립니다.
2026년2월25일 수요기도회
'요한복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요한복음8장12절-17절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0) | 2026.03.19 |
|---|---|
| 요한복음9장1절-7절 (누구의 죄도 아니다) (1) | 2026.03.05 |
|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새가족초청예배 설교) 추수감사예배, 요한복음14장6절 (4) | 2024.11.18 |
| 요한복음17장1절-5절 (영생은 무엇인가) (2) | 2024.09.05 |
| 환난 중에도 담대하라 (요한복음16장25절-33절) (8) | 2024.08.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