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예수님의 구속의 사역의 끝이 아주 가까이 다가왔습니다.
내일 새벽 예수님은 체포되어 십자가를 지실 것입니다.
애굽의 종살이에서 해방되던 그 유월절, 어린 양이 죽을 시간이 가까이 다가온 것이죠.
예수님은 마지막 유월절을 제자들과 함께 보내고 계십니다.
사복음서를 종합해 보면 이날 마가의 다락방에서 예수님과 제자들은 마지막 유월절 식사를 함께 했습니다.
이 식사 중에 예수님은 이제까지 하신 적이 없는 두 가지 특별한 일을 하십니다.
빵과 포도주를 나눠주신 성찬식, 그리고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세족식입니다.
성찬식은 십자가에서 피 흘리고 찢기실 주님의 대속의 죽음을 의미합니다.
그렇게 주님이 우리의 생명을 살리는 양식이 되시는 것이죠.
오늘 본문은 세족식입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이유를 몇 가지로 살펴 보고 주님을 본받는 모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1. 발을 씻어주신 것은 예수님의 사랑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세족식이 시작되는 본문 13장1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죠.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이 말씀 단 한 절이 예수님의 사랑을 절묘하게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사도요한이 느꼈던 주님의 사랑이죠.
사람은 자기가 곤경에 빠지면 남을 생각할 여력이 없어집니다.
예수님이야말로 십자가를 앞두고 심한 곤경에 빠져 계십니다.
그런데 자기 사람들에 대한 사랑이 전혀 달라지지 않으셨다는 것이죠.
누가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사람들은 의심합니다.
그것은 괜한 의심이 아닐 것입니다.
실제로 살아보니 사람들의 호의와 사랑이 순수하지만은 않잖아요?
시골 출신 투박한 제자들은 더더욱 사랑 같은 간지러운 감정은 묵살하고 살았을 것입니다.
그런 시대, 이런 세상에 어울리지 않게 예수님은 사랑이셨습니다.
예수님은 가난하셨지만 그러나 로맨티스트로 사셨을 것 같습니다.
예수님이 사랑이신 데 그걸 어떻게 숨기셨겠습니까?
그 증거가 아가서잖아요?
신자들은 예수님을 좀 공의롭고엄격하신 쪽으로 생각하는 편이죠.
더 초즌이란 미국드라마를 보면 예수님이 정말 유쾌하고 다정다감하시고 따뜻한 분으로 나옵니다.
처음엔 그런 예수님이 좀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사랑이시라는 걸 생각하고 복음서를 읽으면 그러실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사랑받는 제자 요한이 기록해서인지 주님의 사랑이 가장 많이 드러나죠.
사랑 때문에 애통하기도 하는 것이지만, 그래도 예수님은 사람들을 사랑하며 행복하게 사셨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사랑하면 행복하잖아요?
우리 신앙이 행복하지 않다면 사랑을 더해야 할 것입니다.
저는 그런 생각을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가면 위대하신 전능자의 그 달콤한 사랑 때문에 모두가 다 사랑의 포로가 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주님이 얼마나 제자들을 사랑하시는지 알길 바라셨습니다.
지금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십니다.
그래서 기록된 말씀 속에서 예수님의 사랑을 묵상해 보는 것이죠.
오늘 예수님이 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셨을까요?
더러워서 씻어 주신 것입니다.
그게 사랑이죠.
이스라엘은 덥고 메마른 날씨 때문에 흙먼지가 많습니다.
외출해서 돌아오면 발을 먼저 씻어야 합니다.
각자의 집에서야 본인이 발을 닦는다지만 초대받은 경우는 다릅니다.
그때는 그 집의 하인이 손님의 발을 닦아 주는 것이 관습이었습니다.
그런데 다락방을 내준 주인이 손님들의 발을 닦아주지 않았던 것이죠.
미리 준비한 다락방을 내준 걸 보면 주인이 예수님 일행을 소홀히 대우 한 건 아닙니다.
예루살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는 것입니다.
산헤드린공회는 이미 예수님을 잡아서 죽이기로 결의가 된 상태입니다.
그래서 이 유월절 만찬을 나눌 장소도 상당히 비밀리에 마련이 되었습니다.
집주인이 주님 일행을 대놓고 환대하지 못할 만큼 조심스러웠던 것이죠.
더러운 발로 식사를 하던 그 침울했던 밤이 제자들에게 불쾌한 기억으로 남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식사를 중단하시고, 대야에 물을 담아와서 제자들의 발을 한 명씩 씻어 주신 것입니다.
주님의 사랑과 그 따뜻한 손길이 제자들 마음에 남길 원하셨습니다.
사랑은 말보다는 손길에서 더 느껴지잖아요?
물론 지금은 발을 씻어주시는 주님이 왜 이러시나 거북하기만 할지 모릅니다.
분명 그날의 제자들 분위기는 그랬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오셔서 주님이 하신 모든 말씀과 행동을 깨닫게 하실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을 나누는 우리에게도 성령께서 예수님의 사랑을 조금씩 더 알아가게 해 주시길 간절히 원합니다.
2. 그리고 나처럼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주라고 하십니다.
14절, 내가 주와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여기까지 오는 동안 틈만 나면 누가 실세인지 다투던 제자들입니다.
과연 제자들이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게 가능할까요?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먼저 발을 씻겨 주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랬다면 누가 그런 허드렛일을 할 것인지 서로 눈치 싸움을 했겠죠.
사람들은 모이면 그런 눈치 싸움을 벌이잖아요?
본능적으로 서열을 세우고 내가 대접을 못 받으면 속에서 화가 끓어오르는 게 사람 마음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먼저 제자들을 씻겨 주시고 너희도 서로 그렇게 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주님처럼 겸손히 남을 섬기라시는 뜻입니다.
시골교회를 섬기는 젊은 목사 부부가 있습니다.
어느 날 아침, 교회 마당에 수북이 쌓인 눈을 목사 혼자 열심히 쓸고 있었습니다.
그때 동네 어르신에게서 전화가 걸려옵니다.
목사님, 시내 나가야 하는 데 버스를 놓쳤어요.
집으로 좀 와 주세요.
아마 요즘은 아들에게도 눈치 보여서 그렇게는 못 할 것 같습니다.
목사는 쓸던 빗자루를 던져 놓고 차에 시동을 걸었습니다.
시골 목회는 24시간 대기조라는 말을 하더군요.
아무리 주님을 위해 헌신한 목사지만 때로 왜 현타가 오지 않겠습니까?
처음 부임했을 때 할머니 성도 1명이었던 교회가 지금은 스무 명 어르신들이 모이게 되었다고 합니다.
젊은 목사 부부가 그 마을 어르신들의 발을 씻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 또 서로 발을 씻어 주라시는 것은 성도들이 서로의 죄를 씻어주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에게도 여전히 죄를 짓고 삽니다.
서로 발을 씻어 주라는 것은 서로의 죄를 용서하라는 의미입니다.
나는 매일 주님의 용서를 받으며 살잖아요?
우리가 서로를 용서할 때 교회와 가정은 화목을 이루고 점점 거룩한 공동체가 되어 가는 것입니다.
3. 예수님은 본을 보여주신 대로 따르라고 하십니다.
그것은 물론 발을 씻어주신 것만을 따라하라시는 건 아닙니다.
15절,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여기서 본이라는 말은 그대로 따라 할 교본을 말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교본이라는 것이죠.
예수님이 하신 대로 그대로 복사해서 내게 붙이는 것이 주님을 따르는 제자입니다.
16절,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종이 주인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나니
다른 방식을 생각하지 말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되 내 본성이 원하는 걸 취사선택하며 살려는 신자들이 많습니다.
그런 신자들이 영리해 보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그 삶은 세상적으로도, 신앙적으로도 어정쩡할 뿐입니다.
양쪽을 흉내만 내다 아무 것도 제대로 이루지 못할 것입니다.
신자들은 하나님을 믿기는 하겠지만 예수님을 그대로 따라 사는 제자의 삶은 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도가 되었다면 제자다운 삶에 영광이 있음을 믿으셔야 합니다.
물론 진리를 가르치고 병을 고쳐주고 긍휼을 베푸신 예수님께 돌아온 것은 사람의 영광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모함을 당하고, 비방을 받았습니다.
나사렛사람이라 무시당하고, 모욕을 당했습니다.
제자들이 복음을 전할 때도 사람들은 똑같이 그럴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이 어떻게 하셨는지를 기억하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결국 받으신 영광을 기억하라시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2장9절,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절,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절,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히브리서 12장2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예수님처럼 하지 않고 영광을 얻겠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예수님이 못하신 걸 우리가 어떻게 하겠습니까?
우리는 예수님이 오늘 가르쳐 주신 그대로 따라가야 합니다.
한 영상에서 간암 말기로 세상 떠날 준비를 하는 한 아버지의 기구한 삶을 보았습니다.
자폐1급 장애를 가진 27살 아들의 지능은 2세 수준에 멈췄습니다.
괴성을 지르는 것 외에는 단 한마디 말도 하지 못하는 중증 장애였습니다.
아버지는 이 아들을 위해 27년 세월을 바쳤습니다.
오늘 당장 죽을 수도 있는 이 아버지는 아들이 평생 지낼 요양원을 찾아 주는 게 남은 숙제였습니다.
그런데 성인 중증장애인을 받아 주는 요양시설은 없더군요.
두 부자의 처지가 너무 딱했습니다.
아버지는 두 살 지능을 가진 아들에게 머리 감는 법을 가르쳐보지만 아들은 꿈쩍도 않고 하염없이 서 있기만 합니다.
덩치는 산만한 아들에게 얼굴에 비누를 바르고 수염 깎는 법을 가르쳐 보지만 어림없는 일이죠.
다른 아들들은 다 할 수 있는 일을 왜 내 아들은 못하는지, 아버지의 얼굴은 금방 울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아들이 살길 바랬기에 한가지라도 가르치려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습니다.
영상을 보며 오늘 십자가를 앞두신 예수님이 제자들을 가르치시는 모습이 중첩되어 보이더군요.
제자들을 두고 떠나실 예수님 마음이 그 아버지 마음에서 느껴졌습니다.
어쩌면 지금 주님께서는 절대 따라할 수 없는 걸 제자들에게 보고 배우라고 하시는 것 같죠.
우리도 그런 것 같습니다.
우리가 요즘 마태복음 설교를 듣고 요한복음 큐티를 합니다.
예수님처럼 산다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렇게 살고 싶지도 않아서 배우려고 하지도 않는 건 아닙니까?
그러나 결국 제자들은 예수님처럼 살다 예수님처럼 죽었잖아요?
오늘 주님께 보고 배운 것을 성령께서 계속 깨닫게 하시고 감화하셨기 때문입니다.
잘 배워야 성령께서도 역사하실 수 있습니다.
오늘 주님이 보여주신 사랑을 먼저 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주님이 행하신 겸손히 섬기는 본을 조금씩 따라가는 모두가 되시길 축복드립니다.
2026년3월18일 수요기도회 남수연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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