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난 주일 감격의 부활주일을 보냈습니다.
오늘은 어린이 주일입니다.
우리 사랑하는 주는나의산성교회 어린이들과 자녀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훌륭하게 성장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복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40일을 보내시고 하늘에 승천하신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3년 반을 동고 동락하며 아름다운 정을 쌓았던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이별의 순간이 찾아왔습니다.
사람들이 헤어질 때의 모습을 보면 그 관계가 어땠는지 쉽게 짐작할 수가 있죠.
중요한 관계 일수록 헤어지는 것에도 큰 의미를 부여합니다.
막 사랑을 시작한 연인들은 내일 다시 만날게 뻔한 데도 마치 로미오와 줄리엣 같은 이별을 하지 않습니까?
깊이 사랑할 수록 잠시의 헤어짐에도 남아있을 사람을 위해 세심한 배려가 있는 것을 봅니다.
요즘 학교는 일 년에 한 번씩 학생 수련회가 있습니다.
지금은 도처에 배달 음식이 널려 있지만 십 여년 전만 해도 여교사들에겐 수련회 전날이 전쟁터나 다름없었습니다.
장을 봐서 곰국을 한 솥 앉히고 장조림, 마른 반찬 몇 가지를 만들어 냉장고에 넣어둡니다.
애들이 입고 갈 옷과 양말을 챙기고 밥 솥 누르는 법을 다시 한번 확인시키고 그것도 모자라 냉장고 문에 지시 사항을 빼곡히 적어 붙여 놓게 되죠.
이런 밤을 보내고 수련회를 떠나는 날 버스에 올라타면 그야말로 파김치가 되어있습니다.
요즘은 배달해 먹을 음식도 다양해서 그런 신경은 덜 쓰지만 아직 어린 자녀를 둔 선생님들은 떠나는 시간부터 삼 일 내내 휴대폰을 들고 원격조정을 쉬지 않는 걸 봅니다.
밥 먹을 시간 학원 갈 시간 아침엔 또 모닝 콜까지 해도 안심이 안되는 게 부모 마음입니다.
우리 심재숙성도님도 미국에 있는 다혜양 시험 때는 휴대폰으로 깨워주는 모습을 제가 여러 번 보았습니다.
어린 자녀들을 두고 단 며칠이라도 집을 비우는 것이 이렇게 마음이 쓰이는 일임을 다 경험하셨을 것입니다.
우리 주님도 마음을 다하여 사랑하시고 여전히 연약한 제자들을 떠나 천국에 오르시는 일이 무척 마음에 걸리셨을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3절을 보면 부활하신 후 40일 간 제자들과 함께 계시며 재차 당부하고 또 하나님 나라의 일을 가르쳐주셨다고 기록합니다.
오늘 본문이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당부한 말씀이라면 우리에게 주시는 가장 중요한 말씀임이 틀림없습니다.
이 땅에서 예수님을 믿고 따라 가기로 결정한 우리들에게 주시는 간추리고 간추린 파이널 정리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사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다시 만난 제자들의 마음이 어땠을지 생각하면 우리가 다 민망해지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주님의 부활을 보고 주님의 고난의 현장에서 믿음을 확증 할 결정적인 기회를 놓친 것을 후회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을 다 버리고 도망했던 연약한 제자들을 다시 찾으신 것은 주님이십니다.
진정한 사랑에는 자존심도 권위도 없는 것 같습니다.
신구약 성경을 읽다보면 인간을 향해 한없이 손을 벌리시는 하나님의 모습이 반복해서 나타납니다.
하나님이 친히 이렇게도 말씀하십니다.
이사야 65장 2 내가 종일 손을 펴서 자기 생각을 따라 옳지 않은 길을 걸어가는 패역한 백성들을 불렀나니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우리의 허물을 덮으시고 다시 부르십니다.
제자들에게 주님의 고난에 현장에서 내뺏던 불신앙을 나무란 내용을 성경에서 찾아볼 수 없습니다.
단지 두고 떠날 연약한 제자들을 안타까워 하시는 주님의 마음이 본문에서 느껴집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부활 전이나 똑 같고 승천하셔 하늘에 계신 지금도 똑 같은 걸 믿습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신 주님의 사랑이 제자들에게와 꼭 같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줄 믿습니다.
그렇기에 비록 견고한 믿음의 삶을 살지 못하고도 우리가 주님의 사랑을 의지하여 또 아버지 앞에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사랑을 믿기에 이렇게 뻔뻔한 제자들 좀 보십시오.
6절에 보면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는 것이 이 때냐며 또 권력에 대한 속셈을 내보입니다.
주님은 그들의 속마음을 꿰뚫어 보시면서도 그것 조차 노엽게 생각하지 않으십니다.
우리의 이기적이고 세속적이고 약한 본성을 너무나 잘 아시기 때문이죠.
그래서 우리가 좀 잘못 된 것을 구해도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대로 선하고 좋은 길로 응답하시며 우리를 인도해 가시는 줄 믿습니다.
다만 주님은 이런 나약하고 헛점 투성이의 제자들을 주님의 사람으로 변화시킬 방법을 준비하셨습니다.
그것은 5절에 기록 된 대로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것입니다.
성령이 임하실 때 제자들의 삶이 능력있게 변화되고 8절에 말씀하신 대로 비로소 주님의 증인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승천하시며 남기신 가장 중하고 아름다운 말씀을 묵상하며 은혜를 나누길 원합니다.
성령께서 말씀을 듣는 가운데 임하셔서 깨닫는 지혜와 은혜를 풍성하게 내려주시길 간절히 소원합니다.
첫 번 째로 예수님의 승천에 대해 좀 살펴보겠습니다.
예수님은 감람원이란 곳에서 제자들이 보는 가운데 하늘로 승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신 사명을 다 이루시고 영광스런 하나님의 자리로 돌아가신 것인데 신학 용어로 승귀하고 합니다.
이 사건 역시 구약성경의 여러 곳에 예언 된 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사야선지자는 메시야의 승천에 대해 이사야 52장13절에 보라 내 종이 형통하리니 받들어 높이 들려서 지극히 존귀하게 되리라라고 예언했습니다.
다윗도 시편68편18절에 주께서 높은 곳으로 오르시며 사로잡은 자들을 이끌었다고 주님의 승천을 예언했습니다.
그리고 시편 시편 110장 1절에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으라 하셨도다라고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미 예언 된 대로 승천해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마가복음16장19절에 보면 예수님의 승천하는 장면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신 후에 하늘로 올려지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니라
지금 하늘 보좌 우편에는 인간의 모습을 가진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여전히 우리를 위해 중보의 사역을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꼭 알아야 할 말씀이 있습니다.
에베소2장 5절에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셨다는 말씀입니다.
주님의 부활이 우리의 부활이고 주님의 승천이 우리의 승천이란 뜻입니다.
우리의 영적인 지위는 이미 주님 안에서 하늘에 앉은 자들이란 말씀이죠.
놀랍지 않습니까?
이 말씀이 왜 중요하냐하면 영적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우리의 위치를 말해주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생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영적 싸움터입니다.
인간이 고통하고 우리 인생에 풍파가 닥치는 것은 인간의 죄와 우리를 괴롭히는 악한 영들의 합작품입니다.
우리의 대적은 이 땅의 혈과 육이 아니라 공중 권세 잡은 악한 영들이라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땅에 속한 자들은 하늘에 있는 악한 영에 대해 패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고 주님과 함께 승천한 사람만이 세상의 공중 권세 잡은 자 위에서 예수님 이름으로 그것들을 밟고 능히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늘에 속한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골로새서 3장 2절은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말씀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깊이 묵상하고 날마다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가 승천하셔서 하늘에 오르신 예수님과 함께 하는 승리의 신앙이 되어야 하는 줄 믿습니다.
예수님은 지금 하나님 우편 보좌에서 우리의 영적 싸움을 지원하고 중보하며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계십니다.
우리 주님의 기도로 우리가 영적 싸움에서 패배하지 않고 우리 역경을 이기고 오늘도 하나님을 예배하게 하시는 줄 믿습니다.
승천하신 예수님과 함께 하늘에 오른 우리의 믿음이 더욱 담대하고 능력있고 기쁨이 충만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드립니다. 아멘.
둘 째는 예수님이 승천하시며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살펴보겠습니다.
8절에 보면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주님의 십자가를 통해 인류가 구원 받을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이젠 이 구원의 기쁜 소식을 모든 사람에게 전해서 구원을 받게 해야 합니다.
그런데 전 세계를 상대할 복음의 일군으로 주님이 이 땅에 남겨두신 것은 고작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고 섰다 천사로부터 책망 받는 평범한 어부 출신 제자 12명 뿐입니다.
이런 연약한 제자들 12명만 키워놓고 주님이 하늘로 가버리신 것인지요.
누가 봐도 세계를 복음화 시켜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기엔 턱도 없이 역부족인 제자들 아닙니까?
로마의 식민지인 가장 작은 나라 이스라엘 어촌 갈릴리에다 소중한 주님의 생애를 다 쏟아 부으신 것입니다.
우리 같으면 이런 작전은 쓰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와 다르고 하나님의 방법이 우리와 다릅니다.
이사야 55장 9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실패한 것 같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구속이 하나님의 구원의 방법이었듯이 이 12명의 제자들을 통해 결국 온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우리 생각과 다를 때 감사하시길 축복합니다.
지금 우리의 바라던 것이 실패한 것 같으나 반드시 하나님은 더 좋은 길을 예비하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다고 고린도전서 1장은 말씀합니다.
주님이 세상을 구원하는 방법은 십자가였고 전도의 미련한 방법입니다.
주님께서는 부활하신 후 예루살렘 성전에 한번도 나타나지 않으셨습니다.
성전에 나타나셔서 주님을 못 박은 유대인들에게 영광의 모습을 보여주시면 순식간에 회개하지 않았을까요?
하나님이 원하시면 왜 지금 죄인들을 한꺼번에 구원하지 못하시겠습니까?
그런데 부활하신 주님은 갈릴리로 가자고 서두르십니다.
먼저 갈릴리로 가 있을테니 어서 오라고 제자들을 독촉하셨습니다.
처음 제자들을 부르셨던 바로 그 작은 어촌 마을에서부터 오직 제자들의 힘으로 복음 전파는 시작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복음을 전파해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기회와 공을 온전히 우리에게 넘기시길 원하십니다.
영광스런 구원의 직분을 우리에게 주시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전도의 미련한 방법으로 한 사람 한 사람을 구하라고 하십니다.
주님은 부활하신 후에 십자가의 죽음에 낙심해서 고향으로 돌아가는 두 제자에게 나타나셔서 구약성경을 가지고 메시야의 부활을 가르쳐 주십니다.
그들과 여관에 머물며 식사를 함께 하며 하루를 소비하십니다.
갈릴리로 돌아가 고기나 잡자는 실망한 제자들을 해변에서 기다리시며 숯 불을 피워 떡과 생선을 굽고 계십니다.
주님도 역시 한 사람 한사람을 찾아가셨습니다.
성경에는 8번 정도 이런 모양으로 나타나심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남은 날 동안 주님이 무엇을 하셨을까요?
아마도 주님은 성경에 기록되지 않은 사람들을 한 사람씩 찾아가지 않으셨을까 생각합니다.
향유 옥합을 부은 마리아를 찾아가 부활의 주님을 친히 보여 주셨을지도 모릅니다.
나귀 주인과 최후의 식탁을 준비해 주었던 다락방 주인에게도 찾아가지 않으셨을까요?
어쩌면 힘이 다 빠지신 주님 대신 십자가를 운반해 주었던 시몬을 찾아서 멀리 구레네까지 가셨을지도 모르죠.
주님은 나에게도 한 사람의 전도를 통해서 찾아오신 줄 믿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마지막 명령과 당부는 우리 곁에 있는 한 사람을 만나 복음을 전하라는 것입니다.
전도는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우리에게 이 땅과 내세에서 놀라운 축복을 숨겨둔 하나님의 선물인 줄 믿습니다.
권0희 권사는 4년 연속 여의도 순복음 교회 전도왕입니다.
MBC 김주0 앵커의 어머니입니다.
전도를 시작한지 10년이 된 작년 한해에 116세대를 전도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밥도 사주고, 쌀도 팔아주고 때로 용돈도 주며 모든 것을 다 나누어 주며 전도한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고마워서 전도하고 전도하니 더 많은 축복을 주시니 또 감사해서 전도를 멈출 수가 없다고 합니다.
첫딸 김주0 아나운서가 일곱 살 때 이 가정이 큰 위기를 만났습니다.
남편이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사업을 하다 사기를 당하는 바람에 졸지에 모든 것을 잃고 남의 집 지하실에 세 들어 살게 됐습니다.
살 길이 막막했고 정말 죽고 싶은 마음인 데 실의에 빠진 남편과 어린 딸들의 얼굴을 생각하면 눈물이 나고 자꾸 눈에 밟히는 겁니다.
그래서 죽기를 각오하고 직업 전선에 뛰어들어 닥치는 대로 일했습니다.
요구르트아줌마, 파출부, 고기 판매사원 등 안 해 본 일이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남편의 제기를 위해 1년 동안 아침 금식 기도를 했더니 하나님이 남편에게 새 직장을 주셨습니다.
기도 응답 체험이 너무 놀라워 이번엔 두 딸을 높여주시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겠다고 서원 기도를 드렸습니다.
소외당하고 가난한 자들을 보살피며 믿지 않는 이들을 전도하겠다는 서원기도에 하나님은 또 응답해 주셨습니다.
큰딸은 앵커로 작은 딸은 교사의 길로 인도해 주신 것입니다.
전도를 했더니 물질의 축복도 주셨습니다.
아파트나 빌라를 사기만 하면 재개발 지역으로 선정되면서 가격이 두 세배로 뛰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게 전도하러 다니며 귀동냥한 부동산 지식 덕택이랍니다.
권0희 권사는 전도하면 망했던 것도 다 채워주시고 말씀대로 살면 나머지는 보너스라고 말합니다.
김주0 앵커도 어머니의 뒤를 이어 반 만이라도 전도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합니다.
하루 종일 전도할 사람을 기다릴 때도 있고 따가운 눈총과 질시를 받을 때도 있지만 그는 전도하는 자신이야말로 참 행복한 사람이라고 고백합니다.
예수님의 속죄와 부활과 승천하심으로 구원의 길은 모든 사람에게 열려졌습니다.
예수님이 복음을 통해 인간을 구원할 기회를 먼저 믿은 사람들에게 허락하신 다는 것이 은혜요 축복인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 용기가 필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복음을 전함으로 그 말을 들은 사람이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되면 그 가치를 어디에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지난 호주 크라이스트 처치 대 지진 때 참사 소식을 듣고 작업하던 망치 하나를 갖고 달려가 여덟 명의 인명을 구원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한 사람을 구하는 것이 너무 감격스럽고 소중해서 손이 까지고 몸이 긁히는 것도 모르고 망치 하나로 건물 잔해를 헤집고 다녔다는 것입니다.
생명을 살리는 기쁨을 맛본 그 사람은 평생에 그 일을 생각하며 큰 보람 속에 살겠지요.
한 영혼을 지옥에서 건져 천국으로 인도하는 기쁨과 소중함을 거기에 비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이 우리에게 복음을 전할 사명을 맡기심은 우리를 종처럼 부려먹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고린도후서3장6절에 보면 그가 또한 우리를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하게 하셨다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주신 복음 전파의 사명을 이스라엘을 출애굽 시킨 모세의 사명과 비교합니다.
그 결과가 어떤 줄 아십니까?
율법의 직분도 영광이 있어 모세의 얼굴의 광채를 사람들이 주목하지 못했는데 하물며 우리들이 받은 영광의 직분은 거기에 비할 수 없이 영광스러운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삶의 터전은 주님이 우리를 파송한 선교지인줄 믿습니다.
주님이 주신 기회이자 부탁이라 생각하며 복음을 전하려고 애쓰는 성도님들을 하나님아버지께서 두 손 들어 그 직장과 가정을 크게 축복하시리라 확신합니다.
셋째는 예수님은 승천하시며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주십니다.
주님은 최후의 만찬 때 이미 제자들을 떠나 하늘로 가셔야 할 때가 되었음을 말씀하셨습니다.
시무룩해진 제자들에게 가셔서 성령을 보내주시겠다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성령을 또 다른 보혜사라고 말씀했습니다.
보혜사란 지켜주고 은혜를 주시는 스승이란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도와주고 보호하고 하늘의 신령한 이치들을 가르쳐주셨듯이 성령께서 이제 그 것을 해주실 거라는 것이죠.
영원히 인간의 육신을 갖게 되신 예수님은 우리 한 사람씩을 다 돌볼 수 없으시기에 주님의 영인 성령님을 우리 각 사람에게 보내주시려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의 죄 값을 다 치르시고 승천하심으로 이제 우리 속에 성령이 오실 수 있는 합법적인 길이 열린 것입니다.
창세기 6장 3절에 보면 아담의 범죄 후 급속히 타락해 돌이킬 수 없게 된 사람들을 향해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신, 성령이 우리의 죄로 인해 우리를 영원히 떠난 것입니다.
그런데 요한복음 7장 39에 보면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못하신 고로 성령이 아직 저희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죄인과 함께 할 수 없어 떠나셨던 성령님이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우리에게 다시 오시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성령을 받아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요한복음3장5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죄인은 반드시 성령으로 거듭나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2장 3절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님이라고 할 수 없다고 기록되었습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오셔서 가르치고 증거해 줄 때 비로서 인간은 십자가에 죽으신 주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내 죄로 인해 죽으셨다는 것을 믿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애를 쓴다고 이 사실은 믿어질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안 믿어지는 게 이성적으로는 지극히 정상입니다.
그런데 정말 묘하고 신기하게도 성령이 임하시는 순간 이 사실이 믿어지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신부가 되려던 폴 뮌젠이란 사람이 하버드대학에서 비교종교학을 전공하다 한국에 와 현각이란 승려가 된 이야기를 들어보셨을 겁니다.
그는 독실한 천주교 집안에서 자랐지만 예수님이 자신의 죄를 대속한 하나님이 아들이라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성령이 없이는 믿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결국 자신이 승려가 된 사연을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란 책으로 냈습니다.
서울지방법원 부장 판사를 지낸 문0순 변호사가 있습니다.
그는 반대로 향천사에서 하버드까지란 책을 썼습니다.
향천사란 시골 절 옆에서 불교를 믿으며 보릿고개를 겪으며 가난하게 살던 자신을 부르셔서 서울법대를 나와 판사가 되게 하시고 하버드법학대학원으로 보내주신 하나님을 증거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는 불교에 심취해 있던 고등학교 시절에 가장 좋아하던 형의 갑작스런 죽음을 당했습니다.
사람의 생명을 살릴 수 있는 사람은 하나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던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주여, 주여, 주여를 수도 없이 종이에 썼다고 합니다.
그는 결국 형의 죽음으로 삶과 죽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이 기독교 밖에 없다 생각하고 교회를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예수님이 2천년 전에 십자가를 지고 죽으신 사건으로 자신의 죄를 다 없애셨다는 게 납득이 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신이 저지른 죄의 값을 자신이 치른다는 동양적 인과응보관이 정당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의 진리와 하나님을 거부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대속의 은혜를 깨닫게 해달라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꿈을 꾸었는 데 하얀 비둘기가 자기를 향해 내려오는 데 그 기억이 너무나 선명해 생시 같았다고 합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비둘기는 성령님을 상징하는 데 그럼 이제 내게 성령의 은혜를 주시려나 보다 잔뜩 기대를 했습니다.
그는 목사님의 말씀대로 복음을 전해보자 생각해서 친한 친구에게 전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가 어떻게 십자가의 죽음이 우리를 구원한다는 말도 않되는 소리를 하냐고 자기의 약점을 공격하는 바람에 기가 팍 꺾여 집으로 돌아오던 중 불현듯 성령의 은혜를 체험합니다.
마음 속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는 데 왜 모든 인간의 죄를 대신 할 수 없겠냐는 음성이 들리며 순식간에 그동안의 모든 의심이 안개가 걷히듯 사라졌습니다.
걷잡을 수 없는 눈물이 쏟아지며 자신이 엄청난 죄인인 것을 회개했습니다.
불신했던 죄를 하나님께 고백하며 회개를 하고 완전히 새사람이 된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성령이 임하시고 예수님의 대속이 믿어지자 만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평생 100만명에게 복음을 전하게 해달라는 기도를 하던 그는 책받침 전도지를 만들어 만나는 사람마다 복음을 전했고 간증 집회에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의 간증을 통해 예수님의 십자가의 구원을 깨닫게 하는 것도 성령이시고 전도의 능력을 주시는 것도 성령이심을 보게 됩니다.
우리에게 십자가의 구원의 확신이 부족하면 무엇보다 성령님의 은혜가 필요한 줄 믿습니다.
그리고 오늘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주님의 증인이 되려면 또한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이 오시지 않으면 결코 주님의 증인 된 삶을 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과 부활과 승천을 믿는다 해도 이 사실을 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성령의 능력이 임하셔야 합니다.
성령 충만을 받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연약한 제자들이 성령 받기를 제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냐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의 충만을 받을 때 구원의 이치가 믿어지고 확신이 생기며 담대함과 전도할 능력이 오는 줄 믿습니다.
성령충만을 매일 구하십시오.
하늘이 열리며 영적인 세계가 환히 보이며 우리의 인생관이 달라지는 놀라운 축복이 임할 줄 믿습니다.
아직 우리 믿음이 연약해서 불분명하고 의문투성이인 이 신앙생활이 전부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성령을 받으라고 하십니다.
믿음으로 구하는 성도님들께 우리의 가장 좋은 상담자요 스승이신 성령께서 임하셔서 우리 삶에 동행해주시고 인도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랑하는 제자들을 위해 가장 좋은 것을 예비해 주셨습니다.
세상 끝날 까지 우리와 함께 해 주실 주님의 영인 성령님을 보내주신 것입니다.
우리 기도의 골방에서 끈기를 갖고 성령의 임재를 기도할 때 반드시 강력한 성령님의 능력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이 임하실 때 우리는 듣고 배우고 체험한 모든 것을 증거할 수 있는 담대한 믿음을 갖게 될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땅 끝까지 주의 복음을 증거하는 교회를 꿈꿉니다.
우리의 마지막 날에 주님 앞에 섰을 때 우리에게 주신 아름다운 사명을 인해 감사할 것입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믿음의 확신 안에서 직장과 일터에서 복음을 전하는 복된 제자의 삶을 사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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