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가정의 달 설교 (마태복음12장46절-50절) 예수님의 새 가족

남수연 2026. 5. 7. 16:38

 

https://youtu.be/Jbh22Arluh4

 

 

가정은 혈연공동체입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은 혈연을 강조하는 말이죠.

그러나 가족들 때문에 피눈물 나는 고통을 겪기도 합니다.

최근 저희 아파트에서 이런 일들이 있습니다.

저희 바로 윗층 같은 라인에는 치매 노인이 살고 계십니다.

12시 이후부터 가족들이 방문을 잠그나 봅니다.

그때부터 문 열라고 방문을 흔들기 시작합니다.

가끔은 새벽까지 계속됩니다.

관리사무소에 몇 번이나 전화를 하려다가 그만 두었습니다.

치매 노인을 모시고 사는 그 가족의 고통이 헤아려지기 때문입니다.

윗층 옆 라인에서는 요 며칠 한밤중 술에 취한 가장이 문 앞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릅니다.

문을 발로 걷어차며 난리도 아닙니다.

무슨 일이 잘 안되나 보죠.

30분쯤 지나면 조용해지더군요.

집 안에서 틀어막던 문제들이 결국은 집 밖으로 터져 나온 것이겠죠.

사람 사는 게 다 이런가, 층층이 불 켜진 집마다 무슨 눈물과 고통이 있으려나 싶었습니다.

오늘 예수님의 가족들이 본문에 등장합니다.

좀 드문 장면이죠.

그런데 예수님 가정도 시련이 닥친 것 같습니다.

예수님이 가족들에 대해 좀 냉정해 보이시죠.

오해는 마시기 바랍니다.

오늘 주님은 천국 가족이 누군지를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천국 가족에서 벗어난 사람들에 대해서 경고하시는 것이죠.

우리도 예수님의 새 가족이 됨을 오늘 확신할 수 있길 바랍니다.

또 이 땅의 우리 가정이 어떻게 하면 좀 좋은 가정이 될 수 있을지도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1.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천국 가족이 누구인지를 새롭게 정의해 주십니다.

유일한 하나님 백성이라 자부하던 이스라엘에 대한 경고이기도 하죠.

1) 오늘 본문만 보면 예수님을 오해하기 쉽습니다.

앞에서 있었던 일들을 함께 보아야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지난주 예수님이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신 문제로 큰 갈등이 있었죠.

유대인들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안식을 주실 당사자가 오셨는데, 계속 안식일만 지키겠다는 것입니다.

이게 현재의 신자들의 문제이기도 하죠.

신앙생활, 교회생활은 열심히 하되 예수님과의 관계는 멀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도 손으로 봉사하는 것, 활동적인 것은 그래도 할 만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깊은 관계를 맺는 것은 나의 전인격을 집중해야 하죠.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래도 성령님의 도움을 구하며 하나님과 관계 맺기에 꾸준히 노력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영혼이 시들거나 메마르지 않게 됩니다.

예수님이 포도나무와 가지 비유에서 주님께 꼭 붙어 있으라고 하셨던 걸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바리새인들은 안식일 논쟁 이후 주님을 따라다니며 사사건건 방해합니다.

예수님이 귀신 들린 사람을 고쳐주시면 귀신의 힘으로 쫒는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성령의 능력으로 병을 고치고 귀신을 내쫒는 것은 이미 예언된 메시야의 징표입니다.

성령께서는 예수님이 메시아란 걸 알도록 사람들을 감화하십니다.

그걸 거부하면 어떻게 예수님을 믿겠습니까?

그래서 성령을 훼방하면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경고하신 것입니다.

이야기는 서서히 유대인들이 구원받는 데 실패할 것으로 모아지고 있는 것이죠.

예수님이 같은 맥락으로 오늘 천국 가족 이야기를 하신 것입니다.

 

2) 이때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어머니와 형제들이 주님을 찾아왔습니다.

46, 예수께서 무리에게 말씀하실 때에 그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예수께 말하려 밖에 섰더니

예수님이 어느 집에 들어가셨고, 따르던 무리들이 집주변에 잔뜩 몰려 있었습니다.

같은 사건을 기록한 마가복음3장을 보면 사람들이 많아 가족들이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고 합니다.

가족들이 왜 주님을 찾으러 온 것인지 본문에는 나와있지 않습니다.

마가복음에 그 이유가 나옵니다.

321, 예수의 친족들이 듣고 붙들러 나오니 이는 그가 미쳤다 함일러라

종교사회였던 유대사회에서 권위자는 바리새인과 서기관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예수님을 귀신 들렸다고 단죄한 것입니다.

그러니 가족들도 예수님의 정신이 온전치 못하다 믿고 찾아 나선 것이죠.

오늘 예수님을 찾으러 온 가족은 어머니 마리아와 네 명의 형제들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 네 명의 형제가 있었고 여동생들도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많은 가족들의 가장이셨습니다.

목수였지만 일이 없으면 다른 잡다한 일들도 하셨을 것입니다.

그렇게 벌어온 돈으로 가족들을 건사하셨던 것이죠.

그러던 장남이 하나님 일을 하겠다고 집을 떠났다면 가족들은 어떨까요?

회사 잘 다니던 아버지가 목사가 되겠다고 직장을 그만둔 것과 비슷한 충격이겠죠.

물론 동생들이 여럿이니 힘을 합쳐서 먹고 살 수는 있었을 것입니다.

그 정도의 대책도 없이 예수님이 집을 떠나시지는 않았겠죠.

그러나 가정의 기둥이던 가장의 부재는 가족 모두에게 큰 충격입니다.

형제들은 그렇게 집을 떠난 형님에 대한 불만과 염려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가족들이 예수님의 일을 이 정도로 불신했다는 게 좀 의외죠.

세상 가운데서 예수님만 그만큼 다르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대속의 복음은 세상사람들에겐 산신령 이야기처럼 들릴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 말씀대로 그대로 살면 사람들이 미쳤다고 할지 모릅니다.

바울사도를 보고도 미쳤다고 했잖아요?

우리 신앙은 세상의 상식 안에 있는 게 아니라는 걸 항상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3) 사람들은 이 상황이 예수님께 모욕적이라 생각했습니다.

47, 한 사람이 예수께 여짜오되 보소서 당신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당신께 말하려고 밖에 서 있나이다 하니

방금도 예수님이 메시아냐 아니냐로 논쟁 중이었잖아요?

그런데 예수님의 가족들이 주르르 주님을 데리러 나타난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기다리던 메시야는 다윗의 자손입니다.

메시야가 온다면 다윗왕과 같은 영광을 가진 사람일 거라 믿었습니다.

물론 이사야선지자는 이미 먼 미래에 오실 메시야는 그렇지 않다고 예언했죠.

이사야서532,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이들이 이사야서를 늘 읽으면서도 메시야에 대한 정보가 어두웠다는 것이죠.

사람들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기 때문일 것입니다.

유대인들에게 메시야는 반드시 다윗왕과 같이 힘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로마제국을 몰아내고 옛날의 영광을 다시 가져다 줄 거잖아요?

초라한 행색을 한 예수님 가족들은 왕족의 모습은 아니죠.

예수님 체면이 깎일만한 것입니다.

우리도 가족, 친척들이 사회적으로 번듯하면 위신이 좀 선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그렇잖아요?

그 사람 아버지가 고위 공무원이래, 어머니는 교수고, 형님은 의사고, 누나는 변호사래.

그러면 오, 그래? 그러면서 다시 보잖아요?

예수님은 사람들이 눈을 크게 뜨고, 일이 재밌게 되겠다 기대하는 것을 아셨습니다.

주님은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48, 말하던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누가 내 어머니이며 내 동생들이냐 하시고

49, 손을 내밀어 제자들을 가리켜 이르시되 나의 어머니와 나의 동생들을 보라

이것은 예수님이 가족들을 부정하시는 게 아닙니다.

예수님은 이 대답을 누구에게 했다고 합니까?

주님의 가족들이 찾아왔다고 말하던 그 사람에게 말씀하셨다고 하죠.

이미 그 사람이 예수님의 출신으로 모욕 줄 속셈인 걸 아셨던 것이죠.

남루한 가족들이 정신 나간 예수님을 잡으려 왔다는 이 상황이 딱 주님을 모욕하기 좋잖아요?

그 사람에게, 그리고 그런 유대인들에게 답하신 말씀입니다.

누가 내 어머니이며 내 동생들이냐 하시고

그러시며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을 가리키십니다.

나의 어머니와 나의 동생들을 보라

유대인이란 혈통이 곧 하나님의 가족이 되는 게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이고, 율법과 할례를 받았고, 안식일을 지키는 유일한 민족이었죠.

단연코 우리만 하나님의 백성이라 믿었습니다.

예수님이 오늘 자기 혈통의 가족을 부인하시는 것을 통해, 유대인들이 자만하던 혈통적 구원을 부정하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2천년 동안 믿어왔던 것이 완전히 뒤집히는 것이죠.

교회에 나오는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의 가족일까요?

신자들은 이 질문을 피하지 말아야 합니다.

유대인들처럼 형식에 빠진 신앙생활을 할 게 아니라 나를 점검해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사도를 통해 주신 말씀이 있죠.

고린도후서 135,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오늘 냉정해 보이는 말씀은 이제 가족과는 갈라섰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유대인들에게 너희는 내 가족이 아니라 선언하시는 것입니다.

한편 예수님과 혈연관계인 동생들도 하나님나라에서 주님의 가족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처럼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면 그들도 구원 공동체의 일원이 될 수 없습니다.

오늘 예수님의 가족들은 주님을 온전히 믿지 못한 게 분명합니다.

그러나 이후 마리아는 예수님의 사역에 함께 합니다.

동생들도 주님의 부활 이후 제자 대열에서 발견됩니다.

신약성경 야고보서를 기록한 야고보와 유다서를 기록한 유다가 오늘 예수님을 찾으러 왔던 동생들입니다.

결국 혈통의 가족에서 예수님의 새 가족으로 들어온 것이죠.

 

4) 그렇다면 누가 예수님의 천국 가족이 되냐는 것입니다.

50,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하시더라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예수님의 새 가족이 된다는 것이죠.

이것은 하나님의 계명을 잘 지키는 사람이 새가족이라는 게 아닙니다.

계명을 잘 지켜서 구원받을 사람은 없습니다.

예수님은 그러면서 제자들을 가리키셨잖아요?

제자들처럼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것이 아버지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를 가족으로 받으시기 위한 하나님의 방법은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구원얻을 다른 이름도 없고, 다른 방법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율법을 지켜 구원받게 하시는 게 아닙니다.

착한 일을 해서 구원받을 수도 없습니다.

율법은 선한 것이었지만 지키지 못한 것이잖아요?

예수님의 새 가족이 되려면 예수님이 손을 내밀어 가리키신 제자들처럼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오늘 예수님께 도전했던 사람은 이 말씀이 무슨 의미인지 알았을까요?

그렇다면 아브라함 때부터 2천년, 모세로부터 15백년 여호와를 섬겨온 신앙이 다 부정당하는 것 같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모세를 부정한다고 미워했던 것이죠.

네가 아브라함보다 높으냐, 모세보다 나으냐 그랬잖아요?

일개 젊은 랍비가 긴 세월 고난을 겪으며 지켜온 자기들의 신앙을 뒤집어 놓은 것 같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왜 장자인 이스라엘을 내 백성이 아니라고 하셨겠습니까?

그들의 빗나간 신앙을 고쳐 구원하려 하셨지만 믿지 않으니 어쩌시겠습니까?

아무리 사랑했던 이스라엘이라도 예수님의 대속없이는 구원이 안됩니다.

대속의 복음이 너무 쉬운 것 같아 오히려 안 믿어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고 구원 얻게 되는 게 쉽게 된 일이 아닙니다.

제가 기도하면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주님이 다른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나를 위해 그 고통을 당하셨다는 게 주님과 일대일로 마주하니 더욱 분명했습니다.

나 한 사람만 구원하려 하신다 해도 십자가를 지시는 것 밖엔 방법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나 때문에 지신 십자가인 것입니다.

우리는 쉽게 믿지만 예수님은 쉽게 나를 구원하신 게 아닙니다.

그래도 예수님을 믿고 주님의 가족이 된 게 실감이 잘 안 나시죠?

우리가 뭘 어떻게 해서 그것이 당장 생생하게 느껴지는 건 아닙니다.

주님의 말씀에 신경을 쓰면서 조금씩 성품을 쌓아가시기 바랍니다.

당장 달라지는 게 없어 보여도 조금씩 계속 기도를 쌓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내가 천국의 자녀 된 것이 점점 확신 있게 믿어지게 될 것입니다.

내가 이미 천국에 속한 하나님 자녀라는 사실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알아질 날이 반드시 올 것입니다.

내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예수님께 속했다는 걸 알게 됩니다.

아가서에 나오잖아요?

나는 나의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구나

그렇게 되면 즐겁게 신앙생활을 하게 되는 것이죠.

즐겁지 않으면 어떻게 이 신앙생활을 평생 하겠습니까?

그게 믿어지는 만큼 세상사람들과 달리 살아집니다.

모두 다 예수님께 속한 천국의 가족들이 되시길 축원드립니다.

 

2. 천국 가정만큼이나 이땅의 가정도 소중합니다.

이땅의 가정도 천국 같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예수님은 힘써서 행복한 가정을 만들라고 하지는 않으셨습니다.

근본적으로 행복은 행복하려고 노력해서 되는 게 아닙니다.

행복하려고 노력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렇지만 사람들이 행복하진 않잖아요?

우리가 하나님이 매뉴얼 대로 살면 행복이 따라오는 것입니다.

약간의 삶의 즐거움이 아닌 진짜 행복입니다.

가정은 하나님을 경외할 때 행복해집니다.

예수님은 가정이 거룩하고 부부간에 거룩할 것을 명하셨습니다.

에베소서에서 부부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처럼 되라고 하셨습니다.

남편은 그리스도께서 목숨을 주신 것처럼 아내를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아내는 교회가 주님을 사랑하듯이 그렇게 남편을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그 매뉴얼 대로 하면 거룩한 가정이 되고, 행복한 가정이 됩니다.

자녀들에 대해서는 내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이 키우도록 맡기셨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형제라고 부르시듯이 우리 자녀들도 천국 가정에서는 형제와 같은 존재가 될 것입니다.

 

다만 우리가 두려워 할 것은 지금 사랑하는 내 가족이 그대로 천국 가족이 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가정 주일에 우리가 정신을 차려야 하는 것은 믿지 않는 내 자녀들을 태평스럽게 바라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 것으로 아무리 잘해 준다 한들, 내 가족이 함께 구원받지 못하면 그 회한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지금 울며 사정이라도 해야죠.

절대로 우리 가족의 구원을 포기하지 마시길 축복드립니다.

 

우리는 소중한 가족도 지키고 이 땅에서의 둥지인 가정도 지켜야 합니다.

믿음이 있는 우리가 지켜야 합니다.

제가 딱새가 뻐꾸기알을 탁란하는 영상을 하나 보았습니다.

뻐꾸기는 둥지를 짓지 않는다고 합니다.

알을 딱새 둥지에 몰래 낳죠.

그런 어미뻐꾸기도 염치가 없지만 뻐꾸기새끼는 더 하더군요.

뻐꾸기 새끼는 딱새 새끼보다 먼저 알에서 나옵니다.

그런데 제가 놀라운 장면을 봤습니다.

눈도 뜨지 못한 뻐꾸기 새끼가 털도 없는 어깨를 깡패처럼 직각으로 세우더니 그 어깨로 딱새 알을 하나씩 둥지 밖으로 밀어내기 시작합니다.

심지어 방금 깨어난 딱새 새끼까지 둥지 밖으로 밀어내더군요.

먹이를 물어온 어미 딱새는 둥지 안에서 일어난 일을 전혀 모릅니다.

딱새는 둥지 밖에 있는 알은 자기 알이라고 인식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렇게 모든 경쟁자들을 제거하고 뻐꾸기새끼는 딱새 부부가 물어다 주는 먹이를 독식합니다.

징그럽게 커진 몸 때문에 둥지가 비좁아지면 뻐꾸기는 제 갈 곳으로 미련 없이 날아갑니다.

딱새는 결국 자기 새끼를 키워보지도 못하고 빈 둥지만 남은 것이죠.

저는 그걸 보며 우리들의 가정을 생각했습니다.

우리 가정에 뻐꾸기가 몰래 알을 낳듯, 어느 날 불행이 들어옵니다.

아무리 부유하고 가족이 화목해도 인생에 일어날 모든 일을 내 힘으로 조종할 수는 없죠.

삶에 항상 위기가 있는 건 아닙니다.

몇 날, 몇 달, 몇 년, 위기 없이 지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갑자기 위기가 옵니다.

그것과 함께 어둠의 영들도 슬그머니 우리 가정에 틈을 탑니다.

사람들의 삶에 시련이 오면 처음엔 가족들이 힘을 모아 이겨나가는 듯 합니다.

그러나 시련이 길어질 때 결국 버티지 못하는 가족들이 생깁니다.

가정이란 울타리에 금이 갑니다.

전에 자폐 아들을 애틋하게 돌보던 가족 이야기가 TV에 나온 적이 있습니다.

요즘 유튜브에서 알고리즘으로 자꾸 인간극장을 띄워줘서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래 댓글을 보니 긴 고생 끝에 그 부부가 결국은 갈라섰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위기는 만만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가정이라는 둥지를 믿음의 눈으로 잘 감시해야 합니다.

영상 끝에 보니 어떤 똑똑한 딱새는 자기 알 속에 있는 뻐꾸기알이 이상하다는 걸 눈치챕니다.

계속 알을 쳐다보다 한 번씩 쪼아대더군요.

나중에 보니 결국 어미딱새는 뻐꾸기알을 바닥에 밀어내 버렸습니다.

작은 딱새가 어찌나 대견하던지, 속이 다 시원하더군요.

우리 가정의 행복을 지키기 위해서는 믿음으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잘못하면 가정의 행복들이 둥지 밖으로 다 밀려나 깨질 수 있습니다.

뻐꾸기 새끼가 부화되고 내 둥지를 다 차지하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매일의 경건생활을 해내며 믿음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화근이 될 뻐꾸기알을 감지할 수 있게 하십니다.

신앙생활은 하나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 하는 것입니다.

특히 우리 가정이 복되려면 서로 예수님의 멍에를 져야 합니다.

예수님의 멍에는 겸손과 온유의 멍에입니다.

우리 가족들이 그 멍에만 잘 져도 절대 다투고 불행해지지 않습니다.

성경에는 가정생활을 지도하는 많은 말씀들이 있습니다.

그 말씀들을 잘 배우고 힘써 지키시는 모두가 되시길 축복드립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우리 가정이 천국의 새 가족의 모형이면 참 좋겠습니다.

그러려면 가족들도 예수님을 구주로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가족들이 함께 힘써 성경 매뉴얼 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 목표를 포기하지 마시길 축복드립니다.

가족이 다 믿는 가정도 저절로 천국 가정처럼 되지 않습니다.

거듭난 생명보다는 남아 있는 육신의 모습이 더 많이 드러나기 때문이죠.

뻐꾸기새끼처럼 깡패 같은 어깨를 가족들에게 들이대기도 합니다.

혈연이 강하다지만 오히려 세상 관계보다 더 쉽게 금이 가는 것 같습니다.

가정을 귀히 여기고 정성을 다하시길 바랍니다.

가정이 불행하면 우리는 거의 다 잃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겐 천국의 가족이 된 믿음 공동체가 있습니다.

우리들은 천국에서 계속 형제의 사랑을 나눌 사이입니다.

그러나 교회 역시 불완전한 성도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서로 사랑하는 걸 가장 중요한 미션으로 남기셨습니다.

저절로 사랑할 상대방들이라면 그걸 명령하실 이유가 없죠.

우리가 서로를 넓은 마음으로 이해하고 우리 주나산 공동체를 잘 지켜야 하겠습니다.

교회를 위하는 마음은 기도하는 중에 생깁니다.

모든 성도님들이 우리교회를 위해 기도하면 성령께서 각자에게 교회를 향한 봉사와 헌신의 마음을 더해 주실 것입니다.

가정의 달을 맞아 성도님들의 가정과 새가족인 교회 위에 하나님의 축복이 넘치게 부어주시길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