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씨 뿌리는 비유 (마태복음13장1절-9절)

남수연 2026. 5. 21. 21:01

 

 

https://youtu.be/nyOR6BTACYs

 

1. 예수님은 바닷가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천국을 전파하셨습니다.

1, 그날 예수께서 집에서 나가사 바닷가에 앉으시매

그날은 지난 주와 같은 날입니다.

예수님께서 찾아온 가족들을 보고 누가 내 가족이냐고 하셨던 그날입니다.

이스라엘이라는 혈통으로 구원받는 게 아니라는 뜻이었죠.

유대인들이 즉시 그 뜻을 알아들었더라면 아마 이를 갈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천국의 새 가족은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들이라고 하셨죠.

아버지의 뜻은 유일한 구원의 길인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믿으면 다른 모든 말씀도 지키게 됩니다.

그 후에 바닷가로 나오셔서 배에 오르셨습니다.

그리고 해변에 서 있는 많은 무리들에게 오늘 말씀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주님이 전하신 것은 역시 하나님나라였습니다.

지금 당장 살기도 힘든 데 천국이 뭐가 급하냐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나라를 알아야지만 이 땅에서 어떻게 살지가 확실해지는 것입니다.

이날 예수님은 천국에 대한 7가지 비유의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13장에 나온 말씀들입니다.

이날의 비유들을 요약하면 이런 뜻입니다.

천국 복음을 뿌릴 때 결실하는 밭과 그렇지 못하는 밭이 생긴다는 것이죠.

또 이 세상이 있는 동안 하나님나라와 세상나라는 함께 존재합니다.

그러나 마지막 때가 되면 두 나라가 영원히 분리된다는 것입니다.

이 천국 가치를 알게 되면 모든 것을 팔아서 살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만한 가치를 모두 발견하셨기를 축복드립니다.

 

예수님의 천국 비유 중 본문은 첫 번째 비유입니다.

씨 뿌리는 자의 비유, 혹은 네 가지 밭의 비유라고 하죠.

교회를 오래 다닌 성도님들은 수십 번도 더 들은 말씀일 것입니다.

이 비유의 해석은 예수님이 직접 해 주십니다.

18절부터 나옵니다.

천국 비유라는 의미에서 이 말씀의 뜻은 명확합니다.

하나님은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구원의 씨앗, 복음을 뿌리십니다.

그 중엔 말씀을 받아 구원의 결실을 맺는 좋은 밭이 있습니다.

그러나 나머지 세 가지 경우처럼 구원의 결실을 맺지 못하는 밭도 있습니다.

이건 안타깝게도 변경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좋은 밭 나쁜 밭이 정해져 있으니 결과만 받아들이라시는 게 아닙니다.

구원이 정해졌으니, 아닌 사람들은 해 봤자 소용없다는 식의 말씀을 예수님은 한번도 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렇기에 이 비유에서도 당연히 밭인 당사자의 책임을 촉구하시는 것입니다.

오늘은 주님의 말씀을 이렇게 이해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네 가지 밭은 네 종류의 사람들이다라고 보지 않겠습니다.

구원받는 사람은 1/4이다라고도 보지 않겠습니다.

길가, 돌밭, 가시덤불 밭, 좋은 밭.

이 네 가지 중 딱 한 가지 마음만 가진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이미 좋은 밭이라는 게 증명된 성도들입니다.

우리 삶에도 분명히 좋은 결실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풍성한 결실이 없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우리 속에 나머지 세 가지 마음 밭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믿기 전에 이 세 가지 마음만으로 살았잖아요?

거기에다 하나님 은혜로 좋은 밭인 새 마음을 받은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 속에 네 가지 밭이 다 존재한다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나는 예수님을 믿고 백 프로 좋은 마음 밭이 되었다고 할 사람은 없잖아요?

세 가지 마음을 잘 살펴서 고치면 더 풍성한 열매를 거둘 수가 있습니다.

 

2. 그러면 예수님이 하신 네 가지 밭의 비유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1) 예수님은 비유를 통한 설교를 종종 하셨습니다.

3, 예수께서 비유로 여러 가지를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비유에는 양면성이 있습니다.

때로는 잘 드러내기도 하고 때로는 뜻을 감추기도 합니다.

씨뿌리는 비유가 쉽죠?

이미 예수님의 해석을 알고 있어서 쉬운 것입니다.

그날 딱 여기까지 들은 사람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저 농사일로만 이해했을 것입니다.

예수님 말씀이 맞지만 왜 그런 말씀을 하시는지는 모르는 것이죠.

예수님이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고 하셨지만 그때까지 들을 귀 있는 자들이 없었습니다.

제자들도 아직 들을 귀가 없어서 예수님이 비유를 다시 설명해 주시잖아요?

신명기29장에서 모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4, 그러나 깨닫는 마음과 보는 눈과 듣는 귀는 오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지 아니하셨느니라

주님의 대속 이후 구원받은 세대는 깨닫는 마음과 듣는 귀를 받은 것입니다.

또 그들이 들을 귀를 받지 못한 이유에는 들을 마음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유대인들이 끝까지 주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한 것은 선민이라고 자부했지만 관심은 땅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백성이라고 자랑하면서 정작 하나님께는 관심이 없었다는 것이죠.

신자들에게 하나님이 멀게 느껴지고 성경이 이해가 안되는 이유도 같습니다.

믿는다고 하지만 여전히 모든 관심이 이 세상을 향해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오늘도 이렇게 천국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것은 보이는 세계가 전부가 아님을 일깨워주시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2) 예수님은 농부가 네 가지 밭에다 씨를 뿌렸다고 하십니다.

우리나라 농부들이라면 예수님의 비유가 잘 이해 안될지도 모릅니다.

어느 농부가 귀한 종자를 이렇게 여기저기 뿌려 놓겠습니까?

그러나 이스라엘의 경우에는 이게 이상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은 암반과 토지가 섞여 있는 밭이 많습니다.

그러니까 길가, 바위 위에 살짝 흙이 덮힌 땅, 가시떨기 땅, 좋은 땅이 서로 붙어 있는 것이죠.

농부가 씨를 흩어서 뿌리는 파종을 하면 네 가지 밭에 다 씨앗이 떨어지는 것을 비유로 들으신 것입니다.

이 비유는 예수님께서 사람의 마음을 절묘하게 구분해서 우리가 내 마음의 성향을 파악할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한가지씩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1) 길가에 떨어진 씨입니다.

4,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고

길가는 엄밀히 말하자면 밭이 아닙니다.

씨를 뿌려서 결실을 얻을 상태가 전혀 안된 것이죠.

길은 사람들이 밟고 다녀서 생긴 곳입니다.

세상 것들에 길들여지고 세속적으로 단단해진 마음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전혀 상관없이 사는 사람들입니다.

세상의 가치관과 경험과 학식과 본성만 있는 사람들이죠.

우리가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다 이 마음이었습니다.

그때는 복음을 듣고 깨닫고 믿을 수 있는 상태가 전혀 아니었죠.

예수님에 대해서는 반감이 있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그 마음이 지금도 신자들 속에 남아 있는 것입니다.

지금도 세상일에 더 매력을 느끼고 세상 일에 늘 분주합니다.

그래서 말씀을 들어도 별다른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이 길가에 대해 해석해 주십니다.

19,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 가에 뿌려진 자요

깨닫지 못한 말씀을 악한 자가 와서 집어 삼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설교를 들어도, 성경을 읽어도 마음에 남는 게 하나도 없는 것이죠.

지금 세상적으로 남들처럼 사는 게 무슨 큰 문제냐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로마서에서 바울이 단 한마디로 정리해 줍니다.

620, 너희가 죄의 종이 되었을 때에는 의에 대하여 자유로웠느니라

21, 너희가 그 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냐 이제는 너희가 그 일을 부끄러워하나니 이는 그 마지막이 사망임이라

바울사도를 통해 세상적인 것의 마지막이 사망이라고 엄격히 말씀하신 것이죠.

제가 가끔 보는 유튜브채널이 있습니다.

한국 아내가 미국 남편과 결혼해서 아들, 딸 낳고 평범하게 사는 모습을 올리는 채널입니다.

애들 엄마가 성격도 좋아 보이고 음식도 뚝딱 뚝딱 잘 만들어 냅니다.

사는 곳이 인디애나인데, 동네에 친한 미국인 친구들이 예닐곱 명 되는 것 같습니다.

일주일에 두어 번 음식을 만들어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놀더군요.

친한 사람들끼리 얼마나 유쾌하고 흥겹게 노는지 모릅니다.

영상으로는 너무 과하지 않게 술도 마시고 담소하고 그러는 것 같습니다.

세상 걱정없이 참 재미있게 산다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해요.

그런데 저렇게 사는 게 전부라면, 저게 인생의 다라면 뭐지?’

그런 생각이 들잖아요?

진화론자들이 말하는 고등동물의 삶, 그 이상이 아니잖아요?

하나님도 모르고 영혼에 대해 무지하고 그냥 육신의 욕구대로만 사는 것이죠.

우리 안에 있는 이 마음은 결실하지 못한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마음을 바꾸려면 우선 세상에 대해 마음의 문단속을 잘 해야 합니다.

세상의 쾌락이나 죄가 들어와 한번만 마음을 흔들고 지나가도 우리 마음 밭은 영적으로 황폐해집니다.

세상에 대해서는 문을 잘 열고 닫아야 합니다.

반면 하늘을 향해서 항상 문을 열어 놓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루 시간 중에 하나님 앞에서 보내는 은밀한 시간을 꼭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구한 그 시간이 우리를 세속과 구별된 거룩한 마음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 믿음이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장 위험한 원수는 세속화라는 것을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이런 길가의 마음은 말씀을 듣지도 깨닫지도 못하게 하기에 당연히 결실도 없는 것입니다.

 

2) 흙이 얕은 돌밭입니다.

5,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6,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이 마음에 대한 해석은 20절에 있습니다.

20, 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21,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으로 말미암아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날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돌밭은 돌멩이가 많이 섞인 밭이 아닙니다.

석회석 지층 위에 얇은 흙이 덮혀 있는 땅입니다.

이스라엘에서는 흔한 지형입니다.

이곳에 뿌려진 씨는 흙에 살짝 덮여 빨리 싹이 나옵니다.

그렇지만 흙이 얕아 뿌리를 깊이 내릴 수가 없죠.

해가 나면 싹이 금방 말라버리고 맙니다.

말씀을 잘 이해하고 깨닫기도 잘 하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말씀이 뿌리 내릴 토양이 너무 얕은 게 문제입니다.

여러 가지 일들이 덮치면 신앙에 대한 관심이 급격히 시들어 버립니다.

믿음 때문에 오는 시련은 말할 것도 없고 힘든 일이 생기면 믿음이 제일 먼저 휘청거립니다.

좋은 마음 밭은 믿음으로 시련을 이겨내려고 하지만 돌밭은 믿음조차 버겁다고 느끼는 것이죠.

이런 경우에는 우리 믿음의 씨앗을 품을 수 있는 기름지고 풍부한 흙을 덮어야 하는 것 처방입니다.

농사에서도 암반층에 흙을 덮는 객토를 하면 작물을 심을 수 있습니다.

상추나 시금치는 50센티 정도 흙을 덮으면 된다고 합니다.

고추나 감자는 한 70센티는 되어야 합니다.

과수나무는 1미터 좀 넘게 객토가 필요합니다.

말씀을 듣고 뿌리가 잘 내리게 하려면 우리 마음에도 객토가 필요합니다.

좋은 흙은 말씀과 은혜입니다.

계속 예배와 말씀과 기도를 통해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그것을 통해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자꾸 경험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은혜의 토양을 조금씩 더 두텁게 쌓아가야 하는 것이죠.

그러면 믿음과 삶에서 더 많은 좋은 것들을 결실하게 되는 것입니다.

 

3) 가시떨기가 있는 밭입니다.

7,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이 곳은 풍부한 흙이 덮힌 토양입니다.

문제는 이미 가시떨기가 밭을 다 점령했다는 것입니다.

돌 밭에 뿌려진 씨는 뿌리를 내리지 못해서 말랐죠.

가시떨기에 뿌려진 씨는 뿌리는 내렸지만 위로 열매를 맺지 못한 것입니다.

이런 경우는 가시떨기를 뽑아주고 밭을 잘 관리하면 됩니다.

가시떨기가 무엇인지 22절에 나옵니다.

가시떨기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

어떤 성도들은 믿음이 바르고 성경도 많이 알고 경건생활도 어느 정도 잘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항상 염려와 근심이 많습니다.

그러면 믿음과 삶이 풍성하지가 않습니다.

세상적인 염려가 많다는 것은 하나님보다 세상이 내게 더 크다는 뜻입니다.

세상일은 그런 것 같습니다.

그게 무엇이든 관심이 적어지면 거기에 대한 근심도 적어집니다.

관심이 크면 근심도 커지는 것이죠.

우리가 세상 염려와 걱정을 덜어내려면 한 가지 방법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빌립보서46,7절에서 가르쳐주시죠.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기도와 간구를 통해 분명히 염려를 줄일 수 있습니다.

다른 방법을 연구할 필요가 없는 것이죠.

가르쳐주신 대로 하면 절대로 염려의 가시떨기가 내 마음을 음습하게 뒤덮을 수 없습니다.

 

그 가시떨기의 대표주자로 주님은 재물을 지목하셨습니다.

재물의 유혹이 믿음을 방해한다는 것입니다.

돈에서 자유롭기는 쉬운 일이 아니죠.

요즘 삼성전자 노조가 성과급으로 이익의 15%를 내 놓으라고 합니다.

인당 6억 정도라고 합니다.

사정이야 어찌 됐든 대부분의 국민들은 왠지 기분이 좀 언잖을 것입니다.

여론조사에 의하면 국민 70%가 무리한 요구, 부적절하다고 답했더군요.

평생 모아도 6억은 꿈도 꾸지 못할 돈이잖아요?

그걸 1년 성과급으로 달라고 하니 완전 위화감이 느껴지죠.

우리가 편히 살기 위해서 돈 문제를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돈 문제를 하나님께 위임하지 않으면 평생 염려를 떨쳐버리지 못합니다.

먹고 살 것을 이 세상이 주는 게 아닙니다.

우리를 챙기시고 먹고 살도록 돌보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직장도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남들이 투자를 잘 하고 사업을 잘 해서 큰 돈을 번다고 부러워할 것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벌게 하신 돈이야말로 뒷 탈이 없습니다.

잠언1022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사람으로 부하게 하시고 근심을 겸하여 주지 아니하시느니라

돈이 너무 없어서도 가정이 무너지지만, 돈이 많아도 마찬가지입니다.

돈을 언제까지 가질 수 있냐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거부였다 단칸방 신세를 지는 사람들 이야기는 수두룩합니다.

탤런트 이서진씨가 본래 부잣집에서 태어났다고 합니다.

본인도 꽤 많은 자산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도 겨울에 시베리아처럼 살고, 집안에 전등도 하나만 켠다고 하더군요.

부모님들이 그렇게 사는 걸 보며 몸에 뱄다고 합니다.

부모님들이 부자였는데 왜 그렇게 살았겠어요?

재물이 날개 돋친 듯 날아가는 걸 너무 많이 보아왔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이서진씨가 부모님 집이 몰락했다고 말할 정도로, 부를 지키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한 경제 솔루션에 나온 부부를 보니 국세청공무원으로 정년 퇴직하고 집도 있고 연금도 노후 자금으로 충분했습니다.

그런데 큰 아들이 돈을 빌려 주식과 코인을 하다 감당 못할 빚을 진 것입니다.

남은 빚과 가족들을 데리고 본가로 들어온 거예요.

아들 때문에 이자만 월230만원씩 갚아 준다고 합니다.

부부가 마트에 가서 식재료를 고르는 데, 어묵 한 봉지, 돼지고기 한 팩도 마음대로 못 사는 걸 보았습니다.

노후에 여행 다니며 살 줄 알았는데 돈을 꿔가며 살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합니다.

크던 작던 재산이 내가 지킨다고 지켜지지도 않는 것입니다.

내 건강도, 노후도, 자녀들도 하나님께 맡길 수밖에 없지만 재정도 역시 하나님께 부탁드려야 합니다.

염려와 세상 근심과 물질에 대한 욕심의 가시떨기를 뽑을 수 있는 것은 말씀의 능력입니다.

하나님은 유독 돈에 대한 교훈을 많이 주셨습니다.

잠언 2820 충성된 자는 복이 많아도 속히 부하고자 하는 자는 형벌을 면치 못하리라

너무 재미있는 말씀 아닙니까?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안녕과 행복은 세상이 주는 돈이 아니라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항상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4) 좋은 밭에 떨어진 경우입니다.

8, 더러는 좋은 땅에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이런 좋은 밭은 본래 우리가 갖고 태어난 게 아닙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말씀에 주의하고 힘써 지키는 그 마음은 하나님이 주신 새 마음입니다.

여기에 대해서 구약성경의 두 가지 말씀을 조합해서 이해하면 좋을 것입니다.

에스겔서에서는 이 부드러운 마음과 새 영을 하나님이 주신다고 합니다.

36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우리가 앞의 세 가지 마음만으로 태어나고 살았지만 예수님을 믿고 이 네 번째 마음을 갖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또 호세아선지자를 통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1012,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마침내 여호와께서 임하사 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

묵혀 놓았던 딱딱해진 땅을 스스로도 갈아엎고 기경하라는 것입니다.

이 두 말씀을 보면 성령께서 우리 굳은 마음에 역사하시고, 우리 스스로도 마음이 딱딱해지지 않도록 항상 부드럽게 갈아 엎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죠.

그때 말씀이 잘 깨달아지고, 깨달아진 말씀을 지킬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성도들의 인생에서는 백배가 넘는 결실을 할 수가 있습니다.

케냐에서 사역하는 선교사 부부가 있습니다.

이분들은 젊을 때 미국에서 세탁소를 크게 경영했습니다.

이십여 년 전에 연 매출 2억이 넘었으니 부자로 잘 살았습니다.

그런데 교회에서 단기선교를 갔다 열여덟 살에 선교사로 서원했었던 것이 생각났습니다.

그 문제로 기도하고 결국 미국 생활을 접고 케냐 선교사로 간 것입니다.

선교사의 고달픈 삶을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그런데 최근엔 큰 아픔까지 겪으셨다고 합니다.

몇 년 전 미국에 있던 아들이 폐암으로 먼저 천국으로 떠난 것입니다.

아무리 천국에서 다시 만난다 해도 보고프고 가슴 아픈 일이죠.

그러나 케냐에 돌볼 아이들 때문에 아들의 장례식을 치르고 다음날 바로 케냐로 돌아왔다고 합니다.

아들의 장례를 치르는 중에도 기적같이 눈물이 한 방울도 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드라마만 봐도 울던 사람인데, 하나님이 지켜주신 것 같다고 하더군요.

세탁일만 하던 두 부부가 케냐에서 26년간 이룬 결실은 정말 놀라웠습니다.

1700명의 빈민촌 아이들을 먹이고 있고, 고등학교에 보낸 아이들만 600여명이라고 합니다.

두 부부에게 좋은 씨앗이 떨어졌는데 그렇게 큰 결실을 한 것입니다.

한국교회내에서 이름 있는 유명한 선교사님들도 아닙니다.

세상에서는 무명하지만 하나님나라에서는 유명한 분들이시죠.

우리가 다 그런 큰 결실을 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마음 밭을 잘 관리하고 우리 인생을 잘 경작해서 나중에 하나님께 보여드릴 열매를 꼭 거두시게 되길 축복드립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우리의 근원적인 죄를 예수님이 대속해 주셨지만 여전히 남은 죄의 본성을 이기며 살도록 성령님을 보내주셨습니다.

성령님의 힘을 의지하지 않으면 강하고 끈질긴 세 가지 밭의 본성을 이기고 결실하는 좋은 밭이 될 수가 없습니다.

만일 우리 안에 깨닫고 순종하는 마음 대신 길가, 돌밭, 가시떨기 밭만 느껴진다면 이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세상에 대한 관심을 하나님께로 조금 더 돌리십시오.

풍성한 은혜의 토양을 쌓아가도록 말씀과 기도생활을 꾸준히 하십시오.

염려와 돈에 대한 문제를 기도로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하나님이 주시는 것은 씨앗이지 열매가 아닙니다.

말씀과 똑같은 것이 우리에게서 열리는 게 결실인 것이죠.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말씀이 지적하는 문제들을 하나씩 정복하는 습관을 가지십시오.

그러면 우리 마음이 좋은 밭이 되어 믿음과 삶의 아름다운 결실을 삼십배, 육십배, 백배 거두게 하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