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십자가 대속을 며칠 앞두고 완전히 성전을 나오셨습니다.
주님을 끝까지 거부하는 유대인들에게서 떠나신 것이죠.
그리고 감람산에 앉아 말씀을 이어가십니다.
지난 주엔 예루살렘의 멸망과 종말에 대해 예고하셨죠.
이번 베네수엘라 강진에 피해가 엄청나다고 합니다.
유럽은 연일 40도가 넘는 이상 고온에 사망자가 속출하고 있습니다.
이런 뉴스를 보며 사람들도 어쩌면 잠시라도 종말을 떠올렸을지 모릅니다.
오늘 말씀은 제자들을 위한 달란트비유입니다.
예수님은 곧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하셔서, 승천하실 것입니다.
이제 모든 사람들에게 종말의 때가 된 것이죠.
회개하고 믿는 자는 구원을 받을 것이고, 거절하는 자는 자기 행위대로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이 복음과 하나님나라는 구원받은 성도들을 통해 계속 이어서 전해지는 게 하나님이 정하신 방식입니다.
우리 시대엔 우리가 바로 그 주역입니다.
우리가 지난 한 주간 사느라 바빠서 하나님의 뜻을 한 개도 이루지 못한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나라는 우리같이 보통 성도들을 통해서 완성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우리 각자에게 기대하며 맡겨주신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잘 깨닫게 되길 소망합니다.
본문 전개대로 세 파트로 나누어 살펴보겠습니다.
1. 주인이 자기 소유를 종들에게 맡기고 여행을 떠나며 비유가 시작됩니다.
주인은 세 명의 종에게 자신의 재산을 나누어서 맡깁니다.
15절을 보면, 각각 그 재능대로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를 줍니다.
재능대로 맡겼다는 것입니다.
주인은 종들의 재능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능력이 부족한 사람에게 큰일을 맡기는 것도 그 사람에겐 무거운 짐이죠.
주님은 우리를 잘 아십니다.
오늘 종들이 받은 금액이 어느 정도 가치인지 감이 잘 안 오시죠?
예수님 당시 한 달란트는 노동자의 20년 임금에 해당합니다.
요즘 아파트 한 채 값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아파트 한 채 사려면 20년 월급을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야 한다고 하잖아요?
이 거액의 돈은 종들에게 상속해 준 게 아닙니다.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되지만 아직은 아닙니다.
그냥 보관하고 있으라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려면 은행에 두었겠죠.
아무 말도 없이 수수께끼 같이 돈만 주고 떠나진 않았을 것입니다.
당연히 큰돈을 주며 무엇을 할 것인지 사업에 대한 논의를 했을 것입니다.
종들에게 이런 엄청난 재산을 맡기고 떠난 주인은 누구일까요?
이 비유에서 주인은 예수님, 종은 제자와 성도들을 염두에 두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우리에게도 그렇게 많은 것을 맡기셨을까요?
나는 별로 받은 달란트가 없는 것 같을지 몰라도 예수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것은 그 이상입니다.
주인이 준 달란트를 우리에게 주신 재능이라고 한정하지 않겠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생명과 인생 전체와 구원으로 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내가 받은 것이 아파트 몇 채 정도가 아닌 것이죠.
지금 살아있는 것 하나만 해도 그 이상이잖아요?
내 목숨을 아파트 몇 채하고 바꾸시겠습니까?
얼마 전 브라질에서 480억원 복권에 당첨된 남성이 사망한 사건이 있었죠.
거액 복권이 당첨된 지 한 달 만에 임플란트 시술을 하다 심정지로 사망했다고 합니다.
죽어서 삶이 끝났는데 480억이 무슨 소용입니까?
오늘 달란트 비유에서 예수님은 우리의 신분에 대해 오해하지 않도록 정확히 짚어 주십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는 주인과 종의 관계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존재하게 된 것도, 소유한 모든 것도, 구원도, 하나님이 주셨다는 것입니다.
내 노력으로 성공한 것 같지만 재능도 능력도 자란 환경도 내 힘으로 만들어낸 건 아니잖아요?
우리가 하나님에 의해 존재한다는 걸 모르면 오늘 종이라는 비유에서부터 저항감이 생깁니다.
우리는 하나님에 의해서, 하나님을 위해서, 그리고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존재입니다.
만일 주인이 종을 노예 취급했다면 이런 거액을 선뜻 맡겼겠습니까?
종을 사업파트너로, 가족으로, 영원한 동반자로 생각했다는 거죠.
그러니까 우리는 하나님께 받은 인생 전체를 주님의 뜻에 부합되게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나만을 위해 사는 것은 명백히 불법입니다.
그렇게 산다고 행복하지도 않고 더 잘 살지도 못합니다.
사람들이 다 그러려고 열심히 살지만 보면 나아지지도 않고 늘 똑같잖아요?
물론 하나님은 우리를 종부리듯 하지 않으십니다.
관계는 그렇지만 우리가 주님을 섬기는 게 더 많겠습니까, 주님이 우리를 섬겨주시는 게 더 많겠습니까?
우리가 열심히 신앙생활하고 하나님을 섬긴다고 해도 대단히는 아닙니다.
다만 예수님이 나의 주인되심을 인정하고 주님의 뜻에 마음 쓰며 사는 것이죠.
그러면 오히려 예수님께서 보잘것없은 내 인생을 귀하게 사용해 주시는 것입니다.
내 인생의 목적을 하나님께 두셨습니까?
후회 없는 선택이 되실 것입니다.
2. 주인에게 재산을 위임받은 종들이 어떻게 했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받은 종은 바로 가서 장사를 시작했습니다.
뭉그적거리다 마지못해 나섰다는 느낌은 전혀 없죠.
주인은 사업가였을 것입니다.
종들은 주인의 밑에서 일을 배웠겠죠.
그렇기에 바로 가서 장사를 시작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다섯 달란트로 사업을 해서 다섯 달란트의 수익을 냈다는 것입니다.
100% 수익률이죠.
어떻게 초보 사업자가 이런 대박을 칠 수 있었겠습니까?
두 달란트 받은 종도 똑같이 장사를 해서 두 달란트를 더 벌었다고 합니다.
이 사람도 100% 수익률입니다.
그러니까 가서 장사를 하기만 하면 성공이 보장되었다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주인이 그 도시에서 사업하며 모든 기반을 닦아 놓았기 때문입니다.
종들은 주인의 거래처와 노하우와 주인의 이름을 빌려 장사를 했기에 막대한 수익을 낼 수 있었던 것이죠.
예수님이 우리에게 맡겨주신 삶이 그런 것입니다.
내 직업과 삶으로 주님 섬기기를 원한다면 맨바닥에서 출발해도 하나님이 지지해 주십니다.
사람이든 천사든 동원하실 것을 다 동원하실 것입니다.
방송인 송은0 씨가 연예계 크리찬리더입니다.
한때 일이 없어 놀면서 하나님께 이런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하나님, 제가 남은 인생을 뭘 하면 좋을까요, 알려주시면 제가 그걸 하겠습니다’
그렇게 기도하며 사시길 바랍니다.
기도하던 중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방송에서 불러주지 않으면 내가 방송을 만들면 되지 않을까?’
그래서 인터넷에서 작은 방송을 시작하게 됩니다.
그걸 기반으로 지금의 컨텐츠 기획사를 차리게 된 것입니다.
송대표는 한 방송에서 아티스트 영입 기준을 이렇게 밝혔습니다.
"야망과 성공에만 목마른 자들은 우리 회사에 들어올 수 없다“
그래서 송대표 회사가 ‘무욕의 아이콘들이 모인 곳’이라는 재미있는 별명이 붙었다고 합니다.
무욕이 모였는데도 설립하고 2년 만에 연매출 100억을 올렸습니다.
삼 년 만에 상암동에 7층짜리 사옥도 지었습니다.
올해 매출1위 예능인은 왕과 사는 남자 장항0 감독이라고 하더군요.
그러나 송대표는 하나님이 내일이라도 이 일이 아니라시면 당장 내려놓겠다고 합니다.
회사 대표는 자기가 아니라 하나님이시라고 하더군요.
최근 방송과 강연요청이 많이 들어온다고 합니다.
그런데 송대표가 잘 안 갑니다.
자기는 하나님 이야기밖에는 할 게 없는데 일반인들이 원하는 성공스토리를 들려줄 수 없기 때문이죠.
사실 연예기획사라면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컨텐츠를 만들어야 잘 팔리잖아요?
아무래도 컨텐츠 중에 신앙과 충돌하는 게 있을 것 아닙니까?
그럴 경우 송대표는 신앙의 원칙을 고수한다고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피할 길도 주시고, 그 안에서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게도 해 주신다고 합니다.
모든 성도들은 다 이렇게 각자에게 맡겨주신 삶을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며 경영하며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일을 하든 하나님은 거둘 것이 있는 인생을 보장해 주실 것입니다.
그런데 한 달란트를 받은 의문의 종은 돈을 땅 속에 묻어서 보관했습니다.
우리가 보기엔 이상하지만 옛날엔 흔히 있는 일입니다.
귀중한 물건이나 돈을 옹기에 담아서 안전하게 땅에 파묻어 두었던 것이죠.
그래서 밭에 감추인 보화라는 비유도 나온 것입니다.
엄청난 보화를 땅에 묻어두고 갑자기 죽을 경우는 발견한 사람만 횡재하는 것이죠.
한 달란트를 받은 종은 받은 돈을 땅 속에 묻어서 보관만 했습니다.
3. 오랜 세월이 지난 뒤 주인이 돌아와 종들과 결산을 합니다.
두 사람이 엄청난 이윤을 남긴 것을 보면 시간이 많이 지난 뒤라는 걸 알 수 있죠.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는 약속이 오래 뒤에 이뤄질 것을 짐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충분한 기회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주인은 종들을 불러서 맡긴 돈에 대해 결산을 합니다.
우리 인생도 하나님이 결산을 하신다는 것을 모르시면 안됩니다.
주인이 돌아왔을 때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받은 종들은 기쁜 마음으로 사업을 보고 합니다.
20절하, 주인이여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주인이 기뻐할 것을 기대하는 종의 들뜬 마음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충성에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두 달란트 받은 사람도 똑같이 주인에게 보고합니다.
그리고 주인은 이 두 종을 크게 칭찬합니다.
21절,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주인의 말 속에는 예수님의 결산 방법이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주인은 다섯 달란트 받은 종이나 두 달란트 받은 종이나 똑같이 칭찬합니다.
두 사람에 대한 주인의 말이 똑같습니다.
얼마나 받았는지, 얼마나 남겼는지는 주인에게 중요치 않습니다.
각자 받은 인생만큼 하나님의 뜻을 찾아 살아가면 됩니다.
주인은 40억 수익을 낸 종에게도 ‘작은 일’에 충성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대조적으로 이제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겠다고 합니다.
우리 각자가 달란트대로 평생 충성한다 해도 장차 받아 누릴 천국에 비하면 아주 작은 일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종들을 대하는 주인의 기쁨도 본문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 된 종아...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종들은 주인의 이 인정과 칭찬을 기대하며 일을 했을 것입니다.
사람들 행동의 동기에는 남들의 인정과 칭찬을 기대하는 게 다 있잖아요?
주인에게 충성한 대신 남들에게 핀잔을 들었을지도 모릅니다.
주인도 안 보는 데 뭘 그렇게까지 주인 일에 애쓰냐
어차피 네 게 될 것도 아닌 데 적당히 해라.
사실 하나님을 위해 최선을 다하기에 우리가 힘들기도 하잖아요?
사랑과 신뢰의 관계에서만 이 종들처럼 보던 안 보던 최선을 다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특별히 사랑하는 관계는 보여지는 순간이 전부가 아닙니다.
보이지 않을 때 상대를 위해 더 많은 것을 생각하고 준비하고 희생하죠.
부모 된 성도들은 자식에 대한 마음이 그런 것을 잘 아실 것입니다.
주인이 없는 동안에도 종들이 성실했기에 주인은 크게 기뻐합니다.
이건 좋으신 하나님과 충성된 성도들만이 주고 받는 기쁨입니다.
그래서 주님을 위해 충성하는 사람들을 보면 점점 더 충성하는 것입니다.
남들이 볼 때, ‘저러다 재산이 남아나질 않겠네, 언제 자기 시간을 갖고 취미생활하고, 즐기겠나’이런 말도 듣죠.
그런데 충성된 성도들의 헌신은 죽을 때까지 계속되더군요.
왜냐하면 종교에 대한 충성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오는 충성이기에 죽을 때까지 바뀔 수가 없는 것입니다.
저는 끝까지 그렇게 사셨던 제 어머니를 지켜 보았습니다.
모두들 죽을 때까지 충성하시길 바랍니다.
우리만 일방적으로 그렇게 충성하는 게 아닙니다.
본문 뒤에 이어서 말씀하는 양과 염소의 비유를 보면 주님은 우리가 행한 그 모든 것을 다 보고 있었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칭찬과 보상을 해 주시죠.
오늘 비유에서 주인은 결산한 뒤 남은 돈을 어떻게 합니까?
원금은 가져가고 이익으로 남긴 것은 종들에게 돌려줍니까?
아닙니다. 원금과 수익 전부를 다시 종에게 돌려줍니다.
28절에 보면 게으르고 악한 종에게서 한 달란트를 뺏어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라고 하죠?
종이 열 달란트를 다 돌려 받았다는 것입니다.
장차 내가 한 봉사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이 큰 선물을 받고 놀라게 될 것을 기대하십시오.
그런데 오늘 비유에서 가장 많은 분량을 뺀 사람은 다름 아닌 악하고 게으른 종입니다.
이 종은 이상한 행동을 하고, 이상한 말을 해댑니다.
아파트 한 채 값을 은행에도 안 맡기고 땅을 파고 묻어둡니다.
주인의 재산을 불려 줄 마음이 1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셋 중에 말은 제일 많이 합니다.
원래 일 안 하는 사람들이 말은 제일 많죠.
장사에 자신도 없고, 자본을 날릴 것도 두렵고, 주인은 무서운 사람이고, 그래서 차라리 원금만이라도 보존하려고 땅에 묻어 놓았다고 합니다.
주인을 모독하는 말도 서슴치 않고 쏟아 놓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원수들이나 하는 말입니다.
이 종의 문제는 주인을 몰랐다는 것이고 주인과의 관계가 적대적이라는 것입니다.
자기 주인이 종들만 부려 착취하는 사람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이 종의 생각은 하나님을 불신하는 사람들을 대변합니다.
‘하나님이 내게 무엇을 해 주었나, 생로병사로 고통받는 세상을 만들어 놓고 지금 신은 뭐 하고 있나.’
세상 고통은 인간이 만든 것입니다.
하나님은 흠없이 좋은 세상을 만드셨잖아요?
그리고 인간이 영원히 쫒겨났던 천국을 다시 주시기 위해 지금 십자가를 지시려고 하잖아요?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님을 인간을 위해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괴팍한 신 정도로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내 힘으로 내 살 궁리를 해야겠다는 게 종의 마음인 것이죠.
하나님을 잘 모르고 신뢰하지 않으면 자기 살 궁리만 하게 되어 있습니다.
게으르고 악한 종은 주인을 위해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긴 세월 어떻게 살았을까요?
아마도 지금이 내 몫의 재산을 늘리기 위한 기회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자기 일을 열심히 했을 것입니다.
만일 주인이 맡긴 돈이 자기 것이 된다는 걸 알았었다면 어땠을까요?
아마 앞의 두 사람보다 더 열심히 주인의 돈을 불렸을지 모르죠.
게으르고 악한 종은 주인과의 관계 설정이 잘못 된 사람들입니다.
내가 왜 내게 야박한 하나님을 위해서 살아야 하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게으르고 악한 종의 말처럼 야박하지 않으십니다.
목숨을 주신 분께 누가 야박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그것을 예수님의 행적 속에서 배워가고 있는 것이죠.
악한 종은 끝까지 하나님의 초대를 땅에 묻어 버리는 죄인들의 모습입니다.
그 결과는 비극적이고 돌이킬 수 없었습니다.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쫒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달란트 비유는 너희가 나를 위해 충성하지 않으면 이렇게 된다는 경고가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은혜를 안다면 결코 이 한 달란트 받은 사람처럼 살지 못합니다.
오늘도 어떻게든 하나님을 섬기려는 마음으로 나온 것이잖아요?
예수님은 이 비유를 듣는 모두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맡겨준 인생을 땅에 묻어놓지 말아라’
‘나를 위해 살아라, 그게 진정 너 자신을 위해 사는 것이다’
주님은 우리가 그렇게 살길 간절히 원하십니다.
그래서 오늘 비유를 보면 종들에게 갑절의 이익을 주시고, 또 더 많이 맡기시겠다고 계속 복을 쌓아주시며 우리를 격려하시는 것이죠.
어떤 목회자 아들의 이야기입니다.
이 아들이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게임 중독에 빠지게 됩니다.
밤새 게임을 하고 머리 속엔 늘 게임 생각으로 가득합니다.
그렇게 학교를 다니니 학업이 제대로 될 리가 없죠.
부모의 마음은 이 아들로 인해 까맣게 타들어 갔습니다.
목회도 어려운 데 봐 주지 않으시는 하나님께 대한 원망, 사람들에 대한 수치심, 자식도 맘대로 못하는 좌절감에 괴로운 세월을 같이 보내게 된 것이죠.
아들은 게임 때문에 휴학과 복학을 반복하다 10년만에 대학을 졸업합니다.
직장에 취직을 했지만 여전히 게임 중독 상태였습니다.
그러다 동생의 간청으로 끊었던 교회를 다시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교회에서 성경공부를 하면서 인격적인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게임을 끊고 하나님 뜻대로 살고 싶어져 매일 기도했습니다.
기도하고 또 게임 하고를 반복하던 어느날, 아침에 일어났는데 뭔가 뚝하고 끊어지는 걸 느꼈습니다.
이상하다, 이게 뭐지?
왠지 기분이 이상해 바로 컴퓨터 앞에 앉았습니다.
게임을 시작했는데, 난생처음 게임이 재미가 없었습니다.
내가 왜 이걸 하고 있지 생각이 들 정도로 흥미가 완전히 사라진 것입니다.
며칠 시도해 보아도 똑같았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기도에 응답하셨다는 걸 알았고, 담배도 끊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신학대학원에 입학해서 지금 전도사로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요즘 게임 중독에 빠진 청소년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중고등부를 맡아 이런 청소년들을 지도하고 있다고 합니다.
예수님을 믿게 되면 자연스럽게 자기 삶의 목적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 평범한 청년전도사가 하는 일이 대단한 건 아닙니다.
우리 모두가 큰 일은 못 하는 약한 영웅들입니다.
그렇다 해도 예수님은 우리와 일하십니다.
주님 위해 살아가는 중에 무엇보다 복음 사업하길 바라십니다.
복음 사업의 수익은 모든 주님의 일에 대한 수익 중에 가장 큽니다.
한 영혼의 가치가 너무 크잖아요?
죽기까지 힘쓸 것은 아직 예수님을 구주로 믿지 않는 가족들을 인도하는 것입니다.
또 우리 안에 주신 예수님의 생명과 성품이 더 성장해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되기를 계속 힘써야 합니다.
이것도 부지런히 장사해서 불려야 하는 것이죠.
말씀을 마칩니다.
아무리 우리가 받은 달란트가 작다 해도 하나님을 위해 드리면 절대 시시한 인생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다윗이 목동의 삶을 드렸더니 왕을 만들어 주셨잖아요?
다니엘이 포로의 삶을 드렸더니 바벨론제국의 총리가 되게 하셨잖아요.
요셉이 그랬고, 어부 베드로가 그랬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이상한 셈법을 아십니까?
있는 사람은 점점 더 가져 풍성하게 되고, 없는 사람은 결국 있던 것조차도 다 뺏기고 만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쓸 수 있는 우리의 달란트를 묻어 두지 마시기 바랍니다.
본문에서처럼 묻어 둔 모든 것은 다시 가져가십니다.
믿음도 힘써 성장하고 열매 맺지 않고 묻어 두면 어느 순간 없어집니다.
믿음이 있는 줄 알았는데,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 많이 보았잖아요?
우리가 하는 모든 일들은 하나님의 일이 되어야 합니다.
공부하고, 직장 다니고, 집에서 밥하고 빨래하는 일들도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는 것입니다.
그걸 하면서 어떻게 하나님을 위해 공헌할 것인지 늘 고민해야 합니다.
이 시대 복음 전파의 주역은 바로 우리들입니다.
이 사실을 잊지 않길 축복드립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모두에게 주님이 오셔서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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