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가정에 대한 교훈 (에베소5장20절-6장4절)

남수연 2012. 5. 9. 12:33

아름다운 5월 가정의 달입니다.

우리에게 귀한 가족들과 가정을 주신 하나님아버지께 감사를 드립니다.

어버이 주일을 맞아 부모 된 모든 성도님들께 하나님의 위로와 축복이 임하시길 축원드립니다.

또 주는나의산성교회의 모든 자녀들을 주의 나라를 위한 귀한 기둥 되기를 주님의 사랑으로 축복합니다.

오늘은 에베소서의 말씀을 통해 우리 성도들의 가정에 대한 교훈을 살펴보려합니다.

특히 가정의 중심을 이루는 부부 관계와 부모 자식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살펴볼 것입니다.

이 세상에 가정이란 제도를 만드신 것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방식대로 세워진 가정만이 험악한 세파에서 깨지지 않고 안전한 보금자리가 될 줄 믿습니다.

시편 127장1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다 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방식이 아니면 원하는 가정을 세우는 건 불가능합니다.

너무 쉽게 가정이 깨지고 가족들이 서로에게 상처받고 힘겨워 하는 어려운 시대 속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최근 영국에서는 동성결혼 합법화를 추진하며 아내와 남편이란 단어를 공식 문서에서 삭제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버지와 어머니라는 용어에 대해서도 대체 할 단어를 고려하고 있다고 합니다.

앞으로는 엄마 아빠란 말 대신 부모1 부모2라고 부르게 될지도 모릅니다.

가정에 대한 기존의 가치와 질서가 무너지는 시대를 우리와 자녀들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가정의 여러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성도님들과 앞으로 주님을 모신 믿음의 가정을 이루실 청년들도 오늘 말씀이 귀한 교훈이 될 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깨닫고 지킬 때 하나님이 원하시는 축복의 가정을 이룰 수 있는 줄 믿습니다.

 

본문에서 먼저 축복받는 부부 관계에 대한 말씀을 살펴봅니다.

읽으실 때 성도님들은 마음 속으로 고개를 설래설래 흔들었을지도 모릅니다.

너무 무리한 요구를 하신다는 생각이 드시나요?

22절 남편에게 복종하라는 구절을 보면 대부분의 여자들은 급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며 발끈합니다.

25절에 아내를 위해 목숨을 주도록 사랑하라고 할 때 남편들 쪽에선 어떠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문제를 해결할 유일한 길입니다.

우리 가정에 모든 갈등이 사라지고 날마다 행복하고 만족한 가족관계를 누리시길 원하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입니다.

만일 부부관계가 본문과 같은 깊은 사랑으로 결속되어 있다면 힘겨운 우리 인생의 짐들이 반은 가벼워질지도 모릅니다.

바꿀 수 없는 환경과 남들과의 갈등은 어쩔 수 없다 해도 가족이 우리 가슴을 멍들게 할 때 우리를 더 힘들게 하지 않습니까?

오늘 말씀이 우리 가정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축복의 말씀이 될 줄 믿습니다.

 

우선 아내들에 대한 교훈입니다.

오늘 본문은 여성들에게 별로 달갑지 않게 들릴 수 있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말씀을 자세히 묵상하면 여성들도 크게 손해날 게 없는 말씀입니다.

아내들에게 권하는 말씀보다 남편의 의무를 강조하는 말이 두 배는 길게 기록되어 있거든요.

바울사도는 먼저 22절에서 아내들에게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고 명합니다.

당시 고대 사회는 대부분 남성 중심이었고 여성 인권에 대한 인식이 희박했습니다.

새삼스럽게 남편에게 복종하라는 바울사도의 권면은 여자를 두 번 죽이는 말처럼 들립니다.

당시 교회 안에서는 성도 간의 관계로 인해 혼돈이 좀 있었습니다.

노예제도가 있던 당시 같은 교회를 다니게 된 종과 주인과의 관계를 비롯해 불평등한 부부관계가 어떻게 바뀌어야 하냐는 것들이죠.

여성도들에게서는 예수님 안에서 불평등한 부부관계가 선악과 범죄 이전처럼 평등하게 회복되야 하지 않냐는 의견이 제시되었을 것입니다.

창조 당시에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먼저 만드시고 돕는 배필로 하와를 만드셨죠.

돕기 위한 배필이란 열등하게 만드셨다는 것이 아닙니다.

열등한 존재가 어떻게 도와주는 역할을 합니까?

결혼에 있어서 아내들의 불평등한 지위는 하와의 선악과 범죄 이후에 내려진 하나님의 징계입니다.

창세기3장16절에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먹고 범죄한 하와에게 이렇게 말씀하시죠.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라

여기서 원한다는 것은 가지려고 갈망하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남편과 가정의 권력을 놓고 갈등 구조가 된다는 뜻이 됩니다.

그러나 남편은 아내를 조력자로서의 지위조차 인정하지 않고 지배하고 다스릴거란 말씀입니다.

그래서 결국 이는 내 뼈중의 뼈요 살중의 살이라는 사랑의 감탄으로 시작된 최초의 결혼이 이 남자 저 여자하는 불행 속에 빠지게 된 것이죠.

그런데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로 모든 죄의 심판이 사라졌으니 아내들의 신분도 회복되어야 맞지 않냐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남편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바울사도의 대답은 그냥 당시 사회 규범대로 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바울사도가 성령의 계시로 부부관계 안에 감춰진 놀랄만한 비밀을 발견하고 하는 말씀입니다.

에덴에서 아내에게 주셨던 지위를 회복시키는 수준 정도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에덴동산에서 범죄 이전에도 하와가 직권을 남용하지 않습니까?

도와주어야 할 역할을 넘어서서 아담에게 심각한 영향력을 행사해 결국 죄에 같이 빠지게 했죠.

그런 관계로 돌아가서는 여전히 결혼 관계가 완전치 못하다는 것입니다.

바울사도가 깨달은 비밀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부부관계는 성도와 예수님의 관계 같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정말 놀랄 일이죠.

결혼을 제정하신 창세기3장에서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부모를 떠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 것이라

그리고 이 말씀에 대해 바울이 깨달은 것은 32절에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입니다.

알고 보았더니 하나님이 제정하신 결혼제도는 장차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떠나 이 땅에 오셔서 교회와 연합할 것라는 뜻이었다는 것이죠.

결혼 관계가 그런 신비하고 아름다운 천국 혼인의 모형이라는 것입니다.

죄로 인해 이런 신성하고 완벽한 사랑의 관계가 깨졌지만 이제는 본래 하나님이 의도하신 거룩한 관계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 바울의 대답입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힘겹게 죄와 싸우고 사탄의 공격에 상처받은 부부들이 가장 완벽한 사랑으로 서로를 위로하고 세워주길 원하십니다.

밖에서 문만 열고 들어오면 모든 피로가 씻기고 심령이 만족한 평안한 가정을 주시길 원하시는 것이죠.

성도들의 부부사이가 바로 이렇게 되기 위해 바울사도는 아내들은 남편을 대할 때 성도들이 예수님께 복종하듯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께 복종하는 것이 치욕적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아내들이 남편에게 복종하기 위해서 성도들이 주님을 복종하는 것 같은 조건이 남편에게도 갖춰져야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남편들에게 주시는 명령은 25절에 남편들은 아내를 사랑하기를 예수님께서 교회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주신 것 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내들이 왜 남편들에게 복종하지 않겠습니까?

아무리 봐도 나를 위해 남편이 목숨을 버릴 것 같지 않아서입니다.

얼마 전 어떤 목사님이 방송 중에 자기는 자식들을 위해서는 목숨을 줄 수 있을 것 같은 데 아내를 위해서는 그러지 못할 것 같다고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정말 실수하신 겁니다.

그래서 아내들이 결코 남편을 존경하고 복종할 수가 없다는 것이죠.

한 인터넷조사에서 아내가 남편에게 제일 많이 하는 거짓말이 공개되었습니다.

그게 뭐냐면 ‘이거 싸게 주고 샀어요’라고 합니다.

단지 웃을 일만이 아닌 것 같습니다.

재정적인 문제에서 많은 남편들이 아내를 이만큼 불편하게 하고 있단 뜻도 됩니다.

남편이 하는 거짓말 1위는 ‘나 이제 술, 담배 끊고 운동할거야’ 랍니다.

자녀 거짓말 1위는 ‘딱 5분만 더 잘게’

부모 거짓말 1위는 ‘공부하기 싫으면 하지마’ 라고 합니다.

가끔 남편들이 의견이 맡지 않을 때 물리적이고 강압적인 힘으로 아내를 굴복시키려는 것을 봅니다.

그럴수록 절대 아내들은 남편을 존경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마음 깊이 불신과 원망이 쌓이고 점점 틈이 벌어지게 되는 것이죠.

잠언 19장 22절이 얼마나 진리를 말씀합니까?

사람은 그 인자함으로 남에게 사모함을 받느니라

물론 남편들은 아내가 먼저 복종하고 존경하면 아내를 사랑하겠다고 말할지 모릅니다.

누가 먼저 할 것이냐를 따질 것 없습니다.

어차피 우리에게는 이 명령을 온전히 지킬 능력이 없음을 우리가 잘 압니다.물론 사랑에 눈이 멀었을 때 남자들은 사랑하는 연인을 위해 목숨을 버리기도 주저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 젊을 때 모래시계란 드라마가 해품달 이상 인기가 있었습니다.

그때 고0정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닌 보디가드가 이0재였는 데 악당들에게 죽게 된 고0정을 대신 해 죽습니다.

당시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드라마에 열광했는지 모릅니다.

자기를 위해 목숨을 버릴 정도로 사랑해주는 남자가 있었으면 하는 여성들이 드라마에서 대리 만족을 느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열정적인 사랑도 시간이 지나면 그 실체가 무엇인지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결국 결혼하고 보니 이런 에로스 사랑은 자기 자신의 욕망을 위한 이기적인 사랑이었다는 것입니다.

아내를 열렬히 사랑하는 줄 알았는 데 실은 그것이 자기 자신을 위한 사랑이었다는 것이죠.

미국 코넬대 연구팀이 5천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연구결과를 보면 남녀 간의 애정은 길어야 30개월을 지속할 수 없다고 합니다.

이 기간이 지나면 더 이상 상대방을 보아도 가슴이 뛰지도 않고 손에 땀도 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청년들 너무 실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연구팀은 남녀가 만난지 2년이 지나면 대뇌에 항체가 생겨 사랑의 화학물질이 더 이상 생성되지 않기 때문에 사랑의 감정이 변한다고 합니다.

왜 사랑이 식어지고 왜 결혼한 남녀들이 오히려 다른 상대를 보며 열광하는 지 아시겠죠?

이런 종류 감정에 중독 된 사람은 감정이 사라지면 또 그런 강력한 대뇌 반응을 원해서 다른 상대를 계속적으로 찾게 됩니다.

이 연애 중독도 심각한 질병입니다.

인간의 사랑이 이렇게 한계를 가졌는데 어떻게 평생 아내를 내 몸 같이 사랑하며 목숨을 다해 사랑합니까?

남편들에게 너무 무거운 짐이겠죠?

그런데 그런 사랑으로 아내를 사랑하지 못하면 아내에게 복종적인 사랑을 받을 것을 기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아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남편의 죽음을 불사하는 변함없는 사랑을 받기 위해 예수님께 하듯 남편을 존중하고 따르라는 것이죠.

우리에게 어디 이런 능력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이 연약한 우리들이 온전하게 지킬 방법이 무엇입니까?

그래서 25절에서 하나님이 요구하는 사랑은 일반적인 남녀 간의 사랑을 뜻하는 에로스가 아닌 조건 없는 사랑 아가파오라는 단어를 쓰고 있습니다.

에로스로는 영원히 사랑할 수도 목숨을 주기까지 사랑할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아가페 사랑은 더 더욱 인간의 힘으로는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통한 것이고 반드시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본문을 명령하기 전 앞 부분에 보면 여러 가지 신앙 지침들이 나와있습니다.

바른 믿음에 설 때 이 사랑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온전한 믿음을 위해서 깨어서 의를 행하고 무엇보다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가장 좋은 것들을 누리기 위해서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믿음이 견고해 지고 성숙해야만 말씀대로 순종할 수 있고 약속 된 은혜와 축복을 누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영적인 성장을 위해 하루 하루 말씀대로 살아가고 기도로 훈련하시길 축원드립니다.

우리가 이 소원을 갖고 날마다 주님께 나간다면 반드시 사랑 할 능력을 주시고 성령께서 함께 하실 줄 믿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최초의 결혼을 망가뜨린 자가 누구인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최초의 아름답던 아담과 하와의 가정을 깨뜨린 장본인이 바로 옛뱀 마귀입니다.

그래서 본문에 이어지는 말씀에 마귀를 대적하고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우리 가정이 깨지고 불행하게 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여전히 마귀가 하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헬라어로 디아볼로스라고 합니다.

단어를 분석하면 디아와 볼로스로 나눌 수 있는 데 그 뜻은 사이에 굴러들어왔다는 뜻입니다.

아담과 하와 사이에 마귀가 굴러들어와 그 사이를 깨뜨렸던 것이죠.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마귀가 굴러 들어와 그 아름다운 관계를 깨뜨린 것입니다.

부모와 자녀 사이에 마귀가 굴러들어 오면 아무리 부모 자식 사이라도 관계가 힘들어 집니다.

마귀는 할 수 만 있으면 주님과 우리 사이에 굴러 들어오려 기회를 엿봅니다.

우리 가정을 흔들고 시험에 들게 하는 배후에 반드시 마귀가 개입합니다.

주님은 깨어서 마귀의 존재를 인식하고 대적하라고 말씀합니다.

깨어서 기도하는 사람만이 영적 분별력을 얻게 됩니다.

악한 영의 개입을 빨리 파악하고 모든 일에 믿음으로 대처할 수 있습니다.

배우자의 상처 주는 행동도 영적으로 잘 분별하면 악한 영의 역사가 끼어 있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 인생에서 좋은 것은 절대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님을 아실 겁니다.

아름답고 따뜻한 가정을 위해서 부부가 함께 노력해야 합니다.

사랑이 저절로 된다면 왜 명령하시겠습니까?

주님의 도움을 구하며 피차 복종하시길 축원드립니다.

그러나 부부의 관계에 큰 어려움이 오래 지속되면 문제는 회복 자체를 거부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절대 저 사람과는 다시 시작하고 싶지 않다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그러나 부부간의 문제에 있어서는 승자가 없고 모두가 패자입니다.

가정이 불행하면 자녀들도 심리적인 아픔을 당하고 당사자의 고통은 말할 것도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명백하게 우리에게 주어질 때 내 감정을 앞세우고 말씀을 외면한다면 우리 심령은 점점 강팍하고 단단하게 굳어집니다.

히브리서4장7절은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강퍅케 말라고 하십니다.

말씀을 거듭 외면하면 점점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도 느끼지 못하는 딱딱한 심령이 되는 것입니다.

아내와 남편을 사랑하려고 애쓰지 않는 다면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성도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배우자 속에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성령께서 거하고 계심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인격적으로 복종이 힘들면 그 안에 계신 성령님께 복종한다는 마음으로 서로를 섬기시길 축원드립니다.

그러니 구원받지 못한 배우자와 함께 사는 것이 얼마나 더 힘든 일인지 모릅니다.

우리 청년들은 진짜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있는 거듭난 배우자를 조건 1순위로 놓으셔야 합니다.

성령의 지배를 받지 않는 한 그 누구도 부부 사이에 굴러 들어오는 마귀의 세력을 이길 수 없습니다.

 

그리고 결혼관계를 깨끗하고 흠이 없이 이뤄가기를 축복드립니다.

작년에 75세의 남편이 자신의 병든 몸을 20년이나 돌봐 온 70세의 아내를 아파트 창 밖으로 집어 던진 사건이 있었습니다.

할아버지는 교통사고에 당뇨에 중풍으로 거의 일을 하지 못했고 할머니가 병수발에 생계까지 맡아 힘들게 살았습니다.

그러던 할머니가 2년 전 치매에 걸리게 된 것입니다.

문제는 툭하면 할머니가 젊을 때 남편이 바람 핀 얘기를 갖고 싸움을 거는 겁니다.

할머니의 무의식 속에 잊은 줄 알았던 가장 아픈 상처가 여전히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그 싸움이 발단이 되어 결국 죽음을 부르게 된 것입니다.

히브리서 13장 4 모든 사람은 혼인을 귀히 여기고 침소를 더럽히지 않게 하 라 음행하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라

하나님은 주님이 재림하시고 성도들과 영원한 사랑과 기쁨으로 만나는 장면을 혼인잔치로 표현하십니다.

결혼을 소중히 여기고 점차 밀려오는 개방적인 결혼사상에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성결하게 가정을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의 의지와 마음이 그렇게 강하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배우자를 늘 붙잡아 주시길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 청년들은 결혼 전부터 이런 성경적 결혼관을 잘 배우셔서 앞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가정을 만드시길 축원드립니다. 아멘.

 

다음은 부모와 자녀에 대한 교훈을 살펴보겠습니다.

1절에 보면 자녀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계명은 부모를 순종하는 것입니다.이 말씀은 구약시대 모세를 통해서 주신 십계명의 제5계명입니다.

그런데 10계명 중 유독 이 계명에는 잘 지키면 주실 축복이 붙어 있습니다.

3절에 보면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는 것이죠.

하나님께서 특별히 이 계명에 축복을 약속하시고 독려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사랑 때문에 약자가 된 사람 편이기 때문입니다.

부모와 자녀 중에 누가 약자입니까?

당연히 부모입니다. 더 많이 사랑하는 자가 사랑에선 약자가 됩니다.

부모에게 자녀를 사랑하라고 하지 않으시죠.

자녀에 대한 사랑은 명령하지 않아도 부모에겐 저절로 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자녀를 위해 모든 것을 주고 부모들은 대개 빈 껍데기만 남는 노년을 맞이합니다.

자녀들이 성장해 부모님의 돌봄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되면 정신적으로육체적으로 부모로부터 분리가 됩니다.

늙고 병약한 부모에 대한 관심과 사랑에 소홀하게 되는 경우가 많죠.

그래서 하나님은 이런 약자의 편에 선 부모를 위해 제5계명을 주시고 부모를 잘 공경하고 사랑하면 이 땅에서 잘되고 장수하는 복까지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자신도 인간을 사랑해서 가장 소중한 독생자까지 내 주신 사랑의 약자인 부모마음이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람은 부모를 순종함으로 권위에 대한 복종을 배우게 됩니다.

부모에 대한 순종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까지 영향을 미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좋지 않을 때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지배적이고 독단적인 부모에게 자란 경우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어려움을 겪습니다.

반대로 아버지의 권위가 없는 집안에서 자란 사람들은 하나님의 공의에 대한 개념이 희박한 것을 봅니다.

부모와 자녀와의 올바른 관계는 하나님을 섬기는 데 그만큼 중요합니다.

자녀 된 우리 모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섬기듯이 부모를 어렵게 알고 잘 공경하며 섬기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아멘.

다음 부모에게 주신 명령은 자녀들 노엽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부모의 경우 자녀를 자기 소유로 생각하기 쉬워 마음대로 자녀의 인생을 주관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부모가 빠지기 쉬운 오류는 자녀를 사랑하기에 사랑을 근거로 한 모든 부모의 양육은 옳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부모의 사랑도 죄가 들어온 이후 온전함을 상실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부부 간의 사랑이 그렇듯이 부모의 사랑도 변질 돼 행복보다 고통을 주는 경우도 많이 있는 걸 봅니다.

부모의 무능력과 불완전한 인격은 자식들의 삶을 괴롭게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부모들은 자녀들을 자기 생각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양육해야 합니다.

4절의 하나님의 교훈과 훈계 속에는 훈련과 체벌의 의미가 들어있습니다.

어린 자녀들에게 권위에 순복하고 자신을 낮출 수 있도록 하나님의 말씀대로 훈육하지 못하면 죄가 아이의 마음을 주장하게 됩니다.

잠언22장 15 아이의 마음에는 미련한 것이 얽혔으나 징계하는 채찍이 이를 멀리 쫓아내리라

자식들의 영혼과 인격을 생각한다면 부모는 꼭 매가 아니더라도 최선을 다해 근실하게 징계해야 합니다.

그러나 자식들이 우리의 소유물이 아니라는 것을 늘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시고 믿음의 경건한 자손을 만들어가라고 주신 귀하고 사랑스런 영혼인줄 믿습니다.

우리 가정이 주님 안에서 더욱 사랑으로 견고하고 은혜가 충만한 축복의 가문이 되기를 간절히 축복드립니다.

미국의 초기 청교도 역사 속에서 가장 위대한 영향을 끼쳤던 사람 중 조나단 에드워드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주님을 사랑하는 여인과 결혼해서 말씀을 지키며 믿음의 가정을 세워갔습니다.

그와 같이 자란 동네 친구였던 맥스 쥬크는 믿음이 없는 자유분방한 여인과 결혼했습니다.

결국 자신의 신앙도 잃어버리고 가문은 점점 몰락해 갔습니다.

이 두 사람의 가계를 추적 한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에드워드는 오늘날까지 617명의 후손을 두었는데 대학의 총장을 지냈던 사람이 12명, 교수가 75명, 의사가 60명, 성직자가 100명, 저술가가 80명, 변호사가 100명, 판사가 30명 공무원이 80명, 하원의원이 3명, 상원의원이 1명, 미국 부통령을 1명 배출했습니다.

맥스 쥬크는 1,292명의 후손을 두었는데 유아로 사망한 사람이 309명, 직업적인 거지가 310명, 불구자가 440명, 매춘부가 50명, 도둑이 60명, 살인자가 70명, 그저 그렇고 그런 사람이 53명이었습니다.

크게 다르지 않던 평범한 두 사람이 이렇게 상반 된 자손을 남긴 단 한가지 이유는 믿음의 배우자와 함께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가정을 이루었다는 것입니다.

 

가정의 달을 맞아 우리 가정이 더욱 주님을 의지하시길 축원드립니다.

부부간에 사랑을 회복하고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시길 축복드립니다.

서로 등을 돌리고 누운 잠자리가 얼마나 고통스런 자리입니까?

행복하게 웃는 사람들 틈에서 서로 딴 곳을 바라보며 서 있을 때 얼마나 비참한 마음이 듭니까?

때로 우리 가정이 이런 메마른 광야의 모래 폭풍 까지 닥치는 시간이 올 때도 있습니다.

하나님 앞으로 나가 회복을 간구할 때 성령께서 반드시 도우실 줄 믿습니다.

부모들이 사랑으로 결속되어 있을 때 자녀들에게도 이 땅에서 천국을 누리며 살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 가정은 힘쓰고 애를 써서 지킬 만한 가치가 있는 곳입니다.

천국은 아직 멀지만 우리 가정천국은 가까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함께 구하며 반드시 아름다운 믿음의 가정을 회복하시길 축원드립니다.

자녀들은 자신의 입속에 넣었던 것 까지 꺼내 먹이며 키우신 부모님들을 순종하고 돌보아 드리시길 축원드립니다.

그리고 부모들은 우리 자녀들 믿음으로 양육하고 존귀한 영혼으로 대하시길 축원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말씀대로 순종하며 이 땅의 모든 풍파를 넉넉히 이길 든든한 가정을 세우길 원하는 우리에게 반드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게 하실 줄 믿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