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하나님의 전신갑주2 (에베소6장10절-20절)

남수연 2012. 3. 14. 15:31

 

 

오늘은 지난 주에 이어 하나님의 전신갑주의 나머지 부분을 살펴보며 영적 싸움에 대해 계속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악한 영의 실체를 알고 사는 것과 모르고 사는 것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야고보서에는 마귀를 대적하라 그러면 너희를 피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영적인 지식을 갖고 마귀의 일을 분별해서 대적하면 우리 삶에 고통을 가져오는 많은 영적인 싸움에서 이기고 평안한 삶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영적인 지식은 저절로 알아지지 않습니다.

성경 말씀을 통해 배우고 성령께서 영적 경험을 통해서 가르쳐 주신 것을 배워야 알게 됩니다.

다소 딱딱하고 어렵다 하더라도 반드시 우리 생활에서 필요한 말씀이니 집중해서 들으시길 권고드립니다.

바울사도도 지금 감옥에 있으면서도 이 영적인 싸움과 마귀의 실체를 가르치려고 애를 쓰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가 왜 에베소교회를 그렇게 걱정하고 있는지는 사도행전에 나타납니다.

바울사도가 3차전도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감옥에 갇히게 된 이야기가 사도행전20장에 있습니다.

그 때 에베소교회를 떠나며 바울이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떠난 후에 사나운 이리가 여러분에게 들어와서 그 양 떼를 아끼지 아니할 줄을 아노라.

바울사도가 떠난 뒤 사탄의 세력이 많은 사람을 공격할 것을 그가 잘 알고 있었기에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하는 것이죠.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을 전도하러 보내시며 마태복음 10장 16절에 걱정스럽게 말씀하셨습니다.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이 험악한 세상에서 사악한 마귀의 작전지역 안에 살고 있는 연약한 우리를 보시는 예수님의 마음이 지금도 그러십니다.

매일 아침 전쟁준비도 제대로 하지 않고 무방비 상태로 세상 속으로 나가는 우리가 주님은 얼마나 염려스러우시겠습니까?

그래서 우리에게 빈 몸으로 다니지 말고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좀 입으라는 것입니다.

바울사도가 에베소교회 성도들을 걱정하는 데는 지역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에베소가 어떤 도시인지 바울이 3년을 목회하며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에베소는 그 당시 로마의 우상숭배와 퇴폐적인 문화의 중심에 있던 곳입니다.

우상숭배 별 거 아니게 보면 안됩니다.

그 배후에 사탄의 세력이 영적인 두려움으로 사람들을 사로잡기 때문에 악한 기운에 사람들이 저항 못하고 속박을 당하게 됩니다.

지금도 터키에 있는 에베소에는 2천년 전 바울 당시 로마 도시의 화려함과 웅장함의 잔재들이 폐허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특히 에베소는 그리스로마신화에 나오는 다이애나 여신과 니케 여신을 숭배하던 곳입니다.

지금도 도시 도처에 그 신상들이 남아있습니다.

그리스의 예술과 우상숭배의 산물인 니케의 여신상을 보면 치맛자락의 부드러운 곡선이 돌이라고 여겨지지 않을 정도로 뛰어난 작품입니다.

이 옷자락의 아름다운 선 모양에서 나이키 마크가 나왔다고 합니다.

나이키는 물론 니케여신에서 나온 말이죠.

당시 셀수스 도서관에는 장서가 만 이천권이나 소장되었다고 하니 그들이 철학과 학문에 얼마나 열의가 있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대도서관 입구 바로 코 앞에 개구멍 같은 입구가 난 사창굴들이 남아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가장 고매해야 할 학문의 전당 옆에도 버젓이 사창굴이 존재한다는 것이 그당시 에베소의 타락한 문화를 말해주고 있는 것이죠.

웅장한 도서관 20미터 옆 그 궁상맞은 사창굴은 아무리 철학과 예술로 치장해도 별 수 없는 인간 본연의 죄성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이런 문화 속에 생뚱맞게 세워진 에베소 교회를 생각해 보십시오.

바울사도는 사탄이 장악한 도시에서 악한 영과 싸워야 하는 에베소교회가 영적으로 무장해야 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적 싸움의 현장도 그때나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교회 밖을 나가는 순간 각종 타락한 문화와 비 진리의 홍수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죠.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통해 깨닫고 마귀와의 전쟁에서 이겨 우리의 영적인 축복과 육신의 축복을 꼭 붙드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드립니다. 아멘.

지난 주에 진리로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는 부분까지를 나누었죠.

 

이어서 15절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입니다.

지금 우리는 영적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전쟁장비들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전쟁 장비 중에 평안이라는 말이 왠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실지 모릅니다.

행군을 하고 여행을 할 때 신이 얼마나 중요한지 젊은 분들은 아직 잘 모르실 것입니다.

젊을 땐 아무 신발이나 신고도 발 불편한 줄 모르고 하루 종일도 돌아다니죠.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어디 가려면 신발이 영 불편한 거예요.

발에 좀 편한 신발을 찾다가 겨우 맞는 것을 사서 신으면 어딘가 불편해서 결국 신발장 안으로 들어가 버립니다.

아까워서 버리지도 못하고 못 신는 신발이 꽤 됩니다.

나이가 먹을수록 발과 연결 된 장기의 건강문제지 신발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어느 날 깨달았습니다.

오늘 완전군장 중에 신발은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어야 한다는 말이 얼마나 와 닿는지 모릅니다.

발이 불편해서 제대로 걷지도 못하겠는 데 무슨 전쟁입니까?

너무나 감사하게도 힘든 전투를 할 때 우리 발에 평안한 신을 주셨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셔서 내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하나님과 화평하게 하신 이 평안의 복음이 영적 전투화입니다.

사람들은 영적으로 무지하기 때문에 두려움과 걱정과 불안 속에 걸어가지만 우리는 주님이 주신 평안의 신을 신고 나가는 것입니다.

날마다 영적 전쟁터로 나가는 우리의 발걸음이 다 평안하시길 축복드립니다.

전쟁하기도 전에 두려움에 휩싸여 있다면 그 싸움은 해보나마나입니다.

공포영화 보면 유난히 겁이 많고 나약한 사람들이 먼저 희생자가 되는 것 많이 보셨죠?

불안하고 두려운 마음을 갖고는 영적 싸움도 잘 해낼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제자들에게 먼저 하신 말씀이 평안하라입니다.

주님이 주시는 평안의 복음으로 신을 신으면 비록 하루 하루 거칠고 버거운 전쟁터와 같은 삶일지라도 넉넉히 이기며 건너갈 줄을 믿습니다.

신을 신는 다는 것은 목적지를 향해 가는 것을 전재로 합니다.

완전군장을 하고 신을 신었으면 반드시 격전지로 출전해야 합니다.

평안의 복음이 전해 질 곳으로 가야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발로 밟는 곳에 영혼이 구원을 받는 역사가 일어난 다는 것입니다.

영적 전투는 가만히 서서 오는 적을 막는 것만으로 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반드시 모든 사람들에게 전해져야만 합니다.

듣고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을 이 평안의 복음을 전해서 하나님의 나라의 영역을 넓히는 것이 전투의 목적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해 하나님의 자녀가 되도록 인도하면 우리 주변엔 어느새 아군으로 둘러 싸이게 되는 것입니다.

사방이 적으로 둘러 싸인 곳에서 일한다면 악한 기세에 눌려 싸움이 더욱 불리해 질 수 밖에 없는 것이죠.

복음을 전하는 자의 발에 하나님은 능력을 주시는 줄 믿습니다.

비록 전도하려고 다가갈 때 두려움과 망설임도 있지만 순종하는 사람을 통해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는 줄 믿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 자체가 곧 영적으로 내 자신을 강건하게 무장시킨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평생 전도에 무관심하고 부담도 없이 사는 사람들의 영혼은 유약하기 짝이 없는 것을 보게 됩니다.

남을 건져 주기는 커녕 자신의 믿음 지키는 것도 힘겨워하는 연약한 삶을 평생 살게 되는 것이죠.

어두움의 세상을 향해 구원의 복음을 들고 담대하게 나갈 때 마귀는 뒷 걸음질 칠 것입니다.

위험한 것은 마귀와 맞설 때가 아니라 등지고 뒤돌아 도망칠 때입니다.

내 앞길을 가로막고 함정을 파지 못하도록 항상 정면으로 세상과 대적들을 향해 평안의 복음을 들고 담대히 나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드립니다.

 

다음은 16절에 이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라입니다.

믿음의 방패는 악한 자가 쏜 불화살을 소멸하기 위한 것입니다.

사탄은 우리 영혼에 치명적인 불화살을 쏩니다.

특히 사탄의 불화살을 맞으면 믿음이 흔들리고 마음의 평정심이 심하게 깨져 회복이 힘들게 됩니다.

사탄의 불화살은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모든 진리를 의심하게 합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마음을 마치 내 마음인 양 넣어줍니다.

요한복음 13장 2절에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니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무리 믿음이 깊은 사람이라도 사탄의 불화살을 받으면 어이없는 배교의 마음까지 들 정도로 타격을 받게 됩니다.

대0교회 김0민목사님은 집회를 하러 올라갔다가 순간 자기 마음에 하나님을 저주하는 말이 속에서 계속 올라와 화들짝 놀라 말씀 한마디 전하지 못하고 내려가 한없이 울었다고 합니다.

사탄의 불화살입니다.

우리가 기도를 하고 하나님의 도움을 구해도 힘든 환경이 좀체로 나아지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설상가상 일이 더 어렵게 될 때 하나님을 향해 섭섭한 마음에 눈물이 나고 원망이 나올 때도 있습니다.

그런 데 그 순간에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하나님을 경멸하는 악한 생각이 확 튀어나올 때가 있습니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는 자체로도 우리에겐 큰 충격이 됩니다.

사탄의 불화살입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음란한 상상이나 일탈해 버리고 싶은 강한 유혹들이나 하나님의 실존이 문득 의심이 나는 것도 다 사탄의 불화살입니다.

이런 때 내가 왜 이래, 내 믿음이 다 어디 갔어. 하나님을 사랑한다던 내 마음이 이거 밖에 안돼

이런 자책감을 갖고 시험에 들어 괴로워할 일이 아닙니다.

그건 내 생각이 아니었습니다.

즉시 믿음의 방패로 막아 소멸시켜야 합니다.

일단 평소 내 신앙과 다른 극단적인 생각이나 상상이 떠오를 때 무조건 사탄의 불화살이란 걸 알고 믿음으로 물리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단호하게 악한 생각을 좇아내고 절대로 깊이 그것들을 묵상하고 있으면 안됩니다.

사탄의 수작이란 걸 반드시 기억하고 그런 건 자꾸 곱씹으면 안됩니다.

사탄아 물러가라, 나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이다

이 믿음의 방패로 나를 넘어뜨리려는 불화살을 막아내야 합니다.

사탄은 우리의 생각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서도 불화살을 쏩니다.

시편 64장3절을 보면 저희가 칼같이 자기 혀를 연마하며 화살같이 독한 말로 겨누고 라고 기록했습니다.

사람의 입을 통해 치명적인 상처가 될 말을 쏘기도 한다는 것이죠.

말 한마디에 밤 잠을 설치고 밥 맛이 떨어지고 의욕이 사라지기도 합니다.

그럴 때 역시 상처 준 사람과 그 말로 인해 너무 괴로워하지 말고 그 배후의 마귀를 의식하고 믿음으로 물리쳐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도 베드로를 통해 사역을 방해하려 했던 사탄에게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고 명하시고 물리치셨습니다.

사탄의 불화살은 이단들과 나쁜 사상들을 통해 날라 오고 의심하게 미혹하기도 합니다.

바울이 에베소교회에 사탄의 불화살을 경계시킨 이유는 사도행전에 나타난 바울의 고별설교 중에 드러납니다.

20장30절에 또한 여러분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따르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라

에베소교회에 치명적인 이단 사상이 일어나고 진리를 왜곡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것을 바울이 알았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성도들은 오늘 바울의 편지를 받고 바울이 염려했던 이 사탄의 불화살을 잘 막아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2장에 예수님께서 사도요한을 통해 에베소교회에 이렇게 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이단인 니골라 당의 행위를 미워한 것을 내가 아노니 나도 이들을 미워하노라

때로 우리가 시험에 들어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과 예수님이 구원에 대해 의심이 들며 믿음이 흔들리는 것을 느낄 때 반드시 기억하십시오.

사탄의 불화살이 내게 박혔다는 것을 알고 믿음을 발휘해서 물리치십시오.

믿음의 여정 가운데 이런 일은 종종 우리를 찾아올 것입니다.

사도바울 조차도 고린도전서 9장 27절에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했다고 말합니다.

사탄의 강한 공격이 때때로 그의 견고한 믿음조차 시험하려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언제고 우리를 사랑하시고 구원하신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견고히 붙드는 믿음의 방패로 불화살을 대적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아멘.

 

다음은 17절에 구원의 투구입니다.

우리의 머리를 보호할 장비가 투구입니다.

머리는 우리 몸과 영혼의 사령탑입니다.

모든 생각과 결정과 행동을 주관하고 지시하는 곳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며 의지를 다해서 주님을 따르는 것도 우리 머리가 관장하는 것이죠.

사탄은 우리의 생각을 혼돈케 하고 잘못 된 판단을 하도록 집요하게 공격합니다.

생각을 한다는 말과 생각이 난다는 말을 우리가 씁니다.

생각할 때는 우리가 의지적으로 무언가를 떠올리며 구상하며 내가 주도권을 잡고 활동합니다.

그런데 생각이 난다는 것은 누군가에 의해 주도된다는 뜻입니다.

성령님이 주시는 선한 생각과 악한 마귀가 넣어주는 악한 생각이 있다는 것이죠.

그러니 모든 생각을 분별없이 다 수용해서는 안됩니다.

악한 마귀가 주는 생각은 분명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뜨리고 믿음이 떨어지도록 하는 생각과 아이디어들은 다 마귀가 집어넣은 생각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에 대한 마귀의 공격은 목적이 확실합니다.

우리처럼 확실한 목적도 없이 어리숙하게 싸움을 걸지 않는다는 것이죠.

목적은 유일합니다.

우리의 구원을 뺏고 우리 영혼을 장악하고 삼키려는 것이죠.

마귀가 우리를 공격하는 유일한 이유는 믿음에서 실족하게 하고 교회를 무너지게 하고 사람들이 구원을 받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경제적인 문제를 일으키는 것도 자녀들로 마음을 괴롭히는 계략도 우리 믿음을 뺏으려는 것입니다.

몸의 질병과 우환과 인간관계의 고통을 일으키는 것도 방법만 다르지 모두 우리를 넘어뜨려 구원을 뺏으려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 사람들을 공격 해 우리를 넘어뜨리는 작전을 짜기도 합니다.

우리와 관계 된 가족과 친척과 직장 사람들을 괴롭게 해서 결국 우리까지 시험에 들게 하려는 것임을 잘 파악하셔야 됩니다.

부모님을 병으로 공격해서 결국 우리를 경제적 육체적으로 힘들게 하고 시험에 들게 하려는 것이죠.

형제의 사업을 가로 막아 우리까지 힘들게 하거나 직장을 어렵게 해 그 결과로 우리를 괴롭게 하고 시험을 주려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들로 우리 마음이 힘들고 경제적인 어려움이 오고 마음에 갈등이 생기면 일단은 하나님께 기도를 하게 되죠.

믿음으로 굳게 서지 않은 사람들은 응답이 없을 때 인내하지 못하고 실족하고 교회를 멀리하거나 아예 끊어버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영적 싸움에서 진 것입니다.

이런 시험을 대적하고 이기기 위해 바울사도는 구원의 투구로 우리 영과 혼의 사령탑인 머리와 생각을 지키라고 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5장8절에서 바울사도는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라고 말합니다.

마귀의 훼방으로 몸과 마음이 다 쓰러질 것 같을 때 이것을 이길 방법은 우리가 받은 구원을 소망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에베소교회는 유대인과 로마인들의 모진 박해를 견뎌야 하는 상황 가운데 있었습니다.

당장 해결 될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 고난을 이겨 내려면 오직 구원의 하나님과 천국의 소망을 바라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천국의 영원한 삶을 누리게 될 것을 소망하며 시험을 이겨내는 것이죠.

바울사도는 성도들에게 천국의 소망을 주기 위해 자신이 세째 하늘에 이끌려 갔다 왔다고 고린도후서 12장2절에 기록합니다.

그래서 천국이 세 영역으로 구분되어 있다는 것을 우리가 추측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다녀온 천국의 모습은 한 마디도 설명하지 않습니다.

천국의 모습에 대해 기록하는 것이 금지되었던 것이죠.

그러나 바울사도는 그 천국의 세 번 째 하늘이 얼마나 좋았던지 난 죽어서 꼭 저 세 번 째 하늘에 갈거라는 목적으로 평생 달려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요즘 천국에 다녀왔다는 많은 간증과 책들이 있는 데 적당히 분별해서 읽으셔야 합니다.

그래도 그들에게 공통점이 있다면 그것은 천국이 너무나 좋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의 그 고통을 당하고 죽으셨습니까?

바로 우리를 저 좋은 천국에 데려가기 위해서입니다.

옛날에 미국이 천국일 때 가족 한 사람이 가면 정말 남은 가족 데려가려고 피눈물 나는 고생을 해서 초청 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정말 좋은 곳에 영원히 살게 하고 싶은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우리 곁을 여전히 떠나지 않는 심란한 문제들과 무거운 짐들로 지쳐 자포자기한 마음이 들 때 우리의 영원한 본향 천국을 소망하며 인내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드립니다. 아멘.

이 땅에서도 천국에서도 영원히 주께서 돌보심을 믿으시고 마음을 낙심케 하는 악한 마귀를 구원의 소망의 투구로 물리치시길 축원드립니다. 아멘.

 

다음은 성령의 검인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입니다.

모든 무기들이 우리 몸을 수호하기 위한 것이라면 검은 우리 안과 밖의 적을 공격할 수 있는 무기입니다.

하루를 살다보면 우리 마음 판엔 어느 새 마귀의 생각들이 뒤섞여 혼탁하게 되어버립니다.

우리는 성령께서 조명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내 마음을 판별해 악한 생각과 마귀의 계략을 잘라내야 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장 16절에서 요한사도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 이렇게 기록합니다.

그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 있게 비취는 것 같더라

주님의 말씀이 곧 예리한 검과 같이 모든 것을 판별하고 드러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입의 말씀만 권능이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을 글로 기록한 이 성경말씀에도 권능이 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4장12절은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그러나 성령께서 이 하나님의 말씀을 조명하고 깨닫게 하실 때 능력이 나타나고 역사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깨닫게 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내 안 과 밖의 모든 현상과 생각들을 정확하게 판별해 낼 수 있는 무기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알지 못하면 그만큼 영적으로 불리해 지는 것입니다.

마귀는 우리를 미혹해서 영적으로 혼미하게 하지만 성령의 검인 말씀은 모든 것을 분별하고 통찰하게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광야에서 40일을 금식할 때 사탄이 다가와 시험하는 말에 성경말씀으로 물리치십니다.

굶주린 주님을 향해 돌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고 유혹할 때 예수님이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는 신명기 말씀으로 대적하시죠.

이 말씀은 그냥 성경 구절 하나 들이대신 게 아닙니다.

성경에는 간단하게 기록되었지만 이 안에는 몇 단계의 비약이 숨겨있고 불꽃 튀는 사탄과의 말씀을 근거로 한 싸움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 성경 아무리 읽어도 성령께서 깨닫게 하셔서 살아있는 말씀이 되게 하시지 않으면 아무 능력이 없습니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이 말씀을 로고스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성령님이 조명해 주셔서 깨닫게 되었을 때 레마라고 말합니다.

오늘 성령의 검인 하나님의 말씀이 바로 레마란 원어로 되어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 말씀이 성도님들께 로고스에 그쳐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이 성경 책이 열권 있어도 마귀를 대적할 수 있는 능력이 되는 게 아닙니다.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성령이 깨닫게 해주셔서 영이 환히 열리는 그 말씀이 마귀를 이길 무기가 되는 것입니다.

내 마음에 어떤 것이 마귀가 심어 놓은 생각인지 분별하려면 성령의 조명을 간구하며 항상 말씀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마귀가 우리 마음에 나쁜 생각의 씨앗을 뿌렸다면 경계하십시오.

반드시 그것은 자라서 나쁜 열매를 맺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마귀의 생각을 받아들이면 조만간 그것이 우리를 크게 실족해 넘어지게 하고 시험거리가 된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말씀에 비추어 옳지 않은 것은 즉시 멈추고 싹을 잘라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생각의 잘 잘못을 구별해 주시면 즉시 순종해야 합니다.잠언 3장 1절에 내 아들아 나의 법을 잊어버리지 말고 네 마음으로 나의 명령을 지키라 그리하면 그것이 네가 장수하여 많은 해를 누리게 하며 평강을 더하게 하리라

우리가 이 땅에서 좋은 것을 누리려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그의 인생에서 하나님을 순종해서 왕위에 올라 모든 좋은 것을 누렸던 다윗은 시편119장56절에서 이렇게 노래합니다.

내 소유는 이것이니 곧 주의 법도를 지킨 것이니이다

마귀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대충 순종하고 대강 중요하게 여기게 함으로 우리의 부요하고도 풍성한 삶을 강탈해 간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성령이 깨닫게 해주신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이 우리의 복인줄 믿습니다.

성령의 검인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귀의 간교한 생각을 파헤치고 담대하게 물리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아멘.

 

말씀을 정리합니다.

좀 어려우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음의 길을 갈 때 꼭 도움이 될 말씀들입니다.

영적인 전쟁은 지금도 쉬지 않고 일어납니다.

지고 나면 회복하는 데 고통이 따르고 혹독한 댓가를 치르기도 합니다.

성령께서 바울사도의 편지를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악한 영과의 싸움에서 이기고 설 수 있도록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라.

그러나 이 싸움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고 주도권도 하나님께 있습니다.

골로새서2장15절은 말씀합니다.

주께서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

예수님이 범죄 한 인간을 십자가에서 구원하셔서 그들을 밥으로 알던 사탄의 세력을 그 눈 앞에서 단번에 무력화 시키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다 이겨놓은 싸움에 숟가락 하나 얹는 것입니다.

정리합니다.

머리엔 구원의 투구, 가슴엔 의의 흉배, 허리엔 진리의 허리 띠, 발에는 평안의 복음의 신, 손에는 믿음의 방패와 성령의 검인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18절은 말씀합니다.

성령 안에서 항상 깨어서 기도하라.

기도로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전신갑주가 더욱 견고해지는 줄 믿습니다.

항상 깨어서 성령 안에서 기도할 때 우리를 가로막고 고통과 불행에 빠트리려는 악한 영은 한 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물러갈 줄 믿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