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개

스스로 굳세게 하라 (학개2장1절-9절)

남수연 2013. 8. 5. 15:41

오늘 본문은 바벨론 포로생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백성들이 파괴 된 성전을 다시 건축하는 내용입니다.

이들은 20년 전 예루살렘에 돌아오자 즉시 성전건축을 시작했지만 여러 가지 방해요인으로 일차시도는 실패로 끝났습니다.

학개선지자를 통해 속히 성전을 건축하라는 하나님의 책망을 받고 지금 2차 시도에 들어간 것입니다.

이 성전 건축 명령에는 사실 저들이 납득하기 좀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긴 했지만 지금도 여전히 페르시아의 식민지배를 받고 있는 상태입니다.

70년 뒤 포로에서 본토로 돌아오게 하신다는 약속은 이뤄졌지만 그들이 기대했던 독립은 아니었던 것이죠.

독립도 주지 않고 성전을 먼저 지으라시는 하나님의 명령은 좀 납득하기 어려운 일 아니었겠습니까?

게다가 성전에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이 지금 그들에게 없습니다.

법궤입니다.

성전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법궤를 모시기 위해 지은 건축물입니다.

우리가 이미 아는 대로 하나님의 친수로 직접 기록해서 주신 십계명 돌판을 담아 둔 것이 바로 법궤입니다.

출애굽기21장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리라

그러니 법궤 없는 성전은 앙꼬없는 찐빵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바벨론에 의해 유다가 멸망당한 뒤 법궤의 행방이 묘연합니다.

오래전에 상영되었던 레이더스라는 영화를 기억하실 지 모르겠습니다.

인디아나존스시리즈 1탄인데 바로 이 사라진 법궤를 추적하는 내용이었죠.

영화에서 헤리슨 포드가 법궤를 발견하지만 결국 모래바람 속으로 다시 사라져버리고 만다는 내용입니다.

지금 법궤도 없는 성전을 건축하라시니 백성들 사이에도 의혹이 생긴 것입니다.

게다가 과거 솔로몬 성전의 영광스런 위용을 목격한 원로들의 눈에 지금 짓고 있는 성전은 너무 초라해 보일 뿐입니다.

성전 건축에 사용될 재료들도 다 하찮은 것들입니다.

솔로몬 성전이 백향목에 금을 입혀지었졌는 데 지금 이들에게 산에 가서 그냥 잡목을 찍어다 성전을 지으라고 하십니다.

그러니 이게 성전다운 성전이 되겠냐는 부정적인 분위기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의혹투성이 성전건축에 대해 유독 하나님의 관심만 뜨거우십니다.

굉장한 지지를 보내고 계십니다.

4절을 보십시오.

스룹바벨아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여호수아야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이 땅 모든 백성아 스스로 굳세게 하여 일할지어다

그리고 오늘 읽은 말씀 중에 여호와의 말이니라라는 말씀이 무려 7번이나 나옵니다.

솔로몬성전에 대한 입장은 그렇지 않으셨습니다.

내가 언제 성전을 지어달라고 했냐 하는 입장이셨습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보잘것 없는 스룹바벨성전 건축에 특별한 열의를 가지신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성령께서 본문을 통해 큰 은혜의 말씀을 잘 깨달을 수 있도록 우리 마음과 귀를 활짝 열어주시길 간절히 소원합니다.

또 하나님아버지께서 오늘 말씀을 통해 여러모로 낙망하고 피곤한 우리들에게 큰 용기와 위로의 말씀을 주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먼저 하나님의 백성들과 성전에 대해서 생각해보겠습니다.

성전은 너무 중요한 의미가 있으니 우리가 꼭 알아야 합니다.

광야생활 40년 동안엔 법궤를 이동식 성전인 성막 안에 모셨습니다.

가나안 땅에 안착한 뒤에 안정된 건축물인 성전을 지어 법궤를 모시게 됬죠.이스라엘백성들은 역사적으로 두 번의 성전을 건축했습니다.

첫 번째가 솔로몬 성전입니다.

바벨론 제국에 의해 유다가 멸망당할 때 철저하게 파괴되었죠.

두 번째가 지금 스룹바벨 총독의 지휘아래 짓고 있는 이 성전입니다.

헤롯성전은 이 스룹바벨성전을 증축하고 리모델링한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있던 성전이 바로 헤롯성전입니다.

이 성전도 예수님의 예언대로 로마군의 침공시 완전히 파괴되어 버렸습니다.

그 후 이천년이 지난 지금까지 묘하게도 유대인들에게 성전이 없습니다.

1948년에 세계를 방랑하던 유대인들이 과거 가나안땅에 돌아와 국가를 재건했을 때 제일 먼저 성전을 건축하길 원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돌아와보니 아랍인들이 파괴 된 성전자리에 떡하니 이슬람 사원인 황금돔 사원을 세워놓은 것입니다.

불행히도 지금 이곳은 아랍인 자치구역입니다.

이스라엘이 그렇게 탐을 내도 그 곳을 탈환하지 못했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지정해 주신 장소 외에 성전을 세울 수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제3성전이 없는 것입니다.

지금도 아침이 되면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은 이스라엘 군인들의 경호 속에 이 황금돔사원 안으로 들어와 과거 성전이었던 그 곳을 맨발로 다니며 하나님을 경배한다고 합니다.

신을 벗고 다니는 이유는 혹시 지성소였던 자리를 밟을까봐서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축복의 백성이라 자처하면서 하나님을 섬길 성전이 없으니 얼마나 제3성전을 짓고 싶겠습니까?

하필 바로 그 곳에 황금돔 사원이 있을 건 무엇이고 왜 그 지역을 탈환하지 못하는 지 참 알 수없는 일이죠.

이 일에는 하나님의 특별한 간섭과 메시지가 들어있습니다.

옛 성전이 의미하던 바가 이미 다 드러났고 다 완성되었다는 뜻입니다.

이 성전 역시 무언가를 지목하기 위해 주어진 상징물이었다는 것이죠.

헤롯성전 앞에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그리고 요한복음을 기록한 요한사도가 뭐라고 덧붙입니까?

예수는 성전 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하나님이 사람들을 만나셨던 유일한 장소였던 성전은 바로 장차오실 예수님의 예표였던 것입니다.

성전의 실체이신 예수님께서 이미 오셔서 하나님을 예배할 처소가 되셨으니 더 이상 모델하우스인 성전은 이 땅에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 이들이 짓고 있는 이 초라하고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스룹바벨 성전은 바로 인간의 옷을 입고 오실 영원한 성전이신 예수님의 모형입니다.

스룹바벨 성전에 왜 법궤가 필요치 않습니까?이젠 율법을 지켜서가 아니라 예수님의 속죄를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장차 예수님이 오셔서 죄인을 구원하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성전이 되신다는 놀라운 비밀을 하나님께서 지금 막 누설하고 계신 것입니다.

6,7절 말씀을 보면 엄청나지 않습니까?

내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진동시킬 것이다.

모든 나라를 진동시킬 것이다.

내가 이 성전에 영광이 충만하게 하리라.

이게 다 온 인류를 구원하실 예수님이 이루실 놀라운 일을 발표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직 성전 되신 예수님 안에서만 예배하며 하나님을 만납니다.

이스라엘백성들에게 하나님이 몇 개의 성전을 짓게 하셨습니까?

그 많은 인구에 딱 한 개의 성전만 허락하셨습니다.

그 많은 백성들이 예배드리고 제물을 바치는 곳이 단 한 곳이라는 것이 얼마나 불편한 일입니까?

하나님 앞에 예배할 성소는 오직 예수그리스도 한 분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성전은 없습니다.

유대교 종말론자들은 메시야가 올 때 예루살렘에 성전이 다시 세워질 것이라는 성경예언을 믿고 있습니다.

마지막에 세워질 하나님의 성전이 이미 예수님의 몸으로 세워졌다는 것을 아직도 깨닫지 못한 것이죠.

설명이 아주 길었는 데 이 정도면 성전에 대해 잘 정리가 되셨을 것입니다.

미국에서 최근 젊은이들의 교회 이탈이 심각한 문제라고 합니다.

그들이 왜 교회를 떠나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교회 안에서 성전의 본체이신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교회 안에 퍼포먼스와 공연이 난무하지만 정작 예수님에 대한 말씀을 못듣고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내면 깊이 자기를 구원할 절대자에 목말라 있습니다.

공연 같은 예배를 떠나 오히려 그들이 찾아간 곳은 동방교, 성공회 같은 옛 전통 종교라고 합니다.

요란하고 화려한 것이 아닌 무언가 변하지 않는 본질을 갈망한다는 것이죠.

교회에서 우리가 항상 들어야 할 것은 구원의 복음입니다.

예수님이 어떻게 우리의 구원의 주가 되시는 지 말씀을 통해 배우고 깨달아 갈 때 구원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확신을 가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는 불확실하고 공허할 뿐입니다.

그 예배가 하나님께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것을 영이 느끼는 것입니다.

우리는 더욱 말씀과 기도에 힘써 우리의 구주이신 예수님을 더 알아갑시다.

이런 말씀들은 좀 졸리고 딱딱한 것 같지만 우리 영혼에 각인 될 진리의 말씀입니다.

이런 진리의 말씀들이 우리 안에 쌓이면 차차 의심이 사라지고 우리 믿음이 견고하게 세워져가게 됩니다.

지난 수련회에서 성경퀴즈대회가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습니다.

너무 성경을 몰라서 그럴 수 밖에 없었죠.

말씀에 근거하지 않은 믿음은 언제고 흔들리고 탈선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말씀이 우리의 무기입니다.

말씀으로 시련 중에도 용기를 내게 되고 마귀의 시험도 물리치고 날마다 소망과 기쁨으로 사는 원동력이 됩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사모하고 읽고 배우는 뜨거운 열기를 갖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그리고 복된 성전이신 예수님 안에서 복의 근원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그 응답으로 믿음 안에서 부요하고 충만한 복을 모두 누리시길 축복드립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전에서 누리는 삶 뿐 아니라 성전을 세우며 사는 복된 삶을 살도록 명령하십니다.

성도는 모두 다 성전을 세우는 일에 부름받은 사람들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성전을 세우는 일이 단순히 교회 건축은 아닙니다.

성전 되신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을 섬기며 그 뜻을 이루어가는 모든 일이 곧 성전을 세우는 일입니다.

직장에서 예수님 안에 거하고 내가 하는 일들을 통해 하나님이 통치하는 나라를 이루어가면 그것이 성전을 곧 세우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몸인 교회를 굳게 세우는 일도 물론 성전을 세우는 일입니다.

우리 가정에서 하나님아버지를 예배하고 예수님을 따르는 믿음의 가정을 세우는 일도 역시 성전을 세우는 일입니다.

또 있습니다.

성경은 성령이 거하시는 우리 몸을 성전이라고 말씀합니다.

우리자신을 거룩하고 온전한 믿음으로 세워가는 것도 역시 성전을 세우는 일입니다.

우리의 평범한 삶도 날마다 믿음 안에서 살아가면 성전을 세우는 복된 삶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이 땅에서 영원한 하나님의 성전을 세우는 일에 함께 하는 복되고 신실한 성도들이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성전을 재건하는 일에 발생한 몇 가지 문제를 살펴보겠습니다.

1. 성전건축을 방해하는 세력들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귀환자들은 뒤늦게 성전건축에 착수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애석하게도 성전건축의 사명을 갖고 바벨론에서 돌아온지 벌써 20여년이 지난 때입니다.

20년이면 얼마나 긴 세월입니까?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기 위해서는 성전 중심의 삶이 필수입니다.

성전이 없으니 귀환자들의 삶이 형편없이 타락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본문의 앞1장에서 왜 이렇게 성전공사가 지체되었는지를 되짚어줍니다.

주변에 살던 여러 족속들이 성전건축으로 인해 이스라엘의 부흥을 시기해 강력하게 훼방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일인데도 일사천리로 진행되지 않았던 것이죠.

성전재건을 위해 인도하셨다면 모든 환경도 준비하셔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하나님 일을 위해 팔을 걷어 부쳤더니 악한 세력들이 벌떼 같이 일어나 달려들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전을 세우는 삶에도 언제나 이런 어려움은 있습니다.

귀환자들은 이 시험을 이기지 못하고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마침 성전건축이 가로막히자 우선 자기들의 집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잡풀이 무성한 농토를 갈아엎고 농사를 짓기 시작했습니다.

성전건축에 대한 열기는 점차 시들해지고 점점 자기 살 궁리에 빠졌습니다.

그러면서 20년이란 세월이 흐른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언제나 이렇게 현실적인 일에 밀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20년 세월 부지런히 자기 가업을 세우려고 애를 쓴 결과는 어땠습니까?

1장6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가 많이 뿌릴지라도 수확이 적으며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못하며 마실지라도 흡족하지 못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일꾼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느니라

이런 상황 경험해 보셨습니까?

아무리 힘들여 일해도 수중에 들어오는 것은 몇 푼 안된다는 것입니다.

겨우 먹고는 사는 데 도대체 이게 뭔가 허전하고 만족도 없습니다.

생기는 것은 적은 데 왜 이렇게 나갈 데는 많은 지, 지갑에 구멍난 것 같습니다.

진짜 쓸데없이 돈이 새어나갈 때는 줄줄 샙니다.

지금 이들의 형편이 이랬다는 것입니다.

우리 장년들은 항상 먹고사는 문제가 절박합니다.

먼저 나무를 갖다 자기 집을 짓고 밭을 개간한 그들이 틀린 것은 아닙니다.

당연히 안전하게 살아갈 집도 짓고 먹고 살 대책도 세워야지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지적하시는 게 무엇입니까?

앞장을 보면 그들이 더욱 집을 멋내서 꾸미고 더 많은 것을 갖기 위해서 계속 애를 썼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20년을 기다려주셨습니다.

왜 그러셨겠습니까?

먹고 살 문제가 그만큼 믿음이 부족한 우리를 압박하는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먹고사는 문제에 어디 끝이 있습니까?

이제 위기는 넘겼으니 성전을 건축하자는 말이 도대체 그들의 입에서 나오지를 않는 것입니다.

그들의 욕심에 하나님께서 개입하실 수 밖에 없습니다.

너희가 많은 것을 바랐으나 도리어 적었고 너희가 그것을 집으로 가져갔으나 내가 불어 버렸느니라

백성의 부요함이 못마땅하셨겠습니까?

아닙니다.

탐욕은 끝이 없고 성전건축은 영원히 밀려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성전중심의 올바른 생활이 없이는 이 세대 역시 멸망당한 선조들의죄를 계속 반복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서 복을 거두는 것은 세상의 욕심에 끝없이 몰두하는 죄성에 제동을 거시는 일입니다.

그들은 점점 소출이 줄어들고 마음에 만족과 평안이 없는 고갈 된 삶이 오는 데도 깨닫지를 못했습니다.

이것이 어리석은 죄인의 무지함이죠.

결국 하나님께서 학개선지자를 통해서 그들을 책망하고 직접 잘못을 지적해 주십니다.

그동안 나와 내 가정을 위해 안간힘을 쓰며 달려왔는데 항상 부족함을 느끼십니까?

하나님의 집을 세우는 일을 우선하시길 축복드립니다.

내 믿음을 바로 세우는 일, 물질이 아닌 하나님 중심의 가정을 세우는 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일이 우선이 아니면 순서가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우리의 믿음을 먼저 세우지 않으면 세상의 재물과 명예와 지위가 다 복이 아니라 결국은 화가 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본장19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각자 자기 일에만 열심 냈던 때를 돌아보라고 말씀합니다.

곡식 종자마저 창고에 남은 게 없지 않냐고 하십니다.

그러나 성전건축을 시작한 오늘부터는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 고 하십니다.

먼저 우리 믿음을 견고하게 세워나갈 때 하나님의 충만한 복이 비로서 우리에게 내리시는 걸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가정과 자녀들 먼저 믿음의 성전으로 굳게 세우고 주님의 교회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우선순위를 둔다면 하나님의 축복이 항상 함께 하십니다.

내게 허락하시는 모든 지위와 직업과 환경 속에서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는 성전을 이루어가는 인생만큼 복스런 인생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 땅에서 성전을 세우며 사는 모든 순간은 단 하나도 허비되어 사라지지 않고 영원히 하늘에 남습니다.

하나님의 지혜가 우리 모두에게 충만히 임하셔서 이런 사실을 더욱 깨닫게 해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이런 삶을 결심하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와 기쁨이 찬란하게 우리 삶을 두를 것입니다.

너무나 소중한 우리의 생명과 삶을 영원에 기록하는 우리 모두가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아멘.

2. 다음은 현실의 문제들이 이들을 낙심케 했습니다.

과거의 성전에 비할 때 초라하기 짝이 없는 이 성전이 창피하다는 것입니다.

서울경제신문이 ‘살림살이, 나아지셨나요’라는 주제의 설문조사를 실시했습니다.

국민 3명중 한 명은 올들어 가계형편이 더 악화되었다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과거의 행복했던 시절, 지금보다 형편이 더 좋았던 시절을 생각하면 지금의 내 모습이 참 서글퍼보일 때가 있죠.

한 때 잘나가던 사업, 단란했던 가족, 더 풍족했던 살림 이런 것들을 생각하면 지금 열심히 사는 내 모습이 애처롭고 낙심이 됩니다.

70년 전 불타 없어진 솔로몬 성전을 생각하니 지금의 성전공사는 정말 초라하기 그지없습니다.

지금 짓는 성전 규모나 재료들을 보니 마음이 상하고 의욕이 생기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 3절을 읽어보면 하나님께서는 이 보잘것 없는 성전을 오히려 자랑스럽게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이것이 너희에게 어떻게 보이느냐, 너희 눈에 보잘 것 없지 않느냐

일부러 보잘 것 없게 지으라고 하시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얼마나 보잘 것 없는 신분으로 오셔서 권력도 없이 부도 없이 하나님아버지의 구원을 성취하셨습니까?

스가랴4장에서 하나님께서는 이 일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이전의 내 인생을 생각할 때 지금 우리 삶이 초라해 낙망하고 계십니까?

남과 비교하고 과거 물질적으로 잘 나가던 때를 생각하며 스스로 낙담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지금 믿음으로 살려고 애쓰는 모습을 하나님은 응원해 주십니다.

지금 하나님아버지를 잘 섬기고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며 이 땅의 성전으로 지어져가고 있다면 가장 형통한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무릎에 힘이 빠지고 손을 늘어뜨린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해 주시는 말씀을 들으시길 바랍니다.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왜냐하면 4절에서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고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성전을 세우는 일엔 항상 하나님께서 함께 하십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크고 작은 시련들 속에서 굳세게 살려면 항상 이런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되새겨야 합니다.

이런 말씀을 읽고 떠올릴 때 성령께서 그 말씀에 대한 굳센 믿음을 더해 주십니다.

근거없이는 아무리 마음을 먹으려고 해도 약해지는 것을 어쩔 수 없습니다.

또 나의 모든 문제들을 간절하게 기도하지 않으면 다 잘 되리라는 확신이 저절로 생기지 않습니다.

스스로 굳세게 하라는 말씀이 무엇이겠습니까?

이렇게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자꾸 읽고 기도로 그 약속대로 되기를 간구하고 그 다음은 믿음과 의지를 굳게 해서 열심히 일하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나를 위해 화려한 집을 세우려고 했다면 이젠 내 삶에서 하나님의 성전을 짓는 마음으로 굳세게 일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어쩔 수 없는 방해 때문에 20년간 손을 놓고 있었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믿음의 헌신을 미루는 여러 가지 이유들이죠.

그러나 본문으로부터 백 년 뒤에 느헤미야가 훨씬 적은 인원을 이끌고 3차 귀환해 예루살렘 전체를 두르는 성벽공사를 57일 만에 헤치웁니다.

방해가 없었습니까?

당연히 아니죠.

그러나 그들이 한 손에 무기를 들고 한 손엔 도구를 들고 성벽공사를 완공했다고 느헤미야는 기록합니다.

하나님은 믿음으로 전진할 때 반드시 도와주십니다.

세상에서 믿음을 따라 사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마귀는 자신의 때가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안다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할수만 있으면 성도들을 미혹하고 온 세상을 괴롭히고 더럽게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 환경에도 위협에도 흔들리지 말고 말씀과 기도로 무장하고 스스로 굳세게 내 삶에 성전을 세워가야 합니다.

그러면 오늘 주시는 하나님의 약속이 우리 안에서 확실히 이루어 질 것입니다.

이 성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더하리라.

우리의 앞으로의 영광이 과거의 영광보다 더 할 것입니다.

길지 않은 저의 인생을 돌아보면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을 섬기기 시작한 순간부터 하나님은 저를 점점 더 영화롭게 해주셨습니다.

지금도 그렇게 해가고 계십니다.

우리 성도님들도 다 이렇게 고백하실 수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3. 다음은 5절에 그들에게 두려움이 있었다고 말씀합니다.

그들이 무엇을 두려워했을까요?

본문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에스라서를 보면 사정을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이 분발하기 시작하자 또 대적자들이 나서 공사를 방해한 것입니다.

이 일은 페르시아 본국에 대한 반역이라고 협박합니다.

그리고 결국 대적자들은 다리오왕에게 서신을 보내기까지 합니다.

예루살렘에서 왕을 반역하는 성전건축이 있으니 막으라는 것이죠.

일이 점점 꼬이는 것 같죠?

언제 정부군이 들이닥쳐 곤욕을 치르게 될 지 모르는 상황이 된 것이니 두려운 마음으로 성전을 건축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서신을 받은 다리오왕이 사실을 확인하던 중 보관고에서 성전건축을 허가했던 선조 고레스왕의 기록을 찾아냅니다.

그리고는 오히려 정식으로 성전건축을 재개시키라는 조서를 보냅니다.

얼마나 일이 재미있게 돌아갑니까?

대적자들은 일을 방해하려고 상소까지 올렸지만 오히려 그 덕에 합법적으로 일을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성전을 건축하는 모든 경비를 끊이지 말고 대주라고 명합니다.

8절에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라는 말씀을 왜 하셨을까요?

그들이 건축비용이 없는 것을 염려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페르시아 왕국의 재정을 보내주시지 않습니까?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 안에서 계획하고 기도하며 하는 모든 일에 하나님께서 반드시 필요한 물질도 주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일을 이렇게 이루실 것이기에 하나님께서는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천국만 약속하신 게 아닙니다.

이 땅에서 자랑스런 믿음의 자녀로 살아갈 수 있도록 모든 것을 준비하시고 인도해주십니다.

5절에서 뭐라고 말씀합니까?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 언약한 말과 나의 영이 계속하여 너희 가운데 머물러 있나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우리를 구원하시고 끝까지 함께 하신다는 모든 축복과 약속의 말씀이 우리에게 여전히 유효합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머물러 천국에 까지 함께 가십니다.

오늘 말씀에서 무엇을 느끼셨습니까?

죄악 중에 고통당하는 우리를 어서 구원하시려는 성부하나님의 흥분과 사랑이 느껴지지 않으십니까?

하나님아버지 앞에 담대히 나갈 수 있는 길을 예수님께서 열어주셨으니 모든 일에 감사하며 기도하여 응답받는 삶을 사시길 축복드립니다.

최근 한 조사에 따르면 직장인 75%가 출근만 하면 무기력해지고 우울증에 시달린다고 합니다.

내가 하는 일이 보잘것없고 나아질 가능성도 없어 보이기 때문이죠.

스스로 굳세게 하여 우리 일터가 성전이 되도록 일한다면 점점 능력있는 삶을 회복하고 장차 우리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반드시 크게 축복하여 주실 것입니다.

2013.8.4 주일설교 남수연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