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개

가정의 달 설교 4 (학개1장1절-15절: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남수연 2020. 5. 26. 23:20

 

https://www.youtube.com/watch?v=zZ3VNOj36zU&t=1799s

 

오늘 말씀은 교회 건축을 하라는 뜻은 아니라는 것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가정의 달을 마무리하며 우리 가정이 믿음으로 든든히 세워져서 하나님의 복을 받고 또 복을 전하는 가정되길 바라며 이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소중한 하나님의 말씀을 잘 깨닫고 우리 가정들이 이전보다 더욱 행복하길 간절히 바랍니다.

 

1. 우선 학개 선지자 당시 있었던 성전 재건 역사와 그 안에서의 교훈을 찾아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도 변치 않으시고 사람의 본성도 똑같기 때문에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기 때문이죠.

바벨론 포로로 끌려갔던 이스라엘 사람들은 페르시아의 고레스왕이 바벨론을 함락한 뒤 고국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에스라서에 이 내용이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고레스왕이 내린 조서를 보면 포로귀환의 목적이 분명히 명시되어 있습니다.

바사 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세상 모든 나라를 내게 주셨고 나에게 명령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그러니까 본토로 돌아온 사람들의 목적이 예루살렘 성전 건축이었던 것입니다.

1차 귀환자를 이끌고 온 지도자가 본문 1절에 나오는 총독 스룹바벨 총독과 대제사장 여호수아입니다.

약 4만여명이 문명국 페르시아 생활을 접고 본토로 귀국합니다.

어떻게 안전한 생활 터전을 버리고 귀국을 결심했는지 이해가 잘 안되죠.

그 때 상황을 에스라서는 이렇게 전합니다.

그 마음이 하나님께 감동을 받고, 올라가서 예루살렘에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고자 하는 자가 다 일어나니

하나님께서 이 성전 재건에 고레스왕을 감동하시고, 성전 지을 사람들을 골라서 감동하셨다는 것입니다.

오늘 이들이 다시 성전재건을 시작하게 된 것도 14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총독과 대제사장과 모든 백성들의 마음을 감동시켜서 된 것임을 알 수 있죠.

하나님의 감동하심 없이 하나님의 일이 이뤄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우리들은 늘 그 감동하심을 기도해야 합니다.

포로생활 70년이 지난 터라 고국에 돌아온 사람들 대다수는 바벨론에서 태어난 사람들입니다.

거룩한 도성에 대한 일말의 환상을 안고 예루살렘에 이르렀을 때 귀환자들은 자기 눈을 의심했을 것입니다.

예루살렘은 성곽이 다 무너지고 불에 그을린 처참한 모습이었습니다.

성전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폐허만 남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귀환자들은 귀국한 목적을 잃지 않고 일년 만에 성전터를 다지고 기초공사를 시작합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다시 재건되는 걸 견제한 주변국들의 집요한 방해로 성전건축은 결국 중지되고 맙니다.

하나님이 기획하시고, 하나님이 사람을 감동시켜 하는 일을 감히 사람이 막을 수 있다는 것이죠?

하나님은 악한 자의 자유의지까지도 강제로 제약하지는 않으십니다.

악한 사람이 앞길을 막고 악한 영이 분란을 일으킬 때 놀랄 일이 아닌 것입니다.

어떤 경우도 믿음을 꺾지 않고 꿋꿋이 하나님을 의지하고 나가면 되는 것입니다.

귀환자들은 고레스왕의 조서가 있었기에 얼마든지 뇌물에 매수 된 페르시아 관료들과 부딪쳐 볼 만 했지만 두려움과 피로감에 주저앉아 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세월은 16년이 흘러버렸습니다.

한 발 물러섰는데 16년이 지체 된 것이죠.

신앙에서 한 발 물러서는 게 이렇게 위험한 것입니다.

성전을 건축하자고 돌아왔던 그들의 생각이 그동안 어떻게 바뀌었는지 2절에서 알 수 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여 이르노라 이 백성이 말하기를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시기가 이르지 아니하였다 하느니라

16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때가 안됐다며 성전 건축을 미루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영혼에 대한 일은 가장 중요하지만 뒤로 미뤄지기 쉽습니다.

그 사이에 귀환자들은 자기 집과 생활 터전을 마련하기에 바빴습니다.

집을 짓고 굳었던 땅을 갈아엎어 농사를 지었습니다.

마을을 안전히 지키기 위해 성곽도 쌓았을 것입니다.

쉴 틈 없이 생활의 터전을 일구기 위해 일했을 것입니다.

16년은 정말 빨리 흘러가 버렸습니다.

사람 사는 게 그렇습니다.

살아가는 문제는 삶의 최우선 순위를 절대로 다른 것에 내주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감동을 크게 받고 큰 희생을 각오하고 돌아온 사람조차도 여지없이 먹고 사는 문제에 빠져 버린 것입니다.

이젠 성전 건축이라는 사명과 목적은 막연히 멀어져 버렸습니다.

이런 상황을 하나님은 학개선지자를 통해 이렇게 엄히 나무라십니다.

4절, 이 성전이 황폐하였거늘 너희가 이 때에 판벽한 집에 거주하는 것이 옳으냐

정신 차려라, 성전 지을 사명을 잊고 어찌 먹고 사는 일에만 매달려 있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너희가 애써 모은 소득이 다 날라 가게 불어 버리셨다는 것입니다.

6절입니다.

너희가 많이 뿌릴지라도 수확이 적으며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못하며 마실지라도 흡족하지 못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일꾼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느니라

9절, 너희가 많은 것을 바랐으나 도리어 적었고 너희가 그것을 집으로 가져갔으나 내가 불어 버렸느니라

열심히 돈을 벌러 다녀도 마치 지갑에 구멍이 난 것처럼 어디로 들어가는지 모르게 술술 빠져나가는 것이죠.

가수 혜0이씨가 30년 동안 남편 빚 200억을 갚으며 살았다고 하더군요.

자기는 정말 열심히 노래했고 정말 많은 돈을 벌었지만 돈은 자기 손을 거쳐 갔을 뿐이지 자기 돈이 되어 본 적이 한번도 없었다고 합니다.

오늘 읽은 본문의 말씀이 그런 것입니다.

그 인생이 참 서글펐지만 교회에서 기도하는 뒷모습을 보니 마음이 좀 놓이더군요.

저도 한 때는 월급이 통장에 들어오자마자 숫자만 찍히고 다 빠져나가던 때가 있었습니다.

전도서 말씀대로 해아래서 내 손으로 수고하고 그걸 가족들과 함께 누리며 사는 것만 해도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릅니다.

오늘 책망은 사람이 열심히 일해서 식구들과 한번 잘 살아보겠다는 마음을 하나님이 못마땅해 하시는 게 아닙니다.

정말 잘 사는 길에서 이들이 또 벗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믿음의 성전이 확고히 세워지고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것이 인간이 행복할 수 있는 창조의 매뉴얼입니다.

그걸 역으로 사용하면 결국 두 가지가 다 무너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우선 순위를 확실하게 가르쳐 주셨잖아요?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바울사도도 계시를 받아 기록했죠.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원하노라

영혼이 잘 되게 하시려고, 일이 잘 안되게 하시고 고전하게 하실 수 있다는 것을 오늘 본문에서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참된 행복과 목적에서 멀어져 살아간다면 하나님이 주셨던 것을 거둬가기도 하시고, 악착같이 모은 것을 불어 버리기도 하십니다.

게임기만 들여다 보고 있는 자식을 무한정 참아 줄 부모가 있습니까?

달래고 야단치고 경고하다 결국 게임기 뺏어 버리겠죠.

이 모든 것은 우리의 진짜 행복을 아시는 하나님의 경영이십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일이 선하다는 걸 아는 것이 믿음입니다.

학개선지자의 강렬한 질타와 성령의 감동으로 드디어 성전건축이 시작됩니다.

에스라서를 보면 성전은 4년 만에 완공이 됩니다.

그러나 이들이 일을 시작하자마자 2장9절에서 하나님은 다시 말씀합니다.

지금 형편이 이렇다는 것입니다.

곡식 종자가 아직도 창고에 있느냐 포도나무, 무화과나무, 석류나무, 감람나무에 열매가 맺지 못하였느니라 그러나 오늘부터는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

구원은 물론이고 인생과 가정을 잘 세우는 것도 먼저 성전을 세워야 합니다.그것을 시작하는 오늘부터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 말씀하십니다.

 

2. 그렇다면 우리가 성전을 세운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어떻게, 어디에 성전을 세워야 하는지를 이해해야 합니다.

먼저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이 예루살렘 성전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

구약시대의 성전은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특별한 장소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짓게 될 스룹바벨 성전 이전에 있던 성전은 솔로몬 성전이죠.

솔로몬이 지은 성전의 전신은 출애굽기 광야생활에서 지었던 성막입니다.

성경은 성막이 세워졌을 때, 그리고 솔로몬 성전이 세워졌을 때 하나님의 영광이 내려오셨다고 전합니다.

하나님은 이 성전을 통해 이스라엘을 만나고 복을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성전에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기도했습니다.

성전에서 속죄의 제사가 드려지고 죄를 용서받았고 성전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가르쳐 졌습니다.

이 모든 것을 통해 사람이 복을 받을 수 있는 곳이 바로 성전입니다.

그런데 이 중요한 성전을 하나님께서는 세상에 단 한 곳 예루살렘에, 단 하나만 짓도록 지정하셨습니다.

당시 인구가 천만이든 이천만이든 그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성전이 단 한군데라는 게 좀 의아하지 않습니까?

마을마다 만들어서 쉽게 예배드릴 수 있으면 더 좋잖아요?

성전이 단 하나인 것은 이 성전이 한 사람, 예수님의 모델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당시엔 오늘 스룹바벨 총독이 지었던 성전을 헤롯왕이 46년에 걸쳐 화려하고 웅장하게 개축해 놓았습니다.

이 성전의 아름다움과 위용에 제자들이 감탄하며 자부심을 보일 때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만에 다시 일으키리라

사람들이 어이없어 했던 이 말씀이 무슨 뜻인지 요한사도가 나중에 깨닫고 이렇게 해석해 주었죠.

예수는 성전 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심으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참 성전이 되셨다는 것입니다.

애초에 성전은 예수님을 나타내기 위함인 것이죠.

이젠 성전에서 이뤄지는 모든 복된 일들이 주님 안에서 이뤄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임재하시고, 예배를 받으시고, 기도를 들으시고, 죄를 용서받고, 영원한 복을 받는 곳, 바로 그 성전이 예수님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무너져 버린 성전터에 제3성전을 짓고 싶어하지만 그것은 영원히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지금 성전터에는 이슬람의 황금돔 사원이 세워져 있기 때문입니다.

3차세계대전이 일어나 이스라엘이 이슬람 국가들을 다 이기지 않는 한 불가능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성전 세우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성전이 상징하는 예수님께서 참성전을 지으셨으니 더 이상 성전은 필요치 않은 것이죠.

그렇기에 우리가 성전을 짓는 것은 성전이신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전 영역에서 예수님의 다스림을 받고 사는 것입니다.

 

3. 이제 실제로 삶의 세 부분에서 예수님을 성전으로 모시고 살기를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1) 먼저 예수님을 모신 나 자신의 인격이 성전으로 세워져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도 역시 성전이라고 성경은 말씀하죠.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실제 우리 안에 하나님이 거하시고 하나님과 교제하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의 복이 임하니 우리가 성전이 된 것입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하나님은 우리가 점점 더 거룩한 성전이 되도록 양심과 말씀을 통해 교훈하고 우리가 의뢰하는 모든 것을 선하게 인도해 주십니다.

성령님의 세미한 인도를 소멸하지 않고 진지하게 따른다면 내적으로 변화가 일어나고 겉모습도 점점 하나님의 특징으로 바뀌게 됩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세계를 보십시오.

하나하나를 완벽하게 설계하셨고, 하나하나가 얼마나 완벽하게 아름답습니까?지난 주 장미공원을 산책했는데, 장미가 피기 시작해 장관이었습니다.

꽃 한송이 한송이의 완벽한 아름다움에 감탄할 뿐이죠.

돌아와서 부탄이라는 나라를 소개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시청했습니다.

이 나라가 불교국가인데 그 생활 속에 녹아있는 종교 행위가 어쩜 그렇게 조악한지 심미적인 것은 눈을 씻고 찾아보려고 해도 없었습니다.

울긋불긋 주렁주렁 걸어놓은 경문들은 보기가 역겨웠습니다.

나라가 가난하고 문화가 발달하지 못한 이유도 있지만 사탄의 세력의 지배력이 크면 그런 것 같습니다.

어떤 종교나 문화나 악령들이 영향을 주는 것은 영적으로 더러울 뿐 아니라 미적으로도 조화롭지 못하고 불편하고 기괴하고 테러에 가깝습니다.

사탄은 피조물 중 가장 아름답게 창조되었지만 타락하고 쫒겨 나자 가장 추악하게 변한 것이 놀랍습니다.

사탄과 악령으로부터 선하고 아름다운 것은 아예 나올 수가 없는 것입니다.

거룩한 하모니와 아름다움은 하나님으로부터만 유래합니다.

성령님의 감동을 신중하게 따르면 하나님의 능력과 성품이 점점 성도들에게도 녹아드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이웃과 조화로운 하모니를 이룹니다.

화려하지 않아도 옷매무새가 정갈하고, 집이 잘 정돈되어 있고, 사회생활에 규모가 있고, 대인관계에 너그러움이 있고, 교육에 관계없이 지혜롭습니다.

성령 충만 하면 자기 관리를 더 잘 하게 됩니다.

성전인 우리를 거룩하게 유지하려면 경건한 예배와 말씀대로 살기와 기도생활을 의무적으로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악의 영들은 본문에도 그랬듯이 성전에 대한 공격을 쉬는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주일에 예배 한번 드린 것으로, 설교 한번 들은 것으로 악을 이기고 성령님의 세미한 음성을 분간하며 살 수 없습니다.

세상 뉴스 귀를 활짝 열고, 세상의 성공을 인생에 최우선 순위에 두고 열심히 살아도 내가 될 수 있는 최고가 되지 못합니다.

세계적으로 성공해서 많은 사람에게 큰 영향을 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을 볼 때 저는 항상 이런 생각이 듭니다.

‘저 사람이 하나님을 만났다면 정말 최고의 삶이 되었을텐데.’

먼저 거룩한 성전이 되고 거기에 세상적인 준비를 잘 갖춘다면 조바심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세상에서도 귀하게 세워 주실 것입니다.

 

2) 또 우리는 이 땅의 주님의 교회인 성전을 세우며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머리가 되시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교회는 성전입니다.

성도들은 힘써 교회를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교회는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바른 믿음 위에 거룩하게 세워져야 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과 우리의 죄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과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하시는 유일한 길이심과 성경을 믿는 바른 믿음 위에 세워져야 하는 것이죠.

그런 교회와 성도들이 복을 받는 것입니다.

모든 성도들은 주님의 몸된 교회가 아름답고 견고히 세워져서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도록 힘써 봉사해야 합니다.

우리가 섬긴 교회를 통해 우리와 자녀들이 복을 받는 것입니다.

자신의 인생을 위해서 열심히 수고하듯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성도들이 교회를 위해 무엇으로 심든지 그 심은 것을 그대로 거두는 것을 저는 많이 보았습니다.

오늘 8절을 보면 하나님이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성전을 건축하라고 하십니다.

아마도 귀환자들은 하나님의 성전을 짓기 위해서는 솔로몬 성전이 그랬듯이 레바논의 백향목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백향목을 수입해서 떠들썩하게 성전을 짓는다면 반대 세력들이 다시 들고 일어날 테니 두려운 것이죠.

하나님은 그냥 뒷산에 가서 나무를 잘라서 성전을 지으라고 하십니다.

굳이 레바논에 있는 비싼 백향목이 아니어도 된다는 것입니다.

단지 일손을 모아 나무를 자르고 가져다가 성전을 지으면 되는 것입니다.

성전을 지을 모든 금과 은도 첫 번째 귀환 때 고레스왕이 다 돌려 주었습니다.

하나님이 주님의 성전을 지으라고 하실 때는 없는 것을 짜내라는 게 아닙니다.

내게 있는 것으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주님의 교회를 위해 봉사하고 헌신하라는 것입니다.

각자에게 여력이 있는대로 교회를 세우는 데 우선 순위를 두고 주님을 따른다면 가정과 자녀들도 복되게 세워주실 것입니다.

 

3) 마지막으로 우리 가정이 성전으로 세워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최초의 가정은 부부라는 가족과 하나님이 함께 계신 완벽한 성전이었습니다.

가정이 완벽한 성전이 되려면 가족 구성원 모두가 예수님을 구주로 믿어야 합니다.

온 가족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릅니다.

그런 가정이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온 가족이 성전이 되기를 위해 정말 기도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가 진심으로 심판과 영생을 믿는다면 지금 예수님 밖에 있는 내 가족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

이 가족들은 우리에게 주신 십자가입니다.

삶의 고통은 십자가가 아니라 인간의 죄의 결과들입니다.

누군가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스스로 지는 짐이 십자가입니다.

가족의 구원을 위한 십자가는 다른 사람이 지는 게 아니라 내가 져야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혈육인 이 가족들을 위해 무엇을 했는지를 물으실 것입니다.

우리 가족 중에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세상신을 섬기는 사람들이 있는 한 하나님은 풍성한 복을 주시기 힘듭니다.

세상 일이 잘되면 그들은 더욱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자와 불신자가 섞여 있는 가정에는 영적 전쟁이 치열합니다.

하나님은 망하지 않을 정도만 붙들어 주실 것입니다.

그렇기에 행복한 가정을 위해서는 가족 전도가 가장 시급합니다.

가족전도는 말로 하는 게 아니라 우리의 거룩함과 착한 행실로만 됩니다.

포기하지 않고 가족도 손님처럼 섬기면 하나님이 감동하실 때가 옵니다.

다 같이 믿는 가정이라도 가족끼리 서로 존대하고 사랑하며 가정에 악이 틈타지 않도록 서로 노력해야 합니다.

가족 간에 만큼 성령충만이 절실히 필요한 관계도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가장 본성이 나오기가 쉬운 곳이 가정이기 때문입니다.

가정이 복된 성전이 되려면 하나님의 말씀이 최종 권위가 되고 최종 결정 기준이 되도록 모두가 순복해야 합니다.

각자에게 오직 하나님이 최고의 권위가 되면 가정에서 자존심 싸움과 갈등이 사라집니다.

이렇게 우리의 힘을 다해 성전으로 세운 가정만큼, 사는 데 힘이 되고 위로가 되고 기쁨이 되는 곳이 없습니다.

그런 복된 가정이 되도록 기도하고 더욱 힘써 가꿔가는 모두가 되시길 바랍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이스라엘은 16년이나 성전 건축을 미루며 아직 때가 이르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더 빨리 돈을 모아 행복의 조건을 만들려고 했지만 하나님은 결코 그것을 지원해 주지 않으셨습니다.

많은 신자들은 자신의 믿음이 굳게 세워져야 하는 것에 대해 아직 때가 아니라고 발을 뒤로 뺍니다.

믿음이 성장하고 영혼이 잘되는 일에 지체하지 마시길 축복합니다.

오늘 귀환자들이 16년간 성전 건축을 미루고 생활에 매달렸지만 너희 창고에 남은 게 없다고 하시잖아요?

예배와 말씀과 기도, 그리고 의지를 다해 믿음의 복된 성전을 세우시기 바랍니다.

온 세계가 방역과 경제 사이에서 깊은 고민에 빠져 있습니다.

코로나 막다 굶어 죽을 판이라는 것입니다.

이미 많은 사람이 일자리를 잃었고 두려운 것은 다시 그 일자리들이 회복되지 않을 것이라고들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을 성전으로 모시고 믿음대로 따르며 생활에 충실하다면 하나님이 모든 것을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삶의 우선 순위가 무엇인지를 잘 깨닫고 오늘부터 다시 예수님 중심으로 살아가길 결심하는 성도님들께 하나님이 약속해 주십니다.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오늘부터는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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