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문제로 나라가 여전히 침통한 분위기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박대통령이 오바마대통령을 접견할 때 하늘색 옷을 입었다가 곤욕을 치렀었죠.
그 때 사람들이 ‘국상’ 중에 웬 부적절한 의상이냐며 온라인에서 야단이 났었습니다.
피지도 못하고 목숨을 잃은 수많은 우리 자녀들의 죽음이야 말로 ‘국상’인 것입니다.
유가족과 민족을 위해 간절히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오늘 우울한 통계보고를 한 가지 더 말씀드리려 합니다.
한 연구원에서 출판한 ‘분노의 숫자’라는 책이 있습니다.
빽빽한 숫자와 통계를 통해 우리 사회의 불평등을 고발하는 책입니다.
청와대 비서관을 지낸 경제학자 정태0 씨를 필두로 지난 2년간 OECD와 통계청 등에서 나온 각종 통계수치를 재구성해 책을 꾸린 것입니다.
안 좋은 결론을 먼저 말씀드리자면 한국사회 양극화가 더 심화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책에 나온 수치를 중심으로, 한 가정의 이야기를 만든다면 이렇습니다.
서로 사랑해 결혼한 김씨 부부가 있습니다.
아이를 낳고 싶지만 출생에서 대학 졸업까지 자녀를 양육하는 데는 평균 3억 1000만원이 듭니다.
그래서 국내 출산율은 평균 1.3명인 통계가 나오게 되는 것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씨 부부는 용감하게 아이를 낳았습니다.
그러나 어렵게 세상에 나온 아이는 행복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어린이, 청소년의 행복지수는 OECD 국가 중 최하위라는 통계에 걸리기 때문입니다.
청소년 사망 원인 1위는 자살이라는 통계도 있습니다.
자살을 생각했던 경험이 있는 청소년들의 설문조사에서 가장 큰 많은 답변은 학업성적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런 불안한 청소년 시기를 이겨 낸 김씨의 아들이 사회에 나오면 워킹 푸어 문제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최저임금조차 못 받는 노동자, 임시직 노동자 비율이 OECD 최고입니다.
그러나 노동시간은 OECD 평균보다 연 300시간이 더 많습니다.
죽어라 일해도 늘어가는 가계 빚에 제2금융권에서 돈을 빌리는 집이 한 집 건너 한 집 꼴이라는 통계가 발목을 잡습니다.
소득증가율보다 아파트 전세금 상승률은 2.5배가 높으니 결혼해서 살 전셋집 장만도 어렵습니다.
그 새 김씨 부부는 늙었지만 노후 대비를 해놓지 못했습니다.
자식 하나 키우느라고 돈을 못 모았던 것입니다.
김씨 부부의 최후는 노인빈곤률, 노인자살률이 세계 1위라는 분노의 숫자로 마치게 됩니다.
이것이 숫자를 통해 본 대한민국의 현실입니다.
백세 시대를 앞둔 장년들은 이젠 은퇴 후 더 길게 먹고 살아야 할 걱정까지 얹혀 졌으니 오래 사는 것도 마냥 좋은 일은 아닌 듯합니다.
우리 이웃과 가족들이 마주쳐야 할 우울한 통계들입니다.
아름다운 5월, 가정의 달에 문화일보에 이런 슬픈 기사를 내보낸 것은 우리 삶이 많이 낙관적이지 않다는 염려에서 일 것입니다.
세상은 이렇게 걱정스럽고 우울한 전망을 예측하고 이것은 피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살기가 힘든가 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오늘 시편127편의 말씀으로 우리에게 용기를 주고 복된 가정을 약속해 주시는 줄 믿습니다.
우리가 분노의 숫자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 할지라도 예수님 안에서 만족과 행복이 넘치는 역설적인 삶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 가정들이 더 건강하게 회복되고 견고히 세워지는 축복이 임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드립니다.
본 시편의 저자는 솔로몬왕입니다.
시편의 수많은 시 중 솔로몬의 시는 단 두 편입니다.
그 중 하나가 오늘 본문입니다.
전체적인 주제를 보면 가정을 세우고 유지해가는 지혜가 담겨있는 시입니다.
시편이니 만큼 한 줄 한 줄 읽고 내용을 음미해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먼저 1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여기서 우리가 가장 먼저 붙들어야 할 진리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집을 세워주시지 않으면 세워지지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더 중요한 이 말씀의 의미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집을 세워주시길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집을 세워주실 마음이 없으시다면 우리끼리 이런 말을 하는 게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의 가정을 세워주고 지켜주길 원하시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복된 가정을 세우는 일이 우리의 힘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자기 힘으로 다들 멋지게 성공적인 가정을 일으켜 세울 수 있다면 뭐 하러 하나님께서 굳이 간섭하려 하시겠습니까?
우리가 창세기에서 알 수 있듯이 죄가 들어오며 사람사이에 가장 먼저 찾아온 것은 가정의 파괴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사랑이 깨지고 서로의 허물을 지적하고 책임을 덮어씌우는 관계가 되었습니다.
돕는 배필이었던 아내는 남편의 지배를 받으며 불만을 품고 살게 되었습니다.
땀 흘려 수고해도 가시와 엉컹퀴를 내는 척박한 땅은 가정경제의 빈곤을 말합니다.
그리고 가인과 아벨의 사건에서 보듯이 형제간 불화는 결국 살인 사건으로 이어집니다.
우리 주변의 가정에서 너무나 흔히 볼 수 있는 파괴된 가정의 모습이 아닙니까?
그러니 어떻게 죄성을 가진 우리 스스로가 복된 가정을 이룰 수가 있겠습니까?
게다가 앞 서 이야기 했듯이 우리 사회만 해도 계층의 고착화로 부모들의 사회신분을 뛰어넘기가 어렵다는 것이 통계적으로 입증되고 있습니다.
2005년 최하위 계층의 사람들을 2009년 추적조사한 결과 70%이상이 여전히 최하위 계층에 머물러 있었다는 통계자료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해주시지 않으면 이런 영적이며 사회전체의 구조적인 굴레에서 우리 가정을 건강하게 세울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소망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의 능력으로 우리의 가정도 범죄 이전의 에덴으로 회복할 수 있게 된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 안에서 모든 가정은 복있는 가정으로 회복될 수 있습니다.
과거엔 불가능했던 일이었지만 이젠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우리 가정과 인생의 기업을 세워가는 일이 얼마든지 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성도들의 가정과 인생을 복되게 세워주시는 지는 수많은 임상실험을 통해 이미 다 알려졌지 않습니까?
이런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어떤 미국의 목사님이 무신론자와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논쟁을 벌였습니다.그러다 목사님이 무신론자에게 제안을 했다고 합니다.
나는 가서 하나님을 믿고 난 뒤 성공한 사람을 열 명 데려올 테니 당신은 가서 하나님을 믿다가 안 믿었더니 성공한 사람 열 명을 데려와라.
시간과 장소를 정한 뒤 목사님은 열 명을 데리고 약속 장소로 나갔습니다.
그런데 무신론자는 결국 그 자리에 나오지 못했다고 합니다.
누가 뭐래도 하나님은 우리의 가정과 기업을 세워주십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을 이 위태한 세상에서 굳세고 안전한 복있는 가정으로 세워주실 수 있겠습니까?
저절로 되는 것은 물론 아니겠죠.
오늘 성경에서는 그 방법을 구체적으로 말해주지 않고 있습니다.
정답은 오늘 이 시편의 저자가 솔로몬이라는 데서 찾을 수 가 있습니다.
솔로몬은 당대에 견줄 사람이 없는 강성한 제국과 부귀를 누린 사람입니다.
어떻게 그가 이스라엘의 역사 상 가장 융숭하고 화려한 시대를 풍미한 왕이 되었습니까?
사무엘하7장에 보면 솔로몬의 아버지인 다윗에 대한 이런 기록이 있습니다.
왕 위에 오른 다윗은 하나님의 법궤가 여전히 장막 안에 놓여있는 것이 황송했습니다.
그래서 법궤를 모실 하나님의 성전을 지을 마음을 가졌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나를 위하여 내가 살 집을 건축하겠느냐
네가 내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할 마음이 있으니 이 마음이 네게 있는 것 이 좋도다
여호와가 또 네게 이르노니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집을 짓고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누울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네 씨를 네 뒤에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라
다윗이 하나님을 위해 집을 건축할 선한 마음을 가졌을 때 하나님이 다윗의 가문을 세워주신 것입니다.
솔로몬 왕은 그 사실을 알고 있고 열왕기상8장에서 자기의 입으로 그 사실을 고백합니다.
아무 것도 한 일없이 자신이 견고한 왕위를 누리고 나라가 창성한 것이 무엇 때문인지를 알고 이 시편에서 증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가정과 기업을 세워주시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진실 되게 추구할 때 입니다.
신약시대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과 같은 내용입니다.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모두가 안락하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기 위해 얼마나 수고를 합니까?
그런데 다들 그런 가정을 만들어 내질 못합니다.
방법이 틀렸다는 것입니다.
공중권세를 잡고 인간사회를 고통으로 몰아넣는 마귀의 지치지 않는 활약과 인간의 죄성의 합작품으로는 결코 좋은 가정을 만들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의 부와 성공만을 목적으로 달려가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일을 앞세울 때 성공도 따라오는 것입니다.
며칠 전 강연100도를 잠깐 보게 되었습니다.
한 만두집 사장이 나와서 모진 고생 끝에 자그마한 만두집을 일군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남의 식당에서 힘들게 음식 솜씨를 익히고 해 볼만한 자신감이 들어 첫 가게를 냈습니다.
그런데 손님을 기다리다 지쳐 일년이 못가서 결국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그 때를 생각하며 이런 명언을 하더군요.
음식 만드는 사람은 음식에만 열정을 쏟으면 손님과 돈은 따라오는 데, 그 땐 그걸 몰라 돈에만 정신을 팔았다는 겁니다.
나중에 다시 만두가게를 열었을 때, 제대로 된 반죽에 좋은 부추와 양파, 무말랭이를 넣어 맛에만 열중했더니 장사가 되더랍니다.
제가 참 감명을 받았습니다.
우선 세상을 사는 우리가 참 정석을 따라 바르고 성실하게 살아야 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또 우리가 누구입니까?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그리스도인아닙니까?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따르는 일에만 열중하면 세상의 필요들은 저절로 따라오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사회생활을 할 때 그렇게 잘 살지는 못했지만 다들 저의 삶이 참 걱정없고 부러워 보인다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직장에서고 교회에서고 예수님을 제 삶의 주인으로 섬기고 믿음을 삶의 중심에 둔 것 밖에는 없었습니다.
우리가 삶에서 하나님을 높이고 예수님을 진정으로 따르려면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성경에서 제시하는 우리의 모든 삶의 방식대로 하면 됩니다.
성경말씀은 우리의 거룩한 삶을 위해 너무나 상세하게 메뉴얼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직장도 가정도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분명한 원칙을 지키며 성실하게 살아가면 반드시 존귀하게 세워주시리라 믿습니다.
가정에 대해 우리에게 주신 성경의 교훈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것을 모르고 그 방식대로 하지 않으면 당연히 좋은 가정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가정의 기초가 되는 부부에 대한 하나님의 뜻은 명백합니다.
에베소서5장입니다.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신 같이 하고 아내도 자기 남편을 존경하라
이 말씀대로 하지 않으면 절대로 사랑으로 결속된 튼튼한 가정을 이룰 수가 없는 것입니다.
언젠가 부부가 같이 일하는 분식집에서 밥을 먹고 있던 적이 있습니다.
배달을 가는 데 주소를 두고 두 분이 서로 다투기 시작했습니다.
아주머니 목소리가 어찌나 크던지 순식간에 아저씨를 제압하고 상황이 종료되더군요.
그런데 성경대로 하지 않는 것이 역시 보기 좋지 못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주머니의 큰 목소리로 틀림없이 가정이 금이 가고 있을 것 같았습니다.
아내를 사랑하지 않는 이기적인 남편의 모습을 보아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은 아내 사랑하기를 제 몸 같이 하라고 하는 데 아내들이 그렇게 남편 사랑을 느끼는 사람이 얼마나 됩니까?
받은 게 없으니 주는 게 없고 서로 그러다 싸늘한 관계가 되는 것이죠.
미국 위스콘신-매디슨 대학의 연구팀이 결혼 11년이 지난 커플들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가 있습니다.
이들이 결혼직후인 연구 시작 시점에서 11년이 지난 뒤 조사를 했더니 우울증 빈도가 더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결혼 후 반려자로 부터 듣는 잔소리와 지적, 비판들이 우울증을 부르는 원인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어떻게 결혼해서 행복한 가정이 될 수 있겠습니가?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대로 순종할 때만이 우리 가정이 더 화목하고 든든히 세워지리라 믿습니다.
가정만큼 상처받기 쉬운 곳이 없는데도 사람들이 가정에서 제일 함부로 대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인 것 같습니다.
가족은 의외로 상처를 주고받기 쉽습니다.
가족이니 괜찮겠지 생각했다 상처가 깊어지고 손쓰기에 늦어 버리는 수도 있습니다.
마귀의 세력은 항상 가족을 통해 시험하고 우리와 가정을 넘어뜨리려 한다는 것을 잘 인식하고 있어야 합니다.
가족이 웬수가 아니라 가족끼리 편을 잘 먹고 믿음으로 진짜 원수를 대적하고 가정을 잘 세워나가야 할 줄 믿습니다.
성경의 원리는 남편은 무조건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는 무조건 남편을 존경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피차 서로에게 복종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가정을 세우시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가정에서 죽어야 합니다.
가정에서 우리가 주인이 되어 휘두르고 있는 한 하나님이 우리 가정을 세우실 수가 없는 것입니다.
아버지도 죽고, 어머니도 죽고, 자녀들도 죽어야 가정이 살아난다는 것을 반드시 기억해야 할 줄 믿습니다.
믿음으로 세워진 우리 가정이라도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지 않으면 1절에서 말씀합니다.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다.
한 가정이나 국가의 안위가 하나님께서 지켜보고 계실 때 안전한 것입니다.
우리 가정과 어려움 가운데 있는 이 나라를 하나님께서 지켜주셔서 악인과 사탄의 권세로 부터 안전하게 지켜 보호해 주시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다음2절입니다.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
삶의 수고로움이 너무나 잘 느껴지지 않습니까?
이른 아침부터 일어나 밤 늦게까지 생계를 위해 투쟁하는 피곤한 삶이 우리의 일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렇게 해서 겨우 수고의 떡을 먹고 살지만 그것 또한 헛되다는 것입니다.
겨우 노력해서 한 귀퉁이를 세웠는데, 그 사이 다른 한 귀퉁이가 무너져 내리는 게 가혹한 삶의 현실입니다.
악착같이 벌어 아파트 한채를 장만했지만 가족 관계는 소원해져 각각 방문을 닫고 들어가 버린다면 뭐하겠습니까?
나중에 행복을 누리겠다고 오늘 행복을 미루지 마시기 바랍니다.
급하게 가정을 세우기 위해 가족을 희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매일의 수고와 노동도 하나님의 안에서 가족을 사랑하라는 원칙을 따를 때좀 더디다 해도 하루 하루가 복되고 기초가 사랑 위에 세워진 가정을 이루게 되리라 믿습니다.
하나님은 주님 안에서 땀흘린 사랑하는 자들에게 하루의 수고를 접고 편안하게 잠들 복을 주신다고 오늘 본문은 말씀합니다.
종일 수고하고도 잠 못이루는 밤이 이어진다면 얼마나 삶이 고달픕니까?
사실 사람 사는 데 어찌 하룻밤인들 염려 없는 때가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에게 잠을 주신다는 말씀 안에는 안심하고 잠들기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매일 밤 있다는 뜻이 담겨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문제를 기도로 하나님께 맡기고 누웠을 때 왠지 안심이 되고 내일을 낙관하며 잠들 수 있는 것이죠.
성경에서 가장 인상적인 잠이 있지 않습니까?
사도행전에 보면 야고보가 참수형을 당하고 순교한 뒤 뒤이어 베드로가 체포되었습니다.
날이 새면 사형언도를 받을 것이 너무나 확실한 데 베드로가 옥에서 깊이 잠이 들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천사가 곁에 선 것도 모르고 얼마나 깊은 잠에 빠졌으면 일어나라고 천사가 걷어 찼다고 하지 않습니까?
우리 같이 근심이 많은 부정적인 사람들이 당장 내일이 문제인 데 어떻게 근거 없이 평안한 잠에 빠질 수가 있겠습니까?
베드로의 깊은 숙면 뒤에는 비밀이 있습니다.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더라
기도 뒤에는 평안한 잠이 있습니다.
우리의 기도와 혹은 다른 누군가의 중보기도로 분명히 잠들 수 없는 상황에서도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평안히 잠들게 되는 것입니다.
시편3편에서 대적에게 쫒기며 목숨이 위태롭던 다윗도 이렇게 노래합니다.
내가 나의 목소리로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그의 성산에서 응답하시는도다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비록 내가 원치 않는 상황이 벌어지고 이해할 수 없을 때에도 기도해 보면 그것이 하나님의 최선이라는 것이 믿어집니다.
이 상황이 하나님의 최선인 데 뭐하러 걱정 염려를 하겠습니까?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주께서 너희를 돌보심이라.
성도들이야 말로 근거 있는 낙관론자들인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자에게 잠을 주시는도다 라고 번역된 부분을 새번역 성경은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진실로 주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사람에게는 그가 잠을 자는 동안에도 복을 주신다.
이 번역이 맘에 드시죠?
자고 일어났더니 어느새 일이 진척되어 있고, 안되던 일도 이뤄져있다면 얼마나 기분 좋은 일입니까?
해결되지 않은 문제로 머리를 싸 안고 기도하고 잠들었는 데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결정적인 아이디어가 생각났던 때도 있습니다.
복잡한 하루 일정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될 때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염려를 다 내게 맡겨라.
열심히 수고해도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은 기도로 주님께 맡기면 우리가 자는 중에도 분명히 주님께서 일하실 줄 믿습니다.
다음 3절부터 5절까지는 가정에 자녀에 대한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정을 세워주셔도 그것을 함께 누릴 자식이 없다면 또 허망한 일이죠.
3절에 보면 보라,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아름다운 가정을 세워서 자식들과 함께 누리게 하길 원하십니다.
왜냐하면 좋은 것을 좋은 사람들 하고 누릴 때 진짜 행복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함께 즐길 사람이 없을 때 좋은 것이 오히려 더 마음을 공허하게 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아름다운 천국에서 사랑하는 우리 자녀들과 함께 모든 것을 누리고 싶은 것도 그런 마음이실 것입니다.
4절을 보면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 이것이 화살통에 가득한 자는 복이 있다고 합니다.
장사가 싸울 때 화살통에 덜렁 몇 개의 화살만 있다면 재앙입니다.
자녀가 많은 것이 큰 복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과거와 달리 오늘 날 우리가 어떻게 화살통에 가득한 화살만큼 자식을 낳겠습니까?
우리 자손들과 가문이 이렇게 번성할 때 복되다는 것입니다.
명절에 모이면 어느새 한 부모 밑에 자식, 손주들이 그득하게 앉은 광경이 역시 축복인 것입니다.
5절 하반절을 보면 자식이 많은 자들에게 이런 복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그들이 성문에서 그들의 원수와 담판할 때에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로다.
위기의 순간 가족만이 진정한 내 편이 될 수 있습니다.
크고 작은 인생의 어려운 난관과 시련의 순간에 내 편이 되 주는 자식만큼 든든한 게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 세대만 해도 부모들이 보통 대여섯명의 자식을 낳아 옷을 물려 입히고 도시락을 다섯개씩 싸며 어렵게 키웠습니다.
자식들 호강은 못시켰어도 부모들이 희생하며 자녀들을 키워놓으면 그래도 노후에 효도를 받으며 여생을 보내는 것을 봅니다.
제가 아는 한 선생님은 친정부모님이 청주에 사시는 데 주말마다 내려가서 주일 저녁에 올라오십니다.
친정어머님이 노년에 우울증 증세가 있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자식들이 내려가서 화투를 치면 그렇게 재미있어 하신다고 합니다.
화투를 쳐보지도 않은 그 선생님이 열심히 고스톱을 배워서 토요일 밤에 서너시간씩 화투를 쳐드리고 주일에 올라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다니다가 우연히 여고동창생을 만났는 데 그 친구의 언니가 청주 근교에 개척교회를 했다며 한번 가보자고 했다고 합니다.
얼떨결에 따라 갔다가 주일마다 그 곳에서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부모님께 효도했더니 성경말씀대로 이뤄지지 않았습니까?
네가 이 땅에서 잘 되고 장수하리라.
예수님을 믿은 것만큼 잘 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리고 참고로 말씀드리면 이 선생님은 제가 같은 학교 근무할 때 전도하기 위해 수년 간 기도했던 분이십니다.
가족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실 때 절대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문제는 너무 자녀를 적게 낳는 데도 있습니다.
이슬람이나 통일교 같은 데는 아이들을 많이 낳아서 세력을 확산시키는 데 비해 우리는 너무 자녀를 두지 않아 문제입니다.
출산률이 급격히 하락되며 생산 인력이 부족해 이민을 받아들인 프랑스가 지금 어떻게 되었습니까?
급속히 이슬람에 잠식당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의 자녀들을 잘 낳아서 예수님의 신실하고 능력있는 일군들로 잘 키워야 할 줄 믿습니다.
통계에 의하면 교회 나오는 사람의 55퍼센트가 스무 살 이전에 신앙을 가졌다고 합니다.
60세 이상이 되어서 예수 믿는 사람은 1퍼센트도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우리의 자녀들을 일찍 믿음으로 양육하고 젊은 세대가 많이 전도되기를 위해 기도해야 할 줄 믿습니다.
오늘 시편의 부제는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입니다.
전통에 가득한 화살은 하나님의 많은 자녀들로 성전이 가득한 것을 말씀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육신의 자녀 뿐 아니라 우리가 영적인 자녀들을 많이 낳도록 열심히 전도하고 양육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흥왕하게 하는 귀한 일에 헌신하길 간절히 축복드립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영국의 역사학자 에드워드 기본은 로마제국 붕괴의 가장 심각한 원인 중 하나는 가정의 붕괴라고 지적했습니다.
로마의 한 철학자는 로마가 무너져가는 마지막 황혼의 역사를 보며 ‘애국자여, 가정을 지키시오’라고 호소했다고 합니다.
수많은 위험과 난관이 도사리고 있는 인생에서 가정을 아름답게 가꾸고 인생을 견고히 세우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견고하고 복된 가정을 이루기 위해 오늘 시편말씀을 잘 새기고 실천하길 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할 때 하나님이 우리의 집을 세우고 지켜주십니다.
하나님 안에서 모든 수고와 땀을 흘린 뒤 나머지 염려는 기도로 다 주님께 맡기고 편안히 잠드는 축복을 주시길 소원합니다.
우리의 자랑스런 기업이고 노후에 부끄러운 노년을 보내지 않기 위해 믿음의 자녀들을 낳고 잘 양육하시길 바랍니다.
또 우리 자녀들 부모님을 사랑으로 잘 공경할 때 약속하신 축복, 이 땅에서 잘 되고 장수하는 복을 받으실 것입니다.
오늘 시편 127편의 좋은 축복이 성도님들 가정마다 넘치게 부어지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아멘.
2014.5.4 주일설교 남수연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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