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의 말씀은 사도 바울의 3차 전도여행 중 에베소에서 있었던 한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원래 유대교 신봉자로 자기가 믿는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모독하는 기독교인을 박해하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를 말살하려고 혈기등등하여 떠났던 길에서 주님의 음성을 듣고 완전히 돌변하여 복음전도자가 됩니다.
유대교인으로 율법에 능통하고 빼어난 가문과 학력을 지녔던 그가 시골 목수 출신의 예수님을 만나 그의 삶을 송두리째 주님께 바친 것입니다.
복음전도의 열정으로 불탔던 바울은 3차에 걸쳐 이스라엘에서 시작하여 유럽까지 긴 전도 여행을 다니며 복음을 전합니다.
마지막3차 전도여행을 다녔던 거리가 총2,400킬로미터가 넘는다고 합니다.
걸어서 2400킬로 미터면 우리나라 전체 길이가 1,100킬로미터라고 하니 우리나라 최남단에서 최북단까지 다녀 온 것입니다.
정말 치안도 좋지 않고 교통편도 마땅치 않은 2000년 전에 복음을 전하려는 열정으로 앞만 보고 달려갔던 바울의 삶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 본문은 그 마지막 3차 전도여행 중에 일어난 일입니다.
에베소는 현재 터키에 있는 도시로서 그 당시 로마의 식민통치를 받고 있던 곳입니다.
에베소는 상업의 번성으로 큰 부를 누리고 있었고 우상숭배가 성행하던 곳입니다.
이곳에서 바울은 제자들이 열 두명 정도가 모인 가정교회로 보이는 곳에 들어가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들 모임이 뭔가 석연찮아 단도직입적으로 묻습니다.
당신들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그러자 예상했던 대로 그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우리는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세례요한의 제자로 요한의 회개세례를 받고 앞으로 오실 메시야에 대해 믿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바울은 그들에게 세례요한이 내 뒤에 오실 거라고 소개했던 메시야가 바로 예수님이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것을 가르칩니다.
그러자 그들은 즉시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습니다.
그리고 바울이 안수하자 성령이 임하셔서 그들이 방언도 하고 예언도 했다고 오늘 본문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실례지만 저도 오늘 성도님들께 한번 묻겠습니다.
성도님들 믿으실 때 성령을 받으셨습니까?
오늘 본문처럼 성령이 있음도 모른다고 말씀하시면 안됩니다.
우리가 성령을 받지 않으면 우리의 구원도 없습니다.
로마서8장9에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 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도 그들의 신앙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꿰뚫어 보고 예수님을 영접하고 성령을 받으라는 급처방을 내린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령을 받았나 하는 문제는 가장 중요한 문제입니다.
오늘 우리 안에 성령이 있으신지에 대한 확실한 믿음을 갖고 또 성령을 받지 못한 분들은 오늘 꼭 성령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삼위일체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나 성부하나님, 성자예수님, 성령하나님이 계시며 각각의 인격을 갖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이 삼위일체 속성에 대해서는 우리가 설명할 수도 없고 명확하게 이해도 안됩니다.
우리가 다 이해할 수 있고 분석할 수 있는 하나님이 어디 하나님이시겠습니까?
우리 집에 애완견 초코가 있습니다. 초코가 무슨 저의 정신 세계를 조금인 들 이해하겠습니까?
이 삼위일체의 하나님은 함께 우리의 창조와 구원 사역을 이루십니다.
구약에서는 성부하나님이 중심이 되어 일하셨고 성자예수님이 오셔서 우리의 구속사역을 이루셨고 오늘날 신약의 시대에는 성령하나님께서 이 구원을 우리에게 적용시켜 완성해가십니다.
이 땅에서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도록 역사하시는 분도 성령님이시고 믿을 때 구원의 보증으로 우리 안에 오셔서 우리의 삶을 인도해주시는 분도 성령님이 십니다.
우리가 성부하나님과 성자 예수님에 대한 이해와 지식에 비해 성령하나님에 대해서는 그렇지 못한 것 같습니다.
성령님은 성경에서 하나님의 영, 그리스도의 영, 예수의 영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간혹 사람들이 성령님을 인격이 있으신 하나님으로 생각지 않고 어떤 능력이나 힘 같은 걸로 생각하는 데 그렇지 않습니다.
사도행전 13장 2절에 보면 성령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라고 명령하십니다.
즉 인격체이신 성령께서 자신의 의도대로 구속사역을 이끌어 가시고 우리를 인도해 가신다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하시는 가장 중요한 일은 첫째, 우리를 거듭나게 해서 구원을 받게 한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3장에는 유대인 공회원으로 존경받던 니고데모란 사람이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갈증을 풀지 못해 한 밤중에 몰래 예수님을 찾아와 구원에 대해 묻습니다.
아마 장로 국회의원쯤 생각하면 되겠지요.
그는 율법을 잘 지키는 바리새인이었는 데 율법을 지킴으로 과연 구원을 받을 수 있을지 의문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니고데모를 향해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그냥 말씀하셔도 진실되신 데 진실로 진실로 두 번 말씀하셨으니 엄청 중요한 말씀입니다.
한밤중에 비록 다른 유대인들의 눈을 피해 몰래일지라도 구원에 대한 갈망을 갖고 예수님을 찾아 온 니고데모를 사랑하셔서 주님은 구원의 핵심을 바로 말씀해주십니다.
율법을 지켜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거듭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거듭난다는 말을 난생 처음 들어본 니고데모는 이해할 수 없어 엉뚱한 질문을 합니다.
제가 늙었는 데 어떻게 모태로 다시 들어갔다 태어나냐는 것이죠.
그때 예수님은 육으로 태어난 것은 육이니 이번에는 영으로 태어나야만 된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해주십니다.
그리고 이어서 우리가 다 아는 유명한 성경귀절인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를 말씀하십니다.
즉 성령으로 거듭난다는 것은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을 믿고 영생을 얻는 다는 것과 같다는 뜻이죠.
오순절에 성령 강림을 체험한 베드로가 이것을 적용하여 사도행전2장38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성령으로 거듭나는 방법은 우리가 죄인임을 고백하고 회개하여 예수님이 나의 죄를 대신해 죽으셨다는 것을 믿고 주님을 영접하면 성령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믿고 성령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우리가 죽은 후에 영원한 생명이 있다면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이 구원받는 것 외에 무엇이 있겠습니까?
에수님의 십자가의 대속을 믿고 구원을 받으셔야 합니다.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자가 없느니라.
사기군이 아닌 다음에야 어떤 인간이 이런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석가는 도를 묻는 제자들에게 저기에 길이 있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구도자 였습니다.
석가는 평생 길을 찾아 수행했던 사람입니다.
예수님만이 자신이 길이라고 말씀하실 수 있습니다.
성령님의 조명이 아니면 그 누구도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고 나의 구주가 되신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없고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아직까지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인정하지 못하신 분이 있으시다면 오늘 성령님의 역사하심으로 결심하고 주님을 영접하여 구원받는 축복이 임하시길 축원합니다.
성령님이 우리에게 행하시는 두 번째 일은 이 땅에서 우리를 보호하고 도우시는 일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았으나 아직은 이 땅에서 당분간 살아야하지 않습니까?
성령님은 그런 우리를 보호해주시고 안전하게 인도해주시기 위해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성령님을 또 다른 보혜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원어로 풀이하면 도움을 주도록 곁에 부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떠나실 것에 대해 불안에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성령님을 보내주시겠다고 거듭 말씀합니다.
요한복음14장16 예수님이 성령님에 대해서 말씀하시길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걱정마라 이 말씀이십니다.
요한복음 16장 7절에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예수님은 육체를 가지고 계셨고 지금도 부활한 육체로 하늘에 계십니다.
구원 사역을 이루시기 위해서는 영으로 계신 것이 효과적입니다.
성령님은 온 우주에 어느 곳이든 편만하게 임재 해 계십니다.
그리고 영이시기에 우리 각 각의 마음에도 들어오셔서 우리와 함께 거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는 영적 세계가 공존하고 있습니다.
영이 죽은 자연인들은 그것을 느끼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지만 성령이 충만한 성도들이나 악한 영과 접속한 사람들은 이 세상 속에 있는 영적인 세계를 느끼며 살아갑니다.
사단과 악한 영의 세력이 이 세상에 가득합니다.
에베소서2장2절에 보면 그것들은 공중 권세를 잡은 자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 악한 영들이 공중에만 거한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들은 인간의 마음을 은신처로 삼고 인간을 지배하려고 합니다.
우리 마음 속에 언제든지 드나들 수 있는 것이 이 악한 영들입니다.
예수님은 이 악한 영을 간파하고 계셨기에 가시는 곳마다 인간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는 귀신들을 보고 분히 여기시고 좇아내셨던 것입니다.
지금도 사정은 그 때나 똑 같습니다.
인간의 마음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수많은 악한 영들이 수시로 들어옵니다.
자기의 마음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악령이 주는 생각이 많습니다.
지난 주에 우리가 보았던 본문 중에 가룟 유다의 마음 속에 사단이 예수님을 팔 생각을 넣었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영적 세력의 전쟁터와 같은 곳입니다.
아담이 범죄하며 영적 사망이 이르자 창세기 6장 3절에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영이 인간을 떠나게 되자 악한 영들은 마음껏 인간의 영을 지배하게 된 것입니다.
마귀와 그 귀신들은 타락하였지만 영물이고 천사였던 존재들입니다.
육신에 속해 살고 있는 인간들이 쉽게 상대할 수 있는 존재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타락한 인간 안에 자신의 진지를 구축하고
인간을 자유자제로 휘두르며 살 수 있는 존재들입니다.
그저 작전 상 자기들의 존재를 숨기고 은밀히 행동할 뿐입니다.
자신을 드러낼수록 인간들은 상대적으로 하나님을 찾게 되기 때문입니다.
CS 루이스의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라는 책을 보면 사단과 귀신이 얼마나 치밀한 작전을 세워 우리를 믿음에서 떨어지게 하는 지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에 성령님을 모시지 않는다면 우리 마음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나도 모르는 사이에 악한 영의 지배가운 데 살게 되는 것입니다.
1971년 스탠포드 대학교의 짐바르도 교수에 의해 한 의문의 실험이 진행되었습니다.
감옥실험이라는 모의 실험으로 교도소가 인간의 심리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기 위한 실험이었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미국과 캐나다 전역에서 심리테스트를 거친 가장 평범한 대학생 24명을 실험에 투입하였습니다.
하루 일당으로 그 당시 15달러를 받고 2주간의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것이었습니다.
경찰의 협조를 받아 24명의 학생들을 체포하는 것으로 시작된 실험은 동전 던지기로 죄수와 간수를 구분했습니다.
죄수가 된 학생들은 감옥에 들어가기 전 벌거벗은 상태로 소독을 받고 죄수번호와 죄수복을 지급받았습니다.
간수들은 호루라기, 곤봉, 선글라스를 착용하였으며 간수나 죄수 모두 실험을 그만두고 싶다면 언제든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하였습니다.
처음엔 웃음과 재미로 시작되었던 이 실험이 그러나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나면서 심각한 상황이 벌어지기 시작합니다.
간수 그룹의 학생들은 갈수록 잔혹한 방법으로 죄수들을 학대하고 죄수 그룹의 학생들은 심각한 정신적 이상상태를 보이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고통을 당하면서도 희한하게 그 상황에서 빠져나오려는 반응을 전혀 보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결국 이 실험은 실험참가자의 부모가 자신의 아들을 데려오기 위해 변호사를 보냄으로 6일만에 중단되었는데 그때까지 실험참가자들 누구도 실험을 그만두겠다고 말하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그 당시 왜 실험이 급작스레 종료되었으며 어떤 가혹행위가 있었는지 일체 함구되었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었던 사건입니다.
[스탠포드 감옥실험]으로 불리는 이 프로젝트는 [엑스페리먼트]라는 영화로 만들어져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 사건에 대해 함구하고 있던 짐바르도교수는 몇 년 전 이 실험에 대한 책 루시퍼이펙트(사단의 영향력)를 발간하였습니다.
나쁜 기질을 가진 사람만이 악인이 되는 게 아니라 인간 내면에 있는 본성이 악해 특별난 상황에 놓이게 되면 잔인하고 가학적으로 변한다는 것이 실험을 통한 교수의 결론입니다.
우리가 평범하고 착하게 살아가려해도 어떤 특수한 환경 가운데 들어가면 잔혹한 우리의 본성이 나오게 되는 데 그는 이것을 루시퍼 이펙트라고 하여 사단도 인간의 악한 본성에 영향을 준다고 암시합니다.
그런데 그 실험이 가상이 아닌 현실로 드러난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실험 종료 후 30년이 지난 2004년 이라크의 아부그라이브 포로 수용소에서 끔찍한 포로 학대 사건이 밝혀졌습니다.
아부그라이브에서 발신된 디지털 사진은 벌거벗은 수감자 피라미드 위에서 웃고 있는 병사들, 무시무시한 군용견 앞에서 겁에 질린 수감자들, 수감자 시체를 손으로 가리키며 미소 짓는 여군 병사의 모습이 담긴 사진들로 전 세계를 경악케 했습니다.
평범했던 그들이 전쟁이란 처절함과 공포의 상황 가운데 놓이게 되자 어디에 있었는지 알지못한 악한 본성이 드러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악한 죄성과 사단의 합작품인 셈입니다.
인간의 죄성을 부추기는 것이 사단의 세력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인간이 평생 자기의 의지대로 살아지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살다보면 내 마음이 어디 마음먹은 대로 됩니까?
가장 힘든 게 내 마음 다스리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를 보호하실 성령님을 우리 마음에 보내주셔서 다른 악한 영이 우리를 지배하지 못하도록 우리를 지켜주시고 우리가 죄성 대로 살지 않도록 탄식하며 우리 안에서 기도해주시는 것입니다.
요한복음17장 15절에 예수님이 기도하신대로 내가 비옵는 것은 저희를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오직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를 이루어주시기 위해 성령님이 우리 안에 오신 것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센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의 인도와 보호를 받는 삶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아멘.
성령이 우리 안에서 행하시는 세 번째 일은 하나님의 자녀의 성품 즉, 성령의 열매를 맺게하신다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우리에게 진짜 아버지가 누구인지를 알아보게 하십니다.
갈라디아서 4장 6에 너희가 아들인 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이므로 아버지를 닮고 자녀의 성품으로 변해가도록 일하십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거룩하고 고상하게 변화시켜 가십니다.
이건 내가 아닌 데, 이건 성령께서 주시는 마음이구나, 주님의 마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이 있습니다.
몇 주전 고등학교 검정고시 감독관으로 차출되어 갔습니다.
그날 수험생 중에는 연예인 김00씨와 김00씨가 있었습니다.
저는 감독 들어간 반에 혹시 그 사람들이 있으려나 하고 수험생들을 유심히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절 반 이상이 연예인 뺨치게 생겨 누가 누군지 구별이 잘 안되 찾아보길 포기했습니다.
고등학교검정고시 수험생들이 대부분 뻔한 사람들이 아닙니까?
공부는 하기 싫고 연예계가 끌리고 제도권 교육의 통제가 싫어서 일찍 독립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죠.
시험감독 내내 세속적이고 악한 기운이 너무 많아 머리가 지끈 거리는 게 느껴져 속으로 진작 공부들 좀 하지 하며 팔뚝에 용 문신 새긴 학생들을 둘러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제 속에서 불쌍한 아이들, 불쌍한 아이들, 불쌍한 아이들하고 세 번 음성이 들려오며 눈물이 핑도는 거였습니다.
제 마음이 아니라 그들을 측은히 여기시는 성령님의 마음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사실 그들이 부모만 잘 만났어도, 좋은 집안에서 돌봄을 잘 받았어도, 명석한 두뇌를 물려받고 태어났어도 그렇게 되었겠습니까?
저는 그들의 아픔과 고달픈 인생을 헤아리지 못했지만 성령님은 우리 속에 자꾸 주님의 마음을 넣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지 않았던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주십니다.
사랑할 수 없는 데 사랑하게 하십니다.
기뻐할 수 없는 상황 가운데 희락을 주십니다.
나의 한계를 넘어서까지 인내할 수 있는 마음을 주십니다.
이런 변화가 우리 안에 조금씩 일어나는 것은 바로 우리 안에서 행하시는 성령님이 계시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아멘.
그렇다면 우리가 성령을 받았는지, 우리 안에 성령이 계시는 지는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간단합니다. 고린도전서 12장3절에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즉 예수님을 주님으로 인정할 수 있다면 곧 그것은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15장 26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
즉 성령님이 우리 안에 계신 증거는 우리가 예수님에 대해 이해하고 믿게 된다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에수님과 하나님을 증거하고 높이십니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생활을 하고 있다면 그것은 성령께서 하시는 일임이 확실합니다.
오늘 본문의 5절에 보면 사도바울이 예수님을 증거하고 소개하자 그들이 즉시 그것을 믿게 됩니다.
성령께서 그들의 마음을 거듭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똑같은 바울의 말씀을 듣고도 본문의 9절에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굳어 순종하지 않고 무리 앞에서 이 도를 비방하거늘 이라고 기록되어있음을 주목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성령의 역사로 복음을 듣고 믿고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똑 같은 말을 듣고 오히려 비방을 합니다.
성령께서 그 마음에 있지 않다는 증거입니다.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십니까?
그것은 바로 성령께서 우리 안에 계시다는 증거입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나누고 싶은 것은 성령충만에 대한 말씀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했을 때 성령의 역사로 거듭나고 성령님은 영원히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
그러나 성령님은 너무나 인격적인 분이시고 절대로 우리에게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거하십니다.
만약 거룩하신 성령님이 우리 안에 계심을 우리가 느낀다면 우리는 즉시 성령님께 지배를 당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애당초 우리를 지배할 목적으로 만드시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거룩하심에 지배당하지 않고 친근히 대면할 피조물은 인간 밖에 없었습니다.
이사야6장2절에 보면 이사야가 환상으로 하나님의 보좌를 보았는 데 모시고 서있는 천사들이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자기의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자기의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하나님을 찬양했다고 했습니다.
예수님 앞에서 귀신들이 두려워 떨며 쫒겨 갔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 받은 아담은 에덴에서 하나님과 얼굴을 대면하며 친밀한 사랑의 관계를 나누지 않았습니까?
성령하나님은 지금도 우리 속에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겸손하게 존재하시며 우리를 돌보고 계십니다.
우리 영을 우리의 자유의지와 상관없이 지배하지 않으시려고 숨어서 일하십니다.
예수님이 종으로 섬기기 위해 우리에게 오신 것처럼 성령님도 온전히 우리를 섬기기 위해 오셨다는 것은 너무나 황송한 일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에게 성령의 우리 안에 계시는 것에 만족하지 말고 성령충만을 받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성령충만은 우리가 자발적으로 성령님을 초청하고 순종하길 원하면 그 때 성령님의 능력을 우리에게 주시며 우리와 함께 일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님을 향해 손을 내밀고 의지하고 충만하기를 간구할 때 성령 충만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그것이 주님이 원하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령 충만하지 않으면 나의 죄성을 이기기가 힘듭니다.
이 세상과 악한 세력을 대적할 힘도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 각 사람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맡기고 싶은 주님의 영광스런 사명도 절대로 감당할 수 가 없습니다.
성령충만을 받으려면 간절히 사모하며 기도하면 됩니다.
누가복음 11장 13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하셨습니다.
구하면 성령충만하게 해주시겠다는 약속이십니다.
성령충만해 질 때 우리의 유익을 위해 각 양 신비한 은사들을 주십니다.
고전12장10 어떤 이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이에게는 예언함을,어떤 이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이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이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라고 기록되었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성령의 충만을 받고 이런 능력들을 받아 지금도 복음전파를 위해 일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바울의 희한한 능력을 보십시오.
그의 손수건만 가져다 얹어도 병이 낫고 악귀가 떠났다고 하지 않습니까?
오늘날 성령 사역자들에게서도 종종 나타나는 일입니다.
우리에겐 아무 능력이 없지만 성령님을 의지하고 그 분으로 충만할 때 우리는 세상이 감당하지 못할 능력있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날마다 성령충만을 위해 기도하시는 복 된 삶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성령님에 대해 오늘은 극히 작은 부분을 살펴보았습니다.
앞으로 기회가 되는 대로 오늘날 교회 현장에서 임하는 생생한 성령님의 역사를 함께 나누길 원합니다.
우리의 지식으로 성령을 이해하려하지 마십시오.
우리의 삶이 참 힘들다는 생각이듭니다.
성령님의 도움을 받아야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렇게 힘들고 메마르고 곤고하게 살아가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을 믿을 때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넘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기도하고 믿고 의지할 때 성령께서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는 놀라운 영적인 세계로 우리를 인도하실 것입니다.
구하십시오.
성령충만을 받아 열매 없는 시시한 육신의 일에 얽매이지 말고 하늘의 상급과 보람을 누리는 삶을 사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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