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어버이 주일입니다.
우리를 지으시고 구원해주신 하나님 아버지께 먼저 감사와 영광을 올립니다.
또 우리를 낳으시고 모든 것을 희생하며 키워주신 우리 부모님들께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 축복이 함께 하시길 간절히 축원드립니다.
5월은 가정의 달로 우리에게 귀한 가정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지키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님들 가정이 하나님의 보호와 축복으로 항상 평안하고 행복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우리나라 이혼률, 자살률이 OECD국가 중 최고에 달한다는 걱정스런 보도가 있습니다.
이혼률이 10퍼센트 가깝다는 데 실제 학교 현장에서 느끼는 학생들 가정의 이혼률은 20%를 넘는 것 같습니다.
별거 상태에 있는 부모를 포함 해 한 반에 7,8명정도가 한 부모 밑에서 자라고 있는 것을 봅니다.
여러 가지 사연으로 가슴 아픈 가정의 파탄을 겪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피해는 자녀들에게 심각한 고통을 가져다 주는 것을 봅니다.
학교에서 부적응 탈선 학생들 중 홀부모 가정 학생이 많은 것이 현실입니다.가정은 이 땅에서 세찬 비바람을 막아 줄 울타리입니다.
이혼 뿐 아니라 경제적 어려움과 가족 간의 갈등과 많은 문제들로 가정이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기쁨과 평안보다 근심과 고통을 주는 가정도 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야곱의 집안 이야기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으로 선택되었지만 성경에 기록 된 그의 가정을 보면 위기의 가정이고 벼랑 끝의 가정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여러 아내들로 인한 갈등과 이복형제들 사이의 시기와 미움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형이 동생을 노예로 팔아 먹는 패륜 범죄가 있었고 자식을 앞세우는 고통이 있었습니다.
유일한 딸 디나는 겁탈을 당해 결혼도 못한 채 평생을 아버지 집에서 지냅니다.
믿음의 조상도 그 속사정은 우리 인생이나 다름없는 고통으로 가득 찬 것을 보게 됩니다.
어느 가정이건 들추어 보면 모두 이런 상처와 아픔이 있는 게 인생입니다.
그러나 그런 험악한 세월에도 불구하고 야곱은 그 고난을 통과하며 점점 더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의 삶을 살아냅니다.
그리고 인생의 종착역에서 야곱은
나의 출생으로부터 지금까지 나를 기르신 하나님, 나를 모든 환난에서 건지신 여호와께서 라고 고백합니다.
우리는 오늘 야곱의 가정이 말할 수 없는 역경을 이기고 오늘 본문에 읽은 대로 하나님의 회복의 축복을 맞는 것을 봅니다.
야곱의 가정을 들여다 볼 때 우리 가정이 하나님의 은혜로 건강하고 행복한 가정으로 거듭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주님의 나라에 가기 까지 우리 가정은 우리가 마음껏 행복을 누리고 사는 지상 낙원이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죄와 악이 우리의 안과 밖에서 시험하고 유혹하는 세상에서 가정을 행복하게 가꾸어 가는 일은 만만한 일이 아닙니다.
한번 가정의 행복이 금이 가고 깨지게 되면 다시 회복되기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아름다운 가정을 파괴하고 깨뜨리는 것은 사탄이 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키고 보호해 주실 때 우리 가정이 안식처가 되고 행복한 울타리가 될 줄 믿습니다.
오늘 말씀을 나누며 우리 가정의 귀중함을 깨닫고 하나님을 의지하여 더 아름답고 견고한 가정을 세워 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드립니다. 아멘.
먼저 이 가정의 아버지인 야곱의 고통과 문제를 살펴보겠습니다.
야곱은 쌍둥이 형 에서와 함께 이삭의 아들로 태어납니다.
그런데 아버지 이삭은 철저히 형 에서를 인정하고 편애했습니다.
야곱이 형의 장자의 축복을 가로채려고 형으로 위장해 눈이 잘 안 보이는 아버지의 축복 기도를 받아내는 사건이 있었죠.
나중에 이 사실을 안 에서가 아버지에게 자기에게도 복을 빌어달라고 울며 조를 때 아버지는 남은 복이 하나도 없다고 말합니다.
축복의 유산을 에서인줄 알고 야곱에게 다 부어 버린 것입니다.
원래 동생 야곱에게 줄 유산과 축복은 생각지도 않았다는 뜻이죠.
평생 부모의 편애를 느끼며 성장하는 아픔은 당해 본 사람만이 알 것입니다.
부모의 본심이 그렇지 않더라도 받아들이는 자식들은 더 과장되게 차별 당한다는 고통을 느낍니다.
부모의 사랑이라고 완전한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가장 많이 닮았다는 부모의 사랑조차도 죄로 오염돼 자식에게 고통과 사랑을 함께 줍니다.
하나님 안에서 부모의 상처가 먼저 치유되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자식을 대할 때만이 부모의 사랑도 온전해 집니다.
우리의 자녀를 올바르게 사랑하기 위해서 우리는 더욱 성숙한 믿음의 부모가 되도록 기도해야 할 줄 믿습니다.
야곱은 이렇게 에서의 장자 축복을 가로챘지만 행복은 더 멀어졌습니다.
형을 피해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도망쳐 갖은 고생을 하게 되죠.
라반의 집에서 20여년을 보내는 동안 그는 가족에게 완전히 잊혀진 존재로 살아갑니다.
그가 사는 동안 가족 중 단 한사람도 그를 찾아왔다는 내용이 없습니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부모와의 관계에서 성장기에 어려움과 상처를 받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대화가 완전히 단절 된 집안도 상당히 많습니다.
인터넷에 이런 글이 오른 걸 읽었습니다.
어떤 청년이 김정현작가의 아버지의 눈물을 읽고 갑자기 아버지에게 고맙다는 말이 하고 싶어 전화를 걸었습니다.
아버지는 전화를 받자마자 평소처럼 대뜸 엄마 바꿔주마 라고 합니다.
아니요, 아버지께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요 말하자
왜, 돈 필요해? 하십니다.
아니예요, 그냥 아버지께 감사하단 말을 하고 싶어서요.
잠시 조용하시던 아버지의 대답이 너 술 마셨구나. 엄마 바꿔주마.
아버지의 마음이 느껴지긴 하지만 아들은 씁쓸하게 전화를 끊었답니다.
아무리 가까운 관계라도 대화를 통해 사랑과 친밀감을 느낍니다.
우리 가정이 풍성한 대화로 활기와 사랑이 넘쳐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드립니다.
야곱은 외삼촌의 집에서 첫 눈에 반한 그의 딸 라헬을 아내로 얻기 위해 무보수로 7년을 일했습니다.
그런데 외삼촌은 결혼식 날 라헬 대신 노처녀 큰 딸 레아를 잠자리에 슬쩍 들여보냅니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신부가 바뀌어있는 것입니다.
야곱은 분통이 터졌지만 라헬을 아내로 맞기 위해 다시 7년을 일합니다.
남들은 쉽게 하는 결혼도 야곱에겐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연봉4천으로 계산할 때 5억을 들여 아내를 얻은 셈이죠.
그런데 두 아내가 아이 낳기 경쟁을 하더니 나중엔 자기들 몸종들 까지 동원해서 야곱의 아이를 생산합니다.
결국 야곱은 원치도 않는 4명의 아내를 갖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각 각 어머니가 다른 12명의 자식들을 두게 됩니다.
그 가정이 얼마나 시끄러웠을지 상상이 가시죠?
그런데 야곱은 그 중에서 일찍 죽은 아내 라헬의 아들 요셉을 지독히 사랑합니다.
야곱이 요셉에게만 유독 채색 옷을 지어 입혔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사람들은 부모로부터 받은 쓰라린 상처를 안고 자기는 절대로 그렇게 살지 않겠다고 다짐합니다.
그러나 어느새 싫어하던 부모와 똑같은 행동을 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랍니다.
부모의 연약함과 죄성이 원치 않아도 대물림되는 것입니다.
부모의 죄의 저주가 가계를 타고 자식들에게 흐르기도 합니다.
믿음의 결단과 성령의 도우심으로만 끈질긴 죄와 저주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것입니다.
집안에 흐르는 자살과 우울과 정신병과 모든 저주가 예수님의 권세로 끝났음을 단호하게 선포하고 믿음과 소망의 새 가정을 시작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복드립니다. 아멘.
보십시오.
결국 야곱의 편애는 남은 열 명의 아들에게 자신이 입은 것과 똑같은 상처를 남깁니다.
그리고 상처받은 아들들은 아버지의 사랑을 홀로 받는 요셉을 죽일 마음까지 품게 됩니다.
저는 한 아이만을 키워서 잘 모르겠던 데 둘을 키우다 보면 더 마음 가는 자식이 있다고 하더군요.
그건 두 아이를 다 불행하게 만든다는 것이 성경의 결론입니다.
결국 형들은 요셉이 아버지 심부름으로 먼 목축지를 찾아오자 그를 붙잡아 노예로 팔아버립니다.
그리고 요셉의 채색옷을 벗겨 짐승의 피를 묻혀서 요셉이 죽었다고 아버지 야곱에게 가져다 줍니다.
야곱은 자기의 모든 것으로 사랑했던 아들 요셉의 죽음 앞에 통곡을 합니다.
이 세상의 어떤 고통이 자식을 앞세운 것에 비교 하겠습니까?
야곱의 생애가 자기 입으로 고백했듯이 정말 험악했다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음과 하나님의 약속 안에 붙어 있을 때 하나님의 회복과 축복이 반드시 온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본문26절에 야곱은 드디어 요셉이 살아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게다가 대 이집트왕국의 총리가 되었다고 하네요.
28절에 야곱이 이르되 족하도다 내 아들 요셉이 지금까지 살아 있으니 내가 죽기 전에 가서 그를 보리라 하니라
그의 기쁨이 얼마나 컸을지 상상이 되십니까?
하나님은 요셉을 살려두셨고 7년 대흉년에서 야곱의 온 가족을 살리려고 미리 애굽에서 살 길을 예비하게 하셨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당장 우리의 뜻대로 자녀가 되지 않았다고 너무 낙심하고 절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자녀의 앞 날을 온전히 맡기고 기도로 양육할 때 더 놀라운 하나님의 계획대로 이끌어 주실 것을 믿습니다.
야곱의 모진 인생에 하나님은 언제나 야곱과 함께 하셨고 구원해 주십니다.
그의 노후에 사랑하는 아들로부터 아름다운 공양을 받으며 편안히 눈을 감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후손들에게 선택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십니다.
우리 성도님들 가정에도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은혜와 인도가 함께 하시는 줄 믿습니다.
지금 우리 가정에 어떤 어려움과 환란이 있다하더라도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고 주님의 사랑을 믿을 때 반드시 야곱과 같은 축복으로 응답해 주시리라 확신합니다. 아멘.
다음은 야곱의 아들들의 고통과 문제들을 살펴보겠습니다.
그들은 당연히 아버지 야곱의 편애로 상처를 받으며 살았습니다.
자신의 어머니가 아버지로부터 사랑받지 못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이 아버지로부터 사랑받지 못하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부모를 원망하며 사랑받는 요셉을 시기하다 결국 아우를 죽일 마음을 먹죠.
그들이 평생 동생을 노예로 팔아먹은 양심의 가책을 갖고 살았다는 것을 창세기 42장21절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이 서로 말하되 우리가 아우의 일로 말미암아 범죄하였도다 그가 우리에게 애걸할 때에 그 마음의 괴로움을 보고도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이 괴로움이 우리에게 임하도다라며 후회하는 모습을 봅니다.
야곱의 아들들 중 그 누구도 요셉이 없어졌다고 행복해지지 못했습니다.
요셉이 없어졌다고 아버지가 자기를 사랑합니까?
천만에요.
야곱은 요셉을 죽게 한 것이 그 형들 탓으로 돌립니다.
42장36절을 보면 야곱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에게 내 자식들을 잃게 하도다 요셉도 없어졌고 시므온도 없어졌거늘 베냐민을 또 빼앗아 가고자 하니 이는 다 나를 해롭게 함이로다
오히려 평생 아버지로 부터 원망을 듣고 고통 받는 세월을 보냈던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 앞 뒤 성경을 읽어보면 야곱의 아들들이 그런 아버지를 끝까지 공경하는 모습을 봅니다.
사랑을 주지 않은 백 삼십살 된 아버지를 순종하며 아버지의 뜻을 따릅니다.
오늘 어버이 주일을 맞아 우리는 부모님을 공경하여 끝까지 순종하는 야곱의 아들들의 효심을 귀하게 봐야 할 줄로 믿습니다.
비록 우리 육신의 부모님이 우리 마음에 꼭 들게 우리를 키우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부모님을 공경하며 잘 모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도 결국 똑같이 연약하고 부족한 부모일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부모와 자식이 서로 사랑하고 허물을 덮어주며 하나님이 만들어 주신 가정을 행복하게 보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은 십계명에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힘써 지키라는 걸 보면 저절로 될 수 없는 것이 효도인가 봅니다.
네 자녀를 사랑하라 그런 계명은 없잖습니까?
인간의 죄악이 자신을 낳아주고 길러주신 부모님의 노후도 돌보지 않기 때문에 주신 계명인줄 믿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인간의 배은망덕함을 이미 경험하셨습니다.
어렸을 때는 아빠 엄마와 같이 살겠다고 귀찮게 달라 붙던 아이들이 사춘기를 겪으며 저만치 떨어져 나가는 것을 볼 때 허전함이 크죠.
제가 아는 분이 아들 둘을 키우는 데 어렸을 땐 서로 다투면서 부모님을 모시겠다더니 중고생이 되더니 완전 변심했다고 섭섭해하는 걸 보았습니다.
큰 애한테 물으니 동생이랑 살라고 하고 작은 애 한테 물으니 자기 색시한테 물어보고 결정하겠다고 하더랍니다.
얼마 전 TV에서 참 아름다운 효심을 보았습니다.
아버지는 15살 때 사고로 맹인이 되어 아무 것도 볼 수 없는 분입니다.
고아로 살아 온 아버지는 평범한 가정을 갖는 것이 소망이었습니다.
맹인 교회에서 앞을 못 보는 아내를 만나 결혼을 하고 꿈에 그리던 가정을 갖게 되었습니다.
아들도 낳았습니다.
그런데 그만 위암으로 아내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7개월 된 아들과 앞 못보는 아버지가 세상에 남겨졌습니다.
정상인 아버지도 갓난아이를 혼자 키우기 힘든 데 앞을 전혀 못 보는 아버지가 갓난 아이를 키우는 건 불가능입니다.
그런데 아버지의 사랑에는 불가능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눈물겨운 아버지의 사랑에 그들을 친히 돌보시고 인도해 주셨습니다.
아들은 어느새 고등학교3학년이 되었고 아침 풍경은 여느 집과 똑같습니다.
잠에 빠진 아들을 아버지가 깨우는 실랑이가 벌어지고 아버지가 차려놓은 아침 밥을 먹고 아들은 학교에 갑니다.
아버지는 보이지 않는 눈으로 빨래를 하고 청소를 하며 집안을 돌봅니다.
관절염으로 안마일을 그만 둔 아버지는 보조금으로 힘든 삶을 꾸립니다.
아들은 학교를 마치자 부지런히 피자 배달 아르바이트를 뜁니다.
아들이 주는 첫 용돈을 받았을 때 눈물이 났다고 아버지가 말합니다.
아들은 아버지에게 넓은 바다를 꼭 한번 보여드리고 싶었다고 앞도 보이지 않는 아버지를 모시고 바닷가로 여행을 갔습니다.
바닷가 식당에서 조개를 구워 아버지께 먹여드리며 아들은 행복하게 웃었습니다.
그 둘이 따로 였다면 그 행복이 존재했겠습니까?
우리 부모님은 자신의 입에 넣을 것을 아껴 우리를 먹이셨고 댓가 없는 헌신으로 우리를 키워주셨습니다.
에베소서6장1절은 말씀합니다.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오죽하면 하나님께서 축복을 약속하면서 까지 부모를 잘 공경하라고 하시겠습니까?
예수님은 육신의 부모를 공경하는 것과 하나님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이 서로 무관하지 않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아버지 야곱을 끝까지 공경하며 순종한 자식들에게 하나님은 은혜를 베푸십니다.
그들의 죄질이 악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들을 용서하시고 애굽에서 살길을 마련해 주십니다.
비록 동생을 팔아넘긴 패역한 형들이지만 하나님은 그들의 죄를 용서하시고 아버지 야곱과 함께 형통한 여생을 허락하십니다.
야곱은 그 아들 요셉을 편애했지만 하나님은 소외당한 나머지 아들도 똑같이 사랑하시고 대우하심을 볼 수 있습니다.
인간인 우리의 부모는 때로 자식들을 편애하여 상처를 줄지 모르지만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은 공평하십니다.
우리가 더 헌신하고 믿음이 크다고 비교해서 더 사랑하지 않으십니다.
조건이 있는 것은 인간의 사랑이지 하나님의 사랑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야곱과의 신실하신 언약을 지키시기 위해 축복은 커녕 저주 받아야 할 그의 자녀 까지 축복하시는 것을 봅니다.
우리 평생 좋을 때나 나쁠 때나 신실하게 하나님을 섬기고 의지하며 믿음의 삶을 살 때 우리의 자녀들의 삶도 하나님께서 책임지실 줄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요셉을 통한 하나님의 축복을 살펴보겠습니다.
요셉의 인생이야말로 가시밭 길이었습니다.
형들이 자기를 죽이려는 큰 충격을 경험합니다.
친어머니 라헬이 일찍 죽고 세 명의 새엄마 밑에서 자랐습니다.
유일하게 자신을 사랑해주던 아버지와 열일곱살에 억지로 헤어졌습니다.
채색옷을 입던 부잣집 아들에서 하루 아침에 남의 집 노예로 전락하는 쓰디 쓴 인생을 만납니다.
그러나 요셉의 생애의 고비마다 하나님의 손이 그를 도왔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그가 가는 모든 곳에서 요셉을 도우시고 그 손의 하는 모든 일을 하나님이 축복하셨다고 합니다.
고난의 인생 길에서 요셉은 오직 하나님을 바라보았고 하나님 앞에 인정받는 삶을 삽니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님이 그를 높혀 애굽의 총리가 되게 하십니다.
요셉은 자기를 팔았던 형제들을 용서하고 애굽으로 불러 기근에서 살려내고 민족을 이루게 합니다.
야곱의 가정을 완전히 회복시키고 축복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은 요셉을 통해서였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예수님의 예표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가정의 완전한 회복과 축복도 예수님으로부터 오는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본문을 보니 드디어 야곱의 가정을 회복시킬 요셉과의 재회가 다가왔습니다.
야곱은 애굽 이민생활을 앞두고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단을 쌓고 희생제사를 드렸다고 기록합니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오셔서 말씀하십니다.
3절에 보니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하나님이라 네 아버지의 하나님이니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거기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내가 너와 함께 애굽으로 내려가겠고 반드시 너를 인도하여 다시 올라올 것이며 요셉이 그의 손으로 네 눈을 감기리라 하셨더라
하나님이 함께 하실테니 두려워말라고 하십니다.
네가 가는 곳에 나도 가겠고 반드시 이스라엘을 인도하여 다시 가나안에 올라오게 한다고 약속하십니다.
하나님은 죽었던 아들을 만나러 가는 야곱의 마음을 안다고 격려하십니다.
하나님도 4백년 뒤 잃어버린 백성을 찾으러 애굽으로 가실 것입니다.
오늘 애굽으로 내려간 야곱의 자손 2백만 명을 이끌고 다시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하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이 약속은 더 뒷날 죄에 사로잡힌 우리를 구하러 영적 애굽으로 내려오셔서 십자가를 지시고 우리를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하신다는 약속인 줄 믿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가정은 우리 주 예수님 안에서 완벽하게 회복되었습니다.
갈라디아서3장26절은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이 땅에서도 주님을 섬기며 의지하고 살아가는 우리에게 아름답고 행복한 가정을 주시는 줄 믿습니다.
그리고 장차 천국에서 완전한 하나님의 나라로 우리를 이끄시고 영원히 하나님의 가족으로 살아가게 하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온 세상을 울린 아버지의 사랑으로 말씀을 맺겠습니다.
아버지의 이름은 딕이고 아들은 닉입니다.
아들은 태어날 때 탯줄이 목에 감기는 바람에 뇌성마비와 전신마비가 되었습니다.
아들은 혼자 움직일 수 도 없고 말 한마디 할 수 없는 중증 장애인이 되었습니다.
병원에서는 식물인간이 될 거라며 아들을 국가기관에 맡기고 포기하고 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 아들을 집으로 데려와 키우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의 아들을 위한 사랑이 시작된 것이죠.
아들이 12살 되던 때 특수 컴퓨터 장치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손을 쓸 수 없었던 아들은 머리를 움직여 컴퓨터 자판을 두드렸고 아들과의 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아들은 달리고 싶다 라고 썼습니다.
지금까지 달리기 한 번 제대로 한 적 없었던 아버지는 아들을 위해 8킬로 자선마라톤 대회에 나가기로 합니다.
그리고 휠체어에 태운 아들을 밀면서 달려 마라톤을 완주했습니다.
완주 후 아들은 이렇게 메세지를 썼습니다.
" 아빠, 달리니깐 태어나서 처음으로 제 몸의 장애가 사라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 말에 아버지는 직장을 접고 장애 아들을 위해 계속 달리겠다고 결심합니다.
아버지와 아들은 각종 마라톤에서 함께 달렸습니다.
1982년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여 완주에 성공했습니다.
아들은 철인 3종경기에 출연하고 싶다고 썼습니다.
아버지는 수영을 못했고 여섯 살 때 타 본 자전거가 전부였습니다.
그러나 이미 육십이 다 된 아버지는 아들을 위해 물로 뛰어들었습니다.
그리고 몇 년 뒤 그들은 가장 강인한 철인들 틈에 섰습니다.
아버지는 아들 릭을 고무보트에 태운 채 허리에 끈을 달고 3.9Km 바다를 헤엄쳤습니다.
수영이 끝난 뒤 아들을 앉고 뛰어와 싸이클 앞에 만든 의자에 앉히고 얼굴을 만져 주는 아버지의 모습에 많은 사람들이 울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태우고 사이클로 80.2Km의 용암지대를 달렸습니다.
그리고 42킬로 마라톤 코스를 아들이 탄 휠체어를 밀며 뛰었습니다.
아들을 위한 아버지의 눈물겨운 사랑이었습니다.
마지막 테이프를 향해 달려 나가는 그들의 모습에 관중들은 오랜 기다림으로 지켜 보다 모두 기립 박수를 치며 눈물로 환호했습니다.
이들은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서 24년 연속 완주했습니다.
달리기와 자전거로 6,000Km 미국 대륙을 횡단 했습니다.
철인 3종 경기를 6번 완주를 했습니다.
아들이 하는 일이라곤 아버지 허리에 묶인 고무줄에 매달려 보트에 누워있거나 아버지가 밀어주는 휠체어에 앉아 있는 것이 전부입니다.
휠체어를 밀고 달리는 65세 늙은 아버지의 얼굴과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근육을 가진 몸을 보니 오히려 울컥 눈물이 났습니다.
아들은 아버지가 없으면 할 수 없었다고 말합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아니었다면 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아들은 마지막으로 빌립보서4장13절의 말씀을 썼습니다.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능력 있게 하시려고 주님의 모든 것을 주신 줄 믿습니다.
우리 가정이 하루 하루 평안하고 행복하기를 주님은 바라십니다.
우리 가정의 모든 문제들을 주님께 가져가 기도할 때 하나님의 평강이 함께 하시고 우리의 짐을 능히 감당하게 해주실 줄 믿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자식을 위해서라면 주름진 손에 일거리를 놓지 않으시는 우리 부모님들을 끝까지 편안하게 섬기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드립니다.
2011년 5월9일 주일설교 남수연목사
'가정의 달 설교 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브라함과 사라(창세기12장7절-13절) (0) | 2017.05.10 |
---|---|
다윗의 효성 (사무엘상22장1절-5절) (0) | 2017.05.10 |
다른 세대 (사사기2장6절-10절) (0) | 2017.05.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