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추수감사절 예배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벌써 한해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지난 일년 동안 씨 뿌리고 땀흘려 작으나마 소득을 얻게 하시고 큰 과오 없이 지낸 것을 생각하니 참 감사합니다.
또 애타게 고대했던 기도제목들도 많이 응답받으셨죠?
무엇보다 우리 심령에 매주 예배를 통해 촉촉한 은혜의 비를 내려주셔서 믿음을 잘 가꾸어 온 것을 감사드립니다.
지난 일년 기쁘고 행복했던 시간이 많았습니까, 불안하고 걱정했던 때가 더 많았습니까?
힘든 때가 훨씬 많았을 것입니다.
아마 믿음이 없었다면 더 많이 염려하고, 속상해하고, 불행하게 지낸 시간들이 많았을 것이 확실합니다.
힘든 가운데도 믿음으로 마음을 추스리고 실망스러운 일 중에도 감사하려는 마음으로 위기도 넘긴 줄 믿습니다.
우리가 넘어지지 않게 붙들어 주시고 위로와 격려로 인도하신 하나님아버지께서 앞으로도 지나온 날들처럼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오늘 감사절 본문을 왜 욥의 고난과 감사로 선택했는지 아시겠죠?
우리 삶이 즐거운 일만 일어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감사절 예배를 드리는 마음 한구석에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답답한 일들이 남아있다는 것이죠.
성경은 인생을 말할 때 행복에서 시작하지 않습니다.
욥기 5장 7 인생은 고난을 위하여 났나니 불티가 위로 날음 같으니라
그야말로 언제 내 머리에 불똥이 튈지 모르는 게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숱한 눈물과 고통이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떠나서 죄악 된 본성에 끌려 다니는 인생의 결과입니다.
가을 바람에 낙엽들이 정처없이 몰려다니듯 사람들이 그냥 죄에 이끌려 해답을 모르는 인생을 고생하며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보니 이제 인생의 목적이 너무 뚜렷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가는 길은 여전히 거칠고, 모든 사람이 겪는 고난을 다 피해갈 수는 없습니다.
다만 우리에게 이생의 길을 보호하시고 천국까지 이르게 하시는 신실하신 영의 아버지가 계십니다.
이 은혜로 고난을 넉넉히 헤쳐나가고 어떤 고난도 결코 우리를 불행하게 만들지 못합니다.
오늘 욥의 고난과 감사를 배우며 여전히 어려운 일이 산재한 생활 속에서도 더욱 감사하며 승리하는 모두가 되길 축복드립니다.
1. 먼저 욥의 믿음과 고난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욥이 어떤 사람인지 하나님께서 7절에서 이렇게 평가하십니다.
네가 내 종 욥을 주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는 세상에 없느니라
욥이 세상에 둘도 없는 의로운 사람이라는 것이 하나님의 평가입니다.
그리고 2절과 3절에 욥의 단란한 가족과 그가 소유한 재산이 얼마나 많은지가 열거되어 있습니다.
욥의 이 모든 부귀와 영화가 어디서 왔는지 10절을 보면 알 수 있죠.
주께서 그와 그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울타리로 두르심 때문이 아니니이까 주께서 그의 손으로 하는 바를 복되게 하사 그의 소유물이 땅에 넘치게 하셨음이니이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딱 여기까지입니다.
우리가 듣기 원하는 것은 '그 사람이 그렇게 교회를 열심히 잘 다니고 예수님을 잘 믿더니 하는 일마다 다 잘 되었다더라'라는 이야기입니다.
의인이 고난 받는 이야기는 받아들이기 참 힘이 들죠.
우리가 믿는 것에 대한 보장이 흔들리는 것 같아 불안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은 이것이 다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욥의 형편이 급반전되어 끝도 없이 추락하는 모습이 14절부터 19절까지 나옵니다.
도적이 몰려와 모든 재산을 약탈했고 태풍에 집이 무너져 한 집에서 연회를 즐기던 열자식이 한자리에서 죽습니다.
동방에서 가장 훌륭했고 최고의 성공을 거두었던 당대의 의인 욥이 하루아침에 추락하여 비참하게 된 것은 우리를 혼란스럽게 합니다.
게다가 욥의 고난은 한층 더 이상합니다.
욥의 고난의 배경엔 하나님과 사탄이 마치 욥의 믿음을 두고 내기를 벌이는 것 같이 전개되기 때문입니다.
욥의 고난이 이상하고 이해하기 어렵듯이 우리 앞에 닥치는 고난의 의미 역시 해석하기 어렵습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다 이해해야 된다는 생각은 어리석은 자만심입니다.
다만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과 인도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게 치밀하십니다.
우리 앞에 고난을 통해서도 하나님은 우리를 놀라운 믿음과 영적 성장으로 이끄십니다.
욥의 어마어마한 고난을 생각하며 미리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성장을 위해 꼭 필요한 문제들을 고르고 고르십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셔야 우리 앞에 문제도 발생하는 것입니다.
지금 내 주변의 문제들이 절대로 우연히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성도들에게 허락하시는 고난은 단 하가지, 오직 유익을 위해서라는 것을 믿으셔야 합니다.
그래야 고난을 통해서 우리가 무익한 고생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유익을 취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욥은 이 고난을 통해 고난당하기 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영적 도약을 하게 됩니다.
욥기 19장 25절을 보면 이렇게 욥이 말합니다.
내가 알기에는 나의 구속자가 살아 계시니 후일에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
욥이 메시야를 대망하는 믿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고난을 통해 욥이 깨달은 것은 아무리 흠이 없이 하나님을 섬겼지만 자기의 의로는 결코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다는 자각입니다.
나의 죄를 대속하실 구속자가 필요하다는 믿음이 구원받는 믿음입니다.
또 욥이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듣기만 하던 믿음에서 눈으로 하나님을 뵙는 실제적인 믿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바로 고난을 통해서입니다.
만일 욥이 그런 처절한 고난을 당하지 않았다면, 그 대신 하나님과의 이런 영광스런 만남과 깨달음이 없었겠죠.
욥에게 고난 전으로 돌아가 선택하라 한다면 둘 중에 무엇을 선택했을까요?
10살이 된 아들을 네 번이나 심장수술을 받게 했던 한 어머니가 간증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자식의 병으로 인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교회에 나왔고 예수님을 만났다고 합니다.
차분한 간증 뒤에 그 분이 이렇게 말씀하더군요.
만일 아들이 두 살 때 심장병이란 진단을 처음 받던 그 날로 돌아간다면,
아들의 심장병도 없었고, 대신 예수님도 만나지 못했다면 어느 쪽을 택하겠냐고 누가 묻는다면 주저 없이 지금 이 상황을 선택하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안 이상 절대 주님을 모르던 옛날로 돌아갈 수는 없다고 단호하게 말하더군요.
이것이 택하신 성도들에게 허락하신 고난의 신비입니다.
우리의 고난이 욥처럼 이상하고 이해할 수 없어도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 우리를 부르시고 아름답게 성숙시키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대부분 가시 같은 환경이 있어서 교회에 나오게 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C. S 루이스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고난은 귀머거리에게 하나님을 알게 하는 신비한 확성기다”.
성경은 분명히 고난 받는 것이 유익이라고 말씀합니다.
강도 곧게 흐르면 주변에 그 혜택을 받는 땅이 적어진다고 하죠.
구불 구불 흘러야 더 넓은 땅이 비옥해 지고 생명을 얻는 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정 하나님의 자녀이면 절대로 고난으로 망하지 않습니다.
고난으로 망한 성도는 없습니다.
설령 그 과정이 힘들고 안쓰러워 보여도 어려움을 감사로 잘 이겨낸 성도들은 누구나 그 고난에 대해 긍정합니다.
예수님 안에서 믿음으로 역경을 이겨낸 사람들이 쓸데없는 고생이였다고 말하는 것 못 들어 보았습니다.
김병0 목사가 전도사 시절 자고 나면 방문 앞에 걸레가 꽝꽝 어는 웃풍 센 집에 생쥐와 한방에서 살았던 이야기를 자주합니다.
세끼 먹는 게 참 힘들었다고 합니다.
아침에 자고 일어나 방문을 열면 누군가가 가져다 놓은 신문지에 쌓인 동태 한 마리가 댓돌에 놓여 있을 때 그 기쁨은 잘 먹고 사는 지금과 비교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 고생했던 시기에 가장 많이 배웠다고 말합니다.
우리 앞의 크고 작은 시련을 통해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더 견고해지고 구원을 이루어가는 것입니다.
지금 어려움 가운데 있다 해도 반드시 옛말하며 살 때가 올 것이기에 감사하시길 축원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고난 중에 도우시고 환난에서 건져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시편 91장 15 저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응답하리라 저희 환난 때에 내 가 저와 함께 하여 저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이 말씀을 믿고 감사하고 기도하는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고 울타리로 둘러 보호해 주실 줄 믿습니다.
현재의 고난은 장차 올 영광스러운 구원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을 믿으시고 고난 중에도 감사하는 모두가 되길 축복드립니다.
2. 다음 욥의 감사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욥이 혼절할 상황에서 어떤 모습을 보였는지가 20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예배하였다고 합니다.
짧게 한 절로 기록되어 있지만 여기에 욥의 처절한 심정과 감사까지의 과정이 다 담겨 있습니다.
열 명의 자식을 몽땅 잃은 마음이 찢어지지 않겠습니까?
더 이상 자식을 품에 안아볼 수 없다는 것이 얼마나 큰 고통입니까?
이런 비극 앞에 우리는 눈물을 흘리고 가슴을 칠 수 밖에 없는 것이죠.
예수님께서도 나사로의 죽음에 슬피우는 가족을 보며 함께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그러나 머리털을 밀었다는 것은 단지 비통한 마음만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슬픔 속에 모든 걸 맡기지 않고 내 의지를 추스르겠다는 결연한 행동입니다.
우리가 감정에만 나를 맡기면 절대 상황을 바로 볼 수도, 감사할 수도 없습니다.
감정은 보채는 아이처럼 계속 자기만 돌보라고 우리를 조릅니다.
감정에 사로잡혀 울다보면 울고 있는 내가 불쌍해서 또 울고 한없는 연민에 빠지게 되는 것이죠.
욥은 머리를 밀고 하나님을 찬송하고 예배하기로 의지를 다해 결심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일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되는 것은 다 이기적인 죄악이라고 보면 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저절로 마음에서 우러나오기를 기다린다면 영원히 신실한 성도가 될 수 없습니다.
욥은 머리를 밀고 하나님께 대한 자신의 신뢰를 믿음으로 지키기 위해 슬픔을 이기고 감사로 예배를 드립니다.
이런 상황에서 욥이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찬송하며 예배했다는 것은 그 순간에 즉흥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욥기엔 그가 평소에 모든 일을 살피며 항상 속죄를 위해 제사를 드렸던 것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배하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선하심을 더욱 깨닫게 됩니다.
모든 상황에서 감사하려면 나의 삶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이 좋으신 분이란 것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해 믿음이 부족한 것이 참 안타깝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예수님의 진실하신 인격과 성부하나님의 사랑과 위대하심을 매일 알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매일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자신을 계시해 주십니다.
하나님을 잘 알기위해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에 반드시 은혜를 주십니다.
정말 어느 날은 성경을 볼 때 성경의 활자가 음성처럼 느껴지는 신비한 체험도 하게 됩니다.
말씀이 성령님 안에서 살아있고 우리를 직접 가르치신다는 것입니다.
때로 하나님아버지의 사랑이 마음에 느껴지고 눈물이 핑 도는 때도 있습니다.
이런 체험으로 하나님을 알아 가면 점점 세상에 믿을 분은 하나님 밖에 없구나 하는 생각이 굳어지게 되는 것이죠.
그러면 하늘이 무너지는 곤경에 처해도 철저히 하나님을 신뢰하는 욥과 같은 고백을 하게 됩니다.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은즉 또한 알몸으로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오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을지니이다.
우리가 빈손으로 왔다 아무 것도 가지지 못하고 다시 창조주께로 갈 것입니다.
이 땅에 사는 동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하나님이 주시기도 하고, 내 것 인줄 알았던 것을 다시 취하기도 하십니다.
하나님이 줬다 뺐었다 변덕부리시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은 선하십니다.
내 것이 다 하나님에게서 왔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잃을 때도 분명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것을 믿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언제고 이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하실 수도 있다는 것을 확신하기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온 길을 돌아보면 점점 번영하던 시절이 있었죠.
반지하에서 신혼을 시작했는데 몇 년이 지나면 해가 드는 지상으로 이사를 가게 됩니다.
좀 더 세월이 지나면 자그마한 집이라도 한칸 마련하고 아이들도 잘 커가는 것을 보며 인생의 황금기를 만납니다.
그러나 우리 나이 정도가 되면 가졌던 자산도 점점 줄어듭니다.
자식들 결혼시키려면 집도 팔고 늘그막에 다시 작은 전셋집으로 내려앉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저 역시 자산으로 따지면 다른 사람들이나 마찬가지로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이너스에서 시작한 인생을 풍성하게 축복하셨던 하나님께서 언제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서 점점 창대케 하지 못하실 이유가 어디 있겠냐는 믿음이 있습니다.
오늘 욥의 결말을 가르쳐 드릴까요?
여호와께서 욥의 말년에 욥에게 처음보다 더 복을 주시니 그가 양 만 사천과 낙타 육천과 소 천 겨리와 암나귀 천을 두었고 또 아들 일곱과 딸 셋을 두었으며
욥이 말년으로 갈수록 더욱 복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는 어떤 상황도 끝난 것이 아니기에 지금 처지를 처량하게 생각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지금 욥처럼 연단 중에 있고 답답한 상황 속에 있어도 감사한 마음으로 좋으신 하나님을 믿고 나가면 감사했던 기도대로 응답하실 줄 믿습니다.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이 말씀이 순복음교회 전유물은 아닙니다.
선하신 하나님이 내 인생을 주관하신다는 것을 믿고 좋은 결말을 기대하며 감사하고 기도할 때 우리를 축복해 주시고 영육간에 날로 강성케 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 다음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범사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특별한 고난 중에서만이 아닌 우리의 일상에서도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감사할 일보다 불평할 일이 더 많이 일어나는 삶에서 왜 모든 일을 감사하라고 하시겠습니까?
기쁜 일, 즐거운 일만 감사한다면 거의 매일 불만과 원망과 걱정 속에서 살 수 밖에 없지 않습니까?
본문 22절은 말씀합니다.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
환경을 불평하고 원망하는 것은 우리를 인도하시는 좋으신 하나님을 불신하는 것이고 죄입니다.
불평하면 점점 더 많은 불만과 죄들이 우리 마음에서 솟아나옵니다.
어떨 때 보면 우리 마음이 악의 제조공장 같습니다.
감사로 우리 마음을 채우면 나쁜 것들이 나올 자리가 없습니다.
감사는 좋은 것을 불러옵니다.
감사하는 마음이 인생도 바꾸고 사람도 바꿉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만델라대통령은 인종차별과 민주화를 위해 싸웠지만 반역죄로 종신형을 받았습니다.
그가 27년만에 극적으로 석방되었을 때 교도소 앞을 가득 메운 사람들과 기자들은 구부정하고 진액이 다 빠진 70세의 노인 만델라가 나타날 것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만델라는 너무나 당당하고 활기찬 건강한 모습으로 교도소를 걸어 나왔습니다.
예상 밖의 모습에 기자들이 5년만 감옥생활을 해도 폐인이 되는 데 어떻게 그런 건강을 유지할 수 있었냐고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만델라대통령의 대답은 매일 하나님께 감사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하늘을 보고 감사하고, 땅을 보고 감사하고, 물을 마셔도 감사하고, 강제노동을 나가서도 감사하고.
그러다 보니 감옥에서의 긴 세월을 이렇게 건강하게 이겨낼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석방된 만델라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첫 흑인대통령이 되었고 노벨평화상을 타는 영광을 누렸습니다.
불의한 정권에 대항하고 좋은 결말을 본 사람이 몇이나 됩니까?
27년을 감옥에서 감사한 그에게 하나님이 영광스런 결말을 주신 것입니다.
27년 감옥생활을 한 사람이 감사한다면, 그리고 오늘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어버린 욥이 감사한다면, 우리도 감사하며 기쁘게 살 수 있지 않겠습니까?
감사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좋은 일이 있을 때 하나님께 감사를 잘 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예수님께 치료를 받은 나병환자가 10명이었지만 돌아와서 예수님께 감사를 드린 사람이 1명 밖에 없었습니다.
우리가 10개 받았으면 1번이나 겨우 감사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본래 감사할 줄 모른다는 것이죠.
내게 당연히 있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없어지는 순간 비로서 우리는 그것이 있을 때 감사하지 않았던 것을 깨닫게 됩니다.
때때로 고난을 통해 우리가 아끼던 것을 거둬 가시고 우리의 안락함이 깨지도록 두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지금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셀 수 없이 많은 것들을 감사한 마음으로 제대로 누리라는 말씀인줄 믿습니다.
건강을 놓칠 때 별로 감사하게 생각지 않았던 내 건강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되지 않습니까?
병은 천 가지나 건강은 한 가지밖에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천분의 일의 확률로 우리가 지금 건강을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매일 감사하며 이 건강을 누리시기를 축복드립니다.
정말 내게 주어진 것들을 생각하고 감사한다면 생각 외로 지금 당장도 행복하고 즐겁게 누릴 것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욥처럼 모든 것을 잃었을 때 욥의 신앙을 흉내라도 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지금 모든 것이 내게 있을 때 감사할 수는 있지 않겠습니까?
도저히 기분이 상하고 울적해서 감사할 마음이 안들 때가 많죠.
언제나 끝날지 모르는 고생도 짜증나고, 끝없이 돌봐야 할 사람들 틈에서, 혹은 나를 환대하지 않는 사람들 틈에 둘러싸여 사는 것도 지치기만 합니다.
그러나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에겐 점점 더 좋은 일이 일어날 줄 믿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토크쇼의 여왕 오프라 윈프리의 감사일기가 유명하죠.
어린 시절 학대당하고 미혼모가 되는 경험을 한 비참한 인생이지만 매일 하나님께 감사할 내용을 찾아 일기로 적었다고 합니다.
거창한 것이 아니라 ‘오늘 하루도 거뜬히 일어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런 소소한 일상의 감사입니다.
이런 정도라면 우리에게도 감사할 일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범사에 감사하는 오프라윈프리의 습관에서 형성된 인격이 누구를 만나도 따뜻하게 상대를 이해할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오프라윈프리의 프로에 마음을 열고 뜨겁게 지지해주었기에 굉장한 방송인이 된 것입니다.
지난 4년 동안 미국 유명인사 수입 순위 1위를 지켰습니다.
이런 것이 바로 감사의 기적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세계는 이렇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과 이웃을 대할 때 창조하신 모든 축복과 행복이 막히지 않고 흐르는 것입니다.
포스코에서는 직장 내에서 동료들이 함께 행복해지는 것을 ‘감사’에서 찾고 있습니다.
감사의 힘이 어떤지를 체험하는 실험들을 제일 먼저 한다고 합니다.
양파 두 개씩을 준비해서 매일 양파에게 말을 거는 것입니다.
한 쪽편 양파에겐 매일 ‘고맙다’는 메시지를 들려주고 다른 쪽 편엔 미워, 나빠 같은 부정적인 말을 걸었다고 합니다.
이런 실험 많이들 하죠?
결과는 신기하게 감사하는 메시지를 들은 양파는 싹이 파릇하고 예쁘게 자라지만 부정적 메시지를 들은 양파는 싹이 거의 나지 않고 썩어간다는 것입니다.
우리 가정에서 우리가 고맙다는 말을 하고 사랑하고 격려하는 말을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겠습니까?
가족의 심령에 용기를 주고 지혜와 능력을 상승시키고 영혼이 행복감을 누리게 되겠지요.
오늘 제가 추수감사절 예배를 준비하며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편지를 올해도 쓸까 생각했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가족들에게 감사하는 편지도 필요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입니다.
두 가지를 다 하긴 시간이 부족하고 가족을 위해 편지지와 봉투를 준비해야 할지를 생각하던 중 재미있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며칠 전 학교 뜰에서 잠시 바람을 쐬고 있는 데 아는 전도사님이 손에 편지지와 편지봉투를 들고 다가오는 것입니다.
제 눈이 번쩍 뜨이더군요.
예사롭지 않은 상황인 것 아시겠죠
그러더니 ‘목사님, 이것 필요하지 않으세요? 가져가세요’ 그러는 것입니다.
제가 얼른 이걸 받으며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나에게 감사하는 것도 기쁘지만 너희가 서로 감사하는 것이 또 내가 원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 우리가 살지만 가족의 사랑이 없다면 매일이 참 삭막하고 쓸쓸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아버지를 우리가 섬기며 우리 예수님을 머리로 모시고 가족과 성도들이 성령 안에서 서로 사랑하고 감사하며 의지하고 위로받고 격려하며 함께 천국을 향해 가는 것입니다.
그 전도사를 통해 주님께서 주신 편지지와 편지봉투를 지금 나눠드리겠습니다.
편지지를 받으시고 부부사이에는 우선 서로에게 쓰고, 혹은 부모나 자식에게 감사하는 편지를 쓰겠습니다.우선 부부사이는 서로에게 감사편지를 씁니다.
오프라 윈프리처럼 배우자나 가족에 대해 다섯가지 감사를 생각해서 구체적으로 5번까지 내용을 적고 거기에 대한 감사를 꼭 표현하십시오.
그리고 가족들을 위해 감사하며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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