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 주일예배를 하나님께 드리는 성도님들께 올 한해에도 영혼이 잘 되고 삶이 형통한 은혜가 함께 하시길 축복드립니다.
새해 벽두에 들려오는 뉴스들은 올해에 대한 기대감을 불러일으키는 것 같습니다.
얼어붙은 남북문제에 훈풍을 예감하게 되고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치도 높은 것 같습니다.
그렇다 해도 국가적으로 헤쳐나갈 난제들은 만만치 않습니다.
사실 개인적인 새해 관심은 월급인상이나 물가상승 같은 문제들이 더 피부에 와 닿죠.
요즘 최저임금도 오르고 여러 가지 복지 수당 같은 것도 오른다는 데 저는 해당되는 게 하나도 없습니다.
이럴 때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죠.
새해부터 집값이 여전히 오르고 있으니 집 가진 사람들은 좋겠지만 무주택자들은 반대로 주거비용 때문에 더 힘들어지겠죠.
이해가 다른 집단 속에서 모두를 만족시켜 줄 세상의 방법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올해도 세상이 우리를 만족시켜주길 기대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행복과 만족의 근원을 하나님 안에서 찾으며 열심히 일한 만큼 보답받는 한해가 되시길 축복드립니다.
오늘 편지는 바울사도가 로마로 추정되는 감옥에서 골로새교인들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감옥에 갇힌다는 것이 어떤 생활인지 우리는 상상이 안되죠.
삼성 부회장의 구치소 생활이 벌써 열달이더군요.
불편한 환경은 말할 것 없지만, 일 많이 하던 사람이 얼마나 답답할까요?
또 사람이 범법자 취급을 당하는 것 자체가 큰 수치잖아요.
바울사도가 감옥에 갇혀 범죄자 취급을 당한 것은 인권이라는 단어도 없던 그 때 정말 힘겨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도 바울사도는 끊임없이 교회에 대한 짐을 지고 있음이 편지에서 전해집니다.
편지에서 바울의 근심이 될 중대한 문제가 골로새교회에 발생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동안 잘 성장하고 있는 골로새교회에 믿음의 근간을 흔드는 이단사상들이 스며들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천년 교회역사를 보면 진리는 항상 공격을 당해 왔습니다.
우리 믿음이 잘 성장해 은혜를 누리며 하나님나라에 기여하는 것을 결사적으로 방해하는 악한 인격체가 있다는 것에 올해도 경각심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2018년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건강도 주시고, 필요한 물질도 주시고, 가정과 일도 주셨고 더 풍성히 주실 것입니다.
이 모든 선물들을 행복하게 누리고 신앙 안에서 보람 있게 사는 것은 우리의 소망이자 하나님의 뜻이기도 합니다.
이런 삶의 성공여부는 수입이 얼마나 더 늘어나냐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믿음을 흔드는 외부의 공격과 내부의 옛사람을 계속 견제하며 예수님 안에서 잘 사느냐에 달려있습니다.
그 방법을 바울사도를 통해 알려주신 말씀에서 세밀하게 찾아보려고 합니다.
그것을 새해 생활의 기준으로 삼고 지켜나간다면 올해도 모든 일들이 형통하리라 믿습니다.
6절 말씀입니다.
1.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라
올해 우리가 신앙의 목표로 삼은 구절입니다.
예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시고 그 안에서 행하자는 것이죠.
예수님을 주로 받는 것과 그 안에서 행하라는 두 가지 요구가 담겨 있습니다.
1)먼저 예수님을 주로 받아야 한다는 면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예수님을 주로 받는 것은 불신자와 신자를 구분하는 시금석입니다.
성도들의 신앙에 있어서 너무나 중요한 체크포인트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이 주가 되시는 의미를 분명히 짚고 넘어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먼저 예수님을 창조주로 받아들이는 것을 말합니다.
나의 창조주이십니다.
모든 피조물은 창조주의 목적에 부합되게 존재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우주만물은 다 하나님의 목적 안에서 존재의 아름다움을 빛내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다.
이 땅에선 유일하게 한 피조물 인간만이 그걸 벗어난 것입니다.
만물을 보면 알 수 있듯이 하나님이 빚어낸 그 상태가 최고의 축복입니다.
인간만이 그것을 벗어나 너무 나가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을 벗어나면 내 존재가 더 나아질 것이라는 오판이 오늘날의 죄인을, 이 세상을 이렇게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세상사람들이 지금도 똑같은 생각입니다.
하나님이 없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해서 안 믿잖아요?
사람들이 철저히 속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피조물에 복과 사랑을 끊임없이 부어주시는 선하신 창조주십니다.
하나님의 성품에서 무한하게 흘러나오는 사랑과 인애로 인해 모든 피조세계가 복을 받는 것입니다.
그것을 거부하고 타락한 죄 앞에서 사랑은 공의로 바뀌고 심판이 임합니다.
우리는 이런 상황에 놓여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을 창조주로 믿을 뿐 아니라 또 속죄의 주로 믿어야 합니다.
이미 우리 위에 놓여 진 하나님의 진노와 공의를 예수님께서 대신 담당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공의로부터 우리를 핵우산처럼 감싸고 계신 것이죠.
그것을 성경은 그리스도의 의로 옷 입었다고 표현합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받아들일 때 우리는 진노의 대상이 아니라 예전처럼 하나님의 사랑의 공급을 받고 천국의 기업을 얻을 상속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을 주님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얼마나 중대하고 시급한 일입니까?
이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 안타까운 것입니다.
이 놀라운 축복의 영적 원리를 잘 모르기에 예수님을 주님으로 받기에 주저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주로 받은 모든 성도님들께 올해도 하나님은 선한 계획을 갖고 좋은 것을 아낌없이 부어주시리라 믿습니다.
아직도 우리 가운데 이런 주저함이 있다면 올해는 꼭 예수님을 주님으로 받아들이는 축복이 있으시길 바랍니다.
2)이렇게 예수님을 주로 받았다면 그 안에서 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받았다면 당연히 주인의 요구에 맞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주님이 된 것은 일부분에 해당되는 것도 아니고, 명목상 그렇다는 것도 아닙니다.
모든 실생활이 예수님 때문에 실제로 바뀌는 것을 뜻합니다.
사람들은 종교에 있어서는 모호하고 현실과 동떨어질수록 좋다고 합니다.
최근 인기몰이 중인 ‘신과 함께’라는 영화가 있죠.
기독교에서 지옥 이야기를 하면 그렇게 싫어하면서 이런 지옥이야기에는 감동을 받았다는 심리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영화 속의 지옥은 비현실이고 판타지라서 그런 것입니다.
그런 지옥은 착하게 살라고 인간이 꾸며 낸 것이라는 안도감을 주잖아요?
기독교에선 안 믿으면 거기 갈 사람이 바로 너라고 꼭 집어서 기분 나쁘잖아요?
저는 아직 영화를 안 보아서 정확히 평할 수는 없지만 이 영화에 대해 이렇게 생각합니다.
사람들의 마음엔 종교의 자리가 있기에 하나님과 내세 같은 내용은 거부하면서도 어쩔수 없이 끌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다행히 영화에 나오는 지옥도 신도 비현실이라는 것입니다.
영화가 완전 지어낸 이야기잖아요?
그러니까 이런 영화를 보며 신과 내세, 지옥은 판타지고 실존하는 것은 현재 삶 뿐이라는 안도감을 역설적으로 느끼게 되는 것이죠.
그러면서 부모님께 효도하고, 거짓말하지 말고, 좀 착하게 살아야겠다는 바램을 안고 나오는 나 자신이 꽤 순수한 것 같은 착각까지 덤으로 받는 것입니다.
종교가 신비하고 애매하고 모호한 말을 해댈수록 사람들은 좋아합니다.
적어도 자신의 현실을 꼬집어서 지적하고 고치려 들지 않기 때문이죠.
그런 면에서 우리의 믿음은 종교가 아닙니다.
우리 믿음은 현실이고 실제이고 우리를 고칩니다.
우리 믿음은 먼 내세에만 관련된 게 아니라 현실에서도 작동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라는 의미입니다.
2.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예수님 안에서 우리가 잘 행할 수가 있을지 7절에서 몇가지를 찾아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1) 먼저 교훈을 받아야 합니다.
성경을 통해 매일 교훈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성경 안에는 견고한 믿음을 위한 신앙의 지식과 원리들이 담겨 있습니다.
기독교역사를 보면 성경에서 계시하신대로 바르게 믿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알 수 있습니다.
대다수가 진리에서 벗어납니다.
중세시대 기독교의 주류였던 카톨릭이 뭉텅 빗나갔잖아요?
모든 시대에 그런 일들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지금 한국교회도 많이 벗어나 있다는 게 양심적인 비판입니다.
바울사도 역시 골로새교인들이 이단 사상에 영향으로 진리에서 벗어날까 염려해 단도리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마음만 먹으면 사기칠 수도 있고 진실을 뒤바꿔 놓을 수도 있습니다.
인간이 얼마나 악을 행하는 데 천부적인 소질이 있는지 모르는 분은 없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신앙을 전수하는 사람들도 얼마든지 그럴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요즘 남아프리카 교계의 인기명사인 음브로라는 목사의 허무맹랑한 천국체험 간증으로 아프리카 대륙이 휘청거릴 지경이라고 합니다.
이 목사는 심지어 천국에 가봤더니 예수님이 아내가 있더라는 황당한 주장까지 했다고 합니다.
또 삼성폰으로 찍었다는 천국의 모습을 보여준다며 돈을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인간이 자기 이익을 위해 하나님을 이용해 이런 사기도 칩니다.
이런 터무니없는 간증에 왜 수많은 아프리카교인들이 현혹되고 휘말립니까?
지식이 없어서입니다.
거듭나지 않는 신앙, 자라지 않고 침체 된 신앙, 균형을 잃은 잘못된 신앙 의 원인은 일차적으로 성경과 하나님에 대한 지식 부족에서 옵니다.
내가 성경을 많이 모른다면 믿음도 그만큼 밖에 없는 것입니다.
로이드존스목사님이 하신 말씀 중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이분이 많은 사람들을 경험해 보니 사람의 믿음이 누구한테 어떤 내용을 배웠느냐에 따라 결정되더라는 것입니다.
철저하게 성경이 가르치는 대로 올바르게 설교하는 목회자에게 배운 사람들은 진리를 잘 이해하고, 아름답게 균형잡힌 성도로 성장하더라는 것입니다.
인간의 경험이나 신비한 체험, 자유주의적 성경관 같은 것에 중점을 두고 있는 교회는 대부분 진리에 서지 못하고 치우친다고 합니다.
올해 우리 성도님들도 성경을 부지런히 읽고 배우시길 바랍니다.
또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는 저도 성령님의 인도대로 말씀을 연구하고 깨달아 온전한 진리를 전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기도해주시길 바랍니다.
그런데, 교훈을 받으라는 말씀은 이런 진리들을 단지 배우라는 것만이 아닙니다.
교훈을 받는다는 것은 당연히 받아서 행하고 따른다는 것을 포함합니다.
받은 교훈대로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법은 두가지에서 나옵니다.
하나는 세상에서 배운대로 이고 또 하나는 본성대로입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가 다 타락한 본성에서 나온 것이잖아요?
그래서 그 법대로 살면 자기 자신도 불행하고 하나님과 타인에게도 고통을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행하는 것은 완전히 색다른 하나님의 법을 배우고 그 방법으로 사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에서 설교하신 내용이 바로 하나님의 법입니다.
세상사는 방식과 완전히 다르잖아요?
그 교훈 자체를 이해하는 것은 절대로 어렵지 않습니다.
성경은 여러 가지로 하나님을 계시하고 깊고 심오한 영적 진리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지키고 따라야 할 하나님의 법은 해석이 필요 없이 정말 쉽게 제시해 주셨습니다.
원수를 미워하지 말고 복을 빌라,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고 기도해라, 복음을 전파해라, 곤경에 빠진 사람을 도와줘라.
몰라서 못 지키겠다는 소리 못하게 아주 쉽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다만 그걸 그대로 행하는 게 쉽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복이 되는 교훈대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전에 어린이부가 성경공부를 하고 교훈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한동안 휴대폰 게임을 끊은 적이 있습니다.
어린 아이들에게 이걸 지켜내는 게 쉬웠겠습니까?
저는 이 모습이 바로 교훈을 받는 정확한 예시라고 생각합니다.
새해 모든 성도님들이 열렬히 성경말씀을 배우며 교훈을 받고 지켜나감으로 예수님 안에서 사는 축복된 믿음 생활이 되시길 바랍니다.
2) 다음은 믿음에 굳게 서서 행해야 합니다.
이것은 단지 믿음이라는 감정을 붙들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믿음은 저절로 작동되는 감정이 아니라 의지를 동원해서 작동시켜야 합니다.
내게 믿음이 있으니 올해도 잘 믿어지겠지 하면 오산입니다.
어려움이 닥치고 시험이 올 때 믿음이 저절로 작동되어 대처할 수 있다면 시험에 드는 사람이 왜 생기겠습니까?
어려움에 부딪치는 순간 허둥대고 정신이 없어지는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때 좌절하여 공황상태에 빠지느냐, 아니면 의지를 다해 믿음을 소환해 내느냐가 관건인 것입니다.
상황이 나빠질 때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교훈을 생각해야 하고, 그 다음은 거기에 대한 믿음을 발휘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신앙의 순서가 이렇게 정해져 있는 것입니다.
먼저 성경을 통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먼저고 그 다음에는 이대로 믿는 믿음의 의지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시편기자가 큰 시험을 만났을 때 자기 믿음을 애써서 소환해 내잖아요?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과거 나를 어떻게 인도하셨는지 생각하고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발휘하라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어떤 어려움의 순간에도 믿음이 힘이 되어 모든 것을 해결해 나갈 수 있게 됩니다.
믿는 자에겐 능치 못함이 없다고 하신 것은 예수님이십니다.
그만큼 우리에게 큰 능력이 되는 믿음을 어떤 상황에서든 굳게 가질 수 있는 것은 기도를 통해서입니다.
기도하고 나면 가뭄에 말라 붙었던 것 같은 믿음도 단비를 맞은 것 같이 살아납니다.
저는 아침마다 느낍니다.
밤새 꾼 어지러운 꿈에서 깨어나 현실에 눈을 뜨면 모든 것은 생기가 없고 피곤하고 재미가 없습니다.
시작도 하기 전에 하루가 짐이 됩니다.
아침마다 다시 죄의 본성대로 깨어나기 때문입니다.
즉시 예수님을 생각하며 주님 안에서 오늘도 하나님이 할 일을 지도해주시고 지혜를 주시고 힘을 주시길 기도하면 기쁨과 의욕으로 충만해 집니다.
그래서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올해는 저를 위해서도 성도님들을 위해서도 기도를 더 많이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성도님들께서도 각자의 믿음과 자녀들과 가족들을 위해 올해 하나님의 인도와 은혜를 간절히 구하며 믿음으로 기도하시길 축복드립니다.
3) 마지막으로 감사함을 넘치게 해야 합니다.
성경 원어를 보면 이 부분은 능동태의 문장으로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가장 적극적으로 해야 할 신앙행동이라는 것입니다.
감사는 신앙의 영역에서 감정적인 부분에 해당됩니다.
교훈을 받는 것은 지적인 영역, 믿음에 굳게 서는 것은 의지적인 영역이라고 한다면 감사하는 것은 감정적인 영역이라는 것이죠.
신자들의 신앙과 삶은 이 세 가지가 균형 잡히고 조화롭게 성장해야 올바르고 쓸모 있는 신앙으로 세워집니다.
감정적 측면이 신앙에서 부족하면 하나님께 냉냉하고 사람에 대해선 비판만 하기가 쉽습니다.
우리가 신앙에서 감정의 측면을 생각할 때, 가장 우선되고 일반적인 감정이 감사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감정은 인간감정의 센서를 가지고는 감지하기가 좀 힘든 신비한 면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대해서도 우리가 쉽게 감지할 수 있는 감정은 감사입니다.
감사하는 감정으로 하나님께 나가면 그로 인해 기쁨과 신뢰의 감정이 따라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감사하라는 권고가 많이 나오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에서는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시지 않습니까?
그러나 현실로 볼 때 감사할 내용들이 매일 유별나게 일어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매일 보이는 것은 하나님의 도움이 절실한 환경과 이것저것 부족한 것들입니다.
그러나 작은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자꾸 훈련하면 어느새 부족한 삶도 기쁨과 만족으로 채워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감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잘 인도하고 계시다는 확고한 믿음에서 나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인도하시다 포기하고 버리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성품으로 볼 때 그러실 이유가 없잖습니까?
현재의 힘든 환경도 더 좋은 믿음과 성품과 환경으로 인도해 가고 계신다는 것을 믿으면 싸인으로 주신 작은 선물에도 감사가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작은 감사거리는 항상 우리 주변에 있습니다.
애인에게 주는 선물이 크다고만 사랑의 표현이지는 않잖아요?
길거리를 걷다가 너무 예뻐서 샀다는 작은 인형하나가 오히려 기념일에 맞춰서 사주는 비싼 선물보다 더 감동을 주기도 합니다.
본문에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는 의미는 강물이 제방을 넘쳐 흐르는 것을 말합니다.
범람이라고 하죠.
이런 엄청난 감사를 하라고 말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감옥이라는 최악의 환경에 갇혀 육체적, 감정적 고생을 하고 있는 바울사도의 말입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그의 입에서 감사가 둑을 넘쳐 흐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 삶에서 손바닥만한 은혜의 구름이 떠오른다 해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 다음, 틀림없이 곧 큰 은혜의 소낙비가 내려올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오늘 새해 첫주일을 맞아 올해 함께 추구해 나갈 신앙의 목표를 나누었습니다.
올해도 예수님을 주로 받아 그 안에서 행하는 모두가 되시길 축복드립니다.
성경을 통해 교훈을 받아 그대로 행하고, 모든 상황에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갖기 위해 늘 기도하고, 작은 일에도 감사가 넘치는 삶을 살아가자고 성도님들을 초청합니다.
이런 삶이라면 벌써 생각만 해도 안전하고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복된 나날이 되리라는 생각이 들지 않으십니까?
우리를 향한 큰 계획과 미래의 지도는 이미 하나님이 갖고 계십니다.
나보다 내게 더 관심을 갖고 인도해 주시는 줄로만 알고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할 일은 먼 미래를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당장 오늘 살아야 할 하루 중에 신앙의 책임을 다하고 성실하게 주님을 따르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올 한해를 선물로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루하루를 복되게 누리며 살아가는 모두가 되시길 축원드립니다. 아멘.
2018년1월7일 주는나의산성교회 남수연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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