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에베소서4장25절-32절 (너희는 이렇게 살라)

남수연 2018. 6. 6. 01:34

오늘 본문은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써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지시하는 말씀입니다.

바울사도를 통해 에베소교회와 모든 성도들에게 보내신 하나님의 말씀이죠.

얼핏 보면 사회에서 보통 하는 말들입니다.

거짓말 하지 마라, 화내지 말라, 도둑질하지 마라, 말조심해라

이런 말이라면 누구나 당연히 지켜야 할 도리라고 생각하겠죠.

그러나 오늘 말씀을 이렇게 세속적인 차원에서 지키라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그렇게 지키기만 해도 어느 정도 인격적인 사람은 될 것입니다.

다만 본문 말씀을 잘 살펴보면 이 명령들이 여러 가지 요인들과 얽혀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오늘 이 명령들을 심도 있게 살펴보려고 합니다.

꼭 이 명령대로 살아가야겠다는 큰 깨달음을 주시길 간절히 기대합니다.

 

먼저 25절을 보면 그런즉이라고 시작합니다.

오늘 명령들은 단독으로 주어진 게 아닌 것이죠.

앞에 나온 말씀들이 오늘 명령을 이끌어 낸 중요한 기반이 되는 것입니다.

바울사도는 1장부터 3장까지에서 먼저 너희가 얼마나 과거와 다른 존재들이 되었는지를 피력합니다.

너희들은 이전과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해 우리의 본질, 정체성이 완전히 새롭게 변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속죄로 인해 우리의 본질이 완전히 달라졌음을 믿으십니까?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관심이 우리에게 있고 그리스도의 모습까지 자라가길 하나님은 기대하십니다.

그렇기에 오늘 명령은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에게 그 신분에 걸맞는 새로운 삶을 당연하게 요구하는 것이죠.

우리가 자녀들에게 내 자식으로서의 품격 있는 인품과 태도를 가르치려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명령문의 이전에 우리는 나의 정체성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확인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도님들이 현재 갖고 있는 주된 자기 정체성은 무엇입니까?

누구의 엄마, 누구 아내, 누구의 아빠, 누구의 자식이 가장 중요한 우리의 정체성이라면 모든 생각과 행동은 거기에 맞춰질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목표로 삼은 학교와 직업이 나의 정체성이라면, 내가 가진 사회적인 지위와 능력과 소유가 나의 정체성이라면 우리의 삶은 그것을 중심으로 맴돕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 안에서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기업으로 받을 상속자라는 정체성이 이 모든 것 위에 자리 잡은 사람들입니다.

기독교는 가장 근본적인 정체성이 바뀌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이 정체성이 우리의 모든 가치관과 생활 전체를 결정짓는 기준이자 목적이 되는 것이죠.

거기서 출발해야 오늘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마땅히 명령하는 말씀들을 이해하고 따를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다시한번 우리 정체성이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자녀, 천국의 시민이라는 것을 확신하시길 바랍니다.

 

그렇다면 이런 성도들이 어떤 명령들을 따라야 할 것인지, 왜 그래야 하는지를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거짓을 버리고 참된 것을 말해야 합니다.

사람의 죄성을 가장 원색적으로 보여주는 게 인간의 거짓된 인격입니다.

우리가 아이들 키우며 제일 호되게 야단칠 때가 언제입니까?

자식들이 거짓말 할 때 아닌가요?

자식들이 처음 거짓말을 할 때 부모들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죠.

실망감을 넘어 절망감이 느껴집니다.

지금은 좀 만성이 되었죠?

내 자식은 그러지 않기를 바랬지만 죄인인 자식들은 가르쳐주지도 않은 거짓말과 속이려는 행동을 합니다.

사람은 속과 겉이 다릅니다.사람이 어떤 행동을 할 때는 순식간에 많은 것을 계산하고 자기에게 유리하게 진실을 위장합니다.

그 속도가 거의 일초에 지구를 일곱바퀴 반을 도는 빛의 속도입니다.

이렇게 죄인인 모든 인간의 현저한 특징은 거짓되다는 것입니다.

성도들에게도 여전히 이런 죄성으로 인한 갈등이 있습니다.

아무리 정직하자, 진실 되게 하자

그렇게 생각하고 마음을 굳게 먹는데도 여전히 하루에 수없이 많은 거짓행동들을 하게 됩니다.

우리가 그런대로 진실되게 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우리 말과 얼굴표정, 제스처를 객관적으로 유심히 살펴보면 하루에도 수도 없이 거짓되고 위선적인 행동을 합니다.

전에 TV에서 거짓말 안하고 살아보기라는 프로그램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거짓말 제일 많이 할 것 같은 연예인으로 김0호씨가 뽑혀서 실험을 당했습니다.

당시 PD의 말에 의하면 사람은 10분에 세 번 정도 거짓말이나 거짓행동을 한다고 하더군요.그래서 이 프로그램의 규칙은 마음에 있는 대로만 말하고 행동하기였습니다.

그런데 이 규칙대로 일상을 찍다보니 여간 어려운게 아님이 드러났습니다.

너무 행동에 제약이 되고 살기가 힘들다고 0호씨가 하소연을 하더군요.

며칠 안 되서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도 점점 불편하게 되었습니다.

입에 발린 칭찬도 좀 하고 얼렁뚱땅 넘어가야 되는 데 직설적으로 말하다보니 그동안의 호탕했던 0호씨는 사라지고 까칠한 0호씨가 드러나는 겁니다.

결국 이 프로그램은 사람 사는 데 거짓말도 좀 필요하다는 이상한 결론으로 끝을 맺었습니다.

김준호씨는 즐겁게 이전의 거짓말하던 삶으로 돌아갔구요.

이 프로그램에서 밝혀진 것은 사실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못됬는지입니다.

그러니까 속마음을 거짓으로 위장하자가 아니라 속마음을 바꾸자로 결론이 나야 맞는 것이죠.

그런데 결론은 겉을 위장하자로 끝난 것입니다.

거짓과 위선으로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은 겉을 꾸밀 줄은 알아도 속을 바꿀 생각은 안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명령은 바로 겉이 아니라 속을 바꾸라는 의미입니다.

속이 바뀌지 않는다면 사실 오늘 명령인 참된 것을 말하라는 영원히 못 지키는 겁니다.

나쁜 속을 그대로 보여주며 살지는 못할 거잖아요?우리는 남에게 다 보여줘서는 안될 게 너무 많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사는 게 불편하겠어요?

보여서는 안될 모습을 보였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마음이 꺼림직합니까?그걸 보이지 말았어야 하는데, 실수하지 말았어야 하는데 그러면서 후회와 자책감에 괴롭잖아요.

그런데 사실은 그렇게 드러났던 것이 바로 진짜 나 자신이잖아요?

부끄러워 할 것은 제대로 숨기지 못한 것이 아니라 남에게 드러나면 부끄러운 우리 본 모습인 것이죠.

이렇게 내면을 공사하지 않고 겉만 바꾸려다 보니 기독교인이 제일 위선적이라는 소리를 듣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 내면을 바꿔야 하는 걸까요?

거기에 대한 해답은 25절 후반에 나옵니다.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

다른 믿음의 식구들이 나와 한 몸 그리스도에 붙어 있는 지체라는 것입니다.

한 몸에서 지체들이 서로 속이지 않는다는 것이죠.

머리가 꾀를 내어 손이나 발을 골탕 먹일 작전을 짠다고 생각해보세요, 끔찍하죠?

게다가 엄연히 머리이신 예수님이 구원의 공동체를 이끄시는데 그 지체들이 서로 거짓말과 기만을 일삼는다면요?그러니까 서로 참된 것을 말하라는 명령은 결국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대강령에 귀결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먼저 가족과 성도들 간에 시작되지만 결국 원수까지 사랑하라는 또 다른 예수님의 명령대로 모든 이웃으로 확대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만나는 모든 이들을 나 자신에게 하듯 진실되고 너그러운 마음을 갖는다면 속과 겉은 점점 자연스럽게 일치되어 가지 않겠습니까?입으로만 칭찬하지 말고 속으로도 그렇게 봐주면 되는 것이죠.

또 대개 우리가 하는 거짓말은 대단한 게 아니라 시시한 것들입니다.

그러니 그깟 시시한 거짓말을 안 하겠다고 마음먹으면 과히 힘든 문제도 아닐 것입니다.

이렇게 해야겠다고 오늘 작정할 때 성령께서 또한 우리를 도와주실 것입니다.

거짓 된 내 자신이 점점 눈에 거슬리고 악한 내면을 회개하고 고쳐나가도록 우리를 이끌어 가실 것입니다.

이렇게 조금씩 더 예수님의 진실된 모습을 닮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어가길 간절히 권합니다.

 

2. 다음은 분노에 대한 문제입니다.

26,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화가 자주 나시죠?

화내는 문제에 대해 유타주립대학 연구팀이 임상 실험한 결과가 있습니다.

부부 사이에 서로 화 낼 일이 많이 있잖습니까?

화가 날 때 참는 아내와 화를 버럭 내는 아내를 연구한 결과 화를 꾹 참는 아내가 심장병에 걸릴 확률이 더 높게 나왔다고 합니다.

반대로 화를 버럭 내는 아내의 경우 심장병에 걸릴 확률이 상대적으로 낮았는데 대신 같이 사는 남편이 심장병에 걸릴 확률이 더 높았습니다.

그러니 화를 내야 되나요 말아야 되나요?부부 중 누가 심장병에 걸릴 지를 잘 결정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도 직역해서 보면 이런 뜻입니다.

화를 내라, 그리고 죄를 짓지 말라.

사람이 어떻게 화를 안내고 살 수 있겠습니까?

화가 나는 것 자체를 원천적으로 막을 방법은 없다고 본문도 인정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화내는 것을 허용하는 것 같으면서도 단서가 붙습니다.

죄를 안 지을 자신이 있다면.

화날 상황에 화가 나겠지만 그것이 죄로 이어지지 않게 하라는 것입니다.

화가 나면 대개는 과도하게 부풀려 남을 공격하고 비난하게 됩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선 지나치게 옳다고 우기게 됩니다.

결국 모든 화는 죄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죠.

그러니 실은 화를 내라는 것이 아니라 화를 잘 다루고 절제하라는 말씀입니다.

또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는 것은 정말 화가 나는 일이라 해도 계속 되새기며 오래 그 감정에 빠지지 말라는 뜻입니다.

사람의 감정은 한번 살짝 어긋나도 이전 그대로 회복되기가 참 힘듭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는 묵을 대로 묵은 분노의 감정을 갖고 있는 상대가 한 두 사람 있게 마련입니다.

그 사람 얘기만 하면 화가 나 버리죠.

이렇게 묵은 분노의 앙금을 오래 갖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는 의외의 이유를 27절에서 제시합니다.

오래 간직한 화와 분노는 마귀에게 이용당한다는 것입니다.

분노와 화, 미움이 우리 안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면 그 영역을 마귀가 자유자제로 드나들 수 있습니다.

그 문제로 시험을 걸면 여지없이 죄를 짓게 된다는 것입니다.

분노가 단순히 내 감정과 기질의 문제인 것 같지만 모르는 사이 마귀라는 악한 인격체를 끌어 들이는 통로가 된다는 것을 인식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니 우리의 안정과 행복에 위협이 되는 화와 분노의 문제는 자제할 뿐 아니라 빠른 시간에 해결해야 합니다.

가족들이나 자주 만나는 사람들, 그리고 성도들 간에 이런 화가 미움으로 고착화되지 않도록 지혜롭게 풀어 가시는 모두가 되길 바랍니다.

 

3. 다음은 도둑질하지 말라입니다.

도둑질하는 자는 다시 도둑질하지 말고 돌이켜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수 있도록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지금 이 말씀들은 교회의 성도들에게 하시는 명령입니다.

그러니 직업적인 도둑질에 대한 말씀은 아닙니다.

이것은 십계명에서 명시하셨던 인간의 탐욕이 추구하는 불의한 이득을 말하는 것입니다.

공짜 좋아하고, 불로소득자를 부러워하고, 우연한 이익을 노리는 사행심이 많고, 정직하지 않게 취득하는 모든 부당한 착복을 말합니다.

부자건 가난한 자건 돈 앞에선 약합니다.

지난 주 외식업체 본죽의 김철0 대표와 아내인 최복0 전대표가 검찰에 기소되었다는 뉴스가 나왔습니다.

본죽 브랜드인 본도시락, 본비빔밥의 상표권을 개인 명의로 등록해 본사로부터 상표 사용료 수십억을 받아 챙겼다는 이유입니다.

이 분들이 여러 교회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죽집을 일으켰다고 간증하고 다닌 분들이고 실제 좋은 일도 많이 한 부부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축복으로 그렇게 부자가 되었는데 뭐가 더 필요해서 그런 불의를 계획했는지 참 모를 일입니다.

이만큼 사람 본성에 있는 탐심이 우리 안에 있음을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남의 것에 대해 그렇게 깨끗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러나 성경은 깨끗하게 하라고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도 다 그러는 데, 이정도 쯤이야 크게 죄 될 것도 없지 않냐는 생각은 세속적인 생각이지 성도들에게 해당되지 않습니다.

본죽의 상표권 문제도 업계의 관행이었다고 하잖아요?세상 법정에서 죄라면 모든 은밀한 동기까지 드러나는 하나님의 법정에선 변호 할 말이 없는 것입니다.

작은 것이라고 별 생각 없이 주머니에 챙기는 습관부터 공공의 재산을 낭비하는 것 까지 우리가 고쳐가야 할 부분이 많습니다.

그런데 이 명령도 단순히 남의 것을 부당하게 가지지 말라로 끝나지 않습니다.

우리의 물질관은 남의 것을 공짜로 더 가지려는 것에서 오히려 남에게 나눠주는 것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누구나 힘들여 돈을 벌면 다 자기와 가족들만을 위해 쓰고 싶습니다.

그런데 성도들의 물질에 대한 하나님의 생각은 공동체를 위해 공유할 부분을 두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초대교회 때에는 자기 재산을 팔아서 가난한 성도들과 나누는 일들이 일어났었죠.

서신서에도 여러 교회들이 그런 착한 일을 한 사실을 칭찬하고 강조합니다.

우리가 힘들여 일해도 대개는 겨우 지금 형편을 유지하며 살아갈 정도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기에 오늘 말씀에 따르려면 좀 더 수고해서 벌고, 또 절약해서 그것을 가난한 자들을 위해 구제하고 착한 일에 쓰라는 명령입니다.

지난 주 을지바트목사님 아들들이 바이러스에 감염 되어 함께 기도했죠.

예배 후에 성도님 몇분이 마음에 감동이 되어 선교헌금을 하셨습니다.

아마도 아이들 병원비가 큰 부담이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목사님 처지를 아시고 특별히 몇 분을 감동하셨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우리가 서로 착한 일을 하도록 격려하시는 것입니다.

여유가 있어서만이 아닙니다.

우리 성도님들이 항상 하나님과 교회를 위해 힘을 다해 헌금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교회가 운영되고 이렇게 교회의 사명을 감당할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의 물질 사용에 대해 하나님이 어떻게 보고 계신지에 관심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용하셔서 착한 일을 이루시고 어떻게 우리를 더욱 부요하게 축복하시는지 모두가 경험하며 사시길 바랍니다.

 

4. 그리고 29절과 31절의 내용들은 성도들의 언어 습관에 대한 명령입니다.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여기서 더러운 말은 비속어나 욕이 아니라 부패한, 썩은의 의미로 악의 있는 험담 종류를 말합니다.

말이 얼마나 파괴적인 위력이 있는지 성경 야고보서는 경고하죠.

혀는 곧 불이요, 모든 것을 불사르느니라.

말 한마디로 오랫동안 쌓아왔던 관계가 무너지잖아요?

가정에서 받는 상처는 대개는 말로 인해서입니다.

31절 보면 사람이 입으로 어떤 말들을 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

이런 것들을 우리 입에서 제거하고 덕을 세울 수 있는 선할 말을 하라는 것입니다.

이번에 경기도지사 후보로 나온 야당대표가 여당대표가 과거에 가족들에게 퍼부었던 욕설을 문제 삼았잖습니까?

저도 전에 들어 봤는데 정말 입에 담아서는 안 될 욕을 하시더군요.

어떤 이유든지 입에서 나온 그 말이 결국 그 후보의 인격을 얼마나 떨어뜨리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남의 허물을 들추며 공격하고 자기의 지지율을 끌어 올리려는 야당후보 역시 사람들 눈에 곱게 보이지 않아 역풍을 맞았더군요.

말이 인격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말은 가정과 교회의 덕을 세우고 남에게 은혜를 끼치는 말이 되게 하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명령 역시 성령님과의 관계에 연결되어 있습니다.

30절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앞 뒤로 언어 문제에 대한 명령 가운데 이 말씀이 들어있는 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우리가 지속적으로 말로 죄를 지을 경우 우리를 도와주시고 지도하시는 성령께서 근심하신다는 것입니다.

자식들의 거칠고 나쁜 말투가 부모의 마음을 상하게 하듯, 우리 안에 계신 성령께서 우리로 인해 근심하신다는 것입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신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확증의 도장을 주신 것이고 구원을 완성하는 날까지 책임지고 인도해주신다는 의미입니다.

만일 지위가 높은 사람 앞에 있다면 우리는 스스로 말을 삼갈 것입니다.

포악하고 악의에 찬 말을 스스럼없이 하는 것은 결국 우리와 함께 하시는 성령님을 모독하고 무시하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지난 주 우연히 유명 배우의 아내가 나오는 방송을 보게 되었습니다.

거기서 남편에게 욕을 했던 과거사를 얘기하며 그때 했던 욕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모두에게 알려진 공인인 남편이 아내에게 그런 욕설을 들었다고 알려지는 것은 남편에겐 큰 수치가 아니겠어요?

거칠고 품위 없는 말은 자신의 인격을 스스로 무너뜨리고 상대방에겐 큰 모욕을 주는 것입니다.

성령께선 그런 우리의 언어생활을 책망하고 근심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의 충만하심 안에 살아야 하는데 결국 성령충만은 소멸되게 되는 것이죠.

그러면 점점 믿음도 능력도 평안도 소멸되고 사람들과 얽혀 사는 삶에도 분명히 어려움이 닥칠 것입니다.

 

마지막 32절로 결론을 맺겠습니다.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우리는 하나님께 큰 빚을 진 사람들입니다.

현재 우리의 정체성을 주시기 위해 하나님은 큰 희생을 치르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친절히 하시고 불쌍히 여기시고 용서하셨다는 것을 믿는다면 그렇게 서로에게 갚으라고 하십니다.

가정에서, 교회에서, 학교에서, 일터에서 그렇게 하시길 바랍니다.

서로에게 참되고 진실하게 대하고, 화를 참고, 서로의 필요를 채워줄 수 있는 그런 모두가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또 성령께서 근심하시는 나쁜 말들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은혜를 끼치는 선한 말로 서로를 위로하고 세워주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간절히 축원드립니다.

2018년5월20일 남수연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