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outube.com/watch?v=mMAIwZCrd3c&feature=youtu.be
<2019년11월3일 설교영상>
오늘 본문 말씀에서 느헤미야는 피땀 어린 성벽공사에 함께 한 사람들의 이름을 빠짐없이 기록하여 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나라를 위해 일한 성도들의 피와 땀을 하나님께서 기억하신다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매일의 생활을 믿음으로 잘 감당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지난주도 느헤미야처럼 오직 내 하나님께 기도하며 주시는 생각대로 하루하루 지혜롭게 잘 살아야 한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첫 번째 주시는 교훈은 그 뿐 아니라 하나님 나라와 교회를 위한 성벽공사도 감당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당시 성벽재건에 헌신한 사람들은 52일간 생업을 접었을 것입니다. 공사 현장에 투입돼 평소 해보지 않았던 흙더미를 나르고 무거운 돌을 옮겼습니다. 제가 이번에 이사하면서 어머니가 남겨 놓으셨던 오이지 눌러 놓는 돌을 드디어 버렸습니다. 어머니의 흔적들이 하나씩 사라지는 게 참 아쉽습니다. 그런데 그 작은 돌덩이 하나도 꽤 묵직하더군요. 그러니 큰 돌덩이를 들어 올려 돌성벽을 층층이 쌓은 저들의 노역이 상상이 가지 않습니다. 다음 장에 보면 이들이 흙더미만 실어내다 이미 힘이 다 빠졌다고 합니다. 우리도 매일 생활을 위해 최선을 다 할 뿐 아니라 하나님나라를 세우고 공동체의 믿음을 위해서 피땀 흘린 헌신도 해야 합니다. 성도들이 내 집만 세우려고 했다면 이 땅의 예수님의 몸 된 교회는 누가 세웠겠습니까? 우리는 사람을 지으신 하나님의 목적, 사람의 제일 중요한 목적을 망각하면 안됩니다. 소요리 문답은 성경에서 그것을 찾아내어 이렇게 요약했습니다.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이라. 또 예수님의 지상명령을 기억해야 합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교회로 데려와 복음을 전하고 말씀을 가르쳐 지키게 해서 복된 하나님 자녀들을 만들라는 것입니다. 물론 내 삶의 성벽을 안전하게 세우는 일엔 교회와 하나님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것도 포함됩니다. 성벽세우기 대공사가 당장 나와 상관없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느헤미야는 4장에서 산발랏 일당의 공격소식에 떨며 낙담한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는 저희를 두려워 말고 지극히 크시고 두려우신 주를 기억하고 너희 형제와 자녀와 아내와 집을 위하여 싸우라 오늘 세우는 하나님 나라의 성벽이 결국 나와 자녀와 아내와 우리집을 안전하게 보호해 주는 것이죠. 이 과중한 노역에 헌신한 사람들이 맡은 부분을 성경은 일일이 기록합니다. 자기가 축성한 그 부분에 자기 이름이 새겨져 있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성벽이 항상 내 눈 앞에 있느니라 크고 작은 헌신으로 세운 교회 안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우리를 주목하시고 항상 안전하게 보호하신다는 것입니다. 공동체의 믿음의 벽을 쌓는 우리 모두를 축복하시고 은혜를 부어 주심을 믿으시고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모두가 되시길 축원드립니다. 두 번째로 본문의 성벽 쌓기에서 교회와 우리 믿음의 성벽 쌓기의 교훈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1. 우선 이 성벽 공사는 양문에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1절에 보면 대제사장 엘리아십과 형제 제사장들이 양문을 건축하고 성별하였다고 시작합니다. 느헤미야가 지난 주 사람들을 모아서 성벽재건을 촉구했을 때 사람들의 마음이 큰 감동을 받고 결단했었죠. ‘일어나서 건축하자’ 느헤미야는 이제 지도자들과 성벽 도면을 놓고 공사계획을 세웠을 것입니다. 오늘 공사 구간을 보면 옛성벽 그대로 쌓지 못하고 성벽 라인이 약간 아래 쪽으로 내려와 좀 좁은 면적으로 공사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지금 형편이 과거 넓고 높은 성벽을 그대로 재건하긴 힘들었기 때문이죠. 하나님의 일이라고 늘 크고 화려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다시 세울 성벽 라인의 각 부분을 세밀하게 나눠 빈틈없이 성벽과 성문을 완성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한 곳이라도 성벽이 비어있다면 전체 성벽이 제 구실을 못하잖아요? 교회도 그런 것 같습니다. 구성원 한 사람이라도 시험에 들고 어려움을 당하면 전체 공동체의 믿음과 은혜가 영향을 받게 됩니다. 이렇게 한 군데도 빠짐없이 공사를 분담하고 동시에 일을 시작했기에 52일 만에 성벽공사를 마무리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이 그 공사계획이자 그 계획대로 성벽이 완수 된 내용입니다. 그런데 제일 먼저 어느 부분부터 계획이 시작되고 있습니까? 바로 양문입니다. 제사장들이 양문을 건축해 먼저 성별하고 성벽의 시계반대 방향으로 돌며 담당할 사람을 정하고 마지막은 다시 양문 앞까지 와서 공사가 완공됩니다. 이 양문은 하나님께 드릴 제물인 양을 데리고 들어오는 문입니다. 오늘 3장을 보면 성벽을 드나드는 총 열 개 성문 이름이 나옵니다. 느헤미야는 왜 이 양문을 제일 앞에 두고 공사의 계획을 세웠을까요?그것은 느헤미야가 이 공사의 본질을 잘 파악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 백성으로 선택되어 하나님의 통치를 받게 되었을 때 관계를 유지하는 핵심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율법 준수와 제사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선하고 정의로운 법에 한참 못 미치게 삽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웃과 더불어 행복하게 살아가는 율법을 유일하게 이스라엘에 주시고 이들을 직접 다스리신 것입니다. 십계명과 여러 가지 사회법령들이죠. 우리도 자녀들을 기를 때 나름 원칙을 갖고 교육하잖아요? 또 하나님과의 관계를 위해서는 제사법을 주셨습니다. 이 제사법의 핵심에는 속죄의 제물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율법대로 살지 못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복된 백성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이 죄 문제를 해결하고 나와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제사로 언약한 내 백성이라고 했습니다. 인간은 다 본질이 악한 죄인인데 이스라엘이 뭐가 더 나았겠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백성이 되게 하시되 그들의 죄를 속죄할 제물을 용납하셨다는 것입니다. 내가 죄를 지었는데, 말도 안되게 죄없는 제물이 내 죄를 대신 담당할 수 있는 법을 주셨다는 것이죠. 이 속죄의 제사는 바로 영원한 제물이 되어주신 예수님의 속죄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성의 예배를 회복하기 위해 속죄가 우선임을 알았기에 양문을 시작으로 성벽을 연결해 나간 것입니다. 우리 믿음의 성벽을 세울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복된 믿음의 성벽을 쌓아갈 때 양의 문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죄를 속죄하신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중심으로 성벽을 세워야 합니다. 이 땅의 모든 교회, 하나님의 모든 사역도 다 그렇습니다. 이게 빠지면 다 소용없는 것입니다. 믿음의 성벽을 쌓는 신앙생활에서 이 사실을 놓치지 않도록 주의하며 대속의 믿음을 잘 지켜가는 모두가 되시길 바랍니다. 2. 다음은 성벽 공사를 해낸 사람들의 실제적인 이야기들입니다. 성벽에는 우리의 이름만 새겨진 게 아닙니다. 우리 수고한 모든 것이 아로새겨져 하나님 앞에 영원한 칭찬과 상급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자세히 연구하며 읽어보면 이들의 삶과 믿음이 짧은 한 구절 안에 담겨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사람들이 기거하는 곳엔 집을 짓던 때, 수리하고 이사하던 때의 추억들이 서려있습니다. 저도 서원이와 함께 그렸던 교회 카페의 벽화를 보면 교회를 준비할 때가 생각납니다. 아찔했던 때도 있었습니다. 우리 교회 인테리어공사를 하시던 분이 창립예배 날짜에 임박해 막바지 속도를 내던 중 공업용 커터 칼에 깊이 손을 벤 것입니다. 수건으로 감싸 지혈을 하고 아산병원으로 달려가는데 수건에 피가 배어나와 빨갛게 물들었습니다. 여러 바늘 꿰맸고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가며 겨우 공사를 마쳤습니다. 사람이 기거하는 곳에는 다 그런 에피소드가 숨쉬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자세히 연구해 보면 이 성벽엔 성도들의 믿음과 삶도 돌 하나하나에 고스란히 박혀서 오늘날까지 기념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먼저 성벽재건은 자신들과 관련이 있는 부분을 맡았습니다. 우리가 교회를 위해 봉사할 때도 잘할 수 있는 부분을 맡게 되잖아요? 내가 가진 것으로 봉사하는 게 제일 수월합니다. 김경희성도님의 회사대표께서 지역 라이온스클럽 회장입니다. 이번에 회원 회사들 중에 한 의류회사가 롱패딩 80벌을 기부해서 우리 후원교회인 몽골 참사랑교회로 보내주게 되었습니다. 돈을 주고 사는 것보다 자기 회사에서 나온 의류니 값싸게 봉사할 수 있잖아요? 자기에게 있는 것, 은사와 재능을 따라 봉사하면 능률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죠. 그렇기에 제사장들에겐 제사직무와 관련 된 양문과 주변 성벽을 건축하게 했던 것입니다. 3절에 보면 어문을 건축한 사람이 하스나아의 자손들이라고 합니다. 어문은 물고기 문입니다. 아마 강이나 바다 쪽으로 난 이 문으로 수산물들이 들어왔을 것입니다. 이 문을 하스나아 자손들이 했다고 하는 데 하스나아라는 뜻이 가시가 많다는 뜻입니다. 이들이 이 문 주변에서 생선을 파는 어물전을 했을 것을 짐작할 수 있죠. 또 가능하면 자기 집과 가까운 성벽을 재건했습니다. 자기 집 앞이니 공사하기도 수월하고 더 공들여 쌓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10절에 여다야가 자기 집과 마주한 곳을 중수했다고 하죠. 23절에도 핫숩과 마아세야, 그리고 이어서 여러 사람이 자기 집과 마주한 성벽을 중수했다고 합니다. 다음은 가족들의 스토리가 들어있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4절에 학고스의 손자 우리아의 아들 므레못이 중수하였다고 하는 부분에서 특별히 삼대의 이름이 거론된 것을 보아 삼대가 함께 일을 해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자자손손 하나님을 섬기는 가문이라면 얼마나 복된 가문입니까? 저는 우리 교회 중에 가장 복된 가정이 남기익집사님 가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두 자녀들이 다 배우자들과 함께 하나님을 섬기고 손주들도 교회 안에서 자라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님들 가정도 믿음의 가정으로 더욱 번성해 가길 축복드립니다. 12절을 보면 또 눈길을 끄는 한 집안이 있습니다. 예루살렘 지방 절반을 다스리는 할로헤스의 아들 살룸과 그의 딸들이 중수하였다고 합니다. 예루살렘 본성은 그렇게 크지 않습니다. 느헤미야가 축조한 성벽이 두른 도시의 크기는 축구장 이십개 정도의 넓이입니다. 훨씬 넓은 외곽 예루살렘 지방 절반을 다스렸다면 상당한 재력과 권력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다 아들과 함께 건축했던 반면 살룸은 딸들과 함께 성벽 공사를 했다는 것입니다. 살룸에게는 아들이 없었다는 것이죠. 모든 것을 다 가질 수는 없는 것인가 봅니다. 고대 이스라엘사회에서 아들이 없다는 것은 대가 끊겨 축복의 땅을 이어받지 못하는 저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살룸은 아들이 없는 사실을 비관하지 않고 딸들을 동반해서 성벽 공사에 참여했다는 것입니다. 남들은 아들을 데리고 일할 때 딸들을 동반해 일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겠죠. 그러나 살룸은 남의 시선을 개의치 않고 성벽재건에 참여해 딸들과 함께 하나님나라에서 기업을 얻은 것입니다. 느헤미야가 지난주에 이 성벽공사에 가담한 주의 종들이 예루살렘에서 기업을 얻을 것이라고 말했잖아요? 우리의 삶은 늘 부족한 것이 많죠. 그러나 부족함 중에도 살룸과 같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으로 믿음의 헌신을 할 수 있는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가하면 30절에는 살랍의 여섯째 아들 하눈이 한 부분을 중수했다고 합니다. 하눈의 형 다섯명은 다 어디 갔습니까? 다섯 형은 성벽공사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막내인 하눈은 아버지와 함께 공사에 참여했다는 것입니다. 아직 예수님께 나오지 않은 가족 구원의 무거운 짐을 지고 홀로 믿음의 성벽을 쌓는 성도님들도 있습니다. 나 하나의 믿음이라도 튼튼하게 서면 하나님이 그 나머지 가족도 돌보시는 줄 믿습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고 했잖아요? 육신의 삶을 돌보실 뿐 아니라 결국 가족들에게 더 중요한 믿음의 삶도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나의 삶의 반경을 믿음으로 견고히 두르면 가족들도 그 테두리 안에서 적어도 안전하게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두고 보면 알 것입니다. 결국 모든 형제들이 다 예수님을 믿는 형제에게 기대고 구원의 은혜를 나눠받게 됩니다. 또 이런 사람들도 있습니다. 5절, 그 다음은 드고아 사람들이 중수하였느나 그 귀족들은 그들의 주인의 공사를 분담하지 아니하였으며 드고아의 평민들은 생업을 중단하고 힘껏 공사에 참여했지만 시간도 많고 돈도 많은 귀족들은 느헤미야총독이 추진하는 이 성벽공사를 전혀 분담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이 부분 성경의 원어대로 보면 ‘그 귀족들은 그들의 목을 섬기는 데 가져오지 않았다’ 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이들이 교만한 목을 갖고 이 역사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느헤미야의 성벽공사를 하찮게 여겼다는 것이죠. 결국 그들은 예루살렘에 아무 기업도 없고 이름도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드고아의 평민들은 어땠습니까?돈 있고 권력 있는 부자들이 어떻든 상관없이 없는 형편에 그 성벽을 재건했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드고아사람들은 뒤에 27절에 또 이름이 나옵니다. 이들이 똘똘 뭉쳐 자기 일을 마치고 다른 구역을 또 맡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어떤 성도들은 자기 몫, 그 이상의 헌신을 합니다. 하나님의 눈앞에 세워진 교회의 성벽엔 이렇게 눈물과 아픔과 감사와 기쁨으로 교회와 나의 믿음을 세워간 우리의 스토리가 아로새겨져 영원히 기념되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느헤미야의 성벽이 이전 성벽과 다른 점이 무엇인지를 좀 알아야 합니다. 오늘 3장 전체에서 성벽공사에 참여한 사람의 이름만도 75명이 나옵니다. 한 마을 사람들 전체가 참여한 경우도 많기 때문에 이 성벽공사를 분담한 사람들은 수천명이 넘을 것입니다. 이전 성벽은 다윗이나 솔로몬, 히스기야와 같은 왕의 명령 하에 노임을 받는 일군들에 의해 일사분란하게 건축했습니다. 그러니까 업적은 왕 한사람에게 돌아가는 것이죠.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볼 수 있듯이 느헤미야의 성벽은 개인이 분담한 부분이 그 사람의 공력으로 돌아갑니다. 이것은 교회시대엔 모든 성도들이 힘을 모아 주님의 나라를 세워간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번에 우리 교회가 이전을 하게 되었습니다. 임대기간도 되었고 건물주 사정도 있고 무엇보다 주차가 불편해서 주일마다 늘 멀리서 오는 성도님들께 미안한 마음이었습니다. 그래서 새교회로 이전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교회 이전문제로 기도하다 우리교회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좀 알 것 같았습니다. 사실 이 오금동 교회는 제가 혼자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가락동으로 이전하게 되면 우리 성도님들 모두의 힘으로 교회를 세우게 되는 것입니다. 마치 느헤미야와 함께 성벽 공사에 참여한 이 명단의 사람들처럼 우리 성도님들 모두가 주님의 교회의 성벽을 세운 사람들이 되는 것이죠.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제 새교회로 우리를 인도하시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오금동으로 오라고 하셔서 왔고 이제 가락동으로 가라고 하셔서 가는 것입니다. 가락동 교회에서 우리교회와 성도님들 가정에 늘 하나님을 찬양하는 기쁜 가락소리가 끊이지 않게 축복하시리라 믿습니다. 이번 교회는 사무실로 사용되던 곳이라 예배실과 시설들을 만들려면 인테리어공사를 다시 해야 합니다. 저는 이 공사에 모든 성도님들이 함께 참여하시길 권면드립니다. 아기들도 참여했으면 좋겠습니다. 주님의 교회에 모든 성도님들의 이름을 새겨 놓고 싶기 때문입니다. 다만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에는 성경에서 분명한 원칙을 세워 놓았습니다. 자원하는 마음으로 드려야 하고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드리라는 것입니다. 한 가지 더 붙이자면 믿음과 형편에 따라 드리면 됩니다. 제가 우리 성도님들 형편을 모르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격려하시는 대로 최선을 다해서 동참하시면 됩니다. 옛날 교회들이 건축할 때 보면 가난한 성도들이 참 최선을 다했던 것 같습니다. 어떤 동네 교회가 힘겹게 교회를 건축하고 나서 보면 교회에 금반지를 낀 성도들이 한명도 없었다고 합니다. 참 감동적이지 않습니까? 그랬던 부모세대의 순진한 헌신이 있었기에 한국교회가 이만큼 성장하고 많은 사람이 구원의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손에서 빼낸 반지와 비교할 수 없는 복을 주셨을 것입니다. 바라기는 이번에 우리 모든 성도님들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그동안의 축복에 감사드리며 우리 모두의 힘으로 아름다운 교회를 세워 하나님께 봉헌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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