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

느헤미야2장27절-30절,43절(성벽 봉헌을 축복하시다)

남수연 2019. 12. 6. 13:24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인도해 주셔서 교회를 이전하고 첫 감사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우리와 함께 예배에 참석하신 모든 분들 축복하고 감사드립니다.

교회 이전을 위해 한 마음이 되어 헌신하신 모든 성도님들 축복하고 감사드립니다.

오늘 나누고 싶은 하나님의 말씀은 총독 느헤미야의 성벽봉헌입니다.

우리는 몇 주에 거쳐 느헤미야서의 말씀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사실 느헤미야서를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교회이전에 대한 생각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런데 불과 한 달 반 정도 만에 이렇게 교회가 가락동으로 옮겨 오게 되었습니다.

느헤미야가 성벽공사를 52일만에 완공했는데, 우리 교회는 50일도 안된 시간 동안 교회이전의 큰일을 해낸 것이죠.

오늘 드디어 느헤미야가 성벽 봉헌식을 하는 본문과 우리교회 이전 감사 첫예배가 똑같은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당시 성벽 봉헌식의 분위기가 본문 말씀에서 생생하게 느껴집니다.

성벽봉헌식의 중심이 되는 단어를 세 가지 꼽는다면 정결, 감사, 즐거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성전을 준비하여 봉헌할 때도 이 세 가지에 맞추면 좋을 것입니다.

옛 성도들이 수없는 난관을 극복하고 봉헌한 성벽낙성식에 하나님은 큰 축복을 주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새 교회를 세워 봉헌하는 예배에도 똑같은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하시리라 믿습니다.

 

1. 먼저 성벽 봉헌식이 정결하게 이뤄졌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힘을 다해 성벽을 완공한 다음 하나님께 봉헌했습니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하나님이 기쁘게 이 봉헌식을 받으실만 하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런데 봉헌식을 위해 이들이 모든 것을 정결하게 하는 의식을 했다는 걸 볼 수 있습니다.

30절입니다.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몸을 정결하게 하고 또 백성과 성문과 성벽을 정결하게 하니라

왜 하나님께 드리는 성벽과 모든 사람을 정결하게 했을까요?

그것은 사람이 하는 모든 일이 어느 것이든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죄로 얼룩져 있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이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고 섬기는 일이 얼마나 아름답고 귀합니까?

그런데 사람이 하는 어떤 일이든 백 프로 순수하지는 않습니다.

당시 성벽공사에도 수많은 갈등이 있었습니다.

서쪽 성벽을 쌓았던 제사장 가문은 느헤미야의 성벽공사를 집요하게 방해했던 산발랏 일당인 도비야와 인척 관계를 맺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성벽공사에 가담했지만 느헤미야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공사를방해하는 역할도 했습니다.

또 공사기간 중에 함께 일하던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 사이 갈등도 있었습니다.

사람이 하는 모든 일엔 죄를 깨끗하게 하는 게 필요한 것입니다.

느헤미야와 이스라엘 사람들은 어떤 방법으로 자신을 정결하게 했을까요?

우선 속죄의 제사를 드렸을 테고 율법에서 명령하신 몇 가지 정결예식을 행했을 것입니다.

성벽과 성문에도 제사장들이 정결한 물이나 제물의 피를 뿌려 정결하게 했을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과 주님의 나라를 위해 하는 수고와 헌신에도 죄의 요소들이 섞입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헌신이 하나님 앞에 잘 봉헌되기 위해서는 죄의 요소들을 정결하게 하는 게 필요한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이 있다면 그것은 봉헌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받았는데 사실 우리 것이 어디 있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에 내 마음과 정성을 담아 하나님께 다시 드린다는 것은 특별한 일이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 같은 규모에서 삼천육백만원의 교회이전 건축헌금을 드릴 수 있었던 것은 성도들이 쓰고 싶은 것 뒤로 미루고 봉헌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이 헌신에도 예수님의 속죄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기쁘게 순종하며 행했지만 그 안에 다양한 죄의 모습들이 섞여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 죄의 본성은 나쁜 죄를 지을 때만 사용되는 게 아니라 하나님께 헌신할 때도 활성화 됩니다.

내가 정말 최선을 다해 주님을 따르고 열심히 헌신할수록 어쩌면 주님의 속죄가 더 필요할지 모릅니다.

모든 봉사자들의 수고에 섞여 있는 죄의 흔적들을 인정하고 예수님의 속죄를 구하여 정결하게 하면 분명히 하나님은 기쁘게 우리의 봉헌을 받으실 것입니다.

오늘 우리 교회를 아름답게 준비하고 첫예배로 봉헌하는 날 성찬식을 함께 행하게 되어 의미가 잘 맞는 것 같습니다.

구약성경시대의 성도들은 율법으로 정해주신 정결의 방식으로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시는 봉헌식을 했지만 그것은 그림자이고 예표입니다.

우리는 어떤 죄와 허물도 다 정결하게 해주시는 예수그리스도의 피로 깨끗하게 됩니다.

아무리 순수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 같아도 우리는 그렇지 못합니다.

예수님의 속죄를 믿고 정성껏 오늘 봉헌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은 과거 이스라엘에 베풀어 주신 큰 축복을 모두에게 내려 주실 줄 믿습니다.

 

2. 다음 성벽 봉헌의 중심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가 있었습니다.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은 이스라엘의 수치이자 무너진 자존감 같은 것이었습니다.

오늘 모인 모든 사람들은 태어나면서부터 불타고 무너진 성벽을 보고 자란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게 무너진 성벽은 무능과 불가능의 상징이었습니다.

다시 세울 돈도 없고, 능력도 없고, 페르시아왕에 의해 재건축금지로 완전히 봉인 되어 버린 민족의 한계였습니다.

이 예루살렘은 천연요새로서 높은 지역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제가 이스라엘을 방문했을 때 한 밤에 공항에 도착해서 버스를 타고 숙소로 이동했습니다.

불야성 같은 우리나라 분위기와 달리 차로 달려가는 동안 주변이 거의 어두웠습니다.

그렇게 가다 갑자기 눈앞에 화려하게 불을 밝힌 높은 산이 보였습니다.

마치 산 전체가 찬란한 왕관을 쓴 것처럼 어둠 속에서 빛나더군요.

거기가 바로 예루살렘이었습니다.

느헤미야 당시에도 무너지고 불탄 예루살렘은 흉물스러운 그대로 먼 사방에서부터 보였을 것입니다.

일평생 무너지고 짓밟힌 나라의 수도를 보며 살았던 사람들이었던 것이죠.

지금은 어디서 바라보든 늠름하게 서있는 철벽같은 성벽을 바라보며 얼마나 자랑스러웠겠어요?
이들에겐 너무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었던 성벽공사였습니다.

아마 손톱이 다 닳았을 것입니다.

밤이면 앓는 소리가 절로 나올 만큼 흙더미와 돌덩이와 싸웠던 무거운 공사였잖아요?
성벽재건을 방해하려고 목숨까지 위협한 적들은 또 얼마나 많았습니까?
믿음의 성벽을 굳게 세우고, 주님의 교회를 세우는 것은 그만큼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믿음의 성벽을 세울 수는 없습니다.

성벽공사를 완공한 사람들은 그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고 찬양으로 봉헌하는 것입니다.

성벽재건을 완수했을 때를 느헤미야는 이렇게 회상합니다.

615, 성벽 역사가 오십이 일 만인 엘룰월 이십오일에 끝나매 우리의 모든 대적과 주위에 있는 이방 족속들이 이를 듣고 다 두려워하여 크게 낙담하였으니 그들이 우리 하나님께서 이 역사를 이루신 것을 앎이니라

이제 두려워 떠는 것은 이스라엘이 아니라 대적들입니다.

그들이 다 두려워하여 크게 낙담했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스라엘 사람들이 갑자기 대단하게 보였기 때문입니까?

이들이 왜 갑자기 우습게 알던 이스라엘을 두려워하고 마음이 쫄았겠어요?
그 힘없고 가난하고 약해 빠진 사람들이 세운 저 육중한 성벽을 보니 저건 저들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루신 것을 알겠더라는 것이죠.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증거를 보았기 때문에 이스라엘을 두려워한 것입니다.

우리를 힘들게 하고 두렵게 하던 것들은 우리가 뭘 좀 힘을 내서 한다고 꼬리를 내리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고 있다는 것,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시다는 증거들을 볼 때 손을 듭니다.

우리 교회도 수적으로 볼 때 작고 미약한 교회 아닙니까?

그런데 오늘 이렇게 새 예배당을 준비해서 예배를 드린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셨다면 불가능했습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단합해서 사명을 완수할 때 늘 교회를 상대해 넘어뜨리려는 마귀는 낙담하는 것입니다.

처음에 교회를 이전한다는 소식에 다들 근심들이 많았잖아요?
제가 한창 공사 중인 영상을 성도님들께 뿌렸더니 심권사님은 인테리어 자재만 쌓여 있는 걸 보고 너무 걱정이 돼서 제게 전화를 하셨습니다.

정권사님은 영상 속 제가 눈물을 훔치는 것 같아서 깜짝 놀라 밥이라도 사드려야겠다고 여길 찾아오셨습니다.

이사 당일에도 여러 성도님들이 찾아오셔서 힘을 보태고 밥을 사주시고 같이 청소하고 그랬습니다.

이번에 봉헌하는 성전이 지난번 보다는 좀 작습니다.

넓은 장소를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님들이 십시일반 모은 헌금으로 이렇게 예쁘고 아담한 교회를 봉헌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제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아시겠습니까?

우리만 아는 게 아니라 교회와 성도들을 넘어뜨리고자 엿보고 흔드는 원수들도 알고 두려워 떠는 줄 믿습니다.

우리 자신의 믿음과 우리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나온 날들도 어려움이 많았고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남아있다 해도 꾸준히 믿음의 성벽쌓기를 해나간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은혜를 주시고 함께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믿음과 우리 가정을 우뚝 세워주시고 우리를 괴롭히던 모든 상황과 형편은 역전될 것입니다.

 

3. 하나님은 성전 봉헌식에서 모든 사람들에게 큰 즐거움을 주셨습니다.

사람이 살 힘은 즐거움에서 나오는 것 같습니다.

기쁘고 즐거우면 살 맛이 나죠.

그동안 오금동에 있던 교회가 대로변에 위치해서 사람들이 많이 북적이는 분위기는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교회 주변은 그 유명한 개롱역 먹자골목입니다.

지난 주는 공사관계로 제가 거의 늦게 귀가했습니다.

저녁을 좀 먹으러 나와 보니 가게마다 사람들이 가득 앉아 있더군요.

삼삼오오 모여서 술잔을 기울이고 참 즐겁게들 먹고 마시는 걸 보았습니다.

밥을 먹고 종량제 봉투를 사려고 건너편 마트에 들렸습니다.

계산하려고 보니 앞에 청년이 로또 복권을 사는 걸 보았습니다.

얼굴을 보니 아주 착해 보였습니다.

오만원권, 천원권을 세어서 주는데 한 눈에 봐도 뭔가 아껴서 모은 돈 같았습니다.

무려 이십 삼만원 어치를 사더군요.

그 모습이 저한테는 참 안쓰럽고 짠해 보였는습니다.

그런데 복권을 들고 돌아선 청년의 얼굴은 기대감에 가득차 그렇게 즐거워 보일 수 없었습니다.

즐겁게 웃으며 술잔을 기울이던 그 사람들은 다음 날 출근길도 즐거웠을까요?

행복한 얼굴로 로또 번호를 기입하던 당첨자가 발표 되던 날 즐거웠을까요?

사람의 찾는 즐거움이 이렇게 짧고 보장 안된 기대감이라는 게 서글프지 않습니까?

인생에 즐거움의 순간은 너무나 짧고 모든 날들은 무미건조하고 군데군데 근심과 화가 버무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 말씀에서 가장 많이 나온 단어가 무엇인지 아시겠습니까?

바로 즐거움입니다.

12장에 즐거움이란 단어가 여섯 번이 나옵니다.

성전 봉헌이 얼마나 즐거웠는지를 알려 주는 것이죠.

오늘 성전 봉헌에 이런 즐거움이 가득 찼던 이유가 43절에 나옵니다.

이 날에 무리가 큰 제사를 드리고 심히 즐거워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크게 즐거워하게 하셨음이라

하나님이 즐거워하게 하실 때 우리는 진짜 만족스러운 기쁨으로 채워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한 두 주간 공사와 이사, 교회 정리로 정말 인생 최고로 바빴습니다.

말씀을 묵상하고 성도님들을 위해 세세하게 기도할 시간도 내기가 힘들더군요.

그런데 돌아오는 차 안이건, 교회 구석에서건 잠깐 눈을 감고 하나님께 기도하는데도 얼마나 마음에 기쁨을 주셨는지 모릅니다.

그 순간 주시는 짧고 강한 기쁨이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게 해 주시더군요.

이게 하나님이 주시는 즐거움의 파워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 즐거움을 모르기 때문에 이 먹자골목에서 잠시의 즐거움을 구하는 것이겠죠.

우리교회 주소지가 가락동입니다.

가락동은 가히 즐거운 동네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즐거운 곳으로 인도하시고 크게 즐거워하게 하셨음을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이 성전에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예수님을 닮아 가고 눈물로 기도하고 땀흘려 수고하는 모든 일에 하나님은 즐거운 일들로 우리 삶을 축복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오늘 이렇게 모두의 헌신으로 세워진 새교회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분명한 증거입니다.

오늘 성찬식을 통해 우리 모든 죄와 약함을 정결하게 하실 때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와 모든 성도들을 기쁘게 받아주시고 앞으로 영원토록 큰 즐거움을 부어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