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

느헤미야10장 (언약서에 서명하다)

남수연 2025. 12. 10. 21:25

오늘 말씀은 총독 느헤미야의 지휘로 성벽 중수를 마친 뒤의 일입니다.

52일 만에 성벽 공사를 완공한 귀환민들은 이제 삶의 새 국면을 맞이합니다.

믿음이 제 자리를 찾으면 틀어졌던 생활도 점점 제자리를 찾게 됩니다.

귀환한 이스라엘은 그동안 열패감 속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바벨론에 패망하기 전, 예루살렘과 솔로몬 성전은 이스라엘 민족에겐 큰 자부심이었죠.

시편에 보면 예루살렘과 성전의 아름다움을 극찬하는 노래들이 아주 많습니다.

제가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갔을 때 밤에 예루살렘에 도착했습니다.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데 주변이 깜깜해요.

그런데 한참 달리다 보니 멀리 산 위에 환하게 불이 밝혀진 도시가 하나 눈에 확 들어왔습니다.

그게 예루살렘이었습니다.

깜깜한 주변에 환한 빛을 이고 있는 예루살렘 도시가 마치 왕관을 쓰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렇게 사방에서 훤히 보이는 도시가 불타고 폐허가 되었다면 어떻겠습니까?

느헤미야 당시는 도시와 성벽이 무너진 채 150년이 지났습니다.

그때 살던 사람들은 태어나면서부터 무너진 예루살렘을 보고 산 것이죠.

요즘도 차 타고 다니다 보면 짓다 만 건물들이 방치된 걸 볼 수 있습니다.

콘크리트 골조만 남은 흉물스런 건물이 있으면 그 동네 전체가 뭔가 을씨년스럽죠.

파괴된 수도를 바라보며 살던 귀환자들에게 무슨 긍지가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드디어 우리 손으로 성벽을 완공했으니 그 기쁨과 감격이야 말할 수 없는 것이죠.

그리고 그 성벽재건이 성경 역사에 남을 믿음의 부흥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우리 믿음이 침체 되고 있다면 어떤 문제에서 믿음대로 행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 문제가 있다면 우리가 한 걸음 순종할 때 하나님도 돌파구를 열어 주십니다.

하나님은 어려운 중에도 순종한 백성들에게 구약시대 전무후무한 믿음의 부흥을 허락해 주십니다.

8장부터 그 부흥의 과정이 나옵니다.

거기 보면 백성들이 스스로 예루살렘 성문 앞 광장에 모입니다.

그리고 학자 에스라에게 율법책을 가져와 읽어달라고 청합니다.

제가 보기엔 구약성경 어디에서도 이런 이상한 상황을 본 적이 없습니다.

이스라엘사람들이 스스로 하나님 말씀을 구했다는 거잖아요?

우리 믿음이 되살아나고 성장하는 것과 말씀은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성경 말씀을 가까이 한다면 은혜 받게 되고, 은혜 안에 살고 있다면 매일 성경을 가까이 하게 될 것입니다.

에스라와 레위인들이 광장에서 성경을 낭독하고 해석해 줄 때 백성들이 울었다고 합니다.

현대식으로 감동과 은혜를 담아서 설교를 한 게 아닙니다.

모세오경을 읽고 해석해 주었을 뿐입니다.

감동적인 설교가 아니라도 마음을 열고 성경을 읽을 때 성령께서 역사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받은 백성들은 율법에 기록된 대로 초막절을 지키고, 다시 모여서 또 율법책을 읽고 죄를 자복하는 회개 기도회를 엽니다.

우리나라도 옛날 집회 때 이런 모습이었죠.

말씀 사경회에 자리가 없을 정도로 모이고, 기도회에서는 가슴을 치고 땅을 치며 회개하고 우는 성도들이 가득했습니다.

구약시대에 이렇게 진심으로 하나님께 돌이킨 때가 있었다는 게 뭉클합니다.

 

2. 본문은 백성들이 눈물의 회개로 끝내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믿음의 서약서를 작성하고 서명을 한 내용입니다.

우리가 예배 끝나고 가면서 한 주간 매일성경 묵상 잘하고, 기도하고, 말씀대로 살겠다고 모두 사인하고 가면 어떨까요?

정말 특이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죠.

101절부터 27절까지가 그때 서명한 사람들의 명단입니다.

각 가문의 대표자들 이름입니다.

믿음의 결단을 한 사람들의 이름을 성경에 기록해서 후대에 기념되게 하신 것이죠.

하나님은 믿음의 결단을 한 모든 성도들 이름을 하나님의 책에 기록하십니다.

남은 백성들도 대표로 서명한 형제 귀족들과 함께 서약에 참여합니다.

29절을 보면 이들은 서약을 지키지 않을 시는 저주를 받겠다고 합니다.

다 그들의 형제 귀족들을 따라 저주로 맹세하기를 우리가 하나님의 종 모세를 통하여 주신 하나님의 율법을 따라 우리 주 여호와의 모든 계명과 규례와 율례를 지켜 행하여

우리가 열심히 해 보겠다고 서약할 수는 있죠.

그런데 만일 그렇지 않으면 저주를 받겠다고 사인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때 백성들이 정말 하나님을 경외하고 기뻐서 따르길 원했다는 뜻입니다.

성령님의 감화와 은혜가 없으시다면 우리는 하던 것도 놓고 싶어집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서약했을까요?

서약의 내용은 하나님의 계명과 규례와 율례들을 지키겠다는 것입니다.

사실 지금 정도만으로도 대단한 믿음이잖아요?

왜 저주까지 내걸고 말씀대로 지키겠다고 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현재 어려운 상황의 원인을 율법에서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이 신명기 율법을 읽었을 것입니다.

281, 만일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2,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르리니

그런데 이들이 세계 민족 위에 뛰어난 게 아니라 웃음거리가 되었잖아요?

하나님의 말씀을 버렸기 때문인 것이죠.

15,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여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 이 모든 저주가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를 것이니

그 저주가 포로에서 돌아온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이제야 에스라가 읽어주는 율법을 통해서 그것을 처절하게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지나온 세월이 후회가 되겠습니까?

그래서 큰 소리로 울었다고 하잖아요?

다시는 이런 수모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결의문을 작성하고 서약을 한 것이죠.

 

3. 서약의 내용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 중에서 중요한 신앙 지침을 뽑은 것입니다.

우리도 지금 상황에 맞게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1) 이방인들과의 혼인을 금하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백성이라는 정체성을 분명하게 이해했다는 뜻입니다.

더 이상 하나님을 부인하는 세상과 어울릴 수 없다는 걸 선언하는 것이죠.

타민족과의 결혼은 우상숭배로 이어진다는 걸 역사 속에서 뼈저리게 겪었잖아요?

이로 인해 하나님이 떠나시고 결국 바벨론 포로생활을 하게 된 것입니다.

오늘 불이행시 저주를 각오한 이 서약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잘 지켰을까요?

예수님이 오실 때까지 이 서약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을 고수했습니다.

도가 지나치고 변질되어서 이방인들과는 상종도 안 할 정도가 되었지만요.

신약성경도 결혼에 대해서는 똑같은 가이드라인을 주십니다.

고린도후서 614,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이 말씀을 따르지 않은 결과는 가정의 끊임없는 분란이거나 굴복일 것입니다.

결혼해서 전도하면 되지 생각한다면 그것은 내가 사람을 구원받게 할 수 있다는 착각입니다.

또 야고보사도는 세상을 향해 구애하는 신자들을 향해 이렇게 일갈합니다.

야고보서 44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하는 것이니라

또 성도는 세속화될수록 힘이 없는 존재라는 걸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2) 안식일과 안식년을 지키겠다고 서약합니다.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지키도록 명하신 이유가 성경에 두 가지가 나옵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고 제7일에 쉬셨기에 너희도 쉬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나의 창조주심을 인정한다는 의미죠.

또 애굽의 압제에서 구원하셨기에 지키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구원하신다는 걸 인정하는 것이죠.

이스라엘은 안식일을 지킬 때마다 이 두 가지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안식일을 범하는 사람들을 이것을 믿지 않는 사람으로 치셔서 이스라엘 중에서 끊어지리라 하셨습니다.

우리가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신 주인이시라는 것과 예수그리스도의 구원을 믿는다는 고백인 것이죠.

그러니 우리도 주일을 지키는 것에 대해 훨씬 경각심을 가져야 합니다.

또 이들은 안식년을 지킬 것을 서약합니다.

칠 년마다 땅을 안식하게 하라는 율법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칠 년째는 땅을 경작하지 말고 쉬게 하라시는 것입니다.

저절로 자란 식물을 가난한 사람과 나그네들이 미안해하지 않고 걷어가게 하라시는 것이죠.

또 매 칠 년마다 빚을 탕감해 주라고 하셨습니다.

사람 욕심이 어떻게 그걸 따르겠습니까?

그러니까 안식년에 대한 계명은 굉장한 믿음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그걸 지키며 하나님의 능력과 돌보심을 신뢰하며 살라는 것이죠.

만일 안식년을 지켰다면 하나님은 6년 동안에 칠 년째에 거둘 것들을 미리 미리 더 거두게 하실 게 분명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지 못했기에 안식년을 지키지 못한 것이죠.

결과는 칠 년 째에 쉬지도 못하고, 말씀은 거역하고, 소산은 남에게 다 뺏기게 된 것입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바벨론으로 끌려가고 난 뒤 성경은 의미심장한 말씀을 기록합니다.

역대하 3621, 이에 토지가 황무하여 안식년을 누림같이 안식하여 칠십 년을 지내었으니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이 응하였더라

그동안 안 지킨 안식년을 모아서 70년 동안 강제로 땅을 쉬게 하신 것이죠.

우리에게도 이방인 결혼 금지나 안식년의 뜻은 동일하게 이어지는 것입니다.

야고보서127,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

오늘 서약한 것과 똑같잖아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는다면 이스라엘이 그랬듯이 뭔가 많이 잃는 것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구약성도들이 어떻게 이런 율법들을 다 지키겠다 언약하고 그것을 지켰을까요?

지금 우리가 믿는 것보다 구약성도들이 훨씬 빡세다고 생각지 않으세요?

그게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의 법이기 때문입니다.

세상 어느나라에도 없을 법이죠.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받았다고 그 기준이 낮아진 건 아닙니다.

예수님의 산상수훈을 보면 천국 백성들은 계명의 동기까지 올바르게 지켜야 한다고 하시잖아요?

성령으로 거듭나지도 않은 구약성도들이 오늘 이런 결심을 하고 서약을 했다는 걸 보면 나태한 신앙에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3) 하나님의 성전에 대한 의무를 다하겠다고 서약합니다.

32, 우리가 또 스스로 규례를 정하기를 해마다 각기 세겔의 삼분의 일을 수납하여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쓰게 하되

하나님의 성전을 위해 스스로 세금을 정했다는 것입니다.

매일 제사와 절기, 속죄제에 쓸 것들을 위해서죠.

이외에도 소산의 십일조를 드려 레위인들에게 주기로 합니다.

레위인들은 성전에서 봉사하고 율법을 가르치는 일에 종사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망하기 전 백성들이 십일조의 의무를 다 하지 않았기에 레위인들이 먹고 살기 위해 생업에 뛰어들어야만 했습니다.

그 결과 백성들의 신앙 상태는 점점 더 악화일로로 치닫게 되었던 것이죠.

오늘 귀환자들은 이렇게 스스로 정하고 서명을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이런 성도들의 막중한 헌신을 보면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 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세상 종교에의 헌신과 봉사는 다 자기 복을 구하자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어 이미 완전한 구원과 복을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위해서도, 세상을 위해서도 아무 것도 안 해도 되잖아요?

그런데 세상에 봉사하고 희생하지 않는 성도는 없잖아요?

하나님도 없고, 구원도 없다면 어느 누가 그렇게 평생을 살겠습니까?

39절하에서 오늘 모인 무리들이 서약을 마치고 이렇게 비장한 다짐을 하죠.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전을 버려 두지 아니하리라

우리도 이 말씀을 기억하고 지금처럼 교회를 버려두지 않는다면 하나님도 우리를 버려두지 않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