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outube.com/watch?v=SwQtCGJx5xY
오늘 말씀까지가 예수님의 마지막 유월절 식사 자리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주님은 식사자리에서 일어나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셨죠.
지난 주는 두려움과 혼란에 빠진 제자들에게 근심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아버지께로 가는 유일한 길이 되심을 재차 확인시켜주셨죠.
오늘은 말씀을 마치고 마지막으로 제자들을 위해 기도하시는 내용입니다.
본문 20절에서 이렇게 기도하시죠.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그들의 말로 말미암아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주님의 기도에는 그때 제자들 뿐 아니라 제자들을 통해 예수님을 믿게 된 우리가 포함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어떤 기도를 하시는지 이렇게 알 수 있다는 게 신비하고 놀랍습니다.
아쉽게도 세상의 성공과 형통한 복을 빌어주시지는 않네요.
그러나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은 교독문에서 읽었듯이 우리가 기도하면 인도해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오늘 기도는 예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기도입니다.
이것은 이미 응답 되어 성도들에게 이뤄졌고 하나님나라에서 완성될 것입니다.
오늘 주님이 해 주신 기도를 살펴보고 이 응답을 누리며 살아가는 모두가 되시길 축복드립니다.
17장 전체는 예수님이 하나님아버지께 드린 기도입니다.
먼저는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을 통해 하나님과 예수님이 영광을 받으실 것을 기도하십니다.
하나님의 가장 크신 영광은 하나님을 거역한 죄인 우리를 목숨을 주시기까지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자식을 위해 희생하는 것이 부모의 영광인 것과 같은 것이죠.
그 다음 제자들을 위해서 기도하십니다.
먼저 세상에서 제자들을 악으로부터 지켜주실 것을 기도하십니다.
우리가 이 악한 세상에서 위험에 노출되어 살지만 주님의 이 기도가 수많은 위기로부터 우리를 지켜주시는 것입니다.
이 기도가 없다면 악한 영의 무자비한 공격과 생활의 염려와 세속의 유혹에 넘어져 믿음을 지킬 수 조차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17장에서 제일 많이 기도하시는 것은 제자들이 하나가 되는 기도입니다.
이런 생각 들으세요?
아니, 더 중요한 것도 많을 것 같은데 왜 그걸 기도해 주시지?
하나 되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가?
예수님이 우리가 하나 되기를 간곡히 기도하셨다면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첫째는 우리가 하나가 되는 것이 마지막까지 기도하셔야 할 만큼 중요하다는 것이죠.
둘째는 우리가 하나 되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뜻입니다.
셋째는 예수님께서 기도하셨으니 반드시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하나가 되라고 한다면 순진한 말을 하는구나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불가능하다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그런 말은 결혼식 주례사에서나 들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동상이몽이라는 말은 부부조차도 하나가 되지 못하는 걸 말해줍니다.
세상엔 하나됨이 없지만 하나님 나라는 그 본질이 하나됨입니다.
하나님나라에는 동상이몽을 꾸는 자가 없습니다.
하나가 되는 것이 뭐가 그렇게 좋을까, 뭐 그리 중요하냐는 생각은 하나님의 생각과 완전히 다른 것이죠.
서로 딴 마음을 품고 한 집에 사는 게 좋으시던가요?
나 혼자 신앙생활을 착실하게 하면 되지 않겠냐는 생각은 오늘 예수님의 기도에 비춰볼 때 전혀 바른 신앙이 아닙니다.
우리는 반드시 누군가와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 기도하신 내용을 통해서 이 하나됨에 대해 우리의 생각이 바뀌게 되길 기대합니다.
1. 누가 하나가 되어야 하는가, 어떻게 하나가 되는가에 대해서입니다.
1) 14절부터 16절까지는 하나가 되어야 할 사람들이 누구인지를 기도하십니다.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
우리는 세상에 속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세상과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너무 세상과 하나 되려고 애쓰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직도 내가 세상에 속해 있다고 생각하시면 안됩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어떻게 발을 담그고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 분리되어 살아갈 수가 있겠습니까?
눈으로 보고 듣는 이 세상이 얼마나 강력한 흡인력으로 우리를 빨아들이려고 하는데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17절에 기도하시는 것입니다.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로만 세상과 구별되어 거룩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진리의 핵심은 첫째는, 예수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신다는 것이 진리이고 그것을 구약성경에서부터 하나님이 계속 말씀해 오셨습니다.
19절에서 예수님이 그것을 이루시겠다고 기도하시는 것입니다.
또 그들을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그들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
여기서 예수님이 자신을 ‘거룩하게 하셨다’는 용어는 제사를 위해 구별된 제물에서 쓰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자신을 속죄물로 드리심으로 우리가 거룩함을 얻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죄인이 하나님의 속성인 거룩함을 가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예수님의 대속을 믿고 하나님께 속한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믿음으로 모든 죄에서 거룩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던 대로 이미 목욕을 한 사람들인 것이죠.
두 번째로, 진리로 우리를 거룩하게 하신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매일 거룩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발을 씻는 것이죠.
말씀을 매일 듣고 순종하는 것이 우리를 세상과 구별시켜 줍니다.
말씀을 가까이 하지 않는 사람은 세속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말씀을 항상 읽고 마음에 두고 살아가는 사람은 점점 세속의 천박함을 벗어나 고상하고 정갈해지는 것을 서로를 보면서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죠.
이렇게 진리의 복음을 믿고 거룩하게 된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2)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를 공유한 성도들은 삶에 동일한 기준을 갖게 되는 것이기에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주일을 거룩하게 지켜야 할 말씀을 함께 가졌기에 이렇게 하나님께 나와 예배하며 하나가 될 수 있는 것이잖아요?
같은 기준을 갖는다는 것은 하나 되는 데 가장 중요한 조건일 것입니다.
세상이 왜 일치되지 못하고 분열됩니까?
각자가 옳다고 생각하는 기준이 달라서입니다.
사람은 처음엔 잘 맞는 것 같다가도 얼마 안 가면 서로 안 맞는다고 싸우죠.
MBTI 검사는 사람 유형을 열 여섯가지로 구분하지만 사실 나랑 같은 유형은 아무도 없습니다.
나하고 똑같은 사람 만나본 적 있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나와 다른 것을 용납하는 게 참 힘듭니다.
다 내 생각대로 되지 않아서 매일 화가 나고 다툼이 있는 것이죠.
왜냐하면 나름대로 내게 옳다 생각하는 기준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회적으로 합의가 된 도덕, 교육, 양심, 경험, 종교, 그런 것들이 어우러져 각자가 옳다 생각하는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잣대가 사람마다 다를 수 밖에 없죠.
각자의 눈금으로 재니 시비가 가려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은 아무리 일치를 내세워도 분열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요즘 국정감사장이 그걸 증명해주잖아요?
달라도 어쩌면 그렇게 극과 극으로 다를 수가 있습니까?
모두에게 공평하게 적용되는 절대적인 진리는 세상에 없습니다.
정교하게 만들어졌다는 법도 허점투성이고 원고나 피고나 다 억울하다고 합니다.
아무리 그 시대와 사회에서 옳다고 여겼던 것도 세월이 가면 변합니다.
절대적 진리는 항상 옳고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런 걸 사람은 만들어 낼 수가 없습니다.
과학의 법칙이나 수학의 법칙, 우주의 법칙 같은 것들이 변하지 않는 것은 그것을 하나님께서 만드셨고 그대로 보존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변하지 않는 진리는 하나님께로 부터만 나온다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성경이라는 진리를 동일한 기준으로 가진 사람들입니다.
서로의 의견이 다르다면 성경을 꺼내서 무엇이 옳은지를 판단해서 같이 따르면 되는 것이죠.
그래서 하나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내 기준으로 보면 가족도 안 맞고 항상 다툴 수 밖에 없습니다.
어떤 큰 싸움도 사실 예수님이 기준으로 주신 말씀 하나면 끝낼 수 있습니다.
남에게 대접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
이 말씀대로 내가 가족에게 존중받고 싶으면 상대를 존중하자로 얼마든지 싸움을 멈출 수가 있는 것이죠.
사람들이 하는 게 눈에 거슬리고 자꾸 다툼이 있다면 너무 내가 가진 잣대로 살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잣대로 살게 되시길 축복드립니다.
그러면 가정에서도 교회에서도 일터에서도 싸우고 깨지는 소리 대신 화목한 웃음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다투며 사는 게 얼마나 힘든지 잠언에서 이렇게 말씀하죠.
잠언 21장9절 다투는 여인과 함께 큰 집에서 사는 것보다 움막에서 혼자 사는 것이 나으니라
다툼없이 하나가 되려면 우선 진리로 거룩해져야 합니다.
그리고 진리를 동일한 삶의 원칙으로 삼는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이런 성도들이 가정에 모이고 교회에 모이고 일터에 함께 할 때 서로 얼마나 큰 격려와 힘을 받게 되는지 모릅니다.
그런 성도들은 서로를 위해서 기도하며 끊임없이 수고하며 섬깁니다.
성도가 하나 되고 서로 사랑으로 섬기는 것은 결코 별거 아니지 않습니다.
우리가 알게 모르게 그 힘으로 믿음을 유지하고 성장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사도행전과 서신서에서 성도 간의 하나 된 사랑의 위력을 확인할 수 있잖아요?
교회 공동체에 속해서 함께 동반 성장해 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또 내가 만나는 사람들과도 복된 하나됨을 위해서 그 분들이 진리로 거룩하게 되도록 진리되신 예수님께로 인도하시길 축복드립니다.
2. 더 놀라운 것은 하나님과 예수님, 그리고 우리가 하나가 되기를 예수님이 기도하신 것입니다.
21절,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아버지가 예수님 안에 계시고, 예수님이 아버지 안에 계신 것은 이해가 되죠.
성부하나님과 성자하나님은 완전히 일치되십니다.
그런데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먼저 우리가 하나님의 일치처럼 결국 그렇게 될 것을 기도하신 것입니다.
놀랍죠.
이렇게 달라서 괴로운 우리가 결국은 하나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그렇게 하나 된 우리도 하나님 안에 있게 하시자는 것입니다.
이게 얼마나 굉장한 기도인지 실감이 잘 안나죠.
하나님의 연합 속에 우리도 끼워주시자는 것입니다.
‘이리 와, 우리 다 같이 하나 하자.’
피조물인 우리가 어떻게 그런 하나님의 연합에 가담할 수가 있는 것인지 우리는 가늠이 안되죠.
이것이 하나님이 태초부터 갖고 계시던 생각이십니다.
우리를 특별히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셨다는 것은 그런 가족과 같은 천국을 생각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천국에서 영원히 하나님을 섬기며 살 것입니다.
그 섬김은 수종 드는 천사들처럼 섬기는 게 아닙니다.
자식이 깊이 존경하는 아버지를 섬기듯 그렇게 섬기는 것입니다.
그걸 위해서 하나님의 본체이신 예수님이 스스로 맏아들이 되셔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를 형제라고 부르신 것입니다.
천국은 부족함이 없이 찬란하고 영광스러운 곳이란 걸 다 아시죠?
그런데 천국이 그것 뿐이라면 에덴동산의 반복일 뿐입니다.
우리가 가는 천국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유일한 아들을 속죄의 제물로 내어 주신 하나님에 대한 고마움과 신뢰로 무한히 행복한 곳입니다.
나를 위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십자가를 끌고 갈보리로 가신 예수님의 사랑을 절실히 알 것이기에 그 사랑으로 항상 벅찬 그런 곳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확인했고 만끽하기에 그곳에서는 더 이상 에덴동산과 같은 반역의 죄가 반복되지 않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그렇게 섬기고 그 은혜를 누리는 그 맛을 지금부터 알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마음의 평안, 인생문제 해결, 성공, 이런 것이 최우선이 아닙니다.
만일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 간에 이것만이 목적이라면 그 사람은 지탄을 받을 것입니다.
의미 있는 관계일수록 사랑이 기본이 되지 않으면 비난을 받죠.
아가서에서 얼마나 사랑의 관계를 뜨겁게 진술합니까?
아가 8장7 많은 물도 이 사랑을 끄지 못하겠고 홍수라도 삼키지 못하나니 사람이 그의 온 가산을 다 주고 사랑과 바꾸려 할지라도 오히려 멸시를 받으리라
마땅히 사랑해야 할 관계에 다른 어떤 목적이 끼어들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지나며 눈인사나 하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비난하지는 않죠.
내가 은혜를 입은 하나님께 존경과 사랑보다 다른 목적만을 생각한다면 멸시를 당할 일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함께 하나가 되자, 사랑하자’ 하시는 데 ‘됐고요. 이 발등의 불이나 좀 꺼주시고, 이 문제나 들어주세요’
설령 그 문제로 아버지께 왔다 해도 이런 관계에 그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 신앙은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하나님과의 사귐이고, 서로 믿고 신뢰를 쌓아가는 것입니다.
사람을 사귀는 것 같이 매일 매일 쌓아가야 합니다.
이렇게 예배드리고 말씀을 듣는 지금도 하나님과 진지한 관계를 맺어가는 것입니다.
이런 사귐이 예수님의 기도로 응답되었기에 이미 가능합니다.
돌부처하고는 백날을 마주하고 앉아 있어도 안됩니다.
죽은 우상이기 때문이죠.
하나님 앞에 앉으면 실제로 마음이 주님께 닿고,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인자하심을 영으로 느끼며 그런 교통이 가능합니다.
세상의 신자들이 얼마나 많은 데 하나님이 나 같은 사람 하나와 그런 일대일 사귐을 원하실까 의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러십니다.
하나님이시기에 그게 가능하십니다.
우리의 머리털까지도 세신다고 하셨잖아요?
주님 앞에 앉으면 어둠 속에서 한줄기 빛과 같이 하나님의 임재가 반드시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이런 교제와 사귐이 없다면 교회 봉사나 전도나 다른 어떤 희생도 무익하고 내 영이 성장하지 못합니다.
의지를 다해 살아가던 강한 사람도 어느날 마음에 작은 균열이 생기고 모든 게 속절없이 무너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사귐에서 받는 짧은 은혜가 힘든 인생에도, 지루하게 목을 조이는 일상에도, 살아갈 의미와 기쁨을 줍니다.
이런 기쁨이 없기에 우리나라도 점점 마약사회가 되어가는 것입니다.
매일 숨가쁘게 바쁜 일정 속에서 다른 데 신경 쓸 여력도 없이 살아가시죠?
그것으로 인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소원해지면 삶은 점점 더 힘들고 기쁨도 사라져갑니다.
하나님과의 사귐에서 오는 기쁨과 은혜가 없이 어떻게 세상을 살아갈지 저는 상상도 하고 싶지 않습니다.
우리의 힘으로 세상을 상대하는 것이 얼마나 위태한지를 알기에 더욱 성도님들이 예수님과의 교제 속에서 살아가시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바라기는 우리의 신앙이 이렇게 살아계신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님 안에서 점점 더 깊은 사귐을 누리게 되길 간절히 축복드립니다.
3. 성도들이 하나됨으로 인해 세상이 하나님을 알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세상 가운데 있던 하나님의 백성들이 교회로 모이는 것입니다.
23절, 곧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우리가 하나가 되는 것은 예수님께서 하나님께로부터 오셨다는 표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하나됨은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심을 증거합니다.
왜냐하면 세상이 하나될 수 없는 그것을 예수님 안에서는 해 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직장 관계, 동호회, 친척, 동창생, 어떤 공동체보다 성도들끼리는 진심으로 하나가 될 수 있잖아요?
이것은 앞에서 말씀하셨던 13장35절 말씀과 같은 것입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또 우리가 서로 하나되어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증거라는 것입니다.
사랑을 받아 본 사람이 사랑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가정은 서로 하나가 됩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교회는 서로 하나가 됩니다.
세상에 있는 것으로는 세상이 본 적 없는 하나님의 실존을 증거할 수가 없습니다.
세상에 없는 것을 보아야 세상은 하나님을 인정하게 된다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가 조심해야 합니다.
서로 교회를 안 좋게 말하고 교인들의 험담을 하는 것은 세상 사람들 앞에서 천국 문을 닫는 것입니다.
또 우리끼리 사랑하는 데 그치면 오히려 세상에 비난을 받게 됩니다.
그런 사랑은 누가 봐도 이기적이고 세속적인 것이지 하나님께 아니잖아요?
전에 개그우먼 김지0 씨가 기독교방송에 나와서 쓰린 경험을 얘기하며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 분이 자녀가 좀 많습니다
그래서 14년 동안 아예 집에서 함께 살며 아이들을 돌봐주시는 분이 있었다고 합니다.
아이들 봐주시던 분이 일을 그만두고 떠나기 전에 김지0 씨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내가 왜 교회 안 나가는 줄 알아? 못된 당신 때문에 내가 교회 안 나가는거야’
이런 말을 하고 떠났다는 거예요.
그 말에 너무 충격을 받고 자기가 달라지는 계기가 되었다고 하더군요.
떠난 분이 뭔가 편견을 가졌을 수도 있지만 우리가 사랑이 없을 때 천국문을 닫을 수 있다는 것이죠.
교회가 하나된다는 것은 결집해서 세상을 향한 큰 힘을 과시하는 걸 말하는 게 아닙니다.
보수기독교라는 사람들이 모여서 확성기로 독설을 퍼붓고 무력을 행사하는 그런 모습은 세상사람들 앞에서 천국문을 단단히 가로막는 결과가 된다는 게 안타까운 사실입니다.
우리가 진리는 타협할 수 없지만 진리를 전하는 방식은 항상 내가 죽고 네가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살았잖아요?
우리는 이미 살았기 때문에 죽은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서 죽어도 된다는, 이 세상에 없는 사랑으로만 하나님을 증언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예수님이 하나되길 기도하신 것은 우리 힘으로는 하나될 수가 없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기도대로 우리가 하나가 될 수 있게 된 것은 성령을 보내주셨기 때문이죠.
성령님은 우리를 하나되게 하십니다.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 바울사도는 권면하죠.
성령께서는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로 묶어 주셨지만 우리 편에서 할 일은 그것을 굳게 지켜야 합니다.
하나가 되는 것은 사소한 것까지 일치하라는 게 아닙니다.
그렇게 될 수도 없고 될 필요도 없습니다.
사람과의 모든 관계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하면 되는 것입니다.
모두가 오직 하나, 예수님이 주시는 잣대만 가지시길 축복드립니다.
그렇게 하고 싶지 않고, 그렇게 하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님과의 교제가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과도 화목할 수 있는 힘은 하나님과의 교제에서 옵니다.
하나님과 매일 하나됨을 누리고 그 힘으로 세상을 화목하게 살아가는 모두가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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