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outube.com/watch?v=CxoHS3Jp4m8
오늘 말씀은 전쟁으로 얻은 땅을 지파별로 분배하는 내용입니다.
어쩌면 지금까지의 전쟁보다 더 큰 전쟁이 일어날 수 있는 중대한 일이죠.
이스라엘 땅은 기름진 땅과 사막 땅과 산악지대 등 변화무쌍한 지형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다들 비옥한 땅을 원하지 사막지대를 원하는 지파는 없을 것입니다.
똑같이 싸웠는 데 저 사람이 나보다 더 비싼 땅을 얻었다면 어떻겠습니까?
분배 잘못하면 다 분열됩니다.
오늘 땅분배는 그렇기에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으로 행해집니다.
뒤에 보면 거의 잡음이 없이 땅 분배가 끝납니다.
사실 지금 가나안의 모든 땅을 정복한 것은 아닙니다.
오랜 전쟁에 이스라엘의 투지는 약해졌고 전쟁은 소강상태로 접어들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차지할 가나안땅의 사방 경계를 정해 주시고 우선 그 땅을 답사해서 지도로 그려오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 땅을 분배하십니다.
어릴 때 땅따먹기 놀이도 아닌 데 그게 어떻게 가능합니까?
하나님이 뜻하셨다면 이루실 것이기에 그게 가능한 것입니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들의 실상이란 히브리서 말씀이 떠오르죠.
하나님이 성도들 각자를 위해 그려 놓으신 땅이 있습니다.
시편16편에서도 내 기업을 줄로 재어 주셨다고 하잖아요?
살아온 날들을 돌아보면 우리가 참 많은 곳들을 밟고 다녔습니다.
모든 땅이 다 좋은 기억으로 남은 것은 아닙니다.
그때 그것을 선택하지 말아야 했는 데, 그곳에는 머물지 말아야 했는데 하는 후회도 있죠.
앞으로도 우리가 밟을 땅은 또 얼마나 많겠습니까?
지금 내게 있는 것이 전부일 거라고 생각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다만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는 축복 된 땅을 잘 찾아가야 할 것입니다.
오늘 200만 전 국민에게 앞으로 정착해서 살 고향과 땅을 정해주는 일은 어느 나라의 역사에도 찾아 볼 수 없는 전무후무한 프로젝트죠.
부동산에는 별로 관심들 없으시죠?
오늘 이 흥미로운 땅 분배를 살펴보고 잘 배워서 이 땅에서 다들 복된 기업을 받으시길 축복드립니다.
1. 땅 분배는 철저히 하나님이 정해주신 원칙을 지켜서 행해졌습니다.
먼저 이 땅 분배를 주도한 사람들이 누구냐를 밝힙니다.
1절을 보면 제사장 엘르아살이 먼저 나오고, 여호수아, 그 다음엔 지파의 대표자들이 분배 작업에 함께 했다고 합니다.
이것은 이미 모세를 통해서 지정해 주신 룰 대로 시행한 것입니다.
그 내용은 이전 민수기34장에 나옵니다.
16절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17절, 너희에게 땅을 기업으로 나눌 자의 이름은 이러하니 제사장 엘르아살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니라
18절, 너희는 또 기업의 땅을 나누기 위하여 각 지파에 한 지휘관씩 택하라
오늘 이 말씀 그대로 행한 것이죠?
여호수아가 원칙을 정한다면 불만을 가진 사람들도 나올 것입니다.
내 땅이 어디가 될지 초미의 관심사잖아요?
하나님께서 직접 모세를 통해 원칙을 정해 놓으신 것입니다.
모든 시비를 가리는 기준, 문제를 해결하는 기준을 우리도 항상 기록된 지혜로우신 하나님의 말씀에서 찾아야 합니다.
제사장 엘르아살은 광야에서 죽은 대제사장 아론의 아들입니다.
제사가 아닌 땅 분배에 제사장이 제일 먼저 언급된 것이 의외죠?
가나안땅에서 사는 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에 핵심이 있다는 것을 명시하시는 것입니다.
성도에게는 삶이 곧 제사인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터전이 단지 먹고 사는 데 목적이 있지 않습니다.
민수기34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각 지파의 대표자도 아예 지명하십니다.
백성들이 가장 민감하게 생각할 문제이기에 모든 것이 하나님의 주권 안에 있게 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정해진 사람들이 땅을 나누는 방법도 2절에 나오는 대로 제비뽑기입니다.
사람들이 가벼운 문제 해결은 가위 바위 보로 정할 때가 많죠.
거기서도 야비한 게 나오긴 하지만 대개는 결과에 순복합니다.
본문에서 제비뽑기는 그런 복불복이 아니라 하나님이 정해 주시는 것입니다.
민수기27장을 보면 이런 말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엘르아살은 여호수아를 위하여 우림의 판결로써 여호와 앞에 물을 것이며
국가의 중요한 사안에 대해 하나님께 물을 때 대제사장 엘르아살이 우림의 판결을 사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림과 둠밈은 대제사장이 가졌던 판결의 돌입니다.
예스와 노의 역할을 하는 두 개의 돌을 뽑아서 하나님의 뜻을 받았을 것입니다.
엘르아살이 증인들이 보는 가운데 우림과 둠밈의 돌로 제비를 뽑아 하나님의 뜻대로 땅 분배를 했던 것이죠.
당시 우림과 둠밈은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신정정치의 표징입니다.
곧 하나님이 각 지파에게 직접 땅을 분배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시므온 지파 같은 경우는 남쪽 사막지대를 얻지만 불평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 땅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선물이지 자기가 돈 주고 산 것도 아니잖아요?
그 당시도 땅은 다 돈 주고 매매했습니다.
물론 사람이 하는 일에 당연히 잡음이 있었겠죠.
뒤에 보면 요셉지파가 분배 받은 땅이 인구수에 비해 비좁다고 땅을 더 달라고 요구합니다.
그때 여호수아는 단호하게 ‘너희는 용맹한 지파니 땅이 좁으면 얼마든지 더 정복하라’고 선을 긋습니다.
땅을 분배하신 것이 하나님이시기에 여호수아가 다시 손 댈 수 없는 것이죠.
이렇게 40년 광야생활과 가나안 정복을 위한 긴 전쟁이 끝나고 이스라엘 자손들이 드디어 땅과 내 집을 갖게 되었습니다.
신명기 10장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던 대로입니다.
10절,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건축하지 아니한 크고 아름다운 성읍을 얻게 하시며
11절, 네가 채우지 아니한 아름다운 물건이 가득한 집을 얻게 하시며 네가 파지 아니한 우물을 차지하게 하시며 네가 심지 아니한 포도원과 감람나무를 차지하게 하사
하나님이 오백여년 전에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그 가나안땅을 이제 자손들이 차지하고 누리게 된 것입니다.
그 사이 사백여년 애굽에서 뼈 빠지게 종살이를 일했지만 자기 땅은 손바닥 만큼도 얻지 못했었죠.
하나님이 그 세월에 소득 없이 고생한 모든 것을 약속의 땅에서 마음껏 누리며 살게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받은 약속의 땅은 천국만이 아닙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차지하는 기업도 예수그리스도의 복된 약속 안에 포함됩니다.
애굽의 종살이와 같은 게 하나님 없이 사는 세상살이입니다.
영혼을 갈아 넣을 만큼 전력을 다해도 그게 다 내 것이 안됩니다.
그렇게 일한 만큼 소득이 쌓인다면 가난한 사람이 왜 생기겠습니까?
묘하게도 버는 돈은 적고 나가는 돈은 많은 게 세상살이입니다.
떼돈을 벌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언제 먼지처럼 날아가고 빚더미에 앉게 될지 모릅니다.
우리가 믿어도 좋은 것은 우리 인생의 핸들을 하나님께서 맡으시면 적자 인생이 흑자인생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적자로 출발했다 흑자가 되었기에 이 사실이 너무나 믿어집니다.
예수님을 진실되게 믿고 따르는 성도에겐 인생의 어려움을 만난다 해도 결국 다시 일어나게 됩니다.
아직 힘들어도 지나가는 과정이니 낙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끝까지 따르면 반드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바뀌게 된다는 것을 믿고 기도하며 잘 이겨내시기를 바랍니다.
2. 하나님이 정해 주시는 땅은 제비뽑기로 분배 되었지만 그 안에는 하나님의 평가가 반영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그리고 지파에 따라 예외가 있었습니다.
충성한 자에게 좋은 것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바로 오늘 본문에서 갈렙의 경우입니다.
땅 분배에 착수하기 전에 갈렙이 여호수아를 찾아옵니다.
땅을 제비뽑기 전에 자기에게 헤브론 땅을 줄 것을 요청하죠.
이것은 하나님이 정하신 제비뽑기 원칙에 위배 되는 일입니다.
갈렙이 왜 그게 타당한지를 6절부터 12절까지 소상하게 설명합니다.
그 이유는 40년 전 있었던 가나안 정탐 사건 때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스라엘이 잊을래야 잊을 수가 없는 사건입니다.
40일간 가나안땅을 샅샅이 정탐하고 돌아온 지휘관들이 가나안땅은 이미 거대한 아낙자손이 살고 있고, 철병거가 있고, 성벽은 하늘 높이 솟아있어 정복이 불가능하다는 보고를 하죠.
그때 갈렙과 여호수아만이 현실은 그렇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이길 수 있다는 충성스런 보고를 합니다.
올라가서 땅을 차지하자는 여호수아와 갈렙의 말에 분노한 군중들이 돌을 들어 치려는 순간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셨습니다.
아니면 여호수아와 갈렙과 모세와 아론이 그날 생명을 잃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출애굽한 뒤 계속 하나님을 믿지 않고 열 번씩이나 하나님을 모욕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광야 40년 형벌을 선고하십니다.
바로 그날 하나님이 자기에게 약속하신 것을 달라는 것입니다.
네가 죽지 않고 가나안땅을 밟을 것이고, 네 발로 밟았던 그 헤브론 땅을 너와 네 자손의 기업으로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는 것이죠.
여기서 하나님의 땅 분배의 원칙은 무조건 평등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가나안땅에서 사는 것은 누구나 평등하게 주어 지지만 그들의 소유가 꼭 똑같이 나누는 1/n이라는 개념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제비뽑은 순서에서도 15장에서 유다지파가 나오고 16장에서 에브라임과 므낫세지파가 나옵니다.
갈렙은 유다지파고 여호수아는 에브라임지파입니다.
제일 먼저 이 두 지파가 제비를 뽑아서 땅을 분배받은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땅을 분배받을 때 각자의 헌신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가 고려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대속을 믿는 우리는 모두 공평한 구원을 받습니다.
모두가 축복의 땅 가나안에서 살게 되는 것과 같은 것이죠.
그것이 예수님이 말씀하신 포도원 품꾼의 비유입니다.
아침 일찍 농장에 뽑혀 가 종일 땀흘려 일한 품꾼이나 인력시장이 문 닫을 시간에 운 좋게 뽑혀 들어가 한 시간 일한 품꾼이나 농장 주인이 똑같이 하루 품삯인 일 데나리온씩 주었다는 비유잖아요?
인간의 구원은 사람의 노력과 공로에 상관없이 믿는 자들에게 똑같이 주시는 은총입니다.
누가 좀 더 수고하고 헌신했다 정도가 구원에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인간의 노력이 아무리 대단하다 해도 크고 영광스런 구원 앞에 내놓기도 부끄러운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달란트 비유에서 수고한 대로 차등 있는 댓가를 약속하십니다.
그것은 구원받은 성도들 가운데서도 더 큰 기쁨과 영광이 될 그 어떤 보상이 있지 않을까를 상상하게 합니다.
여호수아는 갈렙의 말을 듣고 자기와 함께 정탐했던 그 땅을 노년의 갈렙이 잘 싸워 소유하도록 축복하고 배당합니다.
특별분양인 것이죠.
그렇게 해서 헤브론은 갈렙과 그 자손의 기업이 된 것입니다.
지금도 헤브론은 인구 20만명 이상이 거주하는 큰 도시입니다.
지난 주 노동연구원에서 발표한 한 논문에 대한 기사가 났습니다.
흙수저·금수저 등 이른바 ‘수저 계급’이 세습된다는 연구 결과입니다.
익히 알던 바죠.
조사 결과 자녀의 청소년기에 부모 소득이 많을수록 나중에 자녀의 임금 수준도 높아진다고 합니다.
물려 받을 재산만 차이나는 게 아니라 자식들 월급에서도 차이가 난다는 것이죠.
우려했던 대로 부의 대물림, 가난의 대물림이 우리 사회에 고착화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차이가 우리 나이 때에 비해 지금 우리 자식들에게는 훨씬 더 크다는게 지표로 드러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평생 하나님을 섬기고 충성되게 살았다면 자식들에게 적은 월급살이를 물려줄까 걱정마시기 바랍니다.
수많은 성도들의 간증이 공통적으로 말해주는 게 있습니다.
부모세대의 믿음의 충성이 자녀들에게 복이 된다는 것입니다.
갈렙의 경우를 보시겠습니까?
본문 6절을 보면 갈렙을 소개하는 말이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라고 합니다.
갈렙이 유다지파에 속해 있지만 원래는 그니스족이었다는 것이죠.
그니스족은 야곱의 형 에서의 후손입니다.
그런 갈렙의 가족이 어떻게 이스라엘의 유다지파가 되었을까요?
갈렙이라는 이름에서 추측해 볼 수가 있습니다.
갈렙이라는 이름이 히브리어로 ‘개’라는 뜻입니다.
현대 히브리어도 똑같이 ‘개’입니다.
아무리 이 단어에 충성되다라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도 이름 자체는 ‘개’입니다.
그걸 보면 갈렙이 이스라엘 자손들 중에 섞여서 종처럼 살던 여러 잡족 중 하나였다가 유다지파로 귀화했다고 짐작할 수 있는 것이죠.
그렇지만 갈렙이 하나님께 충성함으로 유다지파의 대표가 될만큼 유력한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가나안땅에서도 가장 위엄있는 헤브론 산지를 갈렙의 가문이 누리며 살게 되었습니다.
사사기에 보면 첫 번째 사사가 옷니엘입니다.
사사기3장9절에 이렇게 소개합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한 구원자를 세워 그들을 구원하게 하시니 그는 곧 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이라
갈렙의 가문이 믿음의 가문으로 이스라엘을 위해 계속 기여한 것입니다.
우리가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은 갈렙이 정복한 헤브론이 나중에 다윗의 왕도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울왕이 죽은 뒤 하나님이 다윗에게 이 헤브론으로 올라가라고 지시하십니다.
다윗이 헤브론에서 왕이 되고 칠년 반 동안 이 헤브론에서 다스립니다.
갈렙은 다윗의 왕도를 예비해 놓았던 것이죠.
모든 성도들의 충성은 다윗의 후손이신 예수님의 왕권에 수종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기억력이 너무 좋으셔서 성도의 충성을 절대로 잊지 않으시고 자손들에게까지 그 복을 계속 내려 주신 것입니다.
세상 친구들이 우리를 향해 뭐 그렇게 까지 교회에 충성하냐고 한다면 그것이 나와 내 자식에게 복이 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수두룩한 불신자들 속에서 주일을 지키고 여러모로 하나님을 섬기고 헌신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봉사를 절대로 당연시하지 않으십니다.
사람들은 혹 잊을지라도 하나님은 갈렙을 축복하셨듯이 우리와 우리의 자식들을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3. 갈렙이 약속받은 헤브론 산지를 요구한 속뜻에 대해서입니다.
12절에서 갈렙의 말대로 헤브론은 아직 정복하지 못한 성읍입니다.
그곳은 정탐 당시 지휘관들이 사색이 되어 보고했던 거인족 아낙자손이 살고 있는 바로 그곳입니다.
아무리 강건하다 해도 갈렙의 나이가 85세입니다.
왜 굳이 힘든 전쟁을 치르고 차지 해야 되는 헤브론을 달라고 한 것일까요?
지난 주 정복했던 북쪽 지방은 갈릴리 호수와 요단강 상류의 수원이 풍부하고 기름진 좋은 땅입니다.
제가 이스라엘을 가 보았을 때 예루살렘은 거의 돌만 보이는 도시인 반면 북쪽 갈릴리 지방은 요단강물이 햇빛에 반짝이고 주변의 초목까지 반들거리는 너무나 풍요로운 곳이었습니다.
상이라면 그런 곳을 달라고 해야죠.
갈렙이 원하는 헤브론은 중남부의 산악지형입니다.
강력한 요새는 대개 산악지형에 세워져 있죠.
이 헤브론 요새를 갈렙이 정복해 소유하고자 한 이유가 있습니다.
40년전 정탐 보고에서 이스라엘을 절망에 빠트렸던 민족이 바로 이 헤브론의 아낙자손이잖아요?
우리는 그들 앞에서 메뚜기같다는 말에 일제히 울부짖었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도 이스라엘이 이 헤브론을 다 정복하지 못했던 것이죠.
가나안의 몸통인 아낙자손이 헤브론에 살고 있는 한 가나안의 평화는 보장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보아하니 모든 지파들 중 이 아낙 사람들에게 올라가 정복할 사람들은 아무도 없습니다.
아낙자손을 물리치려는 꺾이지 않는 마음은 40년 전이나 지금이나 갈렙 뿐이었던 것이죠.
우리도 변하지 않는 갈렙처럼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갈렙은 40년 전 하나님이 아낙자손을 이기게 하신다던 그 말씀이 가능했다는 것을 지금 자신이 증명해 보이려는 것입니다.
85살에도 이겼으니 40년 전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는 것이죠.
갈렙이 요구한 헤브론은 이스라엘에겐 아주 의미가 있는 장소입니다.
오백년 전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 갈대아 우르에서 가나안에 들어와 정착한 곳이 헤브론입니다.
아브라함은 거부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땅을 주실 때를 바라보며 자기 돈으로 땅을 사지 않았습니다.
집도 짓지 않았습니다.
가나안부족들의 성읍 밖에서 장막을 치고 살았습니다.
왜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치하하는 지 다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이 헤브론에 유일하게 조그만 땅, 막벨라 밭과 굴을 매입해 가족묘로 사용합니다.
아브라함과 사라, 이삭과 리브가 그리고 야곱과 레아가 묻힌 곳이 바로 이 헤브론의 막벨라 굴입니다.
가슴이 웅장해지고 감동이 오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약속의 땅을 자손들에게 주신다는 말씀을 믿고 하나님이 주실 때까지 자기 힘으로 땅을 소유하지 않은 것입니다.
돈 주고 사서 물려주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땅을 반드시 자손들에게 주실 것을 믿고 작은 동굴에 몸을 눕힌 것입니다.
이 조상들의 묘소가 아낙자손의 성읍 안에 있는 것입니다.
당연히 이스라엘이 차지해야 하는 것이죠.
현재 헤브론은 이스라엘과 아랍연합국이 나누어서 차지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가족묘지는 이스라엘의 영토 안에 있어서 성지순례객들이 많이 방문하고 있습니다.
갈렙은 살기 좋은 곳을 다른 사람들보다 더 먼저 소유하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 해야 한다면, 그리고 내게 믿음과 실력을 주셨다면 하나님을 위해서 내가 하겠다는 것이죠.
이런 것이 충성입니다.
갈렙은 지금 팔십오세가 된 자기가 여전히 강건하다고 합니다.
이것은 그냥 믿음으로 하는 말이 아닙니다.
실제로 갈렙이 아낙자손을 상대로 싸울 만큼 강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것이 어떻게 가능했습니까?
갈렙이 광야생활에서부터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냐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사실 갈렙과 여호수아는 아무 잘못 없이 큰일을 할 수 있는 황금기 40년을 광야에서 허비한 것입니다.
40년, 얼마나 긴 세월입니까?
갈렙은 80살이면 나는 다 끝났다고 그 세월을 허송세월 하지 않았습니다.
40년 뒤, 하나님의 약속대로 그 성을 정복하기 위해 체력을 단련하고 무기를 훈련하고 하루하루를 가나안 전쟁에 대비했던 것입니다.
준비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약속이 있다 해도 얻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 이루실 계획들을 성취하려면 우리가 매일 최선을 다해 준비하고 기회가 오는 대로 믿음으로 정복해 가야 합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광야에서 죽은 출애굽1세대는 가나안땅이 하나님이 왕이 되어 다스리시는 곳이라는 데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가나안 땅이 노예 생활만을 벗어난 제2의 애굽인 줄 알았던 것이죠.
그렇기에 광야에서 어려운 일만 있으면 뭐가 이익인지를 따져서 애굽으로 돌아가려 했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풍성한 축복만 누리면 되는 것이기에 가나안에 아낙자손이라는 어려움이 있으면 바로 애굽으로 유턴하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이 되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우리에게 약속하신 헤브론과 같은 산지는 무엇입니까?
그것을 취하기 위해서 갈렙과 같이 소망을 버리지 말고 준비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 곳은 하나님의 통치가 이뤄지는 데 의미가 있는 곳입니다.
우리에게 이 세상의 기업을 주셨다면 그곳에서 하나님의 통치가 이뤄지게 살아야 합니다.
나의 인생에 하나님의 통치가 이뤄질 뿐아니라 내 가족과 이웃들에게도 하나님의 통치가 이뤄지도록, 그들도 하나님의 자녀들이 될 때까지 충성하며 살아가는 모두가 되시길 축복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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