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사순절, 어린나귀를 타신 예수님 (요한복음12장12절-16절)

남수연 2024. 2. 29. 21:14

지금은 사순절 기간입니다.

사순절은 부활절 전 40일간을 정해 예수님의 고난을 묵상하며 경건하게 보내는 기간입니다.

교회가 오랜 전통으로 지켜 온 절기입니다.

사순절 기간 수요기도회는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기 위해 예루살렘에서 지내신 마지막 주간에 있었던 일을 나누려고 합니다.

이때는 유월절 절기였기에 명절을 지키기 위해 전국에서 유대인들이 성전으로 올라오던 시기였습니다.

12절을 보면 사람들이 예수님을 맞이하는 분위기가 아주 뜨거웠던 것을 알 수 있죠.

 

1.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문으로 들어오실 때 오신다는 소문을 들은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환영합니다.

13,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외치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더라

우리는 잘 아는 말씀이라 별다른 생각없이 이 부분을 읽어버리죠.

그런데 예수님을 향한 유대인들의 이 행동과 이들이 외치는 말은 그냥 흥분해서 열광하는 소리가 아닙니다.

당시 이스라엘 민족들이 고대하던 메시아가 누구인지가 정확하게 담겨 있습니다.

1) 사람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환영합니다.

왜 하필 종려나무 가지로 주님을 맞이했을까요?

종려나무 형상은 솔로몬 성전의 내부 벽에 아로새겼던 문양입니다.

종려나무는 하나님을 섬기는 상징적인 식물인 것이죠.

사람들이 오늘 종려나무 가지를 흔든 것은 길거리에 널려있는 나무라서가 아닙니다.

본문을 보면 그들이 종려가지를 준비해 가지고 와서 예수님을 맞이했다고 하죠.

예수님이 하나님이신 것까지는 아직 몰랐지만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야로 인정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을 환영함과 동시에 언약을 지키신 하나님께 찬송하는 것이죠.

또 종려나무는 하나님이 주시는 풍요와 안전의 의미로 성경에서 사용됩니다.

시편 9212 의인은 종려나무 같이 번성하며 레바논의 백향목 같이 성장하리로다

하나님이 이제 메시야를 통해 우리에게 번영과 평화를 주실 것이라는 기대감과 소망으로 종려가지로 환영을 한 것입니다.

우리도 성전에 아로새겨져 하나님의 영광을 섬긴 종려가지처럼 주님의 영광을 찬양하며 섬기길 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우리의 삶을 종려나무처럼 번성하게 해 주시리라 확신합니다.

 

2)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이십니다.

이것은 단지 민족 중에 우연히 탄생한 위대한 인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에서 예언자들을 통해 수없이 약속하셨던 메시야, 하나님의 이름으로 그 뜻을 행하실 분이시라는 뜻입니다.

 

3) 이스라엘의 왕이십니다.

이런 말은 정말 그들이 쉽게 할 수 있는 말이 아닙니다.

일단 지금은 로마황제가 통치하고 있잖아요?

예수님을 이스라엘의 왕이라고 부른다는 것은 명백한 반란입니다.

유월절 명절에 종종 있었던 민란에 대비해서 예루살렘에는 본디오빌라도 총독이 파견되어 나와 있는 상황입니다.

또 예수님이 무슨 근거로 갑자기 이스라엘의 왕이 되실 수가 있겠습니까?

당시 로마황제의 위임을 받아 이스라엘을 통치하던 왕은 헤롯왕입니다.

세상의 왕은 제도적인 절차를 거쳐 세상 권위에 의해 세워지죠.

로마제국이 예수님을 왕으로 임명한 것도 아니고 산헤드린공의회가 예수님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결정하지도 않았잖아요?

어떻게 아무 인과성도 없이 사람이 불쑥 왕이 됩니까?

오늘 모인 수많은 사람들은 종말에 이스라엘을 다스릴 그 메시야왕은 하나님이 직접 임명하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 많은 사람들이 지금 위험한 고백을 하고 있는 것이죠.

정말 예수님을 오랜 역사 속에서 기다려온 그 다윗의 후손이라고 그 정도로 확신을 했었다는 걸 알 수 있는 것입니다.

 

4) 당시 평범한 이스라엘 사람들이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성경대로 알고 있었다는 게 너무 놀랍습니다.

오늘날 신자들 중에 예수님을 이 정도로 인지하고 고백할 수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요?

오래 전에 어떤 성도님이 아주 진지하게 이렇게 묻더군요.

목사님, 그런데 예수님이 어떻게 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거예요?

누가 그렇게 한 거예요?

진짜 용기를 내어 솔직하게 물으셨다고 생각합니다.

이분만 이러실까요?

오늘 말씀을 다시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군중들의 외침 속에는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아주 정확히 지칭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눈으로 직접 볼 수도 없고, 말씀을 직접 들을 수도 없잖아요?

그러니만큼, 끝까지 예수님을 믿으려면 당시 사람들의 말과 행위들을 통해서도 그들 중에 사셨던 예수님을 꼼꼼하게 이해하는 게 아주 중요합니다.

아는 만큼 믿어진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주님을 아는 일에 모두가 더욱 힘쓰시길 권합니다.

 

2. 예수님은 한 어린 나귀를 타고 성으로 들어오셨습니다.

14, 예수는 한 어린 나귀를 보고 타시니

예수님이 걸어서 오지 않으셨고, 말을 타고 오지도 않으시고, 어린 나귀를 타고 오셨다는 것입니다.

지금 광경은 열광하는 외침을 들어보아도 분명히 왕의 행차입니다.

그들 사이에서 예수님은 자그마한 나귀새끼를 타고 달그락거리며 지나가고 계십니다.

이 두 그림이 조화가 잘 됩니까?

그런데 이 두 장면이 예수님을 액면 그대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예수님만 보여주실 수 있는 모습입니다.

우리는 체면 차려야 하고 구색 맞춰야 돼서 절대로 그렇게 못합니다.

이 광경은 이미 스가랴선지자가 예언했던 장면 그대로입니다.

15, 이는 기록된 바 시온 딸아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너의 왕이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신다 함과 같으니라

1) 왕이 오시는 데, 그 분은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실 만큼 겸손하고 온유하시다는 것입니다.

이 예언이 그대로 실행하실 분이 메시야라는 것이죠.

메시야의 온유하심을 이 장면에서 알아보라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왕이 되려는 자는 무력으로 수많은 살상자를 내고 모두를 제압해야만 합니다.

그렇게 승리한 왕은 말 위에 높이 앉아 위풍당당하게 왕좌를 향할 것입니다.

그런데 너희 왕은 그렇지가 않다는 것입니다.

그분은 어린 나귀 새끼를 타고 오셔서 왕이 되신다는 것입니다.

유혈사태는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절대로 있을 수 없는 기이한 왕의 등장이신 것이죠.

메시야에게만이 이것이 가능합니다.

에스겔서에서 설명하듯, 두렵고 신비로운 그룹들을 타시던 전능하신 예수님은 작은 나귀새끼도 타실 수가 있는 것이죠.

어린 나귀새끼를 타고 오시며 자기 백성에게 나는 겸손하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위로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도 겸손하시다는 것을 생각하면 괜히 높은 마음을 가졌던 내 자신이 부끄럽죠.

예수님은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에게 와서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마음에 쉼이 없다면 겸손하지 않아서라는 뜻도 되죠.

교만하게 행동한 뒤 유심히 살펴보면 내 마음도, 사람과의 평안도 깨지고 불안과 불편함이 옵니다.

식욕이 본성이라 죽을 때까지 지속되듯, 교만한 마음도 인간에게 있는 죄의 본성이라 없어지지 않습니다.

다만 그것이 말과 행동으로 드러나지 않도록 항상 조심해야 하는 것이죠.

그렇기에 사실 성도들의 겸손은 다져진 개인기 같은 것입니다.

물론 성령께서 이것도 도와주셔야 가능하죠.

그런 겸손이나마 훈련하지 않으면 우리에게 갈등만 많고 쉼이 없을 것입니다.

또 아무도 우리를 그리스도인이라고 인정하지 않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우리가 얼마나 지혜로우냐, 강하냐, 교회를 자주 다니냐로 저 사람은 진짜 신자가 맞다고 평가하지 않습니다.

아마도 사람들이 결정적으로 보는 것은 겸손하냐 교만하냐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자꾸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려는 훈련을 하지 않으면 점점 주님과는 닮지 않은 신자가 되어갈 것입니다.

 

2) 예수님은 이렇게 겸손하시지만 사람들이 왕이시여라고 외치는 말에 겸손하게 손사래를 치지 않으십니다.

만일 주님이 그냥 한 겸손한 인간으로서 지금 사람들에게 왕의 추대를 받고 있다면 그러셨을테죠.

예수님은 본래 왕이시기에 그런 연호는 당연한 것입니다.

누가복음을 보면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왜 저런 신성모독의 말을 듣고만 있냐며 항의합니다.

그때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저들이 잠잠하면 돌들이 소리지를 것이라고 응수하십니다.

예수님이 왕이신 것은 돌들도 압니다.

세상의 진짜 왕이신 예수님이 세상에서 가장 겸손하셨다는 게 놀랍죠.

전 크리스천 정치인들이 남을 깎아내리고 사정없이 공격하는 그런 모습을 보면, 저기서는 저럴 수밖에 없는가 좀 안타깝습니다.

당당하고 정의로우면서도 겸손할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의 자긍심을 가질수록 더 겸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자꾸 남 보기에 힘을 주며 사는 것은 어쩌면 그만큼 가진 것이 빈약해서 일지 모릅니다.

다 가진 사람이라면 굳이 바깥에 힘주며 살지 않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부요하신 예수님을 가까이 할수록 힘주지 않아도 자존심 상하지 않고 다른 이들을 겸손하게 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3. 제자들은 이 날의 광경들이 너무 이상했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갑자기 어디 어디를 가서 나귀 새끼를 데려오라고 하실 때부터 왜 이러시나 이해가 안되었죠.

차라리 말을 한 필 구해오라고 하셨다면 이해가 됐을지 모릅니다.

16, 제자들은 처음에 이 일을 깨닫지 못하였다가 예수께서 영광을 얻으신 후에야 이것이 예수께 대하여 기록된 것임과 사람들이 예수께 이같이 한 것임이 생각났더라

예수님이 구속 사역을 다 완성하고 나니 구약성경의 모든 예언들이 퍼즐처럼 맞춰지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열심히 성경을 읽고 배우는 것도 하나님이 성경을 통해서 계시하신 예수님의 완벽한 그림을 갖기 위해서입니다.

사순절을 맞아 수요기도회에서 나누는 말씀을 통해서, 그리고 성도님들 각자 복음서를 잘 읽는 가운데 더 많은 퍼즐들을 맞춰가시길 바랍니다.

 

출애굽의 밤에 잡았던 유월절 어린양의 실체는 예수님이시죠.

천오백 년 간 죽었던 수많은 유월절 양들은 더 이상 죽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 실체이신 예수님께서 자신의 몸으로 영원하고 완전한 대속의 제사를 드리러 예루살렘에 들어오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시고, 사람 손에 십자가에 달리시는 것보다 더 큰 겸손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지금도 나에게 까지 겸손하신 예수님을 우리도 본받고, 우리 자신이 종려가지처럼 되어 기쁨으로 찬양하며 섬기는 모두가 되시길 축복드립니다.

2024년2월28일 수요기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