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올라오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과 제자들이 금요일, 마지막 유월절 만찬을 함께 하실 때의 이야기입니다.
13장1절은 그날 만찬에 대해서 이렇게 시작합니다.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이 복음서를 기록한 요한이 그때 예수님이 자기들을 사랑하시는 걸 느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읽으면 항상 마음이 뭉클합니다.
주님이 여전히 우리를 그렇게 사랑하고 계시다는 게 믿어집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계시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그냥 그럴 수 밖에 없다는 게 저절로 나타나신 것이죠.
우리를 위해서 목숨까지 주시고 끝까지 사랑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의 사랑은 도파민이 나와야 할 수 있고, 아니면 계산적이고, 아니면 말씀에 순종하려고 노력하는 것이지만 천국에서는 우리도 예수님처럼 사랑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식사 자리에서 사랑하는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십니다.
그때 주님도 십자가를 앞두고 마음의 압박이 얼마나 심하셨겠습니까?
그러나 십자가 앞에서 다 도망칠 만큼 제자들도 힘들 것을 주님은 아셨습니다.
물론 제자들을 공황에 빠트릴 십자가는 며칠 뒤 부활이라는 영광의 반전으로 바뀔 것입니다.
그럼에도 주님께서 유난히 긴 말씀으로 제자들의 믿음을 다지고 용기를 주시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일단은 모든 상황을 다 이해하지 못할 제자들이 받을 당장의 충격을 염려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어느 강도의 시련을 이길 수 있을지를 아십니다.
감당할 힘보다 더 큰 어려움이 올 때는 미리 대비하고 준비시키십니다.
또 주님은 부활 이후에 승천하셔서 제자들을 떠나가실 것입니다.
제자들이 오늘 말씀을 기억하며 주님의 사역을 이어가게 하시려는 것이죠.
13장에서 16장까지의 이 긴 당부와 가르치심을 몇 가지로 간추릴 수 있습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내가 일러 준 계명을 지키라고 하십니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라고 하십니다.
-내 이름으로 기도하면 응답하신다고 하십니다.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주신다고 하십니다.
우리 신앙생활에서도 이것이 가장 중요한 뼈대라고 생각합니다.
이중에 오늘 본문에 해당되는 두 가지를 우리 것으로 잘 소화해 보겠습니다.
1. 그날 제자들은 처음으로 예수님께 아버지를 보여달라고 합니다.
증거를 요구하는 것은 불안하다는 것이죠.
당시는 모든 유대인들이 유일하신 한 분 하나님만을 믿고 있을 때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시라 고백한 것은 아브라함 이후 삼천년간 이어진 유일신 신앙으로 보면 엄청난 이단입니다.
그런 사회풍토에서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다는 것은 큰 부담이고 불안 요인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십자가를 져야 한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왜 그렇게 죽으셔야 하는지 의혹인 것이죠.
하나님께 그 수치스러운 방법 밖에 없으시다는 게 이해가 안 갈 수밖에요.
그러니까 오늘 빌립이 다급하게 하나님 아버지를 좀 볼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하는 것입니다.
절대로 엉뚱한 말이 아닙니다.
신자들도 ‘하나님을 한번 보았으면 좋겠다, 예수님이 음성이라도 한번 들려주셨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을 갖고 있잖아요?
사람이 안 보이는 것을 믿는다는 게 굉장한 투자이고 모험입니다.
그래서 신자들도 가끔 ‘하나님이 진짜 계실까? 내가 믿는 게 맞는 것일까?’
그런 불안감이 드는 것이죠.
우리가 가장 견고하게 하나님을 믿는 근거는 물론 성경에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이 기록한 것입니다.
모세는 시내산에서, 성막에서 무수히 하나님을 만나며 모세오경을 기록했죠.
이사야선지자는 성전에서 기도하다 높은 보좌의 하나님을 눈으로 봅니다.
모든 선지자들은 다 하나님을 눈으로든 귀로든 만나고 성경을 기록했습니다.
제자들은 자기들의 눈으로 목격했던 예수님에 대해 증언한 것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믿어야 하는 우리는, 이 성경을 절대적으로 확신해야 합니다.
누가복음 다들 잘 읽고 계십니까?
전에 백지0가수가, 사실 자기는 하나님을 부정하고 싶었다고 하더군요.
그러면 좀 재미나게 놀면서 마음대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죠.
그래서 성경이 지어낸 이야기라는 증거를 찾으려고 열심히 성경을 읽었다고 하더군요.
일 년에 일곱 번을 읽었는데, 하나님을 믿지 못할 근거를 찾지 못해서 그냥 믿기로 했다고 합니다.
결국 그 성경 말씀이 지금은 다 믿어지게 된 것이죠.
2. 예수님은 빌립에게 이렇게 답을 주십니다.
9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나를 보았으면 아버지를 본 것이라며 제자들에게 확신을 주는 말씀입니다.
성경을 통해 예수님을 보는 우리도 하나님을 본 것입니다.
동시에 주님은 이 말씀에서 삼위일체의 신비를 계시하십니다.
1) 예수님을 본 사람은 아버지를 본 것과 똑같다고 하시죠.
이것은 아버지와 똑 닮은 아들을 보면서 ‘네 아버지를 보는 것 같다’고 말하는 정도로 이해하면 부족합니다.
예수님은 10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시는 것을 넘어서 아예 하나님이 하신다는 것이죠.
두 분이 일체시라는 뜻입니다.
사실 구약성경에서부터 이미 하나님은 삼위일체로 나타나십니다.
이번 주일 설교에서 말씀드린 대로 다윗의 시편만 보더라도 하나님 우편에 앉으신 다윗의 또 다른 주님이 있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삼위일체에 대해서 아직은 누구도 몰랐습니다.
예수님이 오늘 이 신비한 존재 방식을 알려주신 것이죠.
삼위일체를 우리 인지 능력으로 완벽하게 이해될 수 없습니다.
옛날에 목사님들이 삼위일체를 설명하실 때 고육지책으로 이런 예를 들었죠.
한 남자가 회사에서는 사장이고, 집에 오면 아내에게는 남편이고 아들에게는 아버지인 것과 같다.
혹은 하나님이 구약시대엔 성부하나님으로, 신약시대엔 예수님으로, 교회시대엔 성령님의 모습으로 나타내신 것이다.
둘 다 바른 설명이 아닙니다.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의 신학적 설명은 ‘하나님은 한 분이시며 세 위격으로 존재하신다’입니다.
저는 이 말을 저만의 방식으로 이렇게 이해합니다.
‘내가 세 명 있다는 것과 같구나’
똑같은 내가 각각 다른 역할과 특성을 가진 세 명이 있다고 생각하고, 삼위일체 하나님을 그렇게 이해합니다.
역할과 특성만 다른 똑같은 하나님이 세 분이 있다는 것이죠.
이것은 삼신론하고는 다릅니다.
왜냐하면 삼신론에는 똑같은 한 분이라는 의미가 빠져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빌립처럼 ‘아버지는 예수님과 뭔가 다르시겠지’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한 하나님이니 다르실 수가 없는 것입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예수님과 똑같이 하나님아버지께서도 우리 발을 씻어주시는 분이십니다.
너무 놀라운 일이죠.
성부하나님이 예수님과 다르셔서 판결과 심판만 하시는 엄위하신 분이겠지라고 생각하면 틀린 것입니다.
오히려 요한계시록에서 종말의 심판을 하시는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마태복음 종말장에서 예수님이 심판하시잖아요?
양과 염소를 분리하시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을 하던 사람일지라도 그 내면을 간파하시고 내가 너를 모른다고 영벌을 내리십니다.
신약성경은 예수님이 심판하신다고 하고 구약성경은 하나님이 심판하신다고 하는 데 결국은 똑같은 것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긴밀하게 역사하시는 성령님도 예수님과 똑같으십니다.
이것을 잘 이해하시면 특히 기도할 때 삼위일체 하나님을 한 분으로 인식하고 기도하게 됩니다.
아버지께 기도하지만 예수님께 하는 것이고 성령께 드리는 것이 되는 것이죠.
3. 남겨진 제자들에게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에 대해서도 확실한 대안을 제시하십니다.
지금까지 예수님이 모든 것을 주도하시고 제자들은 하라는 데로만 했죠.
오병이어도 예수님이 기적을 행하시고 제자들은 나누어주기만 했습니다.
귀신을 쫒지 못했을 때 예수님이 와서 해 주셨어요.
유대 권력자들도 예수님이 혼자서 다 커버하셨습니다.
삼 년 동안 먹을 것, 입을 것, 잘 곳, 다 예수님이 혼자 담당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일해서 벌어오지 않았습니다.
이제 예수님이 가신다면 제자들이 무슨 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 얼마나 막막하겠어요?
그런데 예수님께서 ‘걱정하지 마라, 내가 하던 일을 너희가 너끈히 해 나갈 수가 있게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렇게 될 수 있는 근거가 두 가지인데 먼저 13절, 14절입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1) 제자들은 기도하는 것이고 여전히 예수님께서 일하신다는 뜻입니다.
2) 또 하나는 뒤에 나오는 데 예수님과 똑같은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주신다는 것입니다.
죄인인 우리가 이 세상을 믿음에 의해서 살 수 있는 두 가지 힘입니다.
성령님, 그리고 기도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실 때 해 주시던 모든 것을 우리가 기도할 때 그대로 해 주신다니 기도를 안 할 이유가 없습니다.
주님이 질병으로 고생고생하다 찾아온 병자들을 다 고쳐주셨잖아요?
지금도 기도하면 똑같이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저도 나이가 좀 들어가다 보니 여기저기 고장 나는 부분들이 어쩔 수 없이 생깁니다.
최근에도 안 좋던 부분에 병증이 있어서 며칠 기도하다가 병원에 가보려고 했는데, 기도하던 중에 증상이 다 없어졌습니다.
저는 오늘 주님의 말씀을 확실히 믿습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위해서 기도를 계속하고 있는 한 그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 나가지 못합니다.
내 병 때문에 계속 기도하며 치료받으면 그 병을 다스릴 수 있습니다.
어떤 문제든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한 반드시 해결이 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십자가와 부활과 승천을 앞두시고 두고 가는 제자들에게 하시는 이 말씀이 남겨진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기도할 때 특히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은 한 분이심을 연상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주님 말씀대로, 사는 날 동안 항상 기도하고 응답을 받으며 내 삶을 감당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도 살아가는 모두가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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