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신명기20장1절-9절 (집으로 돌려 보낼 사람)

남수연 2024. 4. 4. 16:33

매일 성경이 다시 신명기로 돌아왔습니다.

신명기는 가나안땅 진입을 앞 둔 이스라엘 자손들을 모세가 재 교육하는 내용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전쟁에 대한 규례를 정해 주는 내용입니다.

1. 가나안땅에 들어가면 이스라엘은 전쟁을 해야 합니다.

물론 이 전쟁은 이스라엘 민족만을 위한 전쟁이 아닙니다.

본문 뒤에 이어지는 부분들을 보면 결국 주변국들도 이스라엘을 통해 하나님을 알게 하는 것도 전쟁의 목적에 포함됩니다.

신약성경도 여지없이 성도들의 그런 영적 전쟁을 강조하죠.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데리고 나오셨을 때 이스라엘은 한 달 쯤 뒤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꿈에 그리던 안식을 누릴 상상을 했을 것입니다.

그런 나라는 없습니다.

이 땅이 낙원은 아니잖아요?

우리가 여러 갈등과 시련 끝에 드디어 예수님을 알게 되고 하나님을 의심 없이 믿게 되었다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제 나를 도와주셔서 평탄한 인생이 되겠구나 생각한다면 곧 실망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믿기 전과 똑같은 악한 세상에서, 믿기 전과 똑같은 죄의 본성을 가진 채로 살아갑니다.

거기에 하나님을 아는 마음을 하나 더 받은 것입니다.

그 마음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하는 동기가 되는 것이죠.

그렇기에 내 안의 죄와 세상의 악과의 싸움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믿음의 전쟁은 나와 세상에 대해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는 의지인 것이죠.

그러니 우리가 매일 이 싸움을 의식적으로 해야 하고 느껴야 맞습니다.

전쟁 중인데 그걸 모를 수는 없거든요.

이런 믿음의 삶의 원리를 모르고 현실에서 이 싸움을 해 내지 못하면, 신앙 따로 현실 따로의 두 세계관이 고착화됩니다.

오늘 모세는 가나안에 들어가서도 전쟁이 있을 것을 예고합니다.

우리의 영적 전쟁을 믿음만으로 승리했던 여리고성 전투만을 생각하면 안됩니다.

아무 것도 안 하고 성 주위만 돌았는 데 성이 무너지고 승리한 전투는 여리고 성 밖에 없습니다.

물론 여리고성도 무너진 성벽을 밟고 올라가 피 뿌리는 전쟁을 했습니다.

결국 믿음의 전쟁도 세상을 살 때 사용하는 내 혈육으로 싸우는 것입니다.

믿음의 영역에서는 뭔가 신비와 기적 같은 것이 항상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게다가 싸워야 할 적들을 보면 하나같이 어려운 상대입니다.

1, 네가 나가서 적군과 싸우려 할 때에 말과 병거와 백성이 너보다 많음을 볼지라도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가 인생에서 종종 감당치 못할 사건이나 환경, 나를 괴롭히는 사람을 만나게 되잖아요?

성경은 이런 일들이 없을 거라고 한 적이 없습니다.

 

2.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런 전쟁을 승리할 수 있습니까?

1) 하나님이 우리의 전쟁에 함께 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그런 전쟁들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1절하, 애굽 땅에서 너를 인도하여 내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하시느니라

애굽의 노예였던 2백만 이스라엘이 애굽을 탈출해 자유민이 된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지금도 신장 위구르족이나 티벳, 50여개 소수민족들이 중국에서 독립하려고 애를 쓰지만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보내셔서 바로를 상대하고 출애굽하기까지 채 몇 달이 안되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한 나라가 독립하는 일은 역사 상 전무후무합니다.

애굽 군사를 홍해에 엎으시고 자기 백성을 구원하신 하나님이 가나안 원주민을 이기게 못하시겠습니까?

우리에게 하나님이 어떤 기적을 베풀어 주셨는지를 생각해 보아도 마찬가지죠.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 불신사회에서 하필 내가 예수님의 대속을 알고 믿고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가족이나 이웃을 전도하려고 해 보면 아실 것입니다.

사람이 얼마나 의심이 많고, 얼마나 기존의 자기 세계를 부정하지 못합니까?

그 세계에서 한 걸음도 나오려고 하지 않습니다.

어제는 마음이 움직이는 듯 하다가 오늘은 다시 철벽을 치죠.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한 강정호선수를 아실 것입니다.

강선수가 은퇴 후 야구선수들의 타격 자세를 교정하는 야구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선수들이 슬럼프가 오면 거대한 장벽을 못 뚫고 거의 선수 인생을 끝낸다고 합니다.

타격 폼, 스윙 같은 것이 문제인 것이죠.

그런데 강선수가 자세를 고쳐주면 그렇게 두려워한다고 합니다.

어릴 때부터 천만 번은 쳤을 타격 자세를 바꾼다는 것은 선수에게는 죽음의 공포인 것이죠.

사람이 눈에 보이는 대로 살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세계를 믿는다는 게 두려운 것입니다.

우리가 이전에 살던 세상에서 예수님의 세상으로 옮겨 온 것은 정말 엄청난 장벽을 넘은 것입니다.

이 큰 일을 하나님이 나에게 행하신 것입니다.

 

2)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제사장들이 백성들을 일깨워야 합니다.

2, 너희가 싸울 곳에 가까이 가면 제사장은 백성에게 나아가서 고하여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이스라엘아 들으라

오늘 너희의 대적과 싸우려고 나아왔으니 마음에 겁내지 말며 두려워하지 말며 떨지 말며 그들로 말미암아 놀라지 말라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전쟁 준비는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전쟁 같은 매일을 살려면 먼저 이스라엘처럼 제사장의 말을 들어야 합니다.

성경 말씀으로 우리 마음을 강하게 해야 하는 것이죠.

예수님께서 세상 끝날까지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고 하셨던 그런 말씀들을 기억해 내야 합니다.

하루의 전쟁터는 결코 만만하지 않습니다.

일상이 평범하게 흘러가는 것 같지만 과연 그렇습니까?

하루 중에도 누군가와 충돌하고, 감정이 상하고, 속상한 일들이 끊이지 않습니다.

어제 그랜저 전기차가 스타벅스 매장을 뚫고 들어가 두 명의 여자분이 중상을 입었다는 뉴스를 보았습니다.

급발진으로 추정되는 사고인 것 같습니다.

카페에서 차를 마시다가 차에 치일 줄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커피를 즐기고 나와 이런 끔찍한 사고를 내게 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우리 바로 앞에 있는 갑작스러운 사고도 이렇게 아무도 모릅니다.

항상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고 대비할 수 밖에 없는 것이죠.

그러나 어떤 적과의 싸움이든 두려워하지는 말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허용하셔야만 사고도 납니다.

하나님이 한 눈 파시는 사이에 맨홀에 빠져 사고 나는 일은 절대로 없습니다.

오늘 말씀을 기억합시다.

4,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너희와 함께 행하시며 너희를 위하여 너희 적군과 싸우시고 구원하실 것이라

믿음의 말씀들을 수시로 기억하고 모든 일들 앞에서 수시로 기도하며 살아가는 모두가 되시길 축복드립니다.

 

3. 제사장을 통해 믿음을 준비한 다음엔 지휘관들 차례입니다.

지휘관들은 백성들의 형편을 파악해야 합니다.

5절부터 8절까지의 내용입니다.

싸우러 나갈 군사들 가운데서 면제시킬 사람을 선별하라는 것입니다.

새집을 지었는데 입주를 못했다거나, 포도원의 첫 수확을 앞두고 있거나, 결혼을 앞 둔 사람은 집으로 돌려보내라고 합니다.

만일 전사하면 애써 수고한 것들을 누려보지도 못하고 남의 손에 넘어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공동체가 잘 받아서 실천해야 할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성도 각 사람의 처지를 세심하게 생각하신다는 것을 이 말씀에서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일반적으로는 전쟁을 앞두고는 그런 사사로운 일은 봐주지 말라고 엄격한 규정을 정하는 게 자연스러울 것입니다.

사람들은 남이 좀 편하도록 편의를 봐주고 배려해 주는 것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렇지 않으십니다.

우리 각 사람의 행복을 주님께서 소중히 여기고 지켜주신다는 걸 알 수 있죠.

게다가 8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책임자들은 또 백성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두려워서 마음이 허약한 자가 있느냐 그는 집으로 돌아갈지니

전쟁이 겁나는 사람들도 돌려 보내라는 것입니다.

이 사람 저 사람 다 빼면 전쟁은 누가 합니까?

이러다 슬금슬금 따 빠지지 않겠어요?

예수님을 따르고 하나님나라를 위하는 일에는 철칙이 있습니다.

자원하는 마음이어야 한다는 것이죠.

사람이 억지로 지우는 십자가를 질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구레네 시몬은 억지로 주님의 십자가를 졌지만 주님을 부축해 걸었던 비아돌로로사에서 자기의 구주를 만났습니다.

그랬기에 평생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교회 공동체가 생존하려면 성도들이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다 함께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한 마음으로 섬긴다면 아름다운 일이죠.

어떤 성도가 교회와 믿음을 위해서 무언가 작은 봉사를 하는 걸 보기만 해도 서로 힘이 나잖아요?

지난 주일에 우영이가 입구에서 주보를 성도님들께 주보를 나눠주었습니다.

우영이를 보며 웃으시는 성도님들 얼굴이 다 환했습니다.

점심 식사 후에 성도님들이 준비해 온 계란을 함께 포장하는 데 즐거웠습니다.

어깨띠를 띄고 거리에서 사람들에게 부활절 계란을 돌리고 들어오시는 얼굴들이 빛이 나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 성도님들이 서로에게 희생과 봉사를 강요하지도 않고, 각자가 받은 은혜대로 최선을 다하는 게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오늘 이런 저런 사람들의 사정을 다 봐주고 싸울 사람이 누가 있겠냐 싶지만 주님은 은혜받은 사람들로 충분히 나라를 꾸려가십니다.

우리는 마음이나 믿음이나 형편이 준비되지 않은 사람에게서 성급하게 희생을 기대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나라는 사람의 손으로 이뤄지는 것이지만 사람 손을 강하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또 나 개인의 삶을 위한 전쟁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을 상대해 싸우자니 총알이 없구나, 뭔가 비빌 언덕이라도 있어야지 혼자 뭘 해보겠다고 이렇게 내가 애를 쓰나

이런 생각을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가 세상에서 승부수를 띄울 무기를 각자에게 주셨습니다.

어제 프린터가 고장나서 기사를 불렀는데, 저 사람은 온순하고 성실한 게 경쟁력이란 생각을 했습니다.

고장 나면 또 그 기사를 부를 것입니다.

또 싸울 무기의 성능이 어떻든 하나님이 함께 싸워주시는 만큼 강해집니다.

다윗의 무기는 물맷돌이었고, 기드온의 무기는 항아리와 횃불이었습니다.

그것으로 어떤 승리를 거두었는지 성경에서 읽었잖아요?

하나님이 내가 가진 것과 함께 하시면 내 인생도 얼마든지 값있게 만족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024년4월3일 수요기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