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집단이나 국가의 수준을 말해주는 게 법입니다.
출애굽기, 레위기, 신명기에는 하나님이 주신 이스라엘의 법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십계명을 기본으로 613개의 율법들이 이스라엘에 주신 법령입니다.
지금 신명기를 기록하는 모세 시대에도 큰 나라들엔 법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가장 오래 된 법은 바벨론 제국의 함무라비법전입니다.
모세보다 한 삼백여 년 전이죠.
282개의 법이 돌기둥에 새겨져 있습니다.
대개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그런 개념의 법규지만 약자에겐 불리한 조항들이 많이 있습니다.
술집 여인이 지나친 술값을 요구하면 강물에 던지라는 조항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이전인 주전 2050년 무렵 우르에서 사용되던 법이 발견되었습니다.
성경으로는 아브라함이 우르에서 살던 그 시대입니다.
당시 우르가 얼마나 문명국이었는지를 알 수 있죠.
거기서 아브라함이 오직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 야만에 가까웠던 가나안 부족들의 땅으로 이민을 온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자손들이 오랜 애굽의 종살이와 광야생활을 끝내고 그 땅을 차지하기 위해 코 앞까지 와 있는 것입니다.
모세는 들어가서 이스라엘이 지킬 법을 받아서 가르치는 것이죠.
사람이 만들어 낸 함무라비 법전과 같은 법이 아닙니다.
지난 주 전쟁에 대한 법에서도 개인의 행복을 배려하게 하신 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에 의해 통치되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오늘은 사회 약자들의 인권과 보호를 위한 법입니다.
여기서도 일반국가의 법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공의와 인애를 보게 됩니다.
이런 규례를 보면 법을 만드신 우리 하나님의 생각을 알 수 있는 것이죠.
하나님이 주신 이 법을 잘 지키는 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법을 지키지 않으면서 하나님을 공경한다는 것은 성립이 안됩니다.
또 이 법을 지킴으로서 이스라엘국가와 국민들이 공의롭고 자비로운 민족들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죠.
예수님이 주신 계명들을 잘 지키는 게 주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지킬 때 공의와 사랑의 사람이 되는 것이고 지키지 않으면 세상 사람들과 똑같은 것이죠.
오늘 율법을 주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새계명을 주신 신약의 그 하나님이십니다.
본문의 규례를 잘 이해하면 주님의 계명을 이해하고 지키는데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1. 모든 사람을 주님의 법 앞에서 평등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17절, 너는 객이나 고아의 송사를 억울하게 하지 말며
갑이나 을이나 법아래 공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함무라비법전의 경우는 똑같은 죄를 지어도 계급에 따라서 처벌의 정도가 달랐습니다.
본문에서 객은 최상위 인권 취약 계층입니다.
우리나라에 온 이주 노동자들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 되죠.
도저히 사람의 숙소라고 할 수 없는 곳에서 지내며 밤낮 일하고 임금을 받지 못한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이주인권단체들의 주장에 따르면 작년 이주노동자들의 체불 임금이 1200억원이 넘는다고 합니다.
참 서글픈 일이죠.
본문 바로 위에 보면 우리 하나님은 노동자들의 임금을 하루도 넘기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만일 이주노동자들이 임금 문제로 소송에 들어간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고용주는 홈그라운드의 이점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주민은 우리 말도 제대로 못하지 도와줄 사람도 변변치 않잖아요?
가끔 뉴스에서 상해를 입고 체불임금도 못 받고 울며 고국으로 돌아가는 해외 노동자들을 보면 너무 미안하고 부끄러워 이게 우리나라인가 속이 상합니다.
이미 하나님은 그런 상황을 대비해 이런 율례를 세워 주신 것입니다.
고아의 경우도 마찬가지죠.
부모가 없어 보육원에서 자란 자립청년들이 19세가 되면 독립해야 합니다.
전에 한 청년이 하는 말이 자기들이 부모 없는 걸 알고 그렇게 못된 사람들이 이용하려고 다가온다고 하더군요.
악의 덫에 빠지고 여러 가지 학대와 피해를 당하는 이런 약자들이 우리사회에도 많습니다.
우리나라도 아직 이들을 위한 촘촘한 법이 많이 부족합니다.
서구 선진국들의 경우 약자들의 인권 문제가 우리나라보다 훨씬 앞서있죠.
심지어 이런 혜택도 있습니다.
독일에서 출산한 우리나라 임산부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출산하고 며칠 안되서 연금공단에서 전화가 왔다고 합니다.
출산을 축하해 주고 육아로 인한 약자가 되었으니 삼 년 동안은 국가에서 연금을 대신 부어주겠다고 해서 놀랐다고 합니다.
일찍이 기독교 국가였던 나라들인 만큼 성경의 약자 보호, 약자 인권을 근거로 근대에 법을 제정하고 점점 발전시킨 것이죠.
하나님은 내 이름으로 불리는 나라에는 약자들이 억울한 일이 없게 하라시는 것입니다.
너희도 그들과 같은 입장이었던 것을 잊지 말라고 하십니다.
18절, 너는 애굽에서 종 되었던 일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거기서 속량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러므로 내가 네게 이 일을 행하라 명령하노라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노예로 살며 그런 일을 당했잖아요?
고대왕국의 노예가 가축 목숨보다 나을 게 뭐가 있었겠습니까?
이스라엘 자손들이 태어나보니 그런 노예 신세였습니다.
객과 고아와 과부들도 어찌하다 보니 그런 소수의 약자가 된 것입니다.
우리도 어떤 사고나 재난 때문에 건강 약자가 될 수 있고, 채무를 잔뜩 짊어진 경제 약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미 그런 약자의 고충을 겪어 보신 분들도 많을 것이고 하나님이 그런 우리를 건져주셨잖아요?
현실적으로 뿐 아니라 더욱 영적으로 죄의 종된 자리에서 구원을 받았죠.
그러니 항상 나보다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배려와 공정한 태도를 가져야 할 것입니다.
또 이렇게 우리 사회 전체가 바뀌어 가도록 관심을 갖고 참여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2. 설령 채무자라 해도 최소한의 인권은 보장해 주라고 하십니다.
당시에도 돈을 돌려 받지 못할 경우 법적으로 채무자에게서 담보물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때에도 채무자의 인격을 모독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본문 앞에 보면 담보물을 받을 때도 채무자의 집에 들어가지 말고 밖에서 기다려 받으라고 하십니다.
빚쟁이들이 집에 들이닥쳐 뒤지고 부수고 하는 장면 드라마에서 보았잖아요?
채무자의 인격까지 그렇게 짓밟을 권한은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 17절 후반을 보면 이렇게 명령하셨죠.
과부의 옷을 전당 잡히지 말라
이미 가져갈 수 있는 세간살이들을 빚쟁이들이 다 가져갔을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것이 과부가 입고 있는 옷입니다.
이 옷마저 가져가지는 말라는 것입니다.
옷은 추위에서 보호해 줄 뿐 아니라 그 사람의 마지막 자존심입니다.
내게 빚진 자라 해도 처지가 딱하면 그의 인격을 지켜주고 긍휼히 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약자로 살아가는 누구든 하나님께 귀중하지 않은 영혼이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예수님이 내게 하신 것처럼 모두를 대우해야 합니다.
3. 이런 약자와 가난한 사람들의 구제에 대한 규정입니다.
수확을 하는 사람들은 다 거두지 말고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일부를 남겨두라고 하십니다.
19절에 보면 곡식을 베고 단을 옮길 때 한 단을 잊어버리고 왔으면 다시 가서 가져오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잊어버렸거든’ 이라는 단어는 자발적으로 그렇게 하라는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고의로 잊어버리고 몇 무더기 남겨두라는 말씀입니다.
너무 하나님의 마음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룻기에서 보아스가 곡식 베는 종들에게 명령을 그렇게 하죠.
이삭을 꼼꼼하게 모아서 묶지 말고 단에서 조금씩 빼서 흘리라고 하잖아요?
포도나무와 감람나무 수확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쭉 수확하고 나서 다시 뒤부터 남은 게 없나 체크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것은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의 양식이라는 것이죠.
잠언 21장 13에서 말씀합니다.
귀를 막아 가난한 자의 부르짖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면 자기의 부르짖을 때에도 들을 자가 없으리라
누구든 인생 중에 정말 남의 밭에서 이삭줍기를 해서 먹고 살아야 할 힘든 때가 있습니다.
너희가 이렇게 가난한 사람들을 생각하며 함께 산다면 하나님도 너희를 생각해 주신다고 하죠.
19절,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내리시리라
내게 좀 여유가 있다 해도 남에게 자주 베풀기는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돈은 이 정도면 충분하다 싶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먼 미래까지 준비하려면 다들 지금보다 조금 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작년에 노후에 적정한 생활비가 얼마냐는 설문조사에서 부부가구인 경우 평균적으로 월 삼백육십구만원은 있어야 한다고 답했다고 합니다.
그러니 어떻게 남을 위해 지출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모은다고 그게 노년에 다 내 여윳돈이 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예능 프로에서 빚쟁이 코스프레로 비난을 받기도 했던 이상0 씨의 경우를 보면 20년도 전인 룰라시절 월 오천만원 수입이 들어 왔다고 합니다.
거리에 돈을 뿌리고 다녔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음반제작, 홈쇼핑, 레스토랑 사업으로 그 많은 돈을 날리고 60억 빚더미에 앉았던 거잖아요?
돈이 많으면 투자를 하게 되고, 투자해서 다들 망하더군요.
조용필씨의 노래 중 바람의 노래가 있죠.
나의 작은 지혜로는 알 수 없는 것은 바람의 노래 뿐이 아닙니다.
돈의 길이야말로 정말 사람이 알 수 없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필요한 경우 우리의 돈에 개입하십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우리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손을 펼 때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신다고 보증을 하십니다.
예수님도 말씀하셨죠.
누가복음 6장 38절,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계속해서 선한 일을 하도록 물질이든 무엇이든 계속 공급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학개서의 말씀을 보면 너희가 임금을 받아도 뚫어진 전대에 넣는 것 같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쓰지 않을 때 돈을 벌어도 여기저기 다 새 나가게 두신다는 것이죠.
오늘 하나님나라의 법은 내가 도와줘야 할 사람을 외면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이웃의 생활비를 다 대주라는 게 아닙니다.
내 곡식단에서 조금씩 흘려도 나 사는 데 큰 지장이 없을테니 그 정도만이라도 구제하라는 것입니다.
그래도 우리가 갈아 먹을 밭이 있고, 월급 탈 직장에 다니고 있으니까요.
성도들은 지나치게 먹고 사는 문제, 노후 문제에 매달리지는 말아야 합니다.
그것은 그동안 우리를 먹이고 입히신 하나님에 대한 불신입니다.
우리가 삶에 대한 필요를 하나님께 의지하고 맡긴다고 아무 노력을 안 하는 건 당연히 아닙니다.
그러나 항상 하나님이 내 필요를 적당히 채워주심을 자꾸 인정해야 삶의 근심과 불안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오히려 조금씩이라도 베풀면 담대함을 주실 것입니다.
우리 힘으로 사회에 큰 기부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내 곁에서 어려움을 당하는 사람들을 신경쓰며 살면 되는 것이죠.
내게 남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무언가가 있을 것입니다.
시간이든, 물질이든, 몸의 봉사든, 무엇이든 고난 중에 있는 약자들을 항상 돌아보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길 축복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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