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는 천국이 이미 너희 가운데 임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지난 한 주 천국을 누리며 사셨나요?
사는 게 지옥 같다, 그런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게 아닙니다.
주님은 우리가 이 세상도 천국처럼 살 길 원하십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천국에 대해 가르쳐 주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천국에 대해 가르쳐주실 때 비유를 많이 사용하셨죠.
비유는 심오한 내용을 친숙한 사물에 빗대어 설명하는 것입니다.
13장은 예수님이 7가지 비유로 천국에 대해 알려주시는 내용입니다.
천국은 겨자씨와 같다, 누룩과 같다, 그런 식으로 설명해 주십니다.
비유로 말씀하신 것은 천국을 사실대로 설명하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는 천국을 생각할 때 지구의 최상급을 떠올리죠.
만일 천국이 지구생태와 완전히 다른 곳이라면 그걸 어떻게 설명하시겠습니까?
대신 예수님은 천국의 값어치와 본질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천국을 소유할 방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내가 천국을 이미 소유한 사람인지, 어떻게 해야 천국을 기업으로 받을 수 있을지를 확신하시길 바랍니다.
또 이미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가 이 세상에서 어떻게 천국의 시민처럼 살아갈 것인지 주님의 가르침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1. 첫 번째 비유, 천국은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다는 비유입니다.
44절,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1) 이 비유 말씀은 단순히 생각하면 이해가 잘 됩니다.
이런 일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도 있잖아요?
옛날엔 길에서 돈을 주우면 얼마나 좋았습니까?
당연히 줍는 사람이 임자였죠.
우리가 옷 갈아입다가 주머니에서 만원 권 한 장만 나와도 좋잖아요?
그래봤자 내 돈인데요.
전에 저희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우리 자매들이 모여서 유품을 정리했습니다.
어머니가 저희 집 안방을 사용하셨는데, 장롱을 정리하다 양말들 속에서 어머니 손지갑이 나왔습니다.
열어보니까 빳빳한 오만원권이 백만원 좀 안되게 들어있었습니다.
우리 자매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기분 좋게 십만원, 이십만원, 이렇게 막 나눠가졌습니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용돈을 나눠 주시는 것 같이 기뻤던 기억이 납니다.
오늘 농부가 우연찮게 평생 먹고 살 큰 보물을 발견했으니 그 기쁨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천국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내 영원한 내세가 천국으로 이어진다는 믿음은
이렇게 큰 돈을 가졌을 때 기쁨에 못지 않습니다.
그것은 지금 내가 어떤 환경을 살아가든, 내면을 든든히 받쳐주는 엄청난 힘입니다.
그런데 이 비유는 곰곰이 생각할수록 걸리는 것이 많습니다.
밭에서 발견한 보물이 밭 주인 것입니까, 소작인 것입니까?
성경의 비유 말씀은 무엇을 강조하는지에만 초점을 맞추는 게 좋습니다.
비유 속에 나오는 모든 상황들이 다 완벽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이 듣는 사람이 전혀 공감하지 못할 비유를 말씀하시진 않았을 것입니다.
이 말씀을 하셨을 때 듣던 사람들은 다 똑같은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아, 임자 없는 보물이구나, 농부가 횡재했네’
요즘은 길에서 주운 물건을 그냥 가지면 1년이하 징역이나 3백만원 벌금형을 당합니다.
경찰에 신고하면 주인을 찾는 공고를 내고 기간 내에 주인이 나타나지 않으면 그때는 습득한 사람의 소유가 됩니다.
만일 주인이 나타나면 5~20프로 정도의 보상금을 받습니다.
얼마 전 뉴스에 폐기물 수거하는 사람이 아파트에 버려진 러닝머신을 가져가기 위해 분해하다 그 속에서 4천8백만원이 나왔던 일이 방송되었죠.
치매를 앓던 노인이 돈을 거기다 숨겨 놓았다고 합니다.
기계 속에 꽁꽁도 숨겨 놓으셨더군요.
자식들에게 러닝머신에 돈을 숨겨 놓았다는 말을 하기는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대충 뜯어 보았지만 발견하지 못하고 버린 것이죠.
아버지가 치매라서 엉뚱한 소리를 한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 경우 주인이 나타났으니 신고자는 정해진 보상금을 받았을 것입니다.
오늘 비유에서 이 보물은 임자가 없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입니다.
누군가 땅에 묻어 두고 찾을 수 없는 상태가 되었고 오랜 시간이 흘러서도 땅에 묻혀있었던 것이죠.
일단 보화의 임자가 없기 때문에 발견한 사람이 가져도 상관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밭에서 보물을 캐냈다 소문이 나면 일이 좀 복잡해지겠죠.
가장 좋은 방법은 농부가 그 땅을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농부가 가서 자기가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그 밭을 샀다는 것입니다.
2) 이 비유는 천국은 우리가 가진 모든 것과 비교할 수 없는 값어치가 있다는 뜻입니다.
그렇기에 농부가 자기 가산을 다 팔아서 그 밭을 산 것이잖아요?
사실로 말하자면 이 땅의 모든 재물을 다 가져도 천국을 소유하지 못하면 망한 것이죠.
가난하게 살더라도 성도로 죽으시겠습니까, 재벌로 살다 불신자로 죽으시겠습니까?
이것을 내가 선택할 수 있다면 어떻게 할지 생각해 보십시오.
그 선택이 아마도 내가 천국을 실제로 믿는지, 아닌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천국이 있다고 오늘 주님이 이렇게 설명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내세의 영원한 삶에 비해 현재는 찰나에 지나지 않을 만큼 짧다는 것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3) 또 농부가 우연히 보물을 발견했다는 것은 천국은 사람의 노력으로 얻는 게 아니라는 성경의 일관된 원리와 통합니다.
농부가 재산을 다 팔아서 산 것은 단지 밭떼기 하나입니다.
농부가 재산을 판 돈으로는 절대 그 많은 보화를 살 수가 없는 것이죠.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게 된 것이 내 노력으로 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내가 나를 위해 아무것도 할 능력이 없을 때 값없이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실제로 목회연구소가 몇 년 전 조사한 데이터에 의하면 새신자들의 80%가 살기 힘들 때 교회에 나왔다고 대답했습니다.
천국은 내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단지 예수님을 믿음으로 얻는 것입니다.
3) 그런데 오늘 비유에서 농부가 그 보물을 차지하기 위해서 자기 가진 것을 다 팔았다고 합니다.
이것은 구원에 있어서 우리가 해야 할 부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의 여정을 뒤돌아 보고, 또 점점 살면서 깨닫게 되는 것은 정말 하나님이 좋은 일은 다 하신다는 것입니다.
내 인생 어느 지점에 보화들을 숨겨 두고, 그곳으로 인도하십니다.
그때 하필 그곳에서 넘어지게 하시고, 힘든 삽질을 하다가 우연처럼 보화를 발견하게 하셨잖아요?
내가 잘못을 저질러 수렁에 빠져도 계속 끌어 올려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정말 하나님이 다 하십니다.
그런데 이런 믿음의 여정에서 우리가 해야 할 것을 오늘 비유에서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나의 천국을 위해 처분해야 할 것들을 처분하라는 것입니다.
농부의 세간살이는 궁상맞았겠지만 그래도 아까운 물건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농부는 미련 없이 하나씩 다 내다 팔았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농부가 자기 것을 희생하는 게 아닙니다.
초라한 가재도구가 더 어마어마한 보물과 바꿔진 것이지 손해 본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가 천국을 위해 해야 할 일들이 무언가 내 것을 희생하는 것은 아닙니다.
당장은 희생처럼 느껴지는 것도 결국은 다 되돌려 받는 게 천국의 원리입니다.
오늘 비유는 내가 가진 것과 천국의 가치를 맞 교환 하는 데 초점을 맞춘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가 해야 한다는 것이죠.
천국은 내게 일어난 실제 사건입니다.
그러나 천국의 가치대로 살아야 천국을 얻은 것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천국이 눈에 보이지 않잖아요?
우리에게는 아직도 믿기 전의 생각과 습관들이 남아있습니다.
그것은 농부의 살림살이처럼 궁색한 것입니다.
부자가 된 농부의 인생에 들여 놓으면 어울리지가 않는 것이죠.
그게 바로 옛사람을 버리고 새사람을 입으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사람이 자기의 일부를 고치고 바꾸는 게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내 일부가 된 것을 못 버리잖아요?
그래서 입지도 못할 옷, 물건들이 쌓여가는 것이죠.
사람은 대단치 않고 초라한 인생일지라도 그런 자기 생애에 굉장한 애착을 갖고 삽니다.
지난 주 동네를 산책하는 데 허리가 다 구부러진 한 노인분이 양손에 지팡이를 짚고 한 걸음을 떼는데도 한참 걸려 걷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요즘은 그런 모습을 보면 제 노년을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도, 저런 삶일지라도, 저 분께는 지금이 얼마나 애틋하고 소중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은 자기와 자기 생애를 아끼고 사랑합니다.
그래서 잘못될까 봐 항상 염려가 많은 것입니다.
그런데 좋지 않은 성격, 습관, 단점에도 사람들은 애착을 갖습니다.
자기 단점이라고 사람들이 끔찍하게 싫어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싫었다면 벌써 고쳤겠죠.
게으른 습관, 남의 말하기 좋아하는 것, 불같이 화를 내는 것처럼 남들이 별로 좋게 안 보는 그런 것들도 나름 미화시키고 실은 사랑하는 것이죠.
심지어 죄도 사랑하잖아요?
그러니 똑같은 범죄를 계속 짓고 또 감옥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밭을 사고 보물을 현금화한 농부의 생활은 서서히 달라졌을 것입니다.
이 비유가 주는 희망은 농부가 이제는 돈 걱정 안 하고 행복하게 살았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것처럼 천국의 자녀 된 우리들도 이제는 과거를 버리고 행복하게 살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미 우리 안에 천국의 심령이 있다고 주님께서 팔복 말씀에서 설명해 주셨잖아요?
실제로 천국을 발견한 사람들의 생각과 삶은 여러 면에서 달라집니다.
방송인 김용씨가 믿음을 갖고 나니 개그를 잘 못하겠다고 하더군요.
개그는 남을 좀 디스해야 맛깔나는 데 그게 예전처럼 잘 안되서 방송이 좀 어렵답니다.
그런 것입니다.
우리의 정직하지 못했던 언행도 진실한 언행으로 바뀌어 가게 될 것입니다.
근심이 많던 성격도 기도하며 점점 마음을 놓아가는 성격으로 바뀝니다.
돈을 사용하는 방법도 하늘에 보화를 쌓아두듯이 바뀌는 것입니다.
가수 에일씨가 도미니카공화국에 단기선교를 다녀와서 꿈이 생겼다고 합니다.
선교 중에 작은 공부방을 운영했었나 봅니다.
이제는 돈을 벌어서 도미니카공화국의 가난한 아이들을 위해서 학교를 짓고 싶다고 하더군요.
내 미래의 계획도 하나님나라와 상관되도록 조종이 되는 것입니다.
내 전인격과 삶이 점점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것들로 바뀌어가는 것이죠.
그러면 나도 행복하지만 우리 가정도 나의 주변도 함께 천국의 훈기를 느끼게 됩니다.
제일 먼저 주님의 말씀대로 변화해야 할 곳은 가정입니다.
가족은 가족이라는 명목으로 타인에게 보다 더 잘못할 때가 많습니다.
사실 가족이 얼마나 고마운 사람들입니까?
지난 주 기사를 보니 가수 0진아씨 아내가 치매에 걸려 병세가 꽤 진행되고 있다고 하더군요.
5년 전 아내의 이상한 행동에서 치매를 감지했다고 합니다.
아내가 0진아씨를 보고 ‘여보, 밥 먹었어요?’ 라고 묻길래 ‘먹었잖아요’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1분 뒤에 똑같이 ‘여보, 밥 먹었어요?’라고 묻더라는 것입니다.
그때 뭔가 이상해서 다음날 병원에 가봤더니 치매 초기였던 것이죠.
치매에 걸린 분들이 대부분 밥을 먹고도 왜 밥 안 주냐고 하신다는 데, 아내들은 치매에 걸려도 남편 밥 먹었는지를 챙기게 되나 봅니다.
부모도 배우자도 자식들도 언제나 우리 곁에 있지는 않죠.
가족들을 당연하게 생각했던 마음도 언젠가 떠나보낼 손님처럼 잘 대접하는 마음으로 바꿔야 합니다.
우리도 그렇고 많은 성도들이 과거 죄의 본능으로 살았던 생각과 습관들을 당연한 듯 끼고 살아갑니다.
그런 것 내다 버리고 우리 안의 천국의 심령을 힘써 이루어가는 모두가 되시길 축복드립니다.
2. 두 번째 비유, 천국은 좋은 진주를 찾아다니는 상인과 같다는 비유입니다.
1) 비유의 내용은 역시 간단합니다.
진주 전문가인 한 상인이 있었습니다.
비싼 진주를 취급하는 만큼 자산도 꽤 많았을 것입니다.
이 상인의 눈은 점점 더 좋은 진주를 찾게 되었고 그러다 정말 값진 진주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상인은 자기가 가진 모든 재산을 다 팔아서 이 진주 한 개를 구입합니다.
이 비유는 밭에 감추인 보화의 비유와 비슷하게 보입니다.
그래서 두 비유를 쌍둥이 비유라고도 합니다.
그런데 자세히 뜯어보면 그렇지 않은 것들이 속속히 드러납니다.
2) 앞의 비유에서는 ‘천국은 감추인 보화다’라고 말씀하셨죠.
같은 의미라면 이번 비유에서도 ‘천국은 값진 진주다’라고 해야합니다.
그런데 ‘천국은 상인이다’라고 비유하셨습니다.
뭔가 다르죠.
앞에서 농부는 우연히 보화를 발견했고, 그것은 자기 재산으로 사기에는 어림도 없는 보화였습니다.
상인은 스스로 값진 진주를 찾아다녔고, 자기가 가진 재산으로 그 진주를 삽니다.
그렇게 자력으로 천국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렇게 이 비유를 푼다면 앞의 비유와 뜻이 완전히 정반대가 됩니다.
이렇게 되면 천국의 뜻이 확실해지기 보다는 오히려 혼란스러워지게 되죠.
그러니까 이 비유는 쌍둥이 비유라기 보다는 천국의 다른 면을 드러내시는 비유라고 보는 게 더 좋을 것입니다.
성도들의 편에서는 우연히 하나님을 알게 되고 믿고 천국을 얻은 것처럼 보이죠.
그러나 천국은 상인이 귀한 진주를 찾듯이 성도를 찾아 다닌다는 것입니다.
보물이 우연히 얻어 걸린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잃은 양과 목자의 비유에서 이미 주님이 자기의 양을 찾는 분이심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누가복음 15장4절, 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도록 찾아다니지 아니하느냐
오늘 귀한 진주를 찾아다니다 발견하고 자기 재산을 다 팔아서 그 진주를 산 주인공은 우리가 아니라 나를 찾아내신 예수님의 이야기입니다.
주님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시는 것입니다.
언제 우리가 내 모든 것을 팔아서 예수님을 선택했고, 천국을 선택했습니까?
예수님께서 모든 것을 내 주고 나를 사신 것이잖아요?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며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할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예수님께 나의 가치는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유일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주님이 나를 이렇게 보시는 데, 나도 나를 그렇게 보아야 합니다.
현재 내 모습과 내 삶이 힘들다고 스스로 비하하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비록 여러 가지 면에서 남보다 못하다 해도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고 아끼신다는 것을 믿으면 우리 마음에 절대로 천국이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3. 세 번째 비유, 천국은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는 그물과 같다는 비유입니다.
47절, 또 천국은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으니
48절, 그물에 가득하매 물 가로 끌어 내고 앉아서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못된 것은 내버리느니라
1)이 비유는 천국 비유의 결말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은 결과가 실현되는 때가 반드시 온다는 것이죠.
비유에 나오는 그물은 작은 배에서 투망질 하는 그물이 아닙니다.
이 단어는 두 개의 배가 양쪽에서 끌고 다니며 고기를 잡는 큰 그물입니다.
그물 끝에 무거운 추를 달아서 바닥을 긁어가며 깊은 바닥에 있는 물고기까지 싹 잡아 올리는 이 조업 방식을 저인망 어업이라고 합니다.
큰 그물에 고기가 가득 차면 물가로 가져 나와 물고기를 선별합니다.
갈릴리 어부 출신의 제자들에게는 그 광경이 눈에 선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천국이 저인망 그물과 같다고 하신 것은 어느 영혼도 하나님 앞에서 벗어날 영혼이 없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에서 한 영혼도 빠져나가지 못합니다.
비유에서 물가에 끌어내고 앉아서 고기를 분류한다고 하셨죠.
여기서 굳이 앉아서라고 하신 것은 심판의 자리를 뜻하는 것입니다.
재판석에 판사들이 앉아 있듯이 심판의 자리가 베풀어진 것입니다.
거기서 좋은 고기와 못된 고기를 가려 낸다고 합니다.
무엇이 좋은 고기고 무엇이 못된 고기일까요?
성도님들은 좋은 사람입니까, 못된 사람입니까?
사람은 다 못됐습니다.
우리 안에서 스멀스멀 기어 나오는 생각을 보면 참 못됐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못된 물고기로 버려져야 맞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를 좋은 물고기로 인정하시는 것은 예수님이 우리의 모든 못된 짓에 대해 대신 형벌을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평생 마음에 품고,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한 모든 못된 것들은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드러날 것입니다.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죄가 드러날 것은 뻔합니다.
일 년에 한 번씩 성도들과 함께 섬으로 봉사활동을 다니는 목사님이 있습니다.
얼마 전 갔던 한 섬에서는 교회식구들과 팬션에 머물렀다고 합니다.
그 섬에 있는 교회에 다니는 여집사와 남편이 운영하는 팬션이었습니다.
며칠을 묵으며 남편과 좀 가까워져서 그 목사님이 물었습니다.
‘아내는 교회를 다니는 데 왜 교회를 안 다니십니까’
그랬더니 남편이 ‘목사님, 저 착한 사람이예요’ 그렇게 말하더랍니다.
그런데 아내 집사 말로는 남편이 자기를 너무 괴롭힌다는 겁니다.
평범한 사람이 자기를 착하다고 생각하든, 실제로 젠틀하고 교양있고 배려심이 있든, 본성은 다 못됐습니다.
겉으로는 신앙인으로 존경받고 깍듯하게 율법을 지키고 가르치던 바리새인들에게 예수님은 회칠한 무덤이라고 그 속에 있는 것을 직격 하셨잖아요?
그런 못된 인간들이 하나님 앞에 서야 하는 그 두려운 상황을 어떻게 맞이하겠습니까?
예수님의 말씀대로 십자가의 대속을 믿지 않는다면 다른 대안은 없습니다.
2) 끝까지 못된 사람으로 남아있는 자들에게 마지막날 심판을 경고하십니다.
49절 세상 끝에도 이러하리라 천사들이 와서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 내어 50절,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리라
두렵고 무서운 말씀이죠.
여기서 우리는 악인들의 실상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들이 자신들이 지은 악에 대해 하나님께 심판을 받았을 때 울며 이를 간다는 것입니다.
이를 간다는 단어가 사도행전에서 스데반이 복음을 증거할 때 유대인들이 이를 갈았다는 그 단어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보여주면 믿겠다고 하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결국 하나님을 보게 되었지만 회개도 안하고 믿지도 않고 하나님을 향해서 이를 갈잖아요?
지금 예수님을 싫어하면 나중에 주님 앞에 가서도 싫어합니다.
이 세상에서 예수님을 믿고 천국 백성이 되지 못한 사람들이 안타깝고 절망적인 이유입니다.
그렇기에 쇠를 담금질해 불순물을 제거하듯 풀무 불과 같은 고통스러운 환경 속에서 끊임없이 분출되는 그 못된 악을 계속해서 제련 당해야 하는 것이죠.
그러나 고통의 눈물을 흘릴지언정 회개의 눈물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날에 천국을 상속받으라는 주님의 말씀에 우리는 감사의 눈물을 흘릴 것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오늘 세 가지 천국비유를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이 궁핍한 우리 인생에 천국을 숨겨 놓으시고 어느날 그것을 발견하게 하셨습니다.
내게 이런 천국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예수님이 진주 상인처럼 모든 것을 내 주신 것입니다.
이제 나의 못된 옛사람을 좋은 천국의 사람으로 바꿔가며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못된 성격으로 당하는 고통은 아무 유익도 되지 않고 부끄러움만 남깁니다.
실패를 거듭한다 해도 힘써 천국의 자녀로 살려고 한다면 주님이 축복해 주셔서 내 심령과 삶에 점점 더 천국이 임하게 하실 것입니다.
2024년4월21일 주일설교 남수연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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