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월은 매일성경 진도에 따라 사도행전을 함께 묵상하도록 하겠습니다.
1. 사도행전은 바울의 주치의 누가가 기록했습니다.
1절,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이라고 시작하죠.
이걸 보면 이 글은 데오빌로를 위해서 썼다는 걸 알 수 있죠.
그리고 이전에 데오빌로에게 보낸 글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글이 무엇일까요?
바로 누가복음입니다.
누가복음 1장3절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그리스도에 대한)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나도 데오빌로 각하에게 차례대로 써 보내는 것이 좋은 줄 알았노니
그러니까 이 두 편의 성경은 저자가 같다는 것이죠.
그리고 그 저자가 누가라는 것은 일찍이 교회사에서 인정된 사실입니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은 데오빌로와 이방인 성도들을 대상으로 기록한 성경인 것이죠.
본서를 기록한 누가도 유대인이 아니라 이방인 안디옥사람으로 전해집니다.
오늘 본문은 사도행전의 문을 여는 서문입니다.
본문을 보면 ‘아,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겠구나’ 하는 걸 알 수 있는 것이죠.
성령님과 사도들을 통해 복음이 전파되고 죄인들이 구원받는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이 내용들은 열두제자들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사도행전의 마지막은 뭔가 마무리가 되지 않은 열린 결말로 끝이 납니다.
이후에 성도들을 통해 사도행전의 역사가 지금도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이죠.
2.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다시 하나님나라를 가르치셨습니다.
3절,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사 사십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예수님이 부활하신 뒤 사십 일 동안 제자들에게 하나님나라를 가르치셨습니다.
물론 예수님은 처음부터 하나님나라에 대해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 제자들까지도 다 오해했죠.
하나님나라를 이 땅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이스라엘국가로 알았습니다.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고서야 비로서 주님이 누구신지를 알게 됩니다.
이전까지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수수께끼 같은 분이셨습니다.
제자들이 주님이 행하시는 기적들을 보며 충격에 빠져 자주 수근댔던 말이 있죠.
저가 뉘시기에.
이것은 당시 제자들이 주님이 하나님이심을 몰랐다는 소리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뒤 도마가 예수님을 보고 드디어 뭐라고 고백합니까?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라고 고백하죠.
하나님나라의 국민들은 혈통적 이스라엘이 아니라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영적 이스라엘이었던 것입니다.
그 하나님나라를 위해 이 복음이 땅 끝까지 전파가 되어야 하는 것이죠.
3. 그러기 위해서 먼저 중요한 사건이 있을 것을 예고하십니다.
4절,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5절,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여기서 성령으로 세례를 받는다는 말씀은 성령으로 거듭난다는 것과는 좀 다릅니다.
부활하신 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성령을 받으라고 숨을 불으셨습니다.
이것은 사람이 성령으로 거듭나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셨던 그 신비한 말씀의 성취입니다.
경건했던 니고데모도 고개를 갸웃거리고 돌아갔었죠.
주님이 십자가 대속을 이루시기 전까지는 제자들도 성령님의 외적 감화를 받았지만 근본적으로 영이 거듭나지는 못했습니다.
대속의 완성으로 비로서 성령으로 거듭난 상태가 된 것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은 죽었던 영이 마치 부활하듯 살아나 하나님을 인식하게 되는 것입니다.
거듭난 순간에 거듭난 것을 알게 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아기가 자기가 태어난 것을 잘 모르듯이 당장은 모르지만 어느 정도 시점이 되면 본인이 그걸 분명히 인지합니다.
왜냐하면 어느 때 부터인지 하나님이 분명히 인식이 되기 때문입니다.
나도 하나님을 인식하고, 하나님이 나를 인식하신다는 게 느껴집니다.
서로가 인식을 확신하는 것이죠.
그러나 성령으로 거듭난 상태는 여전히 강한 본성의 지배를 받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뒤 제자들의 상태가 당장 변화되지 않은 것을 보면 압니다.
성령으로 세례를 받는 것을 물로 세례를 받는 것과 나란히 말씀하신 것은 이유가 있습니다.
물속에 잠기면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듯이, 성령세례가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면 내 본성과 감정과 죄가 성령님의 강한 기운을 받게 됩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것만으로는 하나님나라 일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내 상태를 보면 알 수 있잖아요?
하나님을 알게 되었고, 내가 죄인임을 알았고, 예수님을 구주로 믿게 되었죠.
이전에 하나님과 대치하던 것과는 현저하게 다른 새로운 마음을 갖게 되었지만 한편 여전히 이전의 나는 그대로 존재합니다.
예수님의 뜻을 따르려면 죄가 발목을 잡고, 복음을 전하려면 두려움이 앞섭니다.
이것을 주님께서 당연히 아시죠.
그렇기 때문에 성령 세례로 능력을 덧입혀 주셔서 복음을 전파하고 하나님나라를 세워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4. 제자들은 성령의 충만을 받기 위해서 기다려야 했습니다.
4절에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하시죠.
여기서 기다리라는 단어는 능동태입니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게 아니라 무언가 적극적인 기다림을 말합니다.
제자들도 주님 말씀의 뜻을 알았습니다.
그랬기에 14절을 보면 제자들이 예루살렘 다락방에 모여서 오직 기도에 전념했다는 것을 알 수 있죠.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개인적으로는 과거와 같이 죄에 끌려다니지를 말아야 하고, 내 마음과 주변에 천국의 능력이 임하게 살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성령의 능력이 임하시길 기도해야 합니다.
제자들은 주님이 승천하시고 오순절이 오기까지 일주일 정도 성령충만 받기를 위해서 기도합니다.
이것은 중요한 지침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성령충만은 계속 기도하는 가운데 받을 수 있고, 또 유지가 된다는 것이죠.
그렇게 오순절 날이 이르러서 성령충만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성령으로 거듭난 것은 불변하지만 성령 충만은 소멸됩니다.
뒤에 보면 제자들도 이후에도 계속 성령의 충만을 구합니다.
성령으로 거듭남에 대한 확신이 없다면 계속 예수님을 믿으며 성령받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또 거듭난 성도들은 매일 성령님의 기운이 새로 태어난 내 영을 강하게 해 주시길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도들이 세상을 이기며 성도답게 살아갈 수 있는 실제적인 방법입니다.
이것을 절대로 놓치 않고 계속하시길 간곡히 권면드립니다.
5. 성령의 권능을 받으면 비로서 예수님의 증인의 삶을 살게 됩니다.
제자들은 주님이 부활하셨으니 드디어 메시야왕국, 하나님나라가 세워지겠구나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6절에 보면 이스라엘이 지금 세워지냐고 물었던 것입니다.
이제야 믿음이 현실이 되나보다 얼마나 기대가 되었겠습니까?
그러나 이에 대한 관심을 주님은 단호히 막으십니다.
그 시기는 하나님께서 알아서 하실 것이다, 그러면서 말씀하십니다.
8절,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제자들은 좀 당황했을 것입니다.
당장이라도 주님과 함께 신정국가를 통치할 자신이 있는데, 주님께서는 전혀 다른 청사진을 보여주시는 것이죠.
너희는 성령의 권능을 받은 뒤 땅끝까지 내 증인이 되라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그걸 좋아했을까요?
그것을 기쁘게 여기고 좋아서 증인이 되길 누가 원합니까?
우리는 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혜택과 도움을 받으며 편히 사는 걸 원하죠.
그러나 제자들이 원하든 원치 않든 예수님은 이 말씀을 마치시고 하늘로 승천하십니다.
사실 하나님은 이땅에서 우리가 얼마나 성공하고 많은 것을 누리며 장수할 것이냐에 큰 의미를 두지 않으십니다.
그것을 허락하시는 것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육체로 살아가는 한계 때문입니다.
우리가 평생 누릴 이 땅의 풍요를 다 모아도 천국 생활의 한순간과 비교할 수 없을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 편에서는 이 땅에서의 이 귀한 우리의 시간을 하나님나라와 완벽하게 연계해서 살길 원하실 수 밖에 없는 것이죠.
오늘 당황했을 제자들은 억지로 증인의 사명을 감당하지 않습니다.
2장에서 성령 충만을 받고 완전히 달라집니다.
제자들이 성령의 권능을 받고 증인이 되는 원천적인 힘이 기쁨입니다.
증인이 될 때 그 기쁨은 더욱 강력하게 됩니다.
이은0교수라는 분이 있는데 남편이 부시대통령과 포드대통령 시절 대통령 자문위원이었습니다.
자연히 고위 정치인들과 어울려 화려한 상류사회 생활을 누렸습니다.
그런데 이분이 하나님의 소명을 받고 미얀마와 아프리카, 인도 등지에서 활동하는 오지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이런 역전을 보면 정말 우리 하나님은 박진감이 넘치십니다.
누가 이런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미얀마에도 신학대학을 세워 백 명의 학생들이 다니고 있습니다.
이분이 아프리카 오지로 선교를 다닐 때는 전기 발전기까지 들고 다닌다고 합니다.
원주민들이 한가한 저녁시간에 주로 집회를 하러 가는 데, 해가 떨어지면 정말 주위가 칠흑 같아집니다.
발전기로 조명을 비추고 전도영상을 돌리는 소리가 나면 어둠을 뚫고 어디서 왔는지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듭니다.
그렇게 팔 구십명 쯤 되는 마을 사람들이 모이면 복음을 전하는 것이죠.
놀랍게도 복음을 듣고 이들이 예수님을 믿겠다고 결신합니다.
때로는 마을 전체가 예수님을 받아들인다고 합니다.
그렇게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로 교회를 꾸려서 주일에 예배를 드리는 것이죠.
그 예배하는 모습을 볼 때의 기쁨은 상류사회에서 누리던 행복과 비교할 수 없다고 합니다.
예수님을 믿게 된 원주민들은 또 어떻게요?
그 성도들은 교회에 들어올 때 기쁨이 넘쳐서 다 춤을 추며 들어온다고 합니다.
그 손에 하나님께 드린다고 가지고 오는 걸 보면 마음이 찡하다고 합니다.
다들 뭐라도 가져 오는데, 어떤 사람은 집에 있는 유일한 조리기구인 양푼 한 개를 들고 와 헌물로 드린다는 거예요.
그리고 서너 시간 그렇게 기쁨에 넘쳐서 예배를 드린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의 복음전파와 성령이 주시는 기쁨이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것이죠.
우리에게 주님을 따르는 기쁨이 있습니까?
성령 받기를 꾸준히 기도하면 그 기쁨을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기쁨으로 우리의 사도행전을 써 가게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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