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outube.com/watch?v=kzCsFXS2EqU
우리에게 가정을 주시고 가족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믿음을 지키며 가정을 지켜온 부모님 성도들을 오늘 위로하고 축복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가정은 사람들이 필요에 의해 만든 게 아니라 처음부터 하나님의 아이디어입니다.
하나님의 아이디어는 우리를 위해 좋은 것입니다.
최근엔 젊은 세대가 가정을 이루는 데 여러 가지 장애 요소가 많은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들이 죄로 인해 파괴되었지만 예수님 안에서는 얼마든지 회복될 수 있습니다.
자녀들이 좋은 믿음의 가정 이루시길 축복드립니다.
오늘 우리 가정을 위해 주시는 말씀을 잘 듣고 행함으로 모든 성도님들 가정이 항상 천국 같은 사랑과 행복이 넘치게 되시길 축원드립니다.
본문을 예수님을 찾아온 부모들, 그들에 대한 제자들의 행동, 그리고 어린아이를 축복하신 예수님에 대해서, 이렇게 세 가지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1. 예수님의 축복을 바라고 어린 자녀들을 데리고 나온 부모들에 대해서입니다.
예수님이 가시는 곳에는 항상 많은 사람들이 몰렸죠.
예수님은 삼 년의 구원 사역 중에 이스라엘을 남북으로, 동서로 왕래하시며 순회 사역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한 마을이라도 더 들르시려고 쉴 틈 없이 공생애를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이 동네에 오셨다는 소문이 나면 인근 마을에서까지 많은 사람들이 몰려 왔습니다.
제자들은 주님께 가까이 오려는 사람들을 제지하고 질서를 유지하는 일을 했을 것입니다.
같은 사건을 기록한 마태복음을 보면 이날도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고 전합니다.
그런데 아이들을 데리고 온 부모들이 인파를 헤치고 주님 앞으로 나와 안수받기를 청했던 것이죠.
13절에 ‘데리고 왔다’는 원어 동사의 의미는 계속해서 왔다는 뜻입니다.
한두 사람이 온 게 아니라 아이들을 데리고 안수받으려는 줄이 계속 이어졌다는 것입니다.
자식들에게 변변히 해 줄 게 없는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주님의 축복을 받게 하려 몰려 온 것이죠.
성경을 보면 사람들이 자기를 축복해 달라고 예수님께 나왔던 적은 없습니다.
오늘도 부모들은 예수님께 자기를 축복하고 안수해 달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주님의 귀한 축복을 오직 자식들이 받기를 원했습니다.
부모들은 왜, 자식이 먹는 맛있는 것을 똑같이 안 먹고, 자식이 쓰는 비싼 것을 똑같이 쓰지 않게 될까요?
그렇지 않습니까?
자식들이 입다가 안 입는 옷 입고, 사다가 안 먹고 굴러 다니는 것 먹고.
저는 아직도 딸이 쓰다 놓고 간 물건을 쓰고 있는 게 있습니다.
부모에게는 내 자식은 나보다 귀하다, 나보다 더 좋은 것을 누려야 한다는 마음이 항상 있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가난한 부모들에겐 오늘 예수님이 우리 동네에 오신 천금 같은 기회잖아요?
어떻게 나를 위해 머리를 들이밀겠습니까?
내 자식이 주님의 안수를 받을 수 있다면 족한 것이죠.
그동안 예수님 앞에 자식들을 데리고 나온 사람들은 정해져 있었습니다.
자식이 귀신 들린 경우, 병으로 죽어가는 경우,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이었죠.
부자들은 자식들을 데리고 주님께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자기 가진 것으로 자식들에게 해 줄 게 많잖아요?
자식에겐 좋은 집에서 좋은 교사를 모셔놓고 지식을 가르치면 되는 것이지, 비천한 사람과 병자들이 바글대는 곳에 데리고 나올 필요가 없는 것이죠.
어느 편이 자식을 위해서 가장 좋은 일이었습니까?
신앙세계의 아이러니는, 궁핍하고 배운 것도 별로 없는 사람들이 자식들을 위해 가장 좋은 쪽을 선택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결국은 복음을 거절했던 것을 생각하면, 그날 예수님 앞에 나와 축복받은 어린아이들만 나중에 구원받았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잖아요?
우리 자식들에게 장차 살아가는 데 필요한 좋은 교육을 시키고 생활 기반을 마련해 주면 좋은 일이죠.
아무 것도 없이 시작한 우리 세대는 맨땅에 헤딩하는 게 평생 고생이라는 걸 잘 알잖아요?
그러나 오늘 성경을 통해서 사실을 잘 분별해야 합니다.
예수님께 자녀들을 데리고 나오지 않는다면 자식들을 위한 내 모든 준비가 무슨 소용이냐는 것입니다.
자식을 위해 해 줄 게 없어도 주님 앞으로 데려오면 주님이 구원을 주시고 축복도 주실 것입니다.
기독교 언론에서 조사한 통계가 있습니다.
현재 교회에 다니고 있는 장년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언제부터 교회에 다녔냐는 질문에 87%가 어릴 때라고 답했습니다.
10명 중 아홉명이 어려서부터 교회를 다녔고, 성인이 되어서 믿게 된 사람은 한 명 정도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어려서 교회를 다니지 않은 사람들이 커서도 거의 교회에 나오지 않더라는 것을 통계가 보여주는 것입니다.
오늘 어린이 주일에 우리 모든 부모들, 앞으로 부모가 될 성도들은 이 통계를 엄중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다른 유산을 주지 못해도 믿음의 유산은 반드시 물려 주어야 합니다.
자녀들을 예수님께 데려 나와 안수와 축복을 받게 하십시오.
자식들을 낙오시키고 나만 구원을 받겠습니까?
아직 데려오지 못한 자녀들이 있다면 매일 주님 앞에 나갈 때 그 자식들을 마음에 품고 나가 구원받기를 간절히 기도하는 모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2. 제자들은 어린아이를 데려와 안수받으려는 부모들을 꾸짖었습니다.
사람들은 약자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죠.
예나 지금이나 세상에 가장 약한 자들은 어린이들입니다.
그런데 어린아이들보다 더 약자가 있다면 그것은 아이를 가진 부모일 것입니다.
부모들에게 아이들은 치명적인 약점입니다.
아이들은 떼쓰고, 울고, 중요한 장소에서 분위기를 망쳐 놓기 일쑤죠.
아이를 데리고 있는 부모는 젖병에, 기저귀까지 한 짐을 들고 다니며 쩔쩔맵니다.
아이들을 한창 키울 때는 부모에게 경제적인 여력도 없습니다.
자기 이름도 누구 엄마, 누구 아빠 뒤에 감춰져 버립니다.
아이를 둔 부모들을 사람들은 얕잡아보면 보았지, 강자라고 보지 않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사역에 좀 버젓한 사람들이 찾아오길 원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사회적으로 존경받던 종교인들이나 권력자, 부자들에게 호의적이지 않으셨습니다.
본문에 뒤이어 부자 청년 관원이 예수님께 찾아온 일화가 나옵니다.
부자였고 공직자였고 종교에 대한 관심도 대단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많이 주님의 제자가 된다면 주님의 명성도 더 올라가고 사역의 이미지도 좋아질 것 아니겠습니까?
제자들은 부자 청년을 주님께서 좀 붙드시길 바랬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뭐라고 하십니까?
재산을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 주고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누가 주님을 따르겠습니까?
청년 관원은 재산이 너무 많은지라 근심하고 떠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이 이런 식으로 쫒아 버리시니 제자들은 예수님의 그런 경영방식에 불만이 많았을 것입니다.
오늘처럼 별로 도움도 안될 가난한 부모와 어린 자식들만 계속 몰려들면 언제 인재를 모아서 나라를 세우겠습니까?
제자들은 새 나라를 세우는데 아무 도움 안되는 어린아이의 부모들을 꾸짖었습니다.
본문의 꾸짖었다는 단어는 아주 심하게 화를 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걸 보시고 또 예수님이 노하셨다고 합니다.
14절, 예수께서 보시고 노하시어 이르시되
예수님이 노하셨다는 단어는 한층 더 강도 높은 격분을 뜻합니다.
제자들이 속으로 하나님나라의 자격자를 가리고 있는 걸 보셨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좋아하는 것과 하나님이 보시는 게 얼마나 다른지요?
사람은 사람을 사귀어도 가난한 사람보다 잘 사는 사람이 더 좋고, 사회에서 지위가 높은 사람들이면 더 좋아하죠.
그게 내게 뭔가 이득이 되고, 나를 좀 더 괜찮은 사람으로 보이게 할 것이라 저절로 그렇게 됩니다.
그게 교회에서도 그렇다는 것을 야고보서에서 신랄하게 지적했습니다.
너희가 부자들이 교회에 오면 상석으로 안내하고, 가난한 자들이 오면 아무데나 앉으라고 무시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을 차별하는 것이죠.
오늘 주님께서 사람을 차별하는 제자들의 악을 그렇게 호되게 책망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왜 구원을 받았습니까?
아무 것도 내세울 게 없어서 구원받은 것입니다.
힘 있는 집에서 태어나고, 건강하고, 좋은 직장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다면 예수님 믿겠다고 나왔을까요?
그렇게 구원받고 나서 남을 차별한다는 게 너무 우습지 않습니까?
그런데 사람이 그렇다는 거예요.
그것이 가정에서는 해당되지 않을까요?
가족이 돈을 잘 벌어오고, 자랑스럽고, 내 힘을 덜어주면 만족스럽죠.
내 성에 차지 않고 짐만 되면 귀찮고 화나고 무시하는 마음도 울컥 올라옵니다.
내 자식이 공부 잘하고 대기업에 취직하면 자랑스러운 게 내 자존심이 걸려서 그런 것은 아닙니까?
그렇잖아도 세상에서 차별받고 치여서 살아갈 자식들입니다.
부모조차도 인정하지 않고 품어주지 않는다면 자식들의 인생이 너무 불쌍해서 어쩝니까?
가정을 들여다 보면 다 그런 갈등과 상처가 있습니다.
배우자의 부족함, 부모의 무능함, 그런 것들을 보며 속으로 서로 미워하고, 참고 살더라도 상처는 계속 곪아 터지는 것이죠.
이만갑이라는 TV프로그램이 있습니다.
목숨을 걸고 탈북해 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개하는 프로입니다.
몇 년 전에 남편이 아내와 딸 하나를 데리고 탈북한 가족이 나왔습니다.
사회자가 먼저 이 가족이 어떻게 탈북했는지를 소개하는 데, 가족들이 나오기도 전에 말만 들으면서 벌써 참석자들이 눈물을 흘리더군요.
남편이 소아마비인 아내를 포대기에 업고 어린 딸 손을 잡고 급류가 흐르는 압록강을 건너 탈북을 한 것입니다.
탈북을 계획할 때 소아마비인 아내가 큰 문제였습니다.
아내를 그냥 업고 한 손으로 딸의 손을 잡고 압록강을 건너다가는 자칫 다 급류에 휩쓸려 죽을 수가 있는 것이죠.
그래서 고민하다 포대기로 아내를 업기로 한 것입니다.
탈북 경로는 대개 중국으로 가서 라오스 국경을 넘고 태국에서 붙잡혀 보호소에 구금되는 것이라고 하더군요.
그러면 몇 달 뒤에 우리나라로 보내지는 것이죠.
라오스의 국경은 험악하기로 악명 높은 산이라고 합니다.
그 산을 아내를 4시간 동안 업고 넘은 것입니다.
태국 감호소로 들어갈 때도 남편이 여성 감호소 방까지 업고 가서 내려주었는데 그 방에 있는 탈북 여성들이 다 부러워했다고 합니다.
소아마비로 장애인이 된 그 아내가 무엇이 그렇게 부러웠겠어요?
남편의 이런 사랑을 받는 아내는 장애인임에도 불구하고 그늘이 하나도 없고 행복해 보이더군요.
이렇게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래도 힘내서 살 만하겠죠.
그런 사람 곁에 있으십니까?
있으면 좋겠지만, 지금은 진심인 마음도 언제 바뀔지는 모릅니다.
우리에게 가장 큰 사랑을 주시고 지금도 똑같이 사랑하시고 영원히 사랑해 주시는 주님이 계시다는 것을 잊지마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나를 사랑하셔서 십자가의 고통 속에서 목숨을 주셨잖아요?
주님의 십자가는 신화도 아니고 만들어 낸 교리도 아닙니다.
실제로 손바닥을 뚫고 못이 박히시고 나무에 달리신 것입니다.
주님이 나를 그렇게 실제로 사랑하신 것입니다.
그 사랑이 지금도 나를 향해 변하지 않고 함께 하신다는 것을 알아갈수록 우리 인생에 다 장애가 있다 해도 얼굴에 광채가 나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와 내 곁의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서 서로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일본 작가 누군가는 가족이란 보는 사람이 없으면 내다 버리고 싶은 존재라고도 했죠.
그런 말을 하는 사람도 이해가 안되는 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 가족들은 혈육으로 맺어진 서로의 지원군입니다.
잘만 함께 가면 세상에 더 이상의 파트너가 없습니다.
남들이 아무리 잘 이해하고 잘해 준다 해도 가족만 하겠습니까?
전에 제가 아주 짧은 꿈을 꾸었습니다.
꽤 가파르고 긴 언덕을 혼자 힘겹게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뒤를 보니 남편이 뒤에서 저를 밀어주고 있었습니다.
우리 가족들이 그렇게 힘든 인생길을 서로 밀어주며 함께 가고 있는 것입니다.
나만 희생하는 게 아니고, 가족들이 있어 내가 행복하기도 했고, 절망으로 죽을 것 같을 때도 독한 마음 먹고 살아온 것입니다.
가족들은 내다 버려도 좋을 그런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가 가족들의 단점들로 물론 지치고 화날 때도 많죠.
그러나 서로 밀고 당겨주며 함께 가면 혼자보다 낫습니다.
우리에게는 늘 약자인 부모들, 곁에 있는 가족들을 오늘 제자들처럼 홀대하지 말고 사랑으로 함께 가는 모두가 되시길 축원드립니다.
3. 예수님은 아이들을 안고 안수하고 축복해 주십니다.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이 말씀은 기존의 생각을 완전히 뒤집는 충격적인 말씀입니다.
당시의 종교적 생각으로는 율법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나 가난한 사람들은 하나님나라와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었습니다.
부자들은 하나님께 복을 받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부자들과 율법사들은 당연히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사람들로 인정하는 사회였습니다.
부자관원이 근심하고 돌아가는 것을 보고 예수님께서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도 힘들다고 하셨죠.
그때 제자들이 아주 놀라워하며 말합니다.
그렇다면 대체 누가 하나님나라에 들어간다는 말입니까?
부자도 못 간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도 못 간다, 그럼 누가 가냐는 것입니다.
그들이 아니라 어린아이 같은 사람이 천국의 자녀라는 것이죠.
아마도 제자들이 술렁였을 것입니다.
율법도 모르는 아이들이 천국 백성이라는 게 이해하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어린아이와 같은 자가 하나님나라에 들어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어떻게 하는 것이 어린아이 같은 것이고, 주님이 인정하시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일까요?
이것은 예수님을 믿어야 구원을 받는다는 믿음과 상통하는 것입니다.
15절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그 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고
우리가 천국에 가려면 어린아이와 같이 천국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말 성경은 ‘받들지 않는’이라고 했지만 원어는 ‘받지 않는’입니다.
어린아이처럼 주는 것을 그냥 받으라는 것입니다.
이것저것 따지면 따지다가 스스로 덫에 걸립니다.
왜냐하면 믿음의 내용들은 우리 이성으로 다 완벽하게 이해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따지다가 이해 안되는 부분을 내 경험과 지식이 자꾸 틀렸다고 생각하면 결국 불신의 벼랑으로 떨어집니다.
구원은 성경이 말씀하신 대로 예수님의 대속을 믿고 받는 것입니다.
우리가 강남에 좋은 아파트 하나 사려면 반찬값 좀 아끼고, 옷 안 사 입는다고 되지 않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율법 몇 가지를 지키면서 천국의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 게 그런 것입니다.
우리 힘으로는 살 수가 없기에 아들 하나님이 값을 치르시고 선물로 주시는 것입니다.
그 선물을 어린아이들이 넙죽 받듯이 그렇게 믿고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받고 기뻐하고 감사하면 됩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이 선물을 받으면 거기에 다른 모든 선물들도 풍성하게 따라옵니다.
우리가 다 그렇게 구원도 받고 풍성한 삶을 살고 있잖아요?
예수님 말씀하신 대로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시는 것이죠.
우리와 자녀들이 예수님 앞에 나올 때 주님은 그렇게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오늘 예수님은 아이들을 안고 안수하고 축복해 주셨습니다.
아이들의 믿음으로 나온 게 아니라 부모들의 믿음으로 나왔습니다.
예수님은 아이들을 안고 축복하셨지만 부모의 믿음을 기뻐하셨습니다.
아이들만 안고 축복하신 게 아니라 그 부모들의 마음도 함께 안아주시고 축복해 주신 것입니다.
자식들이 축복받는 것을 볼 때 부모는 그게 바로 축복입니다.
오늘 우리 부모들이 하나님을 어떻게 믿고 있는지가 아이들에게도 전수된다는 것을 잘 배워야 할 것입니다.
연어로 만든 음식을 파는 연어로만이라는 프랜차이즈를 경영하는 신효0 장로의 이야기를 들려드리며 마치겠습니다.
이분 어머니가 믿음이 깊으셨는 데 폐결핵으로 마흔 아홉에 소천합니다.
마지막엔 수년 간 병원에 입원해 있다 보니 병원비를 감당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들인 신효0 장로가 건축현장에서 일하며 돈을 벌어서 보탰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일을 마치고 병원에 갔더니 어머니가 ‘아들, 이제 힘든 일 하지 말어. 하나님이 병원비 다 주셨어’
그러시는 거예요.
그게 무슨 말씀이냐 했더니 여기 베개 밑을 좀 봐 그러십니다.
베개를 들춰 봤더니 그 안에 십만원, 백만원 수표가 수북이 들어있었습니다.
아들이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사실인즉, 이 어머니가 기도의 사람이었거든요.
병원에 입원해 있는 몇 달 동안 거기 아픈 사람들을 위해서 한 명 한 명 찾아다니며 매일 기도를 해 줬던 것입니다.
그런데 기도를 받고 다 병이 잘 나아서 퇴원하게 된 것이죠.
환자들의 가정에 있는 기도제목들도 다 잘 해결이 되었고 어떤 사람은 사업도 너무 잘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이 이 가정의 어려운 형편을 알고, 감사의 표시로 그렇게 돈들을 가져왔던 것이죠.
그렇게 병원비를 정산하고도 팔백만원이 남았습니다.
그런데 어머니 말이 ‘여기서부터는 우리 돈이 아니다’.
이것은 교회로 가져가서 가난한 성도들 나눠주라고 하셨다고 합니다.
그렇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신효0 장로는 음식점을 차리게 됩니다.
그런데 일년 만에 26억 매출을 올렸고, 몇 년 안 되서 100억 매출을 찍게 되었습니다.
가난하게만 살다 돈을 벌으니 벤츠에, 아우디에, 롤레스시계에 사고 싶은 것 다 사봤다고 합니다.
그런데 마음이 허전하고, 이게 다 뭔가 싶었대요.
그때까지 신효0 장로는 하나님을 믿지 않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새벽에 어머니의 온기라도 느끼고 싶어 다니시던 그 교회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그날 누군가 따뜻하게 안아주는 느낌 속에서 눈물을 흘리며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예수님을 믿게 된 신장로는 지금도 매출이 엄청나지만 연말엔 회사 재정을 0으로 만든다고 합니다.
어머니가 병원비 정산하고 남은 것을 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줬던 대로 한다는 거예요.
그 회사가 얼마나 좋은 일을 많이 하겠습니까?
부모의 믿음, 부모의 행한 모습, 우리 아이들이 그 길을 따라옵니다.
다른 누구보다도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칩니다.
우리 부모들은 좋은 믿음으로 하나님나라와 세상을 향한 선한 본보기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모든 가족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예수님의 안수와 축복이 떠나지 않는 우리 가정들이 되시길 축원드립니다.
'마가복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가복음4장35절-41절 (큰 광풍을 잔잔하게) (4) | 2022.01.20 |
---|---|
마가복음14장1절-11절 (향유를 부은 여인) (0) | 2019.04.09 |
마가복음5장22절-34절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진 여인) (0) | 2018.11.09 |
마가복음1장40절-45절 (나병환자의 치유) (0) | 2017.03.01 |
마가복음4장35절-41절 (큰 광풍을 잔잔하게) (0) | 2015.08.18 |